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치는 곳이지만 등산열차, 케이블카, 로프웨이, 유람선 등등을 타며 한바퀴 돌아볼 수 있는 그 짙푸른 녹색의
자연이 품고 있는 미술관이나 아기자기한 사원들도 무지하게 매력적인, 어찌됐건 절대 놓칠 수 없는 곳이다.
그 곳 중에서도 '족탕'을 품고 있는 야외 정원으로 기억에 남는 '조각의 숲 미술관'.
싸다고는 할 수 없는 입장료인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굳이 하코네에 와서 여길 돌아보고 싶었던 이유는 딱 두개.
피카소 작품이 많이 소장되어 있다는 것, 그리고 '족탕'이 있어 지친 발을 잠시 쉬어갈 수 있겠다는 나름의 안배.
동네이기도 하니까 미술관도 너른 부지를 마련하려면 좀 아랫턱으로 내려가야 하나보다.
갑작스레 공기가 바뀌고 밝기가 바뀌니까 약간 어리버리해진다. 이상한 나라에 끌려들어온 앨리스의 느낌이랄까.
정상적인 것은 이런 거라는 전제가 숨어있는 셈이다. 사람 열명쯤 덮고 잘 수 있을 만큼 커다란 계란 후라이들이
공원 곳곳에 이렇게 철푸덕 떨어져있다면, 이상한 나라일까 놀라운 나라일까.
보는 각도에 따라 완전히 중첩되기도, 혹은 약간씩 서로의 몸을 잡아먹으면서.
고통을 맛보고 있음을 반증하고 있는 듯.
설치되어 있고. 그렇게 애기들이나 아이들이 만지고 타고 기어들어가며 놀이터처럼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금속공이었지만 그 아랫춤까지 바싹 다가가서 올려다보니 사거리길 사방을 모두 펼쳐내어 준다.
봤을 때는 그냥 별 모양으로 다듬어놓은 정원이겠거니 했는데. 실제로 보니까 저렇게 깊숙이 차라리 통로라고
해야할 만큼 미로처럼 길을 내놓았다.
느낌이 아니라, 어딘가에 숨어있는 치즈를 찾아 헤매며 '내 치즈는 누가 옮겼을까' 정도를 중얼거릴 법한
그런 미로에서 헤메이는 느낌이다.
얼음덩어리를 쌓아서 만든 이글루를 흉내낸 통나무 버전 이글루같기도 하고, 새들이 지푸라기를 물고 와서
짓는 둥지를 인간 사이즈에 맞춰서 지어놓은 것 같기도 하고.
축축 늘어진 에일리언 알같은 놀이공들을 향해 원투 잽을 날리는 여자아이의 스텝이며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제법 짙은 그늘을 드리운 이 곳에서 어른들은 조금 쉬고, 아이들은 권투를 익히고 있었다.
지어나가기는 생각보다 수월할지도 모르지만, 애초에 통나무를 이런 식으로 쌓아올려서 뭔가를 커다랗게
지어서 사람들을 들여보내 놀게 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예전에 다방에서 하릴없이 쌓아올렸다는 육각성냥갑 속
성냥들의 탑쌓기와는 차원이 다른 거다.
피카소의 드로잉, 조각, 도예 같은 작품들 300여점이 소장되어 있는 이 곳에 가까이 다가가니 뭐랄까, 명당의
느낌. 사방을 산들이 삐쭉삐쭉 호위하며 에워싸고 있고, 미술관 전체 부지를 출렁이던 구릉도 피카소 관 앞에서
잘 다려진 와이셔츠처럼 판판하게 펼쳐졌다.
글라스가 너무 이뻐서 한 장 찍고 말았다.
들어가면 타워를 에워싼 스테인드글라스 조각으로부터 번져들어오는 빛깔의 향연에 감탄하고 만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맨발벗은 두 발을 탕에 담근 채 앉아서 쉬고 있었지만, 그래도 드문드문 빈 자리가 많아
쉽게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보듬어주는 정도의 온도. 뒷목이 시원해지는 느낌이 발끝에서부터 찌릿찌릿 전해졌다. 십여분 앉아서 앞의
미술품들도 하나하나 눈으로 좇아보고 주위 여행자들도 구경하다 보니 금세 땀도 식어버리고 완전 기운을
회복해서 벌떡 일어날 수 있었다. 정말 강추. 야외 족탕을, 이런 야외 미술관을 거닐다가 중간쯤 잠시 쉬며
체험해 볼 수 있다는 건 흔치 않은 데다가 굉장히 절실하기도 한 경험.
세워져 있는 온갖 예술품들, 어렸을 적 올림픽 공원에 소풍을 가고 사생대회를 가고 백일장을 가고 또 소풍을
가고 했을 때에는 '출입금지' 표지판이 있거나 말거나 잔디밭 깊숙이 들어가서 조형물들을 막 타고 놀고
그랬었는데. 이제는 저런 벤치에 앉아 조금은 차분하게 쉬고 싶은 맘이 더 커져버렸다.
싶고, 그게 안된다면 이렇게 똥침이라도 놔주고 싶고. 아직은 그런 맘이 욱씬욱씬.
하던 게 기억에 남아있다. 거대한 신체, 어딘지 일그러진 채 뮐렌도르프의 비너스를 떠올리게 만들던 그것.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뮐렌도르프의 비너스가 현대 사회에 살면서 힐을 신고 핸드백을 든 느낌.
또다른 놀이 공간이다. 어렸을 적 꿈꿔보던 그런 스릴넘치고 아드레날린 쭉쭉 분비되는, 좁은 통로를 이리저리
헤집고 다니며 불쑥불쑥 예기치 않은 곳에서 고개를 내미는 그런 반투명한 공간.
들어가 와와 소리지르며 이리저리 헤집고 다니기엔 '쪽팔림'을 알아버린 스스로를 원망하다가, 옆에서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다. 우리, 제로나 할까.
두 팔모가지가 권해오는 제로 게임보다는 이런 남녀 신체의 향연이 훨씬 좋단 말이다. 와우.
어디서부터 따라나섰는지 모르겠지만 새하얀 꽃잎의 부드러운 색감도 그렇고 나풀거리는 모양새도 그렇고
너무 청초해 보인다.
문은 좀더 둥그렇고 좁은 문. 들어오는 문과 나오는 문이 같을 필요도, 그 모양이 같아야 한다는 법도 없는데
이런 식으로 입구와 출구가 다른 것도, 모양새가 다른 것도 신선하기만 하다.
하고 있었다.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 옆에서 방문자들을 배웅해주던 스탠드로 변신한 미피. 참 뭐랄까, 끝까지
재미있게 해주는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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