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정을 고민하다가 몽마르뜨 언덕을 오르기로 했다. 비가 주룩대는 날씨에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을 볼 수는 없다
싶어서 애초 오랑주리 미술관을 갈라고 하다가 맘을 접었다. 좀 이유같지 않은 이유지만 인상주의 화가들의 그림은
왠지 햇살 눈부시고 풍경이 화사한 그런 날에 봐야 할 것 같았다.
일부러 살짝 돌아갔다. 메트로 12호선 아베스(Abbesses)역에서 내려서는 크게 에둘러서 사크레 쾨르 성당으로
오르기로 했다. 조금씩 가팔라지는 경사를 체감할 수 있던 그 길에는 아기자기하게 잘 꾸며진 주택들이 한채씩
나타났고, 특이한 상점도 드문드문 눈에 띄었다.
아침 시간이라서였을까. 문을 닫고 있던 한 가게 안에는 온갖 종류의 고양이 소품들이 쇼윈도우 밖을 흘끔대며
구경하고 있었다. 내려오는 길에 꼭 들러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사크레 쾨르를 지나 몽마르뜨언덕 위의 골목길들을
이리저리 종횡하다가 깜빡 잊고 말았다.
조그마한 컴팩트카가 주차되어 있는 뒤에는 둥글둥글한 벽돌로 지어진 주택이 서 있다. 차도나 인도의 포석도 그런
벽돌로 깔려 있어서, 걸을 맛이 나는 골목이었다. 벽돌집 옆구리에 붙어있는 파란색 표지판은 거리 이름이 적힌
표지판인데, 저 건물의 정면과 측면의 거리가 뭐라는 것을 알려주어 길찾기가 정말 편하게 해 준다. 무슨 거리와
무슨 거리가 교차하는 곳에 놓인 건물, 이라고 하면 금방 찾는 이치다. 모든 건물에 저런 표지가 붙어 있어서
프랑스 현지인들도 거리이름이 빼곡히 적힌 지도 하나만 있음 어디든 잘 찾아다닌댄다.
창문 밖의 빨간 꽃들은 아마 제라듐일까, 비가 부슬거리는 날씨에 새빨간 꽃잎이 선연하다.
경사가 어느 정도 실감이 될 무렵, 나와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언덕을 오르는 여행객들이 보인다. 아마 에둘러
크게 돌아 오르던 내가 다른 길에서 오르는 사람들과 합류하는 지점이지 싶기도 하다.
몽마르뜨가 애초 예술가들의 거리였다던가. 예술가들에 대한 고정관념이랄까, 왠지 담배를 즐기고 까페에서
에스프레소와 와인을 줄창 마셔댔으며, 돈이 떨어질 때면 화구를 들고 광기에 휩싸여 그림을 그리고는..
내다 판 돈으로 다시 술을 사 마시고 룸펜처럼 지냈을 거 같다. 글쟁이였대도 별반 다를 거 같지 않고.
그런 사람들이 저런 까페 안에서 뿌연 담배 연기를 자욱하게 내뿜으며 몇시간이고 죽치고 있지 않았을까,
그러고 보니 이곳에서 CAFE라 하면, 한국과는 달리 단순히 커피나 차를 마시는 곳이 아니라 저녁이 되면 술도
파는 주점의 개념도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좁은 길이 얼기설기 얽혀 있어서, 이리저리 발걸음을 마구 갈지자로 흩어놓아도 어디선가 사크레 쾨르 성당의
하얀 돔을 마주치게 되었다. 아무리 여행이란 게 방향 감각을 내팽개치고 발길 닿는 대로 헤매면서 하는 거라지만
최소한 파리에서, 이렇게 길이 복잡하게 나 있고 미로 같은 곳은 처음 봤다. 올라갈 때야 사크레 쾨르 성당의
흰 빛을 따라 오르면 되었다지만, 기실 내려갈 때 영 헤매고 말았던 거다.
드디어 근접 촬영. 사크레 쾨르, 신선한, 아니 '신성한 심장'이라는 뜻이다. 어느 가이드북에서는 성심 교회..라던가,
그런 식으로 번역해 놓기도 했지만, 사크레 쾨르 성당이라고 하는 게 자연스럽지 싶다. '신성한 심장 성당'이라는
뭔가 영험할 듯한 이름을 갖고 있지만 그 역사나 착공 배경은 기실 그다지 신성하지는 않다.
빠리 꼬뮌의 비극이 있었던 1870년을 지나며, 아마도 비관적이고 삶에 대한 염세에 젖어 있었을, 그리고 프랑스
중앙 정부에 대한 거부감과 반감이 여전히 가슴 속에서 부글대고 있었을 파리 시민들을 종교적 차원에서 감싸안고
달래고자 했을 거다. 그걸 좀더 고상하게 얘기하건대, 불행한 시대를 거친 가톨릭 교도의 마음을 달래줄 목적으로
지어진 성당, 그게 바로 사크레 쾨르 성당이라는 얘기.
정문을 마주보고 섰다. 알고 보니 내가 길을 어떻게 잡고 갔는지 사크레 쾨르 성당의 등덜미를 보고 왔던 게다.
사크레 쾨르 주위를 반 바퀴 돌아 정면에 섰더니, 내가 돌아온 길 말고, 정면을 보고 바로 올라온 여행객들이 이미
바글바글하다.
성당의 첨탑이나 하얀 빛의 벽 같은 부분들이 왠지 이슬람 사원을 연상케 했다. 성당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다소
전형적인 형태에서 벗어나 있지 않은가 싶기도 하고, 무엇보다 저 둥글고 높은 돔이 터키에서 봤던 '아야 소피아
사원'이나 '블루 모스크'를 떠올리게 했다. 하기야 그런 터키의 건물들은 지배세력의 종교에 따라 그때그때
가톨릭 성당과 이슬람 모스크를 넘나들며 개축되고 변신했던 거니까 예외라고 쳐도, 사크레 쾨르는 왜 그럴까.
다소 고답적이고 추상적인 차원에서 굳이 답을 하자면, 문명간의 교류를 통한 건축 문화의 융합?
옆에서 어떤 귀여운 일본 아가씨가 혼자 낑낑대며 셀카를 찍고 있길래, 말을 섞어 보았다. 매우 짧은 영어로 그녀는
힘겹게 몇 마디를 했는데, 회사원이고, 파리에는 그저께 왔으며, 내일 일본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얘기만
좀더 잘 통했어도 같이 다니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고 같이 사진도 찍어주고 잘 돌아다녔을 텐데, 소통이 거의
불가한 지경이었어서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는 여행 잘 하라며 안녕을 고했다.
사실 어줍잖은 영어 실력만 믿고 해외로 나서고, 다른 나라의 사람들을 만나겠다고 하는 건 다소 만용일지도
모르겠다. 여행자용의 짧은 영어구문들을 주고 받는 것을 넘어서, 속을 터놓고 이런저런 깊은 이야기를 하려면,
영어가 되었던 두 사람 중 하나의 모국어가 되었던 서로를 서로에게 최대한 손실없이 전달할 수단이 절실하다.
당장 내가 영어 말고 일어를 좀 배워왔어도 훨씬 많은 이야기의 기회가 있었을 텐데, 아쉽다.
성당 안에 들어가 둘러 보았는데, 역시 성당은 쉬기에 적당치 않은 장소였다. 사람들이 만들어낸 신성함에 다들
스스로 압도당하거나 혹은 순응해 버린 채, 숨소리도 조심스런 그 갑갑한 분위기. 하물며 아침으로 먹겠다고 사온
빵을 꺼내 베어물기란 불가능한 공간이었다. 후딱 한바퀴 돌아보았지만, 사실 성당 내부는 거기가 거기다.
2유로짜리 초를 봉헌하라는 한 구석의 촛불잔치, 정면의 십자가상과 벽면에 늘어붙은 '십자가의 길'용 그림들,
세속의 햇살을 정제해서 들이려는 듯한 딱딱한 표정의 스태인드글라스까지.
성당 밖으로 나와 벤치에 앉아 빵을 먹으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잠시 구경했다. 여기도 옥상 돔에 올라가 전망을
바라보는 코스가 있나보다. 사람들이 줄서서 티켓을 사고 있었지만, 어제 판테온도 가보고 그곳의 돔에 올라
전망도 보았던 나는 그냥 스킵, 차라리 몽마르뜨 언덕 주변을 헤매는 게 낫겠다 싶었다.
이번에는 정면에 난 길로 내려가기로 했다. 생각했던 길은 정면에 난 길로 쭉 내려가며 주변길을 더듬어 보다가,
가까이 있는 2호선 앙베르(Anvers)역으로 갈 생각이었다. 내려가면서 만난 한국인 여행객, 요 며칠 마주치지 못한
흔치 않은 한국인이라 어쩔까 생각하다가 그냥 조용히 모르는 척 지나치려고 했다. 그런데 어찌 알았는지 내게
한국인이시죠, 하며 말을 거는 아저씨. 가족 사진 한 장 찍어드리고 나도 사진 한 장 부탁드렸다.
어떻게 알았을까. 궁금한 마음에 계속 뒤를 돌아보며 다른 여행객들을 분별해 보게 된다. 그치만 아무리 돌아봐도
잘 모르겠고, 오히려 자꾸 눈에 들어오는 건 사크레 쾨르의 세 봉우리. 뫼산 山자의 오리지널이 여기 있었구나,
싶기도 하고...고작 해발 130미터라는 이 몽마르트 언덕의 정점에 선 이 성당이 파리 코뮌을 속죄한다는 게 대체
어떤 의미일까 자꾸 반감이 들기도 하고. 뭘까, 파리 코뮌을 세웠던 시민들의 반기독교적, 반종교적 '행태'에 대한
죄사함을 대신 빌어주겠다는 건가.
그게 좀 불분명해 보인다. 파리 코뮌을 프랑스는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 걸까. 그리고 어쩔 수 없이 프랑스의 거울에
비춰보는 한국. 한국은, 멀리 갈 것도 없이 80년 광주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 걸까. 대학교 1학년 때 친구녀석과
숨이 턱까지 닿도록 내달려 들어섰던 저녁무렵 광주 구 묘역의 황량하고 신산한 분위기가 떠올랐다.
하얀 빛을 머금은 사크레 쾨르 성당과 새초록의 잔디. 그리고 빗발이 오락가락하는 우중충한 하늘.
어쩌면 사크레 쾨르의 정면을 보면서 걸어 들어왔으면 더 멋졌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꼬불꼬불한 골목길을
지나다가 어느 순간 나뭇가지에 살풋 가리워진 하얀 건물을 마주치기도 하고, 어느 순간에는 불쑥 다짜고짜
흰 몸뚱이를 내팽개치듯 완전히 내보이기도 하고, 그렇게 사크레 쾨르 성당과 희롱하며 다가설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내가 온 길은 뒷통수를 갈기러 살금살금 까치발로 숨어들어온 뒷길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