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생각.

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렇게 글자를 거꾸로 붙여둔 걸까. 는있맛, 뎅오&빵찐??

이런 비슷한 건 사실 종종 본 적 있었다. 'ECNALUBMA'. 삐요삐요 달리는 빨간 앰뷸란스 앞에서.

각각 "맛있는 찐빵&오뎅", "AMBULANCE"가 되어야 할 글자들이 거꾸로 내달리고 있다.


두번째 생각.

편의점 종업원이 게을렀던 게다. 아마도 저 동그란 글자판 뒤에도 앞면과 같은 글자가 붙어있는 거

아닐까. 편의점 안쪽에서 붙이면서 그저 자신 기준으로 편할대로 붙였으니 정작 밖에선 저렇게 보인단
 
걸 모르고 있는 게으른 종업원. 여즉 아무도 저걸 알려주지 않았다니 세상 참 무신경하다.


세번째 생각.

사실 편의점에서도 고민을 안 했을리 없다. 어차피 안이던 밖이던 어느 한쪽에서 보는 글자는

저렇게 이상하게 배열되고 말 테니 결국은 선택의 문제인 거다. 어쩌면 편의점 주인은 가게 안에

들어온 손님들을 기준으로 "맛있는 찐빵&오뎅"을 선전하기로 결단을 내린 건지도 모른다.

(이로써 종업원은 '게으름'의 오명을 벗고 세상 역시 조금 덜 무신경해진다.)


네번째 생각.

화살은 이제 저 동그란 글자판을 만들어 배포했을 업체에게로 향한다. '찐빵&오뎅' 제조업체이던

아니면 주문받고 제작한 디자인업체이던 간에, 이런 불상사가 일어날 줄 모르고 무신경하게

만들었단 이야기다. 사실 제작할 때 '오'자 뒤에는 '뎅'자, '찐'자 뒤에는 '빵'자를 적도록 조금만

주의했어도 편의점 주인과 종업원과 세상은 게으르거나 무신경하다 타박받지 않았을 거다.


다섯번째 생각.

어라, 근데 조금 고개를 틀어서 생각하면 달라진다. 만약 애초 업체는 저 동그란 글자판을

가로 배열이 아니라 세로 배열이 되도록 생각했던 거라면. 신문도 가로쓰기로 굳혀진지가 워낙

오래고 세로로 쓰인 옛 책들을 보다 보면 고개가 조금씩 꺽일만큼 가로 배열에 익숙한 시대라지만,

이런 시대에도 세로쓰기의 운치와 멋을 살려보겠다는 업체의 강단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게다가 글자판 앞뒤로 다른 글자를 인쇄하려면 아무래도 복잡하고 인력도 더 소요될 테니,

그것까지 감안한 세로 배열이라면 센스와 경제관념까지 갖춘 업체인 거다.


여섯번째 다시 첫번째 생각.

그럼 뭐가 문제지. 누가 잘못한 건가. 아니 어쩌면 아무도 잘못한 게 없는 거다. 굳이 이걸 시시콜콜

따지고 있는 내 잘못이다. 한글은 꼭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어야 한다는 법 따위 없는데, 저렇게

오른쪽부터 왼쪽으로던 아래에서 위로던 읽히고 뜻만 전달되면 되는 거다. '찐빵'이던 '빵찐'이던,

눈있는 자가 알아보고 돈까지 있는 자가 사먹으면 되는 거 아닌가 말이다.


여섯번째 다시 두번째 생각.

혹은, 어쩌면 이 모든 쓰잘데기없는 생각들을 무너뜨리는 근본적인 취약점을 되짚어봐야 할지도

모른다. 편의점 밖에서 저 흥미로운 글자판들을 보고 덜컥 이런 생각들을 내달리곤 있지만 정작

편의점 안에서 저 글자판들이 어떻게 보일지는 확인해보지도 않은 거다. 실제로 안에 들어가면

올바로 보이리라던 예상과 달리 여전히 '는있맛, 뎅오&빵찐'으로 읽힌다면 종업원이 아랍인일지

모른다는 합리적 의심을 해야 한다. 아니면, '신묘년, 해피뉴이어' 따위 전혀 다른 글자가 반기고

있을지도 모르는 거다.


첫번째 행동.

그대로 편의점 문을 열고 들어가 물건을 사고 계산하며 당당히 확인하던, 빼꼼히 문 사이로

고개만 넣어 멋쩍게 확인하던 어쨌건 이 난잡한 사고 흐름의 결론을 봤어야 했는지도 모르겠다.


난, 그냥 버스를 계속 기다리다가 올라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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