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크릿은 실컷 웃을 수 있는 연극이다.

공연 소개를 아무리 보아도 이게 대체 어떤 류의 이야기를 할 지는 감이 잘 안 왔다. 대충 사랑이야기이겠거니,

게다가 정신병원이 배경이고 니가 미쳤니 내가 미치고 있느니 사실은 미치지 않았느니 운운 이야기하는 걸로 보아

뭔가 '미쳤다'는 것이 갖는 의미를 보여주려는 연극은 아닐까 생각했었다.


한시간 반 정도의 공연 시간, 한시간 십분 정도는 계속 웃고 있었고, 그 중에서도 삼십분 정도는 빵 터졌으며, 또

그 중 이십분 정도는 박장대소를 했던 듯 하다. 정신병원이란 배경에서 능히 상상할 수 있을 또라이 연기를

천연덕스럽게 해내는 배우들도 훌륭했고, 이러니저러니 덧붙은 살들이 있긴 했지만 역시나 재미를 극대화하는데

주력한 티가 역력한 에피소드와 개별 씬들도 딴 생각없이 실컷 웃을 수 있을만큼 재미있었다.


#2. 시크릿은 관객과의 소통을 특히 유의한 연극이다.

어느 연극이 안 그렇냐만은 초반부터 무대와 관객석 간의 유리장벽이 통쾌하게 부숴진다. 쉼없이 관객을 호명하는

배우와 그에 응하며 맘껏 즐기는 관객들의 호흡이 역시 연극에 대한 만족도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이지 싶다.

내가 보았을 때는 특히 반응이 좋았던 관객 한 분이 계셨어서 더욱 큰 웃음을 이끌어내는데 성공했던 것 같지만,

시크릿이란 연극 자체가 관객에 크게 의지하고 있다.


다만 다소 '상식적인 수준'에서 쉼없이 이야기되는 정치나 시사에 대한 이야기들은, 에잇, 까놓고 말해 이명박에

대해 빈정대며 이리저리 비난/비판하는 대사들은, 오히려 너무 '대통령 까댐'이라는 시류에 편승한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진부하고 내용이 없어서 아쉬웠다. 차라리 좀더 생생하고 와닿는 이슈를 가지고 그런 이야기를 끄집어 내고

희롱했다면 좀더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 텐데.


#3. 바이올린 현이 파들파들 떨며 우는 소리는, 자칫 손발을 오그라들게 만드는 첩경이기 쉽다.

메시지나 교훈 따위 끄집어내지 않고 그냥 실컷 웃고 즐기면 되는 연극이라고 생각했는데, 불쑥 바이올린 현이

길게 울다간 파들파들 흐느끼는 소리를 내며 극의 분위기를 급냉각시키며 분위기를 잡으면 좀 당황스럽다. 이러한

경우 그런 감정의 오르내림을 함께 하며 몰입할 수 있다면 멋지겠지만 대부분 관객들이 그간의 몰입 상태에서

튕겨나오는 당혹감을 느끼기 때문에 다소 아쉽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불평하곤 하듯이, 웃겼다 울렸다 관객을

주무르려는 제작자의 의도에 대한 반감은 이러한 튕겨나옴에서 비롯하는 걸 거다.


설득력이 약하거나 다소 급작스럽다 싶은 감정의 과잉 분출, 변환이 역시 시크릿에서도 나타난다. 뭔가 인생에

대해, 사람에 대해, 사랑에 대해 한 마디 해주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는지 정신병원의 노인은 광소를 터뜨리며

뭔가 아포리즘이 담긴 문단을 읊고는, 기적처럼 스르르 제혼자 열린 문으로 퇴장하는 거다. 좀더 작은 목소리로,

좀더 담백하게, 그리고 좀더 간접적으로 담을 수도 있는 이야기였을 텐데 너무 전면에 불쑥 내세워버린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굳이 그전까지의 유쾌한 분위기를 확 가라앉힐 필요가 있었는지 싶기도 하고.


#4. 비록 손발은 잠시 오그라들었지만.

전체적으로 무척이나 재미있었던 연극이었다. 그리고 연극계 최초로 관객들을 대상으로 '다단계식' 홍보를 한다는

당찬 선언에 맞게 대박났으면 좋겠다. 갠적으론 홀로 감정몰입해 흐느끼는 바이올린 선율은 왠만하면 쓰지 않았음

좋겠다. 이미 배우의 연기만으로도 충분한데, 거기에 바이올린 소리까지 더하는 건 오바 아닐까 싶다. 그리고도 넘

진부한 연출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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