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달전인가, 어느 시사잡지에서 '통인시장'의 상인분들이 미대생들의 재능기부를 받아 각자의 상점을 나름대로

이쁘게 꾸몄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었다. 생선가게에는 생선의 테마로 한 참신한 간판이나 장식들이 내걸렸고

옷가게는 옷을 가지고 꾸며서 사람들의 이목과 발길을 붙잡는다는 컨셉이었던 던 거 같은데, 직접 가서 보니

정말 시선을 확 붙잡을 만큼 독특하고 재미있는 것들이 여전히 깔끔하게 손님들을 끌고 있었다.

'여기 속옷집이 있다, 비와이X'. 가게 앞에 속옷만 입은 사람 형상의 판넬이 둥둥 공중부양중이다.

건어물가게, 주렁주렁 엮인 명태가 매달려 있는 옆에는 눈이 부리부리한 오징어가 매달려 있다.

'반찬과 함께 사라지다', 오래된 영화포스터를 연상시키는 간판과 함께 LP판을 활용한 메뉴판.

두부와 콩나물국과 만두, 새하얀 천과 금박이 입혀진 빨간 천이 번갈아 널린 장식이 제법 단정한 분위기.

어느 생선가게, 겨울이라 조금 춥게도 보이지만 생선들이 신선하다는 느낌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는 바다수영의 포스.


미용실 앞에 있는...음...용도불명의, 그렇지만 스케일도 그렇고 모양새도 그렇고 딱 미용실을 나타내는 (아마도) 간판.

과일들이 으레 그렇듯 바닥에서부터 차곡차곡 진열된 것 뿐 아니라, 가게 위쪽에도 맛나보이는 과일들이 그득하다.

어느 분식점, 과자 포장지를 활용해서 찢어붙이기를 한 듯, 곰인형 한마리가 둥둥 떠있다.

어느 고깃집 유리창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고 있는 댕기머리 총각. 티비를 훔쳐보는 건가 싶은 재미있는 풍경.

생선가게 앞에 '천하대장군'처럼 우뚝 선 물고기 한마리. 심심하게 서 있던 기둥에 표정이 생겼다.

그리고 심심찮게 보이는 SINCE 천구백몇년, 생각보다 연륜이 오랜 가게들이 많이 있었다. 50년이 넘은 떡집도 있고.

자하문길로부터 들어가는 통인시장 입구. 쭉 한길로 이어지는 심플한 시장통이 필운대길쪽까지 뻗어있다.


전통 재래시장을 살리기 위해서는 대통령이 한번 가서 오뎅 하나 집어먹고 뻥튀기 하나 산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다.

이렇게 시장을 정비하고 꾸미고, 이야기를 얹는 등 다양한 노력이 있어도 쉽지 않은 일일 텐데.


이렇게 고객만족센터도 만들고, 통인시장에서 파는 반찬거리나 부식재료로 만든 도시락 까페도 만들어 운영하고,

통인시장은 나름 재래시장으로 살아남고 부흥하기 위한 서비스 마인드와 아이디어가 통통 튀고 있었다.

일회용 우의를 판다는데 포즈는 왜 저리도 시크한지. 우산을 슬쩍 쥐고 있는 두 손가락이나 푹 눌러쓴 모자도 완전 시크하다.

김치마을, 가게 주인 아저씨 아주머니들의 얼굴이 그려져 있는 게 '마을'의 분위기가 물씬하다. 통인시장, 통인마을이랄까.

심지어 상점에도 이렇게 손이 많이 들었을 아치가 세워져 있었다. 가게에서 파는 맛소금이니 밀가루니 따위의

포장재를 하트모양으로 잘라서 달아놓으니 뭔가 가게에서부터 하트가 뿅뿅 날아올라가는 분위기.

분식 집 앞에서 방긋 웃으며 손님을 기다리는 김밥 내외.

전집 간판에 달라붙어 놀고 있는 몇몇 살찐 졸라맨 버전의 아이들은 '전의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신발이 전시된 모양 그대로 이미 이쁘단 느낌을 자아내는 신발가게의 간판은 화려한 색감을 더했다.

식당의 메뉴가 그림과 글씨가 묘하게 뒤섞인 캘리그라피로 문짝이 그려져 있는가 하면,

떡집의 '떡'자는 화려한 꽃그림으로 치장이 되어 시선을 붙잡는다.

어느 만두집 간판 위에는 크리스마스 트리에 감긴 레이스를 잡아 떼어서 돌돌 뭉쳐만든 듯한 고양이가 한마리.

과일가게의 하얀 벽면에는 제법 섬세한 필치로 그려진 과일나무가 한 그루.

무와 배추와 양파를 파는 가게에는 허공에 무가 매달려 있는가 하면 가스통은 꽃무늬 옷을 입은 배추아줌마로 변신했다.

옷 수선점의 간판은, 크고 작은 각종 모양의 실패를 이어달아서 커튼처럼 드리웠다.


필운대길쪽으로 빠지는 통인시장의 입구. 천장이 유리 지붕으로 덮여있는 아케이드 형태인지라 날씨가 궂거나 춥거나

비가 오는 날에도 살짝 들어가서 둘러보기 좋은 재래시장이다. 아이디어가 통통 튀는 통인시장.




쨍하니 파란 겨울 하늘에 짙고 풍성한 흰 구름을 더해내는 듯 연기가 하얗게 바람의 결을 짚어내던 모습.

굴뚝의 높이란 건 생각보다 꽤나 높아서, 저 위쪽 하늘에서 부는 바람은 늘 그녀를 기다리는 마음처럼 들떠있던 것.



@ 서울 서쪽, 안양천 너머.

이태원쪽으로 차를 몰고 놀러가다 보면 늘 지나치며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되던 구비구비 꺽여도는 철제 계단길,

이번엔 놓치지 않고 한번 올라가 보겠노라고 작정하고 나섰다. 정확하게는 한강진역 앞에서부터 하얏트호텔 앞의

소월길까지 이어지는 산책로라는 게 맞겠다. 나무데크로 깔끔하게 꾸며진 길을 오르기 전 사진 한장.

제법 경사가 가파르다. 그래도 그리 높지 않은 나무 계단이 차근차근 놓여서 이리저리 몸을 뒤틀고 있으니, 몇걸음

걸어오르다 뒤를 올라다 보면 어느새 이만큼 올라왔나 하고 놀라게 된다.

산책길 초반에는 무슨 건물인지 양철 굴뚝에서 하얀 김이 펄펄 끓어오르고 있었다. 겨울이 좋은 이유 중의 하나는

저렇게 풍성하고 소담하게 피워올려지는 입김이나 수증기같은 것들이 있어서다. 그다지 애쓰지 않고도 입에서

폴폴 하얀 입김을 내뿜을 수 있으니, 몇번만 해보면 금세 기분이 좋아지는.

본격 산책로 진입. 양쪽으로 놓인 풍경도 거슬림없이 나무들이 무성하다. 봄이나 가을에 걸으면 괜찮겠다 싶은.

저만치 남산 서울타워도 보이고. 앞에선 온통 까만 옷의 앞뒤로 박수치느라 바쁘신 아주머니가 한분 다가오셨다.

이건 S자도 아니고, S자에 더해 한번 더 휘였다. 나무들이 벼락처럼 땅에 내리꽂혀 있었고, 다소 기우뚱한

느낌으로 구비구비 버혀진 산책로에서 수평수직 감각을 지탱할 만큼 믿음직하게 서 있는 가로등 하나.

산책로는 대략 1km쯤 되나 싶은데, 한강진역 앞에서 시작해서 하야트호텔 앞에서 끝나서 남산 소월길과 만나버렸다.

지날 때마다 저긴 어떻게 건널 수 있는 걸까 궁금해지던 그 육교랄까 다리가 바로 코 앞으로 불쑥 나타났다.

다시 왔던 길을 거꾸로 돌아가는 길, 뒤통수에 눈이 달려있지 않으니 왔던 길을 다시 되짚어 돌아가는 것도 재밌다.

오던 중에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뒷통수 너머의 풍경이라거나, 정반대의 각도에서 흘러들어갈 수 있는 샛길이라거나

놓쳤던 풍경 같은 것들을 발견할 수 있으니. 테니스장 바싹 마른 그물에 낚여있던 볼링핀 시계.


살짝 내리막이 진 경사로를 내려오면서 줄곧 따라오던 한남동의 전경. 어느 건물들엔 연말 크리스마스의 분위기를

북돋우는 눈꽃 장식들이 건물 외관에 장식되어 있기도 하고, 멀찍이 교회인지 성당의 십자가가 보이기도 하고.

하얏트에서는 이태원 모스크의 꼭대기도 보였었는데 여기선 잘 안 보인다. 대신에 뚝뚝 끄트머리가 잘려나간 채

몇개의 앙상한 선으로 남은 나뭇가지가 시선을 가렸다.


어딘가 커다란 크레인이 쉬지 않고 움직이며 한남동의 스카이라인을 바꿔놓고 있기도 했다. 가파르게 고개를

곧추세운 크레인 아래로 바싹 엎드린 이태원 근방의 건물들이 납짝해졌다. 금방이라도 눈이 쏟아져내릴 듯한

하늘이다 싶더니, 툭툭 옷소매를 건드리며 진눈깨비가 떨어져내리기 시작했다.

바삭하게 말라붙은 덩굴손이 가까스로 시멘트벽을 움켜쥐고 있는 거나, 철근을 미처 다 감싸안지 못한 채 울퉁불퉁

거칠고 거뭇거뭇한 시멘트벽이나 뭔가 통하는 느낌. 을씨년스럽고 차가운. 그리고 껍데기만 남은 듯한.

그리고 이태원으로 진입. 오랜만에 날이 풀렸다 싶어서 타고 갔던 오토바이를 까페 앞에 세워두고 흐뭇한 뒷태를 

감상. 이제는 정말 겨울이 다 갈 때까지 봉인해둬야겠구나, 싶어서 뿌리는 녹방지제는 어디서 사나 생각도 하고.

그렇게, 올해 마지막 휴가 하루.

따뜻한 기억이 서린 까페, 바로 옆에 있는 듯 느껴지는 그녀, 스미르노프 아이스, 비그포르스, 가벼운 단렌즈의 카메라,

창밖의 진눈깨비, 좋은 노래, 그리고 후희(post-play)같은 오토바이의 여운까지.






서울 고양이와는 달리 지나는 사람에 스스럼없이 굴던 부산 괭이들, 보수동 책방골목의 어느 가파른 계단 앞을

지키던 녀석의 위풍당당한 수염이 바람에 나부꼈다. 그리고 저 고양이발들. 하악하악.


그걸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또다른 녀석, 토실토실하니 눈매가 잔뜩 째져서 조금은 심퉁맞다거나 삐진 듯이

보이기도 하지만, 섬세하게 바람을 가르며 미묘하게 움직이던 꼬리의 율동감은 녀석이 결코 만만하거나 게으른

녀석만은 아님을 대변하고 있었다.



고양이가 아니라 괭이라 그런가, 한결 더 노골적으로 귀찮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도망가지 않고 발모으고

자리를 지키는 시크한 모습이라니.




구름이 불시착하던 어느날, 자동차들의 피난행렬 사이에 꼼짝없이 끼인 채 바이크 위에서 찍었던 사진.

하늘이 저렇게 싱숭생숭하기도 했지만, 색다른 눈높이에서 바라본 차들의 붉은 불빛들도 맘을 흔들긴 매한가지.

서울 시내, 라고는 해도 가로수를 굽어보는 건물들이 늘어선 곳은 사실 강남 일대와 종로 일대를 제하고 나면

흔치 않은 게 사실이다. 가로수와 건물이 까치발을 서며 키재기중이던 어느 사거리에서 신호에 걸렸다.

불시착할 듯 하던 구름은 점점 새빨갛게 달아오르더니 저너머로 내빼버렸는데, 붉은 신호등과 하얀 횡단보도와

시커먼 사람 그림자와 저너머 단속카메라에 포박당한 채 얼음, 으로 멈춰서고 말았다.




애초 박원순과 나경원의 경합은 네거티브 대 네거티브의 구도가 절대 아니었다.

양쪽을 모두 비난하고 틀린 점을 지적하는 양시양비론, 구름 위에 올라 촌평하는 식의 태도는

결국 우위를 점한 자, 기득권층에 슬그머니 기대겠다는 심보일 뿐.


'정치인 아저씨들 싸우지 좀 마세요'라는 '초롱초롱한 눈망울'의 아이들 말앞에 모두 부끄러워 하란 말은

그래서 대개 사실 판단의 의지가 없는 게으르고 비겁한 핑계에 불과하다.


달리는 열차 위에 중립은 없다.

선거도 그렇고, 사실 세상 대부분의 일들이 그렇다.



+ 사실 개인적으로 박원순이나 그 뒤에 버틴 안철수가 진보일지, 진보적 정책(이라 쓰고 사회주의적 정책이라

읽는다)를 펼지는 모르겠다. 정권과 제대로 각 세운 적도 없는 유복한 시민운동가와 고작해야 기업CEO출신인

그들보다 비전이나 구체적 정책 면에서 신뢰할 만했던 사람들도 이미 기성정치판에 적지 않았었다.


그냥 내게 이번 투표는 사람들의 상식과 눈높이가 어느 수준인지, 부글거리는 불만이 제대로 타겟을 찾았는지

확인하는 의미 정도로 남았다. 그렇지만 서울에서도 나경원은 온갖 악재와 최악의 스타트에도 불구하고 여하간

45%대의 적잖은 투표율을 이뤄냈고,  나머지 보궐선거 지역은 한나라당이 압승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렇게도 어렵다니. 그나마 '선거의 여왕'이라는 누군가의 아성에 균열이 생긴 걸 확인하는 게 위안이다.








서울이란 동네는 워낙 순식간에 건물들이 사라지고 새로 올라가는 곳인지라, 당장 오늘 찍었던 사진이 내일이면

다시는 찾아볼 수 없는 역사의 한 장면으로 남는 경우가 왕왕 있단 이야기를 들었었다. 옛 서울역사, 그곳이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될 거라며 헐벗은 채 속살과 뼈대를 드러내며 리모델링 중이었던 모습이 오히려 사진전에
 
출품된 사진들보다도 흥미로웠었다. 이 곳 역시 얼마 지나지 않아 말끔하게 단장해서 옛모습이 많이 지워지겠구나,

하는 비감함마저 들었는데 2009년 그 때 이후, 대충 3년이 꽉 차가는 시점에 다시 가본 서울역사는 또 달랐다.


재단장되어 문을 연 이곳에서 '연합국제보도사진전'이 열리고 있고, 다른 개관 프로젝트 설치미술전이 무료로

전시되고 있단 이야기를 들은 건 사실 두어달 전이었다. 한번 가봐야지 하면서도 이제야 갔더니, 이미 보도사진전은

끝났고 '카운트다운'이란 이름의 개관프로젝트만 내년 2월까지 열려 있었다. 3년동안의 복원공사를 마치고

애초 1925년 복원 당시의 모습으로 돌아간다는 문화재 복원의 의미와 문화 공간의 탄생이라는 의미를 아우르는

시도로 '카운트다운'이란 프로젝트를 기획했다고.

(before & after #1.) 서울역사 1층 로비 한가운데에서 문득 고개를 들면 보이는 천장. 위의 사진이 2009년의 모습.

그리고 밑의 사진이 복원공사를 마치고는 밝고 산뜻하게 정리된 모습이다. 이전의 모습이 뭔가 공공기관의 느낌이

강하도록 무궁화니 봉황이니 태극마크가 커다랗게 압도했다면 지금 모습은 훨씬 샤방샤방하니 이쁘다.

 

(before & after #2.) 정확한 위치는 아니지만, 저 낡고 삐걱대는 문짝들이나 페인트칠이 잔뜩 금가고 깨어져나간

공간이 이렇게 말끔하게 정돈된 셈이다. 새하얗고 잔잔한 불빛이 말끔하게 칠해진 하얀 벽면과 전시물들에 반사되어,

높은 천장과 더불어 탁 트인 느낌을 준다.


(before & after #3.) 천장에 그려져있던 누렇게 바랜 두터운 벽지같던 무늬와 색감은 전부 사라지고 새하얗고

단정하게 칠해진 하얀 벽만 남았다. 그래도 마냥 하얗지만은 않아서, 기둥마다 검정색 받침으로 포인트를.


1층의 어느 창문들은 이렇게 색색으로 유리가 끼워져 있었다. 막 뭔가 복잡한 형체가 그려지거나 그러지 않아도,

저렇게 유리마다 다른 색을 끼워놓기만 해도 제법 분위기가 그럴 듯 하구나 싶다. 그리고 기차역이었던 이 공간의

전력을 감안한 듯 기차모양으로 쭉 이어지는 의자, 혹은 의자 모양의 예술작품. 예술작품인 거 같기도 하지만

누군가 앉았다 간 듯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어서 슬쩍 엉덩이를 걸쳤더니 선뜻하니 차갑다.

예수와 부처와 공자? 뭔가 세계 종교를 대표하는 듯한 입상들이 서 있었는데 가만히 보면 그들의 대표적인

상징들이 혼란스럽게 뒤바뀌어 있다. 부처 머리위에 가시 면류관이 씌워있다거나, 예수가 수인을 맺고 있다거나.

그리고 작품들 너머로 보이는 말끔하고 단정한, 그야말로 새건물같은 옛 서울역사. 아, 이제 이곳의 이름은 바뀌었다.

이제 이곳은 2012년 3월부터 '문화역서울 284'라고 불리게 된다고 한다. 284는 이곳의 문화재 사적번호.

(before & after #4.) 다 찢어발겨진 벽지, 깨어진 창문, 대충 흰천으로 막아둔 썩은 나무내 풍기던 창틀 풍경이

이렇게 바뀌었다. 귀빈들이 기차를 기다렸다는 오늘날 VIP대기실과 같았던 이 공간, 그때의 우아함과 고급스런

느낌을 살려서 붉고 따뜻한 느낌의 두툼한 커튼과 함께 세련된 온기를 품고 있다.

(before & after #5.) 그리고 같은 공간, 일제강점기 쯤에는 겨울철 추운 날에 저기서 땔감을 때며 방안에 온기를

불어넣지 않았을까. 2009년 국제사진페스티벌 당시 사진작품을 올려두는 멋진 포인트 공간이었던 곳엔 역시

'우리는 모두 여행자'란 LED조명이 반짝이는 또다른 예술작품이 설치되었다.

(before & after #6.) 페인트칠이 벗겨지고 깨져나간 벽면은 을씨년스럽기가 그지없어서 왠지 공포영화의 한장면으로

손색이 없겠다 싶을 정도였는데, 말끔하게 정리되어선 저렇게 이리저리 뒤집히고 기울어진 숫자 작품들이 커다랗게

전시되어 있었다. 붉은 빛이 감도는 백열등이 아니라 세련되고 도회적인 느낌의 하얀 형광등이란 것도 큰 차이.

(before & after #7.) 계단도 말끔하게 바뀌어 있긴 매한가지. 잔뜩 녹슨 철제 기둥에 드문드문 거미줄도 끼어있어

가뜩이나 차가워 보이는 시멘트계단 바닥이 더욱 차가워보였는데. 한결 나아진 모습이다.
.
(before & after #8.) 시커먼 먼지가 헤아릴 수 없는 날들이 흐르는 동안 운명처럼 내려앉았던 그 곳, 조명조차 부실해서

더욱 껌껌해 보였던 그곳이 하얗게 씻겨지고 나니깐 난간에 붙어있는 무늬도 더욱 도드라져 보였다.

(before & after #9.) 화장실도 이렇게 바뀌었다. 배선이 다 드러나고 위의 천장도 뜯겨서 이리저리 흐르는

파이프가 다 보이던 복원공사 중의 서울역사와, 이제 그런 것들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듯한 말간 얼굴로 시치미를

떼며 사람들을 맞이하는.

(before & after #10.) 큰 변화 중 하나는 창문에 붙어있던 철망이 모두 사라지고 딱딱하고 무거운 색감의 창문틀이


파스텔톤의 가볍고 따뜻한 느낌을 가진 창문틀로 바뀌었다는 것.

(before & after #11.) 2층으로 올라가는 길, 바로 맞닥뜨리는 두개의 방. 이전에는 화장실과 이발실로 쓰였다는

곳이다. 지금은 이 곳이 과거에 어떤 모양이었으며, 복원을 거치며 어떤 부분이 어떻게 살아남고 버려졌는지

그 흔적을 남겨두고 있는 복원전시실이 되었다.

안에 들어가보면 이렇게 이전의 빨간 벽돌 건물의 속살이 그대로 살아있고, 고풍스런 기운이 뚝뚝 떨어지는

유리장이나 목재 전시장 안에서 마치 박물관의 귀한 유물처럼 옛 서울역사의 부분들이 모셔져 있었다.


1층 로비의 천장화 그림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보여주는 옛 사진들도 남아있고, 서울역사 곳곳의 문짝 손잡이도

추려져 있었으며, 심지어 과거 이방이 화장실이었다는 걸 환기시키는 벽면의 파이프 흔적까지 간직했다.

(before & after #12.) 과거에 양식 레스토랑의 대명사였다는 서울역사의 대식당 '그릴', 그 공간은 이제 커다란

다목적홀로 바뀌었다. 휘황한 불빛을 뿜어내는 샹들리에가 줄줄이 늘어져 있던 곳은 그 무겁고 웅장한 느낌을

벗어던지고 밝고 가벼운, 좀더 현대적인 느낌의 공간으로 바뀌었다. 그래도 여전한 인테리어들과 방 자체의

독특한 모양새에서 은근하게 배어나오는 고풍스러움이 멋지다.

과거에 대식당, 그릴이었다는 것의 흔적도 역시 여전히 남아있다. 1층에서부터 음식들이 올라오는 엘레베이터가

두개, 고스란히 남아있었는데 워낙 깔끔한 상태여서 지금도 그대로 써도 될 거 같다.

그리고 홀 뒤에서 음식을 준비하고 저 문을 통해 날랐었나 보다. 매표소 유리창처럼 생긴 저 두 개의 구멍은

아마도 홀 서빙을 맡은 사람과 안에서 음식을 준비하는 사람 간의 원활한 소통을 위한 창구 같은 거였을라나.

(before & after #13.) 한쪽에 있는 벽난로. 저기에서 뻘건 불빛이 날름날름 땔감을 핥고 있었을 거고, 그 불빛에 벌겋게

얼굴이 달아오른 채 사람들은 웃고 떠들며 먹고 마시지 않았을까. 뭐 여기가 유럽의 어느 연회장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왠지 그런 식의 상상을 자꾸 부채질하는 이 곳의 건축물. 애초 그렇게 서양을 따르고 상상하며 만들어진 아시아

'근대'의 건축물이기도 하다.

(before & after #14.) 그 안에 있던 라디에이터들. 지금도 설마 작동이 되랴만은, 그 쓰임이 없다고 지워버리지 않고

굳이 저렇게 철망까지 만들어서 그대로 보존해둔 건 그 자체로 이 방의 분위기를 만드는 아이템이지 싶어서일 듯.

아마 앞서 보았던 벽난로는 그냥 장식적인 효과만을 노린 거였거나, 아니면 워낙 방이 큰 지라 열기가 사방에 전달되지

않아서 별도의 난방 장치가 필요했나보다.

 

그리고 전시 중에 가장 맘에 들었던 건, 벽면을 따라 담쟁이 덩굴처럼 타고 오르던 이 수많은 전선들, 아니 이어폰들.

뭐라고 칙칙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살아있는' 이어폰들이 벽면을 따라 꿈틀대며 유리창을 한가득 덮고 있었다.

창너머에서 조명이 아래로부터 위로 비쳐왔다. 서울역사 건물 외곽에 아래에서 위로 솟구치는 조명들을 빙

둘러서 야경을 이쁘게 꾸미보려고 하는 거다. 근데 조명이 좀 얼룩덜룩하게 벽면에 그림자를 남겨서 새롭게

복원된 역사 건물 내부처럼 말끔하다는 느낌은 없는 거 같지만, 여하간, 창문을 넘어 천장에 울퉁불퉁 그림자를

물리쳐낸 조명의 힘.

그리고 다른 예술작품들이 역사 건물 곳곳에 설치되어 있었다. 제목을 보기 전에 먼저 작품을 한참 노려보며

대체 뭘까 상상을 해보고는, 대충 생각이 멈춘다 싶으면 제목을 보고 다시 자극을 받고 제목과 작품 간의

연관관계를 새롭게 고민하기 시작하는 그런 감상 패턴.

그리고 이런 무지개색 아크릴인지 유리인지를 활용해서 네모난 방 공간 곳곳에 입체 형상들을 배치해둔 작품도

있었다. 다른 것들보다, 실용성이란 측면에서, 창문 옆에 기대어 선 저 핑크빛의 영롱해 보이는 수납장이 맘에 들었다.

아무거나 손닿는 대로 집어서 저기에 칸칸이 집어넣어 두면 이쁠 거 같은데.


2층에서 1층으로, 1층에서 건물 밖으로 돌아나오면서 다시 한번 눈여겨 본 역사의 이모저모. 복원공사를 거치고

말끔하게 타일을 바꾸거나 페인트칠을 하고 거울도 말갛게 새로 갈아 꼈다지만, 나무문짝이라거나 묵직해보이는

문손잡이, 그 나무빛깔이 워낙 생생해서 전체적인 분위기는 여전히 빈티지스럽다. 그래서 다행이지 싶다.


하늘이 파랗게 밝을 때 들어갔는데, 한바퀴 휘휘 둘러보며 작품들도 보고 서울역사의 바뀐 모습들도 살피고

하다보니 어느새 하늘이 파랗게 어두워졌다. 건물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저렇게 버티고 서서, 한때 기차를

타는 손님들이 들고 나던 건물에서 이제는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관람객들이 들고 나는 건물로 쓸모를 바꾸며

수명을 이어가는 건 멋진 일인 거 같다. 이 곳에 켜켜이 쌓였던 오랜 기억들과 시간들 위에 또 다른 추억들이

쌓여 간다는 것, 하릴없이 무너져 내리고 사라지고 지워지지 않는다는 건 참 다행이다.






 


안철수와 박원순. 최근 갑작스런 등장과 폭발적인 지지도로 한국의 정당정치제도를 일거에 희화화하고 있는

그 두 명의 이름이 어느 까페, 어느 책에서 문득 눈에 띄어 집어들었다.


2008년 6월에 '안철수 연구소 사람들'이 써낸 책이라 되어 있는 이 책 앞머리에는 박원순, 당시 희망제작소와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로 재직중이던 그의 추천사가 적혀있는 거다. "안철수연구소는 대한민국에서 기업과

기업인이 존경받을 수 있음을 상징하는 하나의 사건이다."


시민운동 영역과 재계(중소기업)의 영역, 서로 다르다면 꽤나 다른 영역이지만 두 사람 정도의 네임밸류라면

이미 2008년 이전부터 서로를 알고 있었을 테지만, 막상 요새 둘의 드라마틱한 등장과 이후 숨가쁜 전개를

보고 있노라면 그들이 언제부터 서로를 의식하고 있었을까 궁금해지는 거다.





벌써 아득한 옛일처럼 느껴지는 2010년 G20 서울정상회의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

아랫쪽에 얼핏 보면 '맹박'이라 잘못 읽힐 거 같은 대통령의 사인도 있다.

몇 번을 지나치면서도 늘 저게 무슨 기념물인가 싶어 궁금하기만 했었는데, 알고 보니까 그런 거다.

정상회의장 오찬장 벽면에 디자인된 로고를 잘라서 제작했다는, 일종의 재활용이랄까.


뭐..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고 싶어 키보드 앞 손가락들이 씰룩거리지만..그냥 하나만 궁금해 해보기로

한다. 저거 나중에 예컨대 경매 같은데 나온다 치면, 얼마나 하려나. 순수하게 가격이 궁금하단 차원.


서울 시내 곳곳으로 까페가 급격하게 번지는 건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내가 까페를 찾는 이유는 대개

다음과 같은 것들 때문이다. 폭신하고 부드러운 질감의 쿠션이 엉덩이와 허리를 받쳐주는 등받이의자,

테이블과 몸뚱이 사이에 꼽아서 고정시켜둘만큼 두툼하고 단단하면서도 보들보들한 쿠션 두어개, 또

옆테이블에 앉은 사람과 말을 섞고 있다는 환상에 빠지지 않을 만큼은 충분한 테이블간의 널찍한 거리,

굳이 통유리가 아니어도 햇살과 바깥 풍경이 꾸물꾸물 스며드는 창문과 맘에 드는 노래, 거기에 굉장히

진한 에스프레소나 더치커피 같은 것들. 그런 거라면 반나절은 족히 까페에서 뒹굴 수 있는 거다.

책을 보던, 음악을 듣던, 이야기를 하던, 다이어리를 끄적거리던, 공부를 하던, 사실 가장 좋은 건

여행책자를 펴놓고 여행계획을 짜거나 어디 놀러갈지 생각하는 거지만. 사실 그렇게 치면 까페에

들어가 마시는 커피나 차류는 일종의 자릿값인 셈이다. 커피를 마시는 게 목적이 아니라 뭔가

쿠션과 테이블, 공간을 차지하고 시간을 보내고 싶은 거니까.

이렇게 볕이 한조각 떨궈진 공간에서 꾸물꾸물 밀려나는 그림자와 볕이 잠식한 빛의 영토를 시계삼아,

아침부터 점심, 점심부터 저녁..이렇게 대충 얼버무려진 하루를 하릴없이 까페에 앉아 뒹굴거리는 것.

굳이 분단위, 시단위의 시계나 전화기에 신경쓰지 않으며 책 한권쯤 읽는 것. 그러고 보니 그런 여유를

즐긴지도 꽤나 된 거 같다. 이 까페에 갔던 것도 어느새 수십일 전쯤.

그렇게 조용히 있다 보면 이런 평범한 앞접시에 숨어있던 밤하늘 별들과, 조그마한 망아지 한마리가

튀어나오기도 하는 거다. 흘낏 지나치는 시선으로는 잡아낼 수 없는 것들.

카메라라도 쥐고 있으면 더 좋다.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까페 곳곳에 렌즈를 들이대며 다짜고짜

찍어대기도 하고, 잘 안 쓰던 카메라 기능을 이렇게 저렇게 시험도 해보고.

아무래도 그렇게 즐겨 찾아드는 까페는 사람들이 좀 적은 곳, 덜 알려진 곳이기 마련이다. 아니면

사람들이 많이 찾더라도 상대적으로 조금 채워져 있는 시간대일 법한 때에 찾아가고. 사실 웬만한

까페는 다 알만한 사람들은 아는 곳이어서, 그런 고즈넉하고 편안하고 조용한 까페를 찾기란 쉽잖다.

까페 이름이 처음엔 '고기'라고 읽는 건가 했다. 까페 이름이 고기라니, 했더니 알고 보니 고기가

아니라 '고희'란다. 제법 맘에 든 까페여서 앞으로도 틈나면 가보려고 생각 중.

돌아나오는 길은 가정집도 많고 조그만 이층건물들이 골목을 따라 늘어선 다감한 느낌, 어렸을 적

왠지 무섭고 위축감 느끼게 만들던 저 사자머리 철문손잡이가 여전히 버티고 섰다. 이제 더이상

무섭지도 쫄지도 않게 되어 버렸지만, 그런 골목의 느낌도 애써 찾아다닐만한 거 같다.

 





산성역에서 내려 마을버스를 타고 얼추 올라서는, 간단히 수어장대 어간의 남한산성 길을

돌아보기로 했다. 고등학교 2학년때 담임선생님과 함께였다. 그게, 그러니까 15년전이다.

그때 그렇게도 커보이던 선생님이었는데, 돌이켜 생각하면 지금 내 나이뻘이셨던 거다.

선생님복은 참 많은 편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중에서도 최고는 역시 고2때의 선생님이셨다.

중간고사가 끝나면, 기말고사가 끝나면, 그리고 모의고사가 끝나면 때마다 뭔가 아이들과

함께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주셨었다.

당시에 막 들어서기 시작한 멀티플렉스 상영관 하나를 통째로 빌리다시피해서 영화도 같이 보고,

연극을 하던 친구 모습도 볼 겸 대학로에 가서 연극도 다같이 보고, 고수부지에 가서 축구, 농구도

하고 고기도 구워먹고. 남자애들이 바글바글한 남학교에서 그런 문화생활을 앞장서 챙겨주시던

선생님의 존재는 정말 특별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수학여행 때. 큰 방 하나에 애들을 다 모으시더니 맥주를

두 박스쯤 사오라고 하셔서는 선생님이랑 같이 마시자고. 담배 필 사람도 선생님 앞에서 피우고

대신 밖에 나가서 꼬장부리지만 말라고 하셔서 아이들 모두 함께 했던 게 참 좋았다. 그때야말로

잘살고 못살고, 라거나 공부잘하고 못하고, 같은 구분 없이 다 재미있던 최고의 순간.

선생님과 거의 매년 만나뵙긴 했지만, 늘 감탄스러운 점은 무엇보다 그거다. 뭔가 '어른'으로

딱딱하게 굳어진 분이 아니라, 매년 생각하시는 게 변하고 발전하고 그렇게 계속 생각하시고

움직이고 계시다는 것. 내가 옳다, 라거나 나를 따르라, 가 아니라, 내가 지금은 이전에 비해

이렇게 바뀐 생각을 하고 있고 그때 인간적인 약점은 이러저러한 것들이 있었으며, 결국은

선생님도 사람이라는 걸 늘 강조하시는 분이라는 게 대단하다.

 

그래서 선생님과의 대화는 과거에 머무른 것이 아니라 금세 현재의 생활, 현재의 세계로 돌아오게

되는 거다. 선생과 학생의 단순하고 선명한 구도로 나뉘었던 그때에 비해 상대적으로 훨씬 복잡하고

단단해진 구도에 더해 제각기 머리도 굵어져 고집도 세지고 주관도 뚜렷해진 사람들의 이야기란

더러는 긴장감이 흐르기도 하고 흥미롭기도 하고. 천안함이니 무상급식이니, 시사 이야기도 하고

가족 이야기, 사는 이야기까지 생각보다 이야깃거리는 참 많지 싶다.

어쩌면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선생도 사람이다'란 이야기는 그런 거 같다. 사제의 위치가 정해져서

가르치고 배우는 게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받는 자리가 될 수 있도록, 앞서거니

뒷서거니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끼리 권위의식이나 수직적인 위계없이 이야기하자는

배려, 그러고 보면 선생님의 이야기나 생각은 조금씩 바뀌었을지언정 그 기조는 늘 한결같았다.

그렇게 자란 아이들이 이제는 다 커서, 제 사업도 하고 결혼도 하고 애기도 낳고. 뭐 나랑은 해당되는

게 하나도 없긴 하지만 우야튼. 남한산성을 걷다가 백숙에 얼콰하니 막걸리를 마시고는 족구 한판

뛰고 나니까 알콜기운이 싹 빠져버렸댔다.





비오는 날, 잠은 안 오고 괜히 마음만 싱숭생숭 들락날락하는 때는 운전대를 잡고 맘에 드는 씨디

몇 장 쥐고서는 슬쩍 드라이브를 하는 것도 좋은 거다. 타닥타닥, 유리창을 때리는 빗물이 엔간히

풍경을 뭉개버리고 나면 기분도 후련해지고 속도 뚫리는 게 바다를 마주한 만큼이나 시원하다.

나나 이 도시 전체가 바다에 잠겨드는 듯한 분위기여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뭉글하게 뭉개진 풍경을 보고 있다가 와이퍼로 문득 빗물을 걷어올렸다. 뽀득하게 닦인

유리창 아래 풍경은 선명한 불빛이 새겨졌고, 그 위로는 물방울에 포섭된 불빛들. 잠시 와이퍼가

움직인 사이 맑아졌던 풍경은 이내 흐려졌다. 눈물이 가득 괴는 느낌처럼.

물방울들은 아예 비닐봉지처럼 불빛을 동그랗게 감싸고 있었다. 하얀색, 노란색, 빨간색

불빛을 감싸쥔 반투명한 비닐봉지들. 질질 새어나온 불빛은 온통 아스팔트 위에 처덕처덕

내려앉았고 사방에 사람은 하나도 안 보이던 그 늦은 밤, 누군가가 죽도록 보고 싶었던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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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광장 아래엔 거북선이 숨어있다. 실제의 55% 사이즈로 만들어졌다는 거북선, 무엇보다

빨갛게 번뜩이는 눈이 인상적이었지만..실제의 형체는 사실 전혀 밝혀지지 않고 있단 사실은

알고 있다. 광화문 광장에 당당히 버티고 선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아마 이 머리위쯤에 있으려나,

광장 지하에 이렇게 이순신 장군과 세종대황에 대한 자료들이 전시된 건 처음 들어가보고 알았다.


그 말많고 탈많은 동상이 최근 대대적으로 세척에 들어갔던 때쯤에,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이순신 장군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적으라고 한 적이 있나보다. 한쪽 벽면에 포스트잇이 빼곡한

거대한 캔버스가 나왔다. 아무리 그 동상에 대해 구구한 말들이 많지만, 그래도 이순신장군의

이미지를 형상화했다는 것 하나로 이렇게 사람들의 마음이 모이고, 심지어 소원을 빌기도

하는구나 싶어 기분이 묘해졌다.


그 중 몇몇 눈에 콕콕 박혔던 포스트잇들을 찍어 봤다. 누군가의 하트뿅뿅하는 내용, 표현도 참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라니, 팍팍 와닿는다. 근데 그 옆에 일본인이 쓴 메모는 뭐지,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뭔가 한-일간의 오붓한 관계를 보여주는 거 같아 기분이 좋을라다가 문득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고맙다고? 뭐가 고마운 거지..? 이순신 장군이 일본군들을 무찌른 게? 일본의

대륙 정벌 야욕을 꺾어뜨린 게? 음...다카히로라는 저 분은 세계시민인 건가.

참, 센스쟁이 우후훗. 간단한 메시지다. 돌아오셔요. 그러게, 이순신 장군같은 군인다운 군인이

그정도의 지위에 지금 자리잡고 있다면 얼마나 듬직하려나. 정치를 고려하고 쿠데타 따위나

일으키는 정치 군인은 말고, 그렇다고 팽창욕에 사로잡힌 관료적 군인도 아니고, 어디까지나

자위에 족한 그런, 싸우지 않고도 이기는 게 최선이라는 마음가짐의 군인.

장군님 안녕하세요, 하며 안부를 묻고는 따뜻하게 감기 걱정을 해주는 메모, 글씨체를 보면

별로 어린 나이는 아닌 거 같은데, 동심이 살아있는 따뜻한 메모랄까. 그렇지만 동심에 관한

가히 종결자라 할 만한 메모는 정작 그 옆에 있었다. 요술봉을 갖고 싶어요.ㅎㅎㅎㅎ 장군님이

요술봉이 있었으면 진즉에 왜적을 포함한 외적을 물리치고 태평성대를 갖고 왔겠지.

돌아오셔요, 에 이은 또하나의 따뜻한 다섯글자. 보고 싶어요. 왠지 그 밑에 '새해에는 가난에서

벗어나게 해주세요'란 말 때문에 더욱 뭉클해지는 표현같다. 사백여년 전의 인물이 2011년 새해에

돌아와 뭘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상대가 누구던 읍소하고 보는 건 그만큼 절박하단..

아무리 간절하다 해도, 죽은 자에게 할 말은 아닌 거 같은데. 건강하라니. 장군님은 이미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없고'의 지경이건만. 근데 전혀 맥락에 와닿지 않는 저건 뭐지. 배부른데

아이스쵸코가 먹고 싶다며 하트눈을 하면, 장군님이 거북선 팔아서라도 사주시길 바라는 듯.

그래도 이렇게 훈훈한 장문의 메모가 심심치 않게 발견되어 재미있었다. 그치만 이 메모의

포인트는, '학익진 전법을 받들어 살겠다'는 그녀의 다짐. 대체 어떻게...??;;;

그리고 몇몇 진지한 비분강개조의 메모들. 피노키오보고 울아빠 꿈속에 나와서 나 좀 놀게 

해달라던 노래가사말 이후로, 이순신장군님이 이명박대통령 꿈에 나타나서 훈계를 해달란

이야기는 참 와닿는 게 많았달까. 훈계로 될지는 모르겠다. 그러고 나면 MB는 그럴지도.

'내 꿈에 이순신장군이 나와봐서 아는데, 찍찍.' 


혈세를 갉아먹는 국회의원들은 반성하란다. 이순신장군상을 닦을 게 아니라 경제적으로 힘들고

사회적으로 압박받는 사람들을 더 챙기란 의미가 아닐까 싶은데, 밑에 부자될께요, 란 메모랑

맞물려서 묘한 뉘앙스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자꾸 장군님장군님 하니깐 이북에 계신, 지금도

유해가 곱게 남아있으니, 그분이 떠오르는 건 왜지;

그리고 전혀 이순신장군과는 상관없는, 그렇지만 나름의 진심과 애틋함을 담고 있는

이런 메모도 좋다. 수백장의 메모가 전부 이순신장군 찬양 일색이라면 좀 무섭잖아?

더러는 자기 사는 이야기도 하고, 아이스초코가 먹고 싶다고도 하고, 이렇게 그 공간을

빌어 자기 하고 싶은 이야기도 하는 거지. 일종의 反영웅주의.

가장 생각할 거리를 많이 남겼던 메모. 북한으로부터 우리를 지켜달라는 아이들의 소망이 있었고,

또 북한은 우리의 적이 아니며 평화통일하게 해달라는 아이들의 소망이 있었으며, 거기에다가

굳이 이렇게 댓글을 달아놓아 북한이 우리의 적이니 아니니 왈가왈부하는 아이들이 있었다.

북한이 우리의 적인지 아닌지, 혼란스러운 세상. 이순신이 온다면 글쎄, 천안함을 누가 그랬던간에

우선 책임자 및 보고라인에 대한 엄중처벌이 우선되지 않았을까.

거북선의 용머리는 우리나라를 등진 모든 곳을 향해야 하겠지만, 사람들이 이순신 장군에 바라는

소망은 그야말로 나라의 내외부를 막론한 모든 곳, 가장 낮은 빈한한 곳에서 높은 국회의원들이

있는 곳까지. 이순신 장군을 기리는 건 좋지만, 그런 영웅이 세상에 존재하리란 건 환상에 가깝다.

다들 알지만, 답답한 현실을 한큐에 해결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 요술봉같은 뭔가를 바라니까

그러는 거겠지 싶다.




황금조팝. 조팝나무니 뭐니 이름을 들은 적은 있는 거 같지만, 그 발음에 새삼 신경이 쓰인 건

아무래도 '황금'이라는 럭셔리하고 화려한 수식어가 붙어서인거 같다. 넘 이질적이고 우습달까,

황금조팝이란 이름은. 혹시 '조팝'이 어떻게 발음나면 문제인지..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황금조팝이 파릇파릇 자라나던 이곳은,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한복판, 광화문광장. 비가

꾸물거리며 오는 날인데도 제법 사람들이 많이 오가고 있었다. 들어오지 마시요, 같이

잔디밭 출입을 엄금하는 표지가 없다는 건 맘에 들었다. 쟤들도 좀 밟혀야 잘 자라지.

근데, 사람 기억이란 게 참 별볼일없지 싶다. 이 '광장'같잖은 광장이 생기기 전에 여기가

어떤 풍경이었더라,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 거다.

이게 그 해머링맨, 눈에 좀더 잘 띄도록 4.8미터 앞으로 이동하는데 수억이 들어갔다는 예술작품.

비가 내리다 멈추다 하는 와중에 문득 믿겨지지 않을 만큼 맑았던 하늘이 파랗게 찍혔다.

고궁박물관 옆 돌담길, 효자동으로 빠지는 길은 날이 맑으나 흐리나, 걷기 참 좋은 길이다.

앞선 아저씨 둘이 부처님 오신날이라고 꽃을 한 송이 가슴에 단 채 신호등을 기다리는 풍경.

세종문화회관 앞에는 늘어지게 몸을 뉘인 채 똘망똘망한 눈을 가진 파랑 고양이가 한 마리.

어찌나 새침한 표정을 짓고 앉아 있는지, 조금 자세가 표정과는 달리 방만한 걸 제하고 나면

딱 맘에 들도록 고양이스러운 표정이다.


이런 그림, 군대 있을 때 참 많이 봤었다. 사다리타기. 이리저리 종횡하는 저 선들을 따라

희비가 엇갈리던 녀석들과, 어찌됐건 모은 돈으로 배를 채우고 나면 뿌듯했던 기억과.

이리저리 내키는대로 가닿던 발걸음이 종각 앞 신호등에서 잠시 멈췄다. 뇌우, 폭우가 예상됐지만

생각보다 잠잠했던 부처님 오신 날의 저녁. 잠시 비가 그친 틈, 눈치만 보던 태양이 하산할 준비를

마치고 남은 빛을 세상에 마구잡이로 탈탈 털던 타이밍.

촘촘하게 높은 건물이 몰아서 있는 이쪽 동네에 이런 호젓한 골목길이 있었다니 조금 놀랐다.

미술관 가는 길이나 뭐 그런, 정돈된 길이 아니라 그냥 말그대로 골목길. 어느새 투둑투둑 돋기

시작한 빗방울 덕에 펼쳐든 우산이 살짝 찍혀나온 사진이라 더 맘에 들었다.




백운산에서 물이 흘러넘쳤다.

개울을 이루고 흐르는 수면 위로 몇 겹의 동심원이 노래처럼 번졌고,

어느 순간 통통한 심장 모양의 벚꽃 한 잎이 나려앉았다.

아직 눈도 채 못 뜬 봄꽃들이 알알이 핑크빛을 머금고 있던 곳.

이미 활짝 피워올려진 꽃 한 송이가 머쓱하지만 단호하게 외친다. 봄이다.

하늘을 향해 번쩍번쩍, 두팔 벌려 세팔 벌려 환호작약하는 이파리들.

조그맣고 귀여운 모양새 안에 꽉 채워진 연두빛깔이 어찌나 사랑스럽던지.




@ 경기도 백운산.

가로등이 점점이 비춰주는 고수부지 아래 아스팔트 도로와 잔뜩 엉켜버린 노랑개나리 덤불.


금요일 밤, 술을 적당히 한잔하고 집에 가려는데 왠지 아쉬웠다. 택시타고 휙 가면 금방 갈 거리긴

하지만 술과 안주를 많이 먹은 듯 부담스런 속사정도 있었고, 약간 서늘하지만 부드러운 느낌의

봄밤공기도 좋았고. 건대에서 걷기 시작해서 청담대교로, 한강 북단을 따라 걷기 시작해서 만난

첫풍경이었다.

아무도 없는 운동장, 멍하니 손들고 있는 나무들에 쏟아지는 가로등 불빛. 바닥에 떨어지는 것보단

가로등 기둥위에 둥글게 엉킨 채 봄바람에 흔들리던 주홍 불빛이 따뜻하면서도 왠지 서늘하다.

청담대교에서 이리저리 배회하다가 한강 남쪽으로 건너갈 길을 찾지 못하고 영동대교로 가는 길.

길게 늘어진 나무 그림자가 잔디밭을 가로질러 불꺼진 구조대 건물에까지 뻗었다.

강바람이 제법 씽씽 불어서 몸을 옹송그리고 겉옷의 단추를 전부 잠궜다. 파닥파닥 나부끼던

나뭇가지의 그림자를 따라 나뭇가지들이 춤을 췄고, 멀찍이 풍경들도 따라 흔들렸다.

영동대교에 가까워지는 길, 양쪽으로 어긋나는 화살표는 고집스레 서로의 방향만 바라보고

있었고, 도로와 둔치를 가르는 안전바 역시 완강하게 짙은 그림자로 두 개의 공간을 갈랐다.


영동대교 북단 아래쪽에 이런 운동기구들이 있었는지 몰랐다. 새벽 세시가 가까운 시간이었는데

누군가 후드를 걸치고 운동기구를 쓰며 운동중이어서 더 놀랬다. 왠지 저런 곳에서는 담배 뻑뻑

피우는 청소년들이 꼬맹이 하나 놓고 삥뜯기 알맞은 장소가 아니던가.

영동대교 위로 올라서는 길, 이 시간에 자전거를 끌고 다리를 건넌 사람은 여태 어디서 뭘하고

있었던 걸까. 사람을 만나기도 쉽지 않은, 차들만 레이싱하듯 굉음을 뿜는 공간에서 만난

몇 되지 않는 사람들이라 더 반가웠던 거 같다. 왠지, '오늘 고생했어요'라고 말건네고 싶은.

이리저리 휘영청 감아돌아가는 도로들이 사방으로 내달렸다. 금속 안전대의 싸늘하고 딱딱한

감촉이 전해져오는 것 같으면서도 은근 유연하게 아스팔트 도로를 휘어 들어가는 모습 자체가

속도감을 느끼게 했다.

영동대교를 한참 건너던 중, 바람소리가 맹렬하게 나부꼈지만 그보다 더 강렬했던 건 거침없이

내달리며 바람과 부딪히고 바람을 끊어내던 카레이싱의 굉음. 그리고, 끝이 안보이던 길 하나.

높이높이 떠오른 풍선처럼 도무지 손뻗을 엄두조차 나지 않는 보름달이 뿌연 불빛을 흘렸다.

반대쪽 한강 둔치에서 가로등 불빛이 떨궈진 곳마다 고운 연두빛과 하얀 꽃빛이 생생하게

살아났다. 씨앗을 뿌리면 싹이 나듯, 가로등 불빛이 뿌려지면 봄이 오는 걸까.


올림픽대로로 올라탈지, 아님 서울 남쪽으로 섞여들지 갈라지는 분기점, 차들이 드리프트하듯

맹렬한 기세 그대로 갈래갈래 갈리는 와중에 조심스레 길을 건넜다.

그러고 나니 다시 눈에 보이는 차로변의 벚꽃나무들. 누가 그랬더라, 봄날의 꽃구경은 밤에

하는 게 진짜라고. 까뭇까뭇한 밤풍경 속에 하얗게 피어오르는 풍성한 꽃잎들이 이쁘기는

하다지만 하나 단서조항은 필요하겠다. 적정한 조명이 받춰줘야 하겠다는.







2011년 4월 3일자, 광화문 현판의 균열 상태. 사람들은 어느새 현판은 보지 않고 그 아래에서

색색의 옷을 입고 인형처럼 서 있던 문지기들을 보거나 교대식을 구경하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균열이 어디 가는 건 아니다. 오히려 처음 발견되었던 때보다 좀더 깊고 짙어진 거 같은데.

서둘러 일정을 앞당겨 윗대가리 '빛내기'에 매진하느라 정작 빛나야할 간판이 쭉 찢어져 버린건

아무리 생각해도 천박하기 그지없다. 금가버린 게 한두개가 아니라지만, 이명박 정부 재임기간

상처받고 망가진 민주주의 질서나 상식을 대표적으로 상징하는 이미지 아닐까.




얼음만 남기고 홀딱 마셨던 라떼, 얼음이 녹은 자리엔 물이 들이찼다.

물과 기름이 미끌거리며 서로 버텨내듯 가만히 녹아내린 얼음은 잔뜩 흐려진 라떼의 잔해와 버텨낸다.

창밖에서 볕이 손가락을 뻗쳐왔다. 이미 봄볕에 사로잡힌 꼬마아가씨는 분홍빛 가방을 들고

어디론가 룰루랄라 스텝을 밟으며 봄바람처럼 사라져 버렸다. 조용히 스며들어온 봄볕은

꽃무늬가 커다란 테이블을 지나 보랏빛 쿠션이 보드라운 의자위에 느긋이 몸을 눕혔다.

풍성하게 바람넣은 머리처럼 불룩한 화분을 둥지삼아, 붉은 새 한마리가 가만히 앉았다.

주체못하고 쏟아져들어오는 봄볕, 강물에 빠져버린 자동차의 깨진 창문으로도 저렇게 쏟아져

내리지는 않을 거다.

예전에 왔을 때도 눈여겨봤던, 그렇지만 별다른 감상없이 봤던 곰 두 마리. 사선으로 그어진 채

첫째 곰의 몸뚱이를 두개로 쪼개놓은 햇살 아래서 보니 표정이 떠오른다. 저 녀석들의 조심스런

손의 위치는, 살짝 외로 꼬은 고개의 각도는, 조금 우울하게 늘어진 표정은. 뭘까.

그리고 벽면에 장식되어 있는 몇 장의 도자기 접시. 몇 장의 도자기도 붙어있고, 몇 장의 흔적도

여전히 붙어있다. 벗겨진 페인트로 그 존재를 주장하려는 것들은 깨져서 떼어낸 걸까 아니면

억지로 떼어내어 다른 곳으로 옮긴 걸까.

이층과 일층을 잇는 계단, 아래로 내려다보며 찍은 사진은 종종 수평감각을 희롱한다.

이렇게 보니 계단이 아니라 격자처럼 좁아져 나가는 통로같기도 하고 거울은 천장에 붙은 듯.

여기에 올 때마다, 뭔가 삼청동에서 숨겨진 잠수함 같은 곳에 올라타는 느낌이다. 의미상

잠수함이라면 수면 밑으로 내려가는 게 맞겠지만, 여긴 위로 부상해있음에도 조용하고,

사람들 눈에도 딱히 안 띄는 거 같고. 그리고 저 제법 든든해 뵈는, 잠수함 창문같은

이중 유리창들을 활짝 여는 건 뭔가 역설적인 즐거움을 준다.

제법 선명하고 튀는 색감의 테이블, 의자들, 쿠션들이 구석구석 차지하고 있지만 나름 분위기는

어찌어찌 정돈되는 게 신기하다. 창문이라고 뚫려있는 곳에 보이는 곳은 이웃한 건물의 붉은 벽돌

뿐이라지만, 그것도 나름 호의적으로 봐줄 수 있다.

벽에 있던 이집트 냄새나는 조각상 하나. 쭉 찢어진 눈이라거나 칼처럼 날카로운 콧날들이 좀

영특하다 못해 교활한 분위기를 주기도 하지만 화려하고 정교한 꾸밈을 보면 대충 만들어진

물건은 아닌 거 같다. 하긴, 이집트가 아니라 다른 어느 나라일지도 모르겠다. 음..어디려나.

이층에서 삼층으로 오르내리는 계단, 많은 사람들의 발이 나무를 조금씩 깎아낸 거다. 색깔이

빠지고, 나무의 이빨이 빠지고, 그렇게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궤적이 남았다. 무질서하게 늘어선

와인병들이라지만 일정한 수량이 넘어서는 순간 나름의 미감이 생겨난다. 규칙없이 내걸어둔

티스푼 장식장들이라지만 역시, 나름의 균형이 잡히고 미감이 떠오른다.

옥상에서 바라본 풍경. 고만고만하게 다닥다닥 붙어있는 건물들 사이에서 탑처럼 우뚝 솟아난

나무하며, 해가 지면 바통체인지해서 불을 밝힐 야트막한 가로등 하나. 밑을 내려다보면 여느

때처럼 줄을 늘어선 채 삼청동을 순례중인 사람들. 여기서 저쪽은 잘만 보이는데, 왠지 저쪽에서

여긴 안 보이는 거라고 자꾸 의심하게 되는 거다.

자리에 앉아 가져간 책을 조금 보다가 문득 고개를 드니 위로 들린 창문에도 불빛이 하나 떠있다.

앨리스가 빠져들어간 거울나라, 원더랜드의 시작은 이런 조그만 균열감, 일상의 것이 아닌 듯한

약간의 낯선 기미부터 시작했을 거다. 이곳의 불빛과 저곳의 불빛. 저 창문을 거울삼아 비치고 있는

풍경 속에는, 좀더 각도를 틀어서 여기저기 이쪽 세상을 비쳐본다면 뭐가 더 보일런지.

가져갔던 책을 다 읽고 라떼를 다 마시고 다이어리를 다 정리하고 이곳의 추억들을 조금 되씹고도

못내 아쉬워서, 이리저리 고개를 휘휘 돌렸다. 이미 나보다 늦게 들어온 몇몇의 사람들이 나보다

먼저 나가버린, 그래서 다시금 혼자가 된 공간이었다. 그때 발견한 외계인들의 우주선. 까페를

침공하는 중이었다. 스크류 모양으로 생긴 메탈빛 강한 것들이 짙은 그림자를 바닥에 새기며

소리없이 다가오고 있었다.

외계인들이 이층 혹은 삼층에 불시착할 것을 일찌기 예측이라도 했다는 양, 까페 주인님께서는

친절하게도 이런 안내문을 계단 내려오는 길목에 붙여놨댔다. 머리 조심. 제법 가파른 그 계단은

보통의 지구인들도 자칫 머리를 부딪힐 가능성이 농후한 곳인 거다. 마지막으로 아쉽게 주위를

둘러보고 까페를 떠나는 나를 배웅한 건 역시, '머리 조심'. 또 올께요.



길을 걷다가 문득 이상한 광고 같은 걸 발견했다. 서울시의 상징이라는 해태가 몸을 뒤틀고 있는

정류장 옆으로 서울시가 표준화한 구둣방 한쪽벽에 붙어있었다. 아직 몇 걸음 앞에 있던 풍경,

뭔지 뚜렷이 보이진 않지만 왠 금빛 동상같은 형체 옆으로 어렴풋한 세 글자는 분명 표.창.장.

헉. 정말 허걱이다. 표창장 맞다. 직장인 여러분에게 서울특별시가 주는 표창장이랜다. 상장 모양의

광고에는 심지어 서울특별시의 휘장까지 금박으로 박혀서 레알 표창장의 흉내를 제대로 냈다.

직장인 여러분에게 서울시의 빛나는 영광을 돌린다니,  대체 무슨 영광이고 뭘 표창하나 했더니

그놈의 G20이다. 죽지도 않고 또 온 각설이마냥.

표창장 문구 왼쪽에 그려진 건 상패라고 해야 하나, '위대한 서울시민상'이란 간질거리는 이름도

이름이지만, 황금빛 번쩍이는 직장인이 겉옷을 벗고 둘러멘채 가방을 든 모습도 왠지 비장하고

의연하고 영웅적으로 보이는 게 굉장히 간질간질하다. 


서울시가 직장인 여러분에게 (언제 줬는지도 모르게) 주는 상패에 담긴 문구.

"직장인 여러분, 여러분은 서울시를 세계가 놀랄만한 눈부신 성장을 이뤄낸 도시로 만들어주셨기에

이에 서울을 빛낸 '위대한 서울시민'으로 임명합니다."


G20 준비한다며 오바육바 떨어가며 온갖 불편을 끼쳐대고 과잉대응을 해대더니, 순식간에

잊혀져버린 성과없는 말잔치라기엔 뭔가 아쉬웠던 걸까. 이런 식의 광고라니. 왜 하필 '직장인'만

대상으로 주는 건지 모르겠다. 다른 비직장인들은, 특히나 수능까지 늦췄던 학생들은.


취업 준비중인 대학생들한테는 안 감사한가. 이왕임 그들 앞으로도 하나 만들어서 도시 곳곳에

나부끼는 건 어떨지. 이력서 경력에 한줄 적도록. 수훈사항, 서울시에서 '위대한 서울시민상' 받음.



질퍽하게 더러워지고 만 도로와는 달리 사람들이 감히 밟고 다닐 엄두도 못 내게 만들던

삼엄한 눈발 속 쓰레기통의 위엄. 자동차도로보다 순결해보이는 쓰레기통이다.

게다가 하얗게 눈모자를 쓰고는, 평소라면 캔 나부랭이나 담겼을 그물망에는 소보록하니

눈송이가 잔뜩 담겼다. 예수가 '사람 낚는 어부' 운운했던 걸 빌자면, 이 쓰레기통이 쥐고 있는

그물망은 '쓰레기 낚는 그물망'이 아니라 '눈송이 낚는 그물망'으로 변신한 셈이다.

그리고 조금은 지치고 시든 듯한 초록빛 상록수잎 위로 그득하게 엉겨붙은 눈뭉치들.

이미 나려들던 때의 여리여리함과 따꼼한 찰나의 온기 따위는 지워버린 채 덜 떨어진

냉동고 속이나 찜질방 얼음방 속에 서걱거리는 얼음샤벳으로 변신해 버렸다.

눈이 턱밑까지 차오르면 내일 출근할 때에는 삽 한자루를 쥐고 버스 정류장까지 굴을 만들어서

뚫고 가는 재미라도 있을 텐데, 밤에 돌아오려니 제법 삼삼한 날씨인 것이 더이상 눈오기는

글러먹었다. 게다가 차도도 대충 무지막지한 염화칼슘의 위력으로 정리된 듯 하니...별로

딱히 일상에 영향을 미칠 거 같지는 않아서 아쉽달까. 하루쯤 일 안하고 모두들 그냥 집안에

갇힌 채 지내는 것도 좋을 텐데. (일체의 열외없이 전부.)

이런 날은 어디든 사람들 눈치 안 보고 눈밭에서 마구 뒹굴 수 있는 곳에 있었으면 했다.







삼성동 포스코사거리 앞의 루미나리에. 나무 맨살에 전깃줄을 둘둘 감고 있는 모습이

맘에 안 들기는 작년이나 올해나 마찬가지지만, 워낙 날씨가 추워놓으니 왠지 저렇게라도

따뜻하게 온기를 입혀주는 게 나쁘지만은 않겠다란 생각도 들었다.


작고 빤짝이는 불빛 굴다리 속에 들어가서 한번, 이쪽 바닥에서 저쪽 바닥까지 파노라마로

드르륵 긁었더니 나름 성공적으로 하늘과 땅이 맞닿게 나온 사진.



@ 포스코센터 앞. (by SONY a33)


청담역 옆에 위치한 청담공원, 이전에 무한도전에서 여길 찾아오는 미션도 수행하고

그랬던 거 같은데 그때는 이렇게 너른 줄 몰랐었다. 화면에서 얼핏 봤던 동상도 직접

보고 한번 둘러보려 했는데, 가뜩이나 눈도 녹지 않은 데다가 생각보다 원체 넓어서

조금만 돌아보고 말았다.

곳곳으로 출입구가 있는 줄도 모르고 대체 어디가 입구일까, 한참 고심고심하며 찾아들어간

곳은 하필 골프연습장 쪽. 꽤나 커다란 연습장이 초록색 그물을 늘어뜨리고 있어서 잠시나마

당황, 여긴 영업용 사설시설물인 걸까 아니면 지역주민들을 위한 공용물인 걸까.

눈이 소복하게 내려있는 벤치가 굉장히 맘에 들었다. 나무 빈틈 사이로 숭숭 빠져나간 눈들이

고스란히 자취를 남기고 있는 것도 왠지 재미있고.

누군가와 함께 왔더라면 저 쌩쌩한 싸리비로 눈을 샅샅이 털어내고 잠시 엉덩이 걸치는

시늉이라도 해봤을 텐데, 그렇게 빗자루로 눈을 쓸어내면서 괜시리 서로의 옷에 눈을

묻히기도 하고, 그러다가 조금 더 정색하면 눈뭉치를 뭉쳐 던지기도 하고, 그러다가

조금 더 정색하면 눈밭에서 뒹구는..흠.

제법 많은 사람들이 운동삼아 나왔던 길인지라 하얀 눈길이 다독다독 다져지고 까뭇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저 정도면 기분내어 걸을만한 길이다. 빼곡한 나무들이 저너머 아파트숲을

가려주어서 여기가 서울 한복판임을 조금은 잊을 수 있는 그런 공간이기도 하고. 다음엔

좀더 욕심내서, 눈이 함박 쏟아지고 나서 바로 달려가봐야겠다. 아무도 안 밟은 하얀길을

밟을 수 있을지도. 운 좋으면.



@ 서울, 청담공원.
[초대장 배포(100장)] 화투패 좀 아시나요? 에서 '2010 서울 인형전시회'의 작품들을 조금

소개했는데, 그 이외에도 꽤나 재미있는 인형 작품들이 많았다. 우선 수많은 셀레브리티들.

007 요원을 떠올리게 만들었던 그 안무, 한 동작으로 김연아임을 단번에 알아채게 했다.

시크릿가든, 현빈과 하지원의 인형. 슬쩍 올라간 현빈의 입매와 하지원의 동글한 눈이 이쁘다.

성균관 스캔들의 등장인물들이 황토담 앞에 분분이 서 있다. 이 드라마를 모르니 패스.

그리고 카라~ 한때 뭇남성들의 눈을 고정시켰던 '미스터'의 엉덩이춤 의상이다.

2NE1의 네마리 곰이 날씬한 자태를 도도하게 흔들어주는 센스. 복실한 얼굴털이 매력적이다.

빅뱅 테디베어들, 원색의 칼라풀한 옷차림, 그리고 음..글쎄, 남자는 관심없으니 패스.

그리고 업! 할아버지와 똥똥한 꼬맹이가 애니메이션 속 캐릭터의 느낌을 그대로 살렸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센이자 치히로인 소녀와 '가오나시' 괴물이 얌전히 열차를 탄 장면.

은하철도999의 철이와 메텔, 그리고 차장 아저씨..였던가. 워낙 어렸을 때 본 만화라.

파란요정을 만난 거짓말쟁이 피노키오. 푸르스름한 피노키오의 낯빛과 요정의 파란 머리칼의

색감이 참 이쁘다. 근데 왠지 피노키오와 '마지막 잎새'쯤이 묘하게 섞인 느낌.

퇴화해서 형체만 남은 듯한 팔다리를 늘어뜨린 염소의 므흣한 웃음이란. 피노키오 이야기의 일부.

꺄아~ 고양이 인형 완전 사랑스럽더라는. 저 경직된 얼굴 근육은 금세라도 씰룩댈 듯.

폴스미스 스타일의 테디베어들, 곰팅이들 생긴 건 어슷비슷하다고 해도 천의 색깔과 느낌에

따라서 참 다르다. 저 세쌍둥이 곰돌이들조차도 약간씩 분위기가 달라서.

전시관 안쪽에 꾸며져있던 북극의 한 귀퉁이, 솜처럼 새하얗고 복실해 보이는 북극곰들이

단란한 한 가족처럼 모여있는 풍경이다.

아마도 1톤트럭 뒤를 꽉 채워서 실려왔을 거 같은 거대한 곰돌이 한 마리. 그 밑에 사람이라도

깔리면 옴쭉달싹도 못할 만큼 육중한 녀석이 제법 귀엽다.

수십 개의 부스에 나와있는 인형 전문업체들, 자리에서 직접 이렇게 계속 인형을 만드는 분들도

많았고, 둘러보는 손님들한테 이것저것 설명해주는 분들도 있었고.

'토이스토리3'에 나왔던 그 인형들이 우르르 모였다.

이쁘지만 왠지 섬뜩한 느낌이 드는 표정과 분위기, 볼터치도 그렇고 눈빛도 그렇고 뭔가

공포영화의 좋은 소재로 쓰일 수 있겠다 싶은 아이들.

강백호의 왼손은 그저 거들 뿐이고,

승리의 후레시맨은 왼손으로 비를 가리고 있다.

스파르타쿠스는 조금 닮았지만 그 살기와 단단함이 조금 부족하다 싶고,

인형의 집은 굉장히 세밀하고 정교하면서도 온기가 없다. 인형들도 마찬가지, 아무래도 그래서

따뜻하고 포근한 재질로 만든 인형들이 더 정감있는지도 모르겠다. 도자기나 플라스틱으로

만든 것보다 복실복실한 털로 만들어진 인형들이 더 좋은 거다.

그래서 약간은 섬뜩한 아이들. 구체관절인형의 일종인 듯 한데, 소녀의 몸매가 풋풋하다.

포셀린, 도자기를 구워 인형과 옷을 모두 고슬고슬 만들어낸 건데 저 레이스의 화려함도 그렇지만

저 매끈한 도자기 피부. 그리고 저 각선미..훙훙.


이건 아마도 구워내기 전의 인형인 걸까. 굉장히 정교하고 여리여리한 디테일이 인상적.

이런 것들도 은근히 많았는데, 가뜩이나 사람을 많이 닮은 인형은 섬뜩하거나 무서울 때도 있거늘

굳이 저렇게까지 무섭게 할 건 뭐람. 그러면서도 그 생생함이나 신기함에 눈이 자꾸 가는 거다.

이런 따뜻하고 귀여운 인형이 사실은 좀더 내 취향에 가깝다. 포근하고 부드럽고 몽실몽실한.

아 물론 이런 인형님들도 대환영. 어렸을 때 바비인형도 갖고 놀았던 거 같은데 그러고 보니.

아무래도 전시기간이 12월 24일부터 내년 1월 2일까지, 딱 연말연시 분위기가 절정인

타이밍이라 그런지 크리스마스 소품들도 많았다. 산타클로스 인형은 케잌 위에 올라가는

여느 자잘한 설탕인형과는 비교도 안되는 크기인데다 이쁘기도 하다.

인형 전시회가 벌어지는 코엑스몰에서 인형옷입고 홍보중인 아저씨-누나-형-동생님.

요즘처럼 찬바람 씽씽 부는 겨울에는 그래도 꽤나 할 만한 아르바이트 자리일 거 같다.





삼성역 트레이드 타워와 그랜드 인터콘티넨탈호텔, 아마도 80년대 후반 올림픽을 앞두고

지어지던 즈음에 찍힌 사진인 듯 싶다. 지금은 반짝반짝거리는 외벽 때문에 그 내부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어떤 식으로 만들어졌는지 상상도 해보지 않았지만 이 사진을

보니까 감이 대략 잡히는 거 같다.


채 껍데기가 다 씌워지지 않은 채 내부가 슬쩍 들여다보이는 트레이드타워 꼭대기층이라거나

골격만 앙상하게 서 있는 그랜드인터콘의 뼈대라거나. 게다가 아마도 비슷한 시기에 코엑스몰

공사도 있었을 텐데 사진에 보이지 않는 지하에는 또 얼마나 대대적인 공사가 벌어지고 있었을까.


이때만 해도 참, 나직나직한 건물들 사이에서 불쑥 돌출한 두 건물이 눈에 딱 띈다.

그때에 비하면 고작 20년여가 지난 지금은 뭐가 너무 많단 느낌이다. 뭐 54층짜리 건물이니

아직은 낮은 건물이라 말하기는 그렇지만, 그렇다고 딱히 높은 건물이라기도 그런 높이.





오랜만에 학교에 갔더니 곳곳에 새 건물들이 들어섰다. 이미 이러저러한 공간들을 비집고

건물들이 빼곡하게 들어차고 있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당장 내가 군대 포함해서

십년 가까이 먹고 마시고 자고 놀던 공간, 사회대 근처가 이렇게 변했는 줄은 미처 몰랐다.

매년 개강집회, 과 학생회장 선거, 사회대 학생회장 선거, 축제, 각종 문화제, 공연,

외부집회 나가기 전 사전집회, 단대 차원의 온갖 행사들이 치뤄졌던 사회대 아고라.

밥먹고 나서 우유팩 두개 거꾸로 접어 꼽아서는 '팩차기'를 해대던 공간이기도 하고,

사회대 도서관의 고시생들이 잠시 나와 바람을 쐬며 담소를 나누던 공간이기도 하고.


반원형의 둥근 재떨이같이 옴폭 파인 채 학생들을 불러모았던 그 공간 한 가운데

저렇게 공사판이 벌어졌고, 센스있는 학생들이 낙서를 잔뜩 해놨다. 기억해줘.

모든 걸 여기에 묻고 간다. 우리들의 광장 아고라.ㅋㅋ '끝'이란 단어가 괜히 원망스럽다.

사회대 도서관쪽에서 바라본 아고라. 다음 '아고라'가 온갖 이슈들에 대한 토론과 청원이

벌어지는 자유로운 백가쟁명의 공간이듯, 서울대가 연희동에서 관악산 자락으로 옮겨오고

사회대가 여기 건축되고 난 이후 쭈욱 고대 그리스의 '아고라', 그 원래적인 의미로 일상적인

온갖 활동이 펼쳐지던 집회공간이었던 곳이다. 비록 점점 사람들이 여기 모이기 힘들어졌고

더러는 도서관에서 집회 소음이 시끄럽다며 항의하는 지경에까지 처했었지만, 이젠 아예

그 공간조차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는 건 아닐까 속이 서늘하다.

주차장이던 공간에는 3, 4층짜리 건물이 섰다. 무려 파파이스랑 자바시티 커피점이 들어섰더라는.

뭐, 그런 게 다 들어서다니 학교가 정말 예전같지 않구나 싶기도 하지만, 사실 내가 대학에 갓

입학했을 때도 그런 이야기를 들었던 게 있다. 서울대입구역 근처에 맥도널드가 처음 생겼을 때,

미제의 브랜드가 신성한 대학 상권에 진입한 걸 항의하는 집회까지 있었다던가.

'미제', 미국 제국주의에 민감했던 시대적 정황을 염두에 두면, 그리고 당시에 생각하던

'대학'이란 지금 상식처럼 통용되는 대학의 의미와 달랐음을 염두에 두면 딱히 해프닝이라

치부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마찬가지로, 지금 대학 사회가 꼭 과거와 같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 같지도 않은 것이 사실이니까 그런 프랜차이즈들이 학내까지 들어온다고 정색할 일도

아닌지 모른다. '통큰치킨'으로 상징되는 손쉬운 합리적 소비욕구가 결국 영세 자영업자들을

전부 죽이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지만, 대학이라고 뭐, 별 수 있나.

씁쓸한 맘이 좀처럼 가시지 않는 와중에도 커피숍 한쪽이 눈에 들어왔다. 소화전을

에워싼 그림들과 더불어 무슨 그림작품처럼 치장된 소화전의 세련된 모습. 어쩌냐.

눈은 자연스레 이쁘고 세련되고 센스부릴 여유있는 것들로 가는 게 인지상정인 건가.

어라, 내가 다닐 때는 이런 이정표는 없었던 거 같은데. 교내에 뿔뿔이 산재해 있는

민주화 투쟁 열사들 추모비들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게 해주는 '민주화의 길'. 나중에

날이 좀 풀리면 학교에 놀러와서 한번 이 경로대로 걸어봐야겠다, 추모비들을 하나하나

새겨놓아야겠다 싶다. 언제 또 사라질지 모르는 것들이다.

졸업하기 전 꼭 해보고 싶던 것 하나가 있었다. 이 위에 올라가서 술 한잔 하는 것. 흔히 전면에서

찍힌 사진에만 익숙한 이 '샤' 정문은 알고보면 ㄱ과 ㅅ과 ㄷ의 조합일 뿐이지만, 덕분에 그게

'공산당'의 약자니 뭐니 그런 이야기도 있었던 거다. 옆에서 보면 제법 두툼한 이중의 철판이

단단히 땅에 조여져 있는데, 그 사이로 계단처럼 밟고 가라며 유혹의 손길을 뻗치는 것들이

층층이 박힌 채 꼭대기까지 인도하는 거다. 졸업하기 전에 야밤을 틈타 저길 한번 올라갔어야 했다.




국회 본관, 원리대로 따지자면 우리나라 국민들 중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표들이 모여 공동체의 일을

논의하는 곳이다. 뭐 실제로 돌아가는 현실이야 딱히 그들이 우리나라 국민들에서 고루 뽑혀서

고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생각도 들지 않고, 자신들의 권리를 위임한 국민들을 위해 일하기보다

오히려 국민들과 때깔부터 다른 금빛인간들인양 권세나 부리기 일쑤지만.


그건 어쩌면 개화기 이래 쭉 내려온 '인텔리 의식'과도 맞닿아 있을지 모른다. 서양의 것에 대한

접근성과 익숙한 정도에 따라 '개화'된 여부가 결정되던 그 때. 여전히 국회 화장실, 여자 화장실에

저런 서양식 나들이용 모자를 쓴 캐릭터가 굵은 진주목걸이를 하고 있다는 건 그런 식의 의식이

발현된 건지도 모른다. '고상하고', '세련된' 여성의 캐릭터가 국회에 있어야 한다는 사고방식이

첫째 문제, 두번째로 그런 캐릭터가 저런 서구식의 캐릭터여야 한다는 사고방식이 둘째 문제.


남자 화장실의 표지 역시 마찬가지다. 나비 넥타이에 중절모를 한, 코큰 아저씨. 역시 무슨 옷을

걸쳤는지 알 수 없는 파란색 단촐한 남자 캐릭이 아니라 뭔가 고상하고 교양있는 모습을

보이고 차별화하고 싶어했다는 게 첫째 문제, 그리고 그게 하필 서양의 '신사' 이미지와 같다는

사실이 두번째 문제.


국회는 신사들의 공간인가. 민노당의 강기갑 의원을 위시한 다른 이들이 국회에 들어갔을 때

그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해 국회에 출입하고, 양복 정장이 아니라 노동자의 작업복 차림이나

한복 두루마기를 입고 갔을 때 떠들썩한 기사거리가 되었던 걸 생각하면, 국회는 신사들의

공간이었고, 여전히 그런 거 같다. 화장실조차 '신사숙녀'의 공간이니까.

국회 본관에 간 건 거기서 열렸던 공청회에 참석할 일이 있었기 때문. 들어가면서 용건을

이야기하고 주민증을 맡기면 이렇게 방문증을 교부한다. 정부종합청사나 비슷.

내가 받았던 출입증은 회의참석용 방문증이었는지라 공청회 등 회의 참석만 가능한 증이었다.

별다른 장치는 더 없었고 그냥 심플한 굴림체 안내사항들과 간단한 국회 이미지가 있던

출입증이었다.

본관 로비에서는 국회 건물 높이만큼 되어보이는 높은 천장을 볼 수 있었다. 둥글게 감겨진

2층, 3층의 복도 울타리를 프레임 삼아 시선이 한층한층 위로 향했다. 그리고 국회 본관의

그 높은 돔인 듯한 곳의 내부를 볼 수 있었다. 뭔가 차분하면서도 세련된 느낌의 조명이

은은히 밝히고 있는 그 곳은 누군가 반으로 쪼개져 마징가제트가 나올 곳이라 했던가.





* Mother nature is calling me, 직역하면 '자연이 나를 부르고 있어' 정도가 되겠지만 보통

이 문장은 허물없는 사이에서 화장실 다녀오겠다는 의미로 새겨지게 됩니다. 여행을 다니며

결코 빠질 수 없는 '답사지' 중 하나가 그곳의 화장실이란 점에서, 또 그곳의 문화와 분위기를

화장실 표시에까지 녹여내는 곳들이 적지 않다는 점에서, 국내외의 특징적인 화장실 사진을

이 폴더 'Number one or number two?'에 모아보고자 합니다. 그 표현 역시 우리말로 치자면

'큰 거야 아님 작은 거야?' 정도겠네요^^




청계천에서 열리고 있는 2010년 세계등축제, 얼마전 화재사고가 터지는 등 불상사가 있었지만

워낙 사람들이 몰리고 호응이 좋은 탓에 일주일인가 축제기간이 늘었다고 했다. 정확히는 몰라도

슬쩍 주워들은 이야기만 믿고서 다짜고짜 청계천으로.

십장생들, 학과 영지버섯, 거북이 등등이 소라광장에서부터 시작. 청계천 양쪽 수변으로는

색색의 등들이 두 줄로 내걸려 있었고, 아랫쪽 통행로는 사람들이 기차놀이를 하며 순례중.

연보랏빛 벚꽃도 샤방하지만 그 나무에 슬몃 몸을 기댄 소녀는 더욱 샤방샤방.

용궁을 형상화한 듯 사람몸통만한 잉어들이 펄떡이며 호위하고 있는 화려한 구중궁궐.

중국의 경극에서 볼 수 있는 변검을 소재로 한 등인 거 같은데, 자꾸 어딘가의 도박장이 떠오르는

이유는 뭔지 모르겠다. 빠찡꼬의 색감과 비슷해서 그런 듯.

굉장히 역동적인 동작을 보여주는 두 개의 등. 일본의 무사거나 신 아닐까 싶은데, 얼굴에

빨간 칠하고 칼든 저 분은 스트리트 파이터의 옛 캐릭터 혼다를 닮았다.

타이완에서 온 이 아저씨는, 주위에 금전을 질펀하게 깔아두고 '금전의 신' 행세를 하는 중.

남미의 어느 나라에선가 왔다는 이 초록빛깔 괴물등과 그 너머 캄보디아의 앙코르왓 모양의 등.

피사의 사탑이 원래 이 정도로 심하게 기울었나, 싶도록 완전 기우뚱한 등은 좀 위태위태해 보인다.

2012 여수세계박람회의 마스코트들인 듯. 뭐, 치렁치렁한 머릿결 외에는 그다지 특징적이지는

않은 캐릭터란 생각이 조금.

그러고 보니 대충 한 달 후면 크리스마스도 오는구나. 굉장히 심플하게 만들어진 형태지만

이런저런 그림들이 그 단순한 형태를 잘 보완해서 이쁘게 만들어진 듯. 살풋 부푼 별도 그렇고.

여기는 G20를 위한 공간, 스무 개 나라의 국기가 청사초롱으로 만들어져 빛나고 있었다.

'지난 인생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운운 할 때의 그 주마등, 등 안에 초를 켜두고 밑에 바람개비를

달아두면 안에 있는 그림통이 빙빙 도는 대류현상이 일어나서 '말이 움직이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해서 주마등이라고 한다. 스무 개 나라에서 온 말과 국기가 함께 빙빙 돌던 주마등, 아무 것도

성취없이 원점으로 도로 돌아간 G20 서울 서밋의 훌륭한 상징이긴 하겠다.

익살스런 표정의 장승들, 특히나 활짝 잇몸을 드러내며 웃고 있는 지하여장군의 기백이 대박이다.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 한국의 전래동화를 소재로 제작한 등 중에서 가장 맘에 들던 것 하나.

마침 올해가 호랑이해였고 내년이 토끼해니까, 늘어지게 퍼져앉은 호랑이 옆에서 담배연기

훔쳐 마시고 있는 눈빨간 토끼녀석이 좀더 눈에 밟히는 건지도 모르지만.

여기도 토끼, 이 녀석은 좀 덜 귀엽다. 밑에 있는 별주부 녀석은 뭐가 좋은지 헤벌레, 아, 금세라도

토끼 녀석의 간을 빼다가 용왕님 병을 고칠 수 있다는 기쁨에 은근슬쩍 잠겨 있을 때겠구나.

등불만 봐도 전체 스토리를 빠바박 떠올릴 만한 몇 개의 동화 내용들이 담긴 아름다운 등들이

지나가고, 그 담에는 좀더 경쾌하고 즐거운 모양의 등불들이 등장. 제기를 차거나 말뚝박기를

하느라 시간가는 줄 모르고 노는 어린이들. 그렇지만 가만히 보면 말뚝으로 박혀있는 녀석의

표정이 썩 밝고 재미있지만은 않다. 외려 굉장한 리얼리티.ㅋ

눈이 벌건 거북선도 떠있었다. 토끼의 해를 맞이하여 거북선의 용머리 눈알도 토끼눈처럼

빨갛게 충혈시켜주는 건 센스일지도.

뜬금없지만 무지 귀엽던 개 등불 옆을 지나, 메뚜기가 느적거리고 쇠똥구리가 거대한 똥을 말고 있는

풀밭을 지났다. 그러다보니 거의 종로1가쯤까지 걸은 듯 하다.

세계등축제의 마지막 전시 등불은 뭔가 '등불'의 개념파괴를 시도한 듯한 LED조명이 휙휙

지나다니는 강아지 한 마리. 파트라슈의 개처럼 얼룩덜룩한 무늬가 개의 온몸에서 이리저리

옮겨다녔는데, 그냥 난 좀전에 있었던 그 귀엽고 작지만 따뜻한 불빛을 품고 있는 강아지가 좋았다.

그리고 조금 맘에 걸리던 것들, 청계천을 대낮같이 밝힌 등불과 청계천 수로 가운데에 수십개씩

설치된 철구조물 때문인지 수로 가장자리에 잔뜩 뭉친 채 부유하고 있던 조그마한 물고기들.

치어 수준의 어린 물고기들 같았는데, 이 녀석들은 어느 수족관에서 사왔을라나.

당장 눈에는 보기 좋고 사진찍기 이쁘기는 하다지만 그런 등불들이 청계천 위에 둥둥 떠있는 듯한

모습을 연출하기 위해서는 수로 바닥에 이렇듯 튼튼한 철제 구조물을 받쳐두어야 하는 거다.

저것들이 위생상 괜찮은 건지도 모르겠고, 밤 시간에 저렇게 밝은 불빛들이 한동안 켜져 있어도

수중 생태에 괜찮은 건지도 모르겠고, 저런 장애물들이 수로에 잔뜩 있으니 물 흐름에 장애가

생기지 않을지 그것도 모르겠고.

돌아나오는 길, 청계천 내에는 화장실이 설치되어 있지 않다는 표지판이 보였다. 물흐름장애 및

수질오염방지를 위한다는 명목인데, 두 가지 전부 세계등축제에도 해당될 여지가 있어보인다.

청계천이 정말 복개천인지 아니면 거대한 인공수조인지, 거기 사는 물고기들이 생태계가 되살아난

증거인지 아니면 서울시청에서 사다가 뿌린 건지, 따위의 문제들은 이미 많이 지적되었으니 생략.


다만, 마치 백조가 물 위에서 우아하고 아름답게 미끄러져 다니는 것 같아도 그 밑에서는 쉼없이,

그리고 고생스럽게 물갈퀴를 젓고 있다는 이야기처럼, 사람들이 한줄로 서서 순례하듯 구경하는

어여쁜 세계등축제가 벌어진 청계천 수중에서는 뭔가 눈에 보이지 않지만 고생스럽고 힘겨운

삶을 사는 물고기나 수중생태계가 있음을 한번쯤 생각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비오던 날, 툭툭 창에 돋는 물방울 너머로 트램이 달렸다. 보스포러스항 바로 앞에서 멈춰 승객을

주고 받는 트램들은 톱카피 궁전과 아야 소피아 뮤지엄까지 뱅글뱅글 돌고 있었다.

지상에서 버스나 승용차들과 함께 달리면서 교통 신호도 함께 지키고, 차도도 공유하는 트램은

이스탄불의 구도심처럼 작지만 응축된 지역을 커버하기에 딱 알맞은 탈 거리 같다.

한국에선 아직 운행하지 않는 이런 트램 열차가 서울 시내나 다른 지역에서 다니는 모습을

곧 볼 수 있을 거 같긴 한데, 한국의 트램은 또 어떤 모습일지 기대가 된다.




* G20멀미가 날 지경이다. G20성공개최를 기원하는 음악회에, 바겐세일에, 각종 이벤트 행사에, 심지어

금융권에서는 G20 성공개최 기원 예/적금까지 팔고 있다. 미쳤다. 미친 소리를 한두번 하는 게 아니라

언론 보도와 온갖 홍보 기제를 동원해 지껄이니 미친 소리가 진지하게 들리는 와중이었다. 회원국들이

돌아가며 대륙별로 열리는 행사, 순번에 따라 아시아 서울에서 열린 것 뿐인데 이토록 난리부르스다.

걍 닥치고 있었는데 속이 후련한 기사가 떠서 공유. 프레시안 2010/11/01, 방금 오른 따뜻한 글.*


"G20 두번 하면, 전국민 1년간 놀고 먹는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코 앞으로 다가왔다. G20은 한국을 포함한 20개 나라가 금융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방안을 논의하는 회의다.

정부는 G20 서울정상회의를 최대 치적으로 포장하는 모양새다. 이명박 대통령은 1일 라디오연설에서 "서울 G20정상회의 개최를 통해서 대한민국은 국제사회 질서를 주도적으로 이끄는 나라로 한 단계 도약하게 되었다"고 강조했다. 이미 각급 금융기관들은 G20 정상회의에 따른 경제효과가 수십조 원에 달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을 내놓고 있다.

단 이틀간 열리는 회의를 두고 지나친 의미를 부여하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나온다. 예상 경제효과 규모가 2002한일 월드컵보다 더 크게 추산된 이유를 알기 어렵고, 정상회의 결과에 따라서는 국내총생산(GDP)의 절반에 가까운 이익까지 챙길 수 있다는 전망은 지나치게 부풀려졌다는 이유다.

▲1일 오전 경찰이 미국대사관 인근을 수색하고 있다. 이날부로 경찰청은 서울에 을호비상령을 내렸으며, 오는 6일부터는 전국에 갑호비상령이 떨어진다. 이번 G20 정상회담에 대비해 경찰은 역대 최대 호위인원인 5만여 명을 배치키로 했다. ⓒ뉴시스

G20 경제효과 31조?

현재 G20 정상회의의 경제효과를 추산한 대표적 연구기관은 무역협회 산하 국제무역연구원과 삼성그룹의 삼성경제연구소다. 국제무역연구원은 G20 정상회의 개최로 내년부터 발생하는 경제효과는 31조3000억 원에 달하며 이로 인해 16만6000여명의 고용효과도 얻을 것으로 전망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최소 21조5000억 원에서 최대 24조5000억 원의 간접 경제효과를 예상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국제무역연구원은 G20 정상회의 결과 국제공조가 성공한다면, 그로 인해 총 450조 원이 넘는 막대한 경제효과를 얻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한국 GDP(1000조 원)의 절반에 가까운 수치다. 국제무역연구원 말만 따르면, G20 정상회의를 두 번만 열면 우리나라 전국민이 1년간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는 셈이다.

이와 같은 놀라운 결과의 주요 원인은 간접효과다. 수출기업들의 광고비가 절감되는 등 직접적인 경제자극 효과는 수천억 원에 불과하다.

이와 관련, 국제무역연구원은 "외국인 내방객들의 지출과 그로 인한 부가가치 상승으로 969억 원의 직접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전망했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추산한 직접효과는 1023억 원이다. 짧은 기간 안에 이와 같은 대규모 지출이 일어날 수 있느냐는 지적에 대해 이들은 정상들이 모이는 만큼 씀씀이가 클 것이라는 점을 내세웠다.

결국 예상 경제효과의 대부분이 언제 어떤 식으로 발생할지 가늠하기 어려운 간접효과다. 우선 국제무역연구원 자료를 보면 G20 정상회의에 따라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코리아 프리미엄'으로 변하는데 따른 한국 기업의 광고효과가 1억5000만 달러에 달한다. 이는 종전보다 기업들의 광고비 5.3%가 늘어난 것과 같은 결과로, 이에 따라 수출 3.9%가 증가한다. 이렇게 늘어난 추정 수출이익이 20조1427억 원(173억 달러)이다.

보고서를 작성한 국제무역연구원 관계자는 "광고효과(1억5000만 달러)는 직전 G20 개최국인 캐나다의 광고효과 1억 달러를 토대로 추산했고, 기업들의 매출대비 광고선전비를 조사한 한국은행 자료(매출의 광고비 탄력성 0.72)를 바탕으로 광고효과에 따른 기업 이익을 계산했다"고 말했다.

삼성경제연구소의 경우 간접적 파급효과 21조5000억 원의 근거로 △국가이미지 제고에 따른 기업이미지 동반 상승 효과 1조 원 이상 △광고효과에 따른 기업 인지도 1.3%포인트 이상 상승 등에 따른 수출 증대 효과가 최소 19조 원에서 21조9000억 원에 달하리라고 봤다.

보고서를 쓴 삼성경제연구소 관계자는 "서베이 결과 G20 정상회의에 따라 우리나라 인지도가 1.3%포인트 이상 오르리라는 대답이 나왔다. 연구소에서는 이에 따른 기업 이미지 상승률이 1%포인트가량 되리라고 추정했다"며 "매출의 광고비 탄력성을 0.194로 잡아 경제효과를 산출했다"고 설명했다.

결과적으로 삼성경제연구소가 국제무역연구원에 비해 광고효과에 따른 매출증대효과를 더 보수적으로 잡아 추정 경제효과가 차이가 났을 뿐, 미래 추정이익 산출 방식에는 큰 차이가 없었던 셈이다.

근거 있나

문제는 이렇게 산출된 경제효과가 실질적인 근거를 갖고 있느냐다. 이들 연구기관의 발표자료를 보고 직접 관련 데이터의 적합성을 연구했던 홍헌호 시민경제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이와 같은 대규모 이벤트에 따른 유의미한 수치는 결코 나오지 않았다"며 "아무런 근거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홍 연구위원은 "G20보다 실질적 투자와 경제효과, 국가 브랜드 제고의 가치가 훨씬 컸던 1988년 서울 올림픽, 2002 한일 월드컵 전후 경제데이터를 분석했으나 유의미한 통계를 찾지 못했다"며 "심지어 서울 올림픽 이후 우리나라의 수출 증가율은 오히려 뚝 떨어졌다"고 지적했다.

홍 연구위원은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국내 고용 유발 효과가 없고, 방문객 수가 적고 기간도 짧은 G20 정상회의에서 대규모 경제효과가 발생할 리가 없다"며 "매일 전세계를 돌아다니면서 투자결정을 내리는 기업인들이, 세계 정상들이 모였다는 이유만으로 한국 상품을 더 사기로 생각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되물었다.

당장 한일 월드컵 당시와 비교해봐도 이번 보고서들은 지나치게 근거를 잡기 어려운 간접효과를 강조하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한일 월드컵 유치로 인한 직접 부가가치 창출액 5조3000억 원, 생산유발 효과 11조5000억 원을 추산했고, 간접 효과는 100조 원으로 산정했다. 이는 국제무역연구원이 추산한 G20의 최대 경제효과(450조 원)의 4분의 1에도 못 미친다.

그마저도 파악이 불가능한 결과다. 한국 경제가 월드컵 유치로 인해 이득을 누리고 있다는 연구결과는 이후 나오지 않았다. 최근 경제위기 탈출이 월드컵으로 인한 것인지, 한은의 저금리 기조 덕분인지, 정부의 정책 덕분인지를 설명할 수 있는 어떤 조사도 불가능하다.

이와 같은 지적에 대해 해당 보고서 작성자들은 "G20를 몰라서 하는 소리"라고 해명한다.

삼성경제연구소 관계자는 "이전에 G20 정상회의를 열었던 캐나다, 미국, 영국은 세계인 누구나 아는 선진국이지만 한국은 G7이 G20로 확장된 후 이를 개최하는 첫 개발도상국"이라며 "G20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대표주자로 한국이 뽑힌 효과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심지어 정부 관계자들조차 G20의 중요도에 대해 큰 생각을 하지 않아 답답한 마음으로 보고서를 썼다"며 "당장 지정학적 위험 감소에 따른 해외 조달비용 감소 효과만 1조4000억 원에 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선전도구로 지나치게 활용"

▲이명박 대통령은 G20 정상회의 서울 유치를 큰 업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G20 정상회의는 회원국들이 번갈아가며 유치하는 행사다. ⓒ뉴시스
그러나 여지껏 정상급 회의를 유치한 개발도상국이 많지만 이들 국가가 이 회의로 인한 혜택을 누린다는 근거는 찾기 어렵다. 한국의 독립을 논의한 카이로회담 개최지 이집트가 이후 누린 경제적 이득이 얼마였는지, 환경보전의 지구적 선언을 이끌어낸 브라질 리우선언 결과 브라질 경제가 얻은 이득은 쉽게 설명하기 어렵다.

김명록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두 연구기관의 보고서를 보면 온갖 추정이 가득해 굉장히 주관적"이라며 "발표자의 생각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어 전혀 객관적이지 않다"고 비판했다.

그는 "정부가 G20을 마치 선전도구인양 활용하고 있는데, 그 안에서 논의되는 내용이 어떠냐가 더 중요하다"며 "지금으로선 후진국 개발이슈, 금융개혁 논의 등이 제대로 논의되지 못할 가능성이 있는만큼, 한국에서 열리는 회의가 특별한 상징성을 갖고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비판했다.

이와 관련, 이명박 대통령은 G20 정상회의의 서울 개최가 확정된 후 "총성 없는 전쟁터"라는 말을 쓸 정도로 업적임을 강조했으나, G20 정상회의는 회원국들이 대륙별로 돌아가며 개최하는 회의다. 어차피 한국에서 열릴 수밖에 없다.

/이대희 기자

신천 쪽에 양꼬치집이 어느 순간 부쩍 늘었는데, 예전부터 즐겨 가던 곳은 정작 사라져버렸다. 어쩌면 사라진 게

아니라 그저 단순히 내가 길을 못 찾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그래서 새롭게 발굴해 낸 맛난 꼬치집에서

양꼬치와 맥주를 먹으며 찍은 사진들.

1인분에 열 개씩 나오는 꼬치, 양념되지 않은 '오리지널 버전'의 양꼬치가 빠알갛게 달아오른 숯불 위에 척하니

올려졌다. 고기가 보들보들한 게 벌써부터 먹음직스럽다.

양꼬치에 술이 빠질 수는 없는 일, 빼갈이나 공부가주 같은 중국술을 마실까 하다가 문득 눈에 띈 게

처음 보는 중국 맥주. 하얼빈 맥주인 거다. 두 병을 시켰더니 커다란 댓병 두개가 나오길래 화들짝 놀라서

한 병은 일단 돌려보내고, 610미리짜리 한 병으로 가볍게 시작.

음..뭐랄까, 좀 달다는 느낌. 탄산맛이 강하지 않고 단 맛이 주로 느껴지다 보니까 시원하게 마시긴 괜찮은데

맥주를 마시고 캬아~ 하기는 쉽지 않은 맛이었다. 도수는 4.5%. 하얼빈 맥주면 그나저나, 맥주공장이 하얼빈에

있는 걸까. 전세계 맥주공장을 돌며 시음을 해보는 건 내 로망 중의 하나.

어느새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양꼬치들. 내가 하나씩 돌려가며 구우려니까 주인 아저씨가 친절하게 다가오셔선

다섯개씩 한꺼번에 뒤집어주시더라는. 양고기 특유의 향기가 고소하게 피어오르고, 양고기는 술을 부르고.

밑반찬은 세 개, 짜사이와 양파와 땅콩볶음. 양꼬치 고기를 양념에 찍어서 먹고는 술 한모금, 그리고 양파나

짜사이를 곁들이는 거다. 캬아.

새로 주문한 건 양념 양꼬치. 아까 플레인 버전 양꼬치가 좀 '육회'같은 느낌으로 빛깔이 벌겋게 선명했다면

양념을 온몸에 묻힌 이 아이들은 좀더 점잖아 보인다. 맛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와서 다섯개씩 집고 슥삭 뒤집어주시던 주인 아저씨, 마늘을 한 줌 들고 오셔서는 꼬치에

쿡쿡 찔러넣더니 쿨하게 내미셨다. 드슈.

양념은, 아까 플레인 버전 양꼬치에 찍어먹던 그 양념을 미리 발라서 나온 거 같달까. 좀더 구석구석 듬뿍

발려있어서 참깨도 그렇고 고춧가루도 그렇고 더 진하게 느낄 수 있었지만, 어쨌든 양고기는 맛있다. 라는

뜬금없는 결론으로 급전직하. 양고기는 참 맛있다는.

마늘도 숯불에 꼬치로 꽂아 구워먹으니 더 맛있다. 잠시라도 방심해서 새까맣게 '흑마늘'로 만들어버릴 위험만

잘 피해낸다면, 쫀득쫀득 달달한 마늘을 맛볼 수 있던 것.

양고기의 효능이야 이제 익히 알려져 있는 거 아닌가. 아랍 사람들이 즐겨 먹는단 것, 그리고 (우연찮게도)

그들이 일부다처제를 긍정한다는 것이 맞물려서겠지만 양고기하면 바로 정력에 좋은 음식이라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실제로도 정말 그런지야..본인들만이 알 일.

하얼빈 맥주를 비우고 약간 아쉬워서 한 병 더. 이번엔 옌징 맥주다. 중국에서 가장 잘 팔리는 맥주라는

광고포스터가 붙어있길래 시켰는데, 하얼빈 맥주보다 괜찮았다. 좀더 알싸하고 쌉쌀한 맛이 풍기는 데다가

맥주거품도 부드러웠던 듯. 그리고 양고기랑도 좀더 궁합이 잘 맞았던 거 같다.

근데 중국은 맥주병의 단위가 대체 어떻게 되는 건지, 아까 하얼빈맥주는 610미리짜리, 이 옌징맥주는 600미리짜리.

뭔가 표준화가 되어있어야 가격비교도 쉽고 병 재활용도 용이하고 운반도 편리하고, 그렇지 않을까.

양꼬치를 맛보고 나서, 아 여긴 다시 와야 할 곳이다, 란 느낌이 팍 들어서 메뉴판부터 사진을 찍었댔다.

양꼬치 1인분에 9,000원. 옥수수국수가 뭔지도 궁금하고, 고급양갈비가 어떻게 나올지도 궁금하고. 다음번엔

또 다른 음식들을 시도해 봐야겠다.

신천, 우후죽순처럼 늘어난 양꼬치집을 다 가본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 양고기 요리를 국내외 여기저기서

많이 경험했던 입맛에 비춰보면 꽤나 맛있는 집인 건 틀림없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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