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대공원, '가을방학'의 '가을방학'이란 노래가 떠올랐던 낙엽길에서.



넌 어렸을 때부터 가을이 좋았었다고 말했지
여름도 겨울도 넌 싫었고
봄날이란 녀석도 도무지 네 맘 같진 않았었다며
하지만 가을만 방학이 없어
그게 너무 이상했었다며
어린 맘에 분했었다며 웃었지

넌 어렸을 때부터 네 인생은
절대 네가 좋아하는 걸 준 적이 없다고 했지
정말 좋아하게 됐을 때는
그것보다 더 아끼는 걸 버려야 했다고 했지
떠나야 했다고 했지

넌 어렸을 때만큼 가을이 좋진 않다고 말했지
싫은 걸 참아내는 것만큼
좋아할 수 있는 마음을 맞바꾼 건 아닐까 싶다며
하지만 이맘때 하늘을 보며 그냥 멍하니 보고 있으면
왠지 좋은 날들이 올 것만 같아

처음 봤을 때부터 내 마음은
절대 너를 울리는 일 따윈 없게 하고 싶었어
정말 좋아하게 되었기에
절대 너를 버리는 일 따윈 없게 하고 싶었어

너무나도 늦어 모든 것들이

넌 익숙하다 했지 네 인생은
절대 네가 좋아하는 걸 준 적이 없다고 했지
정말 좋아하게 됐을 때는
그것보다 더 아끼는 걸 버려야 했다고 했지
떠나야 헀다고 했지
이름도 재밌는 '똥빵', 입안에서 발음을 할라치면 연이어 터지는 된소리의 박력에 깜짝 놀라고 만다.

잘 익고 잘 만들어진 그야말로 순대와 똥꼬의 환상적인 궁합을 보여주는 결정체, 이름에 걸맞는 모양새의 똥빵이다.

똥빵을 싸지르는 가게엔 역시 똥모양 인형들이 주렁주렁. '똥'이라고 한마디만 해줘도 자지러져라 좋아하는

아이들에게 아예 작정한 듯 노골적이다.

시식법은 다음과 같다. 똥빵을 산다, 냠냠~맛있게 먹는다, 응가한다, (이 대목에서 아이들 꺄아~*^0^*),

상태를 관찰한다, (아이들 자지러진다~**^O^**), 봉투에 기록한다, 그리고 봉투를 보관한다.;

봉투에 뭐라고 기록하냐고? 완전 내장과 똥꼬의 환상 콤비플레이였다고 적든, 김연아와 오서 코치처럼 이제는

내장과 똥꼬가 헤어져야 할 때라고 적든. 그건 아이 맘대로.

사실은, (어른들에게만 몰래 귀속말로 전하건대) 똥빵이나 호두과장나 풀빵이나 그게 그거다. 대충 기계는

삥삥 돌고 밀가루 갠물 찍찍 싸면 잣 하나 끼워주고 팥앙금 자그맣게 얹어주고 포개서 뒤집는다. 근데 뭐,

맛있긴 맛있더라는. 팥도 그렇게 달지 않고 똥의 훌륭한 조형미 덕분인지 빵 껍데기도 온통 노릇노릇 고소하고.

그 맛의 비밀은 인체공학적 디자인, 평생 한번 보기도 힘들다는 잘 싸진 똥을 닮은 잘 생긴 똥빵, 헤이리 가면

한 번쯤 시도해 보시길.




@ 헤이리 어디메쯤.

헤이리의 아프리칸 갤러리. 국내에서 유일하게 아프리카 목조각상들을 전문취급한다는 곳이다. 입장료는 천원.

무료로 개방된 공간에 하도 사람들이 바글바글대길래 냉큼 천원을 내고 유료 공간으로 넘어와버렸더니 정말

거짓말처럼 사람이 하나도 없다. 그렇게 무료에서 유료로 넘어가는 계단 벽면을 빼곡하게 장식한 전통탈.

각도에 따라 느낌이 제법 다르다. 대충 눈높이를 맞춘 상태에서 보면 나름 우스꽝스럽고 친근한 구석까지도

읽혀지는 표정이지만, 이렇게 밑에서 올려다보니까 차갑게 눈을 흘기는 것 같기도 하고 볼이 잔뜩 부은 채

금세라도 시니컬하게 갈굴 것만 같다.

며칠 전 트위터에서 누군가 알려준 인도의 소식. 코끼리떼가 이동하다가 새끼 코끼리 발이 철로에 끼고 말았다나,

기차가 달려들 때까지 수십마리의 어른 코끼리들이 새끼를 둘러싼 채 버텼고 결국 일곱마리인가 기차에 치여

숨지고 말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가슴이 먹먹했었다. 그 이야기를 다시 떠올리게 만들었던 너무 리얼한 코끼리,

그리고 그 살점을 뜯어먹는 콘도르떼들.

아프리카, 하면 기린떼도 빼놓을 수 없다. 드넓은 초원을 달리다가 문득 나무처럼 삐죽삐죽 솟아있는 그들의

긴 목부터 마주치는 순간은 아프리카에 대한 일종의 로망. 에버랜드에 생겼다는 초식동물 사파리에 가서 기어이

기린에 먹을 풀떼기를 쥐어주고 말겠다는 다짐을 다시 한번.

아프리카의 이 생생한 표정들, 조개껍질과 돌멩이를 활용해서 저런 얼굴을 표현해 낸다는 건, 대담하기도 하고

창의적이기도 하고. 군대 있을 때 '야전성'이란 표현을 우리끼리 썼던 적이 있는데, 뭐랄까,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재빨리 해결하는 응급조치의 순발력이랄까 유연한 발상이랄까. 그런 게 아프리카의 것들에서 느껴졌다.

그런가 하면 이런 식으로 조금은 더 '갖춰진' 인형들도 전시되어 있었다. 옷도 제대로 갖춰입었을 뿐 아니라

눈코입의 묘사 역시 클래식한 아프리카 토속 스타일과는 거리가 있으면서도 아프리카스러운 느낌은 살아있는.

조약돌 세개씩 깜장돌과 하얀돌을 늘어세운 뭔가 단촐한 게임판을 앞에 둔 채 맞은편에 놓인 화려한 의자. 저건

진짜 무슨 게임인지 어떻게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꽤나 단순한 외양 때문인지 쉬워 보이기도 하고.

강아지가 고개를 슬몃 쳐들고 눈망울을 또르륵 굴려대는 이건, 흔들의자. 반질하게 잘 다듬어진 뒷마무리가 좋다.

책을 세원둔 채 양쪽에서 받쳐두는 책꽂이가 이정도 포스를 풍기다니. 이런 아이템이 제대로 분위기를 가지려면

꽤나 그럴듯한 서재가 있어야 할 듯. 왜 그 마호가니 나무 책상에 벨벳 카펫이 깔려있는 아늑한 방.

기린 모양을 따서 만든 경쾌한 느낌의 의자들. 기린 다리 네 개로 의자의 내 다리를 형상화하고 나니 기린

모가지가 남는다. 모가지가 길어 슬픈 짐승, 바닥으로 잔뜩 꿇어박음으로써 모가지도 해결.

험상궂고 단호한 턱을 가진, 아마도 짐바브웨에서 왔었던 것으로 기억되는 전사의 목각상. 전사의 얼굴 생김이

왠지 동네 어귀 장승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게다가 짚으로 엮은 머리띠며 목걸이를 칭칭 감고 있는 것도

낯설지 않은 느낌.

이쁜 아이템들도 많았지만, 아무래도 이런 것들은 하나만 덜렁 놓여있으면 참 멍청해 보이기 마련이다. 그냥

이렇게 이쁜 것들 눈요기하는 것으로도 잠시나마 아프리카의 뜨거운 태양빛을 머리에 부어내리며 돌아다닌듯

여행의 즐거움을 살풋 맛볼 수 있어서 만족.

아프리칸 갤러리를 나와 경기도 헤이리의 햇살을 한바가지 뒤집어 썼다. 갤러리 앞에서 날개를 퍼덕이며

빙빙 돌고 있던 앵무새가 인사를 했다.





헤이리를 걷다가 '천공의 성 라퓨타'의 경비로봇과 마주치고 말았다. 여기에서 이 로봇을 마주칠 줄은 생각도

못했었는지라 조금은 놀랬고, 어렴풋하던 로봇의 실루엣이 조금씩 세세한 디테일을 곁들여 눈에 들어오면서는

그 엉성하고 옹색한 모습에 실망해버렸다.


이건 너무 엉망이란 생각, 두 팔은 무게를 버티지 못해서 쇠파이프 두개를 지팡이처럼 지탱해 놓았고, 홀쭉한

배와 밋밋한 아랫도리와 두 다리의 이어짐이라거나, 완전히 부식된 채 곳곳이 터져나간 두 발. 그래도 상대적으로

고글을 낀 것 같은 머리통은 잘 남아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 깡통 로봇을 하야오의 경비로봇이라고 한눈에

알아본 힌트도 바로 저 머리통.

미야자키 하야오의 마법솥, 지브리 스튜디오 A to Z.

이게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천공의 성 라퓨타'에 나왔던 경비로봇을 세심하게 재연해낸 지브리 스튜디오

옥상정원의 경비로봇. 뭐, 이걸 그대로 따라 만들거나 세부 모습까지 하나하나 재연하는 데 흥미가 없었다면

저런 식의 버전도 나올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어쨌든 한눈에 이 두 로봇이 '경비로봇'이란 같은 걸 보여주려

하는 '출제자의 의도'를 알아챘으니 그것만으로도 성공이랄까.

그리고 옛날 장난감들을 모아놓은 갤러리에서 발견하고 만 토토로와 고양이버스의 태엽 인형. 그러니까 저 태엽을

잘 감아올려서 바닥에 놓으면 토토로가 우산을 쓴 채 성큼성큼 다가오고, 고양이버스도 체셔고양이같은 웃음을

흘리며 달려드는 장난감인 듯. 갖고 싶다. 갖고 싶다. 갖고 싶다고 한 대여섯번은 중얼거린 거 같다.

그렇지만 이 녀석들은 비매품, 90년대인가 일본에서 판매되던 장난감이라며 진열되어 있던 소장품이다.

토토로 6만원, 고양이 버스 4만원 해서 한 10만원까지는 기꺼이 냉큼 쥐어줄 용의가 있는데.ㅜ








@ 한강고수부지 잠원지구-반포지구.


걷다보면 어느순간 다리가 자동으로 움직인다. 굳이 한걸음씩 새겨넣으며 의식하지 않아도, 그냥 제가 알아서

왼발 오른발 규칙적으로 따박따박 번갈아 내딛는 거다.


그렇게 걷고 있던 내 옆에서 함께 흐르던 한강 수면에는 색색깔의 피아노 건반이 그려져 있었다. 까뭇까뭇하게

흘러내리는 한강의 물살 위에 그려지는 가늘고 긴, 알록달록한 건반들.









@ 올림픽공원.


때로는 말보다 그저 사진 몇 장으로 그치는 게 낫겠다 싶다. 어제의 하늘, 어제의 구름이 그랬다.





@ 한강시민공원 잠원지구.


보름달 옆에 떨어질 줄 모르는 저 유난스레 반짝이는 뭉치는 분명 인공위성일 거라 생각했다. 서울 하늘에서

저렇게 밝게 빛나는 별이 보일 리도 없거니와, 다른 별들은 다 어둠 뒤로 숨었는데 쟤만 저렇게 고개를 빼고

있다고 생각하기도 어려웠으니까. 무슨 용빼는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지만 스모그 자욱한 도시에서 보일만큼 맹렬히 반짝이는 것들은 전부 인공위성, 이라고 믿던 내 얇팍한

과학적 '상식'을 비웃듯, 어젯밤에 그토록 선명하던 저 불빛은 다름아닌 목성이랜다. 항상 달의 오른쪽 허리춤

아래에 떨어뜨린 동전처럼 반짝이는 저 별은.


우야튼, 소원이란 건 지금 내가 아무리 해도 내힘으로는 안 되는 걸 비는 거라 했던가. 올해 추석은 보름달을

보고도 소원을 빌지 않았다. 여차하면 소녀시대한테 말하지 뭐.




종로의 피맛골, 왠지 추석 연휴에는 한번씩 가게 되는 곳이다. 오세훈 시장이 디자인 서울 어쩌구하면서 금세라도

다 밀어버릴 듯 하더니 아직도 '피맛골 고갈비집'은 건재하다. 워낙 추억이 촘촘이 서린 곳이라 참 반가운 곳.

몇 년전이더라, 불이 나는 바람에 가게 절반이 날아가고 그때부터 그냥 이렇게 공터로 놀리던 곳, 그 우켠에 선

건물 역시 완전완전 허름해서 무슨 폐가같기도 하고 쓰러지기 직전같기도 하지만 추석에도 쉼없이 맛있는

고갈비와 막거리를 팔고 있었다. 다행이었다.

아직 시간이 조금 일렀는지라, 가게 안에는 혼자 와서 막걸리를 드시고 계신 머리 희끗한 아저씨 한 분을 빼고는

텅텅 비어 있었다. 모양새도 색깔도, 짝도 제대로 맞지 않는 삐뚤빼뚤 제각기 놓인 의자들.

메뉴판이 있긴 하다. 얼마나 오래전에 붙여놓은 건지 반질반질 윤기가 흐르는 베니어판 벽면과 비슷한 색깔로

누렇게 변해버렸지만, 사실 여기서 다른 건 맛본 적도 없다. 앉으면 그냥 갖다주는 막걸리 한 사발과 고갈비.

메뉴판에도 벽면에도 온통 낙서투성이다. 낙서라기엔 꽤나 그럴듯한 시간과 사건들을 이겨낸 것들.

나왔다. 양은으로 만들어진 양푼에 담긴 막걸리랑 고갈비 한 마리. 여기 막걸리는 뭔지 모르겠는데 탁하면서도

단 맛이 강한 것이 특징이랄까. 살짝 짭조름하면서도 담백한 고갈비랑 같이 먹으면 딱 좋다.

조명은 늘 그렇듯 어두침침하다. 드문드문 박힌 채 테이블 하나만큼의 공간을 겨우 밝히는 전구, 그리고 창밖에서

슬몃슬몃 넘쳐흐른 햇살이 조명의 전부. 아, 냉장고에서 흘러나오는 푸르스름한 불빛도 있구나.

누군가 창문에 깃발을 붙여두었다. 지난 지방선거때 붙였두었던 깃발인 듯. 창밖으로 보이는 리어카들이 왠지

살풍경하다. 저게 혹시 서울시 표준형 리어카인가, 반듯반듯 주차된 그들 앞에서 현란한 녹색 거죽이 입혀진

리어카 한대가 반갑다.

어떻게 보면 토굴같은 느낌도 들고, 나지막한 천장과 울퉁불퉁 고르지 않은 바닥 높이 때문에 행동거지 하나가

조심스러워지는 게 기분이 색다르다. 올 때마다, 여긴 뭔가 정겨움이 그득그득.

이런 화장실 표지판도 넘 좋다. 촌스런 초록색의 왠지 촌스런 남자 여자의 그림도 그렇지만, 과거에는 단호하고

선명했을 화살표 앞뒤꼭지에 누군가 짖궂게 장난쳐둔 모양새들까지, 웃음지을 수 밖에 없는 그림들.

온통 낙서투성이인 벽면, 여기도 뭔가 신품의 냄새를 가득 풍기던 그런 때가 있었을까. 상상조차 가지 않는다.

어디서 누구 한명 담배라도 피워올리면 금세 가게 전체에 티가 나는 그런 곳이지만 나름 환기는 잘 되어서 다행,

안 그랬음 무슨 수산시장 같은 냄새가 늘 배겨있었을지도.

이런 낙서들, 추억과 즐거움을 증거하는 흔적들. 이런 게 언젠가 무지하고 둔탁한 포클레인의 무쇠 이빨에

산산이 부서져나가리라고 생각하면 가슴이 싸하다. 그야말로 수십년에 걸친, 수많은 사람들의 집단 작품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이 벽면을 통째로 어디에든 전시한다고 해도 훌륭할 텐데. 사람들은 자신이 이 공간에서

함께 했던 사람, 나눴던 이야기, 서려있는 추억을 기억하며 자신이 남겼던 낙서 한 줄을 곰곰히 찾아보지 않을까.

무엇보다 좋은 거야 그냥 이 공간이 계속 남아있는 거지만.

기둥이라고 그대로 넘어가지 않았다. 화이트로, 검정펜으로, 누군가의 기록 위에 또 누군가가 기록을 덧씌우고

차곡차곡 쟁여간다. 심지어는 전등 스위치까지. 모든 곳에 공평하게 내려앉는 눈송이처럼, 허름한 가게 안

모든 장소에 아낌없이 내려앉았다.

아니, 눈송이는 천장에까지 채워지진 않는다. 낡고 깨져서 여기저기 덧대인 천장 쪼가리에도 어김없이 새겨지는

누군가의 메시지들.

막걸리 한 동이를 기분좋게 비우고, 고등어를 남김없이 해체하고 나서 돌아나오는 길. 들어설 때는 미처 보지

못했던 웬 달마도가 입구 앞에 그려져있었다. 저건 정말, 작정하고 그렸겠구나 싶다. 기록을 남기고 전한다는

생각보다는 그저 한순간의 장난이나 술기운으로 끼적인 것들과는 조금 다른 느낌.

이 집 이름이 와사등이었나 보다. 몰랐다. 벌써 수십번은 왔을 텐데, 오는 사람들끼리는 그저 '피맛골 고갈비집',

이렇게만 말하면 통했으니까. 가게 주인 할머니한테 물었다. 여긴 안 없어지죠? 할머니가 그랬다. 여긴 절대

안 없어져요. 계속 있을 거야.


부디 계속 남아있었으면. 맛있는 고갈비도, 누군가의 메시지들도. 그래서 내 추억도.





덕수궁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아시안 리얼리즘' 전은 추석 연휴 기간에 무료로 개방하고 있었다. 김혜자를

닮은 이 인도네시아 여자는, 그녀의 인상적인 얼굴, 혹은 두 눈을 제한 나머지는 온통 흐릿하게 처리되어 더욱

강렬한 인상을 주는 듯. "병아리와 함께 있는 여자"라는 무미건조한 제목이 레알 리얼리즘의 향취 가득.

이 작품은 이번 전시의 대표 이미지로 광고나 티켓에 온통 쓰이고 있었는데 역시, 작품의 일부만 자른 채 활용된

그림들과 전체가 다 살아있는 실제 사이즈의 그림은 그 느낌이 꽤나 다르다. 가장 맘에 들던 작품 중 하나.

또 하나는 문화혁명기의 중국 화풍을 여실히 보여주는 몇 가지 작품들, 리얼리즘이 결국 대면하게 되는 사회

갈등과 모순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는 영웅화된 노동자의 모습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었다. 예컨대 이런, "구리광산의

첨병" 같은 작품. 빛나는 눈동자, 그리고 마치 기념동상이라도 된 듯 단단하고 당당하게 버티고 선 저 굳건하고

의지적인 자세, 게다가 광산 내부를 흐르는 물방울의 정밀한 묘사까지.


이외에도, 비바람을 맞으며 한밤중에 전봇대에 올라 전선을 복구하는 용감하고 굳은 눈매를 가진 아가씨의

그림이라거나, 밤중에 애기를 이쁜 포대에 업은 채 쇠스랑을 꼬나쥐고 사람죽일 눈매로 뛰쳐나오는 애아주머니의

그림 같은 것들. 보고 있으면 나 역시 절로 기운이 솟아 죽창이라도 뽑아들거나 열심히 노동해야 할 듯.

사실 한국의 20세기 리얼리즘을 보여준다는 작품들은 대개 실망이었다. 인도네시아, 베트남, 태국, 중국 등

아시아 국가들의 20세기는 어느 정도의 공통 분모를 공유하고 있었고 피식민 경험, 일본의 수탈, 태평양 전쟁,

식민지 근대화와 독재, 자본주의화 따위의 역사적 경험에 대해 치열히 대면한 작품들이 보였지만, 한국은

그다지 선명하지도 뚜렷하지도 않은 느낌. 일제 강점과 극렬한 사상대립, 한국전쟁과 반공이데올로기,

재벌과 압축 근대화 등등 리얼리즘의 냉막하지만 뜨거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주제는 무궁무진했을

텐데, 다른 나라의 작품들에 비해 인상적이지도 않았고 의미심장해 보이지도 않았다.


모르겠다. 아마도 한국의 리얼리즘을 좀더 잘 드러내는 작품들의 섭외가 안 된건지도. 그치만 그중에서 가장

맘에 들었던 작품, '속 농자천하지대본'. 쌀포대에 직접 그려진 이 작품은 표창장과 태극기와 캠페인 포스터의

활짝 웃고 있는 농부의 모습들이 온통 쭈글쭈글한 저 노인의 얼굴 속으로 우겨들어간 채, 그가 품은 한장의

편짓말로 주제를 드러낸다. 노인들만 남아 일손은 없고, 몸은 아프지만 난 괜찮응게. 부디 너그들은 대처에서

잘 살아라잉.



추석날 서울에 남아서 노는 건 처음이었다. 뭔가 공기가 달라진 채 휑한 느낌의 서울, 덕수궁 미술관에 갔다.

중화전 앞마당에 놓인 품계석들은 원래 왕이 조회를 볼 때 문무백관이 시립할 위치를 표시한 것, 그렇지만

추석을 맞아 품계석 주변에는 온통 '일반 백성'을 위한 플라스틱 의자가 깔린 채 우리 소리 한마당 공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과거의 한 때나마 '똥돼지들'이 대대손손 해먹던 자리에 '딴따라'와 '무지렁이 백성'들이

편안히 앉아 연휴의 여유로움을 만끽하다니. 유쾌한 추석.





뭐라도 해야겠다. 광장부터 열어야겠다. (2009. 7.)

[광장을 열자 조례를 바꾸자] 본격적인 서명운동을 위한 도우미자격을 얻었습니다. (2009. 8.) 


작년에 생긴 서울광장을 두고 오세훈의 서울시 측이 신고제 대신 허가제로 운영하면서 생겼던 일이다.

촛불집회를 막고, 문화제를 막고, 노무현 추모행사를 막았다. 잔디 보호를 위해, 광장 목적에 부합하지 않아,

그리고 폭력 시위가 우려된다는 다양한 이유를 '하사'해주었다. 그렇지만 서울시나 관에서 주최하는 온갖

어용 행사들은 별다른 제재없이 쉼없이 벌어졌다. 서울시는 집회 및 시위의 자유가 인간의 기본권이 아니라

그들이 허가해주는 시혜나 재량에 속한다고 믿는 듯 했다.


대학 때 조금이나마 '사람 많은 곳'을 찾아다니다가 돌도 맞고 그랬지만, 언젠가 부모님이 그랬었다. 이제 와

돌아보니 바뀌는 것 하나도 없는데 괜히 나섰지? 니가 나섰다고 뭐하나 바뀐 거라도 있냐.


뭐, 길게 이야기할 건 아니다 싶어서 알게 모르게 바뀐 것도 많다고 하고 말았지만, 사실 딱히 이런 승리를

거뒀고 이런 걸 바꿔냈다, 라는 '승리의 경험'이란 게 없는 건 사실일 수도 있겠다. 물론 상식을 둘러싸고

벌이는 밀고당기기인지라 정말로 바꿔낸 부분들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딱 눈에 드러나는 것만 따지면 그렇단 얘기.


광장은, 서울 광장은 좀 다를 거 같다. 그래도 조례 개정안을 요구하기 위한 십만명이던가, 서울시 거주인구의

몇 %에 달하는 그 인구가 이름과 연락처와 주소와 주민번호를 기꺼이 제공하며 서명을 했었고, 당시 한나라당

일색이던 서울시의회가 무시하고 사장되는가 싶더니 이제 일년이 지나 잊혀질 즈음 구성원이 바뀐 서울시의회가

단호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강남시장 오세훈이 뻗대고 있어서 그렇지만.



정 그가 헌법적 가치와 원칙을 무시하고 뻗댈 거라면, 이런 건 어떨까. 총 25개의 구가 있는 서울시에서 그가

대표하는 곳은 강남, 서초, 송파의 3개구. 서울광장을 25개로 구획해서 3개 구역범위만큼만 오세훈 맘대로

허가제로 쓰던 예비군기지로 쓰던 지지고 볶으라 그러고, 나머지 22개 구역범위는 신고제로. 서울시민과

서울시의회가 바라는 것처럼.



승리의 경험이 머지 않았다. 서울광장을 시민의 품으로.


 

[참고] 오세훈, 서울광장 조례안 공포 거부

서울광장을 놓고 서울시와 서울시의회가 다시 맞붙었다. 서울시의회가 최근 재의결한 '서울광장 사용 및 관리에 관한 조례 개정안'을 서울시가 공포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서울시는 19일 서울광장 조례가 집시법 등 상위법과 충돌한다며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지난 17일 열린 조례·규칙심의회에서도 서울시는 서울광장 조례안에 포함된 '집회 및 시위의 진행'은 시의 소관업무가 아니라며 상정대상에서 제외시켰다.

서울시청 앞 광장을 놓고 벌어지는 이 같은 충돌은 처음이 아니다. 서울시의회는 지난달 13일 시의원 79명이 발의한 이 조례안을 통과시켰지만,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6일 시의회에 재의를 요구했다.

오 시장의 재의 요구에 서울시의회는 재의결로 맞섰다. 시의회는 지난 10일 열린 본회의에서 "오 시장의 주장은 시민과 시의회를 기만하는 반민주적, 반시민적, 반의회적 오기행정"이라며 다시 조례안을 통과시킨 것이다.

서울시는 소송까지 검토하고 있다. 시 관계자는 "서울광장 조례안에 포함된 내용은 경찰청 소관업무로 심의회 상정 대상이 아니"라며 대법원에 '조례안 재의결 무효확인 및 집행정지 소송'을 낼지를 이달 안으로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오세훈 시장도 서울시의회가 조례안을 재의결할 경우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언급한 바 있다.

서울광장 조례안의 공포 기일은 19일까지로, 서울시가 이를 공포하지 않을 경우 지방자치법에 따라 시의회 의장이 직권으로 공포할 수 있다. 서울시의 소송 검토는 시의회 차원의 공포에 대한 또 하나의 맞불 작전인 셈이다.  (프레시안, 2010. 9. 19)

 오세훈 시장 서울광장 개방 끝내 거부… 은근히 편드는 언론 (미디어오늘, 2010. 9. 19)


이태원에 갈 때마다 늘 지나치는 골목, 늘 눈여겨보는 간판. 하필 오늘따라 그득그득 채워진 쓰레기봉투가 간판 양쪽을

가린 채 잔뜩 나와있었다. 아프리카 음식점이라니 대체 어떤 맛의 음식을 파는 걸까, 친절하게도 요리 하나하나 사진과

제목이 적혀 있는 메뉴판같은 간판의 도움에도 불구하고 뭐 하나 가늠해 볼 수가 없다.

이 곳의 아프리카 음식점을 꼭 한번 와봐야겠다고 맘먹은 지는 사실 오래되었지만, 궁금증 만큼이나 왠지모를 주저함도

적잖았던 게 사실이다. '아프리카 음식'에 대한 막연한 궁금증, 또 그만큼이나 막연한 거리감이랄까. 음식점은 2층,

그 위 3층에는 고시원. 저기 사는 사람들은 한번씩 맛이라도 봤으려나. 아무래도 아프리카 음식은 대중화되고 세계화된

다른 지역의 음식들에 비해 그 고유하고 독특한 맛을 타협하지 않고 지켜내고 있을 거 같다.

기세좋게 문을 열고 들어섰다. 안에는 온통 깜깜..;; 검은 분들이 마치 동네 사랑방처럼 둘씩 셋씩 모여앉아 못 알아들을

언어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한국인 따위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한쪽 벽면에 조그맣지만 단호하게 액자에 넣어져

걸려있던 사업자등록증이니 그런 서류들에서 보이는 낯익은 한글의 분위기 말고는 온통 낯선 이국의 분위기. 순간

나이지리아 쯤 되는 아프리카 어디메로 휙 순간이동해버린 듯한. 저 아프리카분들도 이런 분위기에서 위로받고 싶어

이 '해피홈'에 찾아오는 것이겠구나 싶었다.

이런 곳에서 괜히 카메라를 들고 여기저기 찍어대는 것도 민망한 짓이다. 그들의 일상, 그들의 '해피 홈'에

침입해서는 일일체험 증빙샷이라도 남기듯 마구 사진을 찍어대고 훌쩍 떠난다는 건. 그렇게 생각은 했어도

워낙 사방이 신기한 거 투성이라 가만히 있기가 좀이 쑤셨다. 흡사 여행을 떠나온 듯 방방 떠오르는 공기.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물비누 뽁뽁이랑 핸드로션의 용도가 뭘까 궁금했는데, 궁금증은 이내 풀렸다.

Grinded Rice, Gari, Pounded Yam, Fufu with Egwusi Soup이라는 길고 긴 이름을 가진 메뉴와 Joll of Rice라는

볶음밥 비슷한 걸 주문했다. 생각보다 많은 양에 놀랬고, 주문한 음식들과 함께 나온 분홍빛 양동이에 놀랬다. 손으로

음식을 먹고 마지막에 저 양동이에 담긴 물에서 손을 씻으라는 의미. 사실 다른 아프리카인 손님들에겐 전부 기본으로

주어졌던 이 양동이 대신 우리 테이블엔 스푼과 포크가 제공됐지만, 괜히 특별대접받고 싶지 않아 손으로 먹겠다고

양동이를 달라 했던 거다.

아프리카 원주민들의 생활을 다룬 다큐멘터리 같은 걸 보면 하얀 쌀가루나 나뭇가루 같은 걸 물에 개어서 떡처럼 해서

먹는데, 이게 바로 그거랑 같은 거 같다. 얌..이라던가. 생각보다 풀기도 없고 미끈한 느낌, 그야말로 '무미'해서 아무런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옆에 스프를 찍어 함께 먹는 건데 의외로 손을 사용해서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요런 식. 프랑스 사람들이 빵을 손으로 떼어 돌돌 말아서 먹듯이, 알아서 적당량을 떼어 손으로 매만지곤 스프에 찍는다.

보통은 작은 경단만한 사이즈로 만드는 거 같던데 옆에 앉았던 커다란 검은아저씨 한 분은 무슨 새송이버섯만한

기둥을 만들어서 왕창왕창 씹어드시더라는. 손으로 먹는 재미에 스프가 말라붙을 때까지 떼어먹었고, 양이 많다

걱정하던 볶음밥까지 다 먹어버렸다. 볶음밥은 꽤나 맛있었는데, 돼지껍데기나 힘줄살들이 푸짐하게 들어간 게 역시

뭔가 색다른 면모가 분명히 있었지만 이 커다란 하얀 덩어리를 손으로 떼먹는 재미앞에선 오히려 평범했달까.

냉장고에 쟁여둔 음료는 뭐, 별반 다를 것 없는 사이다, 콜라, 미란다..이런 거였는데 그런 사이에서 불쑥 눈에 띄던

음료 하나가 있었다. 말타고야, 라는 신기한 이름의 음료. 그냥 딱 보기에 맥주지 싶어서 주문하고 보니 논-알콜의

어린이 음료.;;;;

끈적하고 달콤한 카라멜시럽 맛이 생생히 살아있던, 마시고 나면 목이 마른 그런 류의 음료지만 나름 아프리카 음식하고

먹으니 잘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고.


음식을 다 먹고 가게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더니, 문득 낯설다. 아프리카에서 한국으로 어느새 돌아와버렸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갈 즈음, 사람의 마음이란 것도 싱숭생숭 어디론가 저물어간다.

건물들이 즐비하니 포위망을 좁혀오는 명동의 좁다란 샛길을 따라 흘러가는 사람들.

덩달아 붕 떠버린 마음은 결국 사고를 내고 말았다.


@ 명동, 어느 건물 5층의 까페.





점점 해가 굴러떨어지는 소리가 맹렬해졌다. 하라주쿠의 쇼핑스트리트를 돌다가 슬쩍 찾아간 메이지신궁에

도착했을 무렵은 대략 그쯤이었다. 하라주쿠는 패션과 쇼핑의 거리, 그 일정에 슬쩍 양념처럼 집어넣었던

메이지신궁은 그저 해떨어질 무렵의 산책코스였으니 얼추 맞춘 셈이다.


일본의 하고많은 신사 중에서도 '신궁'은 특별히 역대 일왕('덴노'라는 고유명사로 불러주는 게 맞을 거 같긴

하지만)을 신으로 모셔놓고 있다는 둥, 그 중에서도 특히나 조선의 식민화를 감행했던 때 재위했던 메이지

일왕을 모시고 있다는 둥의 배경지식은 별반 감흥이 없었다. 그냥 뭐, 후쿠오카나 다른 곳에서 잔뜩 본 신사나

별반 다를 거 없잖아. 누군가에게 소원을 빌고 의지하고. 혹은 그저 습관, 전통으로써 유지되고.

일왕을 신으로 모시는 거야 그네들의 종교인 '신토'에서 기본 교리에 속하는 거고, 조선을 식민지화한 그네들의

야만적인 결정도 결정이지만 그보다는 그로부터 해방된 후 뒷처리를 여전히 못하고 있는 나라에서 새삼 남의

나라 와서 격분하는 것도 우스운 일. 그래서, 그냥 해떨어질 무렵의 고즈넉한 신사를 산책하듯 돌아보았다.

어느 신사, 신궁이나 그렇듯 입구에는 도리이(鳥居)가 서 있다. 이게 하늘 천天자로부터 유래한 모양이라고들

하던데, 어떻게 보면 비슷해 보이고 어떻게 보면 또 영 꿈보다 해몽인 거 같고. 6시 가까이 되어서 그런지 뭔가

방송에서 신사 방문객들의 퇴장을 종용하는 멘트가 일어, 영어로 계속 흘러나왔고 사람들의 흐름도 전부

입구로부터 바깥으로 빠져나오고 있었다.

일단 방송은 무시, 롯데 월드 6개가 들어가고도 남는다는 면적에 넙데데하게 자리잡은 이 메이지신궁을 전부

돌아볼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으니 그냥 본전까지만, 아니면 가볼 수 있는 데까지라도 가보기로 했다. 사실은

생각보다 해가 일찍 지는 바람에 당황하고 있었다. 여섯시가 넘으니 해가 지기 시작하다니, 어쨌든 그 어느때보다

뜨겁게 타오르던 여름도 가고 있었구나. 쳇, 그보다 '일출~일몰'이라는 애매모호한 메이지 신궁의 개방시간이

문제인 거다.

도리이를 지나 한 십여분 걸어들어간 거 같은데 본전은 커녕 본전을 가리키는 푯말도 아직이다. 커다란 석등에

번쩍 불이 들어왔고, 어디선가 안쪽 깊숙한 곳에서부터 사람들이 한 무더기 두 무더기 쿨럭대며 나오고 있었다.

예상보다 신사가 크다는 사실에, 그리고 예상보다 순식간에 어두워지고 있다는 사실에 조금씩 발걸음이 빨라졌다.

어느 신사에나 이렇게 입구쯤에 짚으로 감긴 단단해 보이는 술병들이 빼곡하게 자리를 잡고 있는 걸 볼 수 있다.

몰랐는데, 이건 술이 잘 익기를 기원하며 주류 회사에서 제물로 바친 술통들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사실 

이렇게 다양한 종류의 술들이 나름의 라벨을 붙인 채 지나는 사람들의 눈길을 붙잡는 걸 보면, 마치 방문자들을
 
향해 광고를 하려는 게 본심, '혼네'일지도 모른다.

파르스름한 어둠이 소리도 없이 땅거죽에 웅크려 앉기 시작했다. 노랗게 빛나는 석등 위의 불빛이 묘한

아늑함을 자아내기도 하면서도, 어느 순간 지나는 사람 한 명 없이 온통 적막할 뿐인 너른 대로 위에 둥둥

떠오른 듯한 낯선 느낌으로 목 뒷덜미를 쿡쿡 찌르기도 했다.

본전으로 가는 길은 온통 짙푸른 숲길, 길 양켠에서 뻗어나온 탐욕스런 녹색 가지들이 서로의 어깨를 짚어내야

만족할 태세로 터널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이 신사에 들어서기 전까지 시야의 왼쪽과 오른쪽을 채웠던 건

히라주쿠의 온갖 샵들에 전시된 중절모와 원피스와 각종 액세서리들. 그것들 역시 왼쪽에서 오른쪽까지의

시야 전면을 온통 가려버릴 듯한 삼엄한 기세로 조그마한 도시 하나를 점령해 버린 듯 했다.


히라주쿠를 서울의 어디랑 비교해봐야 할까 생각해봤지만, 홍대나 삼청동이나 압구정동이나 명동, 그 어느 한

곳이라기보다는 그 모든 공간을 합쳐놓은 조그마한 소도시 정도로 놓아야 사이즈면에서나 분위기면에서나

비스무레할 듯. 일본은 확실히 대국인 거다. 인구면에서나, 도시의 사이즈면, 발전도면에서나. 1억 2천의 인구와

5천의 인구, 아무리 서울이 인구과잉의 초고밀집지역이라 해도 도쿄의 사이즈나 밀집도에 비길 바는 아닌 듯.

결국 본전까지는 포기. 거의 떠밀리다시피 돌아나와야 했다. 이미 입구에는 철문이 닫혔고, 시간은 칼처럼

지키는 일본인들은 다소간의 에누리도 없이 방문자들을 밀어내고 있었다. 아마 내가 마지막으로 나온 걸까,

아쉬움에 카메라에 담았던 쪽문으로 빠져나오고 나자 등뒤에서 철컹, 문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지금 현재 네이트온 대화명은 "아쎄이 토, 유쎄이 꾜~ 토꾜로 토끼기 이틀전".

미야자기 하야오의 지브리스튜디오가 주요 목적 중의 하나라, 며칠에 걸쳐 그의 작품들을 다시 보는 중이다.

비교적 최근에 보았던 고양이의 보은이라거나 마녀배달부 키키, 월령공주, 반딧불의 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등은 일단 뒤로 미루고 이웃집 토토로,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미래소년 코난, 붉은 돼지 정도를 다시 보았다.


고양이랑 개가 엉겨붙었다 떨어졌다 하며 앙칼지게 싸워대듯 종일 빗방울이 으르렁대던 토요일, 한강고수부지에

차를 대고 회사서 들고 온 놋북을 단단히 세팅한 뒤 캔맥주와 스낵을 사들고는 '붉은 돼지'를 틀었다. 볼륨은

최대한으로.


빗방울이 온 차체를 난타하듯 두들겨대건 말건, 국가와 민족의 이름으로 애국공채를 팔건 전쟁을 하건 말건

붉은 돼지는 전쟁을 거부하고 인간의 야만을 거부하며 하늘을 날고 있었다.


멋진 극장, 멋진 영화. 게다가 빗방울이 뒤엉키는 멋진 날씨.


< 나만의 '자동차극장' Recipe >

1. 가까운 한강시민공원이나 한적한 장소에 차를 단단히 주차한다. 
  : 사람이 많이 지나다녀 번거롭지 않을 만큼의 한적함, 그렇다고 깡패에게 삥 뜯기지 않을 정도의 안전함,
    게다가 갑작스레 물이 불어난다거나 하는 자연재해로부터의 안전함이 중요.

2. 노트북(혹은 넷북)을 자동차 전면에 고정시킨다.
  : 자동차 대시보드 아래춤에 으레 있는 컵홀더를 잡아당긴다거나 하는 식으로 적당한 받침대를 찾아 고정.

3. 스낵은 필수, 캔맥주는 원칙적 불가(예외적 옵션).
  : 영화관에서 팝콘이나 나쵸 씹는 소리가 주변 사람들에 거슬릴까봐 녹여먹었던 기억이 있다면 여기선
    걱정없이 과자를 씹을 것. 캔맥주는 원칙적으로 불가하나, 영화가 두시간짜리 이상이고 영화본 후
    한참 지난 후에나 운전대를 잡을 예정이라면 예외적으로 옵션.

4., 자세는 생각대로.
   : 의자를 최대한 뒤로 밀고 시트의 각도를 자유로이 조정, 궁극의 자세를 찾아나서는 건 본인의 몫.









총 3층짜리 자그마한 까페. 아담한 높이의 아담한 너비, 뭐랄까 조그마한 방 하나를 켜켜이 쌓아올렸다는 느낌.

2층의 천장 한복판에는 샹젤리제처럼 저울이 매달렸다. 우주선이나 잠수함처럼 단단하고 믿음직하게 생긴

창밖에서 새어 들어오는 빛발, 그렇지만 정말 깜깜한 우주나 심해 속에서 둥둥 떠다니는 것만 같은 묵직하지만

따뜻한 어둠이 걸쭉하게 고여있는 곳.

FRAGILE의 딱지가 아무것도 안 놓인 반대편 저울보다 무겁다는 위트. 섬세하고 예민해서 깨질 것만 같은

그대의 예기치못한 묵직함.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옆 창문, 기차에서 떼어온 듯한 통유리창에 누군가 풍선든 소녀를 그려놓았다.

의자와 책상의 부조화가 나름의 분위기를 자아내도록 만드는 건 '빈티지'를 표방한 삼청동이나 효자동 까페들의

기본기 중의 기본기지만, 어둑어둑함이 촉촉하게 서린 공간에서 녀석들은 여전히 매혹적이다. 난파된 잠수함의
창문을 깨뜨리며 격하게 난입하는 파도처럼 덤벼드는 빛발 덕분인지도 모른다.

묘한 색감과 분위기, 게다가 갈 때마다 사람도 별로 없는 축복받은 곳. 사람들이 기차놀이하듯 일렬로 선 채

순례하는 삼청동이란 걸 감안하면 더더욱.

화장실 창문으로 내려다보다. 화장실 창문도, 그 위의 환풍기 보호커버도 예사롭지 않다. 볼수록 세심하게

손길이 여기저기 닿아있음이 느껴지는 것도 좋다. 어라, 이런 곳까지, 의 느낌이랄까.

2층에서 3층 올라가는 길, 3층이 아니라 옥상 위 옥탑방 가는 길이라 해야 하려나. 유리로 덮인 천장에서

하얗게 쏟아져내리는 빛이 눈발처럼 내려서는 유리병, 장식장, 등불에 조용히 쌓였다.

삼청동, 갈수록 사람들만 많아지고 길가는 전부 공사중인 데다가 많이 범속해져 신비감을 잃어버리긴 했지만,

그래도 아직은 갈 만한 까페 하나가 있어 다행. (사실은 삼청동 내 마이 페이버릿.ㅋ)





원래는 올해 말에나 완공될 예정이었다. G-20 개최일자에 맞춘다며 9월까지 완공된다는 이야기가 얼핏 들리더니

어느 순간 8월 15일 광복절(그들은 '건국절'이라 하는)에 맞추어 완공될 거라 했다. 뭐, 그렇게 바싹 일정을

땡겨도 되는 것인지, 부실복원될 가능성은 없지 않은지 우려하는 목소리들이 있었지만 기어코 8월 15일에 맞춰
'완공'된 광화문이 열렸다.


광화문 복원 ‘속도전’ 강압…현장 작업자들 “부실 우려” (한겨레)

광화문에 개판깔다 (시사IN)

"광화문 복원 ‘속도전’ 강압…" 에 대한 촌평 (개인블로그 ; 진성당거사)

광화문 복원‘속도전’강압, 현장 작업자들 “부실 우려”, 편법복원 등 보도기사(2010.7.1 한겨레신문)와 관련한 문화재청의 입장 (문화재청 보도해명자료)

뭐 요지는 무리한 공기 단축을 위해 오히려 원형을 훼손하고 있거나 혹은 제대로 복원하지 않고 있다는 것,

결국 부실 복원이라는 이야기인데, 두고 보면 알 일이지만 그때쯤이면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니..

역시나 사람들은 뭔가 '배출구'를 찾아 헤맨다는 느낌이다. 광화문이 열리던 날, 그토록 뜨겁던 날씨였음에도

광화문 근처는 사람이 그득그득했다. 뭔가 거리로 나오고, 모여서 함께 즐길 기회만 있으면 그악스럽게 모이는

거다. 어떻게 보면 대단하고, 또 어떻게 보면 참 안타깝기도 하고. 월드컵 때 거리에 나가지 않음 바보 취급당하는

거나, 광화문 완공식 날 역대 최고라는 십여만의 인파가 몰린 거나 뭔가 병들었다는 징후가 읽히는 거 같아서.

사실 숭례문이나 광화문을 복원한다고 할 때 개인적으로는 아예 공사 과정을 관광 아이템화하는 건 어떨까,

그런 아이디어가 있었다. 전통적인 도구를 갖고 전통적인 방식으로 느리지만 확실하게 복원하고, 복원과정에

참여한 노동자들이며 장인들도 전부 전통 복식을 차려입고 일을 하는 거다. 공사 현장 자체를 활짝 공개한 채

복원이 완료된 결과물 뿐 아니라 복원 과정 자체에도 역사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질까.


(동물원 창살 속 환상의 동물 해태. 2010/05/10 )

그게 이렇게 해태를 쇠창살 속에 가둬두지 않고, 광화문과 숭례문을 네모난 박스 안에 가둬두지 않고, 오히려

사람들의 관심과 애정을 더욱 키우며 '함께' 복원해 나가는 방법이 아닐까. 도난 위험 따위 보안에 문제가 있다

싶으면 아예 포졸이 복장에 삼지창 꼬나쥐게 만든 경비 인력을 동원할 수도 있었을 텐데.

여하간, 그렇게 개방된 광화문. 사람들이 성난 파도처럼 서로 어깨 부딪기며 광화문을 지나기 시작했다. 중간중간

사진을 찍겠다고 문득 멈춰선 사람들 덕에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며 걷던 사람들은 서로 발도 밟고 부딪히고

카메라에 머리도 부딪히고. 그렇지만 두 마리 봉황이 펄쩍 날아오른 단청 그림이 그려진 천장은 아무래도

눈길을 빼앗고 마는 거다.

광화문을 들어서니 넓은 공간이 있고, 바로 일직선상에 흥례문과 근정전이 보인다. 이전에 조선총독부 건물이

놓였었고, 덕분에 각도가 빗겨나 이전되었던 광화문, 한국전쟁때 소실되고 박정희 때 콘크리트로 무지하게

발라졌던 광화문, 사실, 내부가 어떻게 제대로 복원이 되었는지, 저 기왓장 밑에 대나무발이 깔려 있어야할지

'개판'이라는 나무판이 깔려 있는지는 겉으로 보이지 않으니 모르겠다. 그냥, 일직선상으로 복원했다는 점,

조금은 더 조선의 정궁스러워진 위엄과 분위기를 되찾았다는 점이 당장 보이니까 일단은 좋아 보인다.

흥례문을 오르는 길, 자금성에서도 그렇듯 동아시아의 왕궁은 왕과 왕족의 영혼이 다니기 위한 가운데 통로를

제한해 두었다. 그리고 어라, 이런 게 예전에도 있었던가. 흥례문에서 근정전으로 넘어가는 길, 네모지고 길다란
 
연못이 있고 가운데엔 짧막한 돌다리가 있다. 이 돌다리 위에서 수호하느라 여념이 없는 네 마리 신물 중의

하나가 '흑록'이라던가 그 비슷한 이름을 갖고 있다던데, 성군이 잘 다스려 태평성대가 도래할 때 나타나는

영물이라고 했다.

근정문을 지나 근정전으로. 햇살이 워낙 뜨끈뜨끈하게 내리쬐는 서슬에 사람들은 우산을 양산삼아 쓰고 있었고

다른 사람들도 연신 부채질을 하며 땀을 식혔다. 근정전 위에 바글바글 올라가 있는 사람들.

근정전은 복원 이전에도 똑같이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사실 어디서부터 어디가 복원된 건지 알아보기가 쉽지

않았던 데다가 딱히 어디를 복원했다는 안내도 없어서 좀체 헷갈리더라는. 다만 한가지 확실한 건, 근정전에

들어설 때 경복궁의 정문이 아니라 인사동에서 이어지는 옆구리에 해당하는 문으로 들어섰다는 정도?

근데 굉장히 느낌이 다른 건, 역시 정문에 해당하는 광화문에서부터 직선으로 쭉 이어지는 그 길을 따라

내부로 들어섰기 때문인 듯. 궁궐에 덥썩 옆문으로 들어서는 게 아니라, 정문에서부터 하나씩 문을 지나며

들어서게 되니까 안으로 들어설수록 마음가짐이 뭔가 달라진다. 이전에 있던 것들도 새삼스런 눈으로 보게 되고.

근정전 위에 오르니 기와지붕들이 층층이 보인다. 그 너머로 살풋 고개를 내민 인왕산까지. 구중궁궐의 심처에서

바라보던 세상의 스카이라인은 이런 것이었을까.

일월성신도를 뒷배경으로 하고 자리잡은 채 국사를 보았을 근정전 내부. 왼쪽 오른쪽 측면의 문이 좁게 열린 곳으로

사람들이 우글우글, 이런 날은 자세히 들여다 보는 거 아니다, 하면서 카메라만 고개디밀고 대충 내부를 찍었다.

천장에 그려진 두 마리 황금용이 꿈틀대는 조각은 사치스럽다는 느낌은 피하면서도 꽤나 화려하다.

왕좌 앞에 차려진 신하들이 부복할 공간, 방석 하나씩은 챙겨두었더라.

사람이 넘 많았다. 이런 날은 그저 살짝 분위기만 즐기고 얼른 빠지는 게 상책이지 싶었다. 그늘만 찾아 살포시

즈려 밟으며 다시 돌아나오는 길.

대만에서도 돌아다니다가 사람들이 지하철 역에서 지상으로 올라나오자마자 우산인지 양산인지를 펼치는 통에

비오나 하고 맨날 깜짝깜짝 놀랬었는데, 이제 한국도 그렇게 되려나 보다. 우산이 양산도 되고 양산이 우산도

되는, 열대성 기습폭우 '스콜'이 게릴라처럼 치고 빠지는 동남아 기후.

광화문의 뒷통수 사진. 여전히 사람들은 순례하듯 열지어 광화문을 지나 흥례문으로, 근정문을 지나 근정전까지

앞으로 앞으로 걷고 있었다. 이 또한 광화문의 뒤틀어진 각도가 원상복귀되어 일직선상에 궁궐이 놓인 덕분이다.




동작대교니 어디니, 한강의 다리들 위에 언젠가부터 요 비스무레하게 생긴 까페들이 볼록하게 튀어나왔더랬다.

언제고 한번 가보겠다고 맘만 굴뚝이다가 어젯밤 불쑥, 동작대교의 '구름까페'로. 동작대교엔 구름까페와

노을까페가 대교 양편에 버티고 섰는데 한 삼십대쯤 차를 주차해놓을 수 있는 공간도 있다. 덕분에 교통체증의

원인이라고 원성도 높다던데 월요일 밤 열시쯤 가서 그렇겠지만 한가한 분위기.

동작대교 남단에서 강넘어 남산촌을 바라보았다. 건너편 강변의 주홍볼빛과 이편 스테인레스 울타리의 은빛이

묘하게 대치하는 느낌.

구름까페는 3층이던가, 건물 위에는 전망대도 있어서 내키면 음료를 들고 올라와 마셔도 될 거 같다. 비가 온

직후라 그곳의 테이블은 온통 빗물에 씻겼다.

양초칠을 빽뺵하게 하고 비를 맞았으면, 혹은 물을 뿌렸으면 동글동글 이쁜 물방울들이 맺혔을 텐데, 아무래도

이 테이블들은 그렇게 준비된 상태는 아니었는지라. 물방울들이 지들 마음대로 쪼개지고 뭉치고. 그래도

그 올록볼록한 느낌은 생생하다.

동작대교를 넘나드는 차들의 행렬. 빨갛고 노란 불빛이 띠처럼 대교에 감겼다.

그리고 올림픽대로, 여길 88대로라고 부르는지 올림픽대로라고 부르는지에 따라 세대가 구별된다고 했던가.

올림픽대로를 따라 줄지어선 가로수들이 마치 디오라마를 꾸며놓은 나무 모형같다.





이태원 이란음식점에서 물담배 한대 땡겨보시려는지.(물담배 원리도 첨부)

에서 포스팅했던 그 가게, 이제 이태원에 다섯 번 가면 한 번쯤은 꼭 가야 하는 곳이 되어 버렸다.


평을 빌자면, 주인 아저씨의 한국어 실력은 그새 조금 더 진보했고 또 그만큼 페르시안 음식들의 맛도 조금 더

향상된 거 같달까. 조금 바뀐 인테리어도 이전에 비해 조금은 더 세련된 느낌.

메뉴판을 한번 찍어두고 싶었는데 이제야. 메뉴에 나온 음식은 거의 다 먹어본 거 같다. 가격도 그렇게 비싸지

않고, 약간씩 변주된 이란의, 페르시안의 음식들.

메뉴판 반대편, 농염한 자태의 글래머러스한 흑발 여인이 포즈를 취했고, 페르시아의 유물이 가게 이름 위에

내려앉았다.

Chelo Kebab, 양고기 비비큐랑 양파, 오이, 구운 토마토랑 밥이 함께 나오는 메뉴.

Gheimeh, 양고기와 렌틸콩, 감자와 레몬으로 국물 자작하게 만든 소스와 함께 밥이나 난을 함께 먹는다.

양고기 특유의 냄새를 애써 눌러 잡지 않았지만, 딱히 거슬리진 않는다. 오히려 그 양 냄새를 즐기는 편이라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요구르트, 플레인이면서도 시지 않고 정말 담백하고 걸쭉한 느낌이라 난을 찍어먹기 딱 좋은 만큼의 점도.

모처럼 갔으니 시샤 한 대 한 피고 돌아오는 건 예의가 아닌 터. 가장 맛좋은 애플 대신에 주인 아저씨의

추천으로 '피치'를 택했다. 처음엔 다소 옅게 올라오던 복숭아향이, 어느순간 물기를 담뿍 머금은 촉촉한

수증기처럼 폴폴 올라왔다. 생각의 줄을 놓은 채 뻐끔뻐끔, 집에다 한 대 들여놓았음 좋겠다고 또다시

마음이 동해버렸다.





밤에 차를 끌고 나가서 한강에 앉을 때 늘 아쉬워하는 것 하나. 호이포이 캡슐을 만들어줘.

흐르는 강물과 번지는 불빛과 나부끼는 바람을 느끼고 싶어서 나가는 건데, 맥주 한 캔이 없으니 영..

차를 끌고 와서는 술 한잔 여유있게 마시고 차는 호이포이 캡슐에 퐁, 넣어서 주머니에 담아 돌아가고 싶단 말이다.

차의 부피를 Zipping해서 호이포이 캡슐에 설혹 넣는다고 쳐도 차 한대의 무게까지 줄지는 않을 테지만 그렇게

엄밀하게 따지는 건 손오공의 '수세식 변기보다 깨끗한 마음'을 욕보이는 셈이니 관두고.


사실 휴머노이드 형태의 '차량용 호이포이 캡슐'은 이미 등장했다. 사실 꽤나 보편화되었다.

대.리.운.전.

@ 잠원 한강고수부지.

삼각대를 쓰지 않고 사진을 찍었을 때의 나쁜 예. 삼각대 들고 다시 한번 가야겠다.





그 높이가 무려 508미터. 버즈 칼리파(버즈 두바이)가 완공되기 전까지 세계 최고 높이의 빌딩으로 인증받던

타이페이101인지라 시내 곳곳에서 그 모습이 보인다. 하늘을 찌를 듯 하구나, 왠만한 빌딩은 아무리 바싹

눈앞에 땡겨놓고 원근법의 힘을 빌린다 하여도 딱히 상대가 안 된다.

길가를 다니는 타이완 현지인들이야 쏟아져내리는 햇살을 막느라 양산을 쓰고 다니느라 다른 곳에 시야를

두진 않겠지만, 마냥 모든 게 신기해서 두리번두리번대는 여행자의 마음으로는 뭔가 계속 낯설고 새롭고

재미난 것들을 찾아내려 눈이 벌개져 있는 거다.

오토바이가 유난히도 많은 타이페이 시내, 어디서든 신호만 걸리면 마치 모래와 자갈이 분별깔대기에서

분리되듯 오토바이가 맨 앞으로 몰려나온다. 그 뒤론 커다란 차들이 꼬리를 물고 서 있고. 멀리 하얀 햇살에

투명하게 탈색되어 버린 타이페이101의 윤곽.

어디쯤이던가, 도심을 걷다가 어느 순간 불쑥 눈앞에 나타나버린 101에 깜짝 놀랬었다.

다른 건물들이 그렇게 낮지도 않다. 우리나라 서울이랑 비슷하게 적당히 오래된 저층 건물들도 많고 새롭게

올라간 높고 두꺼운 건물들도 적당히 섞여 있지만, 단연 눈에 띄는 높이와 외관이다. 죽순의 형태를 형상화했단

말을 듣기 전에도 슬쩍 예감할 수 있었다.

단수이에 가는 길이었던가, 어딘가의 고가 위를 달리는 차에서도 멀찌감치 타이페이101의 우뚝 솟은 실루엣이

보였다. 다소 도도해 보이기도 하고, 조금은 외로워보이기도 하고.

타이페이101의 91층 전망대에서 야경을 보겠다며 나선 길, 조금씩 빌딩 앞으로 다가설수록 고개를 젖히는

각도가 가팔라졌다. 호오...서울의 트레이드타워나 63빌딩보다는 확실히, 월등히 높구나.

모양새도 꽤나 정묘하게 만들어진거 같다. 미끈하고 유려하게 뻗은 라인과 금빛 번쩍이는 외관을 자랑하는

63빌딩이나, 상승을 거듭하는 그래프 모양처럼 생긴 트레이드타워와는 또 다른 느낌이 있다. 우선 외관 자체에

돌출된 부분이나 장식물처럼 매달린 부분들이 있어서 그런 거 같고, 왠지 손으로 만질만질하면 그 오돌토돌한

골격의 촉감이 고스란히 전해질 거 같아서 그렇기도 하고.



 
이태원을 걷다가 정말 빵터지고 말았던 티셔츠의 그림. 소주 두잔에 부자라고 큰소리, 넉잔에 잘생겼다고 자뻑,

여섯잔엔 총맞아도 안 죽는다는...왠지 이쯤에서 고무고무~ 를 외칠 듯한 만큼 술이 올랐겠지. 그리고 여덟잔,

드디어 酒仙의 경지인 거다. 투명인간이 된단다. 중학교 때 교실에서 돌았던 야설에는 투명인간이 되고 나면

해보고 싶은 온갖 것들이 담겨있었다.

험험. 우야튼, 이태원을 좋아하는 이유는 이런 이국적인 느낌. 소와 양과 닭고기를 판다는 여느 표지 하나도

심상하지가 않다, 물론 양고기 자체로도 이미 꽤나 이국적이겠지만.

여기저기 둘러보다 보면 어쨌든 꼭 들르게 되고야 마는, 이태원의 모스크. 예전에 갔을 때보다 조금 더

단정하게 꾸며진 것 같다. 그때도 정면의 저 초록색 글씨가 있었던가...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아랍쪽 국가에 다녀온지도 벌써 반년이 넘었다. 취직하고 나선 거의 반년마다 그런 동네로 출장을

갔던지라, 슬슬 좀이 쑤시는 게 어디가 되었던 나갈 때가 되었다고 알리는 듯 하다. 역마살에 가까운 무엇.

우두, 라는 말이 화장실을 의미하는지는 몰랐다. 그리고 여기에 굳이 이런 식으로 한글로 '우두'라고 적은

화장실 표지판이 있을지도 몰랐다.

저 꼬불꼬불한 아랍어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그리고 대개 오른손잡이인지라 자기가 쓴 글씨를 스스로 뭉개며

씌여진다는 걸 아는 사람이 생각보다 적은 듯 하다. 볼수록 신기한 글자. 전체적인 윤곽선은 대충 익숙한데

저걸 대체 어떻게 끊어서 읽어내는지는 여전히 미궁 속.




거대 잠자리가 날아다니다가 날개를 풀고 쉬어가는 곳. Dragon-fly라는 영어이름이 비로소 그 위용을 되찾는 듯.

그리고 가슴팍에 붉은 심장 대신 은색 바람개비가 파닥대는 아저씨가 아이들에게 아낌없이 몸을 내어주는 곳.

서울숲이다.




오늘 시청앞에서 뜬금없이 마주쳤던 말과 포도대장 아저씨, 옆에는 버스가 씽씽 달리고 있는데 요 잘생긴

말들은 벌써부터 주눅이 들었는지 잔뜩 겁먹은 표정이다.

이번 월드컵, 사실 4년마다 돌아오는 월드컵은 그다지 마뜩찮다. 축구에 평소 관심이 있던 것도 아닌데다가

사실 별로 긴장감도 없고 스릴도 없는 경기를 두시간여 멍하니 지켜봐야 한다는 건 고문에 가까운 일이다.

더구나 갈수록 그 'Reds'들이 대기업에 놀아난다는 느낌. 처음 2002년에 거리를 그들이 접수했을 때만 해도

오, 이건 뭘까 멋지다~ 생각이 없지 않았지만, 점점 상업화되고 대기업의 도구로 전락하는 느낌이다. 하여

'대한민국은 샤우팅입니다' 요 짧은 문장 하나에서 맘에 안드는 글자가 무려 일곱글자나 된다.

우야튼, 교보빌딩 앞을 지나다가 재미있는 장면을 발견. 교보빌딩이 포장중이었다.

아직 어떤 문장인지 명확히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그대들의 함성으로 승리를 두드려라' 정도 되려나. 홍명보

형님이 활짝 웃고 있는 오른쪽의 그림은 열심히 건물 외벽에 부착작업 중이었다.

참 고생이시구나, 싶었다. 늘 여길 지날 때면 교보빌딩 외벽에 적힌 몇마디 촌철살인의 문구들이 참 좋았는데

저기도 월드컵 열풍을 빗겨나가지는 못하는구나 싶어서 씁쓸하기도 하고. 사실 난 차라리 SBS가 월드컵

중계를 독점해서 다행이라 생각한다. 월드컵 기간이라고 개자식들이 사건사고를 안 치는 것도 아니고.

다른 채널에서는 그래도 내가 궁금한 것들에 대해 무기력하게나마 이야기해주겠지.





건강검진을 마치고 뒤늦은 출근길, 트레이드 타워의 유리 벽면에 흰 구름이 크림처럼 가득 얹혔다.

파란 하늘 위 흰구름이야 원체 이쁘니까 따로 말할 필요도 없다지만, 이런 칙칙한 건물조차 이토록 쌈빡하게

꾸며줄 수 있다니. 저 키큰 건물이 하늘에 풍덩 빠져버렸거나 미끌려 들어가버린 듯한 느낌으로. 좋은 날.





부처님 오신 날, 혹은 석가탄신일, 초파일이라고 불리는 하고 많은 이름들이 있는데 왜 하필 머릿속을 스친 건

'부처님의 날'이었는지 모르겠다. 점심시간, 작정하고 카메라를 둘러메고 나갔던 봉은사 풍경이다.

소담하게 피어오른 하얀 꽃이 절간의 처마를 가렸고, 그보다 훨씬 크고 번쩍거리는 연등이 하늘을 온통 가리웠다.

불기 2554년, 부처님 오신지는 2500년이 넘었는데 끝없는 윤회의 업을 넘어 니르바나의 땅에 도달한 중생은

몇이나 될런가. 이번 생도 피곤하다.

도심 속 '노른자위' 땅에 이런 절이 자리잡고 있다는 건 사실 많이 드문 일이다. 대부분 산좋고 물좋은 벽지에

둑뚝 떨어져 있기 마련이어서, 결과적으로 지금은 갈수록 협소해진 채 보호받는 '국립/도립/군립 공원'에

하나씩 겹쳐져 있는 셈이다.

초파일 연등 접수대. 연등 하나도 꽤나 적잖은 가격이 붙어있다고 들었다. 어쩔 수 없이 연등 하나에 얼마면 여기

몇개가 달리니까 토탈해서 얼마쯤 되는 건가, 하는 계산이 머릿속에서 이뤄지곤, 그 금액에 입이 벌어지기까지.

불과 몇 초 어간에 일어난 일.

천안함 희생자들에 대한 근조 간판, 현수막은 여기저기서 봤었는데, 봉은사에도 하나 있었다. 메시지를 내건

주체에 따라 꽤나 다른 방식의 서술과 뉘앙스가 있었지만, 글쎄. 이미 천안함 사건은 팩트 차원을 떠나 그들의

소설이 단단한 현실 영향력을 갖게 된 듯.

멋지게 용트림중인 나무. 에구구구, 라는 요조의 노래를 BGM으로 깔아주면 딱 좋을 텐데.
 
에구구구, 봄이 왔구먼. 성가시고로.

뒤에 삐쭉삐쭉 선 코엑스 인터콘티넨탈 호텔과 아셈타워, 멀리는 트레이드타워랑 그랜드 인터콘티넨탈 호텔까지.

그런 배경으로 이렇게 고풍스런 누각이 서 있는 풍경, 게다가 빛이 가득 배어나오는 5월의 하늘.

부처님 입상 옆에는 연등을 세팅하느라 정신없으신 분들, 아시바를 저렇게 쌓고 색색의 연등으로 부처님 주위를

뺑~하니 두를 모양. 부처님의 날/초파일/석가탄신일/부처님오신날에 여기 꽤나 볼만 하겠다.

선연한 자줏빛의 철쭉..이던가, (정확히) 이름모를 꽃들과 이름표들이 빼곡히 달랑대는 연꽃들.

스님들이 거처하는 절간방, 그 신발꽂이에서 발견한 따뜻해보이는 털신발들.



아셈타워와 코엑스 인터콘 호텔 사이의 조그마한 오솔길, 앉고 싶어지는 맘이 동할 때쯤 벤치가 하나씩 꽂혀

있어서 영화 보기 전이나 잠시 짬이 날 때 앉아서 바람 쐬며 초록빛 가득 눈에 담기에 딱 좋은 곳.

아무래도 높다란 건물 사이에 끼인 듯 마련된 오솔길이어서 건물 사이로 쓍쓍 부는 바람이 맹렬하긴 하지만,

나름 조그마한 물길도 있어서 물흐르는 소리도 졸졸 들리고. (비록 수돗물일지언정)


도시락도 까먹고 벤치에 앉아 망중한도 즐기고 참 그새 많은 추억이 구비구비 서린 곳.




까만 먹장이 둘린 하늘엔 연등이 둥둥 떠있고, 살짝 비린내가 풍기는 청계천 수도물하천엔 호랑이며 선녀 따위

모양의 연등들이 늘어서있었다.


애초 종이에 저런 그림을 그린 후 조립하는 걸까 아님 철사로 모양을 잡은 후 그 종이 위에다가 그리는 걸까,

어떤 경우라 해도 저런 사이즈의 연등을 만들어내기란 꽤나 공덕이 필요할 게다.

그리고 청계천을 밝히던 십여개 연등의 행렬이 끝난 즈음, 디지털 가든이던가 그런 이름으로 꿈지럭꿈지럭

피어나는 꽃송이들. 꽃이라고는 하는데, 오히려 뭔가 자동차가 꿈틀꿈틀 변해서 로봇으로 변하는 트랜스포머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점심시간, 어제 눈여겨 봐두었던 봉은사 앞의 현수막 앞에 섰다.

"거짓말을 하지 맙시다."


한참 노무현 전대통령을 죽음에 몰아넣었던 검찰의 강압수사에 대한 공분이 일던 무렵에도

봉은사 앞에는 현수막이 걸렸었다.

"대한민국 검찰의 출입을 금합니다."


종교가 이 땅을 밟고 섰지 공중부양을 하는 게 아닌 바에야, 이런 '현실 개입'은 필요하지 않을까.

법정 스님이 '무소유'를 이야기하며 청빈하고 정갈한 삶을 살았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분이 4대강 사업에 반대하고 지천으로 벌어지는 토목사업에 반대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봉은사 정문 앞에는 뜬금없는 대자보가 나붙었다. 대학가에도 다시 대자보 문화가 일고 있다더니, 이젠 절에도

대자보가 붙어야 한다. 원래 대자보는 문화혁명기 중국에서 잘 활용되었다고 알고 있는데, 억눌렸고 표현의

욕구가 가장 원초적이고 원시적인 방식으로 표출된 수단으로 읽을 수 있을 거다. 세련된 방송, 지면에서 쫓겨난

사람들이 어떻게든 스스로의 목소리를 내고 싶을 때.

A4용지에 커다란 폰트로 가로뽑기를 해서는, 전지 한장에 여덟장 정도로 붙여넣는 게 대학가의 대자보 기본형태.

봉은사 앞에는 전지 한장에 직접 출력해 낸 '일독을 청합니다'라는 글. 정말, 봉은사에 외압을 넣고 종교에

정치적 입김을 불어넣는 사람들, 일독을 청합니다.

'존경하는 총무원장님'도 한번 봐 주시길. 읽히기 위해 벌려놓아진 글이니만치.





이전에 찍어두었던 사진들, 지금은 이 공간이 싹 사라져버렸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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