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도둑 #bicyclethief #italy #movie #classic #영화스타그램 #고전

1948년 이탈리아에서 만들어진 고전. 이토록 강력한 영화라니. 충격과 반전의 후반부는 말그대로 입을 떡 벌리게 만들었고, 인간과 삶에 대한 김기덕 류의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폭발이 아니라 세련되고 담백한 표현만으로도 그정도 성취에 이를 수 있음을 웅변한다.

2차대전후 피폐해진 이탈리아, 당장 먹고 살길이 막막한 가족이 바라보는 건 아버지뿐이지만 그라고 뾰족한 수가 있는 건 아니다. 수많은 경쟁자를 뚫고 직업소개소에서 용케 소개받은 일자리는 자전거가 꼭 있어야 일할 수 있다는데 정작 전당포에 팔아먹은지 오래. 침대보와 베갯잇을 다시 전당포에 잡히고 자전거를 꺼내오는 우여곡절을 겪고서야 돈을 벌기 시작한다.

그에게, 아니 그의 가족에게 자전거는 당장의 먹거리를 책임지고 미래를 꿈꿀 수 있게 해주는 유일무이한 수단인 셈이다. 그런 자전거를 도둑맞고서 그가 느꼈을 암담함과 좌절감은 얼마나 깊었을까.

안타까운 마음은 러닝타임 내내 계속되는 자전거와 자전거 도둑에 대한 추적이 줄곧 무위로 돌아가는 꼴을 보면서 짜증과 답답함으로 변질될 지경이다. 도움이 되지 않는 경찰, 나몰라라 하는 주변인들, 증거내놓으라며 뻗대는 관련자들.

그러게 왜 자전거를 잃어버리고 그러냐. 같이 돌아다니는 꼬맹이 아들은 무슨 잘못인데 왜 화풀이하고 그러냐. 겨우 도둑에게까지 가닿았다 싶은데 무기력하게 빈손으로 되돌아설 때쯤에는 애꿎은 화살이 급기야 피해자인 남자에게 쏠리고 말았다.

그리고, 충격적인 전개. 사실 충격이라기엔 사람 심리가 그런 거 아니겠나 싶기도 하다. 날벼락같은 피해를 입었고, 누구도 내게 도움을 주지 않고 관심도 없다면, 어쩌겠는가. 도둑맞은 이가 도둑이 될 수 밖에. 사진이 바로 그 갈등의 순간.

그리고 한번 더 인상적인 반전이 등장한다. 순식간에 잡혀버린 그는 아이 앞에서 따귀를 맞고 다구리를 당하지만, 잡힌 도둑 앞에서, 다시금 안전하게 수중에 들어온 자전거 앞에서, 이번 피해자는 관대함을 과시한다. 경찰서로 끌고 가는 대신 그냥 아이와 함께 보내주겠다며 풀어주는 것.

그의 흔들리는 눈빛과 망연자실한 표정이라니. 사방으로 휘적대는 눈빛은 어딘가 목을 매달 곳, 죽어버릴 곳을 찾는 것만 같다. 칼날 위에 선 듯 위태로운 파국을 맞을 것만 같은 긴장감이 팽팽한 순간, 아이가 내미는 손을 잡고 비척거리며 집으로 향하는 뒷모습. 아, 이게 사는 건가, 싶은.

뒷바퀴와 앞바퀴, 핸들과 브레이크선 등을 모두 연결한 모습. 부품에서 전체 조립으로 넘어가면서 점점 뭔가 아귀가 딱 떨어지는 느낌이 떨어지는 게 아쉬웠다.

#프라모델 #자전거 #아카데미 #academy #plamodel #bicycle copyright 1998. 내게 친구가 말하길, "형 합법적으로 신나 불려고 저거 하는거지?"라니. 그치만 역시 니혼징의 섬세함은 못 따라가는구나..약간 국산품애용캠페인같이 스스로 세뇌를 하면서 어쨌던 끝내자고 다짐다짐.

스티커도 데칼처럼 얇고 정교하면 좋을 텐데 두께가 1미리쯤은 될 거 같은 두꺼운 비닐 소재다.

그래도 나름 추가적으로 도색도 하고, 약간의 커스터마이징도 하면서 최대한 디테일을 살려보려 노력중.

이런 자전거 받침대의 용수철도 그냥 플라스틱으로 찍어낸 모양이라 납작하고 부실해 보이는 게 아쉬웠던 점. 진짜 스프링은 못 쓴다고 하더라도 좀만 더 정교하면 좋은데.

그래도 페달은 따로 도색을 했더니 색감이나 텍스쳐가 그럴 듯하다.

브레이크패드 부분도 무광 은색으로 도색을 했으니 그나마 좀 나은 모습. 그렇지만 저런 주형틀 자국이 남은 것들은 좀..

대략 완성샷. 그래도 완성시켜놓으니 뿌듯한 마음은 다를 바 없다.

#프라모델 #자전거 #아카데미 #plamodel #bicycle 그야말로 악전고투. 조잡함과 정교함 사이에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존재한다는 걸 실감했다..저 브레이크 라인은 계속해서 빠지고, 곳곳에서 흔들흔들 위태한 부품들의 결합상태라니.

어쨌든 그래도, 만들면서 자전거가 어떻게 생겨먹은 건지, 어떻게 동력이 전달되고 움직이는지에 대해서 다시금 뜯어볼 수 있었던 기회. 재미있었다.

#프라모델 #자전거 #아카데미 #academy #plamodel #bicycle
copyright 1998. 무려 20년 전의 모델인데, 친구가 선뜻 내주어 조립을 해볼 수 있었다. 바이크와 건담 이후 또다른 아이템.

그렇게 퀄리티가 높거나 (그래서) 비싼 녀석이 아니라 그런지 부품은 세가지 색깔로 분할되어 있었고, 그래도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말랑거리는 타이어 고무가 맘에 든다.

아무래도 색을 좀더 써줘야 할 것 같아 갖고 있는 타미야 스프레이로 부분부분 포인트를 주기로. 빨간색과 무광 은색, 무광 검정색 정도 얹어주면 될 거 같다.

제법 디테일은 뭉개지지 않은 편이긴 하다. 체인부분이나 기어 부분엔 별도로 도색하니 좀더 나아보이기도 하고.

안장부분도 다시 도색을 했다.

뒷좌석 역시. 그렇지만 싸구려 크롬 느낌나는 은색 부품들이 좀 거슬린다. 게다가 부품이 말끔하게 주형되지 않아 마감이 약간 안타깝기도.

빠른 속도로 프레임을 만들고 뒷바퀴와 체인부분을 완성. 빨간 색으로 페달 부분 일부를 칠한 것도 나름 만족스러운 결과물인 듯.

그러나 이때까지는 몰랐다. 갈수록 태산, 안타깝던 퀄리티가 삐죽삐죽 문제를 만들기 시작하리란 걸.

베를린 시내로 출근하는 아침, 개천을 따라 걷는 길이 어찌 이리도 고즈넉한지.


개를 끌고 산책하는 부부의 모습도, 혼자 자전거를 타고 나와 잠시 앉아 쉬는 모습도, 모두 사랑스럽기만 하다.


그리고 이렇게 고풍스러우면서도 현대적인 기능을 다하는 이쁜 다리.


사람들은 차를 운전해서, 자전거를 타고서, 혹은 걸어서 이 다리를 건너며 과거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을 이어주었던 이 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이렇게 그로테스크한 벽화가 그려져 있는 건물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은 재미있는 덤.


그보다 더 눈길을 끌었던 건, 슈프레강변에서 이렇게 카누인지 카약인지를 띄우려 시도하시던 백발의 할아버지.


뒤에서 담배를 피우고 맥주를 마시는 틈틈이 응원해주던 친구 할아버지를 뒤로 하고 능숙하게 카누에 탑승.


잠시 시선을 돌린 사이에 어느덧 저만치, 강 중심으로 나아가서는 멀찍이 사라져 버렸다. 


우리도 한강에서 저렇게 카약을 타며 노년을 즐길 수 있는 분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중에, 노란색 유람선도 지나고 노란색 전철도 지나는 다리가 다시금 눈에 들어와 한 장.




 

 

 

속초 위쪽으로 있는 제법 커다란 호수, 영랑호. 그 주변길에는 왠지 80년대 정권의 핵심층이 '안가'로 썼을 법한 고풍스런 리조트가

 

열지어 늘어서있기도 하지만, 가을인지라 단풍이 곱게 든 자전거길이 잘 조성되어 있는 거다. 혹시나 하고 찔러본 길이 대박.

 

 중간에 마주치는 연못에선 활짝 핀 연꽃도 구경하고, 범바위였던가 온갖 형상을 떠올리게 만드는 커다란 바위도.

 

 그리고 속초 닭강정시장통으로 가서 만석닭강정과 중앙닭강정과 시장닭강정집이던가, 3대 닭강정집을 둘러보며 시장조사.ㅋ

 

 마침 설악문화제던가, 축제기간이었는지라 시끌벅적하던 시장통을 한발 빗겨나오니 막 공연을 마치신 듯한 아주머니들이 길가에서

 

쉬고 계시길래 한 컷. 하와이에서 훌라춤을 전승받고 막 동남아 순회공연에서 돌아와 속초의 축제를 평정하신 아줌마들 되시겠다.

 

(물론 사진 촬영에 대한 허락은 자못 공손한 인사말로 얻어낼 수 있었음)

 

그리고,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속초의 맛집 봉포머구리집. 가게가 휑뎅그레하길래 깜짝 놀랬는데,

 

최근에 건물을 새로 올려서 훨씬 번듯하게 장사를 하고 계시더라는. 물회와 성게알비빔밥 모두 맛은 그대로였다.

 

 

 

 

 

속초해수욕장 아래 외옹치해수욕장, 그즈음에 잡은 펜션에서 자전거를 빌려 속초를 돌아보기로 했다. 속초해수욕장을 지나고

 

아바이마을을 지나고, 청초호를 지나 영금정까지. 그리고 내친김에 영랑호까지 한바퀴 돌아보고 다음날 설악산 울산바위에 올라

 

점심삼아 먹을 닭강정을 살 닭갈비 시장통을 들르는 코스. 11시쯤부터 타기 시작해 아바이순대로 점심먹고 돌아오니 6시쯤?

 

마음이 싱숭생숭해질 수 밖에 없는 새파란 하늘, 그리고 그 하늘을 잔뜩 응축시켜 에센스를 풀어낸듯한 짙푸른 바다.

 

 역시 새로운 지역을 여행하는 기분으로 만끽하려면 걷거나 자전거를 타는 게 최고인 거 같다.

 

몇번을 왔던 사랑나무, 이제야 이게 어디에 붙어있는 건지 방향감각이 제대로 잡혔다.

 

 청초호가 바다로 빠져나가는 길목에 가로뉘인 청호대교.

 

 

아주 옛날, 이전에 걸었던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그러고 보니 그때는 날씨도 엄청 구려서 비를 맞고 걸었던 기억.

 

 다리 위에서 굽어보는 청초호 안쪽의 속초시내 전경. 누군가의 요트가 잔잔한 물결을 일렁이며 진입하는 중이다.

 

 

 그리고 갯배. 탑승료가 200원, 작년엔가 왔을 때는 아저씨가 직접 힘을 쓰시며 줄을 끌었던 거 같은데 이젠 모터가 힘을 쓰나보다.

 

아바이 순대마을에서 막걸리와 아바이순대, 그리고 오징어순대로 넉넉하게 배를 채우곤 가까운 카페로. 카페에서 발견한

 

조그마한 메모지 한장의 글귀가 눈길을 잡아챈다. 속초바다는 하늘이 녹아내린 '파이란 아이스크림'. 파아란이 아니라 파이란.

 

최민식과 장백지의 그 영화, 먹먹해지는 그 영화의 느낌이 바다로 전이되는 느낌.

 

속초에까지 와서, 이렇게 좋은 날씨에 실내에 있을 수는 없다 싶어 이내 일어나 바닷가를 잠시 거닐다가 발견한 표지판.

자전거를 타고 피어39에서 금문교를 지나, 그만큼의 거리를 또 달리고 나면 소살리토라는 작은 마을에 도착하게 된다.

 

처음 도착한 여행지에 들렀을 때 으레 그러하듯 다짜고짜 여행안내소로. 여기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먹으면 좋을까요?

 

왠지 현지에서 사시는 분들의 추천은 가이드북과는 달랐던 경험에서 나온 건데, 역시나 새하얀 백발이 눈부신 할머니의

 

카랑카랑하고도 자부심 넘치는 한 마디. 꼭 봐야 하는 건 없지만, 한나절 여유롭게 거닐기엔 딱 좋은 사이즈와 분위기가 있답니다.

 

소살리토 초입에 들어서자 바다넘어 보이는 샌프란시스코의 마천루.

 

 

 

그리고 해변의 돌들을 가지고 아주아주 미묘하게 균형을 잡아 세우는 예술작업중이신 예술가 아저씨.

 

 

샌프란시스코의 도로변에도 비슷한 표지가 있었는데, 소살리토의 표지는 생선 모양으로 조금 다르다.

 

그리고 소살리토를 돌아볼 때 일종의 이정표가 될 수 있는 분수. 삐에로처럼 고리눈을 한 채 활짝 웃는 표정이 괴랄하다.

 

미국의 소도시, 작은 마을에서 왠지 인도 냄새가 나는 코끼리상을 볼 줄은 몰랐는데.

 

샌프란시스코나 여기나, 시끌벅적하게 공기를 찢으며 내달리는 소방차의 위용은 마찬가지.

 

 

그런데 참 번쩍번쩍, 얼핏 보기에도 관리도 잘 되어 있고 굉장히 신형인 차들이다. 새빨간 도색은 말할 것도 없고.

 

 

소살리토의 샵들, 레스토랑들, 까페들과 자그마한 갤러리들을 휘적휘적 둘러보고 나니 두어시간.

 

 

자전거 주차는 아무데나 하지 말라고 경고판이 사방에 붙어있지만, 사실 또 그렇다고 유료로 주차할 필요는 없었다.

 

(그렇다고 사진의 포인트가 저 자전거 주차금지 표지판인 건 아니랄까.

 

 

화단이 잘 정돈된 모양새나, 천박하지 않은 간판들이 차분하게 늘어선 모양새나. 제각기 개성있는 건물들하며.

 

 그 와중에 소살리토의 메인로드로부터 샛길로 빠지는 왼갖 골목길들이 호시탐탐 여행객들을 노리고 있다.

 

 금문교를 건너 자전거로 여기까지 온 여행자들은 대개 페리를 이용해서 샌프란 시내로 돌아가는데, 대충 두어시간이면

 

돌아갈 수 있는 길이니 그냥 사람들 배타는 것만 조금 구경하다가 슬슬 돌아가기로 했다.

 

 

비지터 센터의 호호백발 할머니 말씀이 맞았던 거 같다. 뭔가 특별히 볼 게 있다거나 즐길 게 있는 곳은 아니지만,

 

샌프란시스코에서 맞이하는 바다와는 다른 느낌의 풍경과 분위기를 맛볼 수 있는 작은 어촌 마을이다. 소살리토란.

 

 

 

느닷없이 도시가 술렁거렸다. 잠시만 방심하면 어디서고 빽빽, 소리를 내며 시뻘겋게 내달리는 소방차가 튀어나오긴 하는 도시라지만

 

조금은 다른 종류의 술렁거림이었다. 그리고, 그가 나타났다.

 

사실은 유니온 스퀘어에서 이미 한번 조우했던, 익숙한 그의 실루엣과 푸근한 똥배였다. 그때는 미처 마음을 다잡지 못해 셔터를

 

누를 타이밍을 놓쳤던 것 뿐, 유니온 스퀘어에서 피셔맨스워프까지 사십분을 걸으며 아쉬워하던 참이라 이번엔 영락없었다. 찰칵.

 

빠르게 움직이는 피사체의 속도에 맞추어 카메라를 움직이는, 나름 패닝까지 시도해가며 찰칵.

 

무지하게 시원할 거 같다. 그 와중에도 머리를 보호하기 위해 헬멧을 썼지만, 사실 저렇게 입고 타다가 사고가 나면 아후 정말.

 

어디가 어떻게 까지거나 찢어지던 무지하게 아플 거 같다.

 

시선을 온통 살색 충만한 아저씨한테 뺐겼다가 재미난 자전거들을 몇 대 흘려보낸 뒤, 정신을 가다듬고 끊이지 않는 행렬을 훑었다.

 

키보다도 훨씬 높은 자전거, 그것도 스트라이다와 같은 삼각 형태의 자전거가 몇 대 지나가길래 그 중 하나를 캡쳐.

 

 

금문교의 붉은 실루엣을 옆에 치워둔 채, 세찬 바닷바람에 긴치마를 펄럭거리며 갈매기를 불러들이던 그녀.

 

하늘로 쭉 뻗어올린 그녀의 손에 화답하듯 주위에 내려앉은 갈매기들은 과자 부스러기보다 그녀에 관심이 많아 보였다.

 

 

 

 

 

 

 

 

 

 

 

  

 

  

 

 

 

 

 

 

 

 

 

 

 

 

 

 

 

 

 

 

 

 

 

 

 

 

 

 

 

 

 

샌프란시스코의 북쪽끝에 위치한 항구지역, 피셔맨스 워프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자전거 대여점, 시간당 8달러였던가에

 

일단 세시간을 약정하고 빌려서는 저멀리 희끄무레하게 보이는 붉은 금문교를 향해 출발.

 

금문교 반대쪽을 찍고 돌아오기에 충분한 시간이라는 대여점 아저씨의 말을 믿어보기로 했다.

 

 문제는 금문교로 향하는 길에 계속 밟히던 풍경들. 오른쪽으로 끼고 향하는 샌프란시스코 만에서는 악명높은 수용소

 

알카트라즈섬 내부의 건물과 시설물들이 손에 잡힐 듯이 보이고.

 

 

 이리저리 휘영청 종횡하는 부두 시설들이 보여주는 리드미컬한 곡선들과 시퍼런 바닷물 역시.

 

 

 

중간에 잠시 녹색빛 가득한 공원을 가로질러 달리기도 하고. 알고 보니 샌프란시스코는 공원 투어가 있을 정도로 공원이 많다고.

 

 수백척의 요트가 대규모 공용주차장의 차들처럼 빽빽히 열맞춰 주차되어 있는 정박장을 지나고.

 

 

 어느새 이만큼.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의 야외전시물들이 놓인 새초록 잔디밭 너머로는 붉은 금문교가, 앞으로는 개장수 아저씨가.

 

 

자전거 전용도로의 방향을 일러주는 표지판, 바닷바람에 지친 듯한 피로한 낯빛이 맘에 들었다. 

 

 돌아보면 생각보다 먼 거리처럼 보이기도 하고, 금문교까지 닿는 길이 제법 오르막과 내리막이 랜덤으로 이어지는 편이다.

 

 그래도 중간중간 이런 사진찍기 딱 좋은 명당들을 마주치는 재미. 그리고 조금씩 금문교가 육박해들어오는 생생한 실감까지.

 

 

 

 시간대에 따라 금문교 위의 통행로를 자전거에 교차해서 오픈하고 있었다. 아마도 이 표지판이 이만치 닳았을만큼 오랜 룰인 듯.

 

 

그리고 사진찍기 좋겠다 싶은 포인트에는 어김없이 바글거리는 사람들. 저 꼬맹이들은 무슨 수학여행이라도 나온 듯 시끌벅적.

 

 바야흐로 금문교 진입 직전. 360도로 크게 회전하는 길 중턱에 잠시 자전거를 세우고는 금문교와 함께 한 장.

 

 다리 양쪽으로 나 있는 인도 겸 자전거 도로는 생각보다 좁아서인지, 안전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온갖 규정들이 입구부터 빼곡했다.

 

 

 금문교를 건너다가 바라본 샌프란시스코 다운타운의 풍경. 꽤나 멀어 보이는 게, 자전거로 쉬지 않고 달려도 삼십분은 걸리겠다.

 

 조금 땡겨서 바라본 샌프란시스코 시내.

 

No U Turn. 자전거나 보행자를 위한 표지판은 아니고 실은 자동차들 보라는 표지라지만 왠지. 뭔가 계시를 받는 느낌.

 

 굉장히 고풍스럽고 우아한 금문교의 준공기념패랄까나. 청동덩어리를 양각한 듯한 모양새하며 그 클래식한 글씨체까지.

 

 

 

 뭐라더라, 선진시민은 우측통행이라던 어느 정부의 강변과는 상관없이 좌측통행을 하되 대체로 내키는 대로 보행중인 미국시민들.

 

 

 금문교 저너머로 보이는 건물들의 군집이 바로 소살리토. 시간만 괜찮으면 저기까지 내달려도 좋을 듯 해서 고민고민하던 중.

 

보통은 저기까지 내달리고는 페리에 자전거째 싣고 피셔맨스워프로 돌아오는 코스를 많이들 탄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금문교 건너편에 도착. 이쪽에서 바라보는 전경은 또 다른 맛이 있다.

 

 

 

나파 밸리의 중심가, 나파 다운타운에는 와인을 시음할 수 있는 트렌디한 와인샵들과 함께 레스토랑과 베이커리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상점가가 형성되어 있다. 제법 와인 관련한 아이템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고, 캘리포니아 와인과 함께

 

간단한 점심을 챙겨먹는 것도 좋을 법한 지점이다. 마침, 11월의 나파밸리는 담쟁이가 익어가는 계절.

 

 점심을 간단하게 먹으려는 사람들의 심리 때문인지, 아니면 그만큼 유명하게 인지도가 높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프렌치 베이커리 앞에서 어마어마하게 늘어선 줄.

 

 

 샵들에서 구경할 수 있는 재미있는 소품들과 와인 관련 아이템들을 구경하면서 이곳저곳에 인심좋게 널려있는 음식들을

 

시음시식하다 보니 딱히 배가 고픈 줄도 모르겠더라.

 

 

 

와인병을 재활용한 생활 소품들도 많이 판매되고 있었는데, 이런 그럴듯한 조명 역시 와인병을 그대로 활용한 사례.

 

와인병을 녹이거나 이어붙이거나 아이디어가 반짝거리는 상품들도 있었지만 촬영이 금지된 경우도 왕왕 있어 촬영 실패.

 

 

 나파 밸리의 다운타운을 돌아다니는 와인 트롤리, 저속으로 운전하는 버스라 그런지

 

창문도 없고 관광객들은 모두 탁 트인 창문을 바라보고 옆으로 앉아있다.

 

 

 온통 빨갛고 노랗고, 그리고도 푸릇푸릇한 나파밸리의 가을.

 

 

캘리포니아 와인의 본산 나파 밸리에서는 자전거 보관소도 와인 숙성을 위한 오크통을 재활용해 만들어 놓았다.

 

다운타운에서도 중심가에 있는 마켓플레이스를 가로지르는 길. 골목 곳곳에서 향긋한 와인 향기가 번져온다. 

 

 

  

다운타운 곳곳에서 마주하는, 그야말로 그림같은 집들과 잘 가꿔진 정원. 그리고 새빨갛게 불타오르는 단풍.

 

오퍼스 원의 양조장이었던가, 나파밸리의 아름다운 길을 달리며 가이드 아저씨가 알려줬던 커다란 와이너리.

 

 

 

 

강릉, 묵었던 호텔의 주인 아주머니에게 별 생각없이 "맛있는 칼국수 근처에 없나요", 라 물었더니 냉큼 알려주신 곳. '해궁'이란

 

곳의 푸짐한 해물칼국수. 아무래도 바닷가라 그런지 온갖 해산물이 그득그득.

 

아침을 든든히 먹은 후에,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경포호 주변에서 드문드문 목격되는 네발 자전거를 따라 대여장소로 뙇.

 

핸들이 심플하고 단단하니 이쁘게 생겼다. 게다가 스티어링 휠이 작아서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회전감.

 

경포호 옆의 공터에 여기저기서 자전거와 네발자전거..사륜마차를 주차해 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분들이 보인다. 추위를 막을

 

비닐 차양이 씌워진 것도 있고 그냥 날로 벗겨진 것도 있고.

 

달리기 시작, 운전하는 재미도 생각보다 쏠쏠하지만, 경포호가 생각보다 큰 호수라는 걸 금방 깨닫게 된다.

 

호수 옆에 살짝 주차해 놓고 사륜마차 전신샷. 앞에만 비닐차양을 위로 걷어올리고 삼면을 두꺼운 비닐로 막았더니 그럭저럭.

 

그러고 허난설헌의 생가로 빠지는 샛길을 달려 버렸다. 원래 호수 둘레길은 다소 안정적인 평지였는데, 다리 하나를 넘어

 

경포호에서 백미터 정도만 떨어지면 바로 나타나는 게 허난설헌의 생가. 오르막내리막이 제법 힘들고 어렵지만 그래도,

 

보통 사륜마차는 절대 도달하지 않는 곳에 와 버렸다는 뿌듯함.

 

 

사륜차를 한쪽에 슬쩍 세워두고 설렁설렁 돌아보고. 이미 바람이 차갑고 입김이 하얗게 새어나오는 건 느껴지지 않을 만큼

 

몸이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고, 종아리는 살짝 기분좋을 만큼의 통증이 느껴지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다시 허난설헌 생가 뒷켠의 해송림 사이 오솔길을 내달리는 길. 아까 경포호에서 이쪽으로 올 때는 내리막이라서

 

엄청난 속도로 오솔길을 육박해왔는데, 다시 돌아가는 길은 (당연하게도) 오르막. 꽤나 헥헥거리며 페달을 밟았다.

 

 

샛길에서 다시 호숫가 둘레길, 공식적인 사륜차의 코스로 복귀하기 직전.

 

찬 바람이 씽씽 불어도 굳이 이 사륜차를 타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이 눈에 띄었다.

 

제 궤도에 올라 좀 편하게 달려볼까 하다가 문득 옆에서 눈에 띈 꼬불꼬불하고 좁다란, 한눈에 딱 보기에도 마구마구

 

도전정신을 불러일으키는 흥미진진해보이는 길. 물 위에 다리처럼 놓였는데 이리저리 배배 꼬였는 것도 재밌어 보이고.

 

그래서 다짜고짜 진입. 그렇게 또다시 사륜차는 옆길로 새 버리고. 생각만큼 길은 좁아서 사륜차 한대가 꽉 끼는 듯 했다.

 

그 와중에 뭐 재미난 게 있나 싶어 뒤를 따라온 다른 사륜차 한 대. 더구나 저건 6인승이어서 휠베이스가 더 길었는데,

 

덕분에 일정 이상의 꼬불꼬불한 코너를 만나면 전부 내려서 자전차를 들어올려야 했다. 연세 지긋하신 할머니를 모시고

 

여행을 오신 중년부부셨는데 어쩌자고 따라오셔서는.

 

그래도 중간에 차를 돌리고 이리저리 움직일만한 비교적 넓은 공간이 나와서, 슬쩍 주차해두고 요리조리 구경도 좀 하고.

 

호숫가 한 복판에 이런 나무데크의 다리가 고불고불 이어지는 데다가 그 길에 꽉 껴서 달리는 사륜차도 재미있었다.

 

다시 정상 경로로 복귀. 그러고 보니 길 중간중간에 조각상도 보이고, 허난설헌의 오라비인 허균의 소설 '홍길동전'의

 

장면들을 묘사한 조각들도 보인다.

 

목 좀 축이고 가라며 만들어둔 음수대의 모양이 재미있다. 입을 쩍 벌리고 선 개구리 두 마리.

 

한바퀴를 도는데 한시간이면 느긋하고 유유자적하게, 더러는 딴 길로 새가면서 달릴 수 있는 듯 하다.

 

타기 전에는 뭐 특별한 게 있겠어, 싶다가도 생각보다 경포호 주변으로 샐 만한 곳도 있는데다가 기본적으로

 

두 발로 페달을 저으며 몸을 움직이는 것 자체가 주는 쾌감이 진하다.

 

 

 

센트럴 파크, 59번가에서 110번가까지 이어지는 이 거대한 공원의 면적은 대략 서울 올림픽공원의 3.5배가 된다고 한다.

 

그 동남쪽 호숫가에 접해있는 보트하우스에서 먹은 아침식사 이야기.

 

 

아침 7시반, 무척 이른 시간이지만 자전거를 타거나 조깅하러 나온 사람들이 워낙 많았고 개를 데리고 산책나온 사람도

 

엄청 많이 보였다. 그리고 이 곳에서 아침을 먹고 가려 자리를 잡은 사람들이 드문드문.

 

 

 

참새들이 포르르 날아올라와 주인없는 테이블 위에서 빵조각을 찾아 부리로 콕콕 지르는 중이다.

 

복장을 제대로 차려입으신 이 아저씨는 자전거를 얌전히 주차시키고는 폰카메라로 사진을 찍느라 바쁘시고.

 

 

혹시 이곳에 대해 어디선가 본 듯 하다는 기시감을 느꼈다면, 그리고 '섹스 앤 더 시티'를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맞다.

 

캐리 브래드쇼가 미스터 빅하고 만나서 밥을 먹다가 호수에 빠지는 장면, 그게 바로 이 곳이다.

 

 

이렇게 보면 뭔가 기억이 더 생생하게 나려나, 저기 호숫가 저쯤에서 캐리가 빅하고 같이 허우적대던 장면이 떠올라야 하는데.

 

 

말 그대로 보트하우스, 보트를 빌려서 센트럴 파크 안에 누운 너른 호수를 돌아볼 수 있는 곳이다. 마침 한 커플이 운항 중.

 

 

 

아침부터 이름모를 꽃의 붉은 빛이 확 달아올랐다. 더운 하루가 될 것 같은 예감.

 

 

어느새 멀찌감치 밀어보내진 보트, 그리고 호수 주변으로 에둘러 모로 누운 빽빽한 보트들. 처음엔 뭔지도 못 알아봤다.

 

 

 

뉴욕의 브루클린과 맨하탄을 잇는 현수교, 브루클린 브리지의 브루클린 쪽 시작점이다.

 

맨하탄을 향해 앞으로 앞으로, 사람들이 오가는 길과 자전거가 오가는 길이 마치 차선처럼 분명히 그려져 있었는데

 

다리를 지나는 자전거들이 워낙 맹렬한 속도로 달리는 탓에 자연스레 차선을 신경쓰게 된다.

 

차들은 도보로 지날 수 있는 길 양쪽으로 쌩쌩 브루클린 브리지를 건너고. 건너에는 그라운드 제로에 새롭게

 

지어지는 WTC 건물 공사현장이 눈에 띈다.

 

그리고 맨하탄 브리지. 브루클린 브리지보다 북쪽에 위치한 현수교인데, 이 정도 거리를 두고 보니 외관이 한눈에 잡힌다.

 

 

다리를 넘어 맨하탄으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제법 길고, 걸음을 멈추게 하는 것들도 많다. 사진도 팔고, 그림도 팔고,

 

악기도 연주하는가 하면 온갖 뉴욕의 기념품들도 파는 사람들이 많다.

 

 

브루클린 브리지의 중간 지점. 아낌없이 건물마다 나부끼는 성조기들에 이미 질려있었지만, 이 다리에도 역시.

 

다리 위로 멀찍이 아마도 JFK 공항을 떠나거나 들어서고 있는 듯한 비행기 한 대가 보인다.

 

 

그리고 온통 주위를 칭칭 감아버리는 듯한 튼튼하고 두꺼운 밧줄들. 밧줄로 지탱되는 현수교인 브루클린 브리지는

 

애초 건설을 맡았던 사람과 그 뒤를 이은 아들이 각각 사고사로 유명을 달리하고 난 후 아들의 와이프, 그러니까

 

며느리가 뒤를 이어 완공시킨 다리라고 한다.

 

 

맨하탄 브리지 너머로 유난히 우뚝 솟아있는 건 바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그리고 브루클린 브리지 왼쪽으로 보이는 조그마한 섬은 스테이튼 아일랜드, 거기 손들고 선 건 자유의 여신상이다.

 

 

브루클린 브리지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새겨놓은 동판이 있고, 그 주변에서 사람들은 글자와 그림을 훑었다.

 

맨하탄의 다운타운, 월가와 9.11의 자취인 그라운드제로가 있는 곳이다.

 

그리고 미드타운,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보이고 그 주변으로는 코리아타운이 있을 텐데.

 

 

 

 

중간중간 벤치도 있어서 앉아서 쉬는 사람도 보이고, 맨하탄 방향과 브루클린 방향으로 자유로이 오가는 사람들 틈새를

 

문득 가로지르고 내달리는 자전거족들도 심심치 않게 보였고.

 

 

 

어쩌다 시작된 걸까, 다리의 곳곳에 걸쇠가 있는 곳이면 이렇게 주렁주렁 포도처럼 영근 자물쇠들의 향연.

 

누가 왔었다느니, 사랑한다느니, 아니면 그저 단순하게 이름만 적어놓고 가는 세계 각국의 사람들.

 

 

 

그리고 어느덧 다리는 맨하탄 위로 뻗어올라오기 시작, 웰컴 투 맨하탄~!의 표지가 보이고, 브루클린 브리지 중앙에서부터

 

양쪽 다리 끝까지 뻗어나간 굵고 튼튼한 밧줄들이 어느결엔가 속도를 잃고 툭툭 바닥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브루클린 브리지 도보 산책은 끝. 생각보다 길다면 길 수도 있고 오래 걸릴지도 모르겠지만, 브루클린쪽에서부터

 

걸어오며 점점 눈앞으로 육박해 들어오는 맨하탄의 존재감은 생각보다 커다랗다. 그저 하나의 스카이라인으로 존재했던

 

건물들이 하나씩 둘씩 무더기지어지며 다운타운과 미드타운을 만들고, 이내 건물 하나하나의 디테일까지 살아나는 풍경.

 

 

아, 다만 이 다리 위에 있는 한 NYPD가 CCTV로 감시하고 있다는 건 감안해야 할 일이다.

 

 

 

 

 

전날 14시간이나 비행기를 타고 온 탓일까. 인천에서 오전 10시 20분 비행기를 타고 이곳 뉴욕 JFK 공항에 오전 11시 20분에

 

내렸으니, 그날 하루는 내게 24시간이 아니라  37시간(10 1/3 + 14 + 12 2/3)이었던 셈이다. 온몸이 혼곤해진 채로 이곳 기준

 

새벽에 번뜩 눈뜨고 일어나서 숙소 옆의 센트럴파크로 아침산책을 나갔다. (사실 알람도 두개나 맞춰놨었다.)

 

센트럴파크 남쪽의 플라자호텔. 이제 이 호텔을 두고 '나홀로 집에'에 나왔던 그 호텔이야, 라고 이야기하는 건 일종의

 

세대를 식별할 수 있는 리트머스 질문같은 게 되어버린지도 모른다.

 

당당한 황동기마상 아래 누워서 잠들어 있는 배낭객들, 혹은 노숙자들이려나. 아직 이른 아침이니 밤새 저랬는지도 모른다.

 

센트럴 파크에 들어섰다. 플라자호텔의 뒷통수가 보인다.

 

그리고 어마어마하게 큰 센트럴파크의 동남쪽에 있는 동물원이 새벽잠에 뒤척거리는 틈새를 빠져나와.

 

 

 

이쁘장하게 아치 형태로 버티고 선 다리 밑을 지나.

 

녹색이 싱싱한 센트럴파크의 풀밭을 거닐거나 청소중인 사람들과 조우했다.

 

 

색색의 운동복을 입고 열심히 뛰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사람만큼이나 많이 보이던 산책 중인 개들.

 

 

오늘도 더우려나보다. 구름 틈새로 내리쬐인 햇살 하나가 불화살처럼 커다란 나무 하나를 하얗게 불살랐다.

 

 

그러고 보면, 맨하탄의 거리들은 말할 것도 없고 이곳 센트럴파크에서까지, 성조기가 참 흔하다. 나라사랑이 참 그득하셔들.

 

중간에 만난 놀이터. 아직 아이들이 노닐기 전이라 그런지 굵은 쇠사슬로 묶여있었다.

 

조깅하는 사람, 산책하는 개들만큼이나 많이 보이던 자전거타는 사람들. 심지어 길바닥에도 이렇게 누워서 페달을 밟는 중.

 

여우 꼬리처럼 엉덩이 양쪽으로 살랑살랑 흔들어대는 저것은 휴지가 아니라 수건. 아니 뭐, 그렇단 거지 별 뜻은 없다.

 

 

 

조금 걸었을 뿐인데 어느새 살짝 후끈해졌나보다. 연못과 분수를 보니 솟았던 땀이 쏘옥 들어가는 느낌.

 

 

그리고 어디선가부터 귀로 새어들어온 노랫소리, 누군가 앰프를 크게 틀고 노래를 듣나 했더니 아니다. 무려 생음악.

 

 

 

너무 즐거워 보인다. 이른 아침에, 드넓은 센트럴파크에, 이 노래를 듣고 여기까지 찾아온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만,

 

그리고 그들이 돈을 몇푼이나 저 기타 상자 안으로 넣어주겠냐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아침에 노래를 하는 모습이 행복해보인다.

 

 

 

커다란 열쇠구멍을 빠져나가듯, 그녀의 노래소리와 내 동전 몇푼에 행복한 웃음을 나눠주었던 그 온기를 꼭 쥐고 밖으로.

 

 

예상치 않게 내 시야 속으로 뛰쳐들어온 아저씨. 사실은 이 자전거에 치였을지도 모를 만큼 빠른 속도로 가까이 다가왔었다.

 

깜짝 놀라며 누른 셔터, 엉겁결에 담긴 사진에 늘어진 뱃살과 뻘겋게 달아오른 피부가 고스란히 담긴 아저씨.

 

 

 

센트럴 파크 동남쪽으로 들어가서 위로 좀 헤메이다가 남서쪽 입구쯤을 찾아 돌아나서는 길에 발견한 커다란 지침.

 

그리고 어린 아이들을 위한 유원지도 조그맣게 있었다. 자그맣고 싱거워보이는 놀이기구들이 조금조금씩.

 

센트럴파크 남단에 바싹 붙어선 거대한 고층빌딩들. 이 정도의 스카이라인을 따라잡을 만한 도시는 흔치 않다.

 

 

센트럴파크 내의 보트하우스에서 가볍게 아침까지 먹고서 다시 숙소로 가는 길, 대략 한시간 조금 넘게 돌아다니고

 

도심으로 돌아오니 그새 사람이 북적북적해졌다. 어디선가 자전거 대여해준다는 간판을 들고 선 아저씨들도 블럭마다 보이고.

 

 

 

 

 

축구 경기라고는 그나마 티비로 보던 게 전부였었건만, 이렇게 직접 경기장에 나가서 프로팀들의 경기를 보는 날이 오리라곤

 

전혀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도 혼자 광역버스를 타고 수원까지 내려가서 말이죠.

 

경기가 세시에 시작한다고 했는데, 아직 시간은 한시가 조금 지났을 뿐인데 벌써부터 경기장 주변의 공기는

 

잔뜩 들떠있었습니다. 축구공을 어깨에 척 걸친 꼬맹이가 씩씩하게 계단을 올라 경기장으로 향하네요.

 

뒷모습에 카메라를 들이대며 왠지 스스로 조금씩 들뜨기 시작하는 걸 느끼게 되었습니다. 기분좋은 전염인 거죠.

 

경기장에 도착하니 미리 대기하고 계시던 삼성 스마트카메라의 스포츠 출사 스탭분들이 점심부터 챙겨주시더군요.

 

도시락이라 좀 간소하긴 했지만 제법 뜨거운 태양 아래서 카메라를 들고 돌아다녀야 할 테니 든든하게 먹었습니다.

 

스포츠 출사에 참가한 분들을 위해 준비한 선물들, 그리고 대여를 위해 챙겨나오신 장비들.

 

 

무엇보다 저 파란색 조끼가 확 눈길을 잡아끌었습니다. 음..앞주머니도 많고 편리해보이긴 하는데..음..

 

티켓과 비표를 받고 3시 경기 전까지 자유시간이 주어졌으니, 카메라를 쥐고 나가 놀 시간~*

 

수원 월드컵경기장에 들어가기 전, 바깥은 온통 삼성의 최신 IT 디바이스들의 전시회장 같았습니다.

 

 

삼성의 스마트 모니터라거나, 스마트 티비, 스마트 카메라 등등 스마트한 삶을 챙겨준다는 제품들이 전시되어 있었고,

 

직접 체험도 해보고 시연을 해보는 부스들이 좌우로 정렬해서 경기장 한쪽 외벽을 따라 일백미터쯤.

 

갤럭시 노트의 모니터 사이즈라는 5.3인치를 맞추고 선물을 받겠다는 의지가 불타올라, 손끝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그리고 모니터를 노려보는 눈빛에는 강렬한 기대감이 한가득 담겨있었습니다.

 

아마도 형제겠죠? 수원삼성의 유니폼을 제대로 갖춰 입고선 동네 운동장에서 신나게 걷어차고 놀았을 꼬질꼬질한

 

축구공까지 척 안고 서있는 꼬맹이들의 눈빛도 덩달아 심각해집니다.

 

체험 버스 안으로 들어와 직접 갤럭시탭이니 갤럭시노트를 만져보는 아이들.

 

갤럭시노트의 화면을 마치 하얀 도화지인 양 세밀한 붓터치와 함께 색색의 빛깔을 칠해넣는 손길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캐리커쳐를 그려주는 곳도, 5.3이란 숫자를 맞추는 곳도 모두들 대성황, 어느 꼬맹이가 잠시 주차해둔 빨강

 

자전거가 온통 넘실대는 파랑색 물결 사이에서 유독 눈에 콕 박혀옵니다.

 

손의 움직임이나 목소리로 채널도 바꾸고 볼륨도 줄일 수 있는 스마트 티비를 시연해보이는 스탭분.

 

3D 기술도 갈수록 비약적으로 발전한다고 하지만, 그보다는 사실 날이 다르게 세련되어지는 3D 안경의 모양새에서

 

3D 기술의 발전 양상을 체감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가볍게 쥐고 사방으로 찍어대던 카메라와 같은 기종, NX20을 들고 수원삼성을 응원온 꼬마 손님들의 사진을

 

찍어주던 아저씨, 선수들과 함께 찍는다는 게 좋았는지 '찍고, 담고, 바로 보내는' NX20의 매력에 빠진 건지

 

손님들이 끊이지 않던 인기 부스중의 하나였죠.

 

외국인 친구를 데리고 축구 경기를 보러 온 모양입니다, 레플리카를 골라주고 직접 입혀주던 어느 수원삼성의 팬분.

 

진행 스탭이 챙겨주신 아이스 커피는 순식간에 뙤약볕에 노출된 몸뚱이 속으로 스며들어버리고는, 잘그락잘그락

 

얼음이 녹는 소리만 간간이 열띤 응원의 빈틈을 메꾸고 있었습니다.

 

 

제법 치열하게 공수를 주고 받던 양 팀은 어느 순간 한 골 씩을 주고 받더니, 후반이 끝나가도록 그라운드 곳곳에서

 

불꽃튀는 접전을 벌였습니다. 골 점유율로만 따지면 살짝 울산현대 쪽이 우세한 거 같아서 조바심이 나기도 했구요.

 

 

 

그 와중에 NX20의 버스트샷이니 1/8,000s의 셔터속도, 그리고 Full HD급 연속AF 동영상은 나무랄데없는

 

사진과 영상들을 남겨주었습니다. 동점골이 들어가는 순간을 마침 동영상으로 담을 수가 있었는데 한번 보시죠.

 

 

그리고, 후반 42분께 터진 천금같은 역전골 덕분에 수원삼성을 사랑하는 팬들의 응원과 열정, 그리고 뜨거운 사랑에

 

당당히 감사를 표할 수 있었습니다. 후회없다는 이 사랑, 앞으로도 계속 멋진 투혼으로 지켜가 주시길~*

 

그래야 아버지 허리춤에나 겨우 닿을 것 같은 저 꼬맹이가 쑥쑥 자라나고 언젠가 자신의 아이 손을 역시 저렇게 잡고서

 

경기장을 다시 찾아 뜨거운 함성을 외칠 거 아니겠습니까.

 

 

전혀 예기치 않았던 어느 초여름(혹은 늦봄)의 축구 경기 직관, 어쩌면 곧 다시 한번, 이번에는 백퍼센트 온전히

 

나 자신의 의지로 경기장을 찾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드는 순간이었습니다.

 

 

 

안양에 있는 학의천, 아직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랏돈으로 건물 올리고 콘크리트 붓는 게 최고라고 생각하던 시절

 

안양시청에서 하천을 정비하고 생태를 복원하겠다고 했을 때 반대하는 사람도 많았다고 한다.

 

그래도 다른 지자체나 일반인들이 자연 하천과 주변 지역의 중요성과 소중함을 알기 전 미리미리 자연을 지켜낸 결과

 

학의천은 한국의 아름다운 하천이자 아름다운 산책길을 가진 곳으로 인정을 받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한강으로 이어지는 하천들, 그 좌우로는 녹색지대가 넓게 펼쳐져 있고 하천을 따라 이어진 길들엔 세월이 흐른다.

 

 

그렇게 관내 주민들의 반발과 냉소에도 불구하고 일찍이 정비를 마친 학의천, 그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노랑 꽃을 바닥에서 올려다보니 마치 몇 마리 노랑나비가 사방으로 날아가는 듯한 자태.

 

내친 김에 클로버꽃의 시각도 빌려봤다. 꽃들이 올려다보는 하늘은 이렇겠구나.

 

 

 

이름은 몰라도 꽃의 형상과 색과 질감이 남는다. 사람이나 꽃이나, 중요한 건 이름보다 그런 것들일지도.

 

 

 

학의천에 배를 깔고 물결을 일으키며 유영중인 오리들.

 

 

 

건너편으로 이어지는 돌다리, 저쪽 끝에서부터 건너오는 아저씨 하나가 기우뚱. 덩달아 카메라도 기우뚱.

 

다리 위에서 학의천을 내려다보며 슬슬 자전거를 몰고 가시는 아저씨도 한분. 그 아저씨를 내려다보는 아파트도 하나.

 

 

나무벤치에 박힌 못처럼 연둣빛 새순이 박혔다.

 

 

 

곳곳에서 야생화들, 들꽃들이 피어나고 있었다. 이미 대낮의 햇살은 여린 꽃잎이 버티기엔 살벌해져 버린 듯 하다.

 

황톳빛 흙길바닥으로 둥그렇고 탐스런 그림자를 드리운 버드나무 두어 그루.

 

 

어느 다리 아래엔 아이들의 장난질이 심술궂다. 즐, 이라니.

 

 

 

 

하천에는 버들치니 참게도 살 정도로 물이 아주 맑다고 하더니, 산란기에 접어들었다는 잉어들이 서로의 몸을

 

비비적대며 열중하고 있었다. 찰박이며 일어나는 잔물결들, 그리고 물결 위로 얹혀지는 햇살부스러기들.

 

 

 

다리 아래로만 들어서면 시원한 바람이 온몸을 훑고 지났다. 어느새 나무 그늘을 찾고 시원한 바람을 찾는 날씨가 되었다.

 

 

 

아이폰 사진폴더에 지저분한 사진들을 정리하다가 몇 장 선별해서 올렸던 포스팅들에 이어.

 

 

잡다구레한 사진들이지만 나름 하루하루 일상을 짚어나가고 있어서 재미있는 듯.

 

어느 고등학교였더라, 무슨 자격증 시험감독으로 나갔을 때 교실 형광등스위치에서 발견한 낙서. 딱 남고 수준.

 

또다른 학교의 또다른 자격증 시험감독이었던가, 고루하게 나가던 교훈에 급 '훈훈한 우리'라니. 훈훈한 교훈.

 

추석 때, 초등학교 다니는 조카가 가져왔던 문제집 푸는 걸 도와주다 만난 문제. 담배피는 그림이라고 했었다, 이녀석.

 

무역의 날 행사, 이제 그만 좀 보고 싶은 그 사람.

 

뭔가 기분이 아주 더러웠던 날, 어느 술집에 장식되어 있던 성생활 교과서.

 

이런 기사는 기억해둘만하지 않을까, 싶어서 제목만 덜렁 뜬 연합의 속보를 캡쳐.

 

매달 나가진 못하지만, 영유아 보호센터에서의 봉사활동. 색색의 형광펜이 그참. 

 

유난히도 길고 추웠던 이번 겨울, 동면에 들어간 오토바이는 그래도 이삼일에 한번씩 시동을 걸어줬었다.

 

뭔가 삶에 흔들림없는 '영구 지침'이 생긴 건 아닐까, 설레던 맘 가득하던 그 때.

 

강릉 경포 앞바다를 보겠다고 무작정 떠났던 그 겨울, 그 바다. 그리고 만화책 한 컷.

 

 

오물렛? 오믈렛 아니고? 오물오물 오물렛.

 

선유도 공원의 어느 벤치에 누워서 누군가에게 하늘을 보여주고 싶다 생각했었다.

 

겨울, 봄, 그리고 여름이 곧 올테고 그러고 나면 가을. 사계절이 한번 도는 셈이다.

 

부모님이 최초의 커플폰이자 스마트폰으로 프라다폰을 들여놓으셨던 날.

 

속초의 갯배를 타러 걷다가 발견했던, 암수 서로 정다운 저 복어 두마리.

 

유난히 과시성 국제행사가 많던 시절, 핵안보정상회의 때 받아들었던 비표.

 

어느 금요일 오후, 겨울비가 주룩대며 낙하하던 비사이로 막 내달리며 7시간짜리 마라톤 워크샵을 하러 가던 날.

 

새롭게 시작하는, 이전부터 생각은 있었던 그림 그리기. 팔레트에 물감을 짤 때의 느낌이란.

 

서울과 울산을 당일로 주파하는 코스란 생각보다 녹록치는 않았지만.

 

만수무강을 위해 오토바이를 팔고 나니 자전거를 사야 하나, 볕좋고 바람좋은 날씨에 싱숭생숭.

 

일단은 걷고 있다. 족저근만염을 막기 위해 출퇴근은 정장에 트레킹화로 대체.

 

다시 찾았던 강릉.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흰색과 검은색의 모노톤으로 채색은 끝.

 

문득 시선을 잡아당겼던 작품 하나를 다짜고짜 폰카로 찍어서 저장.

 

올해 건강검진은, 사람을 물총새로 변신시키는 대장내시경을 처음으로 포함시켜보았다.

 

그야말로 5월의 햇살. 눈 깜짝하니 벚꽃이 사그라들었고 뜨거운 햇살이 촘촘해졌다지만.

 

온통 산산조각이 난 푸우를 겨우겨우 맞춰놓았지만, 배은망덕한 녀석은 오른손에 총을 쥐었다.

 

한강둔치를 따라 걸으며 바라본 성산대교의 야경. '행복'이란 추상어의 구체적 현현.

 

지하철 플랫폼에 적힌 시들이 다 좋은 건 아니지만, 그때의 기분과 상황에 따라 딱 와닿는 때가 있다.

 

 

 

 

속초의 갯배. 온전히 사람의 팔힘으로, 아니 온몸의 힘을 실어 잡아당기는 쇠줄을 따라 꾸역꾸역 움직이는 사각형 배.

속초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청초호를 끼고 갯배선착장까지 걷는 길. 호수라고는 하지만 속초항 앞을 지나 바다로

나갈 수 있어서인지 가장자리를 따라 고깃배들이 일렬주차중.

서울역 광장에서 종종걸음치며 날개를 퇴화시키는데 힘쓰는 비둘기떼들마냥, 속초에선 갈매기들이 그런다.

청호대교 위를 따라 완만한 오르막길을 오르는 길. 빗발이 듬성듬성 내리는, 그렇다고 우산쓰기는 애매한 날씨.

대교의 고갯마루쯤에 오르면 바깥으로 툭툭 튀어나온 전망대 비스무레한 곳이 있다. 고개를 슬쩍 빼면 저만치 갯배가 떠다닌다.


다리 아래 아스팔트 바닥에서 생선 대가리를 토막치는 분도 보이고, 바싹 뭍에 붙여놓은 조각배도 보이고.

가까이 다가갈수록 점점 크게 보이는 갯배. 배라기엔 참 투박하고 모양새가 없어서, 그냥 커다란 네모 부표라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천천히 산책하는 속도랄까, 그래도 한걸음씩 단단히 힘주어 밟아가듯 확실히 전방진행중인 갯배들.


다리 아래, 생각지도 못한 곳에 이런 화사한 그림이 숨어있었다. 하트가 샤방샤방하게 날리는 복어커플.

이런 플래카드는 좀 없어도 좋을 거 같은데. 하긴 이런 방송의 힘이 없었다면 찾아오기도 쉽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이용요금은 성인 200원, 아이 200원, 자전거 200원, 손수레 200원. 갈 때 200원, 올 때 200원.


자전거 두 대가 왜 저렇게 묶여있나 했더니, 가을동화에서 그들이 탔던 자전거라고 한다. 그보다 더 흥미롭고 시선을

잡아당겼던 건 저 오징어 모양의 장승. 속초 시내 곳곳에 세워두면 나름 명물이 될 거 같은데.

갯배로 건너가는 구간은 굉장히 짧아서, 설설 걸어가는 속도의 갯배라곤 하지만 채 2-3분도 안 걸리는 거 같다.

그래도 이렇게 갈매기가 마구 날아다니는 엄연한 바다 위를 저렇게 간단한 뱃조각에 기대어, 아저씨가 끌어주는

쇠줄에만 의지해서 건넌다는 건 꽤나 독특한 체험이다. 속초의 이곳, 갯배선착장을 지나면서야 경험해볼 수 있는.

뱃손님이 다 내릴 때까지 저렇게 쇠줄을 바투 땡겨잡고는 배가 흔들리거나 풀려나지 않도록 고정하고 계신 아저씨.

 

속초시내에서 걸어다님직한 거리 내에 있는 볼거리들. 야트막한 스카이라인, 허름하고 한산한 거리는 걷기 좋은 듯.






시체를 가방에 담았다. 삐져나온 팔다리를 우겨넣느라 자크가 조금 터졌지만, 조금만 버티면 되니까. 근데 이 크다란

고깃덩이를 싣고 달리기엔 오토바이가 넘 작다.


어쩔 수 없이. 안 돼, 사람 불러야 돼, 그치?

금속생명체의 별에서 온 그 곳덩이가 철컹철컹 관절끼리 합을 맞추더니 두 바퀴를 펴서 임차인에게 건네졌다.

한계절 잘 타고 다니다가 창고에 박혔던 내 스트라이다 짭.


그러고 보면 내 '탈것'의 진화라고 해도 될 만한 사진이다. 검정색 삼각 스트라이다(짭)에서 검정색 줌머 스쿠터로.

다음에 탈 것은 뭐가 되려나. 이 추세라면 검정색, 뭔가 스타일있는, 바퀴는 두개..?




어느 야트막한 담장을 따라 이파리를 늘어뜨린 채 해바라기 중이던 초록빛깔 덩굴식물. 삼지천 마을,

혹은 삼지내 마을에서 느껴지는 여유로움이나 차분함이란 건 저런 덩굴이 꼬물대며 이파리를 밀치는 소리와

움직임이 보일 거 같은 그런 정도의 질감을 갖고 있었다.

A탐방로니 B탐방로니 일견 복잡해 보이는 코스들이 있었지만 그렇게 어려울 거 없다. 그저 발길 닿는 대로,

눈길 닿고 마음 동하는 대로 걷다보면 어느새 동네 한 바퀴를 도는 거다. 미처 못 가본 샛길의 풍경이 못내

궁금하다거나 아쉽다거나 하면 그저 또다시 휘적휘적 걸어가면 될 일. 그런 게 '슬로우시티'의 호흡이 아닐까.

이리저리 휘휘 감기며 이어지는 돌담길이 끊긴다 싶은 곳엔 반쯤 열린 나무대문이 버티고 섰다. 안 그래도

나뭇살이 조금씩 휘어지고 뒤틀려 안의 풍경이 속살처럼 드러나고 있었는데, 대청마루가 시원해 보인다.

마을 곳곳에 빈 벽면에 그려져 있던 벽화들. 이 곳에서 민박을 하는 집들이 꾸며 놓은 거기도 하겠지만

딱히 광고나 영리 목적의 홍보가 아니라 마을을 치장하고 소개하는데 더 마음을 쓴 거 같다.

 

한눈에 확 매료되고 만 전통 가옥 한 채가 있었다. 지붕에 촘촘이 얹은 기와 한장한장이 비바람에 씻기고

세월에 퇴락해선 저마다 다른 얼룩과 상처를 갖고 있었지만, 그 제각기의 표정과 분위기를 가진 기와들이

삐뚤빼뚤하는 듯하면서도 제법 정연하게 늘어서서 풍겨내는 그 느낌이란 건 참. 틈새 하나 벌어지지 않고

기왓장 한장한장 반짝거리며 단정한 검은색을 뽐내는 새로 올린 기와지붕에선 절대 느낄 수 없는, 그런

사람 냄새 나는 흐트러짐과 깨어짐. 얼마나 된 건지 모르겠지만 저 기와지붕은 표정이 있었다.

 

좀처럼 돌아나오기 아쉬웠던 가옥. 아마 집 주인이신 듯한 분께선 왜 이 쪽만 계속 사진을 찍냐고, 새로

기와를 올린 다른 쪽도 좀 보고 그러냐고 하시며, 며칠 전에 다녀간 건축학과 학생들도 이 건물만 죽어라

사진을 찍어대더라며 은근히 뿌듯해 하셨다. 그 건축학도들이 봤던 건 뭘까. 내가 본 건, 건물의 표정.

나팔꽃을 푸짐하게도 얹고 있던 돌담에 자전거 두대의 무게까지 얹혔다. '슬로우시티'라는 인증마크 없이도,

나른하게 페달을 밟으며 자전거를 타는 게 딱 어울리는 풍경이다.

그렇다고 사람이 살지 못할, 박물관이나 민속촌 같은 느낌도 절대 아니었다. 품위있게 올라간 기와지붕이나

재래의 냄새 가득한 초가지붕만 있던 게 아니라 잔뜩 삭아버린 슬레이트 지붕도 한쪽에서 단단히 버티고 있고,

지금도 이곳에선 사람들이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흔적과 냄새가 여기저기서 남아있었다. 그 흔들림없는

증거로 이렇게, 사람들이 더께를 밀어내고 씻어내는 목욕탕에서 여전히 뜨거운 김이 펄펄 오르고 있던 거다.

마을의 구석구석 풍경들. 어느 골목에선가 뜬금없이 조우한 저 석상은, 원래 커다란 무덤을 지키는 문신상

무신상 뭐 이런 거 아닌가. 덜렁 혼자 남아서 파란 하늘을 이고 있었다.

 

기왓장 위의 고양이, 시멘트담벼락을 거칠하게 기어오른 나팔꽃, 멀찍이 보이는 (여기도 예외없는) 교회

첨탑만큼이나 뾰족뾰족하게 선 녹슨 철문.

자전거를 무료로 빌려주기도 한다는데, 걷는 것도 좋지만 자전거로 슬슬 다니는 것도 좋을 거 같다. 동네를

한바퀴 돌아본 사이 목욕탕 남탕 문이 열렸다. 돌담길 옆 나무가 Y자 모양으로 가지를 벌렸다.

 

누렇게 녹슨 형광등 갓이라거나, 문짝을 걷어올려 걸어둘 수 있는 새모양 등자, 나뭇결이 그대로 살아있는

기둥이며 마룻바닥이라거나. 게다가 담쟁이덩굴이 온통 건물 벽을 따라 기어올라 처마까지 매달린 이런 집,

한번 살아보고 싶은 맘이 물씬 드는 곳이었다.

야트막한 담장 너머로 빨갛게 익어가는 석류, 그리고 마당 앞 귀퉁이에서 피어있는 별모양의 이름모를 꽃,

그리고 고랭지배추 꼬갱이같이 찌글찌글 얄포름한 호박꽃잎하며, 의외의 곳에서 만나는 의외로 어울리는

영단어들, LETTERS.

다음에 이곳에 오게 되면 꼭 한옥 민박을 해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시골 할아버지댁같은 느낌이면서도

아기자기한 풍경이라거나 둥글둥글하게 깍이고 다듬어진 사물의 모서리들이 넘 좋은 거다. 게다가

활짝 열린 문이 겸연쩍었던 듯 얼기설기 낡은 의자로 바리케이드를 치는 둥 마는 둥 해둔 저런 제스쳐까지.

눈길 함부로 밟지 말라고 했던가, 갓 부어놓은 시멘트길도 역시 함부로 밟아서는 안 되겠단 걸 보여주는 사진.

저 멀리 마을 입구까지 이어지는 저벅대는 발걸음이 여러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할머니였을까, 무슨 급한

일이 있던 건 아닐까, 손주 녀석이 소식도 없이 내려온 건가.

아직은 신선한 노랑빛이 반짝거리는 논, 좀더 햇살을 먹고 가을바람에 다독여지면 한층 가라앉아 무겁고도

차분한 누런 빛깔을 띄게 될 거다. 논두렁길을 따라 걸어 나오며, 비로소 삼지천마을의 마법같은 시간의

흐름에서 차츰 벗어나는 걸 느꼈다. 조금씩 빨라지는 초침 소리.




 

담양의 대표적인 여행지, 메타쉐콰이어 가로수길과 관방제림을 자전거로 달렸다. 죽녹원 앞에서 자전거를

즐비하게 열맞춰 세워둔 많은 대여점 중에서 하나를 골라 반짝거리는 자전거에 올라탔다. 한시간에 삼천원.

아저씨가 메타쉐콰이어 가로수길과 관방제림이 어디 있는지, 어떻게 가면 되는지를 자세히 알려주기도

했지만, 앞서거니 뒷서거니 자전거들이 불나방처럼 달려드는 방향만 따라가도 되겠다 싶어서 큰 걱정없이

여유롭게 페달을 밟았다. 차가 거의 지나지 않는 단단한 아스팔트길이 매끄럽게 뒤로 물러선다.

굴다리 앞에서 우회전해서 큰길에서 좌회전하랬던가, 아저씨의 말을 곱씹기도 전에 저만치서 장대한 나무들이

늘어선 모습이 보인다. 모처럼만에 타보는 자전거가 꽤나 즐거운 와중이었는지라 고작 십여분밖에 안 되는

짧은 거리가 아쉽기도 했지만, 일단 가로수길 입구에 정차. 가로수길 아래로는 자전거 통행금지란다.

여기저기 사진을 찍는 사람들로 시장통처럼 북적였다. 나무 둥치마다 하나씩 차지하고 온갖 포즈를 잡아대는

앳된 커플들도 보였고, 삼각대를 쓰거나 서로의 카메라를 돌려가며 사진을 부탁하는 중후한 부부도 보였고.


그리고 메타쉐콰이어 가로수길은 생각보다 짧아서 아쉬웠다. 춘천 남이섬에 있는 메타쉐콰이어 가로수길과

비슷한 길이였던 거 같긴 한데, 옆으로 계속 차들이 다니고 있어서 그런지 호젓한 분위기가 모자란 만큼

가로수길의 길이도 모자라게 느껴진 듯 하다. 돌아나오려는 길에, 문득 마법처럼 사람들이 쏴아 빠져나가고

흙바닥이 고스란히 드러났던 순간. 아이를 업고 걸리며 앞서 가는 가족들의 뒷모습이 여유롭다.


돌아나오려는데, 가로수길 옆으로 차들이 미어진다. 차를 가져와 잠시 멈췄다 갔더라면 좀더 아쉽지

않았을까. 여행에 걸맞는 속도란 게 따로 있는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여행지에 점찍듯 찍고 뜨기엔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지나는 풍경들이라거나 바람을 맞는 게 넘 좋았던 거다.


관방제림은 메타쉐콰이어 가로수길 바로 맞은 편에서부터 시작됐다. 조선 인조 때 만들어진 관방제림은,

홍수 피해를 막기 위해 쌓아올린 제방을 오래 보존하기 위해 조성한 숲이라고 한다. 과거에는 약 700여그루의

나무가 있었지만 현재는 300여그루가 남아있다고 하는데, 나름 물을 다스리는 치수의 방책으로 효과가 계속

되었기에 오랜 세월 관리되고 보존되어 온 게 아닐까. 수백년의 시간동안 검증된 치수책인 셈이다.

관방제림, 방둑처럼 불뚝 튀어나온 길을 따라 달리는 길. 옆에서는 무르익어가는 벼들이 누런 물결을 일렁이고

있었고, 오른켠에는 장승들이 띄엄띄엄 꽂힌 채 하얀 이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리 넓지도 않고 좁지도 않은 흙길을 자전거로 달리는 느낌이 참 좋았다. 메타쉐콰이어 길과는 달리 사람도

많지 않아서 여유롭게 자전거 페달을 밟을 수 있었다. 아마도 그 가로수길은 차에서 내려 얼른 보고 갈 수

있다는 특징 때문에 사람들의 접근이 훨씬 쉬웠다면, 여기는 나름 걸어들어와야 하는 곳이라 호젓함이 보전된 듯.


길은 꾸준히 길고 곧게 이어졌고, 드문드문 앉아 쉴만한 벤치나 정자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방문객들이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지 앉아 쉬는 사람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그리고 길 옆으로 따라 흐르는 개천, 층층이 다듬어진 개천에서 하얗고 뿌연 속살을 드러내는 개울물 틈새를

긴 부리로 비집으며 먹이를 찾고 있는 하얗고 길다란 새 한마리가 우아하게 날개를 퍼덕였다.

자전거에 좀 익숙해지고 나니 이제 자전거는 한 손으로 운전하며 다른 한 손으로 되는대로 사진을 찍어대기에

이르렀다. 용케도 수평이 잡힌 사진들. 담양 시내에 가까워진 듯 애드벌룬도 떠있고 뭔가 복작복작한 소리가

들리는 곳까지 이르러서야 관방제림이 어느결에 끝났다는 걸 감지하고 뒤로 돌아 나가기로 했다.


관방제림에 서 있던 커다란 나무들 중에서도 아마 이 나무가 가장 컸던 거 같다. 머리를 풀어헤친 듯 사방으로

뻗어올라간 꼿꼿한 가지들의 기운이라거나 왠만한 어른들이 수십명은 모여야 겨우 그 두께만해지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거대한 나무둥치, 이런 나무를 보면 어쩔 수 없이 경외감을 느끼게 된다. 저렇게 자라는 동안

쉬지 않고 게으름도 피우지 않고 제 몸속에 꼬깃꼬깃 나이테를 채워넣었을 거다.

째째하게 모래사장이나 훑고 마는 파도가 아니라, 말하자면 제법 사이즈가 되는 바위섬쯤을 기어이 갈아내어 형체도

없이 지워버리겠다는 무게감과 여유로움마저 느껴지는 그런 파도소리가 누렇게 익은 논에서 일렁이고 있었다.


거의 다 돌아나와서 관방제림 초입쯤 도착했을 때, 아까 띄엄띄엄 놓인 채 정면을 노려보고 있던 장승들이 이번에는

슬쩍 고개를 외로 꼰 채 다닥다닥 붙어있던 즈음에, 미처 못 보고 지나쳤던 얼굴이 사라진 장승이 눈에 들어왔다.

아들이랑 둘이 사이좋게 얼굴을 하나씩 넣어서 사진을 찍고 있는 가족의 오붓한 모습.

자전거를 반납하러 가는 길, 건물 옆으로 늘어진 전선을 따라 하늘을 가리는 두텁한 커튼처럼 덩굴식물이

주렁주렁 매달렸다. 저 정도로 무성하게 자라났으면 꽤나 묵직할 거 같은데 전선이 끊기지 않으려나 싶던.

자전거를 반납하고 죽녹원 옆에 있는 전남도립대학을 걷다가 문득 발견한, 시멘트 옹벽에 붙어있는 피어싱들.

하나도 아니고 저렇게 여러개가 길을 걷는데 쭉 늘어서 있어서 재미있어 보여서 사진 한장.


중화인민공화국을 세운, '대장정'의 영웅 마오쩌둥이다. 어디선가 많이 본 중년의 마오쩌둥 사진. 그런데 뭔가

다르다. 귀에 삽을 박고 다니는 사람도 있지만, 이이는 이어폰을 귀에 걸었다. MP3로 노래라도 듣고 있는 걸까.

그들의 국부라 할 수 있고, 중국공산당의 아버지라 할 만한 사람의 귀에 이어폰을 꼽아주다니, 어쩌면 중국은

이제 한국보다도 정치적으로 유연하고 관용적인 사회가 되어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상해의 '신천지(新天地)', 삼청동 쯤을 연상케 하는 그럴듯한 까페와 갤러리들이 모인 곳의 어느 가게에서 무심코

카메라를 꺼내들게 만들었던 그림 한장. (사실 그런 갤러리에선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기 마련이다.)

상해의 조계 지역이었을까. 굉장히 고풍스러우면서도 이국적인 분위기의 벽돌건물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사람들이 사방에서 자리를 잡고 차를 마시거나 이야기를 나누거나 그저 햇볕을 즐기는 듯이 보였다. 어떻게 보면

중국의 느낌이 아니라 파리 샹젤리제 거리같은, 그런 여유롭고 유럽스러운 분위기의 공간이다.

왠지 커피빈은 외국에서 만나면 반갑다. 아놔.

바닥의 포석들도 나름 신경써서 깔아둔 듯 하다. 최소한 아무런 미감이나 주변과의 조화를 고려치 않고 그저

아무데나 막 깔아버리는 '범용' 포석은 아닌 거 같단 이야기. 포석이 이쁜 길은 걷기에도 즐겁다.

그다지 높지 않은 건물들이 요리조리 방사형으로 퍼진 골목길 따라 늘어서 있었다. 1층엔 까페, 2층엔 갤러리,

뭐 그런 식으로 공간을 겸하고 있는 샵들도 보였고, 저렇게 생긴 테라스들이 이층마다 툭툭 턱처럼 나왔었다.

아직 뜨겁다기보다는 따땃해서 기분좋은 햇살을 걸러주는 연두빛 투명한 여린 잎사귀들.

그리고 빨간 완장이 우스꽝스럽던 토실토실한 아저씨는 바싹 마른 소같은 자전거를 타고 소처럼 느릿느릿

햇살 속을 유영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유연한 그의 페달질에 놀랬고, 붉은 완장이 생각보다 그럴듯해 또 놀랬다.




충청북도 청원군에 위치한 청남대는 대통령 전용 별장이다. 대통령이 국무를 보다가 내려와 쉴 수 있는 공간,

그 정도 되려면 주위 경관이니 입지 조건도 특별해야 할 테고 옛날옛적 어느 스님의 예언 같은 것들도 구비구비

서려 있어야 하는 거다. 청남대 역시, "왕이 머물 곳"이라는 예언이 일찍이 있었다고 한다.

사실 이 곳은 더이상 대통령을 위한 곳은 아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3년 충청북도에 소유권을 이양한 후

'일반인'에게 개방되었으니, 누구든 입장권을 사면 들어올 수 있는 문턱낮은 곳이 되었다.

최외곽으로 돌면 반나절은 산책할 법한 규모의 청남대 내부에 올 초 새로 '대통령 광장'이 생겼다고 했다.

그곳으로 가는 길, 왼쪽에 과거 골프장으로 쓰이던 풀밭을 끼고선 전직 대통령들을 만날 수 있었다. 전두환과

노태우, 김영삼을 못 본 척 지나고 나니, 벤치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마주쳤다.

이 분, 작년에 그렇게 가신 것도 모자라 요샌 묘소에 도깨비불이 횡행한다고 했다. 그런 번다한 세사 따위

모르겠다는 듯 초연히 앉아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이 단단해 보였다. 그는 민주화 투쟁 시절 감옥에서 공부를

많이 할 수 있어서, 책을 많이 읽을 수 있어서 좋다고 했었다. 만델라도 그랬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골프장 잔디밭을 일부 밟은 채 국산 자전거에 올라앉아 손을 흔들어 주는 노무현 전 대통령.

그의 환한 웃음을 마주했다. 자전거를 타고, 밀짚모자를 쓰고, 그런 모습들이 워낙 친숙했던 그인지라 이런

동상이 서 있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뭐랄까, 일종의 아바타-화신-인 거다. '노무현'에 대해 갖고 있는 사람들의

이미지들을 똘똘 뭉쳐 놓으면 저런 게 나올 게다. '김대중' 역시 마찬가지.

작년 5월쯤, 그의 갑작스런 서거가 몰고 온 파급력은 정말 대단했다. 마치 온나라 국민들이 이제야 그의 진가를

알았다는 듯, 지켜주겠다고, 지키겠다고 울음지었었다. 아직도 모르겠다. 인간 노무현이 아닌 대통령 노무현에

발견할 수 있는 가치는 무엇일까. 좀더 많은 이야기가 오가고, 그의 정책과 비전에 대한 쿨한 평가가 진행되야

하겠지만, 당장은 그렇다. 인간 노무현의 저런 소탈한 웃음은 굉장히 좋았었다.

실개천같던 산책로를 따르다가 어느 순간 대통령 광장으로 탁 트여나왔다. 미래의 대통령 동상이 놓일 자리를

마련해 두었고, 그 뒤로는 역대 대통령 동상들이 쭉 늘어서 있었다. 저 '미래의 대통령' 자리에서 어떤 꼬맹이는

자신이 대통령이 된다면 집을 넓히고 싶다 했고, 어떤 아주머니는 부정부패를 저지른 사람은 설사 남편이라

할지라도 엄벌에 처하겠노라 공약했다고 했다. 유치할 수도, 혹은 순박할 수도 있는 공약들이지만, 단상 뒤로

쭉 섰는 대통령들을 보자니 그런 '단순함' 혹은 '순박함'이 더 크게 다가온다.

우리나라는 그다지 자랑스러운 대통령을 갖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노벨 평화상을 받았을 때는 조금 뿌듯했다. 그런 대통령의 단상 위에는 꼬맹이들이 그와 눈높이를 맞춰

기념사진을 찍고 싶었던 듯, 흙발자국이 어지럽다. 다른 대통령들의 단상은 상대적으로 말끔한 편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역시, 여기서도 웃고 있다. 증명사진 찍듯 경직된 자세와 표정을 고수하던 이전 대통령들과

달리 생생한 표정, 생생한 제스쳐다. 그런 모습은 그의 전임 대통령이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도 상대적으로 갖지

못했던 '젊은 모습'이었고, '비권위주의적인 모습'이었던 거다. 그게 연출되거나 의도된 이미지 메이킹이었다고

해도, 이제 그는 '권위주의와 거리가 멀었던 대통령-인간'의 대명사로 남게 된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청남대의 풍수지리적 예언-"왕이 머물 곳"이라던-을 들먹거리는 건 사실 굉장히 시대착오적인

코미디다. 대통령은 왕이 아니다. 근엄함과 신성성, '가오'를 일용할 양식으로 삼는 '하늘의 아들'이 아니란

이야기다. 청남대는 왕이 머문 곳이 아니라, 인간들이 스스로와 별반 다를 바 없는 인간 하나를 대표로 내세워

국가대표 공무원을 시켰던, 그 '사람'이 일하다가 와서 쉬던 곳일 뿐이다.

그가 들어올린 손이 앞선 대통령들을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밀쳐내는 듯 하다. 그의 모습이 다른 전임 대통령에

비해 훨씬 커보이는 듯 하다. 가까운 건 커보이고 먼 건 작아보이는 원근법의 효과다. 그뿐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돌아나오는 길, 이번엔 그의 뒷모습을 만났다. 느낌이 달랐다. 아까는 산책로에 들어서는 사람들을 환대하고

맞이하러 나오는 느낌이었다면, 이번엔 뭔가 뒤도 안 돌아본 채 휑하니 사라지려는 듯한 분위기랄까. 그의

등짝을 바라보는데 살짝 울컥했다. 생전의 그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나였음에도.

다행히도, 그의 그런 쓸쓸하고 비감한 뒷모습 옆에는 거의 쉴틈없이 사람들이 함께 서 주었다. 전두환과

노태우와 김영삼, 그리고 김대중을 구경하고 지나친 사람들은 저 사진찍기 좋은 동상 옆에서 줄을 서서

사진을 찍으려 기다리고 있었다. 생전에 그리도 만만한 대통령이었던 그는 지금도 청남대에서 딱 그만큼

만만한 전 대통령으로 기억되고 있는 듯 했다.

청남대, 이 곳은 일반에 개방된 이후부터 적자 행렬을 이어나가고 있다고 한다. 관리해야 할 시설물과 규모를

생각하면 꽤나 많은 사람들이 다녀가야 겨우 적자를 면하지 않을까 싶다. 그곳에는 벤치에 앉아 책을 읽고있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자전거를 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있다. (그리고 거슬러 올라가건대 김영삼, 노태우, 전두환,

박정희, 최규하, 윤보선, 이승만 대통령이 있다. 입맛대로 골라갈 일이다.)




앙코르 유적군 쁘레룹(Pre Rup)에서 바라본 캄보디아의 석양 무렵. 천지창조화에 그려진 뭉게뭉게 구름들이

그림만은 아니었구나 싶을 정도로 아름다웠던 하늘.

해가 완전히 지고 나면 가로등 하나 없는 깜깜한 길을 자전거로 한시간 넘게 달려야 한다는 사실 앞에서, 어쩔

도리없이 서둘러 일어서야 했다. 자전거로 앙코르 유적지를 돌아보는 건 굉장히 매력적이지만 이런 단점이

있는 셈이다. 체력적으로도 그렇게 쉽지는 않고.


...어둠은 순식간에 찾아왔다. '나는 전설이다'에서 윌 스미스가 지는 해와 경쟁했듯, 그렇게 정신없이 페달을

밟아 최대한 달렸고, 일단 어두워지고 난 이후에는 길가로 바싹 붙어 조심조심 안전운행에 신경썼다. 사실

차들이 그렇게 많지도 않고 쌩쌩 달리지도 않는 터라, 달릴 만 했다. 현지 캄보디아인들의 주요 교통수단 역시

뚝뚝이라는 3륜으로 개조된 오토바이나 자전거라고 하는데, 아마도 퇴근하는 듯한 자전거 탄 사람들의 인파

속에 섞여드는 것도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씨엠립 시내는 자그마한 마을 같은 느낌이지만,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바글대는 활기넘치는 곳이다. 마치

배낭여행자들의 성지라 칭해지는 태국의 카오산 거리 같은 분위기이기도 하고.

2층의 한 레스토랑에 올라 저녁을 주문하고 사람들을 구경했다. 다양한 인종, 다양한 연령대, 다양한 옷차림의

사람들이 넘실넘실대고 있었다. 하나 공통점이 있다면 '여행자' 특유의 여유넘치고 열린 분위기랄까. 어깨를

툭 치며 말을 걸어도 반갑게 웃으며 말을 섞어줄 것 같은 그런 분위기.

중간중간 가게들의 차양에는 '론리플래넷'에서 추천한 명소라느니, 누가 왔다 갔다느니 하는 광고성 문구들이

적혀 있기도 했다. 가이드북 중 가장 좋은 건 역시 '론리플레넷'이 아닐까 (근거없이) 믿고 있는 나로서는 저

가게를 한번 꼭 가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지만 압사라 댄스는 더 괜찮은 곳이 있다고 들었으니 일단 참기로.

외국에 나가면 놀라는 것 중의 하나가 '밤문화'다. 아무리 태국의 카오산 거리라거나 캄보디아의 씨엠립이라고

해도 밤이 으슥해지는 12시 어간이 되면 거리가 한산해지고 가게들도 대략 정리하는 분위기가 된다. 이래서

한국이나 일본만큼 밤 늦게까지 놀 수 있는 도시가 참 드물다는 이야기가 나오게 되는 거 같다. 아니면 이런

유명 여행지역은 아무래도 다음날 아침부터 다시 일정이 있는 사람들이 많아서, 어쩔 수 없이 일찍 마치게

되는 걸 수도 있겠고.



앙코르왓 인근 주택가에는 마당-마당이라고 딱히 뚜렷한 구획이 지어져 있는 건 아니지만-에서 이런 새들이

자유로이 활보하고 있었다. 저게 칠면조인지 오골계인지, 조류의 이름이래봐야 후라이드치킨 양념치킨 정도만

알고 있을 뿐인지라 뭔지는 모르겠지만, 꽤나 이국적인 장면이었다. 

그런데 왜 여기에서 마주치는 소들은 다들 갈비뼈가 몇 개인지 셀 수 있을 정도로 말라붙었을까. 일을 많이

시켜서일 수도, 혹은 더워서 힘이 드는 건지도. 먹을 게 부족하지는 않을 텐데 말이다.

얼추 해가 저물어갈 시간이 가까워 오고 있었다. 앙코르 유적군 외곽에서 씨엠립 시내의 숙소-그것도 하필

꽤나 외곽에 잡아버린-까지 자전거로 가려면 또 두시간여 밟아야 하기 때문에 그걸 감안해 보면 얼른 서둘러

움직여야 했다. 마음이 살짝 조급해져서 그런지 하늘도 조금 어두워진 느낌.

길 양편으로는 우리나라의 촌에서 보이는 그런 무논이다. 빼곡하게 집약적으로 모를 심어놓지는 않았는지

듬성듬성 비어 있지만, 아열대 기후 덕분에 일년 삼모작까지 가능하다는 이 나라에서도 싱그런 녹색이다.

쁘레룹에 가서 석양을 보는 걸로 3-day Pass의 첫날은 시마이하기로 했다. 기어 따위 없는 자전거에서 쉼없이

페달을 밟는 건 보통일이 아니었다. 중간에 잠깐 내려붓던 스콜, 열대성 강우의 물방울이 따꼼거렸지만 차라리

시원해서 좋았다. 그것도 잠시, 채 십분이 되지 않아 언제 비가 내렸냐는 듯 다시 후끈거리는 찜통 속으로.

쁘레룹 앞에 도착하니 이미 석양을 보러 온 듯 여행객들을 실은 버스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앙코르 유적지에서

석양을 보기에 좋은 장소중 하나로 꼽히는 쁘레룹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그냥, 많이 파괴된 채 중앙 성소를 감싸고 섰는 네 개의 보조 사원, 총 다섯 기의 연꽃모양 건축물이 비바람에

쓸리고 닳아빠져 있었다. 쁘레 룹은 사실 이 곳에 올라 석양을 보고 싶단 이유만으로 들른 사원이었다.

위에 오르니 별로 넓지도 않은 공간에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일찌감치 명당을 차지한 채 사진을 찍어대는

사람들은 전부 한국어로 된 가이드북에 한국말을 시끄럽게 쓰고 있었다. 왠지 그 압도적인 한국인 여행객

비율에 민망해져 버렸다. 외국인들은 석양 보는 거 별로 안 좋아하나? 아님 이 장소가 석양보기에 좋다는

팁은 한국어 가이드북에만 있는 거 아닐까? 이런저런 추측을 해보았지만, 단일 장소에 이렇게 특정 국가

여행자들이 몰려있다는 건 어쨌거나 그다지 건전한 현상은 아니지 않을까 싶다.

해가 넘어가려는 즈음, 서늘한 바람이 하늘끝에서부터 불어왔다. 구름들도 물통 속 담궈진 붓에서 잉크가

빠져나가듯 삽시간에 쏴아, 하고 하늘 바깥으로 번져나간다.

파노라마로 어떻게 연결해 보려고 찍어 보았으나 실패. 그치만 해가 구름에 가리고 조금씩 땅 아래로 빨려

들어가는 타이밍의 하늘이란 너무 이뻐서, 계속 질릴 줄 모르고 하늘을 보고 카메라 뷰파인더를 보고.

약간씩이지만 다 다르다. 잠깐 사이에도 구름의 모양과 위치는 급변하고, 구름에 반사되는 햇살의 양과 강도에

따라 그 풍부한 느낌과 질감마저 달라지는 것 같다.

구름이 많아 해가 떨어지는 장면을 직접 볼 수는 없었다. 아마 조금 더 뭉개고 있었다면 찍었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버스나 뚝뚝을 대절한 게 아니라 두 다리만 믿고 자전거 페달을 한 시간 넘게 밟아야 할 몸인 거다.

가뜩이나 교통법규도 안 갖춰진 동네, 가로등 따위 정비되어 있지 않은 동네에서 어둑한 길에 자전거를 타는

불상사는 피하고 싶어 아쉬움을 가득 머금은 채 자리를 떠야 했다.

안녕 사자야~ 인사하고 쁘레룹을 내려섰다. 뒤에서는 여전히 한국말이 다른 나라 언어들을 위압한 채 우렁차게
들리고 있었을 만큼 한국인이 '쁘레룹 석양전망대'의 대세였다.

그래도 아쉬워서, 가파른 각도의 계단을 내려서면서도 연신 눈과 카메라는 하늘을 찾았다.

와중에 두 번째 등장하는 '나'.

급변하는 일기 상태가 고스란히 구름의 형상에 반영되는가 싶다. 저 멀리에서 유유히 피어오르는 뭉게구름,

여기저기서 연기처럼 솟아오르는 두터운 구름, 그리고 눈앞에서 내려앉기 시작하는 깜깜한 먹구름.

그야말로 변화무쌍한 하늘, 그리고 남국의 구름이었다.


사실 별로 내키지는 않는다. 사방에서 (남들보다) 좀더 빨리, 좀더 높이 뛰라고 재우치는 상황에서 굳이 새해

다짐까지 좀더 앞당겨서 해보자니, 왠지 뒤숭숭하고 어영부영 지나야 제맛인 연말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다.

그냥 이건 전적으로 최근 무지하게 뒤엉킨 스텝을 밟으며 온통 헝클어져버린 일상을 살고 있는 스스로에 대한

약간의 반성, 그리고 미처 스텝을 추스를 짬도 없이 다가와버린 연말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균형을 잡아보려

쥐어짜보는 안간힘같은 거다.


..뭐, 약간은 그런 효과도 노린다는 걸 부정하진 않겠다. 어차피 새해 소망따위 작심삼일, 새해들어서 삼일만에

쓰디쓴 자기모멸과 시니컬한 배째라 멘트 수렁에 빠지기 보다, 새해 들어서기 전에 조금은 워밍업도 해보고,

과연 이게 될만한 다짐인지 아닌지, 간도 볼 수 있는 훌륭한 유예기간인 거다. 게다가 굳이 새해소망으로

다짐씩이나 할 만한 것들이라면 굳이 새해되면서부터 시작할 이유도 없는 거고.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1. 걷거나, 자전거타고 출퇴근하기.

가을에 산 삼각형 자전거, 출장 한번 다녀오니 쎄~하니 추워진 날씨 덕에 얼마 타지도 못하고 겨울이 됐다.

이년차에서 삼년차로 변신하는 시기, 그간 억눌러온 허릿살이 조금씩 반역의 붉은 깃발을 드높이는 바 운동이

절실해지고 있는 시점인 거다. 날씨가 춥거나 비오거나 눈오거나 하면 걷기로, 기타의 경우에는 자전거로.

애초 자전거 살 때 버스값 들어갈 거 모아서 자전거를 사겠노라고 큰소리쳤던 터에. 비록 빡세게 걸어서 30분이

꽉 차고, 사무실에 오르는 엘레베이터 안에선 몸에서 김이 펄펄 날 지경이긴 하지만 우선은 걷고 자전거타보기.


2. 영어 & 제2외국어 말하기 공부하기.

어설피 '영어공부', '중국어공부', 요래봐야 아무것도 공부 못하는 거다. 그냥 실용적인 차원에서, '영어 말하기

& 제2외국어 말하기'에 집중하는 게 필요하다. 워낙 영어 잘하는 사람이야 깔렸으니 치이지 않을 정도로는

해야 할 텐데...제길. 게다가 제2외국어로 대체 뭘 배울지는 아직 맘이 세워지지 않아서 문제다. 조금이나마

하던 걸 계속 하자면 중국어 정도일 텐데, 사실은 일본어나 스페인어를 새로 배우고 싶은 맘도 동하고 있고.

두고 봐야 할 일이지만, 우선 영어부터 어떻게 좀. 2001년 맨하탄에서 알바할 때 '나쁜 영어'를 배우지 못해

한마디 대거리도 못했던 수모는 아직도 생생하단 말이다. 사진은 쌍둥이빌딩 무너지기 며칠전.


3. 색소폰 레퍼토리 12곡 만들기, 여차하면 색소폰 사기.

작년 10월께부터 배우던 알토색소폰. 따지자면 배운지 일 년이 넘었다지만 일주일에 고작 한번 점심시간때

45분 수업, 거기다 역시 일주일에 한번 될까말까한 개인연습시간인지라 우스운 실력이다. 색소폰을 빌려주며

연습시켜주는 곳이라 아직 색소폰도 안 샀으니 말 다한 거다 실은. 그래도 선생님 왈 다른 아저씨들은 색소폰

기본 조금 배우고 바로 '성인가요'로 넘어가지만 형님은 마침 '초견(악보를 보고 바로 읽어내리며 연주할 수

있는 능력)'도 좋고 재지한 감도 있고 하니 제대로 재즈를 해보자고, 나름 탄탄하게 기본기를 닦고 있는 중.

이제 대략 연말께부터 레퍼토리 만들기에 집중하려 했으나 워낙 이런저런 점심약속이 많아 한달 쉬기로 하고

내년 1월부터 다시. 한달에 한곡, 그렇게 연습하다가 집 가까운 곳의 색소폰 동호회 같은데 찾아봐서 색소폰

사서 독립할 예정이다.


4. 수영 배우기(바다 수영이 가능할 정도로)

극심한 운동신경 부족증에 시달리는지라, 수영은 늘 죽지 않을 정도로만 하고 있었다. 그나마도 파란 페인트칠

깔끔히 칠해진 실내 수영장에서나 하지, 시퍼런 바닷물이나 사하라 사막 한가운데 이끼 짙푸른 오아시스같은

곳에선 목숨을 내걸고 한두번 뛰어들었다간 지쳐 널부러지는 거다. 다이빙 하는 포즈만 잡고 사진찍고 돌아설

때의 그 씁쓸함이라니. 마침 지구 온난화의 기세가 날로 흉흉해지는 이때, 수영은 생존기술이다. 바다 수영이

가능할 정도, 최소한 배영이 가능할 정도로는 수영을 배워야겠다. 겸사겸사 유선형 몸매도 만들어보고.


5. 네팔/쿠바/페루 중 하나 여행가기.

네팔의 주요 수출자원 하나가 '자아'라던가, 네팔을 혼자 배낭여행 다녀온 남자와는 연애도 하지 말란 이야기가

있다지만 몇년전부터 네팔은 로망이 되어버렸다. 카스트로가 죽기 전에는 꼭 가봐야 한다는 쿠바 역시, 생각만

하면 조바심이 나고 심장이 두근거리는 나라가 된지 오래고. 쿠바. 큐바. 쿠우바. 그러던 중 국립중앙박물관에

잉카보물전을 시작했다는 이야기에 잊고 있던 나라 이름이 하나 떠올랐다. 페루. 이름만 들어도 정말 뭔가

클래식하면서도 신비한 느낌이 그득한 나라다. 어렸을 적 읽었던 동화중의 하나에선, 마방진을 풀어서 마법을

부리던 팬더에게 맛난 마멀레이드 잼을 원없이 먹여줬던 할머니가 페루에 살았댔다.

문제는 어느 나라를 가건 짧은 일정으론 녹록치 않다는. 대체 내년엔 휴가를 얼마나 쓸 수 있을지가 관건인 셈.


6. 휴대폰에 저장된 사람들 얼굴 사진 모으기.

새로 바꾼 휴대폰에 오늘에야 전화번호부를 옮겼다. 필요한 번호부터 조금씩 옮기자는 생각이었지만, 그러다간

평생 전화번호부를 못 옮기겠다 싶어서 그냥, 대리점에 가서 삼천원 주고 오분만에 옮겨버렸다. 연락을 자주

하거나 얼굴을 자주 보지는 못하더라도 그냥 내게 전화번호가 쥐어져 있다는 것 자체로, 언제든 전화할 수 있단

가능성으로 남아있는 사람들이 고맙단 생각이 들었다. 한번쯤은 다 만나서 얼굴맞대고 이야기를 섞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때마다 꼭 상대의 얼굴을 담지는 못하더라도, 2010년엔 주위를 좀더 챙겨야겠단 다짐.


7. 시민단체/정당 활동 좀더 열심히 하기.

대학 때의 고담준론은 차치하고라도, 당장 최소한 내가 먹고 살겠다고 버둥대는 과정에서 사회적으로 내지르고

있는 '해악'들에 상응하는 만큼의 뭔가는 해야겠다. 그저 단순히 당비 내고 후원금 내던 차원에서 벗어나,

조금은 더 책임있는 역할, 조금은 더 부담되는 역할을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이다. 오마이뉴스에 드문드문 

싣던 기사들도 좀더 정기적으로 가다듬어진 글을 올리는 게 필요할 거 같기도 하고, 여러모로 여태까지보다는

무게중심을 좀더 공적인 활동 쪽으로 옮겨보고 싶긴 한데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봐야겠다.


8. 대학원 준비..? 기타 자격증..?

대학원을 가던 해외연수를 가던, 사실 지금은 전혀 준비가 안 된 상황. 변수가 많긴 하지만 어쨌든 당장 할 수

있는 걸 하자면 조금씩 대학원을 염두에 둔 그림을 그려야 될 때가 된 거 같다. 이년정도 다녔으니 회사는 이미

적응할 대로 해버렸고, 자칫 이대로 무겁게 가라앉아 버리진 않을까 걱정인 거다. 혹은, 가방끈 늘여봐야 사실

별 도움이 안 된다면 차라리 다른 자격증을 알아보는 건 어떨까 싶기도 하다. 음......일단 2010년은 뭔가 다른

가능성을 구체화한다는 정도에서 만족해야 하려나.


9. 하루하루 기억에 남을 만큼 재미있게 살기.

회사-집-회사-집을 쳇바퀴도는 아저씨가 되기는 싫은 거다. 틈틈이, 없는 짬을 내어서라도 미술관도 가고

여행도 가고, 그렇게 즐길 수 있는 감각을 계속 유지하는 것도 중요한 거 같다. 그냥 하루하루 지나는 게 기억에

남지 않을 만큼 밋밋하고 진부하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그 밥에 그 나물처럼 뻔한 궤적을 되밟아 나가는 건

편하기는 하지만 가끔은 살짝 벗어나 주는 것도, 혹은 확 예정없이 질러버리는 것도 매력적이니깐.


물론 연말의 어수선한 분위기, 쉼없는 송년회 러시들 때문에라도 얼마나 갈지 회의적이긴 하다. 그치만 뭐,

언제는 삶이 평온평탄했던가. 그런 핑계로 고작 며칠도 안 되어 때려친다거나, 아예 시작조차 못해서는 곤란한

것들이다. 사실 이런 아홉 가지 다짐들은 단지 새해를 맞아 새삼 챙겨먹은 맘이 아니라 앞으로 계속 나아가기

위한 필요조건들인 게다. 그저 어제같은 오늘, 오늘같은 내일을 반복하며 살지는 않겠다는.



#1.

출장 다녀온지 며칠이나 되었다고, 내일부터 또 출장이다. 인천 송도에서 벌어지는 모 행사가 있어서, 수십명의

자원봉사자들한테 오리엔테이션하고, 모레랑 글피는 사람들에 부대끼며 헥헥대고 있을 거 같다. 사실 뭔가

행사-판을 짜고 준비하고 운영한다는 건 꽤나 매력적인 일이다. 대학교 때 새내기준비위원회라느니, 4.19기념

마라톤이라느니, 모의유엔이라느니, 그런 것들에 꼭 감투 하나씩 쓰고 헥헥댔었으니 그 맛을 알아버린지는

꽤나 오래다. 뭔가 무대를 만들어주고 판을 벌여주는 역할, 굳이 판 위에서 놀지 않아도, 그 옆에서 판이 잘

돌아가게 도와주는 것도 충분히 재미있다.


여튼, 그래서 이박 삼일 (또) 다녀오겠습니다.ㅜ



#2.

사실 한 두어달 전부터 준비하던 자격증 시험이 있었다. 이렇게 말하면 좀 그렇지만, 그래도 공부하는 거야 뭐

그냥 하면 되는 거니까, 문제는 절대적인 시간의 확보가 관건이었다. 물론 초반에 좀 알량한 셤, 알량하게

대응하리라, 는 건방진 맘으로 시동을 늦게 걸었던 탓도 있지만, 뒤늦게 확정된 7박8일의 출장이 완전 개씨루를

박아버렸다. 막판까지 책보다 지쳐 쓰러져 잠들도록 버닝해봤지만 절대량이 넘 많아서 결국 무위.


왠지 올해 하반기가 '무위'로 돌아간 느낌이다. 아쉽게도 문제 두어개 차이지만, 어쨌든 시험은 합격 아니면

불합격인 거다. 사실 셤 자체는 별로 대단한 건 아니었지만-다만 단번에 합격했음 이것저것 금전적 이익이

꽤나 있었을 텐데-그보다 2006년의 그 불쾌하도록 하얗던 감정이 떠올라버렸다. 본체에서 유리된 채 멀거니

내가 밥먹는 걸 지켜보고, 말하는 걸 지켜보고, 걷는 걸 지켜봤던 그 메슥거리던..누우런 갱지같던 감정.


그냥, 그런 기억이랑 겹쳐져 버려서 기분이 너무 안 좋았다.



#3.

가을을 타고 있다고 생각했다.

출장 다녀오니 가을이 끝나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아침저녁으로 쌀랑해서 자전거를 타고 달려도 땀은 안나고 몸은 따뜻해진다.

코엑스 앞을 지날 때마다 국화향이 진득한 황금빛 토종꿀처럼 녹진녹진 흘러들어왔다.


아직 가을이다.


집이 회사 근처로 이사하긴 했는데, 걷기엔 은근히 멀어 40분 정도 걸리고 차타기엔 버스노선이 신통찮아

한동안 걍 빠른 걸음으로 걸어다녔다. 그 결과 얻은 것이 '족저근막염'. 간단히 말하자면 발바닥에 염증이 생긴

거라고.

여름휴가 때 캄보디아에서 걸으면서도, 제주도에서 걸으면서도, 아님 일상에서 그냥 가볍게 걸을 때도 살짝

통증이 느껴질 정도였다. 이게 또 특별한 약도 없고 치료법도 없다는 게 의사선생님의 말씀. 주로 4, 50대에나

많이 보이는 증상인데 젊은 냥반이 왜 벌써부터 이러냐는 눈흘김도 없지 않았다.


이후로 버스를 타고 가려는데 노선이 워낙 꼬불꼬불하고 길도 막히길래, 버스를 타고 가다가 전철로 갈아타선

딱 한 정거장을 이용하고 다니던 참이다. 시간은 단축되긴 하지만 노선이 불편해서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겠다

싶던 차에, 딱 사고 싶은 자전거를 발견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삼각형', 스트라이다Strider의 특허 기간이 끝나고 중국에서 OEM 방식으로 제작되는

CTrider, 원래 영국제인 스트라이다 정품은 꽤나 비싼데 요놈은 가격은 적당하면서도 모양새는 똑같다.

여러 색상 중에 고민하다가 정장 입고 타기에도 무난하도록 검정색을 골랐는데, 깔끔하다.


사실 9월말에 주문했는데, 추석 대목이 겹치고 물량 부족사태가 겹치면서 어제야 받았다. 다음주로 예정된

출장 준비로 한참 피곤에 쩔어 일하던 차에 자전거를 받고 나니 없던 힘이 솟아서, 당장 오늘 아침부터

잡아타고 출근. 15분만에 도착해서, 얌전히 접어서 엘레베이터 타고 사무실 옆자리에 주차했다. 사진은

회사 동료들한테 자랑질하느라 펼쳐놓은 모습.

접힌 모습은 꼭 고양이가 얌전히 귀를 접고 웅크린 거 같다. 꺄아~~~!! 날씨가 좀 추워지긴 하지만 눈비가

내리지 않으면 계속해서 타보려고 생각중이다. 바퀴가 묘기용 자전거처럼 쪼꼬매서 운전하기가 상당히

미묘하지만 오히려 그게 더 재미있다. (한바퀴 운전금지, 라는 경고문구가 설명서니 자전거본체니 여기저기

붙어잇는 걸로 보아 좀만 더 익숙해지면 한바퀴로도 타고 다닐 수 있을지도.)

내친 김에, 요새 출장 준비로 정신없는 내 책상. 그러고 보면 출장 다녀옴 날씨 옴팡지게 추워지지 않을까.ㄷㄷ







앙코르왓을 돌아보는 루트는 짜기 나름이다. 몇 권 들춰본 가이드북마다 제각기의 코스를 제안하고 있었는데,

그건 대개 가이드를 대동하고 뚝뚝을 이용하는 걸 전제로 깔고 있었다. 여행이라고 와서 오토바이로 윙윙 지나는 건

왠지 아니다 싶어서, 첫날은 우선 자전거를 타고 달려보기로 했다. 숙소에서 하루에 3달러에 대여해 주었고, 사고에

대비한 예치금 20달러를 별도로 내야 했지만, 이미 자전거를 이용한 그랜드투어, 스몰투어 코스가 있을 정도로

자전거 이용은 활성화되어 있다. 근데 실제로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사람은 전부 서양인이었다는.

자전거를 타고 숙소에서부터 앙코르왓까지 밟아댄 설레는 아침. 출근길의 캄보댜 사람들이 신기한 듯 흘낏대며

쳐다봤고, 승용차와 트럭과 뚝뚝과 오토바이(모또)와 자전거가 뒤섞인 도로는 생각보다 정신사나웠다. 알고 보니

아직 캄보디아는 제대로 된 교통질서가 확립되지 않았다던가. 신호등이나 교통 체계, 표지판 같은 게 꽤나 취약하다.

그래도 모두들 알아서 조심조심, 비록 차선도 무시되고 역주행도 흔한 일임에도, 별탈없이 유유자적 흐름을 잘 타고

있었다.

달리다가 보니 어느 순간 한적해진 길, 아마 씨엠립 시내 중심부까지의 출근길을 벗어나 앙코르왓으로 빠지는

길 어귀에서부터 급 한가해졌던 것 같다. 이제 자전거를 타며 카메라를 찍어대는 묘기를 부리기 시작. 춤추는

카메라에 길가 좌대가 잡혔다. 저건 뭘까. 양주병, 음료수페트병, 그리고 큼지막한 깔대기 하나까지.


뭐냐면, 오토바이 혹은 개조한 삼륜차 뚝뚝이 주된 교통수단이 되고 있는 나라인지라, 기름을 저렇게 병 단위로

사서 즉석에서 주유하는 경우가 많다는 거다. 빈병은 어디서 났는지, 저런 비싼 고급양주병이 흔할리가 없는데.

알고 보니 워낙 흔히 보이는 풍경이라 나중엔 그러려니 했지만, 처음엔 어찌나 신기하던지.ㅎ

캄보디아, 라고 하면 무지 멀어보이고 무지 못 사는 나라같지만-또 실제로도 맞긴 하지만-생각보다 세련되었달까

잘 꾸민 여성들, 남성들도 눈에 종종 띄었다. 특히 씨엠립같은 시골 관광마을 말고 프놈펜같은 수도로 가면 더욱.

매우 '컨츄리틱'한 '구루마'와 나름 세련된 스타일의 뽀얀 여성분.

이런 식으로 기름을 팔기도 한다. 휘발유와 디젤인가, 아마 그렇게 두 종류인 듯 한데 그냥 드럼통을 갖다놓고

저기서 바로 뽁뽁이로 주유. 아까 봤던 병들이 기름보다는 일보 전진이라 해야 할지.

아침 일곱시부터 서둘러 나서서 그랬는지, 앙코르왓까지 가는 길은 무척이나 한적했다. 드문드문 현지 사람들과

함께 달리기도 하고, 아직 관광객들은 아침을 먹고 있나보다 싶었다. 어쩌다 보니 중간에 길을 잘못 들어 입장료

사는 곳을 지나쳐버린지라 좀 돌아가야 했지만, 덕분에 아침부터 한시간 이십여분을 줄창 자전거로 달려야했지만,

꽤나 재미있었던 라이딩.

아침부터 사이좋게 아이스크림을 빨며 자전거를 타던 귀여운 남매, 자전거를 타고 카메라를 두리번대는 내게

자신있는 ^^V 제스처를 취해준다. 스스럼없는, 그리고 그저 친근한 그 태도에 나 역시 활짝 웃고 말았다.

옆에서 미친듯이 페달을 밟으며 맹추격했던 꼬맹이 녀석. 저 의지에 가득찬 눈빛과 그야말로 건각(健脚). 건강한 다리.

나랑 한동안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유쾌하게 앙코르왓으로 향하는 정글 가운데 이차선 도로를 점령했던 꼬마친구.

입장소에서 파는 앙코르왓 입장권은 1일 패스, 3일 패스, 그리고 일주일 패스. 3일짜리, 일주일짜리는 즉석에서

사진을 찍어준다. 저 여자분 뒤에 조그맣게 캠이 설치되어 있는데, 그걸 찍으려는 순간 여자분이 몸으로 가려버려

의도치 않은 도촬...ㅡㅡ;; 좀 더 웃는 얼굴로 나왔음 더 이뿌셨을 텐데 아쉽..

보통 앙코르왓을 제대로 보려면 최소한 3일 패스는 써야 한다고 한다. 워낙 넓은 지역에 많은 사원들이 흩어져있어서.

1일 패스는 20달러, 3일 패스는 40달러, 일주일 패스는...모르겠다. 입장권의 배경은 앙코르왓 유적의 정수 중 하나인

'반띠아이 쓰레이'. 여긴 앙코르왓서 약 30킬로 떨어져있어서 차량을 타고 가야 한다.

입장권을 사고 다시 앙코르왓으로 힘차게 페달을 밟는 길, 길을 좀 헤멘 탓인지 툭툭을 타고 속속 도착하고 표를

사 떠나는 여행객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맘이 급해졌다.

그래도 이미 한시간여 자전거를 내리 달린 데다가, 입장권 판매소에서 앙코르왓까지는 2-3킬로미터를 또 달려야

하는 터라 길가에 과일판매대를 보고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바나나, 용과, 라임, 오렌지 따위를 팔고 있길래

용과를 사서 다시 출발하려는데, 저토록 편안해보이고 재미있어 보이는 해먹에 자꾸 눈이 갔다.

앙코르왓을 둘러싼 100미터짜리 해자, 그 바깥쪽 둔덕에 앉아 아이들을 씻기고 있던 아주머니. 아이들 셋을 혼자

단도리하려면 얼마나 힘들까 싶다. 해자가 얼마나 넓던지, 아침햇살을 맞으며 피어오르는 물안개가 감싸니 마치

여름날 한강 상류에서나 마주할 몽환적인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뜨겁게 이글거릴 햇볕을 예고하는 짙은 물안개.

물안개 너머 보이는 앙코르 왓의 실루엣.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아마 한시간 넘게 쉼없도록 달린 자전거

탓도 있겠지만, 툭툭 타고 슝 왔으면 왠지 이런 설렘은 덜하지 않았을까. 자전거 타고 첫날을 시작하길 잘했다 싶은

순간이었다.

문득 돌아본 길가엔 코끼리 주의 안내판이 세워져 있었다. 음..코끼리가 노니는 땅이로구나.

짙은 정글, 그 사이 놓여진 얄포름한 포장길 한 줄. 그렇게 한참 가다가 문득 당도한 앙코르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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