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힙합 뮤지션은, 글쎄..그다지 장르를 가려듣는 편은 아니지만 힙합은 딱히 땡기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아마도 '거리의 시인들' 정도가 내가 최근까지 굳이 앨범을 사가면서 들었던 한국 힙합 뮤지션이던가 싶을 정도.

그만큼 힙합이란 장르는 내겐 꽤나 낯선 것이다. 


견문이 천박해서겠지만, 왠지 힙합은 다소 겉멋에 치우쳐 수입되고 소비되는 건 아닐까 싶은 생각이 있었다.

특히 팝송도 제대로 이해 못하는 판에 알아듣지 못할 영어 라임으로 꽉찬 힙합 음악을 듣는다는 건 뭐랄까, 정작

중요한 부분을 놓친 채 나머지만을, 심하게 말하자면 겉멋만을 취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더군다나 그들의

노래는 대부분 분노한, 상처받은 목소리로 뱉듯이 읊어지고 있었기에 더욱 그 가사가 중요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그런 데다가, 락을 좋아하던 시절에 락 스피리츠 어쩌구 했던 것처럼, 힙합의 소울이란 게 있다고는 하지만, 과연

한국의 힙합이라는 게 '비주류와 저항의 음악'이라고 자처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회에 대한 살벌하고 나름

거침없는 비판을 던지던 '거리의 시인들', 그 중 한 멤버인 노현태가 이명박의 대선 캠프에서 홍보송을 부른 것도

모자라 대운하 찬양송까지 불렀다는, 최근에야 뒤늦게 알게 된 뉴스는 한국에서 소비되는 힙합이란 건, (본토에선

어떤지 잘 모르겠으되) 이미지가 중요한 일개 상품일 수 밖에 없다는 확신을 더욱 굳혀 놓았었다.


그런데 화나, 그의 첫 정규앨범이라는 이 앨범은 그 두가지 면에서 모두 살짝 내 흥미를 간지럽힌다.

그는 '라임폭격기'라거나 '라임몬스터'라는 별칭으로 불리나 보다. 그의 라임은 어쨌든 몇번을 들으면 귀에 익어

뜻이 전달될 수 있는 한국어가 주를 이루고 있으며-어쨌든 난 네이티브 한국인이니까-, 중간중간 폭발하는 듯

내달리는 라임들이 여전히 의미불명이긴 하지만 대개 메세지를 이해하며 듣고 있다. 그리고, 그의 음색. 불만에

차서 분노를 터뜨리는 듯, 때론 냉소하듯, 또 때로는 잔뜩 칼날이 쑤셔박혀 상처입은 듯 아파하는 목소리까지

왠지 뭔가 중독성있게 귓가를 맴돈다. 그의 이름이 왜 화나, 일까..화난 목소리가 매력적이어서? 따위 말도 안되는

상상까지 불러일으키고 말았다. 예전에는 곡 하나하나를 뜯어서 듣는 스타일이었는데, 요샌 갈수록 노래를

BGM으로 쓰고 있어서 딱히 몇 번 트랙 무슨 노래에 어떤 메시지가 담겨 있더라, 라고 기억해내지는 못하겠지만..


이번주 시사인 잡지에 실린 조국 교수의 에세이에 보면 최인훈의 '서유기' 중 한 대목을 인용하고 있다.

"당대가 이른 가장 높은 문명 감각의 정상에 서서 당대가 이른 가장 높은 현실 정치에 대해서조차 비판하는 것,

이것이 진보가 살 길이다."

약간 바꿀 수 있을 것 같다. 굳이 거창한 역사의 진보라느니, 의식적인 지향이 아니더라도, 어떤 음악은

"현재 이곳에서 이뤄진 가장 현대적인 감각의 정상에 서서 현재 이곳에서 이뤄진 가장 당연해 보이는 기득권에

대해서조차 비판하는 것"이 가능하고, 또 필요하지 않을까.

물론 힙합 자체를 순치되고 상업화된 형태로 소비하는 것 자체도 부정하거나 비판할 생각은 없다.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래도 '비주류와 저항의 음악'으로서 힙합을 자처하고자 하는 뮤지션들은 계속해서

나올 거라고 생각하고, 또 개인적으로는 나왔으면 한다. 누군가는 문화와 음악이 태생에서부터 비주류와

저항의 몸짓을 담고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아마도 화나도 그런 묵직한 힙합을 계속 할 수 있지 않을까.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