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을 가로지르는 작지 않은 강, 슈프레(Spree) 강변으로는 과거 독일 분단시기의 유물이 그대로 남아있다. 

독일이 동서로 나뉘고, 동독 내에 소재하던 수도 베를린 역시 동서로 나뉘었던 그 시절, 체제 경쟁이 심화하면서 동독은 서베를린의 구획을 온통 장벽으로 둘러싸버리기로 한 것. 그게 베를린 장벽의 초기 모습이었다. 물론 '클래시 오브 클랜'같은 게임을 보면 알 수 있듯 장벽이 점차 업그레이드되면서 내구성도 단단해지고 강화되는 것처럼, 이 장벽도 점점 최신의 기술적 진보를 더해 걷잡을 수 없이 삼엄해졌고.

20여 킬로미터에 이르던 그 장벽이 일부 구간, 약 2킬로미터 정도로 남아있는 곳이 바로 이곳 East Side Gallery다. 말그대로 거리의 갤러리, 장벽을 미술관 전시품처럼 보전해 놓은 곳. 


이른 아침에 도착해서 한번 따라가보기로 했는데, 상상보다 충격적이었다. 장벽 자체는 이렇게 얇고 허름했구나 싶어서.


보전 문제가 생각보다 심각한 듯, 여기 보이는 그래피티들은 전부다 최근의 것들. 그러니까 '훼손'이랄 수 있겠다.


1961년 이래 장벽이 무너지고 독일이 통일된 1989년까지 장벽을 넘으려다 숨진 사람들의 공식적인 숫자는 163명이라고 한다. 그 숫자만큼 해당 년도에 표기해 둔 이 작품은, 그렇지만 공식 기록되지 않은 수많은 탈주 시도자와 은폐된 죽음들을 놓치고 있을 거다.


누군가 가져다둔 화환. 아마도 여전히 그 상흔을 생생히 갖고 있는 누군가겠지.


이렇게 장벽에 자그마한 구멍을 뚫어둔 것처럼 묘사해둔 그림도 인상적이었다. 작은 구멍 하나로부터 장벽이 무너지리라는 기대 혹은 다짐.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가 끝나는 지점에 '장벽 박물관(The Wall Museum)'이 있다는 표지가 곳곳의 아스팔트 바닥에.


그렇지만, 동방의 여전한 분단국가에서 온 이가 새삼 감회에 젖기엔 이미 독일 통일은 역사가 되고 말았다. 이제 통일 이후에 태어난 세대들이 마구 그려댄 그래피티로 장벽은 훼손되고, 그 코앞 전봇대나 가로등에는 온통 난삽한 광고 뿐이다. 이미 27년전이라니, 믿기지 않지만 이미 시간이 그렇게 지났다.


장벽이 던졌던 문제의식, 혹은 장벽을 남기며 사람들이 남기고 싶었을 자유라느니 정의라느니, 그런 가치들은 이제 얼마나 싱싱하게 남아있을까. 아니면 이들은 이미 그 역사의 한 페이지를 젖히고 새로운 이야기를 써내느라 과거를 돌아볼 여유가 없을지도 모른다. 부러운 일이다.


장벽 너머 보이는 슈프레강, 이 작은 강은 대체로 동독의 영역에 속한 채 군사 대치중이었기 때문에 강에 아이가 빠졌을 때 모두가 손을 놓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고 했다. 자칫 상대편의 총격을 입을까 두려웠기 때문인데, 이후 인도적인 조치를 취할 때에는 협조하도록 원칙을 세웠다고.


자꾸 한반도의 상황과 오버랩되는 건 어쩔 수 없다. 5차 핵실험이 벌어지고, 남북한 양측의 '최고존엄'이 전쟁을 부추기는 언어를 주고 받는 상황이다. 그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사진, 동독과 구소련 정치지도자 간의 유착관계를 비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우리 버전으로 치면, 글쎄, 두 명은 누구여야 하려나.


The Wall Museum 내부, 생각보다 전시물도 많고, 장벽이 생긴 이래 철거되기까지의 역사에 대한 시청각 자료가 엄청 많아서 둘러보는 데 시간이 꽤나 걸렸다. 사진은 처음 장벽을 쌓아올릴 때 쓰였던 허름하고 기초적인 장비들.


그리고 최초의 기초적인 망루. 슈프레강 넘어 보이는 건 서베를린.


다리 중간도 이렇게 엉성하고 속이 빈 벽돌블럭으로 담을 쌓고.


그러다가 1989년, 외부 세력의 개입을 적절히 차단해 가면서, 또 적절히 활용해 가면서 서독과 동독은 결국 장벽을 무너뜨리고 통일을 맞이한다. 박물관 내 영상 자료들을 따라가다보면 그 생생함이 그대로 전해질 지경이다.


부럽기도 하고, 천운이었다 싶기도 하고, 또 한국과는 굉장히 상황이 달랐다 싶기도 하고. 일단 베를린이 엄청 어색하게 동독 한복판에 박혀 있었던 데다가 동독과 서독간에 전쟁 같은 대규모 유혈사태도 없었으니. 한국은, 그리고 북한은 독일과 같이 분단 체제를 역사로 되돌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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