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출입사무소 뒷문으로 나가 차를 타려 했는데, 주위의 차들도 그렇고 우리 차도 그렇고 모두 분주하다. 
차 앞의 번호판을 흰 판으로 가리고 있었다. 아무 것도 안 적힌 흰 판으로 고정시켜 가리는 경우도 있었고,

'림시(아마도 임시번호판이란 뜻이겠지만)'라고 적힌 번호판으로 덧대는 경우도 있었고.
 
그리고 차 한쪽에 저런 붉은기를 꼽아 놓아서, 여러 차들이 모두 그런 깃발을 꼽아 둔 걸 보면 마치 어딘가

단체로 여행가는 차들 같다. 저 깃발은 현재 이 차량은 비무장 상태로서, 합법적으로 북한에 방문한 차량임을

식별할 수 있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으레 호전적인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붉은 기보다는 이왕임 하얀색

깃발이 낫지 않을까 잠시 생각했다가, 그건 자칫 북한에 투항한다는 뜻으로 읽힐 수도 있겠구나 싶어서 이내 폐기.

실제로 그런 논의가 남북간에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남조선 동무, 백의민족답게 흰색으로 하갔시오?" "북한에

사는 친구 A-yo, 그건 우리가 백기들고 투항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으니 다른 색으로 합시다." 운운.

또 하나, 차 안에 있는 네비게이션은 탈착이 가능한 경우 빼두고 가져가지 말도록 하고, 이것처럼 아예 빌트인

형태의 것이라면 회선을 끊고 흰 종이로 덮어 두어야 한다. 그렇게 부산하게 준비를 마친 차들은 일렬종대로

북쪽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여기서부터 남한측 2km, 북한측 2km의 비무장지대(DMZ)를 지나 북측에 있는

출입사무소까지 가는 동안에는 사진 촬영이 일체 금지되어 있다고 했다. 차들이 비무장지대 한 복판으로 천천히

나아갔고, 어느 지점쯤에선가 남측 군인들이 탄 지프가 멈춰서서는 우리가 가는 걸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앞쪽에는 북측 군인들이 탄 지프가 우리가 오는 걸 지켜보고 있었고. 그렇게 우린 남에서 북으로 '인수인계'.

겨울로 가는 문턱이라 그런지 비무장지대라 해도 뭐랄까, 사람 손 타지 않은 천혜의 자연..이란 이미지는 별로

느낄 수가 없었다. 누렇게 죽어가는 풀떼기들과 나무들이 있을 뿐이었는데, 정말 어느 순간 그 나무들이 무척

키가 작아지고 어린 것들만 보인단 느낌이 들었다. 북측 지역에 넘어섰던 즈음일 게다.


차에 함께 탄 일행 중 한명이 한번 더 주의를 단단히 주었다. 주위에 사람이 없고 풀떼기만 보이는 것 같아도,

북한군인이 어디선가 다 보고 있다고 하면서 사진은 절대 찍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북한군인들이 찍은 사진을

전부 검사하며, 혹시 사진촬영금지지역에서 찍힌 사진같으면 벌금 몇백달러에 자칫 카메라 압수까지 당할 수

있다고 했다. 별 수 없이 카메라를 얌전히 꺼두고 차창에 붙어 열심히 눈알만 굴렸다.


우리가 가고 있는 길 옆으로 커다란 송전탑이 따라 오고 있었다. 개성공단 지역의 전기 수급을 담당하기 위해

남측에서 전기를 송전하기 위한 설비라고 했다. 송전탑이 든든히 남과 북을 잇고 있는 듯한 느낌.

정주영회장이 몰고 왔던 소떼들이 바로 이길을 지나 북으로 갔다고 하던데, 아마 그 소떼의 걸음속도로 천천히

움직이는 차들이었지만 4km는 금방이었다. 그래서 불과 십분 안팎? 그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저 앞에 북측

군인들의 경계 초소가 보였고, 붉은 별이 그려진 바리케이트가 얼기설기 놓인 것이 보였다.


서울에서 개성까지 불과 80여km. 참...가깝구나 싶었다. 그러면서도, 남한에서 북한으로 넘어가면서 말그대로

깜깜하기만 한 구역, 블랙박스를 지나면서 은근히 긴장했던 걸 깨달았다. 그리고 아마 북한을 다시 떠나기

전까지는 이런 긴장이 계속될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물론 그 블랙박스는 북한에서만 설정한 건 아니겠지만.

북한측 출입사무소에서 비행기 입국심사하듯 검색대를 지나, 세관에 출입증을 제출했다. 빨간 계급장과 김일성

배지가 달라붙은 채 칼같이 각잡혀있는 누런 북한군복을 입은 군인이 딱딱한 낯빛으로 나를 맞았다. A4지 몇장에

걸쳐 프린트된 소속, 이름 등등의 표를 한장씩 넘겨가며 내 이름을 확인하길래, 그보다 먼저 내 이름을 발견한 내가

손가락을 짚어 여기있다고 알려주었다. 그랬더니 도장 한 방, 쾅 찍고는 통과. 딱히 무섭게 하려거나 긴장감을

준다기보다는, 그냥 그 군인은 나를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으로 보는 느낌이다. 소 닭 보듯 하는 느낌이랄까.

그리고 바로 공장으로 들어섰다. 김대중 대통령이나 김정일국방위원장도 방문한 바 있고, 최근에 북한군 고위

장교가 개성공단 내 공장을 돌면서 짐싸는데 얼마나 걸리는지 물어볼 때 맨 처음 다녀갔을 만큼 개성공단의

대표적인 공장이다. 한붓그리기를 하는 듯 죽 지그재그로 이어진 형광등 아래 북한사람들이 잔뜩 모여있는 광경을

첨 맞닥뜨리고 살짝 당황했던 건 단지 미처 심적 준비가 안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공장 건물 입구를 들어서면

바로 그 옆에서부터 작업 라인이 늘어서 있단 걸 몰랐기 때문에 당황키도 했지만, 솔직히 이렇게 많은 북한 사람과

한 공간에..그것도 상대적으로 소수인 입장으로 마주하는 건 처음이었다.

그렇지만 내 속내가 어떻게 복잡하게 돌아가는지 상관없이 그네들은 모두 자신들이 할 일에 골똘히 열중하고

있는 듯이 보였다. 재단하는 공원(직원)들, 그리고 차례차례 순서를 거쳐가며 봉제를 해나가는 공원 라인들.

그러고 보면 난 단지 의류 제조공장이란 곳에 처음 들어와서 느낀 생경함을 북한사람들과의 대면에 대한 문화적

충격으로 잘못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사방에서 돌아가는 재봉틀 소리, 그리고 자신의 수족인양 민첩하게 쓰이는

다리미와 각종 도구들. 처음엔 그냥 이 '봉제실 2반'의 전체 덩어리를 뭉뚱그려 보고 있었지만 조금씩 한 명 한 명,

여공원들의 표정과 움직임이 눈에 들어왔다.

우선 공장을 한 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2층에 있는 샤워실, 북측 공원들은 이곳에서 샤워하는 걸 무척 좋아한다고

했다. 기본적인 먹는 문제조차 쉽게 해결하지 못하는 동네에서, 수도시설이나 전기시설이 제대로 되어 있을 리가

없는 거다. 설혹 제대로 되어 있다고 해도 샤워를 하는 건 쉽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샤워실'이란 문패 아래 붙은

스케줄표를 볼작시면, 보이는가. "샤와실 리용계획".

그 옆에는 생각보다 훨씬 괜찮은 수준의 식당이 있었다. 2005년이던가, 이 업체의 개성공장 준공 기념 패션쇼를

이 공간에서 열었다고 한다. 의자와 테이블을 모두 치워놓고 만들어진 런웨이 위에서 김태희가 워킹을 했다는데,

한국 최고의 여배우가 온다는 소식에 이곳 공원들이 모두 기대감에 충만해 있었댄다. 근데 정작, 김태희는 기대에

못 미쳤다며 그녀와 함께 워킹을 했던 다른 모델이 더욱 이뿌다는 한 목소리였다고 했다. 아마도 조금 통통하고

'복스럽게' 생긴 녀성을 날씬하고 다소 마른 체형의 여성보다 선호하는 이쪽의 미적 기준이 작용한 결과일 게다.

어쨌든, 왠지 그녀와 나는 여러모로 같은 공간을 점유하고 있다는 묘한 생각을 잠시. 크흑.

원래는 식사를 제공하지 않는 것으로 합의가 되었으나, 언젠가부터 중식을 제공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중식은 이곳에서 일하는 북측 인력들의 가장 중요한 식사시간이란 말은 굳이 덧붙이지 않아도 알 만하다. 제법

식단도 다양하게 잘 나오는 거 같은데, 모든 식자재는 남측에서 건너온다고 한다.

다시 1층의 작업 공간으로 내려와 한 바퀴 빙 둘러보았다. 한달의 약 60불의 임금을 받고 있는 이들은 대부분

고졸 이상의 높은 학력 수준과 이해력을 갖고 있다고 했다. 다만 인사관리의 권한이 남측 업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북측에 있다고 해서, 근태관리라거나 인센티브 부여, 혹은 내가 이해한 바대로 보다 나이브하게 말해 작업장내

규율 확립과 효율성 증진을 위한 조치를 취할 수가 없다고 한다. 사실 이 여공원들도 북측 상부에서 여기에 와서

일해라, 하니까 일하는 거지 개인의 희망이나 의지가 반영되어 배치된 것은 아니란다.

작년 말께 있었던 제2차 정상회담에서 노전대통령이 언급했던 개성공단 인근 기숙사 건설 문제는, 아직까지는

아무 후속방침이나 조치가 없다고 한다. 이미 개성 인근의 노동력을 모두 흡수한 상태라 하던데 공장들이 증설되면

새로 신규 인력을 어디서 끌어올지도 문제고, 그들이 어디에서 머물지도 문제가 될 거 같다. 다소 심한 경우일지

몰라도, 이곳에서 일하는 한 북한아가씨는 밤 3시에 일어나 밥을 하고 치장을 하고는, 4시 40분께 집을 나선다고

한다. 공단에서 운영하는 셔틀버스가 있긴 하지만 코스가 다양하지도, 길지도 않아서 어느 정도 걷거나 자전거를

타야 하며, 그래야 6시 반이던가 출근 시간에 맞출 수 있댄다. 하여 취침시간은 9시에서 9시반. 참...빡빡한 삶이네

속으로 생각했지만..맘 속 한구석에선 월급쟁이란 북녘땅이나 남한땅이나 비슷하구나, 했다.

처음에는 작업장 밖에 안 보이더니, 조금씩 사람들이 보이고, 그리고 그들의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그네들은 자기들끼리 웃으며 이야기도 드문드문 하고, 뭔가 짜증이 났는지 작업반장같은 사람한테 목소리 높여

살짝 항의도 하고, 옆사람이 시범보이는 걸 진지하게 눈여겨보며 배우기도 하고, 가끔은 발랄한 웃음소리도

시끄러운 재봉틀 소리와 함께 풀어놓기도 했다.

이렇게 재단을 하는 사람이나, 제봉을 하는 사람이나, 심지어는 숙련된 작업 고참으로 작업반장 역할을 맡고 있는

사람이나, 임금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한다. 어쨌든 집도 한 채씩 국가에서 제공하고, 일자리도 제공해주고,

기본적인 식량도 국가에서 (원칙상) 제공하게 되어 있는 사회주의 국가에서 당연한 걸지도 모른다.

"능력에 따라 일하고 능력에 따라 소비하는(혹은 벌어가는)" 자본주의 사회의 원칙이 아니라,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소비하는" 이상적인 원칙에 한결 가까운 건 맞겠지만..글쎄, 아직 그 누구의 필요도 채울만큼 충분히

주어지지는 않는 건 확실하다. 북측에서 커미션삼아 떼어가는 몫의 문제일 수도 있고, 일시적으로 형성되어 있는

북측의 불공정하고 불완전한 형태의 노동시장이 갖는 문제일 수도 있고.

공장을 나서서, 새롭게 지어지고 있는 신공장 건설현장을 가보기로 했다. 빨간 기를 꼽고 '림시' 번호판을 단 차를

타고 조금 움직이니 금세 공사현장이다. 노랑색 안전모를 쓴 사람은 북측 인부, 흰색 안전모를 쓴 사람은 남측

인부 혹은 기술자라고 한다. 이 곳에 새로 지어질 공장은 여태 개성공단에 입주한 업체들이 지은 공장들 중 최대

규모가 될 것이라고 하는데, 실은 개성공단에 입주한 기업들 중 적지 않은 수는 아파트형 공장에 입주해 있기

때문이기도 할 거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공사 현장이나 공장에서 일하시는 분들을 찍는 건 되고, 경찰복이던 군복이던 제복을 입은 사람을 찍으면 안 된다.

공장 내부에서는 맘껏 찍어도 되지만, 개성공단이 차지한 땅 바로 그너머서부터 시작되는 민가들은 찍으면 안

된다. 다 쓰러져 가고 페인트칠조차 드문, 지붕엔 다 썩어들어가는 것처럼 보이는 너덜너덜한 기왓장이 용케

달라붙은 채 웅크린 폐허같은 민가들이었다. 개성공단과 바로 인접한 개성시내에는 12층짜리던가, 엘리베이터가

있는 고층아파트가 있긴 하지만 엘레베이터는 안 움직인지 오래라고 했다. 북측 윗사람들이 무작위로 지정해준

자신의 집이 그 꼭대기층이라면, 게다가 자신이 5,60대 노인이라면, 죽을 때까지 집아래로 몇번 내려오지도 못하는

비극적이고도 희극적인 일이 실제로 벌어진다고 한다.

남측도 우스운 건 마찬가지다. 개성공단 중앙에 높다랗고 지어올리고 있는 저 건물은,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가

입주해서 행정, 법제 관련 업무를 담당할 곳이라고 한다. 아마 남측의 관료나 높으신 냥반들이 왔을 때 호텔로도

활용되지 않을까 싶다. 저렇게 높은 건물을 대체 무슨 용도로 다 채울 건지 모르겠다.

이렇게 보니까 조금 뜨악하달까, 푸코가 이야기했던 판-옵티콘이 생각났다. "감시와 처벌"이란 그의 책에서 나왔던

근대적 의미를 충실히 구현한 360도 전방위를 감시할 수 있는 감옥 시스템. 끽해봐야 몇층짜리 건물이 전부인

요 야트막한 동네 한가운데다가 저런 건물을 떡하니 지어올려서 감시라도 하겠다는 건지, 그 건물 설계의 의도가,

조금 요란하게는 철학이 궁금해졌다. 개성공단에 입주해 있는 업체들의 편의를 봐주고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마인드가 제대로 서있다면 저런 과잉하고 권위적인 건물에 부담감이나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을까. 관치의 느낌.

산을 따라 빙 둘러쳐진 녹색의 펜스는 사실 남북출입사무소를 지나 자유의 다리를 건너 비무장지대를 지날 때부터

줄곧 우리를 따라 내달리고 있었다. 한발짝이라도 저 펜스를 넘는 순간 허가받지 않은 '입북자'가 되는 거라고.

'입북자'라는 건 '탈남자'의 같은 말인 걸까. 그렇담 '탈북자'를 북측에선 '입남자'라고 하려나. 희떠운 생각 한조각.


북한에서는 그런 이야기도 들린다고 했다. 최근 '비타협적인 자세'를 견지하며 북측으로 삐라를 마구 뿌려대는

사람들을 과연 이명박 정부가 못 막아서 못 막는 건가. 이미 촛불집회 때 유모차 부대라는 애기아주머니들도

강경하게 대처하고 진압했으면서, 이제와서 민주주의 국가라고 못 막겠다는 걸 믿으라는 건가. 물론 법적인

근거가 있고 없고의 차이라거나 등의 미시적 차이를 모르고 한 말이겠지만(해가 진 후 집회 및 시위를 금지한

어이없는 법률이라거나 지극히 자의적인 법적용 등을 차치하고 말하더라도) 거시적 차원에서는 일견 수긍할

만한 구석이 없지 않다고 생각했다.

공장을 돌아보고 나오려는데, 옆에서 한 북측 인부 아저씨가 설렁설렁 자전거를 타고 지나길래 서둘러 셔터를

눌렀다. 마치 남녘땅 시골 촌로들이 자전거를 타듯 거칠것 없는 유유한 자세로, 많이 차갑고 매콤한 바람이 불어

얼굴하며 손등이 온통 새빨개졌음에도 그 바람결을 즐기는 것 같은 태도로 움직이는 게 너무 인상적이었다.

어쩌면 이것이 북측의 삶의 패턴이랄까, 리듬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에 비하자면, 내 삶의 리듬은 어떤지

돌아보게 되었다.



* 아마 태그에 몇가지 북측과 관련된 금칙어가 있는 것 같다. 애초 올렸던 글이 티스토리 메인홈에 노출되지 않고

거의 읽혀지지 않았던 걸 보고 태그를 좀 수정했더니 그제서야 메인홈에 정상적으로 게시되었던 것 같은데..

뭐가 금칙어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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