쁘리아 칸, 크메르어로 '신성한 검'이라는 의미의 남성적 기풍이 물씬한 사원에 도착해 자전거를 내리자마자

쫄래쫄래 쫓아오는 아이들. 조금이라도 흥미를 보이거나 웃음을 보이면 안심한 아이들은 마음놓고 말을 걸고

물건을 내밀고 지칠줄 모르고 따라온다. 어쩔 수 없는 것이, 아이들이 어떻게 그리도 하나같이 이쁘고 눈이

맑은지 웃음을 보이지 않을 수 없는 거다. 숨바꼭질이나 얼음땡이라도 하듯 쫓고 쫓기는 정신사납고 부산한

놀이를 좀 하다가 끝내 털썩 주저앉아 항복하고 만 내게 사진찍어달라며 활짝 웃어주던 아이.

쁘리아칸은 앙코르톰 바로 북쪽에 붙어있는 커다란 사원이다. 한때 불교 승려가 천명을 헤아리던 거대 사원인

동시에, 왕궁이자 도시의 기능도 병행되었던 네모반듯한 계획도시이기도 하다. 정글이 동서남북 사방에서

포위하고 슬금슬금 침투해오고 있지만 여전히 과거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사원 내부의 통로들.

사원 중간중간에 배치된 경비원은 딱히 여행객들의 움직임을 제재하지는 않는다. 관람 동선이나 제한구역 등이

제대로 설정되어 있지 않아 그냥 발길 닿는대로, 거대한 사원을 돌아다니다 보면...길을 잃기도 한다.

좌우대칭에 엄격했던 크메르 유적들 안에 들어서면 어쩔 수 없다. 어디가 남쪽인지 이글대는 태양을 보고

가늠해 볼 밖에 없는 거다.

가루다, 한국에서는 불교적 전통에서 '금시조'라고 이야기하는 이 조류의 제왕은, 비슈누를 태우고 다니는

커다란 새를 형상화한 것이라고 한다. 커다란 사원을 이고 있다는 듯 튼실한 '꿀벅지'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사원으로 들어가는 통로. 아무리 캄보디아, 앙코르왓이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라고는 해도 워낙 많은

건축물들이 산재한 터라 생각보다 여행객들로 붐비지는 않았다. 몇몇 주요 건축물만 빼고.

얼핏 보면 조그마한 집 하나가 옆의 나무에 치여서 붕괴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건 눈의 착각. 실제로는

꽤나 큰 사원인데다가 그보다 훨씬 징그럽도록 크고 거대한 나무다.

사람과 비교컨대 이정도 사이즈. 스펑나무라는 이 나무의 발육속도나 생장력은 어마어마해서 삽시간에 건물을

잡아먹곤 한다고, 그나마 이건 계속해서 신경써 통제하고 관리하기 때문에 좀 늦춰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이런 식으로 벽면을 움켜쥐려던 거대한 나무뿌리를 잘라서 생장억제제를 투여하기도 한다고.

틀림없이 이 사원 어딘가에 자신의 위치가 있었을 돌들이, 더이상 사람들의 기원을 들어주지 못한 채 바닥에

쓰레기처럼 널려버렸다. 그렇지만 그 위에는 이미 또 다른 사람들의 소원이 조그마한 돌멩이로 쌓이기 시작한

셈이니, 결국 어쨌거나 여전히 충실하달까.

무희의 홀이라 이름붙은 공간으로 들어서는 들머리, 사원에 소속된 무희들이 행사가 있을 때마다 공연을 했던

장소라 해서 '무희의 홀'이라고 한다. 공간에 맞는 인테리어, 무려 열세명의 무희들이 춤을 추는 동작이 조각된

문틀.

뱀의 신, 나가를 타고 있는 새의 신, 가루다. 아주아주 전형적인 크메르 유적군의 난간 '액세서리'.

잠깐 앉아서 쉴 만한 그늘을 찾고 나니 딱 이녀석과 눈이 마주보고 앉게 되었다. 뒤엣녀석은 이미 두 발만

남긴 채 자연으로 돌아갔고, 고단한 몸을 이끌고 천년 가까이 사원을 수호하는 사자 한마리.

다소 이국적인 건물이다 싶어 가이드북을 펼치니 역시, 그리스풍의 건축물이라고 딱 찝어놓았다. 여기가

바로 '쁘리아 칸', 신성한 검을 모셔놓았던 곳으로 추측되는 곳이라 하는데 대체 어떻게 생긴 검이었을까.

유난히 촘촘하게 세워진 기둥 사이로 언뜻언뜻 고이 모셔져있었을 과거 '신성한 검'의 잔영이 보이는 듯 했다.

나의 상상 : 뱀의 형상을 한 왕의 침대같은 곳에 누워 육감적인 여성으로부터 크메르식 마사지를 받고 있는

오만한 표정의 남자. 이건 당대 크메르 왕국의 생활상을 드러내는 걸까.

가이드북의 '정답' : 힌두신화에 따라 한 우주의 주기가 파괴되고 지금의 세계가 오기 전에 비슈누가 우유의

바다에서 큰 뱀 위에 누워 다음 세상을 명상하고 있는 장면.

나의 상상 : 퍼덕퍼덕 날아다니는 천사들을 배경으로 한 수레 위 가부좌 아저씨가 벌거숭이 아저씨들로부터

신앙고백을 받는 장면.

가이드북 : ...(침묵, 설명없음)

연씨무늬 창문살이란다. 뜨거운 햇살을 막으면서도 통풍을 원활하게 하고 바깥 풍경을 볼 수 있게 하려는

'조상님의 지혜'인 거다. 꼭 한옥이 어떻네 온돌이 어떻네 하면서만 찾을 수 있는 말은 아니지 않은가.

'조상님의 지혜', 우리보다 앞선 시대를 살아간 선배 인류에 대한 존중, 경탄의 표현이니까 말이다.

중간중간 세워져 있던 No Touch. 흔히 '노다지'라고 하는 말의 어원은 구한말부터 한반도에 들어와 지금의

북한 지역 금광을 채굴하던 서양인들-대개 영어를 구사하는 미국인들-이 갱도 안에서 금을 캐던 한국인 인부가

금을 발견하고 나면 손대지 말라고 하면서 '노 터치! 노 터치!', 그로부터 비롯했다는 설이 있다. 어쨌던

'노터치'란 표지판이 기우뚱 위태롭게 선 저곳도 캄보디아 현대인들에게, 인류에게 '노다지'와 같은 곳.

비록 이렇게 새초록한 이끼가 무성해지고,

문틀 가득 세심하게 조각된 무늬들이 손을 타 닳아갈 지언정,

여전히 사람들은 중앙 성소를 찾아 순례하는 마음으로 사원을 돌아 보는 거다.

앙코르왓 지역 내 어느 사원에서든, 영어/프랑스어/일본어/중국어 등 세계 언어로 가이드를 해주는 캄보디아

현지인 가이드들이 일군의 여행객 무리들을 이끌고 다니는 걸 볼 수 있다. 그 중 한 영어 가이드가 설명하던

이야기를 훔쳐들으며 함께 감상했던 자야바르만 7세의 어머니를 본딴 여신상이라던가.

같은 여신인데, 조명이 없을 때의 은은하던 미소가 조명 아래에선 '쥐잡아먹은 듯한 입술'로 덮여버렸다.

여기는 그 가이드가 은밀히(?) 안내해주며 팁을 요구했던 또다른 숨겨진 여신상. 보존 상태도 훨씬 양호하고

표정도 훨씬 당당하다. 여신이 아니라 여왕의 풍모가 풍겨난다.

한시간반 정도 둘러보니 다 둘러봤다 싶다. 나오는 길에 다시 돌아본 통로.

갈수록 문의 크기가 작아지는 것이 느껴지는지. 사원의 네 개 대문에서 중앙성소로 이어지는 통로 중

서쪽에서 이어지는 통로는 중앙으로 갈수록 문의 크기가 작아지도록 설계되었다고 한다. 중앙, 왕이

있는 곳으로 갈수록 신하들의 머리가 숙여지도록 하기 위한 의도적 장치인 셈. 경복궁이나 덕수궁에서,

심지어는 수원화성에서도 왕이 지나다니는 문과 신하들이 다니는 문의 크기가 다르듯 여기 역시

마찬가지 아이디어가 건물에 반영된 거다.

머리가 날아가버린 수문장의 상이다. 이 곳을 공략했던 외적들이 크메르의 기운을 쇠하게 하기 위해 일부러

머리를 파괴했다는 건데, 그런 식으로 '기운'을 꺽기 위해 이러저러한 상징을 깨부수고 파괴하는 일은 사실

어느 나라에서나 조금씩은 자취가 남아있는 듯 하다. 백두대간의 쇠말뚝도 그렇고, 태국의 무수한 머리없는

부처상들도 그렇고.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