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뜩 지친 채 버스 좌석에 몸을 얹어놓고서 잠시 심령이 창밖을 부유하던 그때...문득 전화기가 온몸으로 울음을

울었다. 지금 무슨 생각하고 있어? 다짜고짜 달려드는 그 목소리는 껌처럼 늘어진 채 저어기 어딘가쯤 철푸덕

널부러져있던 내 의식을 황급히 유체로 복귀시켰고. 난 여전히 술에 취한 듯...혹은 복화술을 시험하듯...

내 입술이 어디서부터 말려올라가고 혀가 어디에 위치하며 어떻게 잇몸을 쳐올리는지 하나하나 점검하며

대답하기 시작했다.


나...돌아올 길 찾을라고 아침에 옷에다가 밥풀을 잔뜩 묻힌채 집을 나섰어...하나하나 살금살금 뜯어가며, 길가다

웬지 맘에드는 사람들 이마빡에 666 바코드 새기듯 하나씩 납작하게, 동그랗게 붙혀놨었지..풍경이 갑자기

겹쳐지면서, 내가 지금 마녀가 들끓는 숲속에 버려졌다는 그 화급함...떨림...그런 느낌이 내 폐에 가스처럼

스며왔어. 무언가 내 손을 잡고 있었는데, 무언가 내게 따스한 느낌을 주고 있었는데, 무언가 내게 이것이

현실임을 항변하고 있었는데...그 뭔지모를 상실감이 차오르면서 왠지 이제 더이상 세상은 당장 방금전까지의

살아있는 세계랑은 달라졌다는 느낌. 두터운 벽지처럼 발린 세계가 2차원처럼 내 앞에서 누워 버릴 거 같은 느낌.


아...헨델은 그레텔의 손을 절대 못 놓았겠구나, 다른 한손으로 잡은 빵은 아마도-분명히-이빨로 물어뜯어

길바닥에 흩뿌려 놓았겠구나...손을 놓치면, 손을 놓으면, 숲의 나무가 전부다 누워버리거나 혹은 계란빛의

모래로 가득차 사막으로 가라앉는 걸 보고 말았겠지...깨어진 공간틈으로. 마녀가 등뒤에서 목덜미를 깨물듯한

조바심으로, 나무가 금세라도 뿌리를 뒤틀며 윈드밀을 선보일듯한 위화감으로 가득차버린듯해서, 눈알을

디룩이며 겁먹은 채 바라보는 세상에는 온통 내가 정성껏 붙여놓은 밥풀떼기들을, 헨젤이 이빨로 왕왕

물어뜯었을 빵 부스러기들을 소멸시켜버리는 녀석들이 푸드덕거리고 있었다. 그게 세발달린 까마귀가 되었건,

혹은 발톱사이에도 털이난 붉은 낙타가 되었건, 결국 햇볕에 바래 까매지고 말 파랑새가 되었건.


그래서 차는 달리는데 내 몸은 의자에 얹혀 있었고, 의식은 아마도 그림자를 떼어내고야 갈수있다는 그 곳에서

야위고 있었다는 걸...현실과 현실과 현실과 현실.


잠시동안 말이 없던 전화기가 마침내 입을 떼었다, 지금 거기 어디야? 와타나베, 거기 어디야? 어디야? 어디야?

미도리는 녹색이란 뜻이지. 안녕 녹색, 안녕 헐크..안녕 식물성 플랑크톤, 안녕 엽록소. 전화기가 녹아내리더니

내 혈관을 타고 심장을 삼키려 달겨들기 시작해서...난 오른손으로 왼쪽 팔뚝을 잔뜩 움켜쥐고 그놈을 막아야만

했지. 격하게 몇번 의자 손잡이에 그녀석을 부딪히고 나서야 다시 그건 내 머리속의 소주병에 들어가 스스로

병뚜껑을 닫고 잠을 청했어. 램프의 요정 바바..이제 소원은 하나밖에 남지 않았지?


안녕 하루키, 결국 난 노르웨이의 숲으로 돌아왔어. 이토록 성가신 인사말이라니. 내일 아침은 호랑이 버터에

미역을 말아먹어보자구.



(2004.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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