튈를리 정원의 커다란 원형 분수대를 지나면, 예의 프랑스식 정원의 각잡힌 덤불들이 좌우로 시립해 있는 걸 볼 수

있다. 마치 어릴 때 집을 그리라고 하면 당연한 듯 그렸던 그 모양처럼 덤불을 깎아놓았는데, 실제로 그 모양이

아주 의미심장한 메타포로 누군가에겐 읽히고 있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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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모양으로 다듬어진 덤불들이 양측으로 시립한 가운데, 분홍빛의 카루젤 개선문이 다소곳이 앉아 있다. 나폴레옹이

완성된 카루젤 개선문의 크기가 생각보다 작음에 실망해서, 설계 중이던 개선문의 사이즈를 훨씬 키우라고

명했다던가. 흰빛의 커다란 개선문도 당당하니 위엄있고 장중해 보였지만 글쎄..보는 사람의 고개와 사기를 꺽고야

말겠다는 듯이 심신을 위축시키는 개선문보다는 이 다정다감해 보이고 부드러운 느낌의 카루젤 개선문이 더

마음에 들었다. 물론, 위치가 바로 루브르 궁전 앞인지라 여러번 오며가며 마주치다 보니 더욱 호감도가 상승한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튈를리 정원에서 루브르 쪽으로 바라본 카루젤 개선문의 모습. 그녀는 뒤를 돌아보고 있다. 개선문의 용도란 건,

외국 영토나 국가 외부에서 싸우고 돌아온 전사들을 궁전이나 국가 중심부에 남아있던 사람들이 바라볼 때 보다

뽀대있어 보이기 위함인 거다.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온 나폴레옹의 입장에서는, 대중에게 보여지기 위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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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어쳐 개선문 양측에는 예의 집모양 덤불과 조각상들이 파란 잔디밭 위에 펼쳐져 있다. 아마도 큐피드의

화살을 맞은 아폴로가 줄기차게 쫓아다녔다던 다프네가 도망다니던 쓰러진 절박한 상황을 나타낸 걸까. 그녀가

강의 신인 아버지에게 부탁해 월계수로 몸을 바꾸었고, 이후 아폴로가 승리의 상징으로 월계관을 씌워 주었다는

후일담까지 고려한다면 왠지 궁전 앞머리에 있을 법한 조각상이라고 생각하면서 혼자 고개를 주억거렸다.


프랑스에 유학중인 친구의 말로는, 아무리 공부를 열심히 하고 따라잡으려 해도 안 되는 부분이 있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친숙해져 버린 채 살아가면서 별 의식조차 못하지만, 신화라거나 전래동화, 그 속에 있는 풍부한

메타포와 뉘앙스들을 교감할 수 있는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에는 왠지 이해의 깊이가 다를 수 밖에

없다고 한다. 특히나 서양 근대 철학이나 그리스로마 고전을 어려서부터 많이 읽히는 나라에서 통용되는 상식과

한국의 상식이란 건 다를 수 밖에 없을 거 같다.


그런 문화적 베이스가 깔린 사람들은-실제로 그렇게 생각할지, 또 내 추측이 맞을지도 알 수 없는 거지만-그 조각상

아래에 완전 편한 자세로 누워서 시체놀이를 하고 있거나 유유자적하게 신문을 보고, 나와 함께 이곳에 앉았던

내 친구는 그리스 고전을 인상쓰며 읽고 있고.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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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앞의 동상이 다프네를 형상화한 게 맞다면ㅡ, 이 아이는 뭘까. 다프네가 자꾸 치근덕대는 아폴로한테

날아차기라도 하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아는 짧막한 그리스로마 신화에선 그 전거를 찾을 수가 없는

다이나믹한 포즈의 여성조각상.


역시, 그런 걸 갖고 머리 싸매는 건 단군신화의 나라에서 온 나 뿐. 다른 사람들은 전부 여기저기서 시체놀이중.

보슬보슬한 잔디의 촉감이 좋긴 좋았다. 싱싱한 잔디잎새가 서늘한 기운을 몸에 흘려넣는 것도 좋았고, 뜨겁지도

따갑지도 않은 따스한 볕이 꼬물대며 내려앉는 느낌도 좋았고..동상이야 날아차기를 하던 암바를 조이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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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루젤 개선문 양편 덤불의 비밀.

대낮인데도 그 사이사이에 틀어박힌 연인들은 저마다의 사정私情에 여념이 없다. 가볍게는 은밀한 귓속말을

주고받으며 꼭 껴안고 있기도 하고, 심하게는 잔뜩 엉겨붙어서 팔넷다리넷머리둘을 가진 한 사람이 된 거 같다.

비밀은, 저 집 모양으로 다듬어진 덤불의 내부가 텅텅 비어있고 굵은 가지 몇개만 외양을 지탱하는데 힘쓰고 있단

사실. 마치 조그마한 텐트처럼 두 사람이 들어갈 만한 공간이 충분히 나오는 그 곳에는, 이미 수많은 투숙객들의

흔적이 사방에 남아있었다.


저런 동상이 그런 욕동을 더욱 부채질하는 게지, 싶기도 하지만 사람을 죽이는 것도 아니고 남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도 아니고, 외려 상상해보면 무지 로맨틱할 수도 있겠다 싶다. 물론 덤불의 나뭇가지에 여기저기

찔리고 긁히겠지만..나무'집' 안에서 바깥 풍경을 바라보는 것 자체로도 이미 스릴감이 충분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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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루젤 개선문 옆에 출장나와 있는 빵집, PAUL(이라 쓰고 폴이 아닌 뽀올..이라고 읽는다.)은 끼니때가 되었지

싶을 때마다 여행자들이 길다란 줄을 늘어서 있을 정도로 성황이다. 어디서 사든, 동네 빵집이던 체인화된 빵집이던

파리의 빵은 어디서나 맛있는 것만 파는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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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아서 빵 한쪽에 에스프레소 한잔하면서 만난 옆자리의 가족. 꼬맹이가 다코다 패닝을 살짝 닮았다. 참새나

비둘기가 아무리 들이대도 겁내거나 놀라서 소리치기는 커녕, 좋아라 하면서 빵조각을 던져주고 있다. 급기야

참새들을 손위로 부르고, 어깨 위로 불러내서는 너무 좋아하는 꼬마 아가씨.

파리의 참새들은 사람을 겁내지 않는다더니 정말 그랬다.

내가 먹던 빵을 뜯어 살짝 흔들기만 했는데, 1번 참새가 포르르 날아올라, 2번 참새도 포르르 날아올라, 3번 참새도

포르르 날아올라..푸덕푸덕대는 소리와 함께 바람이 일었다. 겁도 없이 내 손마저 빵조각인양 쪼아보는 새들.

참새랑 같이 빵을 씹다가 슬슬 루브르 쪽으로 걸었다. 개선문을 의기양양하게 통과했고, 통과하자 유명한

유리피라밋이 불쑥 나타났다. 루브르의 유리피라밋, 이라는 키워드로 찾으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익숙한 구도로

사진을 우선 한 장 찍어 주고, 한장 한장 내 눈길을 따라 사진을 찍으며 다가서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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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피라밋을 기준으로 좌측의 풍경. 루브르 궁전의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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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피라밋을 기준으로 우측의 풍경, 루브르 궁전의 또다른 일부. 기마상 위에 용맹하게 버티고 선 사람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이런 멘트를 하고 있는 느낌?

"누군가 조국의 미래를 묻거든, 눈을 들어 루브르 궁전을 보라."

..그냥 그런 식의 위풍당당하고 패기만만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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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피라밋은 생각보다 살짝 작은 느낌이었지만, 루브르 궁전과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현대 건축의 즐겨찾기 재료라 할 철골과 유리로 지어진 유리 피라밋 자체가 가진 심플하고 고대 이집트를 연상케

하는 디자인으로 약간의 아이러니를 느끼게 하는 데다가, 저렇게 오돌토돌해 보이고 오랜 느낌의 궁전 건축물과

함께 하나의 풍경으로 자연스레 녹아들어간다는 것이 더욱 묘한 기분을 자아냈다.


유리피라밋에 새겨진 루브르 궁전, 그리고 파리의 하늘과 구름과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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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브르 박물관이 문닫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유리 피라밋 쪽 입구로 살짝 내려가서 한 바퀴 돌아보기만 했다.

유리 피라밋 안에서 바라본 루브르 궁전은..뭐랄까, 거미줄 같은 풍경 속에 얽혀서 옴짝달싹도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날렵하고 유연해 보이는 유리 피라밋의 뼈대도 묘한 매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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