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FC Starbucks.

도시를 가득메운 고층 빌딩의 색감이 딱 저런 거 아닐까 싶을 만큼,
칙칙하고 음울하고 건조한 벽면 위로 오른 유리창살.

@ Seoul Zoo.

얼룩진 호랑이가 아니라 녹슨 창살에 맞춰진 포커스.
어쩔 수 없다, 니놈은 살았답시고 자꾸 움직이잖아. 억울하면 철창살로 태어나 녹슬다 죽던가.





비록 빽빽하게 밀집한 아파트숲밖에 보이지 않는다 하여도, 하늘이 잔뜩 찌푸려 더욱 매캐해 보인다 하여도.

아셈타워와 삼성동 아이파크가 보이고, 멀리 지평선에는 잊을 만하면 듬성듬성, 야트막한 둔덕들이 나타난다.

테헤란로를 오가는 자동차들이 꼬물꼬물. 언젠가 티비에서 본 전기자동차처럼 소리없이 내달린다.

여름철에 비만 왔다 하면 넘쳐나는 강변의 주차장, 그리고 은근한 햇살에 한껏 분위기 머금은 한강변.



어제, 그러니까 6월 10일. 하얏트호텔에서 하루종일 행사가 있었다. 뷰가 좋다는 2층 룸이 행사장이었지만

저번에 왔을 때와는 달리 하늘이 온통 시커멓고 꿉꿉하다. 스모그인지, 안개인지, 먹구름인지.


저번엔 서울 시내가 멀리까지 내다보였던 화창하고 반짝이는 날이었는데, 정작 카메라가 없었다.

배너나 마이크장비, 통역 부스나 테이블 스탠드 같은 것들 확인하고 발표자들 피피티 자료를 리허설해 본다.

며칠씩 속썩였던 자료집, 올컬러에 양국 정상 축사가 들어가는 바람에 꽤나 신경써야 했다. 언제나 그렇듯

헤드테이블에 앉으려는 자칭 V.I.P., very important person은 차고 넘치기 마련이다.

시간이 조금 지나면서 빗방울에 흐렸던 하늘이 개기 시작했고, 시야도 조금씩 넓어지기 시작했다.

이건 흡사 스타크래프트의 치트키, "Black sheep the wall" 아닌가.

그러고 보니 눈에 들어오는 이태원 고갯마루 위의 모스크 첨탑. 하얏트 호텔이랑 이태원이 가깝단 걸

잊고 있었다. 참...모스크의 미나렛치고는 참...안 이뿌다. 여기뿐 아니라, 조금씩 건물들의 스카이라인이

식별되고는 있다고 해도, 별로 눈에 딱 띄게 이뿌다거나 인상을 던질 만한 구석이 안 보인다.

줌으로 땡겨보니 저멀리 아스라히 트레이드타워, 그리고 타워와 마주한 한전 건물이 보이긴 하는데, 그 역시 그닥.

앞으로 용산이니 어디니 100층 이상 초고층 건물들이 우후죽순처럼 늘어서면 조금 스카이라인이 이뻐질까. 이뿌단

게 뭘 말하려는 건지 나 역시도 잘 모르겠지만, 단순히 삐쭉삐쭉 세워댄다고 이쁠 거 같진 않다.

오찬장 사전점검. 'Taste of New Zealand'라는 타이틀이었던가. 예컨대 그런 식이었다. 뉴질랜드산 등심스테이크,

뉴질랜드산 와인, 그리고 뉴질랜드식 디저트. 거기에 약간씩 한식이 퓨전처럼 한발 걸쳤다. 스테이크 옆엔 잡채와

물김치, 김치류가 서브로 나오는 식이고, 음식에도 불고기 양념이 쓰인 정도.

뽀얀 창밖의 기운을 머금은 말간 글래스들이 이뿌다. 쨍쨍 소리를 내며 경쾌하게 테이블 위에 앉아 노닥거리는 듯.

한국 측 등록데스크. AEROK. 애록.

오후로 접어들며 날씨가 많이 개었고, 나는 전날 작가들이 시국선언을 했다는 기사를 우연찮게 읽었다.

안개/먹구름/스모그가 차근차근 벗겨지는 거대한 서울. 온통 아파트다. 스카이 라인이 이쁘기가 어려운 이유.

멀리 보이는 저 뾰족탑은 뭘까. 주위에 다닥다닥해 보이는 집들이 온통 저 뾰족탑 주변으로 몰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마치 집 한채 한채가 사람인 양, 불빛을 향한 날파리처럼 신을 향한다.

이쪽은..역삼이다. 역삼동 GS타워와 강남파이낸셜센타가 돌출해있다. GS타워는 배 모양을 차용해서 만들었다던가.

저대로 스르르 한강으로 미끄러져내려도 좋겠지만, 우선 앞길을 가로막는 아파트 군락들이 너무 많은 데다가, 운하

따위 만들어봐야 필요도 없다.

나름 은근하게 버티고 선 무역센터. 어렸을 적에 물색 모를 때는 저 건물을 보고는 63빌딩이다~하며 말똥말똥

눈알을 굴렸던 적이 있었다.

부산에 결혼식이 있어 내려갔다.

언제던가 한번은 비행기를 타고 오십여분만에 부산 김해공항에 내렸던 적이 있는데, 그렇게 도착하고 나니 여기가

부산이라는 실감이 전혀 나지 않았더랬다. 서울 기준으로 맞춰진 내 시공감각이 아슬아슬하게 비틀어져 한동안 적응에
 
실패한 채 귓속에서 붕붕 소리가 난다는 느낌. 강남에서 전철로 두세정거장 갔을 뿐인데 갑자기 광화문이 떡하니

나왔을 때의 어리벙벙함 정도 되지 않을까.


뭔가 원하는 대상, 추구하는 대상에 걸맞는 충분한 만큼의 공을 들여 도달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버스로

네시간반을 달리던, 케이티엑스로 세시간을 달리던, (내가 생각하기에) 어느정도 상응하는 수고를 하고서야 비로소

그곳에 가닿을 자격이 생긴다고까지 생각했다면 오버일까. 그렇게 충분히 수고로움을 무릅쓰는 과정에서 자신의

시공감각도 서서히 조율될 테고, 또 '마음의 준비'란 것도 어느정도 될 테니.


게다가, '결혼식을 올리는 친구를 위해 서울에서 부산까지 내려갔다'는 말이 친구에 대한 헌신, 충실함 따위의

이미지를 암묵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건, 으레 왕복 여섯일곱 시간동안 답답하고 불편한 버스/기차 좌석에 몸을 싣는

수고로움과 곤욕스러움을 감내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다. 부산은 네다섯시간을 가니까 부산인 거다. 네다섯시간 짜리인
 
부산을 무례하게도 비행기로 휙, 한시간도 안 되어 도달한다는 건 부산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싶다.


"국방부 장관(사진)은 20일 “북한은 서울이 군사분계선으로부터 50km밖에 안 떨어졌다고 위협하지만 우리가 보면 평양도 군사분계선에서 150km밖에 안 떨어져 있다”며 “현대전에서 이런 거리의 차이는 수치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이 장관은 이날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북한군 총참모부 대변인이 18일 ‘서울이 군사분계선에서 불과 50km 안팎에 있다’고 협박한 데 대해 “우리 군은 국지도발이든, 전면도발이든 즉각 응징할 대비가 돼 있다. 북한은 도발을 엄두도 내지 말고 하지도 말아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동아일보, 09. 4. 21)


북측의 엄포에 대해 우리도 이런 식의 엄포라니...북한이 아무리 '서울 불바다' 운운했어도 이런 식으로까지

까칠하게 대응했던 적은 없는 것 같다. 니들이 까면, 우리도 깐다라는 식이잖아.


그렇지만 이전에도 이들처럼 할말이 없어서 안 한 건 아닐 게다. 양측 모두의 전쟁의지를 억제시킬 수 있는

MAD(mutual assured destruction)식의 미친 협박을 서로 겨누어봤자, 우리 측이 잃을 것이 워낙 많은 탓에

애초 상호 협박이 불가능한 탓이다. 게다가 북한은 이미 수십년째-혹은 일제시대 때 '태평양전쟁'을 치르면서부터-

온통 지하요새화, 벙커화되어 있는 지역이니 한국, 그리고 서울의 하늘높은 줄 모르고 솟아오른 마천루에

비할 게 아니다.


정말 싸우자는 건지, 괜히 한번 폼 재볼라고 으르렁대보는 건지, 아님 MAD인 건지 모르겠지만,

이건 상대도 뻔히 공갈인 걸 아는 실속없는 엄포이니 가오도 안 잡힐 뿐더러, 실속도 없고, 분위기만

더 악화시킬 뿐인 최하수 아닌가 싶다. 멍충이들.



태국 여행 중에 어쩌다 보니 맞닥뜨렸던 전철의 마지막 종착역. 그 평행한 두 철길이 끊기는 곳에 적혀 있던 STOP.

그리고, 언젠가 술먹고 카메라를 덜렁대며 집에 돌아가던 길에 찍었던 시꺼먼 지하철 터널 속의 심연.

형광등이 찬란한 플랫폼이 끝나고 어둠이 불빛을 살라먹는 터널을 금지하는 '출입금지'의 푯말.
"내리실 문은 왼쪽입니다."

다시, "내리실 문은 오른쪽입니다."

아마 내리실 문이 왼쪽과 오른쪽을 넘나드는 역은 이곳밖에 없지 않을까.

어떨 때는 왼쪽으로, 또 어떨 때는 오른쪽으로 내키는 대로 승객들을 토해내는 지하철역.

5호선 서쪽 종점 방화역.


그래서 가끔은, 귀에 이어폰을 꼽고 생각없이 왼쪽문앞에 서있다가 전철이 멈춘 후에도 좀체 열리지 않는 문에

당황해 하기도 하고, 또 가끔은 내릴 문이 어느 쪽이라고 표시될지 스스로와 내기를 하며 놀기도 한다.


오늘은 모처럼 오른쪽으로 내린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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