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토무슈란 파리 세느강을 내달리는 여러 유람선 코스 중의 하나를 담당하는 유람선이라고 한다. 메트로 9호선

Alma-Marceau역에서 내려서 Pont de L'Alma 다리아래에 승차장이 있는데, 대략 1시간20여분간 유람선을 타고

세느강을 따라 오르내리고는 원래 위치로 돌아오는 코스. 에펠탑이 굽어보는 선착장에서 그랑/쁘띠팔레를 지나

콩코드광장, 루브르박물관, 시테섬, 노틀담성당, 퐁네프 다리, 오르세미술관, 알렉산더 3세다리 등을 돌아서 다시

에펠탑 쪽으로 돌아오는 게다.


애초 내게 이 유람선을 꼭 타고 돌아오라 했던 여자친구는 특히, 야경을 보고 싶다면 9시쯤에 선착장에 나가라는

조언을 줬었고, 그 말을 명심했던 나는 에펠탑이 이미 파란색으로 물들어버린 저녁 시간에 맞춰 선착장에 도착했다.

철골 하나하나를 모두다 파란 빛깔의 물감통 속에 빠뜨렸다가 다시 조립해낸 것 같이, 에펠탑을 구성하는 뼈대가

파르스름한 빛을 머금고 있다. 노란 별 열두개와 파란 탑의 모양새는 마치 어렸을 적 디즈니 만화에서 봤던 마법사

모자같기도 하고..왜 마법의 힘을 가진 모자를 훔쳐 썼던 마법사의 제자가 물긷는 빗자루 하인을 수없이 만들어

놓고는 온동네를 물바다로 만들어버렸던가..그런 이야기에 나오는 높고 뾰족한 모자 말이다. 

시간간격이 어떻게 되는지는 모르겠는데, 9시부터 한 십여분, 저렇게 에펠탑은 반짝이기 시작한다. 마치 별들이

쏟아져 내려와 에펠탑에 부딪혀 명멸하는 것처럼. 그 불빛들이 저마다 번갈아가며 수다스럽게 깜빡이는 호흡이란

건 크리스마스 트리에서 흔히 보이는 전구들의 깜빡임보다 두세배는 더 빠르지 싶다.

파리지앵은 저 요란스럽게 빤짝이는 불빛쇼를 '창녀같다'며 싫어한다고 하지만 글쎄..에펠탑에 올랐을 때 전망대

2층에서 봤을 땐 천지사방에서 불빛이 휘황하게 번쩍이는 느낌이 천박하다기보다는 무지 화려하다는 느낌이었다. 

그치만 역시 자주 보니까 질리더라. 나중에는 역시 파랗게 단정한 에펠탑이 훨씬 매력적이라고 동의하게 되었다.

마치 그런 취향의 동조로 파리지앵에 한 걸음 가까워지기라도 할 것처럼.


에펠탑을 지나 선착장에서 배를 타려고 내려갔다. 관광버스가 빼곡히 주차되어 있는 주차장을 보고 사람들이 전부

야경보겠다고 유람선 타러 온 게 아닐까, 잠시 긴장했지만 그렇진 않았다. 물론 유람선이 꽉꽉 찰 만큼 사람들이

많았고, 자리도 제대로 못 잡겠다 싶어 유람선 한 척은 먼저 보내주고 삼십분을 더 기다리긴 했지만.

유람선 출발. 생각보다 빠른 속도를 움직이기 시작했고, 방송으로는 프랑스어, 영어, 스페인어, 중국어, 일어..까지

나왔던 듯 하다. 좌석마다 전화기처럼 생긴 기구가 놓여 있어 유람선이 지나는 주변 풍경이나 건물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머..딱히 그런 설명이 없어도 이제 어디에 무슨 건물이 있는지, 저게 무슨 건물인지 보면

딱 알아볼 수 있을만큼은 익숙해졌기 때문에 그냥 아무 도움없이 유유히 배 밖의 풍경을 감상했다.

한강 유람선을 작년에 한번 탔었는데, 계속 이상한 트로트 음악만 시끄럽게 나와서 영 거슬렸던 적이 있다. 그때도

야경을 보겠다고 밤에 탔었지만 생각보다 한강변의 야경은 어둠이 깊었고, 그다지 조명을 아름답게 꾸며놓지도

않았다고 실망했었다.

단순비교는 무리일 테다, 왜냐면 파리의 세느강은 한강의 폭에 비하면 개울 수준이랄까, 유람선 선로로 치면

왕복 이차선정도일 거 같고, 한강은 못해도 왕복 육, 팔차선은 될 테니까 말이다. 그래서 왼쪽, 오른쪽의 풍경이

훨씬 손에 잡힐 듯 잘 다가온 탓도 있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확실히,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건물들이 계속해서

나타났다. 이 사진은 세느강이 고작해야 이차선이지 않을까, 라는 내멋대로의 추측에 근거가 될 만한..교차하는

두 대의 유람선. 어둡지만 않았다면 상대 배에 누가 탔는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가 충분히 식별가능할 만큼

가까운 거리였다.

바람이 무지하게 차가웠다. 유람선 내에는 아크릴로 천장이 덮인 실내 공간이 있긴 했지만, 대부분 배의 가장자리에

기대어 바깥을 구경하다가 추워지면 들어가고, 다른 사람이 그 자리를 메꾸고, 그런식으로 로테이션하며 사이좋게

관람했다.

시테섬을 지나 노틀담 성당이 보이는 곳까지 이르렀다. 시시각각 깊어지는 어둠에 사진이 조금 흐릿하게 나왔지만,

불빛을 무수하게 깨뜨려서 퍼뜨리는 세느강의 수면과 어둠속에서도 선연한 노틀담 성당의 멋진 정면 모습은 왠지

가슴 속에 잔잔한 울림을 던져주었다.

몇 개의 다리를 지났고, 그러한 다리마다 지상에선 볼 수 없던 곳에 새겨진 다양한 문양들과 그림들을 품고 있음에

탄복했다. 사실 그저 밋밋하기만 할 거라고 생각지는 않았지만, 단순히 강을 가로질러 이어주는 기능적인 면만이

아니라 그 자체가 하나의 미적인 건축물이자 감상물이라는 마인드가 부러웠다.

갑자기 선내가 소란스러워졌다. 평온하고 경쾌한 '솔'음을 줄곧 유지하며 몇개국어로 가이드 멘트를 해주던 누님이

높은 '도'음쯤으로 음정을 높이고는 사람들의 주의를 환기시키며, 금방 나타날 다리를 지날 때 눈을 감고 소원을

빌면 그 소원이 이뤄질 거라고 했다. 글쎄, 무슨 소원을 빌어야 하나. 곰곰 생각하기엔 배가 너무 빨랐고, 다리가

너무 순식간에 나타났다. 이건 뭐 유성이 꼬리를 끌며 떨어지는 걸 보고 소원을 빌라는 거나 마찬가지잖아, 하고

툴툴거리면서 우선 잽싸게 사진부터 찍었다. 한두장 찍고는 흔들린 사진에 불평할 겨를도 없이 초스피드로 눈을

감고 소원 하나, 둘, 셋..이것 저것 손끝에서 비비적대며 우선순위를 가늠하다가 끝나버렸다.

다른 사람들은 잘들 빌었을까. 다음에 또 이런 경우가 생기면 뭘 빌어야 할지 미리 준비해 둘까..하고 생각한 다음

순간, 세느강 수면에 비춰지는 불빛 쪼가리들의 일렁거림이 시야를 붙잡았다.

주홍빛으로, 하얀빛으로 반짝이며 광택을 흘리는 실크 재질의 천을 갈기갈기 찢어 놓은 느낌이다. 인상주의 화가의

그림처럼 대담하게 그어진 굵고 힘찬 획들이 세느강 위에 온통 흩뿌려져 있다.

멀리 에펠탑이 다시 보이고, 강변의 둥근 가로등불이 세느강에 떨궈져서는 수십배의 빛무리를 만들어냈다.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니 살짝 센치해지기도 하고, 지금 내 머리를 흩날리는 바람을 볼 수 있다면 아마 저런 느낌의

파장일 거라고 생각했다.

내게 큰 의미나 울림을 던지지 못하는 수많은 다른 객체와 타인들과 섞여 있던 낮과는 달리, 니가 누군지 한 눈에

알아볼 수 있게 해주는 어둠, 그리고 불빛. 저런 스포트 라이트를 받을만한 건물이 많을수록 야경이 멋져지듯이,

저런 아우라를 지닌 사람이 주위에 많을수록 '삶'이라는 여행이 멋져질 게다.

그새 더욱 농밀해진 어둠 속에서 에펠탑의 파란 빛은 더욱 미묘해졌다. 주위의 검은 빛을 조금 덜어내서 파란 빛에

풀어냈는지, 조금은 어두워진 파란 빛깔이 어둠 속에 둥실 떠있다.

몇 장을 찍어 보아도 좀처럼 딱 이거다 싶은 사진을 못 고르겠었는데, 지금은 또 막상 이건 아니다 싶은 사진도

못 고르겠다. 이제 난 파란빛을 머금지 않은 에펠탑의 야경은 생각지도 못하게 되어버렸다. 매년 다른 빛깔로

탑을 치장한다고 하는데, 일종의 첫인상 효과랄까..아마 다른 색의 에펠탑을 보게 되면 아쉬움과 더불어 왠지

억지스런 꼬투리를 잡는 건 물론이고, 혼자만의 배신감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그치만 정말이지, 검은 밤에 파란색 에펠탑이 노란별을 두르고 서있는 거 말고, 어떤 그림을 더 상상할 수가 있을지.

빨간색? 보라색? 초록색? 노란색? 음...글쎄. 역시 파란색만한 게 없지 싶다.

티켓은 11유로였던가, 다른 미술관이나 건축물 입장료에 비긴대도 싼 편은 아니다. 그렇지만 꼭 한 번, 특히 밤에

탄다면 파리가 품고 있던 또다른 비경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