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남대에서 채 못다했던 이야기들, 그 중 하나는 대통령이 쓰던 화장실 이야기다. 아직 못 돌아본 코스도 꽤나

있어서 조만간 한번 다시 가봐야겠다고 다짐중이기도 하다.

이렇게 얼기설기 쪼아올린 봉황이 마당에서 깃을 드리우고 있는 청남대. 대통령의 별장이니, 대통령이 쓰던

보트, 대통령이 쓰던 가구, 대통령이 쓰던 숟가락, 대통령이 쓰던 티비, 당연히 대통령이 쓰던 화장실도 있다.

그런 것들이 있는데도 노무현 전대통령이 충북도청에 소유권을 위임하고 민간에 개방된 후 줄곧 적자에 시달리는

이유 중 하나. (전적으로 내 생각이지만) 저렇게 다섯 명을 합성해 놓는 역사의식과 '입장'의 결여. 저 사진은

그저 재임순서로 다섯명을 늘어세웠을 뿐 아무런 메시지도, 의미도 담지 못한다. 정치적 논란이나 '편향'을

우려해서였겠지만, 그래서 남는 의미는 단 하나. 29만원 있다는 살인마나 벼랑에서 떠밀린 정치적 살인의

희생자나, 그냥 '대통령'으로 마주하게 될 뿐이다. 이넘이나 저넘이나 다 똑같애, 정치인이 다 그렇지, 따위

거침없이 사방에 내질러지는 삿대질을 부를 뿐이다.


그리고, 저렇게 다섯 명이 화목하게 서 있는 모습이 현실에서 가능할 법한 이야기인가. 청남대에서 일부

대통령의 후광을 걷어내야 하지 않을까. (기억을 지워버리자는 게 아니라, 무작정 '대통령'이라고 드리워진

후광을 떼내어 버리잔 이야기다.) 차라리 현실 정치에 대한 감을 조금은 더 익힐 수 있는 배움의 장으로

활용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그리고 또 하나의 적자 이유는, 본관에서의 내부 촬영 금지 아닐까. 청남대 본관에 실내화신고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게 여기서 찍었다는 드라마 관련 사진들이다. 드라마는 되는데 왜 일반인은 안 된다는 건지.
 
대통령이 청남대로 쉬러 오면 몸을 뉘어서 쉬었을 그 침대. 대통령의 침대는 왜 사진찍으면 안 되는 건데, 하며

맘대로 슬쩍 셔터를 눌렀다.

대통령의 집무실. 저 스탠드는 왠지 낯익은 게 울집에 있는 내 스탠드와 같은 종류 같다. 저 옷걸이는 왠지 예전

외할아버지댁에 있던 그런 퀴퀴하고 낡은 것과 비슷해 보이고. 아, 그런 건가. 무려 대통령이 쓰는 일상용품이

일반인들의 그것과 같거나 별반 차이가 없으면 '격'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걸까. 와서 보는 거야 어쩔 수 없지만

사진으로 증거를 남기게 하고 싶지 않았던 건지도 모른다.

짠~ 여기가 대통령의 화장실. 세상에, 비데도 없고, 금칠도 안 된 뽀오얀 도자기색 그대로인 데다가, 작다.

사진이 많이 어둡긴 하지만 다를 게 없구나 참. 슬쩍 고개를 디밀었다가, 이내 빼버렸다. 뭔가 대단한 걸

기대한 것도 아니지만 역시나 별 거 없는 거다. 다만 남는 건 상상의 영역, 저기에 바지 내리고 앉아서

볼일을 보았을 전두환, 노태우를 위시한 전임 대통령들의 모습. 더러는 술 먹고서 변기 붙잡고 토했을지도.

가끔 국무에 시달리거나 혹은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에 시달린 때에는 '피똥 쌌을지도' 모를 일이다.

2층짜리 건물인 청남대 본관에 엘레베이터가 생긴 건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된 후라 한다. 발을 절뚝거리던

그에게 꼭 필요한 거였으리라.

테이블과 의자가 놓인 방, 쇼파와 골드스타 텔레비전이 놓인 방, 그 다른 한쪽에는 한식방도 있었다.

다른 나라들의 옛 왕궁이니 대통령궁이니 이런 데도 사진 촬영은 다 허가하던데, 굳이 사진 촬영을 금지한 건

왜일까. 그들의 생활 소품이 찍히고, 화장실이 찍혀서 그로부터 상상력이 뻗쳐나올 걸 저어한 걸까. 그들의

'품격'과 '위엄'에 손상이 가는 일이라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글쎄. 그들이 무슨 김태히나 송혜규도 아니고

이슬만 먹고 살 리도 없고 화장실도 안 갈리 없는 건데.


그런 '인간적인' 모습을 노출시켜서 격이 떨어지리라 생각할 만큼 그들이 높은 곳에 있다고 여겼던 거라면 더욱

심각한 오해다. 드라마 촬영은 허가해 놓고, 그런 스틸 사진으로 본관 1층을 쫙 도배해놓은 마당에 일반인들의

촬영은 막으니 더욱 이해할 수 없다는 거다.

청남대 전 지역은 산나물 채취금지구역, 어쩌면 이렇게 잘 보전된 채 손을 안 탄 지역에 산삼이라도 한 뿌리
 
자라고 있는 건 아닐까.

기념관에 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손바닥 자국. 손금을 볼 줄 안다는 사람은 저 손금 중 생명선이 2009년께

끊겨 있는지 한번 봐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노무현 전 대통령 역시.

청남대의 화장실 표시. 일반인들을 위한 화장실이나 대통령을 위한 화장실이나 변기는 똑같구나, 왠지 안심한

마음으로 맘껏 사용할 수 있었던 화장실 변기.

청남대 관람안내. 혹시 다음 가실 분을 위한 자상한 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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