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성역에서 내려 마을버스를 타고 얼추 올라서는, 간단히 수어장대 어간의 남한산성 길을

돌아보기로 했다. 고등학교 2학년때 담임선생님과 함께였다. 그게, 그러니까 15년전이다.

그때 그렇게도 커보이던 선생님이었는데, 돌이켜 생각하면 지금 내 나이뻘이셨던 거다.

선생님복은 참 많은 편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중에서도 최고는 역시 고2때의 선생님이셨다.

중간고사가 끝나면, 기말고사가 끝나면, 그리고 모의고사가 끝나면 때마다 뭔가 아이들과

함께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주셨었다.

당시에 막 들어서기 시작한 멀티플렉스 상영관 하나를 통째로 빌리다시피해서 영화도 같이 보고,

연극을 하던 친구 모습도 볼 겸 대학로에 가서 연극도 다같이 보고, 고수부지에 가서 축구, 농구도

하고 고기도 구워먹고. 남자애들이 바글바글한 남학교에서 그런 문화생활을 앞장서 챙겨주시던

선생님의 존재는 정말 특별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수학여행 때. 큰 방 하나에 애들을 다 모으시더니 맥주를

두 박스쯤 사오라고 하셔서는 선생님이랑 같이 마시자고. 담배 필 사람도 선생님 앞에서 피우고

대신 밖에 나가서 꼬장부리지만 말라고 하셔서 아이들 모두 함께 했던 게 참 좋았다. 그때야말로

잘살고 못살고, 라거나 공부잘하고 못하고, 같은 구분 없이 다 재미있던 최고의 순간.

선생님과 거의 매년 만나뵙긴 했지만, 늘 감탄스러운 점은 무엇보다 그거다. 뭔가 '어른'으로

딱딱하게 굳어진 분이 아니라, 매년 생각하시는 게 변하고 발전하고 그렇게 계속 생각하시고

움직이고 계시다는 것. 내가 옳다, 라거나 나를 따르라, 가 아니라, 내가 지금은 이전에 비해

이렇게 바뀐 생각을 하고 있고 그때 인간적인 약점은 이러저러한 것들이 있었으며, 결국은

선생님도 사람이라는 걸 늘 강조하시는 분이라는 게 대단하다.

 

그래서 선생님과의 대화는 과거에 머무른 것이 아니라 금세 현재의 생활, 현재의 세계로 돌아오게

되는 거다. 선생과 학생의 단순하고 선명한 구도로 나뉘었던 그때에 비해 상대적으로 훨씬 복잡하고

단단해진 구도에 더해 제각기 머리도 굵어져 고집도 세지고 주관도 뚜렷해진 사람들의 이야기란

더러는 긴장감이 흐르기도 하고 흥미롭기도 하고. 천안함이니 무상급식이니, 시사 이야기도 하고

가족 이야기, 사는 이야기까지 생각보다 이야깃거리는 참 많지 싶다.

어쩌면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선생도 사람이다'란 이야기는 그런 거 같다. 사제의 위치가 정해져서

가르치고 배우는 게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받는 자리가 될 수 있도록, 앞서거니

뒷서거니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끼리 권위의식이나 수직적인 위계없이 이야기하자는

배려, 그러고 보면 선생님의 이야기나 생각은 조금씩 바뀌었을지언정 그 기조는 늘 한결같았다.

그렇게 자란 아이들이 이제는 다 커서, 제 사업도 하고 결혼도 하고 애기도 낳고. 뭐 나랑은 해당되는

게 하나도 없긴 하지만 우야튼. 남한산성을 걷다가 백숙에 얼콰하니 막걸리를 마시고는 족구 한판

뛰고 나니까 알콜기운이 싹 빠져버렸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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