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Galaxy7, 2016


베를린 시내 스카이라인의 트레이드마크인 텔레비전 송신탑, 삐쭉한 안테나처럼 생긴 그것을 따라 걷게 되면 나타나는 광장이 알렉산더플라츠.


밤마실 삼아 설렁설렁 걷던 길에 슈프레 강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공연 같은 것도 잠시 앉아 즐겨주고.


주먹만한 대리석들로 박아둔 유럽 느낌 그득한 포석을 달각달각 밟으며.


그래피티가 몇겹씩 덧씌워져 있는 교각 아래도 지나고.


도착한 너른 광장이 알렉산더플라츠. 우리로 치면 명동쯤 되려나, 백화점이나 각종 샵들이 모여있는 곳. 그리고 텔레비전 송신탑이 비로소 우뚝 서서 굽어보고 있는 곳.


한쪽에서는 베를린 시내 곳곳을 연결하는 트램이 출발.


그리고 이미 셔터를 내린 어느 건물 외벽에는 베를린, 러브, 두 글자만 눈이 부시게 반짝거리고.


호텔로 돌아오는 길 어느 오랜 성당 앞에서는 삼삼오오 모여앉은 사람들의 말소리와 시원한 분수 소리가 뒤엉켜 있었다.


베를린 시내 곳곳에서 보이는 (아마도) 수도 파이프. 왠지 프랑스 파리의 퐁피두센터를 떠올리게 만드는 현대적인 느낌 물씬.


조그마한 개천을 건너는데 시꺼먼 개천 위로 불빛이 둥둥. 굉장히 고즈넉한 동네, 무섭다기보단 마냥 평화로운 느낌.


그렇게 설렁설렁 밤마실 삼아 산책을 다녀온 덕에, 극악의 시차를 극복하고 꿀잠을 잘 수 있었다나 뭐라나..




 

 

 

 

미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손꼽히는 샌디에고. 일년내내 따뜻한 기후와 태평양을 옆에 끼고 아름다운 해변가를 품은 깨끗한 도시는 현지인뿐 아니라 여행자들의 마음을 붙잡기에 부족함이 없는 것 같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로스앤젤레스, 라스베거스 등 미국 서부해안을 따라 숨가쁘게 내려오던 지난 여행의 종착지로 삼았던 샌디에고, 내게는 라호야 해변에서 마주친 커다란 물개들과 자유로운 누드비치의 따사롭던 햇살로 남아있는 곳이다. 언제고 꼭 한번 다시 가서 좀더 오래, 좀더 여유롭게 그 햇살과 바람과 바다를 즐기다 오고 싶은 곳.











캘리포니아 남부의 가장 아름다운 해안 중의 하나라는 샌디에고의 라호야 비치, 그리고 그 보석같은 해안 중에서도 특히나 영롱하게 빛나는 해변인 블랙비치(샌디에고의 누드비치, 블랙비치(Black's Beach)), 동물원과 미술관을 품고 있는 무시무시한 녹색의 발보아공원, 그리고 해안가를 따라 그럴듯한 레스토랑들이 늘어선 가운데 버티고 섰던 해양박물관(샌디에고 해양박물관, 동해를 휘젓던 구소련 잠수함의 휴식처.) 등 그리 크지 않은 도시에 오밀조밀 자리잡은 명소들만 해도 이박삼일 코스를 짜기가 버거울 정도다. 그렇지만 육즙이 줄줄 흐르던 버거가 너무나도 맛있었던 다운타운의 골목들이라거나,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아 집집마다 공들여 치장해둔 반짝이 장식들이라거나, 그런 소도시의 일상이 정겹게 느껴졌던 걸 떠올리면 그저 이름 모를 스트리트를 따라 걷는 것만으로도 좋겠다.



그렇게 샌디에고의 정취를 흠뻑 맛보고 다른 이들과 많이 나누기 위해서라면 역시 숙소를 어떻게 잡는지가 결정적인 포인트! 샌디에고같은 미국내 중소도시에서 숙소를 잡을 때 크게 세가지를 꼭 고려하라고 추천해주고 싶다. 1) 현지 정보를 풍부하게 얻을 수 있는지. 왜냐하면 뉴욕이나 샌프란시스코 같은 큰 도시 말고 중소도시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가이드북도 부실하고 사전에 정보를 얻는 것보다는 현지에서 얻는 것이 훨씬 알차고 유용한 정보가 많았더랬다. 2) 교통이 편리한지. 대중교통이 그리 편하지 않은 미국의 중소도시에서 숙소의 위치는 여행 전체의 만족도를 좌우할 만큼 중요할 수 있다. 그리고 3) 새로운 친구들과 편하게 만날 수 있는 여건이 되는지. 혼자 다니는 여행에서는 특히나 여행 친구를 만나거나 전세계에서 온 친구들과 자연스레 뒤섞이며 맥주 한 병 부딪히는 것만으로 힘을 얻기도 하고 귀중한 추억을 만들 수도 있으니깐.


그런 점에서 내가 머물렀던 USA Hostels San Diego는 굉장히 맘에 들었던 숙소였다. 우선 교통의 요지인 다운타운 중심가에 위치하여 버스나 셔틀버스로도 쉽게 움직일 수 있다는 점도 그랬고, 대부분의 명소에는 걸어서 갈 수 있을만큼 가깝다는 점이 먼저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4인/6인 혼성 도미토리룸이라 누구랑 함께 지내게 될지 기대감이 없지 않았는데, 실제로 유럽이나 아시아에서 온 친구들과 같은 방을 쓰며 여행 정보도 나누고 같이 일정을 짜보기도 하는 등 쉽게 친해질 수 있었던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참고로 6인용 여성전용 도미토리룸도 있으니 여성분들이 안심하고 쓰기에도 편리하다) 


그냥 알아서 쉽게 친해지는 친구들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호스텔에서 타코&마가리타 나이트라거나 펍 나이트 같이 자연스럽게 친해질 수 있는 자리를 많이 깔아주어서 더욱 수월하게 친해질 수 있었던 건 분명하다. 멍석을 깔아놔도 쭈뼛거리는 사람들이 있는 판에 그런 노력조차 기울이지 않는 호스텔이나 게스트하우스가 얼마나 많은지. 



*USA Hostels San Diego 바로가기

 


USA Hostels San Diego를 찾은 건 hostelworld(http://www.korean.hostelworld.com/)를 통해서였는데, 여기에서 찾아본 USA Hostels San Diego의 소개를 보면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애용하고 있는 곳이란 걸 확인할 수 있다. 호스텔에 대한 자세한 소개 내용이 제공되는 것은 물론이고, 이미 투숙했던 방문객들이 남겨놓은 리뷰가 벌써 1600여개에 육박할 만큼 쌓여있어 아**라거나 기타 호텔예약사이트와 비교해도 압도적이다. 비용 가치(말하자면 '가성비'란 개념과 똑떨어지는), 보안, 위치, 직원, 분위기, 청결, 시설에 이르는 세부 항목들에 대한 만족도와 전체 평점을 한눈에 볼 수 있으니 다른 곳들과 비교하기에도 좋다.


*호스텔월드홈페이지



그래서, 혼자 떠나는 여행이라면, 혼자가 아니라도 가서 친구들도 사귀고 좀 경쾌하게 놀고 싶은 여행이라면, 한번 호스텔월드에 들어가서 숙소를 찾아보는 것도 좋겠다. 1인실도 있고 도미토리룸도 있으니 여행 컨셉과 예산에 맞추어 계획을 짜보는 건 어떨까. 여행의 재미는 준비하는 과정에서 절반 이상 만끽하는 법이라는데, 호스텔월드에서 전세계 170여개국의 숙소를 한번 탐방해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각별한 여행의 묘미를 맛볼 수 있을 거라 추천하고 싶다.



* 본 포스팅은 '호스텔월드'의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지난 토요일, 한남동에 뭔가 새롭게 미술관이 생겼다는 이야기만 듣고 무작정 찾아가본 디뮤지엄. 알고 보니 대림미술관의 분관이랄까.


대림미술관과 함께 디멤버십 카드로 전시나 강연을 찾아볼 수 있다. 개관 특별전은 9개의 개별 방을 특유의 분위기로 가득 채운


9개의 빛에 대한 내용, 공간을 채우는 빛의 질감이나 색감이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중인지라 흥미가 확 돋는 전시였다.


1번방부터 9번방으로 방문을 열고 들어가는 행위가 반복될 때마다, 단순히 빛의 궤적만이 존재하던 방에 소리가, 색감이, 그리고


움직임 더해졌다. 그 중에 가장 마음에 들었던 방은 여기. 하얀 조명이 살짝 굽어있을 뿐인데, 바람에 사정없이 휘날리는 하얀


A4용지 보고서더미 같은 후련함을 자아냈다.


그리고 각기 다른 위치에서 빨강색, 노란색, 파란색의 삼원색 조명을 쏘아서 형상을 강렬하게 일그러뜨렸던 이 방도 재미있었고.


단순한 조형물에서 뻗어나간 세가지 빛깔의 그림자가 마구 뒤섞이면서 저렇게 비현실적인 실루엣과 색감을 만들어낸다.


한켠에는 이렇게 삼색으로 뒤섞이는 그림자도. 


빛과 조형물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텅빈 공간이 이렇게 깊숙한 숲길같은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한다. 반사에 반사를 거듭해서


켜켜이 쌓인 그림자가 그대로 나뭇잎이 되고 덤불이 되어버렸다.


혹은 이런 류의 비현실적인 색감도 맛볼 수 있는 방이 있다. 온통 새하얀 방, 신발조차 커버를 씌우고 들어가야 하는 그 방에는 


세개의 칸막이로 적당히 가려진 불빛이 천장에 매달린 정사각면체들의 면면과 벽면을 몽환적인 색감으로 물들였다.


그리고 이 커다란 조형물이 다양하게 변화하는 조명을 받아 변화무쌍한 근육을 뽐내는 모습까지. 사실 이 방이 두번째였던가 했지만.



아무런 필터나 효과를 더하지 않고도, 오로지 조명 만으로 이런 환상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니 아홉 개의 방을 하나씩 


방문하며 실감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샌프란시스코의 곳곳에 숨겨진 특색있는 박물관 중에 하나, 아프리카 디아스포라 박물관.

 

미국에 이주한 아프리카 이민자들의 생활상을 고스란히 볼 수 있는 박물관이라고 하길래 찾았는데.

 

두둥. 올해말까지 더 크고 새롭게 짓는다며 리모델링이었다는. 아쉽게도 언젠가의 훗날을 기약할 수 밖에.

 

그리고 샌프란의 그래피티들. 이전에 갔을 때는 주로 미션 지구쪽의 이름난 그래피티 골목들을 돌았다면 이번엔 그냥 랜덤으로.

 

 

 

미국의 이미지 중 하나는, 온갖 담배와 맥주를 팔고 있는 철조망 촘촘한 구멍가게. 왠지 이런 그림에 가깝지 않을까.

 

 

골목을 돌아다니다 보면 저 앞에서 문득 육박해들어오는 그래피티들을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리고 돌아보지 못한 골목에 대한 아쉬움도 한가득.

 

무슨 건물인지 모르겠지만 외벽이 온통 음악과도 같은 느낌. 악기와 음표들과 새들이 날아다니는.

 

어디보다 맘에 들었던 그림, 선연한 빨강과 파랑, 그리고 하얀색과 왼켠의 노란색 기둥까지.

 

그러다보니 불쑥 샌프란시스코 시청 앞의 공터로 흘러나왔다. 시선이 닿은 곳에는 휠체어를 탄 할아버지와

 

무거워보이는 짐보퉁이를 들고서는 힘든 듯 잠시 멈춰선 중늙은이 할아버지. 뭔가 지쳐보이는 뒷모습들이다.

 

어느 건물 벽면에 누군가 그래피티..라기보다는 캘리그래피같이 그려둔 낙서. 형체를 분간하기도 쉽지 않지만

 

그저 그 모호한 형상과 필선의 강약만으로도 느낌을 던져주는 듯 하던.

 

여기 역시. 건물의 모든 외벽을 굉장히 세밀한 그래피티로 래핑해버린 게 굉장히 인상적이다.

 

건물 앞에 세워둔 오토바이, 그리고 좀더 가까이 다가가서 본 벽면의 그래피티.

 

실컷 거리를 종횡무진, 발길 닿는대로 걷다가 해떨어질 무렵 숙소로 돌아와서. 역시 샌프란시스코의 호텔인지라

 

호텔방 번호판 역시 샌프란시스코의 상징인 케이블카가 담겼다.

 

 

 

 

샌프란시스코 시청 옆에 골목을 요리조리 돌다가 우연찮게 발견한, 프랑스 스타일 소울푸드를 표방한 브렌다스.(Brenda's)

 

작년말에 출장 와서도 두 번이나 들렀을 만큼 맘에 들었던 곳인데, 이번에도 마침 시청 옆에 아시아미술관에 전시를 구경간 김에

 

다시 한번 들러서 간단한 식사와 맥주 한 잔.

 

들어서자마나 벽면에 보이는 Bon Voyage. 저녁 시간때에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먹을 만큼 나름의 명성을 누리고 있는 곳 같더니

 

딱히 점심시간이나 저녁시간도 아닌데도 자리가 대개 차있었다.

 

  한쪽에는 첼로와 기타 등을 연주하는 트리오가 생음악을 연주중, 적당한 분위기를 달아오르게 해주는 감초같은 역할을 다하고 있다.

 

입구의 카운터, 그 위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화살표가 출입문이자 카운터를 가리키고 있기도 하고.

 

 

디스플레이도 꽤나 독특한 게 한쪽 벽면으로는 온통 제각기의 사이즈와 스타일을 가진 거울들로 가득 채우고.

 

그날의 스페셜 메뉴. 메뉴는 프렌치 스타일, 그리고 놀랍게도(!) 주인 아저씨는 왼쪽 팔뚝에 한글로 타투를 잔뜩 새겨두신 한국인.

 

구글맵에서도 검색하면 찾아볼 수 있으니 한번쯤 찾아가봐도 좋을 곳, 브렌다스. 신비감 조성을 위해 메뉴 사진은 스킵하기로.

 

 

자그레브의 구시가, 그 시발점이 되는 옐라치치 광장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광장들을 따라 걷다보면, 우연찮게도-아마도

 

도시 계획의 산물이겠지만-커다란 U자 모양의 산책로가 만들어진다. 옐라치치 광장에서 슈비차 광장을 지나 모던 갤러리,

 

토미슬라브 광장을 지나 자그레브의 중앙역까지. 그리고 오른쪽으로 꺾어서 보타니칼 가든을 끼고 걷다가 다시 오른쪽으로 턴.

 

그렇게 미마라 박물관과 크로아티아 국립극장을 만나는 코스가 바로 자그레브의 말굽 편자모양 산책로의 대략적인 동선.

 

(사실 그냥 걷고 싶은 대로 걷기만 해도 자연스레 걷게 되는 코스, 계속 초록빛 풀밭과 나무들을 옆에 끼고 걷고 싶은 게 인지상정)

 

그러다 보면 광장 어디메쯤에서 뜬금없는 슈퍼주니어 한국팬들의 테러도 볼 수가 있고,(여기서 콘서트라도 있었던 건가;;)

 

 

한국과는 달리 시원한 하늘색으로 칠해진 소화전도 볼 수가 있고,(이건 사실 빨간색보다 훨씬 직관적이고 자연스럽다)

 

 

송화가루인지 열매인지를 탐스럽게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나무도 지나는가 하면,

 

슬몃 비껴나기 시작하는 햇살을 담뿍 빨아들이며 반짝반짝 빛나는 자그마한 분수대를 보기도 하고.

 

이만큼이나 길어진 나무 그림자들을 헤치며 공원 산책로를 빠른 걸음으로 내딛는 중인 아저씨들도 만나는 거다.

 

 

자그레브 중앙역 앞의 '토미슬라브 광장', 그 가운데에서 마치 광화문 광장 중앙의 이순신 장군처럼 위풍당당한 말탄 장군상.

 

그렇지만 저렇게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앉아서 맥주도 마시고 따끈하게 덥혀진 대리석에 앉아 광합성 중인 모습은 한국과 다르다.

 

어디나 그렇듯, 먼 길을 떠날 사람들에게 강렬한 유혹으로 다가오는 건 온갖 도색잡지들. 유리벽을 온통 도배해버린 타블로이드지들.

 

가게 너머 살짝 보이는 게 자그레브의 중앙역, 가까운 슬로베니아로부터 먼 유럽으로 이어지는 기차가 지나는 곳이다.

 

 

모던 갤러리. 안타깝게도 이곳 자그레브의 대부분 박물관이나 미술관들 역시 월요일은 휴관. 여긴 가보고 싶었는데 아쉽다.

 

사람과 자전거가 모두 멈추라며 시뻘겋게 핏대를 세운 자그레브의 신호등. 신호가 바뀌면 초록빛 사람과 자전거가 뿅.

 

 

4월부터 11월까지만 개방하는 보타니칼가든은 담장 너머로만 슬쩍 구경하고 지나고 나서 마주친 (아마도) 대학 건물.

 

건물 꼭대기에 무슨 장식물인가 했더니 눈을 부릅뜨고 사주를 경계중인 부엉이들이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를 염두에 둔 거겠지만

 

왠지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하나 안하나 감시하는 엄한 선생의 표정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리고 어느 조그만 놀이터가 보이길래 그냥, 조금 말굽형 산책로에서 벗어나 갓길로 샌 참에 발견한 귀여운 꼬맹이들.

 

내 손에 들린 카메라를 보고는 여봐란 듯이 더 용감한 포즈들을 지어보이느라 경쟁이 붙었다.

 

 

그리고 굉장히 강렬한 인상을 던지는 샛노랑 외관이 파란 하늘 아래서 더욱 두드러지던, 크로아티아 국립극장.

 

맞은편의 미술공예 박물관도 노랑빛이긴 했지만 국립극장만큼 강렬하지는 못했다. 그늘진 모습이어서 그랬던 걸까, 모르겠다.

 

공원 옆에 그어진 주차구역 중에서 눈에 확 띄던 오토바이 주차구역의 표시. 되게 디테일하고 이쁜 표지다.

 

 

크로아티아 국립극장이 유명한 건 그 개나리색 외관뿐만이 아니라, 크로아티아의 손꼽히는 예술가이자 조각가인 메슈트로비치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하다는 '생명의 원천'이라는 작품이 정면에 설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 작품, 남자와 여자의 강렬한 눈빛이

 

부딪히는 사이에 뒷켠에 있는 다소 늙고 지쳐보이는 남자의 시무룩한 포즈가 대비된다.

 

그런 군상들이 크로아티아 국립극장 앞의 광장 한가운데에서 사방을 향한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녹색 편자가 끊기고 다시 구시가에 가까이 도달한 즈음, 아무 노천 까페에 앉아 잠시 다리를 쉬는 참에 시선에 잡힌 할아버지.

 

후드티와 청바지 차림의 할아버지가 멋지게 선글래스를 끼고는 자전거 페달을 힘주어 밟는 모습이 그럴 듯 했다.

 

테이블에 앉아 쉬는 김에 주머니를 털어 가진 돈 액수도 확인하고, 이 나라 돈에는 어떤 그림이나 장식들이 있나

 

꼼꼼히 살펴보는 참에 신기한 걸 발견했다. 크로아티아의 돈 단위인 쿠나(KUNA)는 동전의 숫자 뒤에 새겨진 그 짐승, 족제비나

 

담비처럼 생긴 동물의 이름에서 딴 거라길래 그것부터 신기하다 했는데, 모든 동전의 도안이 물고기, 새, 곰같은 동물이랑

 

식물들이다. 뭐랄까, 굉장히 자연친화적이고 생태적인 가치를 중시하는 나라인 것 같은 느낌이 팍팍.

 

 

그러고 보면 이 곳의 사계절은 두바퀴 정도 돌려서 봤던 거 같다. 미술관 옆 동물원의 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가는 길.

 

올겨울 삼엄하게 내린 눈에 호수가 온통 하얗게 얼어붙었다.

 

본관 중앙홀에 설치된 고 백남준의 비디오아트. 텔레비전으로 쌓은 탑이 360도의 뷰를 보여주고 있는데,

 

저 작품은 볼 때마다 내가 티비를 보는 건지 티비가 나를 보는 건지 알 수 없는 위압감을 주는 듯.

 

마치 로켓이 발사되기라도 할 듯한 날카로운 예기가 서린 탑의 끝쪽에는 대들보를 상량하며 적어둔 축문이 한바퀴 둘려있다.

 

 

마치 구겐하임 미술관의 달팽이껍데기처럼 뱅글뱅글 돌아가는 계단이 휘감긴 벽면.

 

그리고, 온통 앙상한 잔가지만 가득한 나무와는 달리 겨울철 북풍한설에도 끄덕없는 둔탁하고 묵직한 인공조형물.

 

그 와중에 과천서울랜드 매표소가 이렇게 방긋 웃고 있었다. 어렸을 때도 저렇게 웃고 있었던가, 기억이 그닥.

 

 

 

 

 

 

코엑스 메가박스 가는 길, 리모델링이 한창인 코엑스 곳곳에서 문닫고 사라져버린 샵과 공간들이 많아지는 시기다.

 

늘 무심코 지나쳤던 장식등들이 새삼스럽게 보이고, 마치 이 곳에 놀러온 외국인 관광객인양 카메라를 들게 만든 이유.

 

 구간구간 상점들이 빠져나가고 공사가 시작되고 있는 즈음이라 살짝 황량해보이기도 하지만 여전히 사람은 많다.

 

그리고 코엑스 메가박스의 상징과도 같은, 이 텔레비전 탑. 백남준의 비디오아트라고 해도 믿을 법한.

 

 

어느샌가부터 메가박스 옆에서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이 생겼다. 도슨트도 상주 중이어서 언제든 들어가면

 

자세한 설명을 들으며 작지만 알차게 작품이 전시된 공간을 돌아볼 수 있는 것.

 

재미지고 발랄한 작품들을 볼 겸, 슬쩍슬쩍 점심시간에 산책 삼아 돌아다니는 곳 중 하나.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입장료는 25달러를 '권장'하나 원치 않으면 그냥 내지 않고 들어가도 된다. 미국에선 흔치 않은

 

국영 기관의 배포라고 해야 하려나. 센트럴 파크를 잠시 걸어주다가 날도 덥고, 앞에 색소폰 부는 아저씨가 먼저 날 불렀다.

 

사진엔 성조기를 꺼내들었지만, 공연 중에 각국의 국기를 꺼내들며 그 나라의 음악을 연주하는 레퍼토리는 각양각색의

 

관객으로부터 호응을, 그리고 두둑한 팁을 이끌어낼 수 있는 영리한 전략이다.

 

원색의 옷을 입은 가족, 아이들은 흥겨운 색소폰 운율에 맞춰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앞 계단을 마구 뛰어놀았다.

 

조금 앉아서 연주를 듣다가, 그래도 여기까지 온 김에 슬쩍 둘러나 보자고 박물관 안에 들어갔다.

 

 

박물관 로비에 전시되어 있는 이집트 파라오의 좌상. 박물관 1층의 큰 비중을 차지한 전시물이 이집트 유물들이기도 하다.

 

 

2004년에 이집트 여행을 한달동안 하며 내겐 특별하고 소중한 곳으로 각인되어버린 이집트, 여기서 이리 보니 반갑다.

 

이집트 미술이라고 전부 정면을 바라보는 건 아니란 말이다, 라고 이야기하는 나신의 여인.

 

 

사람들이 전부 한번씩 고개를 빼고 안을 들여다보게 만들던 커다란 석관. 그치만 안에는 아무것도 없는 텅빈 공간이었는데,

 

그러고 보니 쿠푸왕의 대피라밋에 있었던 석관도 딱 이런 사이즈였던 듯. 그 안에 들어가 누웠던 기억이 새록새록.

 

그리스 문자가 새겨져 있는 두껍고 단단해 보이는 금반지들.

 

성모가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피에타 상.

 

 

그리고 유럽 상류계층의 호화스러운 가구들과 생활 자기들.

 

 

 

작품을 보며 제목이 뭘까, 상상해보는 것도 하나의 쏠쏠한 재미라고 하면 이 작품은 그 재미를 만끽시켜 준다. "겨울".

 

 

 

 

 

 

 

 

사랑의 비너스~ CM송의 위력을 되새기게 만드는 비너스.

 

 

이 작품의 제목은, "밤"이다.

 

 

이런 테이블은 아무런 실용적인 용도는 충족시키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굉장히 멋지다.

 

 

여성의 성기를 저런 모양으로 단순화해서 나타내다니, 감탄감탄.

 

 

그리고 아마도 남미나 중미 고대 문명관으로 넘어온 듯. 동선이 좀 복잡하게 짜여있어서 어디로 향하는지 알기가 어렵다.

 

 

 

그리고 이제는 썰물빠지듯 지나가버린 올림픽을 되새기며 그리스의 도자기 몇 점.

 

남자들이 고추를 덜렁거리며 뛰어다니던 게 올림픽의 시초란 건데, 그 때나 지금이나 운동 그 자체보다 그 위에

 

이리저리 얹어둔 정치적 의미와 역학 관계가 더 중요했던 시기들이 많았을 거다. 혹은 국가 대 국가의 문제로 번지거나.

 

 

뉴욕의 모든 박물관, 미술관들의 폐장 시간은 네시 반. 생각보다 꽤나 이른 시간이지만 얄짤 없다.

 

밖으로 나와보니 여전히 연주 중이던 아저씨. 오랜만에 친구를 만난 듯 반가웠지만 아저씨는 지나가던 아가한테

 

무릎을 꿇고 '잘자라 우리아가', 이게 슈베르트의 자장곡이던가, 그걸 불어주느라 여념이 없다.

 

 

박물관에서 나온 사람들이 더러는 계단에 철퍼덕 앉고, 더러는 택시나 버스를 타고 가버리고, 그런 어느 한가하고

 

따뜻한 뉴욕 중심가 여름날의 오후.

 

 

 

 

 

 

청동으로 만들어졌대도 조심해야 하는 건 마찬가지고.

 

 대리석으로 만들어졌다 해도 조심해야 하는 건 역시 마찬가지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만난 씨없는(?) 남자들.

 

 그리고 이럴 때 떠오르는 바로 그 표정, "내가 고자라니!"

 

바로 그 표정 역시도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만나볼 수가 있었다. "내가 고자라니!!!22222"

 

작품에 대한 이런 심오한 설명이 있긴 하지만 일일이 해석하는 건 각자의 몫으로 남기기로 하고.

 

5초후 "내가 고자라니!"를 외치게 될 짤방 몇 개를 투척하고 휘리릭.

 

 

 

 

 

토요일날 샤갈전을 보러 나섰었다. 3월 27일까지라 하여 막판이니 사람들이 많으리란 건 이미

예상을 했었지만, 줄이 잔뜩 늘어서 입장하는 데만 한시간이 걸리리라곤 생각도 못했다.

왜 이리도 사람이 많은 건지. 굳이 샤갈전을 보러 왔다기보다는 근처를 걸으며 놀고 싶었던 거라

미련없이 발걸음을 돌리고 말았다. 저 사람들이 우르르 들어가선 오디오 설명이 붙어있는 앞에서

바글바글 모인 채 줄서서 작품 감상을 하리라고 생각하니 정말. 샤갈은 다음 기회에.

그냥 돌아서서 정동 쪽으로 넘어가려는데 문득 발걸음을 붙잡은 건, 뭔가 분위기가 묘한 조각들.

잔뜩 찌그러들어있어서 왠지 저기 어딘가쯤에 블랙홀같은 게 공간을 일그러뜨리는 건 아닌가

싶도록, 순간적으로 눈이 어질어질해지는 느낌이었다. 아닌게 아니라 정말 잔뜩 짜부러진

가족들의 모습들. 실물 형태로 만들어두고 위에서부터 지긋하게 꾸우욱 눌러서 만든 걸까.

각도를 이리저리 달리 해서 보니까 더 재미있었다. 눈높이를 맞춰서 보면 호빗족 같기도 하고,

위에서 내려다보면 그냥 장독 같이 땡땡하고 배나온 물체들 같기도 하고. 그러고 보니 작품 제목도

무려 '장독대'였던가.

그리고 좋아하는 길 중 하나, 시립미술관에서 넘어가는 길. 노랑색만 살리고 모노톤으로 찍어본

사진에서는 바리케이트가 발랄해 보인다. 저너머 수풀 속 개나리 뭉치들도 어찌됐건 슬금슬금

오고 있는 봄기운을 느끼게 했고.

가다가 문득, 정동갤러리를 들렀다. 현대작가들의 소품전을 열고 있었는데 여긴 사람이 하나도

없는 거다. 2층까지 전시된 작품들을 유유히 둘러보면서 몇몇 작가들의 그림에 감탄해주고

이름도 눈여겨 보아두고, 내키는 대로 돌면서 한바퀴 돌고는 점찍어둔 작품들은 다시 한번

봐주고. 조용한 음악이 흐르는 갤러리 안에서 나무마룻바닥에 울리는 내 발걸음 소리도 좋았고

따끈하게 실내의 공기를 덥히는 백열전구들의 온기도 좋았다.

그리고 아무래도 쌀쌀한 삼월말의 날씨, 세상에 식목일이 코앞이건만 이렇게 추워서야. 갤러리 안에

후끈하게 덥혀진 공기는 백열전구 말고도 이 녀석의 도움이 컸던 거다. 빨갛게 달아오른 코일을

둘둘 감고 있는 난로. 그 솔직한 열기가 난로와 마주한 살갗에 훅 끼쳐와서, 왠지 정다워서 난로

앞에 쪼그려앉아서 열기를 느껴줬다.

늘 미술관에 오면 재밌다고 생각하는 것, 특히나 현대 미술로 넘어오면 더 심해지지만 이렇게

작품들이 줄줄이 전시된 가운데 소화전이나 통신단자 부스같은 것들이 문득 숨어있는 거다.

더구나 여긴 아주 의도적인 양 스뎅부스 주변을 액자틀같은 걸로 둘러놓았다. 액자틀까지

대략 주위 작품들과 깔맞춤되어 있는데다가, 마침 바로 옆에 전등스위치가 바싹 붙어있어서

작품 라벨같이 보이기도 하고.


그렇게 설렁설렁 노닐다가 밖으로. 어디선가 물이 줄줄 흐르는 소리가 개울가 같다 싶었는데

건물 청소중이었다. 4층짜리 학교 건물 위에 줄 하나로 지탱한 채 건물 외벽을 청소중이신

아저씨의 뒷모습이 하늘하고 붙어버렸다. 위태로워 보이기도 하고, 추워 보이기도 하고,

그렇지만 당당해 보이기도 하고.

마무리는 영화관. 어쩌다 보니 '미로스페이스'가 근 일년여만에 재개관하는 첫날이었다. 깔끔하게

재단장한 영화관, '2011 감독열전' 작품 중에서 시간이 맞는 녀석 하나를 골라 들어갔더니 아무도

없었더라는. 혼자 영화관 전세내서 '초롤케의 딸'이란 다큐를 보았는데 이리저리 자세도 바꿨다가

좌석도 바꿔서 보았다가, 영화 만큼이나 너른 영화관도 재미있었다.



신주쿠에서 약 한시간 반 오다큐선 급행열차를 타고 도착한 하코네, 질좋은 온천과 일본식 전통 료칸으로 이름을

떨치는 곳이지만 등산열차, 케이블카, 로프웨이, 유람선 등등을 타며 한바퀴 돌아볼 수 있는 그 짙푸른 녹색의

자연이 품고 있는 미술관이나 아기자기한 사원들도 무지하게 매력적인, 어찌됐건 절대 놓칠 수 없는 곳이다.

그 곳 중에서도 '족탕'을 품고 있는 야외 정원으로 기억에 남는 '조각의 숲 미술관'.

등산열차로 '초코쿠노모리'역에 하차하고 백걸음도 채 안 걸어 매표소 입구에 도착했다. 일반 1600엔, 그렇게

싸다고는 할 수 없는 입장료인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굳이 하코네에 와서 여길 돌아보고 싶었던 이유는 딱 두개.

피카소 작품이 많이 소장되어 있다는 것, 그리고 '족탕'이 있어 지친 발을 잠시 쉬어갈 수 있겠다는 나름의 안배.

입장권을 끊고 들어서는 길은 에스컬레이터로 조금 내려가는 길, 하코네 자체가 산에 기대어 경사가 급격한

동네이기도 하니까 미술관도 너른 부지를 마련하려면 좀 아랫턱으로 내려가야 하나보다.

에스컬레이터를 내려와 굴다리를 지나면, 시꺼먼 그늘과 새하얀 햇살이 극명하게 대비를 이루는 풍경. 너무

갑작스레 공기가 바뀌고 밝기가 바뀌니까 약간 어리버리해진다. 이상한 나라에 끌려들어온 앨리스의 느낌이랄까.

사실 '이상한 나라'라고 번역해 놓은 건 어폐가 있다. 'Wonderland', 놀라운 나라라면 모를까, 이상하다는 표현은

정상적인 것은 이런 거라는 전제가 숨어있는 셈이다. 사람 열명쯤 덮고 잘 수 있을 만큼 커다란 계란 후라이들이

공원 곳곳에 이렇게 철푸덕 떨어져있다면, 이상한 나라일까 놀라운 나라일까.

커다란 머리가 분수대에 뉘어져 있기도 했다, 온통 싱그러운 초록색의 가짜 잎사귀 화환을 한 채.

조금 올라서는 계단길, 뱀이 몸을 구불거리며 나아가듯 유연하고 정연하게 구불대는 계단 손잡이가 재밌다.

그리고 빨주노초파남보의 프레임들이 네모난 무지개를 만들고 있기도 했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어서

보는 각도에 따라 완전히 중첩되기도, 혹은 약간씩 서로의 몸을 잡아먹으면서.

네모난 무지개 옆으로는 커다란 몸집의 소가 커다랗게 불어난 젖통을 드러낸 채 띠굴띠굴.

어른 대표선수의 목을 두 발로 힘껏 조르고 있는 아이 대표선수. 불끈 튀어나온 어른 선수의 두 눈이 극렬한

고통을 맛보고 있음을 반증하고 있는 듯.
꽤나 커다란 '조각의 숲', 색색깔의 목마도 품고 있고, 너트처럼 생긴 조형물들도 여기저기 흐트러진 듯

설치되어 있고. 그렇게 애기들이나 아이들이 만지고 타고 기어들어가며 놀이터처럼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어느 사거리길 한가운데, 커다랗고 반짝거리는 금속공이 매달려있었다. 내가 지나온 뒷길을 계속 비쳐주던

금속공이었지만 그 아랫춤까지 바싹 다가가서 올려다보니 사거리길 사방을 모두 펼쳐내어 준다.

조각의 숲 미술관에서 중심부에 해당하는 건 바로 이 별 모양의 정원, 미술관 입구에는 챙긴 지도의 그림으로

봤을 때는 그냥 별 모양으로 다듬어놓은 정원이겠거니 했는데. 실제로 보니까 저렇게 깊숙이 차라리 통로라고

해야할 만큼 미로처럼 길을 내놓았다.

입구도 있어서 정원 안으로 들어가 거닐어 볼 수도 있었는데, 이건 정원의 꽃들을 굽어보며 맘편히 산책하는

느낌이 아니라, 어딘가에 숨어있는 치즈를 찾아 헤매며 '내 치즈는 누가 옮겼을까' 정도를 중얼거릴 법한

그런 미로에서 헤메이는 느낌이다.

별 모양의 정원 옆에는 또, 통나무들을 얼기설기 이어만든 커다란 둥지 같은 것이 있었다. 저건 뭐지, 뭔가

얼음덩어리를 쌓아서 만든 이글루를 흉내낸 통나무 버전 이글루같기도 하고, 새들이 지푸라기를 물고 와서

짓는 둥지를 인간 사이즈에 맞춰서 지어놓은 것 같기도 하고.

아이들이 완전 좋아라 하던, 내부는 마치 에일리언이 잔뜩 알을 까놓은 오염된 우주선의 느낌. 여기저기

축축 늘어진 에일리언 알같은 놀이공들을 향해 원투 잽을 날리는 여자아이의 스텝이며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제법 짙은 그늘을 드리운 이 곳에서 어른들은 조금 쉬고, 아이들은 권투를 익히고 있었다.

그야말로 얼기설기, 이런 거 설계하기도 쉽지 않았겠다 싶다. 뭔가 나름의 규칙이 있었을 테고 그것만 알면

지어나가기는 생각보다 수월할지도 모르지만, 애초에 통나무를 이런 식으로 쌓아올려서 뭔가를 커다랗게

지어서 사람들을 들여보내 놀게 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예전에 다방에서 하릴없이 쌓아올렸다는 육각성냥갑 속

성냥들의 탑쌓기와는 차원이 다른 거다.

그리고 피카소. 이 곳에서 피카소 관은 마치 가장 소중한 것을 깊숙이 숨겨놓듯 미술관 맨 안쪽에 위치해 있다.

피카소의 드로잉, 조각, 도예 같은 작품들 300여점이 소장되어 있는 이 곳에 가까이 다가가니 뭐랄까, 명당의

느낌. 사방을 산들이 삐쭉삐쭉 호위하며 에워싸고 있고, 미술관 전체 부지를 출렁이던 구릉도 피카소 관 앞에서

잘 다려진 와이셔츠처럼 판판하게 펼쳐졌다.

들어가는 길, 이미 나는 무지개가 뜬 아래 귀여운 우산이 장식되어 있는 우산꽂이에서부터 감탄하고 말았다.

내부는 사진촬영금지, 그래도 2층 전시관으로 올라가는 길에 푸르스름하게 정돈된 햇살을 내어놓는 스테인드

글라스가 너무 이뻐서 한 장 찍고 말았다.

피카소 관에서 나오니 바로 앞에 있는 건 '심포니 조각'. 저 커다란 탑 하나가 고스란히 작품인데 내부로

들어가면 타워를 에워싼 스테인드글라스 조각으로부터 번져들어오는 빛깔의 향연에 감탄하고 만다.

그리고 바로 그 탑을 바라보며 쉴 수 있는 위치, 그곳이 바로 그토록 궁금해 마지 않던 '족탕'이 있는 곳이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맨발벗은 두 발을 탕에 담근 채 앉아서 쉬고 있었지만, 그래도 드문드문 빈 자리가 많아

쉽게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양말을 벗고 발을 살짝 물에 담궜더니, 너무 뜨겁지도 않고 싱겁지도 않은 그런 온도다. 따스하게 물이 발을

보듬어주는 정도의 온도. 뒷목이 시원해지는 느낌이 발끝에서부터 찌릿찌릿 전해졌다. 십여분 앉아서 앞의

미술품들도 하나하나 눈으로 좇아보고 주위 여행자들도 구경하다 보니 금세 땀도 식어버리고 완전 기운을

회복해서 벌떡 일어날 수 있었다. 정말 강추. 야외 족탕을, 이런 야외 미술관을 거닐다가 중간쯤 잠시 쉬며

체험해 볼 수 있다는 건 흔치 않은 데다가 굉장히 절실하기도 한 경험.

어떻게 보자면 서울에 있는 올림픽공원이랑 비슷하기도 하다. 자유로이 들어갈 수 있는 잔디밭에 심심치 않게

세워져 있는 온갖 예술품들, 어렸을 적 올림픽 공원에 소풍을 가고 사생대회를 가고 백일장을 가고 또 소풍을

가고 했을 때에는 '출입금지' 표지판이 있거나 말거나 잔디밭 깊숙이 들어가서 조형물들을 막 타고 놀고

그랬었는데. 이제는 저런 벤치에 앉아 조금은 차분하게 쉬고 싶은 맘이 더 커져버렸다.

그래도 이런 식으로 풀밭에 뒹굴고 있는 조각 사람을 보면 괜히 나도 같이 옆에 가서 똑같은 자세로 엎드리고

싶고, 그게 안된다면 이렇게 똥침이라도 놔주고 싶고. 아직은 그런 맘이 욱씬욱씬.

앗. 이 녀석은 현대미술관에서도 봤었는데, 그때 설명해주던 도슨트가 굉장히 비싼 작품이라며 무지무지 뿌듯해

하던 게 기억에 남아있다. 거대한 신체, 어딘지 일그러진 채 뮐렌도르프의 비너스를 떠올리게 만들던 그것.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뮐렌도르프의 비너스가 현대 사회에 살면서 힐을 신고 핸드백을 든 느낌.

숲 가장자리에 슬어있는 벌레들 알뭉치 같기도 하고, 칭칭 감긴 거미줄 같기도 한 이것, 완전 아이들이 좋아죽는

또다른 놀이 공간이다. 어렸을 적 꿈꿔보던 그런 스릴넘치고 아드레날린 쭉쭉 분비되는, 좁은 통로를 이리저리

헤집고 다니며 불쑥불쑥 예기치 않은 곳에서 고개를 내미는 그런 반투명한 공간.

어느새 잔뜩 커져버린 내 몸뚱이에는 가혹하게 작은 구멍과 통로 공간을 원망하다가, 사실은 어느새 저런 곳에

들어가 와와 소리지르며 이리저리 헤집고 다니기엔 '쪽팔림'을 알아버린 스스로를 원망하다가, 옆에서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다. 우리, 제로나 할까.

그렇지만 난 군대도 현역으로 제대한 신체건강하고 정신멀쩡한 이땅의 성인남성. 얼굴 따위 붙어있지도 않은

두 팔모가지가 권해오는 제로 게임보다는 이런 남녀 신체의 향연이 훨씬 좋단 말이다. 와우.

삼각대를 들고 다니며 사진을 찍다가, 문득 삼각대 다리 한쪽에 꽃대궁이가 낑겨 있는 걸 발견하고 깜짝 놀랬다.

어디서부터 따라나섰는지 모르겠지만 새하얀 꽃잎의 부드러운 색감도 그렇고 나풀거리는 모양새도 그렇고

너무 청초해 보인다.

돌아나오는 길, 그래, 아까는 오른쪽의 좀더 각진 문으로 이 '조각의 숲 미술관'에 들어왔댔다. 이번에 나가는

문은 좀더 둥그렇고 좁은 문. 들어오는 문과 나오는 문이 같을 필요도, 그 모양이 같아야 한다는 법도 없는데

이런 식으로 입구와 출구가 다른 것도, 모양새가 다른 것도 신선하기만 하다.

독일의 캐릭터던가, 왜 그 엑스자 모양의 입을 가진 과묵한 토끼인형 미피(Miffy)전도 특별전의 형식으로

하고 있었다.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 옆에서 방문자들을 배웅해주던 스탠드로 변신한 미피. 참 뭐랄까, 끝까지

재미있게 해주는구나 싶었다.

* '조각의 숲 미술관' 지도.




추석날 서울에 남아서 노는 건 처음이었다. 뭔가 공기가 달라진 채 휑한 느낌의 서울, 덕수궁 미술관에 갔다.

중화전 앞마당에 놓인 품계석들은 원래 왕이 조회를 볼 때 문무백관이 시립할 위치를 표시한 것, 그렇지만

추석을 맞아 품계석 주변에는 온통 '일반 백성'을 위한 플라스틱 의자가 깔린 채 우리 소리 한마당 공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과거의 한 때나마 '똥돼지들'이 대대손손 해먹던 자리에 '딴따라'와 '무지렁이 백성'들이

편안히 앉아 연휴의 여유로움을 만끽하다니. 유쾌한 추석.





공룡이라고 다 무서운 건 아니지만, 여태 인류가 상상해낸 공룡의 표정 중에선 가장 불쌍한 표정 아닐까 싶다.

다른 광포한 육식공룡들에게 다구리를 당하다가 바닥을 기어 도망가려는 듯한 애틋한 장면을 연출하고 있는

이 녀석, 표정이 너무 인간스럽달까. 애니의 왕국 일본이어서 이런 표정의 공룡을 상상하고 표현하는 게 가능했던

건 아닐지. 어떻게 보면 조금 '개'같이 생기기도 했지만서두.



@ 일본 도쿄, 모리타워에서 열린 공룡전 광고판에서 한 컷.






지브리 미술관에서 나오는 길, 미타카 역을 가리키는 화살표 하나, 미술관을 에워싼 공원을 가리키는 화살표가

또 하나. 미타카 역에서 지브리 미술관으로 이어지는 길이 꽤나 매력적인 산책로라는 이야기에 그쪽으로 바로

빠지기로 결심은 했지만, 지브리 스튜디오의 분위기가 그대로 이어져 있는 공원에서 좀더 여운을 즐기고 싶은

마음도 움찔움찔.

아까 뛰어들어오느라 보지 못했던 지브리 박물관/미술관/스튜디오의 간판.

끝내 문을 나서서 돌아나오는 길, 샛노란 칠이 산뜻한 지브리 스튜디오 건물 안의 커다란 토토로가 배웅해주는

듯하다. 이제 막 스튜디오에 들어선 꼬마아이 하나가 토토로와 눈싸움을 시작했다.

지브리 스튜디오에서 나와 미타카 역쪽으로 방향을 잡고 걷기 시작했다. 태풍 '곤파스'가 가로수를 뽑고 휘두른다던

서울과는 달리 이곳 도쿄는 사람이 몇 명이나 죽어나간다는 전례없는 폭염이 계속되던 중. 비행기 타고 고작

두시간도 안 날아가는 거리인데 이토록 판이한 날씨라니. 이런 점에서도 가깝고도 먼 나라, 맞다.

이국적인 느낌의 신호등, 빨간 신호등의 불빛이 유난히 붉다.

사실 미타카역에서부터 지브리 미술관으로 걸어오면서 점점 줄어들어야 하는 숫자, 미술관까지 300미터

남았음을 알리는 표지판. 푯말을 들고 있는 토토로도, 푯말 위에서 휘영청 몸을 꺽어내는 도마뱀도 귀엽다.

한참 사람들이 많이 돌아다닐 시간 아닌가, 오후 두세시경. 옆에 개천을 끼고 이어지는 골목길에는 그렇지만

사람이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고즈넉하고, 조용하면서 깨끗한 거리.

나무도 많고, 집들도 아기자기하고, 그런 산책로를 따라 가다보니 금세 지브리 미술관에서 멀어진다. 어느새

500미터나 떨어졌다. 거꾸로, 미타카역에서 이 길을 따라 지브리 미술관을 향하는 길도 생각보다 금방 가닿을듯.

어느 집 앞마당에 얼기설기 세워진 대나무 울타리에 붙여진 안내판.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개와 고양이 그림이

귀엽다. 뭐, 이런 개나 고양이가 마당에 침범하지 않도록 주의해 달라는 그런 걸까.

좀더 걷다 보니 다른 그림들도 눈에 띈다. 아이들이 손으로 직접 그린 듯한 포스터들, 그리고 검정귀를 가진

하얀 강아지가 푯말로 붙어있는, 그런 류의 귀여운 안내판들.

그리고 칠백미터. 토토로 말고 다른 캐릭터들도 푯말을 들고 있게 하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긴 하지만, 아무리

뭐니뭐니 해도 지브리의 가장 대표적인 캐릭터는 역시 토토로. 붉은돼지 아저씨가 푯말을 들고 있기엔 왠지

어울리지 않는 거 같고.

이번엔 파란 불, 이건 또 아까 신호등과는 모양생김이 다르다. 햇살은 워낙 내리쬐이고 그늘은 또 그만큼

짙고, 도무지 광량을 조절하기가 쉽지 않았던 도쿄.

신호등 앞에는 이렇게 멈춰서서 기다리라며 발자국 모양까지 그려넣는 세심함..이랄까 유머러스함이랄까.

장난스럽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지브리 스튜디오-미타카 역을 잇는 이 산책로의 이름은, '바람의 산책로'. 아닌 게 아니라 개천을 따라 쓸듯이

불어내리는 바람이 머리빗처럼 순순한 방향으로 행인들을 빗어넘기고 있었다.

문득 툭 튀어나온, 그렇지만 너무 과하게 튀거나 부조화스럽지는 않은 일본 스타일 강렬한 집도 한 채 지나고.

그러다보니 벌써 지브리 스튜디오에서부터 천백미터. 그리고 거의 코앞까지 당겨져버린 미타카역.

지브리에서의 여운을 곱씹으며 마음을 탁 놓은 채 걷기에 딱 좋던, 딱 알맞은 거리와 분위기의 산책로.





지브리 스튜디오는 도쿄에 있다. 정확히는 도쿄의 JR선 '기치조지(Kichijyoji)' 역과 '미타카(Mitaka)' 역 사이,

거의 그 중간에 걸쳐 있다고 해야 하려나. (참고 : 낡고 더러워진 도쿄 JR선 전체지도.)

해서 코스 잡기가 상당히 애매한데, 나는 기치조지 역에서 내려서 지브리 스튜디오까지는 (늦어서) 택시로

이동, 지브리에서 보고 나오는 길은 미타카 역까지 산책길을 걸어서 이동, 그리고 에도도쿄건축공원으로 향했다는.


아, 지브리 미술관은 한국에서 미리 표를 예약해야 입장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빠뜨릴 수 없다. 성수기 때에는

2주 전쯤엔 해야 안전할 듯. http://ghibli.ktbtour.co.kr/ 여기에서 하는 게 한국에서 사전 예약하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라고 들었다.
 

열심히 기치조지역으로 가는 길, 전철 끝에 탔더니 시원하게 앞창이 전부 트여있다. 물론 보이는 거라곤 깜깜한

지하 터널뿐, 그리고 매 역마다 마이크를 잡고 프로의 솜씨로 역 안내방송을 하는 철도운전사 아저씨도 빼놓음

섭하겠다.

지브리 스튜디오는 매주 화요일과 국경일에 휴관하며, 그외의 날엔 10시, 12시, 14시, 16시에만 입장할 수 있다.

입장 후에는 언제 퇴장해도 상관이 없으나 입장시간만은 지켜달라던 간곡한 부탁이 사전에 있었는데도 늦고

말았다. 사실은 기치조지역에서 살살 걸어보려 했는데, 어쩔 수 없이 잡아탄 택시 안에서 사진 한장.

생각보다 기치조지역은 꽤나 도쿄 외곽에 있어 멀기도 했고, 생각보다 기치조지역과 지브리 스튜디오 간의

거리도 솔찮이 떨어져 있었던 탓.

일본 택시도 한번 타 볼만하다 싶던 게, 문이 자동으로 열리고 닫히더라는 사실. 기사분은 영어를 전혀 못하시는

할아버지셨지만, '지브리스튜디오'하니까 한 큐에 알아들으셨다. '하야꾸하야꾸'하며 조금 채근해볼까 하다가

그게 '빨리빨리'란 말이 맞던가 문득 혼란스러워져서 조용히 창밖만 바라보았다.

지브리 스튜디오 입구! 결국 10시를 십분여 넘기고 말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줄을 선 채 입장 대기 중.

내부에서는 카메라 촬영 금지, 음식물 반입금지, 흡연 금지, 그리고 휴대폰 금지. 휴대폰? 아무래도 요새

휴대폰에 사진 촬영 기능이 기본으로 들어가있으니 그걸 막고자 함인 듯. 스튜디오 내부의 분위기가

외부로 새나가는 걸 꽁꽁 막겠다는 의지가 결연해 보였다.

결국 내부 사진은 한 장도 없고, 그저 하야오가 그린 너무나도 감격적인 원화들과 금세라도 그가 동료들과 함께

다시 앉아 작업을 계속할 것만 같은 작업실의 재현공간, 그리고 곳곳에 수북하게 꽃처럼 피어났던 담배꽁초들의

이미지만 가득한 채 완전 가슴먹먹해져서 옥상 정원으로 올랐다. 옥상 정원에 오르는 길, 마치 아이들 놀이터에서

흔히 보이는 우주선 모양의 뱅글뱅글 계단을 따라 올라야 했다. 온통 담쟁이가 휘감고 있던 그길을 오르는데,

무슨 '천공의 성 라퓨타'를 탐험하는 거 같기도 하고,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둘러보는 거 같기도 하고.

옥상 정원에 오르면 바로 눈에 띄는 게 바로 '천공의 성 라퓨타'를 지키던 로봇 병사의 모형. 이 녀석이 큰 팔과

다리를 흐느적대며 금세라도 새둥지를 품어주고 아이들의 머리를 친근하고 섬세하게 쓰다듬어줄 것만 같다.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 듯한, 그러면서도 주위에 대한 사려깊음을 잊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듯 그의 고개가 사뭇

수그러져 있어서 그 큰 덩치에도 불구하고 전혀 위압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옥상 정원에서 내려다본 지브리 스튜디오 입구. 저기 아까 가슴 두근거리며 줄서 기다리던 그 천막이 보인다.

그리고 한층한층 눈을 뗄 수 없이, 그야말로 온 벽면 전체를 핥듯이 꼼꼼하게 살필 수 밖에 없었던, 여기 그냥

죽치고 자리깔고 살고 싶었던 지브리 스튜디오의 건물. 사방이 온통 초록빛 식물로 가득하다. 이런 곳이라면

지브리가 만들어온 그 온갖 환상적이고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쉼없이 졸졸대며 쏟아져도 이상할 게 없겠다.

하늘 높이 펄럭이는 지브리의 깃발. 하야오와 지브리, 그들의 작품에는 '반딧불의 묘' 정도만 제외하면 국적이

불분명한, 그리고 시대도 불분명한 시공간이 배경이 된다. 갈색머리와 검은머리가 공존하는, 그리고 기계문명과

녹색의 '원시문명'이 공존하는 세상. 지브리 스튜디오의 그 중세 성을 본딴 듯한 깃발이나 온통 녹색으로 휘감겨

있지만 내부에는 나름 기기묘묘한 것들이 숨겨져 있는 것들 역시 그런 것들의 반영일까.

공중 정원은 생각보다 그렇게 크진 않다. 로봇 병사를 지나 몇 걸음 걷다 보면 나타나는 조그마한 오솔길,

그길 끝에는 '천공의 성 라퓨타'에서 등장했던 비행석 실물 사이즈의 모형이 나타난다.

만화로 먼저 나타나고 그걸 현실세계에서 실물로 다시 재현한다. 그리고 그렇게 실물로 눈앞에 나타난 비행석의

모형을 보고 나면, 이 세상 어디엔가 천공의 성 라퓨타가 거대한 나무를 의지한 채 둥둥 떠있을 것만 같다.

그 밖의 다른 캐릭터, 다른 공간들 역시 어디엔가 숨어 있을 뿐, 미처 발견치 못하거나 잃어버린 건지도 모른다.

공중 정원에서만 사진 촬영이 가능하다고는 했지만, 엄밀히 말하면 건물 내에서만 불가능하다. 공중정원으로

오르는 테라스에 놓인 이런 신기한 벤치라거나, 다른 것들은 찍을 수 있다는 이야기. 이건 그나저나, 다리가

달라붙어 있는 생선이라고 해야 하나, 생선처럼 생긴 강아지라고 해야 하나, 혹은 프로펠러 꼬리가 붙어 있는

4족보행 탈 것이라고 해야 하나. 언젠가 지브리의 만화에서 등장할 기회를 노리고 있는 연예지망생인지도.

지브리 스튜디오의 입장권, 입장권으로 기능하기도 하지만 지하1층에 있는 조그마한 영화관의 영화표로

쓰이기도 한다. 여기에서만 볼 수 있다는 지브리의 단편 네 편을 번갈아가며 상영한다는데, 한 20분간의

그 짧은 영화를 보고 또다시 하야오를 우러러보게 되고 말았다. 아 그의 상상력이란. 상상력과 통찰력이란.

그 아름다움이란.

지하 1층에 있는 조그마한 앞마당에 있던 빨간 지붕을 가진 낡은 펌프. 잔뜩 우그러들은 채 정감가득한

물잔이 두 개 놓여 있는 게 너무 귀여웠다. 펌프도, 끽끽 작지만 분명하게 울리는 소리를 들으며 조금

펌프질을 하면 물이 진짜로 쏟아져 나온다.

지브리 스튜디오 건물 외벽에서 발견한 조그마한 창문,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그녀를 도왔던 검둥이

요정들이 바글바글 창문밖을 내다보겠다고 아우성 중이다.

풍경이 매달려 있고, 땔감으로 쓰려는 듯 한 구석에 차곡차곡 쟁여둔 나뭇가지들, 누군가 저 커다란 나무등걸에

땔감용 나무를 대고 도끼질을 신나게 해댈 것만 같다.

끝까지 감탄하게 만드는 지브리. 아, 지브리와 하야오 정말이지 당신들 최고. 마당 가운데의 하수구 뚜껑마저

이렇게 유머러스하게 챙겨주다니 당신들은 정말.

정말, 돌아나오기 싫었다. 이번 도쿄 여행은 사실 지브리 스튜디오를 가고 싶다는 오랜 소원에서 시작되었더랬다.

기념품샵을 이잡듯 뒤지며 지브리 스튜디오에서만 살 수 있을 법한 걸 골랐다. 그의 제작실 벽면을 빼곡하게

장식하던 원화들 복제본이 있으면 아무리 비싸도 한 점쯤 사가겠다 맘을 굳게 먹었는데, 정작 그런 원화를

활용한 엽서나 그림 따위는 보이지 않아 조금 실망. 그렇지만 한국에선 그다지 찾아볼 수 없는 붉은 돼지 관련

아이템들이 좀 보여서 그걸로 얼추 만족하다. 하야오의 작품 중 내가 손꼽는 작품 중 하나, 붉은 돼지.

돼지는 국가나 전쟁 따위 인간의 일에는 관심없어, 라는 붉은 돼지의 시크하면서도 단단한 한 마디.

그리고 지브리 입장권과 마찬가지로 필름을 일부 잘라내어 만들어낸 책갈피.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몇 컷이

담겨 있었다. 대충 여섯 컷쯤 들어가있는데 이건 뭐 거의 움직임이 느껴지지 않아 첫 씬과 마지막 씬의 모습이

뭐가 다른지 모를 정도. 그만큼 부드럽고 섬세한 모션을 구현한단 얘기겠지 싶다.

마지막으로 산 건 지브리 스튜디오 옥상정원을 지키고 있던 로봇 병사의 모습, 미니어처 형태로 명함 따위를

꽂도록 만들어둔 주석 장식품. 사무실에서 날 지켜주셈, 병사님.ㅋ

돌아나오려는데 지브리 스튜디오 앞의 안내원이 머무는 조그마한 안내데스크에 놓인 장식이 눈길을 끈다.

붉은 돼지같기도 한 모양에, 입에서 모기향을 담배연기처럼 울컥울컥 뱉어내고 있던 모습.

돌아나서기가 어찌나 아쉽던지, 계속 뒤를 돌아보았다. 공중 정원으로 올라서는 우주선 모양 동글뱅이

계단 위에서 나부끼는 깃발이 보였고, 온통 짙푸른 녹음으로 덮인 고풍스런 건물이 보였고, 그리고

그 안을 가득 채운 하야오와 지브리의 꿈같은 이야기들이 보이는 듯 했다. 말하자면 이 건물은 미야자키 

하야오와 지브리 스튜디오가 새로운 세계와 인물들을 창조해내는 마법의 솥 같은 존재랄까. 그런 경외감.
 
일단은, 당분간 안녕, 토토로. 지브리 스튜디오를 떠나는 길을 배웅해주는 토토로의 뚱하지만 믿음직한 표정.

저만한 사이즈의 토토로라면 눕혀두고 그 배 위에서 잠들어도 될 거 같은데 정말.

다들 마찬가지 심정이었던 게다. 좀처럼 사람 없는 순간을 포착하기 힘들 만큼, 다른 관람객들도 이곳을

떠나기 아쉬워하며 어떻게든 토토로와 사진이라도 한 장 남기려 애쓰고 있었다.





지브리미술관 구조를 소개하는 브로슈어, 그치만 이것만 봐서는 통..뭐가 뭔지 한눈에 들어오질 않는다. 게다가

무려 한국어를 포함한 다섯개 언어, 일본어까지 합치면 여섯개 언어로 소개가 되어있음에도 그다지 쓸데있는

정보는 안 담겨 있는 거 같다. 명색이 미술관인데, 더구나 지브리의 특성을 살려 만화로 표현해놓은 지도인데.

지도는 보고 나면 여기가 어디고 어디로 가야할지는 최소한 알아야 할 텐데. 어떻게 이럴 수가.

브로슈어 뒷면에 적혀 있는 문구 하나, 이 모든 의혹을 해소하는 강력한 단서가 되어 주었다. '미아가 됩시다,

다 함께!!'라는 문구다. 영어로는 'Let's lose our way, toghether'라나. 이들은 지브리 미술관에 들어온 사람들을

모두 길잃고 홀리게 만들어 기념품점을 싹싹 긁어가게 만들고, 지브리홀릭으로 만들 생각인 거다.


더구나 미술관 내 사진촬영, 비디오촬영은 모두 금지라니. 이러니 지브리에 두고 온 내 금쪽같은 추억들이

더더욱 소중하고 아름답게 풍화되는 거다.

지브리의 입장권 두 장. 이걸 갖고 미술관 지하 1층으로 가면 오로지 이 곳에서만 볼 수 있는 지브리의

단편 만화영화를 볼 수 있다. 약 15분에서 20분 가까이 되는 작품을 매시간 세 타임씩 틀고 있었다.


위의 입장권은 '붉은돼지'의 한 장면, 밑의 입장권은 '포뇨'의 한 장면, 필름을 이렇게 몇 컷씩 잘라내어 다시

입장권으로 재생한다는 발상도 참 감탄스럽다. 이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기념품.

지브리 스튜디오 입장권을 사전 예매하고 현지에서 받기로 했는데, 한국에서 미리 예약할 수 있는 곳은 대한여행사

뿐이라고 많은 블로거분들이 그렇게 알려주셨기로 나 역시.





비록 굉장히 낡고 더러워졌지만, 저 낡음이 어느 가방의 어느 모서리에 쓸렸는지, 그리고 저 얼룩이 어느 식당의

점원이 실수로 엎지른 간장 종지에서 번져나왔는지를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가이드북에 절대적으로 빈곤하던 교통지도 중 JR선에 대한 갈급한 욕구를 이 지도 하나로

전부 해갈할 수 있었단 점. 기치조지역의 '지브리 미술관'을 찾아갈 때, 그리고 도쿄 도심을 동그랗게 원을

그리며 도는 JR선의 대략적인 그림과 윤곽이 궁금할 때 매우매우 도움이 되었었다.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좀더 걸어들어가면 영추문이 나온다. 가을을 맞이한다는 그 문과 마주보고 있는 거리에는

자그마한 미술관들과 까페들이 거창한 간판도 없이 숨어있다.

늘 그 동네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건 회칠이 벗겨진 담벼락에 그려진 여리여릿한 나무 한 그루. 더이상 회칠이

벗겨지지도 않고 딱 저만한 공간 속에서 나무는 호젓하다.

그 옆에 붙은 '보안여관', 한때 안기부에 조사받으러 불려다니던 피조사인들이 애용하던 곳이었다던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그 허름한 뽄새와 왠지 모를 시간이 켜켜이 쌓인 포스를 늘 눈에 담고 갔었다. 마침 전시가

있어서, 카메라 뚤레뚤레 흔들며 구경질 시작.

자연에서 채취한 재료들로 인형을 만드는 작가분이 1층과 2층을 모두 쓰며 작품을 전시하고, 또 계속 작품을

만들고 있었다. 솔방울, 잔가지, 마른꽃대궁, 씨앗..담담하고 조신한 색감이 맘에 든다.

여관(으로 쓰였던) 건물 내에 붙어있던 재미있는 표어. "미성년자는 입장해서도 안 되고 입장시켜도 안됩니다."

그리고 다닥다닥 붙어있는 방들마다 숨겨진 보물처럼 꼭꼭 감춰진 작품들.

빼꼼히 열린 방문 틈으로 창을 휘두르는 기사도 보이고, 다소곳한 매무새의 아가씨도 보이고.

2층으로 올라가는 길, 온통 낡고 헤진, 그리고 지저분한 여관의 내음이 물씬하면서도 나뭇가지니 마른 잎사귀

따위로 잘 갈무리된 느낌이다. 사실 이렇게 오래되고 우중충한 건물, 더구나 그야말로 갑남을녀가 잠깐 머물다

떠나는 여관이란 곳은 청결함이라거나 말끔함과는 워낙 멀리 떨어진 곳 아닌가. 예술작품과는 더더욱.

솔방울과 마른 콩깍지 따위로 만들어낸 순간. 조그마한 새끼가 커다란 새에게 잡아먹히기 직전의 순간이다.

우연찮게 여길 들르기 직전에 돌아봤던 곳은 대림미술관, 커버 아트의 대가라는 로저딘의 회고전을 봤었다.

'Dragon's dream'이란 제목의 그 전시를 보고 나서 막상 여기서 또다른 형태의 용을 만나다니 신기했다.

이제 끝. 한번 설렁설렁 돌아보기 딱 좋은, 부담없고 재미있는 전시인 거 같다. 마치 전시작품들과 작가를

수호하듯 카랑카랑한 자태로 1층을 지키고 있던 (아마도) 샤먼.

그리고, 전세낸 듯 혼자 기대앉아서 해가 저물도록 책을 읽다 돌아온 통인동의 어느 까페. 정말 요새 까페하기

참 쉽다. 대충 짝이 맞지 않고 이가 어긋나 보이는 가구들 잔뜩 들여넣음 끝..이랄까. 사실은 이런 분위기 참

좋은 거 같다. 게다가 노래 선곡도 넘 맘에 들었던 게, '베란다 프로젝트', '에피톤 프로젝트', 그리고 '루시드폴'

앨범이 고스란히 순서대로 공간을 채웠었다.

그리고 굉장히 맛있던 갓구워낸 초코 브라우니, 그리고 에스프레소.

조그마한 병이 쟁반에 같이 나왔는데, 첨엔 시럽이려니 생각했다가 잠시 혼란스러웠다. 그럼 이 녹색식물떼기는

왜 꼽아둔거지. 그냥 데코레이션으로 꼽아둔 건가. 아님 그냥 화병인 걸까. 뭔지 모르겠더라.



한 네시간동안, 노래에 흠뻑 취해 책 한권을 홀딱 다 읽고는 나왔다. 노래 참 잘 들었어요, 하고 나왔다.




오랜만에 덕수궁미술관, 생각해보면 여긴 뭔가 내가 머릿속이 복잡할 때마다 덜렁 카메라 둘러메고 떠나는 곳

중 하나가 되어 버렸다. 뭘 하는지도 모르고 갔는데, "달은 가장 오래된 시계다"라는, 덕수궁미술관으로서는

처음으로 현대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전시를 열고 있었다.

미술관 앞, 몇 개의 부처상들이 놓여있었다. 심상히 여기고 지나쳤는데 알고 보니 미술관 내부에 전시된

작품들의 연장선상에서 배치된 것들이었다. 작품의 컨셉, 이번 전시의 컨셉은 말하자면, 시간의 흐름을

어떻게 눈에 보이도록 가시화하고 느낄 수 있도록 만들지. 그리고 그 아연한 시간의 흐름속에서 우리는

어떤 공력을 기울이고 어떤 관계를 맺어나가는지. 그걸 보여주려는 전시였달까.


그걸 온몸으로 보여주는 게 이 조각상들..이었지 싶다.

덕수궁 미술관을 가는 길엔 산책삼아 한바퀴 돌아보는 덕수궁, 늘 그렇듯 낯익은 듯 하면서도 새로운 구도와

모습들이 드러난다. 내가 방문하는 시간대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예컨대, 피사체는 사라지고 배경만 남아버린 이런 풍경.

"달은 가장 오래된 시계다"라는 전시 제목은, 실은 '달은 가장 오래된 텔레비전이다'라는 백남준의 작품 제목을

따서 지은 거라 한다. 전시회를 한바퀴 둘러보다가 운좋게 만난 도슨트의 설명이 그랬다. 굉장히 로맨틱하고

그럴듯한 제목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백남준의 원제가 더욱 그럴듯하지 않은가 싶었다. 우리가 둥그렇게 생긴

아날로그, 디지털 시계를 내려다보기 전에는 달을 바라보며 시간을 어림잡았을 테고, 그보다 더 중요하게는

밤하늘에 뜬 달의 변화하는 모습을 보며 상념을 잠겼을 거다. 그야말로 태곳적의 텔레비전.

내가 전시를 돌아보는 방식은, 언젠가 말한 적이 있지만, 그런 식이다. 우선 한바퀴 훌쩍 돌아보고 나선 맘에

폭폭 꽂혔던 것들 위주로 다시 한번 돌아보기. 요새는 워낙 도슨트 서비스가 잘 되어 있어서 처음 한 바퀴는

으레 도슨트를 따라 돌며 기본적인 배경지식과 관점을 참고하게 된다.

그냥, 전시를 죽 돌아보고 나선 그런 생각이 들었다. 새삼스럽게도. 역시 시간은 흐르는구나. 시간은 흐르고,

어찌 되돌이키거나 붙잡거나 고여있을 수 없는 순간들이 지나고, '강이 흐르듯' '시간이 차고 기울고 다시 차듯'

어쩔 수 없는 상처들은 덮거나 지우고  다시 흐르는구나. 나도 흘러야겠구나. 그런.

이 작품은 뭐라고 생각하는가. 비누로 만들어진 이 조각상은, 삽시간에 '나이'를 먹는다. 야외에 설치되어

빗물에 씻기고 바람에 씻기고 아이들의 손이 타 금세 지저분하게 녹아내리고 심지어는 갈라지는 조각상.

건물마다, 예술작품마다 제각기의 '수명'이랄까 '나이'가 느껴지는 때가 있다. 그게 아마 도심속의 덕수궁

미술관에 들어설 때 느끼는 이질감의 정체겠지만, 씬삥의 콘크리트 건물이 뿜어내는 느낌과는 전혀 다른,

훨씬 긴 호흡의 뭔가를 이전 시대의 건축물이나 예술품에서 느끼는 거다. 그 차이. 그걸 응축해서 보여주는

게 이 비누로 만들어진 조각상이 아닐지.

다른 작품들은 모두 이미 제작된 작품들을 섭외한 거지만 이 아이들은 이번 전시를 위해 특별히 다시 제작된

것들이라 했다. 이전 전시에서는 이런 아이들이 화장실 세면대 옆에 설치되었다던가. 손을 씻고 이 아이들을

문대면서 자연스레 씻겨나가고 지워지는 효과를 의도한 거라 했었다. 멋지다.

덕수궁 내에는 시간의 흐름을 잡아내는 또다른 도구가 있으니, 바로 자격루다. 덩어리 덩어리 분절된 게

아니라 그야말로 '흘러가는' 시간을 표현하는 적절한 수단은 액체, 물이었을 거다. 그러고 보면 전시된

작품 중 하나의 제목이 가슴을 울렸었다. liquified agony. 에라 모르겠다. 씻겨나가겠지, 라는 식의 제목.



* 도슨트 말로는, 5월 초부터 시작된 이번 전시를 위해 덕수궁 미술관 앞에 설치된 저 비누 조각상들이

불과 한달만에 저렇게 쩍쩍 갈라지고 허옇게 녹아내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 아마 전시가 끝나기 전에

녹아내려버릴지도 모르겠다 했다. 장마철이 다가오고, 유난히 비가 많을 거라는 이번 여름을 생각하면

정말 그럴 거 같다. 전시는 7월 4일까지, 관람료는 덕수궁 입장료 포함 5,000원. 성인 기준이다.





"숭, 숭숭,내 말 좀 들어봐."
"끽끽"
"숭, 사랑은 시소와 같대. 서로의 마음이 얼추 비등비등해야 재미있어진다던가. 누구 한 명의 마음이 가벼워지면 다른 한 명이 무거워지면 되고, Vice Versa. 뭣보다 상대가 있어야 제대로 시작할 수 있는 거기도 하고. 뭔 말인지 알겠어?"
"끽끽"

"끽끽"
"잘 듣고 있어 멍충아"
"끽끽끽끽 끽끽끽 끽끽끽끽끽끽끽끽 끽끽끽끽"
"니미뿡이다."


@ 미술관 옆 동물원.


그래도 일요일 오후, 육천원짜리 전시를 보았으면 사진찍는 솜씨가 조금이라도 나아져야 하지 않겠나 싶은데.

확실히 겨울이었다. 들어갈 땐 흐릴 지언정 사방이 환했는데, 몇시간 지나지 않아 금세 어둠이 짙게 나렸다.
 
어둠 속, 문득문득 도심의 야만스런 불빛과 소음이 정적을 깨뜨리는 가운데 둥실둥실 떠오른 덕수궁 내 중화전.

배병우 작가는 어부였던 아버지를 닮아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하루의 농사를 준비했다고 했다. 그가 찍은 사진

중 태반은 해뜨기 직전, 실내는 묘한 공기에 감싸이고 바깥은 몽환적인 보랏빛이나 초콜렛빛 어둠이 출렁이는

그런 시간에 얻어졌다고 했다. 뭐, 사진이 쉽게 찍히는 건 아니라는 이야기다. 어쩌면 상당부분 '우연'이란

요소가 짙게 작용하는지도. 일단 빛이라는 것부터가 그러니까 말이다.

뭐 그런 노력에 비견되랴만은, 쉼없이 눌렀던 셔터, 그렇게 남았던 몇개의 흔적 중 그래도 조금은 봐줄만

하다 싶은 사진들. 진눈깨비처럼 펄럭이며 내리는 빗물 탓이기도 했지만, 한동안 덕수궁미술관 입구 처마 안에

우두커니 선 채 셔터만 눌렀다.

미술관에서 몇 걸음 내딛다가 뒤로 돌아 한 방, 날려줬다. 이녀석 깜짝을 놀랬을 거다. 아닌게 아니라, 하얗게
 
질려버렸다. 스크림의 그 유령 마스크가 떠오를만큼.

확실히, 몸이 움직이니 구도가 바뀐다. 부지런해야 하는구나. 그러고 보면 그동안 내가 찍었던 사진은, 무쟈게

실용적이었던 것 같다. 내가 보는 것, 내가 눈여겨본 것, 그런 것들을 기억에 남기기 위한, 일종의 USB였다.

기억의 외장하드. 딱히 미감이나 예술적인 측면을 고려했던 것 같지는 않다는 게 솔직한 고백. 아..사진 좀

잘 찍고 싶다. 카메라도 질렀는데 제길.

조금 걷는데 하얗게 질린 덕수궁미술관 벽면에 얼룩이 졌다. 무슨 백한마리 달마시안도 아니고, 괴기스럽게

부풀고 꺽여든 나뭇잎들의 그림자가 벽면에 대고 간질간질, 간지르듯 간만 보고 있었다.

아까 밝을 때만 해도 카메라 수십대가 쏠렸던 광명문, 지금은 나와 일대일, 독대하는 중이다. 역시 빛이 부족한

건가. 커다란 구리 종색깔같은 처마 위 하늘 색깔이 제일 맘에 드는 구석이다.

돌아나가는 길, 느지막히 아침 겸 점심만 먹고 아무 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않은 참이었다. 배가 고파서 몸은

뭔가 먹을 것이 있으리라 여겨지는 앞으로만 계속 내달리고 싶어하는데, 손이랑 눈이 브레이크를 잡는다.

참..별 것도 아닌 사진 찍겠답시고 계속 멈춰서서 이리저리 배회하는 모습이라니. 배고파 죽는 줄 알았다.

그리고 사실 그렇다. 낮에 이미 사람들이 우르르 훑고 다닌 길에 닳을 대로 닳아버렸을 구도일 게다. 꼭 내

카메라로 내가 다시 찍어서 내가 다시 간직하고 다시 이렇게 블로그에 올려야 할 이유는 뭘까. 뭐, 모르겠지만

일단은 재미있으니까, 정도의 답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데세랄 지른지 아직 한 달도 안 된 터에 이런 회의와

시니컬한 구렁텅이 따위 빠져들 시간이나 여유는 없는 게다.)

알고 보면 꽤나 넓은 덕수궁과 외부를 연결하는 대한문, 혹은 입장료 내/받는 곳. 특정 포인트를 향해 정연하게

벌어진 등불들과 달리 외부 세상의 불빛은 사방을 향한 사방으로부터의 불빛이다. 잊을만하면 툭툭 떨어지는

산만한 물방울들만큼이나 무질서하고 정신없는 세상이다.

안녕 대한문. 그러고 보면 덕수궁은 꽤나 자주 들르는 곳이다. 일년에 두세번은 가는 듯. 창덕궁 후원-흔히

비원이라 불리는 곳이 여기라던가-을 한번 가봐야겠다고 맘은 먹는데, 아직 한번도 못 가봤다. 배병우 작가가

'생산'해낸 작품 중 소나무를 소재로 한 것은 SNM, 비원을 소재로 한 것은 BWN이란 약자로 시작하는 작품

번호를 가졌다던가.



* 이제부터는 오로지 카메라 자랑을 위한 사진들.

사진으로 일단 찍은 후에 한번 하얗게 불살라 버린듯한 느낌.

사진이 뻘겋게 타버렸다. 그러면서도 묘한 깊이가 느껴지는.

제대로 오래된 사진 느낌..혹은 일반적으로 느끼는 오래된 사진의 분위기란 게 이런 거 아닐까. 누렇게 변색된.

찍고 나서는 아궁이불이 들어오는 구들장 같은 데 기름먹은 장판 속에 한 이십년쯤 묵혀둔 듯한 사진. 

비슷하게 구들장에서 타버린 느낌이긴 한데, 조금 다르다. 타고 나서는, 차가운 가을바람에 한 삼년쯤 식혀진.

뭐, 이문세의 '조조영화'던가, 그런 노래가 떠오른 이유는, 아마 저 오른쪽 창구가 영화티켓 예매소, 그리고

입구는 극장 입구스러워서일 게다. (대체 어디가? 라고 물어도 별로 대답할 말은 없다는...)





아...이런 게 아니다.

이런 싸구려 색감이 아니었는데. 그리고 그림의 그 크기 자체에서 풍겨나오는 느낌도 전혀 다르다.

아무리 인터넷을 디비고 구글신님께 빌어보아도..애초 내가 보았던 그 '무지개'가 안 떠오른다.


Larc'n CIel. 라크엔시엘이 불어로 무지개란 뜻이었구나..

샤갈이 죽을 때까지 지니고 있었다는 작품. 시립미술관의 퐁피두 전에서 보았던 작품 중 가장 눈에 들어왔던

작품이었다. 에펠탑과 노틀담사원, 달빛 아래 거리, (아마도 그녀의) 여인...그가 평생 품고 있었던 기억의

편린들을 펼쳐놓은 것만 같다. 그리고 특별히 하얗고 빨갛게 만곡한 곡선들은 모자 쓴 한 남성으로부터 그

모든 것들로 너울너울 펼쳐지고 있다. 그 남성은 왠지 마그리트의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그' 같기도 하고.


한마리 거대한 새가 몸을 유연히 비트는 그 각도 그대로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굴절되는 기억들,

그 풍요로운 기억들 자체가 바로 샤갈의 무지개였나보다.


근데 아무리 찾아도 애초 원화가 가졌던 그 마력적인 다홍빛 배경과 주제의 색감을 그나마 전해주는 파일이 없다. 

아......복제화라도 사야겠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오랑주리 미술관은 한국인들보다 일본인들에 훨씬 유명하고, 높이 평가받고 있다고 한다.

실제 내가 갔을 때에도 한국인은 혼자인 듯 했고, 동양인은 모두 일본인이었다. 글쎄..한국어 가이드북에 오랑주리

미술관의 비중이 그리 크게 나오지 않아서 그런 건가..


나 같은 경우는 파리에 가면 끌로드 모네의 '수련' 연작을 꼭 보라던 이야길 듣고 이미 잔뜩 혹해 있었어서, 한 번

문닫는 날 찾아가선 좌절했음에도 굴하지 않고 다음날 아침 일찍부터 찾아갔댔다.

튈를리 정원 내에 있달까, 다른 건물들과 다소 외떨어져선 세느강변을 내려보며 서 있는 날씬한 느낌의 미술관.

오랑주리 미술관 지하에 전시되어 있던 건 자그맣게 축소된 형태의 누군가의 서재. 책들이 가득한 방의 네면 그득

한눈에도 익숙한 혹은 전혀 낯선 그림들이 잔뜩 전시되어 있었다. 나도 나중에 저런 서재 하나 갖고 싶단 생각 뿐.

누군가의 서재를 그대로 보여주는 듯 한데, 누구였을까. 아마 오랑주리 미술관의 컬렉션이 원형이 되었다는

폴 기욤의 서재였을까. 그는 예술가들의 후원자이자 화상으로 어마어마한 컬렉션을 모았다고 했는데, 난 굳이

진본 작품을 걸지 않고 복제판 작품을 걸어도 마냥 뿌듯할 거 같다. (바야흐로 디지털 시대, 시뮬라르크가 대세다.)

나중에 내 방엔 르누와르, 수틴, 모네의 그림을 꼭 걸어놓아야겠다고 다짐다짐.

오오...1층에 올라가면서 왠지 모를 신비스런 느낌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하얀빛의 정숙한 통로를 따라 오르는데,

무슨 현대식 신전으로 들어가는 느낌이랄까. 그 통로 끝에서 나를 맞이했던 끌로드 모네의 '수련' 연작들.

압도당했다. 루브르박물관에서 보았던 다빈치의 그것들, 심지어 모나리자보다도 감동적이었다.


타원형 방 안에 기이일~게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네 장의 그림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런 타원형 방이 두개 서로

연결되어 총 여덟 장의 수련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해뜰녘, 해질녁, 그리고 계절감이 다른 수련의 그림들.

잔잔히 바람 한 점 없는 명경같은 호수, 살짝 이는 바람에도 산산히 쓸려져 내리는 물결, 그리고 흐릿하니 빼곡히

하늘을 메운 구름, 그 구름마저 품어버린 호수. 모네가 굳이 수련을 택해 그가 계속 그림을 그린 건 수상식물인

수련이 갖는 특수성 때문일까. 처음엔 수상, 물 위의 풍경들만 보였지만, 조금씩 수면, 호수 표면에 떠있는 풍경들,

그리고 수면 아래 수초나 다른 일렁임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세 개의 층위로 구획되는 공간이 서로의

움직임을 따르고, 부추기고, 그런 게 춤이다.


게다가 빛과 시간. 공기의 일렁임에 더해 빛의 밝기와 농밀함을 변화시키는 시간의 손길이 더했다. 천변만화하며

수상의 하늘에서, 수면 위에서, 호수 아래에서 피어나는 수련의 움직거림들. 수련의 춤.

진중권의 미학 오디세이에서였던가,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 특징을 설명하면서 예로 들었던 게 바로 이 작품이었다.

가까이 코를 박고 보면 의미불명으로 굳어버린 물감덩이일 뿐이지만 한걸음씩 뒤로 물러나며 시선을 던질수록

수련들이 무수하게 피어오르는 걸 볼 수 있다는. 정말이었다.

오랑주리 미술관의 입장권은 당연히 끌로드 모네의 '수련' 작품의 한 부분을 얼굴로 내세우고 있다. 기념품삼아

여전히 내 사무실 노트북 앞에 붙여놓고 있는 입장권.

다시 한번 말씀드리자면, 7.5유로. 괜히 국제학생증도 없으면서 학생이라 우기면서 할인받으려는 꼼수는 꿈도

꾸지 말 것. 다른 곳은 몰라도. 그리고, 얼마를 주더라도 꼭 가 볼 만한 곳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터무니없는

금액이라도 모두 기꺼이 내겠다는 건 아니지만.) 지하의 인상파 화가들 작품도 그렇지만, 모네의 수련 연작

여덟점만 멍하니 보고 있어도 하루가 후딱 갈 거 같은 느낌.

(화요일, 국경일 휴무. 7.5유로. 09:45~17:15)

오랑주리 미술관 입구에 있는 이 작품, 로댕 미술관에서 본 적 있는 그 작품이다. 제목이 키스였던가..보고 있기만

해도 입술이 근질근질해지는 느낌.

오랑주리 미술관 앞에 잔디밭에 잠시 앉아서 다이어리를 정리하고 어딜 갈까 생각하고 있는데, 경비원이 와서

쫓아낸다. 잔디밭에 앉으면 안 된다길래, 무안해진 김에 다짜고짜 바로 옆 세느 강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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