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2시...
 
근무를 마치고 내무실로 기어올라온다...
 
해발500여 미터에 위치한 이곳에서는 2층으로 올라가는 것조차 공기의 밀도가 첨예하게 엷어지는 것을 느낀다...

숨을 몰아쉬며 던힐의 탈을 쓴 군디스-모셔진 던힐케이스에 우그려넣은 군디스 20개피-를 하나 입에 문다.
 
하늘엔 북두칠성이 번뜩이며 구름이 가려버린 달을 대신한다.

보름달일텐데. 입대하던 날 보았던 대보름달...다섯번째로 보아야 할 달인데, 스물다섯번만 더 신경쓰면 될.
 
주위엔 온통 어둠뿐..가끔 내무실복도에 울리는 딸딸이(군속어:쓰레빠)소리와 미친 뻐꾸기 소리,

그리고 잔망스럽기 짝이 없는 피맺힌 모기새끼의 공기찢는 소리.
 

저멀리 산아래로 성주라는 예전엔 몰랐던, 지금은 그나마 익숙해진 공간이 눈에 차오른다.
 
희끄멀건 불빛, 산이 잔뜩 피워올린 물기 때문인지 아님 나자신 피워올린 암울함 때문인지간에..
 
그곳의 불빛은 마치 꿈처럼 막막하다. 서울의 불야성에 익은 나로서는 무턱대고 낯설음을 표할.
 
모자를 벗어 꾸겨쥔 채, 감히 시도도 못해보던 몸동작 하나를 한다.
 
"난간에 기대기"...
 
그런 어마어마한 자세로 이윽히 불을 피워올린다. 250원짜리 "빨간" 불티나 라이터. 꼬꼬의 되도 않는 취향을

언젠가 듣고 나역시 그것만 고집하기 시작한 게 작년이던가...
 
그 몇모금. 온전히 나만의 시간이며, 나만을 위해 소비하는 몇분...
 
마지막 한모금을 눈대중하며, 담배 한대를 마무리짓는 생각 하나.

"D+125..."
 

또다시 꿈도 못꾸던 동작 하나를 취한다.
 
"둘째손가락으로 담배튕겨 총알빼내기".
 
총알...좀전까지 소보록하게 흰재를 얹고 있던 그 불덩이 하나가 이층에서 일층으로 낙하한다. 날개도 없는데

아주 부드럽고 화사하게 안착한 채, 여전히 불타오르고 있다.
 
검은 대지 위에 놓인 빨간 점 하나, 이 공간서 뚫린 빨간 구멍 하나.
 
이상한 나라의 폴...이었던가, 어렸을 적 어김없이 챙겨보던 만화 하나를 떠올린다.
 
그 구멍으로 뛰어들면...앨리스가 먼저 밟았던 "wonderland"가 나올까...? 아님...유보된 내 삶을 이어나갈

그 곳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빨간 구멍이 점점 작아진다...응시하고 있던 내눈에나 겨우 보일 정도로 작아졌을 무렵...
 
문득 되도 않는 조급함을 느낀다. 뛸까? 뛰어볼까??
 

...
 
총알은 다 타들어갔고, 아마도 그곳엔 하얀재만 한무더기 남았으리라.


(2002.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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