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캄보디아는 인접한 태국이나 베트남, 요새는 라오스까지 연계해서 일정을 짜는 것 같던데, 그냥 캄보디아만

일주일 돌아보기로 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캄보디아라는 이 거대한 땅덩이가 아니라, 앙코르왓을 볼 수 있는

'씨엠립(SIem Reap)'과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Phnom Penh)', 그 두 점과 두 점의 사이를 잇는 부피감없는

그야말로 얄포름한 선 하나일 뿐이다. 어느 나라 다녀왔어, 라는 말이 때론 무지 허망하고 슬프게 들리는 이유다.
 
8월 23일 오후 7시, 캄보디아 씨엠립으로 향하는 대한항공 비행기 이륙 직전. 돈이나 시간이나 부족하긴 학생때나

지금이나 매한가지, 그치만 '학(사경)고'의 위협보다 '밥줄끊김'의 위협이 더 크다는 게 캄보디아만 돌기로 한

이유 중의 하나였다. 국경을 넘고 장거리를 이동하는 것보다-설혹 비행기로 훅 한번에 간다해도 공항에서 지체할

그 시간들을 고려한다면-그냥 한 나라 내에서 동선을 최소화하며 많이 보는 게 낫겠다 싶었다.


놀랐던 건, 캄보디아 씨엠립과 프놈펜에 하루 한번씩,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취항하고 있단 사실이었다.

왠만한 외국항공사보다 싼 값에 미리 사두었던 할인항공권인지라, 아마도 여행으로 밖에 나가면서는 처음

국적기를 타 보는 것 같다.

5시간 25분간의 비행은 금방이었다. 저녁 먹고, 여행계획 짠다고 가이드북 좀 들여다 보고, 그랬더니 금세 내리랜다.

원래 앙코르왓은 하루 차량을 대절하고 가이드까지 사서 도는 게 일반적이라고는 하던데, 그건 왠지 아니다. 모름지기

여행이라면 미리 공부해가고 또 가서 보면서 궁금한 건 찾아보고, 그렇게 스스로의 걸음걸이와 호흡에 맞춰 다니는거

아니던가. 덕분에 비행기에 내리기 전 머릿속에는 힌두교의 온갖 신들, 시바니 크리슈나니 파르바티니, 가네샤니

나가니 하는 이름들이 제법 익숙하게 자리잡았다. 실은 어릴적 탐닉하던 만화책 '3X3 EYES'의 공헌이 컸다.

3X3 EYES의 삼지안이 바로 힌두교에서 말하는 시바의 상징, 힌두교의 십자가와 같은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러고 보면, 알제리 출장 직전엔 노무현 전대통령이 서거했고, 캄보디아 여행 전엔 김대중 전대통령이 서거했다.

출입국사무소로 들어가기 전 돌아보니 우리가 탔던 비행기가 마치 산소호흡기를 꼽은 위급한 환자처럼 무언가

주렁주렁 달고 있다. 제일 작은 사이즈의 보잉기지 아마 저게? 작은 만큼 소음도 크고 진동도 컸지만, 뭐 잘 왔다.

여행이니만치, 국내의 온갖 비루하고 저질스런 것들은 싹 잊기로 했다.

도착하고 나니 검역서를 제출하란다. 비행기 안에서 스튜어디스 언냐들이 미리 나눠줬던 검역서를 제출하는데,

전부 마스크를 쓰고 분위기도 왠지 뒤숭숭하다. 신종 플루 때문에 여기도 난리구나, 싶기도 하고 혹시 열난다거나

재채기한다고 격리조치하거나 귀국조치시킨다 해도 거스를 방법이 없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별 무리없이 적을 수 있는 내용들, 열? 없다. 기침? 안해. 두통? 말짱. 등등등. 없다면 되는 게지.

출입국사무소 들어가며 나눠받는 안내문, 꼬불꼬불한 저 글씨가 바로 캄보디아의 크메르어. 손 글씨도 저렇게

이쁘게 그림처럼 꼬불꼬불하면서도 정연할 수 있을까?

캄보디아 비자는 도착해서 바로 발급받는 게 더 빠르고, 편하고, 싸다는 얘기를 들었다. 여행용비자는 20달러,

웃기는 건 1달러를 더 내라던 직원의 이야기에서 비롯했다. 단체로 온 듯한 아주머니들, 21달러 내란 이야기에
 
발끈하셔서, 얘들 바가지 벌써부터 시작이네, 우리가 봉이야, 어이없네, 동남아가 그렇지, 못사는 나라가 원래

그래..운운.
 

이미 1달러가 왜 추가되냐고 묻고 그게 '심야시간대'에 붙는 할증의 일종이란 설명을 들을 수 있었던 나는 그녀들에게

그게 바가지가 아니라 나름 '심야시간 할증'이라는 명분이 있음을 알려주었고, 그러고 나니 한풀 꺽인 그녀들의

민감한 반응과 불만섞인 목소리. 가져갔던 사진 두장과 함께 비자피를 내고 한 오분 기다리니 비자가 나왔다.

마치 컨베이어벨트시스템처럼 누군가는 여권을 열고 넘겨받은 누군가는 비자스티커를 붙이고 누군가는 싸인을

해서 마지막으로 누군가가 여권의 이름을 호명하는 듯 했다.

통관대를 통과하면서 또다시 1달러를 내야했다. 이건 왜냐고 물어도 대답도 없고, 왠지 이번엔 정말 그들의 주머니로

들어가는 돈이 아닐까 싶었다. 이런 이야기는 어디에도 못 봤었는데, 뭘까. 굳이 정색하고 흥분할 일은 아니라 넘기기로

했다. 비자피가 22달러라고 생각하면 되는 거지 굳이 1-2달러 갖고 날카롭게 굴고 기분상할 필요는 없지 싶어서.

화장실, 저 앞에 있는 사람이 문 열어주고 휴지 집어주고 팁을 달라하는 건 아닐지 예상했는데, 아쉽게도(?) 예상은

빗나갔다. 그냥 조용하게 서 있던 사람. 이집트에서 뭔가 바닥을 본 걸까, 이른바 제3세계라는 이곳의 웃음이나

말투가 너무 부드럽기만 하다. 평온한 느낌.

고작 1달러에 날카로워지고 격해졌던 감정은 아마도 열악한 공항시설, 허술한 체계, 어줍잖은 인테리어에 대한 불신,

불만에서 비롯했을지 모른다. 우스워보이기도 하고, 왠지 영 권위가 안 선다고 해야 하나,

씨엠립국제공항 출구까지의 거리는 참 짧았다. 문 밖으로 새삼 느껴지는 후텁지근한 바람, 생각보다 시원하고

보송보송해서, 이게 밤이라 그런 건지 아님 운좋게도 좋은 날씨에 당도한 건지 잠시 가늠해보았다. 몇개의

단체관광객용 표지판을 지나, XX투어, XX여행사, 지나서, 제일 먼저 하얀 웃음을 보인 캄보디아인이 모는 뚝뚝

-이곳이나 태국에서 유명한 오토바이를 개조한 삼륜차-에 올라 공항을 빠져나왔다.

뚝뚝에 올라앉아 바라본 공항의 모습. 이미 현지시간은 밤 11시. 늘 신기한 건, 밤 19시에 인천서 출발해서

다섯시간 이십오분이나 비행기를 타고 도착해보면 밤 22시 반쯤밖에 안 되고 마는 시간과의 경쟁. 비행기안에서

시간은 대체 어떻게 흐르는 걸까. 출발시간과 도착시간은 알겠고, 둘 사이의 시차도 알겠는데, 그 사이에 흘러나간
 
시간은 어떻게 솔솔 빠져나가는 걸까. 1초에 1초만큼? 1분에 1분만큼?

뚝뚝은 열심히 달려 숙소로 향하고 있었다. 길 양편은 꽤나 오래된 듯한 어둠을 깔고서 고즈넉히 웅크리고 있었고,

가로등조차 변변치 않아 게으르게 문득문득 밝아질 뿐이던 어설픈 아스팔트 2차선 위를 꽤나 달려야 했다.

맹렬한 오토바이 배기음이 무색하게 영 속도가 안 붙는 그 움직임에 유쾌해졌다.

#1. 세관신고서.

#2. 출입국 카드.

#3. 캄보디아 비자신청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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