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광장 아래엔 거북선이 숨어있다. 실제의 55% 사이즈로 만들어졌다는 거북선, 무엇보다

빨갛게 번뜩이는 눈이 인상적이었지만..실제의 형체는 사실 전혀 밝혀지지 않고 있단 사실은

알고 있다. 광화문 광장에 당당히 버티고 선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아마 이 머리위쯤에 있으려나,

광장 지하에 이렇게 이순신 장군과 세종대황에 대한 자료들이 전시된 건 처음 들어가보고 알았다.


그 말많고 탈많은 동상이 최근 대대적으로 세척에 들어갔던 때쯤에,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이순신 장군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적으라고 한 적이 있나보다. 한쪽 벽면에 포스트잇이 빼곡한

거대한 캔버스가 나왔다. 아무리 그 동상에 대해 구구한 말들이 많지만, 그래도 이순신장군의

이미지를 형상화했다는 것 하나로 이렇게 사람들의 마음이 모이고, 심지어 소원을 빌기도

하는구나 싶어 기분이 묘해졌다.


그 중 몇몇 눈에 콕콕 박혔던 포스트잇들을 찍어 봤다. 누군가의 하트뿅뿅하는 내용, 표현도 참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라니, 팍팍 와닿는다. 근데 그 옆에 일본인이 쓴 메모는 뭐지,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뭔가 한-일간의 오붓한 관계를 보여주는 거 같아 기분이 좋을라다가 문득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고맙다고? 뭐가 고마운 거지..? 이순신 장군이 일본군들을 무찌른 게? 일본의

대륙 정벌 야욕을 꺾어뜨린 게? 음...다카히로라는 저 분은 세계시민인 건가.

참, 센스쟁이 우후훗. 간단한 메시지다. 돌아오셔요. 그러게, 이순신 장군같은 군인다운 군인이

그정도의 지위에 지금 자리잡고 있다면 얼마나 듬직하려나. 정치를 고려하고 쿠데타 따위나

일으키는 정치 군인은 말고, 그렇다고 팽창욕에 사로잡힌 관료적 군인도 아니고, 어디까지나

자위에 족한 그런, 싸우지 않고도 이기는 게 최선이라는 마음가짐의 군인.

장군님 안녕하세요, 하며 안부를 묻고는 따뜻하게 감기 걱정을 해주는 메모, 글씨체를 보면

별로 어린 나이는 아닌 거 같은데, 동심이 살아있는 따뜻한 메모랄까. 그렇지만 동심에 관한

가히 종결자라 할 만한 메모는 정작 그 옆에 있었다. 요술봉을 갖고 싶어요.ㅎㅎㅎㅎ 장군님이

요술봉이 있었으면 진즉에 왜적을 포함한 외적을 물리치고 태평성대를 갖고 왔겠지.

돌아오셔요, 에 이은 또하나의 따뜻한 다섯글자. 보고 싶어요. 왠지 그 밑에 '새해에는 가난에서

벗어나게 해주세요'란 말 때문에 더욱 뭉클해지는 표현같다. 사백여년 전의 인물이 2011년 새해에

돌아와 뭘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상대가 누구던 읍소하고 보는 건 그만큼 절박하단..

아무리 간절하다 해도, 죽은 자에게 할 말은 아닌 거 같은데. 건강하라니. 장군님은 이미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없고'의 지경이건만. 근데 전혀 맥락에 와닿지 않는 저건 뭐지. 배부른데

아이스쵸코가 먹고 싶다며 하트눈을 하면, 장군님이 거북선 팔아서라도 사주시길 바라는 듯.

그래도 이렇게 훈훈한 장문의 메모가 심심치 않게 발견되어 재미있었다. 그치만 이 메모의

포인트는, '학익진 전법을 받들어 살겠다'는 그녀의 다짐. 대체 어떻게...??;;;

그리고 몇몇 진지한 비분강개조의 메모들. 피노키오보고 울아빠 꿈속에 나와서 나 좀 놀게 

해달라던 노래가사말 이후로, 이순신장군님이 이명박대통령 꿈에 나타나서 훈계를 해달란

이야기는 참 와닿는 게 많았달까. 훈계로 될지는 모르겠다. 그러고 나면 MB는 그럴지도.

'내 꿈에 이순신장군이 나와봐서 아는데, 찍찍.' 


혈세를 갉아먹는 국회의원들은 반성하란다. 이순신장군상을 닦을 게 아니라 경제적으로 힘들고

사회적으로 압박받는 사람들을 더 챙기란 의미가 아닐까 싶은데, 밑에 부자될께요, 란 메모랑

맞물려서 묘한 뉘앙스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자꾸 장군님장군님 하니깐 이북에 계신, 지금도

유해가 곱게 남아있으니, 그분이 떠오르는 건 왜지;

그리고 전혀 이순신장군과는 상관없는, 그렇지만 나름의 진심과 애틋함을 담고 있는

이런 메모도 좋다. 수백장의 메모가 전부 이순신장군 찬양 일색이라면 좀 무섭잖아?

더러는 자기 사는 이야기도 하고, 아이스초코가 먹고 싶다고도 하고, 이렇게 그 공간을

빌어 자기 하고 싶은 이야기도 하는 거지. 일종의 反영웅주의.

가장 생각할 거리를 많이 남겼던 메모. 북한으로부터 우리를 지켜달라는 아이들의 소망이 있었고,

또 북한은 우리의 적이 아니며 평화통일하게 해달라는 아이들의 소망이 있었으며, 거기에다가

굳이 이렇게 댓글을 달아놓아 북한이 우리의 적이니 아니니 왈가왈부하는 아이들이 있었다.

북한이 우리의 적인지 아닌지, 혼란스러운 세상. 이순신이 온다면 글쎄, 천안함을 누가 그랬던간에

우선 책임자 및 보고라인에 대한 엄중처벌이 우선되지 않았을까.

거북선의 용머리는 우리나라를 등진 모든 곳을 향해야 하겠지만, 사람들이 이순신 장군에 바라는

소망은 그야말로 나라의 내외부를 막론한 모든 곳, 가장 낮은 빈한한 곳에서 높은 국회의원들이

있는 곳까지. 이순신 장군을 기리는 건 좋지만, 그런 영웅이 세상에 존재하리란 건 환상에 가깝다.

다들 알지만, 답답한 현실을 한큐에 해결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 요술봉같은 뭔가를 바라니까

그러는 거겠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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