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면접관으로 면접을 시행하고 나서 느낀 바를 포스팅했더니 모처럼 다음뷰에 올랐다.

([면접관 후기] 면접보는 남자들 좀 영리해지자.)

그리고 쏟아지는 댓글들, 폭언에 가까운 격앙된 반응들. 확실히 군대는 민감한 주제다.

면접에서 군대얘기는 좀 진부할 수 있으니 유의하시는 게 어떨지..라는 이야기에 열폭이라니.


2년에서 3년의 시간을 그곳에서 보냈다는 엄혹한 사실로부터 뿌리깊은 보상심리와 피해의식이

작동하며, 그건 동시에 턱없는 자부심이나 과도한 의미부여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군대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은 순간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이었다가, 또 순간 보람찬

애국자가 되어 자부심에 넘치기도 하는 자기분열적인 모습
을 보이는 거겠지만, 기본적으로

군인들의 애독서가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란 점이 의미심장해 보인다.

깊은 한숨으로 마지막장을 덮게 되는.


게다가 돈있으면 만고땡인 한국사회에서 '군필'이란 딱지는 마치 돈없고 빽없고, 그래서

순진무구하고 선량한 서민/소시민의 자격증인 듯 간주되고 있으니 더더욱 피해의식은

/커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런 피해의식은 대개 풍부하게 공급되는 온갖 병역비리,

군필 논란사건을 보건대 충분한 근거를 갖고 있기도 하다.


결국 피해의식은 다음과 같은 이중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애초 군대를 남성만 간다는 사실에서 기인하는 여성에 대한 피해의식,

그리고 남성 중에서도 '돈없고 빽없는' 사람들만 간다는 사실에서 비롯하는 부자(남성)에

대한 피해의식. (거기에 더해 이미 군대를 다녀온 사람들의 '널럴한 요즘 군대'에 대한

피해의식도 있지만 그건 차치하자.)

그리고 그런 피해의식은 바득바득 인정을 받고 보상을 받겠다는 심리를 수반한다.

술자리에서 남자들 모두 자신이 가장 힘든 군생활 했다고 주장하는 것도 그런 보상심리의

사소한 발현일 거다.


만약 군대라는 공간이 조금더 스스로에게 도움이 되고 알찬 곳이었어도 그렇게

큰 피해의식이 있을까.


어떤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대로 만약 군대에서 뭔가 나름의 성과를 얻어 나왔다면, 뭔가

보람있는 시간을 보냈다면 그렇게 큰 피해의식이나 보상심리도 없어야 하는 게 맞지 않을까.

2년여의 시간을 밖에서 여성과 부자(남성)들이 공부하고 연수다녀오며 알차게 보낸만큼

자신들도 거기서 뭔가 스스로에 플러스가 되는 뭔가를 얻어왔다면 말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게 '조직문화'에 대한 적응력이라고 말하는 듯 하다. 그렇게 강변하며

'군필'에 대한 배려 내지 선호를 당연하다고 말한다. 위계에 대한 예민한 감각, 상명하복의

체화, '튀지 않고' 중간만 가려는 무사안일주의랄까 그런 것들이 이미 우리 사회 조직문화의

일부로 흡수된지는 오래인 건 맞다. 뭐 일부 그런 기풍에 벗어나는 분위기가 생겨나고는

있다고 알고 있지만, 아직 미미한 게 사실이다.


뭐 좋다. 그런 거 배울 수 있다고 치고, 진심으로 군대가 '조직문화를 익히는 배움의 전당'

이라 생각한다면, 그리고 그렇게 익힌 '조직문화'를 바탕으로 직장에 들어갈 때, 들어가고

난 후에 수월하게 적응한다면 된 거 아닌가. 혹 군대에서 익혀나온 '조직문화', '협동/인화/

단결' 같은것들이 제대로 사회에서 평가받지 못한다고 말할지 모른다. 페미니스트, 여성부,

군대내에서도 덜 '빡시다는' 곳을 다녀온 남성들..그런 사람들 때문에 가산점도 없어지고

호봉도 깎이고 있다는 식의 이야기 말이다. 근데 이력서에는 군필 여부를 기록하고 구별이

가능토록 하고 있은 지 오래고, 군미필에 대한 주류의 시선은 여전히 따가운 게 사실이니

별로 억울할 건 없지않나. 적잖이 보상받고 있잖아.


난 사실 군대에서 개뿔 얻은 것도 없고, 아무리 사회적으로 보상하려 해봐야 그건

2년 몇개월의 시간을 메꾸기엔 턱없으며 소모적이고 갈등적인 사회적 논란-남녀간,

빈부간-만 일으킨다고 생각한다. 차라리 군대란 걸 모병제라거나 기타 방식으로 시스템을

바꾸고 현실에 적응시키는 게 맞지 않나 싶다. 괜히 허풍떨듯 여성은 못가는 군대, 남성들만

뭔가 특별한 걸 배워나온 듯 과시하지 말고, 동시에 가장 불쌍하고 천대받는다는 듯

분노하지도 말고. 어차피 갔다온 사람들은, 앞으로 그곳에서 썩어나갈 사람들이 조금은

덜 썩을 수 있도록, 그리고 조금은 더 스스로에 도움이 되는 방식의 군복무가 될 수

있도록 개선시킬 의무가 있는 거 아닌가.





P.S. 내 이전글 [면접관 후기] 면접보는 남자들 좀 영리해지자. 에서는 취업시 군필자와

미필자를 무차별하게 대하는 게 옳으니 그르니에 대한 글은 아니었다. 이미 이력서에 체크가

되어 아마도 서류전형에서 감안되었을 것이고, 면접때는 면접관의 이목을 끄는 좀더

생생하고 참신한 사례를 들어 본인을 어필하란 이야기였을 뿐. 군대 경험이 값진지 아닌지

그걸 따지는 건 아니었다는 얘기다. 그저 군대 이야기만 나오면 눈에 핏발 세우고는 자부심과

피해의식이 마구 혼재된 심리상태를 자동기술하는 사람들은 참...신기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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