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해지기를 원하는 것은 허약함이며, 우월해지기를 원하는 것은 다름아닌 열등감이다.

자신감을 말하는 것은 불안감의 발로인 것.



얼마전 만난 친구는, 무슨 얘기인가 끝에 '서울대 간판 떼고 나면 너도 별거 없잖아?' 그랬다.

최근 누군가로부터 집중적으로 듣는 얘기 중엔 '별 것도 아닌 스펙만 믿지말고 공부좀 하세요'라는.

사실 새삼스럽지도, 도발적이지도 않은 지적이지만 때가 때인지라 다르게 다가왔다. (사실 그넘의

스펙은 믿어본 적도 없지만.ㅋ)


그치만 난 여태 내가, 혹은 내 능력이 모종의 시험에 처하는 상황이 되면 항상 잔뜩 긴장한 채

'원점부터 다시 평가받는다'는 자세를 취해온 게 사실이다. 내가 과연 그 시험에 통과할 만한지,

그리고 지금까지 내가 받아온 '간판'의 후광을 받을 자격이 있었던 건지, 그리하여 나에 대한 지금의

기대치가 합당한 수준인 건지. 그러한 것들에 대한 자신감을 번번이 다시 허물어뜨렸다가는, 곧 다시

회복하는 그런 피곤한 패턴.


그건 단지 시험에 겸손하게 임하고자 하는 실용적 목표만이 아니라, 혹여 불의의 결과가 나오더라도

충격을 덜 받고자 하는 꼼수이기도 하다. 사실 내 스스로도 내가 어느 정도의 능력을 갖고 있는지,

얼마나 똑똑한지, 아니 대체 똑똑하기나 한 건지 의구심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일이 시도때도 없는

거다.(아마 내 주위 사람들은 더욱 의심하고 있겠지만) 그럴 때는 불쑥 조바심이 고개를 든다.

내게서 '간판'을 제하고 나면, 뭔가 남을까. 좀더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그저 어쩌다 수능 한번 잘

쳤을 뿐인지도 모르는데 너무 분에 넘치는 대우를 받아왔단 게 뽀록날까봐. 수능맞춤형 인간일지도

모르는데, 너무 여러 방면으로 호들갑스런 대접을 받아왔던 게 아닐까 불편해져서. 세상에 꽁짜는

없다는데, 언젠가는 다시 전부 뱉어내야 하는 건 아닐까 하고.


해서 서류심사에 합격했다는 소식이 들리기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붙었단 소식에 감사하고,

일단은 당분간 조금 더 잘난척 하고 다녀도 되겠구나 안도하고(아직 내가 어리버리하단 소문이

그쪽까진 안 퍼졌구나, 이러면서), 혹여 떨어진 소식은 얼렁 머릿속에서 지우려 애쓰고ㅡ,

그러고 있다. 아..쉽지 않은 거다, 취직이란. 쳇.


그런 와중에, 이제 최소한 몇자리 숫자따위에 연연치 않을만큼은 철들었어, 라는 믿음으로

얼마전 봤던 멘사 테스트 결과가 나왔다. 몇자리 숫자일 뿐이고, 그저 특정 부문의 지력만을

잰 것 뿐인 결과임에도, 조금은 더 스스로를 믿어봄직하다고 생각하게 됐다. 이러면서 애써

퍼올리는 자신감 한주먹. 오늘 시험은 망치셨고. 어쩌면 아무데도 못가겠다는 위기의식으로

방금 네시간만에 네군데 지원서 꼽아버리셨고.



잘난척할 타이밍 = 잘나지못함이 아프게 와닿는 타이밍.

사실 '잘난 척'이란 건 나랑 상당히 거리가 먼데...오늘따라 왕창 가까워져 버리셨다. 흑.



(2007.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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