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남대, [충북팸투어-청남대] 김대중과 노무현의 '아바타'가 그곳에 있다.에 이어 나머지 대통령들의 이미지도

가득 담아 올 수 있는 곳이다. 아무래도 전두환 대통령 때 지어진 곳이라 그런지 그 이전 대통령들의 체취랄까

흔적은 남아있지 않지만, 그 이후로도 워낙 (여러 의미로) '씨알굵은' 대통령들이 있으니 아쉽진 않다.

참 씨알 굵은 양반. 산책로에서 제일 먼저 만났던 분인데, 이후 제각기의 특징을 잡고 있는 동상의 모습을

되짚어 보니까 저 자세는 어쩌면 구보와 각잡힌 걸음새에 익숙한 퇴역군인의 특성을 잘 포착한 게 아닐까

싶었다. 찰져보이는 몸뚱이에 완강하고 의지력있어 뵈는 얼굴까지. 딱 그사람이다.

그의 뒷모습. 맨들맨들한 동상 뒷머리에 흔히 떨어져 있을 법한 새똥 하나 없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다음 타자는 골프채를 시원하게 휘두르는 노태우 전 대통령. 그가 대통령을 하던 시절 나는 삐라를 모았었다.

그 천연색깔 알록달록한 그림과 낯선 글씨체가 신기하고 자극적이었다. 똥오줌 못 가리던 어린 나이인지라

아마 사람들이 회피하고 어쩌면 무서워하던 삐라를 한장 두장 모아가며 묘한 쾌감을 느꼈던 거 같다. 어느날

부모님은 우표수집책 속에 우표처럼 꼽혀있던 색색의 삐라를 보고는 다 태워버리고 말았다.

그의 입꼬리는 부자연스러워 보인다. 원래 그렇게 생긴 걸까 아님 이 동상의 작가가 잘못 만든 걸까. 본인이나

유족으로부터 초상권에 대한 합의를 받고 최대한 실제와 똑같이 만들어낸 작품들이라 했었다. 사실 그가

재임중이던 시절, 난 최루탄 냄새 맡으며 어린이회관에 '우뢰매' 따위 보러다니던 꼬맹이였다. 그의 얼굴을

티비에서 본 기억이 없다. 입꼬리는 더더욱 기억에 있을 리 없다. 별명이...물태우였다던가.

김영삼 전 대통령. 요새도 참 말 많이 하던데, 다행인지 우리 나라 대통령 중엔 아직까지 퇴임 후에도 영향력을

발휘하는 전례가 없었다. 끝까지 무사하게 피 안 묻히고 구정물 안 튀긴 대통령이 없어서인지도 모르겠다.

그는 조깅을 워낙 좋아했던 대통령답게 흥건히 브론즈색 물들이고도 또 뛴다. 무슨 포레스트 검프도 아니고.

그의 봉긋한 엉덩이를 함께 보며 친구가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해줬다. 한미 정상회담 기간 중 클린턴이 조깅을

제안해왔댄다. 나란히 달리며 한미관계를 논해야 할 그 찬스에서, 그는 죽어라고 달려선 클린턴을 멀찍이

따돌리고 이겼다며 좋아했단다. 그러고 보니 포레스트 검프랑 비슷한 면이 적잖다.

"클린턴도 조깅으론 날 못 이겨~!" 좋댄다.

그리고 책 읽는 김대중과 자전거 타는 노무현을 만나고, 초봄 기운이 드리워진 청평호에 시선을 박았다.

청남대엔 군사시설도 함께 있었다고 하더니, 설마 그때부터 화장실 옆에 저렇게 배치되었던 건 아닐 거다.

여자는 왼쪽으로, 남자는 오른쪽으로, 그리고 볼일급한 꼬맹이는 가운데쪽으로.

대통령 광장에 들어서는 입구. 뒷 벽면에는 각국의 행정수반이 집무를 보는 관청이 있다. 한국의 청와대,

프랑스의 엘리제궁, 미국의 백악관, 뭐 그런 것들.

총 9명의 대통령. (현 대통령을 제하면) 16대 대통령까지 16번의 임기가 지났는데 인물은 9명이다. 뭐 재임,

중임이 항상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지만, 좀더 옵션이 많았으면 조금은 더 맘에 드는 대통령이 많았을지도

모르겠어서 아쉬울 따름.

옆구리에 '대한민국 헌법'을 끼고 있는 대통령,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다. 그의 치하에서 만들어진 헌법이긴

해도 그때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의미는 지금과는 또 달랐을 거다. 당장 국토의 공공성이라거나

수도로서의 서울이 갖는 지위 따위가 해석을 통해 바뀌어 나가고 있으니까 말이다.
장면 내각은 내각제여서 대통령 광장에 끼지 못했나 보다. 바로 윤보선 대통령으로 스킵. 무슨 일을 했는지,

그가 어떤 대통령감인지 알아보고 평가하기엔 그의 재임 기간이 너무 짧았다.

그 사람. 근데, 그 사람하고 진짜 닮았다. 그 사람이 그 사람 흉내낸다고 선그라스 끼고 돌아다니고 그런

모습을 봤을 때도 느꼈지만, 그 사람은 정말 그 사람 닮으려고 꽤나 노력하는 중인 거 같다. 어쩌면 요새는

그 사람보다 더욱 세련되고 고도화된 수준에 올라선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런 엄연한 질적 차이가 있으니

그 사람과 그 사람의 엔딩은 얼마나 닮고 또 얼마나 다르게 될까.

최규하 전 대통령. 이 분이 아마 최근의 '서거 러시' 이전 가장 가깝게 돌아가신 분이었던가. 조용하게

돌아가셨던 거 같다. 무색무취한 대통령이었던 걸까, 역시 짧았던 재임 기간 때문인지도.

아까, 군대에서 구보하는 걸음새로 각잡혀서 걷던 아자씨. 그는 여전히 살아있고, 광주의 전남도청은 다른

지역으로 이전한 채 파시드랑 뼈대만 남겨두었으며, 가끔 그는 현실 정치에 훈수도 둔다.

노태우 전 대통령. 그런 생각도 든다. 대통령도, 국민도, 시간이 지난다고 점점 나아지라는 법은 없다.

그건 조금은 무임승차하려거나 언발에 오줌누기식 위로를 구해보려는 얕은 꾀.

IMF라는 재앙이 터진 건 김영삼 전 대통령 재임시기였지만, 그게 터지지 않고 안으로만 내연해서 약자들을

사회 밖으로 튕겨내는 시스템을 만든 건 그 이후였다. 거대한 후폭풍을 불러오고 뭔가 구태의연하던 과거를

지워버려야 할 타이밍에 오히려 한발 더 나아가 고도화된 모순을 만들어내버린 면도 있는 거다. 비정규직을

비롯한 불안정한 고용 시장, 오히려 위축되는 듯한 사회복지망, 수월성 위주의 입시 교육, 민주/반민주 따위

선언적이고 허구적인 경계선에만 자족하는 지난 시대의 비주류들..그래서 김영삼 때문에 IMF가 났다고 쳐도

-사실은 다른 원인들이 많다고 생각하지만-그 뒷수습을 그렇게 한 건 엄연히 다른 문제다.
 
어쨌거나, 대통령 광장 한 가운데에는 커다란 태극무늬가 있다.

대통령 동상들이 바라보는 쪽엔 뭐가 있을까, 싶어서 고개를 돌려봤다. 고개도 돌리고 카메라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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