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장소임을 드러내는 표식들 중에는, 하늘 높이 솟은 지붕이나 끝없이 늘어선 두툼한 기둥들 이외에도

어디에서든 문간을 지키고 섰는 온갖 수호상들이 있다. 청동, 대리석, 현무암질, 검은 오석, 철..다양한 종류의

재질에 다양한 표정, 다양한 모양새를 하고 있지만 대개 상상 속의 동물이란 점에선 유사한 것 같다. 꼬맹이들이

좋아라 하며 수호상의 발치를 차지하곤 방긋 웃는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한쪽 벽면의 그림을 복원하고 있는 걸까, 어떤 아주머니가 정성스럽게 두무릎을 모으고 앉아 벽화에 붓을 대고

계셨다. 옆에 놓인 여러 도구들이나 단단히 짜여진 아시바를 보면 훼손된 벽화를 덧칠하거나 다시 복구하는 전문가

틱한 작업이긴 한 거 같은데...붓끝이 너무 뭉툭하고 두툼해서 염려스럽다. 저렇게 세밀한 필치로 묘사된 화려한

마차와 건물들, 자연 풍광들을 묘사하려다가 되려 모두 뭉개버릴 것 같다는 불안감이 들었다.

저 못생긴 동물은 해태인 걸까..개구리랑 사자를 합쳐놓은 거 같기도 하고, 꼬리는 볏이 듬성듬성 서있는게..닭?

그러고 보니 해태는 어느새 서울의 상징동물이 되었다고 들었었다. 대체 해태가 뭔지 문득 궁금해져서.

해태獬豸 ≒해타(). : 사자와 비슷하나 머리 가운데에 뿔이 있다고 한다. 중국 문헌인 《이물지()》에는 "동북 변방에 있는 짐승이며 성품이 충직하여 사람이 싸우는 것을 보면 바르지 못한 사람을 뿔로 받는다"라고 설명되어 있다. 한국에서는 대사헌의 흉배에 가식()되기도 하였고, 화재나 재앙을 물리치는 신수()로 여겨 궁궐 등에 장식되기도 하였다.  (네이버 사전 참조)

왕궁을 걷다 보면 순간 길을 잃고 헤맨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비슷한 건물들이 온통 시야를 가리고 겹쳐섰어서,

내가 지금 어디 있는 걸까, 무슨 건물과 무슨 건물 사이에 끼어 있는 걸까 지도를 찾아 확인하게 된다. 비가 살짝

나리고 바람이 쌀쌀한 날씨에도 여행객들은 개의치 않고 걷고 있다.

태국 왕실을 지키는 근위병의 근엄한 자태..라지만, 영국의 근위병이나 다른 서구 제국의 그것과는 느낌이 사실

많이 다르다. 일단 짧고, 왜소한 체구, 게다가 왠지 빈티가 살짝 나보이는 외모까지. 온갖 '양이(洋夷)'의 문물에

왜곡되어 버린 나의 시신경, 감각기관의 탓인 걸까 아님 정말 누가 봐도 그렇게 생각할까. 어쨌든 이 분도 꼼짝않고

빳빳이 서선 왕실에 근엄함과 권위를 보탰다. 옆에서 왠지 뿌듯한 표정을 짓고 계신 부모님.

빗방울을 툭, 툭 흘리는 칠칠맞은 하늘 탓에 시야가 다소 뿌옇고 시크무레죽죽한 느낌이었지만, 그래도 화려하게

꾸며진 궁궐 건물들의 지붕은 되려 적당한 광채를 머금고 안온하게 느껴졌다. 사실 햇볕이 살짝 강하게 내려쬐었을

땐 눈이 아플 지경이었단 말이다. 태국 왕실이 국민들로부터 받고 있는 절대적인 신뢰와 존경을 궁궐 지붕에

비기자면, 이런 식으로 적당히 구름낀 하늘 아래 담백한 광택만을 부드럽게 흩뿌리는 순금색의 느낌? 햇살마저

반사시켜 지가 반짝이는 양 보는 사람의 시야를 온통 얼룩지게 만들었다면, 그런 신뢰와 존경은 불가했을 거다.

중요한 사원, 신전들을 보호하는 수호상들. 비슷한 모티프로 제작된 상상속의 동물들이나 인물들이지만, 곳곳에서
 
색다른 표정과 뉘앙스를 만나게 된다. 약간은 찡그린, 멍청해보이기도 하고, 뭔가 불만에 가득하거나 화장실이

급해보이기도 한 울상인 표정도.

왠지 색목인 삘이다. 다른 수호상에 비해 월등한 사이즈도 사이즈려니와, 움푹 패인 커다란 눈에 높고 큰 코,

게다가 이국적인 콧수염까지. 한 때 태국 왕실에서 서양인이 근무했던 적이 있는 걸까. 괜히 이런저런 상상을

해 보게 만드는 수호상.

왕궁은 야트막한 담을 경계로 외부 세계와 갈라져 있다. 파란색빨간색 촌스러운 색깔의 택시가 유유히 굴러다니는

2차선 도로. 이 곳을 구경하고 나니까 우리나라의 궁궐들도 한번 작정하고 제대로 구경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대조군이 있어야 그에 비교해서 뭐는 어떻고 뭐는 어떻고, 이렇게 나불나불 이야기할 거리들이 생길

텐데 말이다.

뜬금없는 랍스터 사진. 저녁을 먹으러 근처 씨푸드 레스토랑에 갔는데, 들은 것과 달리 랍스터 가격이 한국에 비해

그닥 싸다는 느낌이 없었다. 그래서 배터지게 함 먹어보려던 애초의 계획을 철회하고 맛만 보는 걸로 급선회.

내 손바닥 두개 합친 것보다도 더 큰 듯한 이 통통하다 못해 퉁퉁하고 거대한 랍스터를 먹은 건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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