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 데팡스, La Defense Grande Arche 역은 라 데팡스의 거대한 구조물들을 찬찬히 구경하기엔 그다지 친절하지

않은 역이라고 생각했다. 너무 깊숙히 라 데팡스의 신 개선문 주변에까지 가 닿음으로써 그 주변에 배치되어 있는

재미있을 것 같은 건물들을 둘러보기 어렵게 해놨기 때문이다. 차라리 한 정거장 먼저 내려서, 이리저리 둘러보다

필요하다면 라 데팡스 역에서 전철을 타 다른 곳으로 옮기자고 생각했다. 결과적으로는 탁월한 선택이었지 싶다.


Esplanade de la Defense 역에서 내려선 바로 앞에서 바라본 라 데팡스의 신 개선문. 한 변이 110미터나 된다는

이 거대한 건축물은 루브르 박물관, 카루젤 개선문, 튈를리 정원에서 콩코드 광장, 개선문을 잇는 그 직선상에

위치해 있다. 파리 시내 어디에서나 쉽게 만날 수 있는 녹지공간은 역시나, 라 데팡스로 가는 길에도 아낌없이

자리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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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에서 내려 바로 반대편을 바라보면 이렇게 개선문, 그리고 그 너머의 샹젤리제 거리가 보일 정도다.

왠지 개선문을 향한 길 양켠으로 뺴곡히 자리한 야트막한 건물들이 다소 누추해 보이거나 혹은 오래되어 보이는 건

신 개선문을 향한 그 길에 놓인 건물들이 모두 높다랗고 현대적인 깔끔한 건물들이었기 때문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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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가이드 북에 '라데팡스'라고 설명되어 있는 "신 개선문 주위에 고층 빌딩이 줄지어 있는, 파리 서쪽의 부도심"

그 자체는 여러 건물들의 총합이자, 이러저러한 건물 앞 예술품들이 자아내는 분위기가 특별한 일정 규모의

공간을 이야기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랑드 아르슈, 즉 신 개선문으로 향한 순례길에는 첨단 건물들이, 마치

서울의 강남 테헤란로에서처럼 즐비하게 하늘을 찌르고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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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이른 아침이어설까, 그다지 관광객이 눈에 많이 띄지는 않지만, 이렇게 깔끔하게 정비된 길은 분명 세기도

쉽지 않을 만큼 많은 관광객들의 발걸음을 대비하고 만들어진 곳이 아니었을까. 앞으로는 라 데팡스의 신개선문을

바라보며, 뒤로는 드문드문 개선문과 개선문까지 직선상으로 놓인 아기자기한 거리들을 굽어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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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개 껍데기를 엎어놓았다느니, 햇빛을 반사하며 다른 빛깔을 낸다느니 여러 묘사들이 꼬릿말처럼 붙어있는

건물들이 좌우로 정렬해 있었지만, 차라리 몇 개 눈에 띄는 건물들에 대해 눈길을 기울이느니만 못했던 설명이었다.

이 독특한 색깔을 고수하는 정체불명의 원통은 왠지 언제라도 하늘높이 쏘아올려질 법한 상승의 느낌을 한가득

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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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 도착한 순간부터 거슬렸던 모종의 이미지가 극대화되어 한눈에 들어온 참이다. 왜 얘들은 정원을 이렇게

각잡아 네모반듯하게 세워놓고 싶은 걸까. 입대 직후 훈련소에서 치토스 한 봉지씩을 나눠주며 생색을 내고는,

다 먹은 봉지를 각잡아 딱지접어 내라던 부조리한 상황이 왠지 겹쳐 떠올랐다. 게다가 그 때 치토스 안에서 나왔던

자그마한 따조..였던가, 그건 허가받지 못한 놀이기구로 훈련병들 모두 반납해야 한다는 인정머리없고 유치하다

못해 진절머리나는 명령을 내려받고 나서 난 앞으로의 군생활이 이따위일 거라고 깨달아 버렸었다.


어찌됐건 그다지 유쾌하지 못한 따조와 각잡아 반납한 치토스 봉다리의 기억을 되새기게 만든 "네모 반듯한"

프랑스식 정원의 한 결정적인 단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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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다른 여유롭고 단정한 건물들과는 다르게 하늘 높이 치솟은 건물들은, 왠지 건방지게 으스대고 주변의

녹지 공간을 위압하는 느낌이다. 제 아무리 나무가 자라봐야 내 어깨만큼이나 오겠냐는 식의 시니컬한 분위기.

그 한가운데서 발견한 나무의 형상은, 왠지 언젠가 주위 고층건물들의 벽을 타고 올라 하늘 가득 짙푸른 녹색을

퍼뜨릴 것처럼 희망을 품은 데다가, 왠지 모를 야망의 느낌마저 전달하고 있었다. 힘내라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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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나무들, 혹은 자그마한 정원의 테두리를 감싸고 있는 것들은 아래와 같은 사랑하는 두 남녀의 접촉과

같은 제스처로 풍성해져 있었다. 단지 나무를 자라게 하는 정원과 사람이 밟고 거니는 길거리와의 구분선만을

표시하고자 함이 아니라, 그 자체로 왠지 사람의 이목을 끌고 풍경을 의미심장하거나 회상조로 만들어버리는 조각.

조각 안에서 두 남녀의 키스는, 파리지앵들이 어느 곳에서나, 주위를 괘념치 않고 표현하는 그들의 달떠오른 감정

그리고 느낌을 표현하고 있는 것 같았다. 부러웠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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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데팡스 신개선문에 가까이 갈수록, 고층건물이 즐비한 일종의 테마파크같은 느낌이었다. 가로세로 110미터에

육박하는 거대한 ㅁ자 건축물은 글쎄, 별다른 감흥보단 그저 참 커서 눈에 잘 띄는구나 정도의 쭉정이같은 감상을

남겼고. 외려 그 근처 다른 개성있는 건물들에 또다시 눈이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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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데팡스의 그랑드 아르슈, 신개선문 바로 왼쪽 켠에 있던 건물의 창문틀은 독특한 문양을 그리며 상상력을

자극하고 있었다. 일종의 퍼즐 조각처럼, 아니면 서로 연결된 폭탄 꾸러미처럼 표시된 건물의 창문을 보고 있으면,

왠지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 역시 커다란 편견이나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채 신선한 방식으로 세상을 보고,

문제를 보고, 그럼으로써 돈을 (그나마 벌음직하게) 벌고 있으리란 기꺼운 기대를 불러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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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 앞에서 왠지 익숙하고, 그래서 슬퍼보이는 느낌의 직장인들이 담배를 피우거나 담소를 나누고 있었지만,

저 발랄한 정문을 바라보면서 역시 난, 저들은 뭔가 재미난 공간에서 일하는 게 아닐까, 저만큼 참신한 공간이라면

왠지 무언가를 내주고 일을 해도 괜찮지 않을까, 얼마간은...그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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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다니는 여행의 가장 큰 약점이란, 역시 자신이 들어가 있지 않은 사진을 많이 남기게 된다는 점일 게다.

외국인들의 형편없는 사진 실력을 보건대, 그리고 외국을 한가로이 돌아다니는 한국인이란 방학을 맞은 대학생,

여름휴가를 맞은 직장인 혹은 학교 선생, 그리고 뜬금없는 삶의 전환기를 주장하는 '아저씨'들임을 고려할 때,

9월 초의 이 타이밍에 내 사진을 찍어주길 바랄 만한 동양인을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와 같았다.


도구의 인간답게, 주변의 사물을 이용해 스스로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잔뜩 오목해진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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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전적으로 보는 사람이 얼마나 정서적으로, 감정적으로 고양되어 있는지를 판별할 수 있는 사진과 같다.

저 건물, 은근슬쩍 왼쪽으로 허리를 굽히고 있다는 사실이 누군가에게는 오호, 하면서 놀라와 할 만큼의 사실,

그치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뭐 무너질 거 같은 긴장감은 하나도 없네, 하면서 어줍잖아 할 만큼의 사실.


사실과 사실 사이에서 입장을 정하는 건, 단지 짬뽕을 먹을지 짜장면을 먹을지, 혹은 라면을 두 개 끓일지 한 개

끓여 찬 밥을 말아 먹을지를 정하는 것처럼, 전적으로 자신의 문제란 건 알고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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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랄까, 저 터무니없이 크고 무쓸모한 건축물이 조금씩 가까워지고 내 시야를 갑갑하리만큼 가로막는 걸 느끼면서,

왠지 이곳이 파리라는 세상의 끝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마도 몇 걸음 더 딛고 나면 영화 "13층"에서 나왔던

것처럼 엉성한 CAD 작업으로 내뻗어진 얄팍한 궤적 몇 개만이 세상의 실재를 주장하는 "세계의 끝"이 나타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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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세계의 끝"이란 느낌 때문일까, 아님 단순히 교정되지 않은 채 제멋대로 넓적넓적하게 자라버린 치아의

배열처럼 엉성하게 놓여있는 빈틈많은 계단 때문일까, 유난히 계단 사이에 끼어 있는 꽁초가 많았다.

어느 계단을 밟으나 쉬이 눈에 띄는 빼곡히 꼽혀있는 꽁초들, 아마 이후의 사람들로 하여금 "에라 모르겠다"라는

느낌으로 담배꽁초를 휙ㅡ 던져버리게 만들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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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데팡스의 그랑드 아르슈, 즉 신개선문은 개선문과 유사한 그 백색의 돌덩이 자체가 가진 특질과 아름다움을

구현하고 싶었던 게다. 거기에 라 데팡스를 순례하는 순례자들이 현대 미술가들의 조각을 너그러이 평가하여

자칫 딱딱해 보이기 쉬운 고층 빌딩가를 화려하게 장식하게끔 하는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애초 라 데팡스 지구를

상징하는 '그랑드 아르슈'는 1989년 7얼 14일 프랑스 혁명 200주년을 기념해 만든 건축물이다. 옥상 전망대에서는

멋진 지상의 직선과 파리 시가의 전경을 내려다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왠지 어딘가에 올라 전경을 바라보는

투어 가이드란 게 딱히 내키지 않아서 그냥 조용히 조형물을 올려 보았다. 왜 이런 걸 만들었을까, 프랑스 혁명

200주년을 기념했다고 하기에는 너무도 추상적인 형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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