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왠지 모르게 요새 몸이 여기저기 축나는 느낌이다. 얼마전까지는 허리가 어쩌니 저쩌니, 결과적으로는 십대의

그것과 같이 몹시 튼튼하다, 라는 진단을 받았지만 물리치료를 열흘정도 받았고, 그러고 나니 갑자기 치아가

바스락, 크래커처럼 깨져버렸다. 더군다나 어금니라서 당분간 고기도 못 먹고 술도 못 먹겠구나, 암담한

전망을 섣불리 내놨지만 웬걸, 임시처방만 받고서도 잘만 술 퍼마시고 고기도 씹고.


#2.

한달에 한번이지만, 꾸준히 봉사 중이다. 처음 갔던 이상하고 가혹한 보육원 말고 역삼역 인근에 있는 영유아

일시보호소에서 채 백일도 안 지난 애기들을 봐주고 있다. 기저귀 같은 거 한번도 갈아본 적 없었는데, 의외로

처음부터 잘 해내서 깜짝 놀랬다. (주위에선 품절남의 기운이 느껴진다는 평가까지도..ㅋㅋ) 한 방에 애기들이

열두세명씩 침대안에 누워있는데, 다음에선가 했던 애기보기 플래시게임이랑 정말 비슷하다. 여기서 우는 애

똥기저귀 갈아주고 안아주고 젖병 물려주다 보면 저기서 또 울고, 난이도가 올라가면 한번에 세네명이 같이

울어제끼기도 한다. 몇시간 안되지만 애기들을 보고 나면 완전히 지쳐버리고 마는데는 이유가 있다.


애기들은 모두 귀엽다, 는 말은 절반은 맞지만 절반은 틀렸다. 올해 구시월께 태어난 비슷한 또래의 애기들도

발육상태도 다 다르고 생긴 것도 성격도 이미 다 다르다. 모빌에 눈을 맞추고 몰입하는 애가 있는가 하면, 눈만

마주쳐도 방글방글 웃어주는 애기도 있고 젖병을 빨면서도 쉼없이 짜증내는 애기도 있는 거다. 굉장히 이쁘게

생긴 애기도 있고 어린애답잖게 벌써부터 눈빛이 흐려진 애기도 있었다. 그렇지만, 역시 백프로 온전히 나의

존재를 필요로 해주는 아기들은, 그래서 그 자체로 축복인 거다.


#3.

치과를 갔다가, 봉사를 갔다가, 종로에서 송년회를 했다. 매년 그렇지만 미친 듯이 웃고 떠들게 되는 한무리의

사람들. 결국 작년에도 그랬듯 종로에서 흔치않게 24시간 영업을 하는 순대국집으로 흘러들어가 밤이 새도록

달리고 말았다. 떠들썩한 분위기, 뒤숭숭하던 마음자리가 차라리 한번 터지고 나니 정리가 조금 되는 거 같아

다행이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