정동길을 걷다가 만난 이쁜 까페. 크리스마스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 이렇게 소담한 눈송이가 창문 가득

내려앉은, 그리고 무엇보다 손님이 하나도 없어 음악만 조용하게 속삭거리던 분위기가 너무 맘에 들었다.

막 시립미술관에서부터 숭례문까지 한바퀴 걸었던 참이라 조금은 차가워졌던 손과 발이 금세 따뜻하게

화색을 되찾고, 카메라를 끄집어내어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1.5층 쯤으로 된 곳에도 손님은 하나도 없고, 우리가 앉은 1층에도 역시. 저쪽 너머엔 박기영의 콘서트가 벌어지고

있다고 해서 사람들이 전부 그쪽으로 몰렸는지도 모르겠다.

카페 모카. 새삼스레 재발견한 카페 모카의 달콤함이란.


창밖으로 기와가 얹힌 돌담도 보이고 하얗게 번지는 가로등도 보이는가 하면, 건물 앞 나무를 피해 움푹 들어간

형태로 디자인된 캐나다 대사관의 나무 외관도 보인다. 눈꽃들을 경계로 살짝 차갑고 날카로워 보이는 바깥 풍경과

겹쳐서 보이는 이쪽의 포근하고도 따스한 주홍빛 조명과 실루엣들.


포인세티아. 포인세티아의 새빨강 무더기들은 실은 꽃이 아니라 꽃받침. 가만히 들여다보면 방울방울 옹송그려

말려붙은 털실뭉치같은 게 보이는데 그게 꽃이란다. 가뜩이나 풍토가 맞지 않는 한국의 겨울을 버티느라 힘들 텐데

다음번에 가도 그대로 있음 좋겠다. 언제고 정동 쪽을 돌아볼 때 꼭 다시 함 가보고 싶은 곳.

덕수궁 돌담길. 연인들이 걸어가면 백방 깨진다지만 사실 안 깨지는 연인이란 거, 한 사람에 한번쯤이려나.

내가 좋아하는 길, '검문'이란 단어가 사람들을 주눅들게 만들어 놓아서 아주 호젓하게 걸을 수 있는.

의경들이나 주머니에 손 꾹 찔러넣고 걷고 있는 길을 계속 걷다 보면 구세군회관도 나오고. 종로통도 나오고.

장소를 옮겨 효자동, 거리를 지나다 허벅지 높이에서부터 말간 통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풍경 속으로 들어갔다.

뜬금없어 보이던, 그렇지만 사실 머잖은 산타클로스의 재림, 등잔이 만들어낸 그림자 속 오각별들이 반짝반짝.

서울 시내 곳곳으로 까페가 급격하게 번지는 건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내가 까페를 찾는 이유는 대개

다음과 같은 것들 때문이다. 폭신하고 부드러운 질감의 쿠션이 엉덩이와 허리를 받쳐주는 등받이의자,

테이블과 몸뚱이 사이에 꼽아서 고정시켜둘만큼 두툼하고 단단하면서도 보들보들한 쿠션 두어개, 또

옆테이블에 앉은 사람과 말을 섞고 있다는 환상에 빠지지 않을 만큼은 충분한 테이블간의 널찍한 거리,

굳이 통유리가 아니어도 햇살과 바깥 풍경이 꾸물꾸물 스며드는 창문과 맘에 드는 노래, 거기에 굉장히

진한 에스프레소나 더치커피 같은 것들. 그런 거라면 반나절은 족히 까페에서 뒹굴 수 있는 거다.

책을 보던, 음악을 듣던, 이야기를 하던, 다이어리를 끄적거리던, 공부를 하던, 사실 가장 좋은 건

여행책자를 펴놓고 여행계획을 짜거나 어디 놀러갈지 생각하는 거지만. 사실 그렇게 치면 까페에

들어가 마시는 커피나 차류는 일종의 자릿값인 셈이다. 커피를 마시는 게 목적이 아니라 뭔가

쿠션과 테이블, 공간을 차지하고 시간을 보내고 싶은 거니까.

이렇게 볕이 한조각 떨궈진 공간에서 꾸물꾸물 밀려나는 그림자와 볕이 잠식한 빛의 영토를 시계삼아,

아침부터 점심, 점심부터 저녁..이렇게 대충 얼버무려진 하루를 하릴없이 까페에 앉아 뒹굴거리는 것.

굳이 분단위, 시단위의 시계나 전화기에 신경쓰지 않으며 책 한권쯤 읽는 것. 그러고 보니 그런 여유를

즐긴지도 꽤나 된 거 같다. 이 까페에 갔던 것도 어느새 수십일 전쯤.

그렇게 조용히 있다 보면 이런 평범한 앞접시에 숨어있던 밤하늘 별들과, 조그마한 망아지 한마리가

튀어나오기도 하는 거다. 흘낏 지나치는 시선으로는 잡아낼 수 없는 것들.

카메라라도 쥐고 있으면 더 좋다.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까페 곳곳에 렌즈를 들이대며 다짜고짜

찍어대기도 하고, 잘 안 쓰던 카메라 기능을 이렇게 저렇게 시험도 해보고.

아무래도 그렇게 즐겨 찾아드는 까페는 사람들이 좀 적은 곳, 덜 알려진 곳이기 마련이다. 아니면

사람들이 많이 찾더라도 상대적으로 조금 채워져 있는 시간대일 법한 때에 찾아가고. 사실 웬만한

까페는 다 알만한 사람들은 아는 곳이어서, 그런 고즈넉하고 편안하고 조용한 까페를 찾기란 쉽잖다.

까페 이름이 처음엔 '고기'라고 읽는 건가 했다. 까페 이름이 고기라니, 했더니 알고 보니 고기가

아니라 '고희'란다. 제법 맘에 든 까페여서 앞으로도 틈나면 가보려고 생각 중.

돌아나오는 길은 가정집도 많고 조그만 이층건물들이 골목을 따라 늘어선 다감한 느낌, 어렸을 적

왠지 무섭고 위축감 느끼게 만들던 저 사자머리 철문손잡이가 여전히 버티고 섰다. 이제 더이상

무섭지도 쫄지도 않게 되어 버렸지만, 그런 골목의 느낌도 애써 찾아다닐만한 거 같다.

 





프랑스 여행 갔을 때 빵을 참 맛있게 먹었었다. 바게트도, 크로와상도, 타르트류도. 동네의 빵집들도

굉장히 맛있었고 뽕드뺑이니 뽈(Paul)이니, 그런 베이커리 체인점도 엄청 맛있었던 거다. 늘 잊지 못하던

차에, 작년 상해 출장 중에 리츠칼튼 호텔 1층에서 '뽈'을 발견하고 완전 반가워서 잔뜩 빵을 사먹기도

했었고 남은 건 검정 봉다리에 뚤레뚤레 들고 다니며 떡을 만들어 먹기도 했었다. (그래도 맛만 좋더라는)

한국에서도 있다고 듣고만 있던 차, 여의도까지 갈 일이 쉽게 생기지 않아 항상 맘속에 위시리스트에

넣어두고만 있었는데 드디어, 드디어 한국에서 뽈 입성. 프랑스나 중국이나 한국이나, 매장의 인테리어는

똑같이 꾸며놓았구나, 클래식한 느낌의 어두운 색 철제 프레임 위의 하얀색 글자, PAUL. 주말 오전에도

사람들이 바글바글, 대기자 리스트에 이름을 적어두고 몇분 기다리는 정도는 기꺼이 감수할 수 있다.

브런치 메뉴를 시켰더니 우선 검은깨가 잔뜩 박혀있는 바게트와 버터가 나왔다.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일회용 버터용기가 아니라, 도자기로 만들어진 용기 속에 버터가 꽉 채워져서는 저런

종이로 뚜껑삼아 덮여있었던 것. 원래 빵에 버터 발라먹는 거 안 좋아하지만, 그래도 아침부터

거칠딱딱한 바게트를 먹자니 속이 좀 부대끼겠다 싶어서 버터를 꼼꼼히 발라먹었다.


매장 안은 커다란 통유리창을 따라 길게 늘어져 있었고 천장도 높은 덕에 굉장히 개방된 느낌이었다.

은은한 파스텔톤의 색감이나 단정하고 우아한 느낌의 커튼, 그리고 따뜻해 보이는 백열등 샹들리에가

잘 어우러진 분위기. 파리에서도, 상해에서도 비슷한 분위기였던 거 같다. 아마 전통적인 인테리어 컨셉을

고수하는 거겠지, 어설픈 현지화라거나 분위기 쇄신을 거부하는 게 왠지 프랑스스럽다.

뭘 먹었냐면, 이런 거. (아놔, 음식 포스팅은 이래서 못해먹겠다는. 제목을 기억해야 하는데 그 맛밖에

기억나지 않는다 말이다.) 분명한 건, 내가 여태 뽈에서 먹어봤던 빵들이나 브런치 메뉴, 커피까지도

별로 실패다 싶었던 적은 없었다는 점. 특히 강추하고 싶은 건 크로와상, 아몬드 크로와상하고 타르트류.

메뉴판의 한대목. 벌써 120년도 넘은 역사를 가진 빵집이었구나. 메뉴판을 보면서 생각보다 가격이

비싸지 않다고 생각했다. 기준의 문제일 수 있겠지만, 신사동 가로수길이나 삼청동, 아니면 정자동

까페골목 같은 곳에서 브런치를 먹을 때보다 조금 싸거나 비슷한 정도랄까. 브런치가 아니라 빵을

먹는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요새 베이커리집들 얼마나 빵값이 비싸졌는지, 그닥 차이가 없어 보인다.

브런치를 먹고 아쉬워서 빵 하나 더 골라서 맛나게 먹고 나서 한참 앉아서 창밖도 구경하고, 이야기도

하고 그랬다. 샹들리에(전등)와 샹젤리제(거리이름)를 내내 헷갈리다가, 파리에 다녀오고서 그 도시의

거리 곳곳을 걸으며 몸에 새기고는 비로소 그 두 단어를 제대로 구별할 수 있게 되었던 것도 기억나고.

그 이래로 파리와 상해, 서울의 추억을 이어주며 이렇게 어디서든 변함없는 퀄리티와 맛으로 반겨주는

빵집 하나를 서울에 갖게 되었다는 건 꽤나 즐거운 일이다. 옆 테이블의 어느 할머니 할아버지가 가볍게

브런치를 먹고 오붓하니 이야기하는 걸 보며, 그네들의 추억은 어디에서부터 이어졌을까 괜한 상상도

해보게 되었던 시간.





북촌한옥마을에 위치한 까페 가회, 저번달에 '타투이스트'의 전시가 있다해서 겸겸 다녀왔었다. 전시는

생각보다 단촐했는데, 아무래도 전시의 방점이 '타투'보다는 타투이스트의 예술 세계에 맞춰져서 그런듯.

가장 재미있었던 작품은 여권에 과감하게 그림도 그리고 낙서도 하고, 심지어 저렇게 타투하듯이

재봉틀로 별이니 배니 종이비행기니 박아놓았던 작품.

북촌 한옥마을은 거의 처음 가봤던 거 같다. 안국역에서 내려선 꼬불꼬불한 길을 지나 자칫하면 못 보고

지나칠 뻔한 조그마한 안내판을 용케도 놓치지 않고선, 빗길을 뚫고 가회 갤러리 까페 입성.


입구에서부터 전시중인 타투이스트 전시 관련한 팜플렛과 달력, 온통 그의 '타투' 작품 사진들이 가득했다.

그리고 북촌 한옥마을을 소개하는 A4 한장 크기의 도보자용 지도도 주었는데, 여태 모셔두고만 있다.

왜 이렇게 비가 자주 오는지 걷기엔 참 좋지 않은 날씨 탓이다.

'타투이스트', 아무리 생각해봐도 한국어로 딱히 바꾸기가 애매한 단어다. 문신술사, 문신전문가, 문신예술가.

혹은...뭐가 더 있으려나. 그만큼 한국에서 '타투', 문신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이 워낙 부정적이고 척박하단

사실을 반증하는 거 같다. 그 와중에도 이렇게 종이 비행기를 주된 테마로 잡고 타투 아트를 계속해온

아티스트가 있다는 건 그 자체로 박수쳐줄 일이지 싶다. 자기 몸을 도화지 삼아 연습하지 않았을까.


그가 갖고 있는 타투 장비들. 저 총처럼 생긴 것에 잉크통을 꼽고서 펜처럼 피부 위에다가 그림을 그리는

거다. 우리나라에서 타투가 뭐라더라, 공중위생법으로 제재받고 있다던가. 딱히 제재할 법이 없으니 저

타투 장비가 위생적이지 못하다느니 병을 옮긴다느니 따위의 조잡한 꼬투리를 잡고서 제재하고 있다는데,

한심한 일이다. 양성화해서 다양한 예술적 디자인이나 그래픽이 발전하도록 하고, 위생상의 문제가

정 그렇게 신경쓰인다면 제대로 관리하면 되지 않을까.


타투이스트 한 명의 작품만이 아니라, 다른 아티스트들과의 협업이 이루어진 결과물들도 전시해 놓았었다.

재봉틀을 이용해 저런 아기자기한 그림들을 수놓고는 소녀의 여린 팔목에 뽀빠이처럼 닻 모양이라거나

조폭처럼 '一心' 이런 한자를 수놓는 센스라니.


뭐 벽면 한쪽으로 그런 그림이나 복합 재료로 꾸며진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고, 이렇게 분방하게 채색된

구두도 한 켤레 놓여있었고. 아무래도 갤러리 까페라 그런지 차 마시기도 괜찮은 분위기였지만, 찻잔을

들고 벽면을 따라 돌아다니며 이런 전시물들을 구경하기에도 괜찮았던, 편한 분위기의 천장 높은 까페.

와중에 발견한 맘에 쏙 들던 아이템 하나. 뱅 앤 올룹슨의 오디오였는데, 저 앙증맞은 빨강 세모모양

스피커가 한눈에 확 꽂혀버렸다. 게다가 조그마한 체구에서 울려나오는 사운드가 전혀 뒤지지 않고.

기억해 뒀다가 나중에라도 꼭 사겠다며..일단 위시리스트에 보관.

에스프레소는 생각보다 많이 연했다. 갈수록 진한 커피를 좋아하게 되는 참이라 조금 실망했지만, 그래도

에스프레소 위의 크리마가 여느 까페 체인의 그것보다 훨씬 풍부하고 부드러웠던 듯. 저렇게 활짝 웃고있는

스푼의 애교에도 맘이 녹아내렸다.


들어갈 때 한장씩 나눠줬던 종이는, 전시 중인 타투이스트의 메인 테마인 종이비행기를 접으라며 미리

접는 선이 인쇄된 종이였다. 내친 김에 종이비행기도 접고, 배도 접고 나서는, 영수증 종이로도 조그마한

종이비행기를 마저 만들어버렸다.

그러고 나니 문득 불붙어 버린 종이접기의 마력. 어렸을 때 만들었던 독수리5형제의 비행기를 만들 수

있을까, 스스로 궁금해져버려서 있는 종이 없는 종이 동원해서 결국 만들고야 말았다. 저렇게 입도 쩍쩍

벌어지는 날렵한 모양의 비행기. 양쪽 옆구리에도 비행기 한대씩 합체분리할 수 있고 위에도 한대

합체해놓을 수 있는 궁극의 비행기였었다. 어렸을 때 커다랗고 두꺼운 달력 종이로 참 많이 만들었는데.

그렇게 비행기도 접고 배도 접고, 까페도 온통 둘러보고, 책도 읽고 하는 와중에도 참 줄기차게 내리던 비.

이제 한국은 4계절이 뚜렷한 나라라기보다는 '우기'가 있는 아열대의 나라가 되어버린 건 아닐까.


비가 그치기를 기다려서 북촌한옥마을을 좀더 돌아볼 생각이었는데, 아무래도 비는 그칠 생각이 없었다.

이미 에스프레소는 훌짝 다 마셔버린지 오래. 마치 타투처럼 굵고 선명하게 남아버린 크리마의 갈색 띠만

에스프레소 잔 안쪽에 보름달처럼 떠올랐다.

그러고 보면 내 타투를 보고도 사람들이 '참 잘했어요'라거나 '1등급' 따위의 둥근 도장을 찍어놓은 것

같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나도 이쁘다는 생각은 변함없지만, 조금은 더 밖으로 열려있는 이미지였음

좋았겠다 싶기도 하고, 일단 달과 별을 몸에 새겼으니 다음에는 다른 천체를 새겨서 공간을 넓혀야겠다

싶기도 하고. 무엇보다, 사실 가회 갤러리까페에서 전시회를 열었던 이 타투이스트의 작품들과

비교했을 때 내 꺼만한 게 없지 싶어서 조금은 뿌듯.




제주도 서남부에 '오설록' 차박물관이 있다면 동북부에는 '다희연'이 있는 셈이었다. 너른 차밭이 언덕을

꿀렁꿀렁 넘어다니며 펼쳐진 모습도 장관일 거라 생각은 했지만, 여기는 동굴까페가 있는 데다가 카트를

직접 운전하며 6만평 차밭을 돌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꼭 가보고 싶었던 것.


거문오름 자락에 연해 있다고 하더니 정말, 다원 한쪽엔 거문오름 트레킹코스 종점을 알리는 현수막이

나부끼고 있었고, '다희연'이란 이름보단 '동굴의다원'이란 이름으로 계속 도로표지판이 나오더니 정말,

구석구석 땅밑세계가 은근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갈라지고 터진 검정돌바닥 아래로 슬쩍 내비치는 땅밑의

터널이라거나, 물소리가 졸졸거리며 옆구리가 터친 동굴까지.

우선 카트를 빌려서 다원을 한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6만평에 달한다니 걷기엔 무리인 크기인데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씨를 피하기엔 저렇게 꽁꽁 비닐차양이 둘러쳐진 전동카트가 제격. 엑셀레이터를

밟으면 소리없이 나가는 그 느낌이 굉장히 신기해서 한두어 바퀴 다원을 돌며 카트레이싱을 펼쳐보기도 했다.

카트를 타다가 발견한 전망대..라기엔 조금 애매한 높이의 2층짜리 건물. 비에 젖은 철계단을 조심스레

휘휘 돌아감으며 2층까지 올라갔더니 탁 펼쳐진 풍경. 몇개 놓인 나무의자와 말간 아크릴창 너머 가지런한

싱그러움이 있었다.

아침부터 여우비가 오고 있었는지라 햇살이 언뜻언뜻 내리쬐는 와중에도 부슬거리는 빗발. 안개가

자욱한 구릉들이 안온하게 감싸고 있는 녹색의 다원. 차라리 비가 조금 온 게 다행이다 싶었다. 사람 하나

마주치기 쉽지 않은 공간에 고즈넉한 공기가 차분하게 내려앉은 채 단단히 응결된 느낌.

카트를 타며 지나친 풍경들. 6만평이란 게 얼마나 넓은지 처음엔 와닿지 않더니, 좀 달리며 둘러보니까

비로소 실감이 간다. 산도 있고 나무도 있고 오르막내리막길도 있고 언덕도 있고 다원도 있고. 저런

흔들의자들이 띄엄띄엄 놓여있기도 하고. 참 많은 게 들어가는구나.

그야말로 '언덕 위의 하얀 집'이다. 빗물에 씻겨 더욱 싱싱하게 풀빛을 뿜어내는 녹차밭과 잔디밭 사이로

깜장돌이 차곡차곡 즈려박혔고, 돌이 이끄는대로 밟아 올라가면 도착하는 언덕 위의 하얀 집. 그리고 다희연

전체를 내려다 볼 수 있는 또다른 뷰포인트.

녹차밭만 있다기엔 중간중간 우거진 나무들도 있고, 늘씬하게 뻗은 채 그림처럼 서 있는 나무도 있었고,

아직은 전부 조성완료되지는 않은 것 같지만 자귀나무 동산이나 종가시나무로 조성한 미로 비스무레한 것도

있었다. 나뭇잎이 듬성듬성 가지끝에 성기게 매달린 게 종가시나무인 거 같던데, 아직 미로라기보다는 그냥

정신없이 우거진 종가시나무숲이란 느낌이었지만 조만간 정비되면 괜찮지 않을까. 녹차나무로 팔괘진을

만들었단 곳은 제법 잘 정비되어 있었고, 사진에 이쁘게 나오려면 조금 높이서 내려볼 수 있는 받침이나

사다리를 만들어두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조금 남았던 곳.


곶자왈, 제주도 여기저기에 같은 이름으로 불리는 곳이 많다 했더니 고유명사가 아니라 일반명사였다.

'곶'은 숲, '자왈'은 자갈을 가리키는 제주도 사투리. 그러니까 자갈이 깔려있는 숲길이랄까. 제주도의 독특한

화산지형으로 생겨난 산책로인 셈인데, 비를 맞아 더욱 꺼뭇꺼뭇 구멍송송해진 현무암 틈새로 빼곡히 자리를

잡은 이끼들과 잘박거리며 발 아래에서 뒹구는 자갈들이 묘하게도 정결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다지 길진

않았지만 온통 나무들이 빼곡하게 하늘을 가린 곶자왈 산책로를 걷고 다시 탁 트인 차밭으로 나오니

기분이 묘하다.

그렇게 곶자왈도 숨어있는 6만평의 너른 차밭을 샅샅이 수색하듯 전동카트로 헤집고 나서, 드디어 동굴의 다원

입장하기 직전. 거문오름에서 뻗어내린 여러 자락 중에서도 동굴계 자락 끄트머리에 자리한 덕분에 가능했던

거라고는 들었지만 대체 어떤 식이길래 동굴의 다원이라는 걸까 궁금하기도 했고, 녹차로 만든 아이스크림이나

팥빙수가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크기도 했고.

생각보다 깊고, 크고, 넓은 동굴이 조금 이어지더니 불쑥 밝은 빛이 가득한 홀이 나왔다. 뭔가 물이 뚝뚝

떨어지고 흐릿한 조명에 조악한 테이블이 몇개 있으려니 했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고, 깔끔하고 나름

단정한 스타일의 인테리어를 갖춘 천장 높은 까페가 있었던 거다. 30만년전에 형성된 동굴이라더니, 그래서

저리도 넓고 큰가 싶었다.


녹차 아이스크림은 물론이고 녹차빙수, 녹차발효액에 각종 케잌과 빵류까지 제법 잘 갖춘 까페에서 잠시

앉아서 시원한 에어콘을 쐬면서 이것저것 맛도 보며 쉬다 보니 금세 땀이 식어버렸다.


돌아나오는 길, 들어가는 길이나 나오는 길이나 같은 길이었지만, 이런 경우 늘 신기한 건 들어갈 때 못 보았던

것들을 나오면서 새삼 발견하는 경우가 왕왕 있더라는 것. 내가 관찰력이 떨어지거나 주의가 산만해서인지도

모르지만, 저렇게 동굴 외길 한켠에 나란히 걸린 '사랑의 서약'은 왜 아까 못 봤을까.

녹차를 응용한 음식들을 파는 레스토랑도 있고 도자기만들기를 체험해볼 수 있는 전통도요도 있다고

하는데 뭐, 배는 고프지 않고 도자기는 익히 만들어보았으니 전부 스킵. 사전에 예약하면 녹차따기나

녹차팩만들기, 녹차비누만들기나 녹차장아찌, 녹차발효액만들기 체험도 해볼 수 있다고 한다. 조그만

아이들이랑 함께 제주도에 놀러간다면 한번쯤 체험을 해보는 것도 좋을 거 같지만, 머리 굵은 사람들끼리의

여행이라면 짙푸른 녹색의 다원에서 카트를 질주하곤 동굴까페에서 녹차 팥빙수 한그릇 흡입해주는 정도면

충분하지 싶다.



모슬포항 앞, 바다에서 잡은 물고기로 배를 가득 채운 '만선'의 꿈이 뭔가 어촌의 정취가 느껴지면서도

여유롭고 뿌듯한 삶을 바라는 인간의 당연한 욕망이 느껴지는 단어라면, 그 뒤로 보이는 단어는 훨씬

강렬하고 직설적이다. '돈방석'이라니. 굉장히 솔직하고 적나라하게 욕망을 드러내는.

내가 꼭 저 만선식당에서 먹었던 고등어회가 정말정말 맛있어서만 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가뜩이나

신선도가 금방 떨어져서 회치기가 힘들다는 고등어, 왠지 비릴 거 같기도 한 그 생선회를 구운 김에

싸서 깨소금과 참기름으로 비빈 밥과 함께 먹으면. 캬아..제주도에서 먹은 음식 중 가장 인상에 남는.

바다에 비가 내리는 걸 보노라면 뭔가 망연해진다. 비가 오는 날 회를 먹지 말라던 건, 비싼 회를 조르는

아이들의 입을 조금이라도 막아보려던 어른들의 궁여지책 같은 거 아니었을까. 배고프다.

제주도답게, 구멍이 송송하고 반들반들한 현무암스러운 돌멩이로 냅킨을 눌러둔 까페에 앉아

책도 들척이고, 노래도 듣고. 그러고 있으면 참 좋았다. 어딘가로부터 어딘가로 걸었던 길 끝에서,

혹은 어딘가로 떠나기 전 길을 앞에 두고, 쿠션이 푹신한 의자에 앉아 포실포실한 쿠션을 꼬옥

끌어안고는 잠시 몸을 부려두는 거. 그리고 여력이 된다면 다시 책 속이나 멜로디 속으로 떠나는 거.

더구나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날씨라면.

모슬포항 주변에도 이런저런 벽화가 그려져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맘에 들었던 건 저 해녀 사진.

몸의 동작이나 모양새 자체가 바다 속이라는 느낌이 가득하도록, 살짝 흐느적거리거나 유영하는 듯하다.

무중력 상태에서 자유롭게 몸을 운신하며 바다 밑 해산물들을 채취하는 그네들의 생활이 꼭 저럴 거 같다.


이렇게 며칠째 비가 내리는 날에는 바다 밖의 사람들도 저렇게 둥둥 유영해다니는 거 같다. 길거리를

부유하는 우산들도 그렇지만, 뭐 하나에 마음이 집중되지 못하는 정신상태 역시.















살갗을 간질이는 봄햇살의 따스함과 보드라움이 사진에 담겼으면, 하고 찍었다.

봄날엔 그림자조차 보들보들 너그럽고 따뜻한 느낌이다.



@ 대림미술관 & 통의동 어느 까페.

아주아주 달콤하고 쌉쌀한 초콜렛 음료를 만들어내는 곳, 카운터의 모습이 반질반질한 천장에

그대로 말갛게 비쳤다. 이런저런 스토리와 추억이 얽혀있는 까페.

다른 곳의 까페. 딱 보면 어디인지 알 수 있을 인테리어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던 건 천장을

온통 덮고 있는 거울이었다. 친구들이 서로의 눈빛을 주고 받으며, 또 더러는 서로의 폰에

집중하며 이야기를 나누던 사이 나만 천장을 보고 사진 한장. 근데 저 지갑은 왜 연거지.

또 다른 시간의 강남역. 해가 까무룩하니 저물어가며 사방으로 빛을 퍼뜨리는 시간대에

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 그리고 LED조명이 색색으로 바뀌는 가운데 거침없이 지하도

아래로 빨려들어가고 토해내어지는 사람들이 있었다.





햇볕은 참 좋았는데. 부드럽고 진득하게 내려붓는 햇볕을 날카롭고 까칠한 바람이 전부

흐트러뜨려놓던 주말의 석촌호수. 벚꽃이 아니라 복사꽃이던가, 좀더 진하게 핑크빛이

번져있는 꽃잎이 나뭇가지에 온통 포도송이처럼 피어났었다.

하얗고 투명한 햇살 아래서 형광빛처럼 빛을 발하는 꽃무더기들이 황홀했다. 옆엣나무는

이제 그래도 봄이라며 제법 싱그런 연두빛에 힘을 빡빡 주며 그을리고 있는데, 이녀석은

때도 모르고 온통 하얀 빛만 일렁일렁.

석촌호수에서 걷는 사람들을 보면 꼭 한쪽 방향으로만 돌고 있다. 시계반대방향으로, 허리춤이

바싹 졸려서 8자모양처럼 생긴 석촌호수를 따라 도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며 거꾸로 걷다 보면

굉장히 불편하다가도 어느 순간 그런 시선따위 신경안쓰고 그냥 거꾸로 걷게 된다. 아직은

앙상한 가지가 아스팔트 보도 위를 사방으로 내달리는 균열을 그려냈다.

날씨가 미쳐서 그런가, 단풍나무가 벌써부터 시뻘겋다. 그리고 나뭇가지들이 여전히 앙상한 걸

보고 있으면 대체 지금이 봄인지 가을인지. 햇살만 받고 있음 따끈하니 봄볕은 맞는데 여전히

칼날처럼 에이며 맹렬한 바람까지 얹어지면 헷갈리고 마는 거다.

추워서 들어온 까페에서 만난 커피설탕. 와, 진짜 오랜만이다 싶었다. 어렸을 때는 이거

맛있다며 한알씩 사탕처럼 먹기도 하고 그랬는데. 요새는 시럽으로 대체된지 오래라서

좀처럼 못 보고 있었는데 오랜만에 만난 김에 슬쩍 한 알. 오도독오도독.

주홍빛 결명자차가 꽉 채워져있던 커다란 유리병, 저런 식으로 만들어진 마개를 보면 몇번이고

딸깍거리며 열었다 닫았다 장난을 치고 싶어지는 거다.


나 말고도 역주행을 하는 녀석이 하나 더 있었다. 마침 네발로 땅을 박차고 튀어오른 시점인듯

공중부양하듯 공중에 뜬 채 주인을 향해 되돌아 달려가는 에너지 넘치는 강아지 녀석.




요새 자꾸 이런데 맛들여서 큰일이다. 강남역 근처의 까페에서 아메리카노랑 티라미슈 조각케잌을

먹다가, 같이 갔던 친구가 (또!) 술 한병과 새 컵 두어개를 들고 와서 에라 모르겠다, 소주를 꽐꽐꽐.


맥도널드에서 상하이스파이스버거를 안주삼아 발렌타인17년을 마시다.

맥도널드에서 빅맥을 안주삼아 프랑스와인을 마시다.


그냥 이런 식으로 먹는데 요새 조금 재미가 들린 거 같다, 딱히 술이 좋아서라기보다는 의외의

장소에서 술을 따서는 홀짝대는 게 재미있는 듯. 본격적으로 많이 마시거나 부어라 마셔라 강권하거나

그러는 게 아니라 그냥 집에서 혼자 홀짝거리듯 부담없이, 적당하게.

다음번엔 또 어디서 뭘 마셔볼까, 내가 의지를 갖고 술을 막 챙겨다니는 건 아니고, 무슨 교통사고처럼

어디서 누군가와 무슨 일이 생기면 마시게 될 텐데. 기대기대.





선릉, 햇살이 반짝거리던 날 벚꽃나무들이 둥그렇게 모여서 머리를 맞댄 그 아래 돗자리를

깔았다. 강하게 내려쬐는 햇빛 아래에서 하얀 꽃잎들은 거의 투명하도록 빛나고 있었고,

푸르스름한 하늘색과 살풋한 핑크색이 섞여들며 묘한 분위기의 창공이 위로 열려있었다.

나무는 아 까먹고 있었다, 라는 느낌으로 문득문득 꽃잎을 소리없이 떨구고 있었다. 바람 한점

없는데도 파르르 몸을 떨고는 꽃잎이 뚝, 뚝. 소리도 없이 내리는 벚꽃잎을 보면 뭔가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신비로움도 느껴지고 그 압도적인 존재감에 사방이 숨죽인 채 바라보는 느낌이

드는 거다. 문득 잊었다는 듯, 그렇지만 당신이 날 잊었던 말던 상관없다는 듯, 그렇게 고고하고

조금은 망연하게 꽃잎이 손 위에 내려앉았다. 


가을에 떨어지는 낙엽을 손으로 잡으면 행운이 온다는 말도 있지만, 떨어지는 벚꽃잎을 손으로

잡아도 행운이 온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었다. 워낙 얇고 가벼워서 살짝 스친 손길이 일으킨

바람에도 팔락이며 몸을 뒤채고 마는 그 섬세한 꽃잎, 그 말을 듣고 아마도 처음으로 꽃잎을

잡았던 건 아이러니하게도 군대 훈련소, 구보중이었다.

돗자리 위에 누워서 음악도 듣고 이야기도 하고, 문득 이야기가 끊기면 멍하니 떨어지는 꽃잎과

함께 마음이 나풀거리기도 하고, 더러 바람이 불어 우수수 꽃비가 나리면 마음이 먹먹해지기도

하고. 이빨빠진 꽃잎들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에 눈을 찔리기도 하고.

날씨가 워낙 희한한지라 한반도엔 이제 2계절이 뚜렷하고 일교차가 큰 그런 날씨가 정착되어

버린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벚꽃들도 볕좋은 곳에 선 나무에선 활짝 피다 못해 연두색 이파리가

스물스물 올라오고 있는가 하면 어떤 나무는 아직 꽃망울도 다 안 터지기도 했고. 그나저나

벚꽃은 이파리 오르기 전까지가 정말 이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이렇게 싱싱한 연두빛이

더해져도 나쁘지 않은 거 같다. 아직은, 엷은 핑크빛 꽃잎과 엷은 연두빛 잎사귀의 평화로운 공존.

몇 장, 선릉에서 찍은 사진들 추가. 커다란 능이 만든 둔덕 위에서 노란 민들레꽃이 피었더랬다.

그리고 두드러지진 않지만 담백한 보랏빛 꽃들도 군데군데 깃발을 꽂았고.

생각보다 넓고 다이내믹한 선릉 공원 내부, 자그마한 동산도 있고 산책로라기엔 꽤나 긴 동선이

나오는 너른 공간에 어딘가쯤 박혀있던 이 구부정한 소나무.

그리고 경주 남산에 잔뜩 있던 해송들이 풍상에 씻겨 우락부락해진 외모만큼은 아니어도 나름의

굴곡과 사연을 갖고 이리저리 구비구비 자라난 소나무들.

돌아나오는 길, 어느 까페의 노천 테라스에 앉아서 잠시 쉬었다. 파란색 파라솔의 두툼하고

거친 캔버스천 사이로 중천까지 바싹 독이 오른 햇살이 닌자의 표창처럼 무수히 박혔다.






얼음만 남기고 홀딱 마셨던 라떼, 얼음이 녹은 자리엔 물이 들이찼다.

물과 기름이 미끌거리며 서로 버텨내듯 가만히 녹아내린 얼음은 잔뜩 흐려진 라떼의 잔해와 버텨낸다.

창밖에서 볕이 손가락을 뻗쳐왔다. 이미 봄볕에 사로잡힌 꼬마아가씨는 분홍빛 가방을 들고

어디론가 룰루랄라 스텝을 밟으며 봄바람처럼 사라져 버렸다. 조용히 스며들어온 봄볕은

꽃무늬가 커다란 테이블을 지나 보랏빛 쿠션이 보드라운 의자위에 느긋이 몸을 눕혔다.

풍성하게 바람넣은 머리처럼 불룩한 화분을 둥지삼아, 붉은 새 한마리가 가만히 앉았다.

주체못하고 쏟아져들어오는 봄볕, 강물에 빠져버린 자동차의 깨진 창문으로도 저렇게 쏟아져

내리지는 않을 거다.

예전에 왔을 때도 눈여겨봤던, 그렇지만 별다른 감상없이 봤던 곰 두 마리. 사선으로 그어진 채

첫째 곰의 몸뚱이를 두개로 쪼개놓은 햇살 아래서 보니 표정이 떠오른다. 저 녀석들의 조심스런

손의 위치는, 살짝 외로 꼬은 고개의 각도는, 조금 우울하게 늘어진 표정은. 뭘까.

그리고 벽면에 장식되어 있는 몇 장의 도자기 접시. 몇 장의 도자기도 붙어있고, 몇 장의 흔적도

여전히 붙어있다. 벗겨진 페인트로 그 존재를 주장하려는 것들은 깨져서 떼어낸 걸까 아니면

억지로 떼어내어 다른 곳으로 옮긴 걸까.

이층과 일층을 잇는 계단, 아래로 내려다보며 찍은 사진은 종종 수평감각을 희롱한다.

이렇게 보니 계단이 아니라 격자처럼 좁아져 나가는 통로같기도 하고 거울은 천장에 붙은 듯.

여기에 올 때마다, 뭔가 삼청동에서 숨겨진 잠수함 같은 곳에 올라타는 느낌이다. 의미상

잠수함이라면 수면 밑으로 내려가는 게 맞겠지만, 여긴 위로 부상해있음에도 조용하고,

사람들 눈에도 딱히 안 띄는 거 같고. 그리고 저 제법 든든해 뵈는, 잠수함 창문같은

이중 유리창들을 활짝 여는 건 뭔가 역설적인 즐거움을 준다.

제법 선명하고 튀는 색감의 테이블, 의자들, 쿠션들이 구석구석 차지하고 있지만 나름 분위기는

어찌어찌 정돈되는 게 신기하다. 창문이라고 뚫려있는 곳에 보이는 곳은 이웃한 건물의 붉은 벽돌

뿐이라지만, 그것도 나름 호의적으로 봐줄 수 있다.

벽에 있던 이집트 냄새나는 조각상 하나. 쭉 찢어진 눈이라거나 칼처럼 날카로운 콧날들이 좀

영특하다 못해 교활한 분위기를 주기도 하지만 화려하고 정교한 꾸밈을 보면 대충 만들어진

물건은 아닌 거 같다. 하긴, 이집트가 아니라 다른 어느 나라일지도 모르겠다. 음..어디려나.

이층에서 삼층으로 오르내리는 계단, 많은 사람들의 발이 나무를 조금씩 깎아낸 거다. 색깔이

빠지고, 나무의 이빨이 빠지고, 그렇게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궤적이 남았다. 무질서하게 늘어선

와인병들이라지만 일정한 수량이 넘어서는 순간 나름의 미감이 생겨난다. 규칙없이 내걸어둔

티스푼 장식장들이라지만 역시, 나름의 균형이 잡히고 미감이 떠오른다.

옥상에서 바라본 풍경. 고만고만하게 다닥다닥 붙어있는 건물들 사이에서 탑처럼 우뚝 솟아난

나무하며, 해가 지면 바통체인지해서 불을 밝힐 야트막한 가로등 하나. 밑을 내려다보면 여느

때처럼 줄을 늘어선 채 삼청동을 순례중인 사람들. 여기서 저쪽은 잘만 보이는데, 왠지 저쪽에서

여긴 안 보이는 거라고 자꾸 의심하게 되는 거다.

자리에 앉아 가져간 책을 조금 보다가 문득 고개를 드니 위로 들린 창문에도 불빛이 하나 떠있다.

앨리스가 빠져들어간 거울나라, 원더랜드의 시작은 이런 조그만 균열감, 일상의 것이 아닌 듯한

약간의 낯선 기미부터 시작했을 거다. 이곳의 불빛과 저곳의 불빛. 저 창문을 거울삼아 비치고 있는

풍경 속에는, 좀더 각도를 틀어서 여기저기 이쪽 세상을 비쳐본다면 뭐가 더 보일런지.

가져갔던 책을 다 읽고 라떼를 다 마시고 다이어리를 다 정리하고 이곳의 추억들을 조금 되씹고도

못내 아쉬워서, 이리저리 고개를 휘휘 돌렸다. 이미 나보다 늦게 들어온 몇몇의 사람들이 나보다

먼저 나가버린, 그래서 다시금 혼자가 된 공간이었다. 그때 발견한 외계인들의 우주선. 까페를

침공하는 중이었다. 스크류 모양으로 생긴 메탈빛 강한 것들이 짙은 그림자를 바닥에 새기며

소리없이 다가오고 있었다.

외계인들이 이층 혹은 삼층에 불시착할 것을 일찌기 예측이라도 했다는 양, 까페 주인님께서는

친절하게도 이런 안내문을 계단 내려오는 길목에 붙여놨댔다. 머리 조심. 제법 가파른 그 계단은

보통의 지구인들도 자칫 머리를 부딪힐 가능성이 농후한 곳인 거다. 마지막으로 아쉽게 주위를

둘러보고 까페를 떠나는 나를 배웅한 건 역시, '머리 조심'. 또 올께요.



아무 목적지 없이 그냥 걷기..가 이번 여행을 하면서 괜히 별 이유도 없이 세웠던 고집이었는데

생각보다 그런 건 쉽지 않았던 거다. 가다 보면 문득 지금 방향에 대해 두려움이 생기고, 이쪽이

아니라 저쪽으로 가야 뭔가 중요하고 귀한 걸 놓치지 않을 것 같고, 무엇보다 목적지 없이

휘청대는 걸음 자체에 대한 불안함이 있었던 거 같다. 망망대해에서 무작정 항해하면 이런 느낌이

들지 않을까 싶었다.

조금 타협하기로 했다. 걷다가 여기가 어디쯤인지 지도만 슬쩍 보고 확인하기. 지도를 보고

그곳의 몇몇 이름난 명소를 향해 졸졸 따라가는 길을 인도받으려는 게 아니라, 그냥 정말로

지금 내가 어디에 와있는지만 확인하면 족한 걸로. 누군가 일러주는 대로 길을 가는 건 이미

한국에서 내비게이션의 지령을 따라 운전하는 걸로 질릴만큼 질려버렸으니까.

그러고 나니 조금은 수월하게 걸을 수 있었다. 한참 걸으며 대충 머릿속으로 여기가 어디쯤일지를

상상하다가, 내키는 곳에서 오렌지주스나 망고를 먹으며 쉬기도 하고, 아님 아예 그럴 듯한

까페에 눌러앉아 책을 읽기도 하고, 슬쩍 지도를 곁눈질하며 어디쯤인지를 확인하는 건 나름의

밀고 당기는 리듬감이 느껴져서 좋았다.

길을 가다보면 문득 차들이 쌩쌩 다니는 고가 도로 위를 걷기도 하고, 맨발의 소년이 낚시찌를

던지는 냄새나는 강둑을 지나기도 했다. 누군가가 굳이 담벼락 위에 CCTV처럼 걸어둔 노랑색

물총을 보며 궁금해 하기도 하고, 차도 옆까지 온통 꽃밭으로 가꿔둔 태국인들의 꽃 사랑에

감탄하기도 하고. 더러 황량한 골목으로 부러 꺽어지며 어떤 풍경과 사람들이 숨어있나 슬쩍

기웃거려 보기도 하고. 그러다 문득 동서남북의 방향감, 얼만큼 걸었는지의 거리감이 상실되면

적당한 표지판 앞에서 지도를 펼치는 거다. 여기가 어디지, 하며.

어쩔 수 없이, 랄까 가다 보면 뭔가가 가까워지고 그럼 자연스레 발길이 그리로 향하기도 했다.

뭔가 커다랗고 특이하고 사람과 가게들이 몰려있는 곳들, 몇 대의 대형버스가 관광객들을 토해내고

거두어가는 그런 곳. 인적없는 곳을 한참 떠다니다가 그런 부산한 지점이 가까워진다 싶으면

마치 철가루가 자석의 자장에 이끌리듯 내 궤적 역시 몇 개 지점으로 수렴하고 마는 거다.

그래도, 그렇게 덥썩 일로직진하여 그곳으로 돌입하고 싶진 않았다. 쿡쿡 찔러보고 슬슬

에둘러가며 멀찍이서 감각하다가 우연처럼 이쁜 까페를 발견해서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선그라스를 벗고 시원한 망고&라임 쉐이크를 쭉 빨아서 땀을 식히려다가 차가운 두통에

조금 인상도 써주고. 쿠션을 껴안고 늘어지게 앉아서는 다시 책을 꺼내들어 조금 읽기도 하고.

그렇게 설렁설렁, 이날의 반환점은 왓 아룬이었다.

마음 같아선 그저 걷다가 쉬고 또 걷고, 그렇게 어디로든 거침없이 뻗어나가는 선이 되고 싶었다.

그렇지만 또다시 어쩔 수 없이, 나의 걷기 자체도 해와 달에 귀속되고 마는 거였으니 해가 저물고

어둠이 나리면 슬슬 돌아갈 염려를 할 수 밖에 없는 거다. 그러다 보면 언제나 커다란 원의

궤적을 염두에 두어야 하고, 해가 정점을 찍고 낙하할 무렵 방향을 홱 틀어야 하는 거다.

러시아 민담이었던가, 하루종일 걸어서 원위치로 돌아온 땅이 전부 자기 것이 된다는. 그런

이야기에 빗대자면 나는 하루치 걸어서 무얼 갖게 된 걸까. 어느 광장에 따끈한 대리석 위에서

엉덩이만 비비가 뭐해서 아예 가방을 베고 에라, 누운 채 해가 떨어지고 퍼렇게 멍들다가

까뭇해지는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제 돌아가야 할 때. 여행을 떠나도 돌아갈 곳은 남는다.

여행을 떠나도 돌아갈 곳은 남는다. 원하던 원치 않던. 닭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고 했다.

조그만 골목에 기대어 테이블을 세우고 음식을 팔았을 허름한 길거리식당, 어디에서나 마주치는

태국 국왕의 얼굴이 어둠 속에서 둥실 떠올랐다.






전주의 전동성당 앞 골목에서 문득 고개를 들어 발견한 간판 하나.

국수카페, 카페 이름이 그냥 국수인 걸까 아니면 국수도 팔고 커피도 파는 카페라는 걸까,

조금 당황스런 마음으로 몇 초간 하염없이 바라보던 간판이었다.


뭘까. 손님들이 한쪽에서 후루룩쩝쩝 하며 국수를 먹고 다른 한쪽에서는 커피잔을,

이왕이면 앙증맞은 에스프레소잔을 손가락에 꼽은 채 그럴듯한 표정짓기 놀이중이란

그림은 좀 상상이 되지 않는데..뭘까나.




차이 라떼가 맛있다 하여 갔던 까페였는데, 와인이니 맥주니 의외의 것들도 많이 팔고 있어서

코로나를 덥썩 집었다. 보통 뚜껑을 따서 레몬 슬라이스를 구겨넣어주지만 여기는 잔에 레몬을

넣어서 따로 주고, 병에 저렇게 병따개를 달랑달랑 걸어줬다.


세수하러 왔다가 물만 먹고 간다는 옹달생 토끼, 토끼해에 퍼뜩 떠오른 이야기를 직접 체험한 날.






영화를 보러 간 건 2010년의 마지막 밤, 무려 세시간여의 영화가 끝나고 나온 시각은 2011년의 첫 밤.

그다지 크지 않은 상영관 안이었지만 영화를 보러 온 사람은 우리를 포함해서 열명이나 되었을까,

사람에 치이지 않고 유난스럽지 않게 해넘이를 하는 방법으로 꽤나 추천할만한 방법인 듯 싶다.


영화는 굉장히 묘한 느낌을 자아냈다. 영화 속에 나오는 인물들은 80년대에 번역된 세계문학전집을

그대로 읽는 식의 말투를 구사한달까, 도무지 일상생활에서 쓰이지 않을 법한 말투와 표현, 종결어미를

쓰는 거다. "저는 어찌해야 합니까. 이제 어디로 가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따위의 말을 또박또박 읊는

그들의 말투는 영화에 계속 일정한 거리를 두게 만든다. 이 영화는 대체 어디로 나를 끌고 가려는걸까,

저런 배경에서 배우들의 저런 연기와 대사는 어떤 의미가 숨어있을까, 고민하게 되는 거다.


풍경도 마찬가지, 영화가 국내에서 근 일년여 늦게 개봉하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2008년 어간의 서울

풍경일 텐데 왜 이다지도 낯설까. 남산타워의 모습이, 한강너머 트레이드타워의 모습이, 그리고

청계천과 덕수궁 인근의 모습이 내가 알던 그 곳들이 맞나 싶다. 풀칼라의 화면과 모노톤의 화면을

넘나들어서가 아니라, 워낙 날 것의 모습들로 나와서인지도 모르겠다. 혹은 분칠되지 않은 날 것의

모습이되 그때그때 사람들의 마음과 정서가 짙게 투영된 풍경들이어서 더욱 생경한 거 같다.


구성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겠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정서와 아포리즘이 반복해 등장하는 전반부,

그리고 영화가 시작한지 한시간 반쯤 후에야 불쑥 '아 까먹었네'라는 느낌으로 등장하는 영화제목과

배우, 제작진 소개라니. 그리고 나서 '백야'의 정서와 아포리즘으로 넘어가는 후반부랄까. 게다가

영화 도중 계속해서 하얀 화면에 글씨로 새겨진 몇몇 대사들은, 실제 내러티브와는 살짝 빗겨나면서

더욱 풍부한 해석이나 느낌을 가져다 주었다.


그렇게 복잡하고 낯선 장치들, 풍경들을 빌려 영화는 얼핏 세네개의 사랑이야기를 슬쩍 겹치며

흘려낸다. 신하균이 사랑하는 그녀, 신하균을 사랑하는 그녀, 신하균이 새롭게 만난 그녀, 그녀가

품고 있던 이전의 남자..가망없는 사랑 앞에 지쳐버려 죽음만을 생각하던 사내가 문득 새로운 가능성

앞에 가슴뛰고 열중하고, 그렇지만 다시 새처럼 날아가버린 그녀 앞에서 세상은 시간을 알 수 없는

흑백으로 물들고. 베르테르의 비극적 사랑과 그 결말을 백야의 여주인공이 그래도 조금 유예해줄 수

없을까, 했다던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랑에서 사랑으로 건너뛰며 우리는 죽을 때까지 연명하고 있는 건 아닐까.

'홍대여신' 요조가 연기했던 퀵배달부, 그녀의 역할이 결코 작지않았던 건, 그녀가 전하는 기쁘고 슬프고

화나고 좌절하는 소식들을 받아드는 사람들의 제각기 반응들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사랑을

고백하고, 이별을 고하고, 이별 앞에 분노를 터뜨리거나 복수심에 이를 갈고, 그 중의 한두명은 신하균과

같이 사랑에 지쳐버려 죽어버리거나 죽어버렸는지도 모른다. 또 누구는 그렇게 죽어버릴지도 모르고.


계속 화면 한 구석에서 적잖은 존재감을 과시하며 날카롭게 하늘을 찌르고 있던 남산타워, 그건

사랑으로 채 덮이지 않는 뾰족한 한 '현실' 아니었을까. 학생의 어머니를 향한 신하균의 사랑은 그

남산타워의 첨탑에 걸려 찢기고 말았고, 신하균을 향한 동료교사의 사랑 역시, 신하균의 정유미를 향한

사랑 역시. 여자가 남자에게 물었었다. 디워 논쟁 때 진중권이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이야기하며

불합리하고 비문맥적인 스토리를 비판했는데 어떻게 생각하냐고. 그렇지만 사랑은 대개 그런 거 아닐까.

불합리하고 이성적으로 설명되지 않으며, 딱히 명료한 맥락을 잡아내기도 힘든.


성모상 앞에서 배신한 남자의 뺨을 때리는 대신 꼭 안아주고 돌아섰던 어느 여자아이, 그녀가 남산으로

오르는 케이블카에서 친구와 나누던 말은 신하균에겐 너무 늦은 걸까, 아니면 너무 오래된 걸까.

이제 어떡할거야. 낳아야지. 어떡할 거냐고. 길러야지. 아니, 어떡할 거냐고. 살아야지. 살아야지.

사랑을 하고, 또 사랑을 하며 살아야지. 그 여자아이는 깨달은 걸까, 아님 너무 어린 걸까.




하늘 끄트머리에서부터 슬몃 붉은 빛이 감겨 올라오는 시간, 손바닥만한 경주시 한 복판의

노서, 노동고분군 옆에 자리를 잡았다. 노랗게 변색한 잔디가 이쁘게도 입혀져서는, 경주시를

감싸고 있는 산들처럼 완만하고 복스러운 곡선을 그리고 있는 왕족들의 안식처는, 천오백여년

시간을 시위하듯 커다란 나무들을 키워 올리고 있었다.

누가 감히 왕들의 안식처에 올라가 저 나무들을 심고 키우고 손봐줬을 리는 없고, 그저

자연스레 바람이 옮겨다준 씨앗을 이 자그마한 언덕이 품고서 물을 주고 양분을 줬을 거다.

그렇게 싹이 트고 키가 자라 저렇게 커다란 나무가 되어 더욱 단단히 고분의 가파른 옆구리를

움켜쥐게 되었겠지.

빨갛게 지던 해는 저 너머 나무 뒤로 가뭇없이 숨어버렸고, 고분은 온통 깜깜해져서

이제 그 곱던 갈빛 잔디의 부드러운 질감도 지워져버렸다. 한결 단단해지고 완강해진 느낌.

고분의 주인은 이제 완전히 분해되어 다시금 나무와 흙으로 변신했겠지만, 신라를 지배하고

백성들의 왕으로 군림하던 그 '의지'만은 남아서 태양을 응시하는 듯 하다.

노서, 노동 고분군은 고속버스를 타고 경주시에 내리면 어찌됐건 가장 먼저 마주치게 되는

유적지인 거다. 그만큼 시내 복판에 있는 셈이지만, 막상 그 주변은 적당한 음식점이나 카페

찾기도 쉽지가 않았다. 그렇지만 하나,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기어이 발견해낸 멋진 까페.

토토로가 창밖을 내다보고 있는 창가자리에 앉아 핸드드립 커피를 마시며 길 건너 봉긋하게

올라선 고분과 주위 풍경들을 감상할 수 있었다.

유리창이 통유리가 아니어서 조금 아쉬웠지만, 사실 그렇게 스펙타클하고 거대한 풍경을

마주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고작 왕복 2차선인 도로 너머 야트막하고 둥실한 고분 두어기를

조용히 바라보는 거니까. 고분의 실루엣이 저 너머 산들의 실루엣과 겹쳐보이는 풍경.


이 까페에서만 한두시간 있었던 거 같다. 경주에 도착하자마자 부서진 카메라를 대신해서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찍어대느라 급 방전된 아이폰을 충전하고 바깥 풍경도 구경하고,

까페도 구경하고 다이어리도 끄적대고. 담에 경주를 들르면 꼭 다시 한번 들르고 싶은 까페.

그리고 꼭 다시 한번 보고 싶은 신라 옛 왕들의 석양바라기 풍경.





불꽃을 몇 초간이라도 응시해 본 사람이라면 마력과도 같이 눈길을 붙잡아 두는 그 마력에 저항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익히 알고 있을 거다. 새빨갛다 못해 하얗게 탈색되어 버린 듯한 불꽃이 낼름대며

불똥을 뱉어낼 즈음이면 머릿속에서 그 옛날 어둡고 눅눅하던 동굴에서 번갯불을 소중하게 간직했던

조상의 기억이 마구 분출되는 느낌인 거다.

느닷없이 추워진 날씨에 모닥불이 어찌나 반갑던지, 으레 모닥불과 쌍으로 떠오르기 마련인

은박지두른 고구마니 감자 따위는 한참이나 불곁을 지키고 나서야 생각이 났더랬다. 그 와중에도

불티는 사방으로 날리며 누군가의 패딩 점퍼, 누군가의 코트에 빵꾸를 내려는 듯 기세등등.

가을이라고 몇 번 찡얼대기도 전에 단풍잎들은 온통 미이라처럼 바싹 말라 오그라붙은 채

분분하게 떨어져버렸다. 모닥불은 낙엽들의 잔해와 꼿꼿한 나무등걸을 남김없이 살라먹으며

이제 다시 겨울이 왔음을 선포하고 있었다. 가을은 그야말로 낙엽 한 잎사귀 떨어지는 순간

끝나버리고 말았다.




@ 남양주, 봉쥬르.

● 일시 : 2010년 11월 4일(목) PM 11:48부터

장소 : 다른異 색깔彩을 지켜낼 자유
                 (http://ytzsche.tistory.com)

● 자격조건 : 1대100 퀴즈프로그램에 나가서 
                    쪽팔리지 않을 정도로
                    삼일 내에 준비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해주시는 분 3명
(ex. 유용한 홈페이지, 까페 혹은 예상문제 자료를 구하는 법
      혹은 문제를 살짝 유출시켜 주셔도 좋습니다)

+ 초대장을 받을 수 있는 이메일 주소를 꼭 남겨주세요~*


주최 : yztsche(이채, 異彩)

제공 : 초대장 3장

● 특전 : 도움이 크게 되신 분께는
              방송에서 이름을 불러드리며 감사를 표하겠습니다^^;


In Honor of

the hopeful bloggers of the Tistory


Ytzsc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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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ytzsch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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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ce Thursday November 4, 2010



R.S.V.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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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갈 즈음, 사람의 마음이란 것도 싱숭생숭 어디론가 저물어간다.

건물들이 즐비하니 포위망을 좁혀오는 명동의 좁다란 샛길을 따라 흘러가는 사람들.

덩달아 붕 떠버린 마음은 결국 사고를 내고 말았다.


@ 명동, 어느 건물 5층의 까페.





총 3층짜리 자그마한 까페. 아담한 높이의 아담한 너비, 뭐랄까 조그마한 방 하나를 켜켜이 쌓아올렸다는 느낌.

2층의 천장 한복판에는 샹젤리제처럼 저울이 매달렸다. 우주선이나 잠수함처럼 단단하고 믿음직하게 생긴

창밖에서 새어 들어오는 빛발, 그렇지만 정말 깜깜한 우주나 심해 속에서 둥둥 떠다니는 것만 같은 묵직하지만

따뜻한 어둠이 걸쭉하게 고여있는 곳.

FRAGILE의 딱지가 아무것도 안 놓인 반대편 저울보다 무겁다는 위트. 섬세하고 예민해서 깨질 것만 같은

그대의 예기치못한 묵직함.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옆 창문, 기차에서 떼어온 듯한 통유리창에 누군가 풍선든 소녀를 그려놓았다.

의자와 책상의 부조화가 나름의 분위기를 자아내도록 만드는 건 '빈티지'를 표방한 삼청동이나 효자동 까페들의

기본기 중의 기본기지만, 어둑어둑함이 촉촉하게 서린 공간에서 녀석들은 여전히 매혹적이다. 난파된 잠수함의
창문을 깨뜨리며 격하게 난입하는 파도처럼 덤벼드는 빛발 덕분인지도 모른다.

묘한 색감과 분위기, 게다가 갈 때마다 사람도 별로 없는 축복받은 곳. 사람들이 기차놀이하듯 일렬로 선 채

순례하는 삼청동이란 걸 감안하면 더더욱.

화장실 창문으로 내려다보다. 화장실 창문도, 그 위의 환풍기 보호커버도 예사롭지 않다. 볼수록 세심하게

손길이 여기저기 닿아있음이 느껴지는 것도 좋다. 어라, 이런 곳까지, 의 느낌이랄까.

2층에서 3층 올라가는 길, 3층이 아니라 옥상 위 옥탑방 가는 길이라 해야 하려나. 유리로 덮인 천장에서

하얗게 쏟아져내리는 빛이 눈발처럼 내려서는 유리병, 장식장, 등불에 조용히 쌓였다.

삼청동, 갈수록 사람들만 많아지고 길가는 전부 공사중인 데다가 많이 범속해져 신비감을 잃어버리긴 했지만,

그래도 아직은 갈 만한 까페 하나가 있어 다행. (사실은 삼청동 내 마이 페이버릿.ㅋ)





동작대교니 어디니, 한강의 다리들 위에 언젠가부터 요 비스무레하게 생긴 까페들이 볼록하게 튀어나왔더랬다.

언제고 한번 가보겠다고 맘만 굴뚝이다가 어젯밤 불쑥, 동작대교의 '구름까페'로. 동작대교엔 구름까페와

노을까페가 대교 양편에 버티고 섰는데 한 삼십대쯤 차를 주차해놓을 수 있는 공간도 있다. 덕분에 교통체증의

원인이라고 원성도 높다던데 월요일 밤 열시쯤 가서 그렇겠지만 한가한 분위기.

동작대교 남단에서 강넘어 남산촌을 바라보았다. 건너편 강변의 주홍볼빛과 이편 스테인레스 울타리의 은빛이

묘하게 대치하는 느낌.

구름까페는 3층이던가, 건물 위에는 전망대도 있어서 내키면 음료를 들고 올라와 마셔도 될 거 같다. 비가 온

직후라 그곳의 테이블은 온통 빗물에 씻겼다.

양초칠을 빽뺵하게 하고 비를 맞았으면, 혹은 물을 뿌렸으면 동글동글 이쁜 물방울들이 맺혔을 텐데, 아무래도

이 테이블들은 그렇게 준비된 상태는 아니었는지라. 물방울들이 지들 마음대로 쪼개지고 뭉치고. 그래도

그 올록볼록한 느낌은 생생하다.

동작대교를 넘나드는 차들의 행렬. 빨갛고 노란 불빛이 띠처럼 대교에 감겼다.

그리고 올림픽대로, 여길 88대로라고 부르는지 올림픽대로라고 부르는지에 따라 세대가 구별된다고 했던가.

올림픽대로를 따라 줄지어선 가로수들이 마치 디오라마를 꾸며놓은 나무 모형같다.





갓 구운 따뜻한 쿠키와 브라우니 빛깔의 가구가 약간은 낡고 헤진 느낌으로 느슨하게 배열된 곳.

잔잔하게 나오는 노래에 야 좋다, 하다가 어느 순간 책읽기나 다이어리쓰기에 몰입하면 금세 귓전에서

지워진 채 조용히 자신에 몰입할 수 있을 정도의 분위기.


저런 식으로 길쭉이 내려다보는 전등에서 따스하게 쏟아져내리는 백열등 불빛도 좋고. 눈앞에는

읽고 싶은 책 한권과 다이어리, 펜 하나, 그에 더해 커피 한잔 정도면 딱 좋겠다.

그치만 현실은 시궁창.  내 마음속 까페엔 불이 꺼졌다. 내일 행사 한 건. 내일모레부터 삼일간 같은 종류의

다른 행사 한건. 그리고 나면 토요일에는 최종시험. 까페에서의 유유자적한 시간을 그리는 건 가뜩이나

월요병에 시달리는 스스로를 위무하려는 아스라한 백일몽. 


@ Spring comes, Rain falls.


중화인민공화국을 세운, '대장정'의 영웅 마오쩌둥이다. 어디선가 많이 본 중년의 마오쩌둥 사진. 그런데 뭔가

다르다. 귀에 삽을 박고 다니는 사람도 있지만, 이이는 이어폰을 귀에 걸었다. MP3로 노래라도 듣고 있는 걸까.

그들의 국부라 할 수 있고, 중국공산당의 아버지라 할 만한 사람의 귀에 이어폰을 꼽아주다니, 어쩌면 중국은

이제 한국보다도 정치적으로 유연하고 관용적인 사회가 되어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상해의 '신천지(新天地)', 삼청동 쯤을 연상케 하는 그럴듯한 까페와 갤러리들이 모인 곳의 어느 가게에서 무심코

카메라를 꺼내들게 만들었던 그림 한장. (사실 그런 갤러리에선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기 마련이다.)

상해의 조계 지역이었을까. 굉장히 고풍스러우면서도 이국적인 분위기의 벽돌건물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사람들이 사방에서 자리를 잡고 차를 마시거나 이야기를 나누거나 그저 햇볕을 즐기는 듯이 보였다. 어떻게 보면

중국의 느낌이 아니라 파리 샹젤리제 거리같은, 그런 여유롭고 유럽스러운 분위기의 공간이다.

왠지 커피빈은 외국에서 만나면 반갑다. 아놔.

바닥의 포석들도 나름 신경써서 깔아둔 듯 하다. 최소한 아무런 미감이나 주변과의 조화를 고려치 않고 그저

아무데나 막 깔아버리는 '범용' 포석은 아닌 거 같단 이야기. 포석이 이쁜 길은 걷기에도 즐겁다.

그다지 높지 않은 건물들이 요리조리 방사형으로 퍼진 골목길 따라 늘어서 있었다. 1층엔 까페, 2층엔 갤러리,

뭐 그런 식으로 공간을 겸하고 있는 샵들도 보였고, 저렇게 생긴 테라스들이 이층마다 툭툭 턱처럼 나왔었다.

아직 뜨겁다기보다는 따땃해서 기분좋은 햇살을 걸러주는 연두빛 투명한 여린 잎사귀들.

그리고 빨간 완장이 우스꽝스럽던 토실토실한 아저씨는 바싹 마른 소같은 자전거를 타고 소처럼 느릿느릿

햇살 속을 유영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유연한 그의 페달질에 놀랬고, 붉은 완장이 생각보다 그럴듯해 또 놀랬다.




상해에서 지나친 커피숍, 몇걸음 떼다 뭔가 이상해서 눈여겨보니 익숙하면서도 낯설다. 낯설면서도 익숙하다.

이 아이랑 참 비슷한 분위기의 배색, 그리고 도안이지 싶은데. 사실 안에 들어있는 가슴큰 인어공주의 이미지를

노골적으로 비틀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라 해야 할까. 나름 비슷하지만 딱히 어디라고 찝어낼 순 없는 경계에

달랑달랑, 그 정도 수위의 카피인 듯 하다.

메뉴판이 동그라미 링으로 조금은 두툼하게 나왔지만, 뭐 팔고 있는 커피 종류가 많은가 보다 했다.

근데 아니다. 심지어 국수류도 팔고 있었다. 중국식 소면, 메뉴만 보고는 여기가 까페란 사실을 망각하겠다.

다시 말하자면 여기는 상해 어느 길거리의 별다방 닮은 듯 안 닮은 듯 딱히 찝어말하기 힘든 로고를 가진 까페,

보통 까페라 하면 커피를 팔고 차를 팔고 여름에는 팥빙수 정도를 팔곤 하지만 김이 무럭무럭한 면을 팔지는

않는단 말이다. 중국어로 '까페이'라 읽히는 건 우리말로 커피숍, 까페라고 분명 배웠는데.

조금 불안했지만 ice-coffee를 시켰다. 서빙되어 나온 건, 그야말로 아이스커피와 냉커피의 차이를 여실히

보여주는 한 잔의 다방 커피. 커피 둘 설탕 둘 프림 셋의 커피에 뜨거운 물 조금 부어 녹인 후에 얼음 동동 띄운.

그치만 빨대가 비비 꼬인 건 맘에 든다.

바닥에 깔아준 받침을 유심히 보니 꽤나 재미있는 말들 투성이다. Latter, Colombian, Hawail Coffee, Sunmiyaki,

그렇지만 대박은 뭐니뭐니 해도 'Espresson'. 에스프레소가 아니라 에스프레'손'!

어라, 더 심한 걸 보고 말았다. 무려 양갈비다. 까페 유리창에 붙어있는 메뉴는 다름아닌 기름기 줄줄 흐르고

노린내 응큼하게 나는 양갈비. 다시 한번 리마인드하자면 여기는 까페. 대개는 커피나 차를 마시는 곳. 와우.

80, 90년대 한국의 다방에는 동전을 넣어 오늘의 운세가 돌돌 말린 종이를 뽑는 재떨이도 있었고, 한쪽엔

오락기도 있었고 그랬던 거 같다. 한 숟갈씩 퍼먹던 프림의 숨막히도록 텁텁하고 달달한 맛과 함께 떠오르는

추억이다. 중국의 커피숍엔 그런 건 없었지만, 제법 이런 식으로 생긴 호출벨도 있지만, 저 아저씨는 왜 저리

입을 쫙 벌리고 힘든 표정을 짓고 있을까.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좀더 걸어들어가면 영추문이 나온다. 가을을 맞이한다는 그 문과 마주보고 있는 거리에는

자그마한 미술관들과 까페들이 거창한 간판도 없이 숨어있다.

늘 그 동네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건 회칠이 벗겨진 담벼락에 그려진 여리여릿한 나무 한 그루. 더이상 회칠이

벗겨지지도 않고 딱 저만한 공간 속에서 나무는 호젓하다.

그 옆에 붙은 '보안여관', 한때 안기부에 조사받으러 불려다니던 피조사인들이 애용하던 곳이었다던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그 허름한 뽄새와 왠지 모를 시간이 켜켜이 쌓인 포스를 늘 눈에 담고 갔었다. 마침 전시가

있어서, 카메라 뚤레뚤레 흔들며 구경질 시작.

자연에서 채취한 재료들로 인형을 만드는 작가분이 1층과 2층을 모두 쓰며 작품을 전시하고, 또 계속 작품을

만들고 있었다. 솔방울, 잔가지, 마른꽃대궁, 씨앗..담담하고 조신한 색감이 맘에 든다.

여관(으로 쓰였던) 건물 내에 붙어있던 재미있는 표어. "미성년자는 입장해서도 안 되고 입장시켜도 안됩니다."

그리고 다닥다닥 붙어있는 방들마다 숨겨진 보물처럼 꼭꼭 감춰진 작품들.

빼꼼히 열린 방문 틈으로 창을 휘두르는 기사도 보이고, 다소곳한 매무새의 아가씨도 보이고.

2층으로 올라가는 길, 온통 낡고 헤진, 그리고 지저분한 여관의 내음이 물씬하면서도 나뭇가지니 마른 잎사귀

따위로 잘 갈무리된 느낌이다. 사실 이렇게 오래되고 우중충한 건물, 더구나 그야말로 갑남을녀가 잠깐 머물다

떠나는 여관이란 곳은 청결함이라거나 말끔함과는 워낙 멀리 떨어진 곳 아닌가. 예술작품과는 더더욱.

솔방울과 마른 콩깍지 따위로 만들어낸 순간. 조그마한 새끼가 커다란 새에게 잡아먹히기 직전의 순간이다.

우연찮게 여길 들르기 직전에 돌아봤던 곳은 대림미술관, 커버 아트의 대가라는 로저딘의 회고전을 봤었다.

'Dragon's dream'이란 제목의 그 전시를 보고 나서 막상 여기서 또다른 형태의 용을 만나다니 신기했다.

이제 끝. 한번 설렁설렁 돌아보기 딱 좋은, 부담없고 재미있는 전시인 거 같다. 마치 전시작품들과 작가를

수호하듯 카랑카랑한 자태로 1층을 지키고 있던 (아마도) 샤먼.

그리고, 전세낸 듯 혼자 기대앉아서 해가 저물도록 책을 읽다 돌아온 통인동의 어느 까페. 정말 요새 까페하기

참 쉽다. 대충 짝이 맞지 않고 이가 어긋나 보이는 가구들 잔뜩 들여넣음 끝..이랄까. 사실은 이런 분위기 참

좋은 거 같다. 게다가 노래 선곡도 넘 맘에 들었던 게, '베란다 프로젝트', '에피톤 프로젝트', 그리고 '루시드폴'

앨범이 고스란히 순서대로 공간을 채웠었다.

그리고 굉장히 맛있던 갓구워낸 초코 브라우니, 그리고 에스프레소.

조그마한 병이 쟁반에 같이 나왔는데, 첨엔 시럽이려니 생각했다가 잠시 혼란스러웠다. 그럼 이 녹색식물떼기는

왜 꼽아둔거지. 그냥 데코레이션으로 꼽아둔 건가. 아님 그냥 화병인 걸까. 뭔지 모르겠더라.



한 네시간동안, 노래에 흠뻑 취해 책 한권을 홀딱 다 읽고는 나왔다. 노래 참 잘 들었어요, 하고 나왔다.




@ 서울 효자동.

보리밭 새순처럼 싱싱하고 여린 연두빛, 겨우내 노천까페를 감쌌던 비니루에 반사되다.

굳이 맨눈으로 보는 게 아니라 렌즈를 거치고 또다시 구태여 (심술궂이) 비니루에 반사된 연두빛을

탐하는 건, 어느새 '젊다'는 것만으로 전부 이뻐보인다는 노친네의 음흉한 마음과 같아가는 징조인지 모른다.







뭔가 밍숭맹숭한 하루가 또 지난다. 

출근길에 몇 장 넘긴 '자유죽음'의 몇몇 대목이 와닿았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거나, 스스로의 의지로 회사를

그만두거나, 결국은 그 사람의 선택이자 권리의 문제. 최진영도, 최진실도, 노무현도, 갑남을녀도, 그(녀)들의

삶을 위한 스스로의 선택. 그들이 수행해야 할 기능-밥벌이, 재생산, 부양 따위-을 안한다며 구박할 순 없다.


게다가 월요일, 다소 지치고 질려버린 채 시작한 업무들은 '돈과 시간의 등가교환'. 친구는 "하고 있는 일이

개인 발전에 도움이 안 된다 생각할 때 어케 할지"를 물어왔고, 자신의 시간을 돈받고 파는 건데 뭘 바라냐고,

혹여 배우는 건 원플러스원 이라고 답해줬다. 배우는 게 있음 땡큐고, 없어도 뭐랄 수는 없는 거고.


조그마한 창으로 햇살이 비껴내리는 살짝 까뭇까뭇한 까페에, 푹신한 쇼파에 앉아서 하루종일 책이나 읽음

좋겠다. 펜 하나 갖고 맘에 드는 구절 밑줄쳐 가면서, 가끔은 무릎위에 받쳐둔 베개를 하릴없이 꽉 안아보기도

하면서, 게름뱅이짓이나 잔뜩 했으면 좋겠다.






아기곰 푸우가 변태랍니다. 아랫도리가 휑한 이녀석 주전자도 변태인가 봅니다. 상후하박, 하체부실, 그런

단어들을 머릿 속에서 퍼올리게 만드는 주전자로군요.


주전자군은 누가 볼세라 소변기에 바싹 붙어 볼일을 봐야 할 겁니다. 그의 위풍당당한 '부리'는 마치 헛한데다

헛힘쓴 결과로 울퉁불퉁해진 초콜렛 복근을 연상케 하네요.

찻잔은 순진한 척 발갛게 물들고 말았습니다. 겉껍데기처럼 속껍데기까지 꽃무늬가 화려한 찻잔에겐, 거의

자연상태나 다름없이 헐벗은 차주전자의 자태가 부끄러웠던 거겠죠.


혹은 흥분했던 건지도 모릅니다. 주전자와 찻잔은 어쨌거나 한 쌍인 데다가, 게다가 음양의 조화를 따지건대 

성별은 명확하여 주전자군, 찻잔양이 맞지 않으려나요. 뭐, 찻잔이 무슨 생각을 했던 찻잔 속 태풍이지만요.

방심하고 있던 차주전자는 어느새 저만치 떨어져 버린 찻잔을 뒤쫓습니다. 아랫도리에 찬바람이 쎄하니

들어와 바싹 말려올리는 지금은, 같잖은 봄 3월말.


그러고 보면 그들의 무늬는 어디선가 부자연스럽게 끊겨 있었습니다. 뚝 분질러 나눠가졌다던 정인의 증표처럼

왠지 그들의 꽃무늬는 서로에게 힌트가 되어줄 수도 있을 듯 합니다. 주전자의 selling point랄까요.

이윽히, 자웅동체가 되어버렸습니다. 달팽이처럼 뽈뽈뽈, 찻잔과 주전자는 찻잔받침 위를 조용히 기어가지만

성마르게 다그치는 눈길 아래선 그저 멈춰선 것처럼 보일 뿐입니다. 그렇게 만개한 꽃 한송이가 풍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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