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그러니까 6월 10일. 하얏트호텔에서 하루종일 행사가 있었다. 뷰가 좋다는 2층 룸이 행사장이었지만

저번에 왔을 때와는 달리 하늘이 온통 시커멓고 꿉꿉하다. 스모그인지, 안개인지, 먹구름인지.


저번엔 서울 시내가 멀리까지 내다보였던 화창하고 반짝이는 날이었는데, 정작 카메라가 없었다.

배너나 마이크장비, 통역 부스나 테이블 스탠드 같은 것들 확인하고 발표자들 피피티 자료를 리허설해 본다.

며칠씩 속썩였던 자료집, 올컬러에 양국 정상 축사가 들어가는 바람에 꽤나 신경써야 했다. 언제나 그렇듯

헤드테이블에 앉으려는 자칭 V.I.P., very important person은 차고 넘치기 마련이다.

시간이 조금 지나면서 빗방울에 흐렸던 하늘이 개기 시작했고, 시야도 조금씩 넓어지기 시작했다.

이건 흡사 스타크래프트의 치트키, "Black sheep the wall" 아닌가.

그러고 보니 눈에 들어오는 이태원 고갯마루 위의 모스크 첨탑. 하얏트 호텔이랑 이태원이 가깝단 걸

잊고 있었다. 참...모스크의 미나렛치고는 참...안 이뿌다. 여기뿐 아니라, 조금씩 건물들의 스카이라인이

식별되고는 있다고 해도, 별로 눈에 딱 띄게 이뿌다거나 인상을 던질 만한 구석이 안 보인다.

줌으로 땡겨보니 저멀리 아스라히 트레이드타워, 그리고 타워와 마주한 한전 건물이 보이긴 하는데, 그 역시 그닥.

앞으로 용산이니 어디니 100층 이상 초고층 건물들이 우후죽순처럼 늘어서면 조금 스카이라인이 이뻐질까. 이뿌단

게 뭘 말하려는 건지 나 역시도 잘 모르겠지만, 단순히 삐쭉삐쭉 세워댄다고 이쁠 거 같진 않다.

오찬장 사전점검. 'Taste of New Zealand'라는 타이틀이었던가. 예컨대 그런 식이었다. 뉴질랜드산 등심스테이크,

뉴질랜드산 와인, 그리고 뉴질랜드식 디저트. 거기에 약간씩 한식이 퓨전처럼 한발 걸쳤다. 스테이크 옆엔 잡채와

물김치, 김치류가 서브로 나오는 식이고, 음식에도 불고기 양념이 쓰인 정도.

뽀얀 창밖의 기운을 머금은 말간 글래스들이 이뿌다. 쨍쨍 소리를 내며 경쾌하게 테이블 위에 앉아 노닥거리는 듯.

한국 측 등록데스크. AEROK. 애록.

오후로 접어들며 날씨가 많이 개었고, 나는 전날 작가들이 시국선언을 했다는 기사를 우연찮게 읽었다.

안개/먹구름/스모그가 차근차근 벗겨지는 거대한 서울. 온통 아파트다. 스카이 라인이 이쁘기가 어려운 이유.

멀리 보이는 저 뾰족탑은 뭘까. 주위에 다닥다닥해 보이는 집들이 온통 저 뾰족탑 주변으로 몰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마치 집 한채 한채가 사람인 양, 불빛을 향한 날파리처럼 신을 향한다.

이쪽은..역삼이다. 역삼동 GS타워와 강남파이낸셜센타가 돌출해있다. GS타워는 배 모양을 차용해서 만들었다던가.

저대로 스르르 한강으로 미끄러져내려도 좋겠지만, 우선 앞길을 가로막는 아파트 군락들이 너무 많은 데다가, 운하

따위 만들어봐야 필요도 없다.

나름 은근하게 버티고 선 무역센터. 어렸을 적에 물색 모를 때는 저 건물을 보고는 63빌딩이다~하며 말똥말똥

눈알을 굴렸던 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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