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 결혼식이 있어 내려갔다.

언제던가 한번은 비행기를 타고 오십여분만에 부산 김해공항에 내렸던 적이 있는데, 그렇게 도착하고 나니 여기가

부산이라는 실감이 전혀 나지 않았더랬다. 서울 기준으로 맞춰진 내 시공감각이 아슬아슬하게 비틀어져 한동안 적응에
 
실패한 채 귓속에서 붕붕 소리가 난다는 느낌. 강남에서 전철로 두세정거장 갔을 뿐인데 갑자기 광화문이 떡하니

나왔을 때의 어리벙벙함 정도 되지 않을까.


뭔가 원하는 대상, 추구하는 대상에 걸맞는 충분한 만큼의 공을 들여 도달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버스로

네시간반을 달리던, 케이티엑스로 세시간을 달리던, (내가 생각하기에) 어느정도 상응하는 수고를 하고서야 비로소

그곳에 가닿을 자격이 생긴다고까지 생각했다면 오버일까. 그렇게 충분히 수고로움을 무릅쓰는 과정에서 자신의

시공감각도 서서히 조율될 테고, 또 '마음의 준비'란 것도 어느정도 될 테니.


게다가, '결혼식을 올리는 친구를 위해 서울에서 부산까지 내려갔다'는 말이 친구에 대한 헌신, 충실함 따위의

이미지를 암묵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건, 으레 왕복 여섯일곱 시간동안 답답하고 불편한 버스/기차 좌석에 몸을 싣는

수고로움과 곤욕스러움을 감내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다. 부산은 네다섯시간을 가니까 부산인 거다. 네다섯시간 짜리인
 
부산을 무례하게도 비행기로 휙, 한시간도 안 되어 도달한다는 건 부산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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