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욘은 크메르왕국의 전성기를 구축했던 '자야바르만 7세'의 무덤으로 추측되고 있다. 바이욘에 있는 오십여개의

탑 네면에는 모두 사람 얼굴이 돌로 짜여져 있는데, 이 얼굴이 아마 자야바르만 7세의 얼굴로 죽고 나서도 왕국을

수호하겠다는 의지, 지켜보겠다는 경계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게 아닐까, 라는 해석이다.

바이욘에 들어가 돌아보기 전 한번 여행책자를 일별해 보았다. 뒤로 보이는 수많은 아이들은, 여행객의 복장, 말투의

힌트를 얻고 '안녕하세요 일달러, 니하오, 곤니찌와, 하이'를 넘나들며 조악한 악세사리를 다짜고짜 들이댄다.

자야바르만 7세, 앙코르왓 유적군의 대부분은 그의 치세 때 세워진 것들이다. 이름이 잘 안 외워진다면,

"잘 발음해봐" 자야바르만. 이제 한 큐에 외워버렸다.

캄보디아에 대한 몇 안 되는 이미지 중에 빠지지 않는 '압사라 댄스', 머리에 금탑같은 거 쓰고 손으로 인을 맺으며

추는 춤이 바로 이런 '압사라'들의 동작을 흉내낸 거다. '압사라'란, 태초에 세계가 거대한 우유바다였는데 그걸

신과 악마들이 휘저으며 세상을 창조할 때, 우유 거품에서 태어난 무희의 신들이다.

바이욘에 들어서니 이미 두 무리의 단체여행객이 회랑을 선점했다. 바이욘 회랑에 그려진 벽화를 따라 가이드의

선전을 들으며 그들이 진격하는 사이, 한쪽에 자리잡고 앉아 사간 용과(Dragon Fruit, 龍果)을 까먹었다.

삐딱하게 세워진 위험 표지판만큼이나 허술하게 관리되고 있는 유적. 그렇지만 여긴 그래도 대표적인 곳 중 하나라

잘 관리되고 있는 축에 속했다는 사실은 나중에 깨달았다.

돌에 새겨진 조각이라기엔, 드문드문 곰팡이도 슬고 퇴락한 것처럼 보여서 무슨 그림 같다. 그냥 자연 그대로의

돌덩이였다면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그저 씻겨지고 부서져 여전히 돌덩이 그대로였을 텐데, 사람의 손을 타고나니

돌에 시간이 새겨진다.

앙코르 톰은 4대문을 가진 성곽도시였다. 바이욘을 기준으로 남쪽은 귀족들의 거주지역, 북쪽은 왕궁과 사원이었다고
 
하며, 백성들은 악어가 사는 해자를 지난 성벽 외부에 살았단다. 돌로 만든 것들만 남아서, 지금은 가로세로 3km의

성곽과 내부의 왕궁, 사원들만 남아 있지만 이런 회랑의 벽화를 통해 과거의 모습을 그려볼 수가 있다.

얼굴이 숨어있는 돌탑들, 이정도면 차라리 얼굴이 스며들은 돌탑이라는 게 나을지도. 20만개가 넘는 돌들을 쌓아올려

만들어졌다는 이 얼굴들은 약간씩 표정이 다르다. 세월에 따라 버즘처럼 피어오른 얼룩이들이 뉘앙스와 표정을

바꿔놓았는지도 모르지만. 가만히 보고 있으면 저 두툼하고도 커다란 입을 벌려 껄껄 대고 웃을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입을 벌려 혀를 움직이고 이를 부딪혀 무언가 말을 만들어낼 것 같기도 하다.

다소 양식화된 형태의 나무. 정글 지역의 나무답게 사방팔방으로 가지를 뻗었다.

코끼리가 한바퀴 돌았나보다. 바이욘 사원의 문간 너머로 문득 잡힌 코끼리.

알고 보니 흡연 금지, 쓰레기 투척금지, 식사 금지, 음...떠들기 금지.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그리고 사원이니만치

민소매 대신 반팔을 입으라는 지침. 반팔을 입으라는 건, 사실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것 같았다. 서양인들은 차제에

선탠까지 같이 하고 싶은 듯 다들 바짝바짝 짧게 입었고, 나도 벌써 흠뻑 젖은 옷을 보니 차라리 나시가 낫겠다싶다.

희끗희끗한 붓의 터치감, 약간 탁한 초록빛 풀빛이 섞인 진회색의 사원. 불투명수채화 화폭 가운데에다 대고

사람이 얼굴을 마구 눌러대는 것만 같다.

낙서란, 어쩔 수 없다. 아예 정과 망치로 새겨버린 듯한 이 오랜 낙서는, 어느 시점부터는 '유적'이 될 게다.

회랑을 지나 사원의 내부로 들어가는 길, 아무런 조명도 없는 그곳까지 스물거리며 기어들어온 정글의 햇살.

아래서 보면 살짝 웃는 거 같기도 하다. 훈남. 정면에서 볼 때랑 밑에서 볼 때랑, 이게 바로 얼짱 각도의 마법?!

원래 54개의 탑이 있었다는데, 지금은 약 40개가 안 되는 탑만 남아있다고 한다. 그 탑 중 하나 안에 들어가보니

하늘이 저멀리로 밀려나있다. 하늘을 길어내릴 수 있을 법한 거꾸로 '우물'이다.

"Hey Ya hey Ya Fire Fire 오 아가씨 Yeah ya Yeah Ya Warning Warning No No"(냉면, 명카드라이브 中)

명수 생각하다. 이정도 가파름이라면, 제시카를 업어야 한다. 근데 낼모레 마흔인 내가, 내몸도 추스리기 힘들텐데.

시카 생각하다. 이정도 가파름이라면, 명수 오빠를 업어야 한다. 에효. (팬픽 '금단의 사랑' 51부 中)

이 사자상의 매혹적인 뒤태. 돌로 조각해서 만들었다기엔 너무 유연하고 봉곳하다.

어이, 비웃지 말라고. 사자상 뒷태 좀 감상했기로서니. 가까이서 보면 얼굴에 주름이 자글자글한 것들.

압사라 댄스 무희 복장을 하고, 여행객들과 함께 사진찍을 준비를 하고 있는 젊은 처자들. 1 달러였던가, 나는

누군가 함께 찍힐 준비를 하고 있는 새 그녀들만 사진에 담아와 버렸다. 내가 들어있지 않아도, 내가 찍은

사진이면 만족한다.

누구라도 생각할 법한, 액자식 프레임 안에 담긴 '크메르의 미소'.

질문. 이 사진안엔 총 몇 개의 얼굴이 담겨 있을까요.

미소짓고 있는 압사라. 왠지 머리굵어지고 나서 석굴암에 다시 한번 가봤어야 하지 않았나 싶다. 거기에도 압사라가

있었던 것 같은데.

이건 좀. 무슨 공포영화도 아니고, 얼굴을 정육점 회전분쇄기에 대고 갈아버린 것 같잖아. 근데 좋댄다.

돌들에 나 있는 구멍들은, 아마도 돌들을 서로 이어놓기 위한 이음새를 꼽아넣었던 자국 아닐까 싶다.
 
약간 폐허의 느낌처럼 돌조각들이 산재해 있는 바이욘의 내부 공간. 그래도 천년이나 무사히 버텨온 게 대단하다.

여긴 금세라도 이런 거대한 나무와 덩쿨들이 짖쳐들어와도 이상하지 않은 '정글'이란 말이다. 악어와 원숭이들이

뛰놀고 뱀들이 쉭쉭거리며 한동안 인적을 끊어놓았을 그런 깊은 야생의 정글.

그 와중에 마주친 고양이 한마리. 꺄아~ 이 곳의 고양이도 한국의 고양이처럼 보드라운 털실을 신고 살금살금

사람 사이를 돌아다녔고, 살짝 뾰루퉁한 듯 어깨를 으쓱거리며 도도함을 잃지 않았다.

목이 잘려나간 수문장. 신화와 은유의 세계였던 그 때 사람들의 사고를 어찌 오롯이 이해하랴만은, 이 곳의

힘을 약화시키겠다며 수문장의 목을 꺽고 조각상들을 훼손한 침략자들의 심보야 오늘날에도 여전하다.

어쩌면 발전한 건 인간의 도구일 뿐, 그걸 다루고 이용하는 인간은 별반 진보하지 않았다. 어쩌면 철저히

분업화되고 실제 생산활동에서 유리된 현대인은 생존능력이랄까, 어떤 면에서는 퇴보했는지도 모른다.

올록볼록 양감이 뚜렷한 탑들이 천년을 버티고 서있었다. 아기자기하게 인공으로 꾸며진 작은 돌산 같기도 하고.

떠나기 전 뒤돌아 바라본 바이욘의 전경. '크메르의 미소'는 숨어버리고 '크메르의 사원'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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