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내 속엔 헛된 바램들로 당신의 편할 곳 없네
내 속엔 내가 이길 수 없는 어둠 당신의 쉴 자리를 뺏고
내 속엔 내가 이길 수 없는 슬픔 무성한 가시나무 숲 같네

바람만 불 메마른 가지 서로 부대끼며 울어대고
쉴 곳을 찾아 지쳐날아온 어린 새들도 가시에 찔려 날아가고
바람만 불면 슬픈 노래를 부르던 날이 많았는데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서 당신의 쉴 곳 없네

(조성모, '가시나무' 가사)


*                                                            *                                                            *

쉴 곳 없고, 편할 곳 없고, 이길 수 없는 어둠만 많고, 슬픔이 무성하다는 온갖 찌질한 핑계들은

결국은 죄다, 내게 기대줘, 날 안아줘, 날 사랑해줘, 내게 숨겨진 빛과 기쁨을 발견해 줘..라는

치기어린, 그래서 이기적인 투정으로만 들리는 거다.


알고 보면, 빛만 가진 사람도 없지만 어둠만 가진 사람도 없고, 자기 안에 온갖 다중인격이 숨어있지

않은 사람도 없는 데다가, 이길 수 없는 어둠이니 슬픔보다 하루하루 녹처럼 슬어가는 '노쇠'의 징후가

천하무적인 거다.


하루라도 보지 못하면 무슨 큰일이라도 생길 듯 꼬박꼬박 무작정 만나던 기억도, 종로통에서의 약속에

늦을까봐 좁은 골목에서 차를 긁어먹으며 질주하던 기억도, 밤새 아팠던 그녀 옆에서 손 꼭 잡아주며

간병해주던 기억도. 그 기억 속 그림에 등장하는 남자는 더 이상 내가 아닌 듯 싶다..


부쩍 늙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