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릉, 햇살이 반짝거리던 날 벚꽃나무들이 둥그렇게 모여서 머리를 맞댄 그 아래 돗자리를

깔았다. 강하게 내려쬐는 햇빛 아래에서 하얀 꽃잎들은 거의 투명하도록 빛나고 있었고,

푸르스름한 하늘색과 살풋한 핑크색이 섞여들며 묘한 분위기의 창공이 위로 열려있었다.

나무는 아 까먹고 있었다, 라는 느낌으로 문득문득 꽃잎을 소리없이 떨구고 있었다. 바람 한점

없는데도 파르르 몸을 떨고는 꽃잎이 뚝, 뚝. 소리도 없이 내리는 벚꽃잎을 보면 뭔가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신비로움도 느껴지고 그 압도적인 존재감에 사방이 숨죽인 채 바라보는 느낌이

드는 거다. 문득 잊었다는 듯, 그렇지만 당신이 날 잊었던 말던 상관없다는 듯, 그렇게 고고하고

조금은 망연하게 꽃잎이 손 위에 내려앉았다. 


가을에 떨어지는 낙엽을 손으로 잡으면 행운이 온다는 말도 있지만, 떨어지는 벚꽃잎을 손으로

잡아도 행운이 온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었다. 워낙 얇고 가벼워서 살짝 스친 손길이 일으킨

바람에도 팔락이며 몸을 뒤채고 마는 그 섬세한 꽃잎, 그 말을 듣고 아마도 처음으로 꽃잎을

잡았던 건 아이러니하게도 군대 훈련소, 구보중이었다.

돗자리 위에 누워서 음악도 듣고 이야기도 하고, 문득 이야기가 끊기면 멍하니 떨어지는 꽃잎과

함께 마음이 나풀거리기도 하고, 더러 바람이 불어 우수수 꽃비가 나리면 마음이 먹먹해지기도

하고. 이빨빠진 꽃잎들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에 눈을 찔리기도 하고.

날씨가 워낙 희한한지라 한반도엔 이제 2계절이 뚜렷하고 일교차가 큰 그런 날씨가 정착되어

버린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벚꽃들도 볕좋은 곳에 선 나무에선 활짝 피다 못해 연두색 이파리가

스물스물 올라오고 있는가 하면 어떤 나무는 아직 꽃망울도 다 안 터지기도 했고. 그나저나

벚꽃은 이파리 오르기 전까지가 정말 이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이렇게 싱싱한 연두빛이

더해져도 나쁘지 않은 거 같다. 아직은, 엷은 핑크빛 꽃잎과 엷은 연두빛 잎사귀의 평화로운 공존.

몇 장, 선릉에서 찍은 사진들 추가. 커다란 능이 만든 둔덕 위에서 노란 민들레꽃이 피었더랬다.

그리고 두드러지진 않지만 담백한 보랏빛 꽃들도 군데군데 깃발을 꽂았고.

생각보다 넓고 다이내믹한 선릉 공원 내부, 자그마한 동산도 있고 산책로라기엔 꽤나 긴 동선이

나오는 너른 공간에 어딘가쯤 박혀있던 이 구부정한 소나무.

그리고 경주 남산에 잔뜩 있던 해송들이 풍상에 씻겨 우락부락해진 외모만큼은 아니어도 나름의

굴곡과 사연을 갖고 이리저리 구비구비 자라난 소나무들.

돌아나오는 길, 어느 까페의 노천 테라스에 앉아서 잠시 쉬었다. 파란색 파라솔의 두툼하고

거친 캔버스천 사이로 중천까지 바싹 독이 오른 햇살이 닌자의 표창처럼 무수히 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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