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즈 프로그램에 나가게 되어버렸다.

자원해서 나선 거긴 하지만, 아무래도 '퀴즈'라는 형태에 대한 거부감은 여전하다.

대체 '양천리'가 어디에 붙은 동네인지 알아서 뭐하며,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는 짝퉁 상품이 뭔지는

알아서 뭐한단 말인가. 게다가 셜록홈즈 사무실이 있던 곳의 정확한 주소는 또 알아서 뭐하려고.


내가 처음 퀴즈 프로그램에 관심을 가졌던 건 고등학교 때. 옆 학교 친구들이 장학퀴즈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문제도 맞추고 상도 받는 게 좋아 보였다. 우리 학교야 90여년의 전통에 누가 된다며 그런

티비 프로그램에는 나가지 않는 게 방침이라고 어느 선생님에겐가 듣고 조금 실망했었다. 나가면

남들 못잖게 잘 할 수 있을 거 같았고, 상금도 받으면 딱히 하고 싶은 건 없었지만 대학교 등록금을

보태든 어쩌든 부모님도 좋아하겠다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던 거 같다.


그리고 들어온 대학교 3학년, '골든벨'인가 그걸 울렸다는 친구가 우리 과 새내기 후배로 들어왔다.

그때쯤 난 그런 단답형의 퀴즈를 맞추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한국의 주입식, 암기식 교육에 딱

걸맞는 천박한 수준의 테스트 혹은 게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 별반 감흥은 없었지만. 말하자면

고등학교 때까지 그런 주입식, 암기식 교육 체제에 잘 길들여졌음을 보여주는 지표 중의 하나가

퀴즈에 대한 단답식 대답에 '재능'을 보이는 거라고 생각했다. 이제 대학교에 들어왔으니 그런

퀴즈풀기에 적합한 접근방식의 지식쌓기는 그만둬야 한다고,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다.


그렇지만 군대에 있을 때, 돈을 모아 여행을 떠나기로 맘을 먹고 나니 너무 막막했다. 상금을 노리고

무작정 '퀴즈가 좋다'던가, 무슨 프로그램에 예선신청을 했었는데, 날짜 맞추어 휴가를 나가 휘적대며

방송국 대기실에 갔더니 전부들 손에손에 책과 노트, 프린트물들이었다. 질문, 답, 질문, 답, 누가

언제 만든 책의 제목은? 뭐시기뭐시기, 이걸 가리키는 순우리말은? 뭐시기뭐시기. 그런 걸로 빼곡한

글자들을 눈이 빠져라 노려보는 사람들을 보니 겁을 먹었다. 아..이 사람들은 저걸 다 외웠나. 재미도

없고 그 퀴즈 문제로 아무런 생각거리나 의미도 던지지 못하는 뚝뚝 끊어진 것들을.


말하자면 그것들은 아무런 내용이 없는 텅 빈 마침표들의 연속. 세종대왕이 누구의 몇째 아들인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이 몇 미터인지, 최근 한국의 아르바이트 법정시급은 얼마인지, 그거 하나하나를

외우는 게 대체 나의 무슨 능력을 측정할 수 있을까. 암기력. 인내력. 그리고 아마도..상금에 대한 열정.

혹은 명예에 대한 열정도 조금. 그 열정 자체를 비난할 생각은 없다. 그건 개인적 차원에선 취미활동,

자신감 획득을 위한 수단, 자부심의 원천, 심지어는 생계활동일 수 있으니. 다만, 퀴즈에 한 단어로

답하기 위한 준비행위, 그 '공부'가 갖는 무미건조함과 무의미함을 지적하고 싶을 뿐이다.


당연히 예선에서 떨어졌고, 그 이후로는 퀴즈 프로그램에 나갈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저런 따분하고

지리한 공부 같지도 않은 공부를 해야 예선이라도 통과할 텐데, 그런 암기식 공부는 고등학교 때까지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이미 천만원, 이천만원을 훌쩍 넘어가던 퀴즈프로그램이 내건 상금에 대한

욕심은 여전했지만 그걸 받자고 그런 고시공부보다 재미없는 공부를 하고 싶진 않았던 거다. 작년인가

내가 속한 어느 모임에서 퀴즈 프로그램에 나갈 사람을 모집했지만 전혀 내키지 않아 신청도 안했었고

그런 상금을 사냥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공부할 사람들 몫이라고 지레 포기하고 있었다.


퀴즈는 그 질문의 답에 대한 앞뒤 상황을 이해하고 있는지, 전체적인 그림이나 상황에 대한 깊이있는

사고를 하고 있는지 따위는 전혀 관심이 없다. 너무나도 심플해서 단순무식하다. 그저 그 한 단어를

알고 있으면 통과, 모르면 탈락이다. 흔히 퀴즈대회에서 우승하는 사람들을 두고 '상식이 많은 사람'이라

말하는 거 같지만, 그런 게 상식일지 모르겠다. 시사상식 퀴즈를 잘 맞추는 것과 시사문제를 잘 이해하는

것도 분명히 다른 일이다. 퀴즈를 잘 맞춘다고 똑똑하다고 이야기하기도 쉽지 않다. 공부를 잘한다고 꼭

똑똑하란 법이 없듯, 퀴즈를 잘 맞춘다고 똑똑한 것도 아닌 거다. 정답 아니면 오답, 맥락은 필요없고

한 단어로 끝, 이란 심플한 세상은 되려 똑똑한 사람들에겐 유치해 보이지 않을까.


물론 똑똑한 사람들이 퀴즈도 잘 맞추고 공부도 잘 할 가능성이 높을지 모른다. 그리고 사실 지금은

조금 내 생각도 바뀐 게, 약간 타협한 상태랄 수도 있겠다. 퀴즈 문제에 대한 건조한 질문과 짧은 대답은

정말 그의 지력이나 능력에 대한 지극히 일부의 부분, 암기력만을 잴 뿐이지만, 다만 그걸 준비하는

과정에서 시사, 경제, 정치, 문화 등 사회 전반에 대해 두루 접하고 폭넓게 정보를 수집했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는 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여전히 그런 식으로 퀴즈에 답하기 위한 '공부'가 단순히

새로운 어휘나 숫자들에만 집착할 뿐 전체의 맥락이나 사건들에 대한 의견을 형성하고 사고를 깊게

하는데는 그다지 도움이 안 될 거라는 '지레짐작'은 여전하지만.


결국 내 생각은 그런 거다. 퀴즈 공부를 하고 신청하는 이유는 결국 물질적, 정서적 보상을 노리고.

그렇지만 퀴즈 자체가 공부가 되는 순간, 고등학생 이전의 주입식/암기식 교육 시스템에 다시 들어가

버린다는 거다. 그건 아무런 실익도 긍정적 효과도 의미도 없는, 그야말로 시험(퀴즈)만을 위한 공부.

한발 더 나아간다면, 이런 식으로 퀴즈를 맞추는 승자에게 상금을 주는 건 좀 이해할 수 없기조차 하다.

그들이 암기를 잘하는 것에 대한 상을 주는 건가. 사람들의 기계적, 무비판적 암기와 맥락없는 지식

과시를 독려하려고? 가만히 생각해보면 굉장히 이상한 일이다. 차라리 100분 토론 같은 데 나와서

말 잘하는 사람에게 주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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