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보수동 헌책방골목에서 만난 책 한 권, 책을 슬쩍 열어보니 미스코리아 머리를 한 어느 여자가 보인다.

언제 찍은 사진인지 모르겠지만, 93년 11월에 나온 책이니만치 그 이전에 찍은 사진일텐데 지금이나 그때나

별 차이가 없다. 표정이 어색한 건 비슷하려나.

93년까지 썼던 일기들을 모아 발간했다는 책인데, 다시 한번 실감한다. 말이나 글을 그럴 듯하게 잘하기는 참 쉽다.

문제는 그런 번드르르하고 군자연한 말들이 아니라, 꾸준히 관찰하고 지켜보지 않으면 알수 없는 행동의 격.

93년 11월 1일 발간된 박근혜의 일기 모음집, '평범한 가정에 태어났더라면'이다. 부산 보수동 책방골목에서

눈에 띄인 책, 사실 눈에 뜨이게 전면에 배치되어 있기도 했다. 상실의 시대니 문화유산답사기가 저렇게 빼곡히

꽂혀있어 찾기가 쉽지 않은 것에 비하면, 책방에서도 공주 대접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제목이 참 자극적이다 싶었는데-자기가 평범한 가정에 태어나지 못해 아쉽다는 함의 속에 약간의

선민의식과 잘난척하는 '공주' 냄새가 난다면 과한 걸까-아니나 다를까, 몇년 후 이 일기 모음집은 '고난을 벗삼아

진실을 등대삼아'라는 이름으로 증보된다. 그 이름은 근데 더 잘못 지었단 느낌을 지울 길 없다. 고난과 진실이라.


기념삼아 사둘까 하다가 말고서는 집에 와서 찾아보니 '평범한 가정에 태어났더라면', 이 책은 이미 오래전 절판된 책.

헌책방에서나 발견할 수 있는 흥미로운, 그렇지만 다소 찝찝한 책이다.

당신이 '평범한 가정'에 태어났더라면, 이렇게 생색내기 식 김치담기 쑈를 하면서 스티로폼 박스에 그대로

김치를 담지는 않았겠지요. 아이들한테 환경 호르몬을 잔뜩 주입할 생각이 아니었다면. (사진은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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