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린 듯 쏟아붓기 시작하는 폭우와 교통체증 때문인지 8시 반이 되도록 사람들이 자리를 찾아 헤매고 있었다.
강렬하게 조명이 내려꽂히는 무대, 그리고 시야를 하얗게 휘발시켜 버리는 조명이 빙빙 도는 천장 아래
잔뜩 설레고 흥분된 사람들의 웅성거림. 원더의 공연이 시작되기 전, 폭풍전야의 흥분.
마법처럼 너울대며 퍼져나왔다. 시작부터 목에 건 키보드를 격하게 치다가는 옆구리에 끼고 치고, 뒤로 돌려
치고 급기야 자리에 벌렁 누워서 치는 황홀한 퍼포먼스를 보였던 원더. 그의 꿈틀대는 동작 하나하나, 마치
음악에 흠뻑 취해서 경련하는 듯한 극도의 쾌감이 느껴졌다.
민 걸까 아님 앞에서부터 까진 걸까. 문득 궁금했지만 이내 그의 압도적인 음악 앞에 지워져 버렸다.
Isn't she lovely의 한 대목. 아이폰으로 동영상을 찍으려면 가로로 눕혀 찍어야 한단 걸 몰랐다. 아놔..;
그의 공연을 보러 간다고 자랑했더니 누군가 곧 애아버지될 분이 하던 말, 뱃속에 있는 딸에게 이 노래를
들려주고 싶다는. 정말 이 노래는 남녀의 사랑이 아니라 자신의 딸에 대한 사랑을 노래했다는 걸 알고 들으면
더욱 아름다운 거 같다, 더구나 평생 얼굴 한번 못 보는 딸이 태어나자마자 처음 그가 했던 말이라니.
'사리'처럼 품고있는 그의 노래나 퍼포먼스는 정말 감동이었다. 마치 트럼펫같던 그의 음색은 오히려 앨범으로
녹음된 것들보다 실제로 듣는 게 더욱 압도적이고 파워풀하면서도 감미로웠다는 느낌.
또다른 공연 실황. 어줍잖은 아이폰의 동영상이라 화질도 별로고, 내 위치도 다소 코너에 몰렸는지라 볼 것도
없지만, 그의 목소리와 노래, 그리고 사방에서 터져나오는 아우성같은 환호소리가 레알.
섭렵한 거 같고, 몇몇 그의 최근 노래들도 불렀던 거 같고. Overjoyed. you are the sunshine of my heart,
isn't she lovely, i just called to say i love you, for once in my life, for your love, free, happy birthday,
lately, if you really love me, part time lover, superstition, uptight, yester me yester you yesterday...
대체 그의 명곡들은 왜 이리도 많은 건지.
그런 것들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꿈처럼 스티비 원더와 한 공간에서 미친듯이 소리지르고 노래를
따라불렀다는 기억만 남아 버렸었다.
그래서 두 글자로 그의 공연 소감을 정리하자면, '엉엉'. 날 가져요 스티비 원더. (그날 이래 변치않는 내 네톤
대화명이기도 하다. 그에 대한 나의 최대한의 경의를 담아.)
그리고, 담번에는 그의 노래들 가사를 전부 외워야겠다는. 15년 후쯤 다시 돌아올 그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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