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내가 갔을 때에도 한국인은 혼자인 듯 했고, 동양인은 모두 일본인이었다. 글쎄..한국어 가이드북에 오랑주리
미술관의 비중이 그리 크게 나오지 않아서 그런 건가..
나 같은 경우는 파리에 가면 끌로드 모네의 '수련' 연작을 꼭 보라던 이야길 듣고 이미 잔뜩 혹해 있었어서, 한 번
문닫는 날 찾아가선 좌절했음에도 굴하지 않고 다음날 아침 일찍부터 찾아갔댔다.
튈를리 정원 내에 있달까, 다른 건물들과 다소 외떨어져선 세느강변을 내려보며 서 있는 날씬한 느낌의 미술관.
한눈에도 익숙한 혹은 전혀 낯선 그림들이 잔뜩 전시되어 있었다. 나도 나중에 저런 서재 하나 갖고 싶단 생각 뿐.
누군가의 서재를 그대로 보여주는 듯 한데, 누구였을까. 아마 오랑주리 미술관의 컬렉션이 원형이 되었다는
폴 기욤의 서재였을까. 그는 예술가들의 후원자이자 화상으로 어마어마한 컬렉션을 모았다고 했는데, 난 굳이
진본 작품을 걸지 않고 복제판 작품을 걸어도 마냥 뿌듯할 거 같다. (바야흐로 디지털 시대, 시뮬라르크가 대세다.)
나중에 내 방엔 르누와르, 수틴, 모네의 그림을 꼭 걸어놓아야겠다고 다짐다짐.
무슨 현대식 신전으로 들어가는 느낌이랄까. 그 통로 끝에서 나를 맞이했던 끌로드 모네의 '수련' 연작들.
압도당했다. 루브르박물관에서 보았던 다빈치의 그것들, 심지어 모나리자보다도 감동적이었다.
타원형 방 안에 기이일~게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네 장의 그림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런 타원형 방이 두개 서로
연결되어 총 여덟 장의 수련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해뜰녘, 해질녁, 그리고 계절감이 다른 수련의 그림들.
하늘을 메운 구름, 그 구름마저 품어버린 호수. 모네가 굳이 수련을 택해 그가 계속 그림을 그린 건 수상식물인
수련이 갖는 특수성 때문일까. 처음엔 수상, 물 위의 풍경들만 보였지만, 조금씩 수면, 호수 표면에 떠있는 풍경들,
그리고 수면 아래 수초나 다른 일렁임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세 개의 층위로 구획되는 공간이 서로의
움직임을 따르고, 부추기고, 그런 게 춤이다.
게다가 빛과 시간. 공기의 일렁임에 더해 빛의 밝기와 농밀함을 변화시키는 시간의 손길이 더했다. 천변만화하며
수상의 하늘에서, 수면 위에서, 호수 아래에서 피어나는 수련의 움직거림들. 수련의 춤.
가까이 코를 박고 보면 의미불명으로 굳어버린 물감덩이일 뿐이지만 한걸음씩 뒤로 물러나며 시선을 던질수록
수련들이 무수하게 피어오르는 걸 볼 수 있다는. 정말이었다.
여전히 내 사무실 노트북 앞에 붙여놓고 있는 입장권.
꾸지 말 것. 다른 곳은 몰라도. 그리고, 얼마를 주더라도 꼭 가 볼 만한 곳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터무니없는
금액이라도 모두 기꺼이 내겠다는 건 아니지만.) 지하의 인상파 화가들 작품도 그렇지만, 모네의 수련 연작
여덟점만 멍하니 보고 있어도 하루가 후딱 갈 거 같은 느낌.
(화요일, 국경일 휴무. 7.5유로. 09:45~17:15)
해도 입술이 근질근질해지는 느낌.
쫓아낸다. 잔디밭에 앉으면 안 된다길래, 무안해진 김에 다짜고짜 바로 옆 세느 강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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