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은 참 좋았는데. 부드럽고 진득하게 내려붓는 햇볕을 날카롭고 까칠한 바람이 전부

흐트러뜨려놓던 주말의 석촌호수. 벚꽃이 아니라 복사꽃이던가, 좀더 진하게 핑크빛이

번져있는 꽃잎이 나뭇가지에 온통 포도송이처럼 피어났었다.

하얗고 투명한 햇살 아래서 형광빛처럼 빛을 발하는 꽃무더기들이 황홀했다. 옆엣나무는

이제 그래도 봄이라며 제법 싱그런 연두빛에 힘을 빡빡 주며 그을리고 있는데, 이녀석은

때도 모르고 온통 하얀 빛만 일렁일렁.

석촌호수에서 걷는 사람들을 보면 꼭 한쪽 방향으로만 돌고 있다. 시계반대방향으로, 허리춤이

바싹 졸려서 8자모양처럼 생긴 석촌호수를 따라 도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며 거꾸로 걷다 보면

굉장히 불편하다가도 어느 순간 그런 시선따위 신경안쓰고 그냥 거꾸로 걷게 된다. 아직은

앙상한 가지가 아스팔트 보도 위를 사방으로 내달리는 균열을 그려냈다.

날씨가 미쳐서 그런가, 단풍나무가 벌써부터 시뻘겋다. 그리고 나뭇가지들이 여전히 앙상한 걸

보고 있으면 대체 지금이 봄인지 가을인지. 햇살만 받고 있음 따끈하니 봄볕은 맞는데 여전히

칼날처럼 에이며 맹렬한 바람까지 얹어지면 헷갈리고 마는 거다.

추워서 들어온 까페에서 만난 커피설탕. 와, 진짜 오랜만이다 싶었다. 어렸을 때는 이거

맛있다며 한알씩 사탕처럼 먹기도 하고 그랬는데. 요새는 시럽으로 대체된지 오래라서

좀처럼 못 보고 있었는데 오랜만에 만난 김에 슬쩍 한 알. 오도독오도독.

주홍빛 결명자차가 꽉 채워져있던 커다란 유리병, 저런 식으로 만들어진 마개를 보면 몇번이고

딸깍거리며 열었다 닫았다 장난을 치고 싶어지는 거다.


나 말고도 역주행을 하는 녀석이 하나 더 있었다. 마침 네발로 땅을 박차고 튀어오른 시점인듯

공중부양하듯 공중에 뜬 채 주인을 향해 되돌아 달려가는 에너지 넘치는 강아지 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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