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정말 오랫동안 좋아라 하는 가수 중의 한 명, 이상은이다. 그녀하면 '담다디'나 '언젠가는'만을 떠올리는

사람이 여전히 많겠지만, 내게 그녀는 6집 '공무도하가' 앨범부터 각인되어 있다. '새', '어기여디여라', '성녀',
 
'비밀의 화원', '공무도하가'..온갖 명곡들을 만들어낸 대단한 싱어송라이터이자, 마력적인 보이스를 가진 

가수기도 하다. 내 십년 전부터의 필명, ytzsche에도 한 부분 기여한 그녀다.

수요일에는 매봉역 옆에 있는 EBS 공감 스튜디오에서 이상은과 '공무도하가' 앨범 이래 그녀와 함께 하는

다케다 하지무의 공연을 보러 갔었다. 얼마전 장기하의 공연을 보려고 응모했을 때는 보기좋게 떨어졌는데,

이번에는 용케 당첨된 친구와 함께 그녀를 보러 가게 되었다. 그러고 보면, 실제 그녀를 보는 건 처음이었다.

(사실 초등학교 때 친구가 그녀의 조카여서, 친구집에 놀러갔을 때 한번 얼핏 본 기억은 있지만, 그때는

담다디로 막 나섰던 때였던가...별 관심이 없던 시절이었다. 사인이라도 받아둘걸...ㅜ)

퇴근 후 부랴부랴 도착하느라 저녁도 간단히 샌드위치로 때우고 들어간 공연장 내에서는 카메라 촬영이

금지되어 있었다. 공연 마치고 슬쩍 한 장. 후다닥 찍느라 엉망이다.

두번째 사진, EBS 공감 스페이스라는 로고가 공연 내내 맞은편 벽에서 둥실둥실 떠있는 게 눈에 자꾸 걸렸어서

찍고 나니까 누군가 와서 그런다. 공연장 내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앗 죄송...이러고 더이상 사진찍기는

포기. 해서 공연장 내 사진은 달랑 이렇게 두 장이다.

공연은 총 열 곡. "너무 오래", "Soul Hospital" 같은 곡들은 첨에 대체 뭐지, 내가 모르는 노래도 있었나 싶었는데

알고 보니 미발표곡이었다는. 이번 공연은 그녀와 함께 십여년간 음악활동을 해온 다케다 하지무가 그녀의 노래들을

피아노로만 재해석한 앨범 'MONO'를 낸 것에 대한 홍보를 겸한 듯 했다. 덕분에 기대했던 앞머리 '어기여디여라'는

그의 피아노 곡으로만 들을 수 있었다.


총 공연시간은 한..80분? 열 곡 부르면서 곡 하나 마칠 때마다 이야기하고, 마지막에 앵콜 곡하나, '음악성은 좀

떨어지지만 누구나 쉽게 따라부를 수 있고 하나된 걸 느낄 수 있는' "언젠가는"을 부르고는 퇴장..박수를 열심히

치면 다시 나와 앵콜곡 하나를 더하지 않을까 했는데, EBS 측에서 야박하게도 조명을 탁, 켜버렸다.


너무나도 아쉬웠던 80분. 조그마한 소극장 사이즈 공연장을 꽉 채웠던 그녀의 야트막한 허밍소리, 그리고 허스키한

까끌까끌한 그녀의 목소리가 고저를 넘나들며 자유로이 꺽이던 그 마력적인 순간들. 사실 그녀가 얼마전 상당한

연하남과 연애를 시작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그 이후 나온 앨범들에 많이 실망한 채였다. 이승환처럼, 그녀 역시

사랑을 하니까 '예술혼'이 망가져버리는구나 싶었달까. 그녀는 '이상은이 이상해'라는 수군거림을 들었다던

'공무도하가' 앨범 시절의 그녀가 자신 생각에도 많이 이상하고, 또 '새'란 노래도 정말 이상하다고 이야기했지만,

난 그 앨범, 그중에서도 '새'가 너무너무 좋단 말이다.

공연이 끝나고 들어왔던 통로로 다시 나왔다. 벽을 따라 온통 붙어있는 이전 공연자들, 이전 공연 스케줄, 포스터들.

이상은의 마법같은 목소리, 그 떨림에 흠뻑 젖었던 시간이 지나고 나니 다시 현실이랄까, 그 통로 마지막 모서리켠에

붙었던 '언론악법 저지'의 포스터들. 문득 떠올라 버린, 그래서 이상은의 환타지스럽고 몽환적인 가사와 운율을

유감스럽게도 망쳐버린 민중가요 한 대목. "죽을 수는 있어도 물러설 수는 없다, 무엇을 뺏길 건가, 단지 되찾을 뿐."

민중가요를 좋아하지만, (물론 민중가요를 감상의 대상처럼 표현하는 '좋아한다'란 단어에 어폐가 있을 수 있지만)

이상은의 여운을 좀더 오래 간직하고 싶었단 말이다.

EBS 건물 1층 한켠에 설치된 교육방송 부스. 공감스페이스가 정말 괜찮은 프로그램이고 다른 다큐멘터리도 꽤나

호평받고는 있지만, 역시 EBS는 교육방송의 이미지가 강하다. 나도 고등학교 때 EBS 문제집은 거의 다 풀었던 듯.

밤이 깊어 나서는 길, 요새 계속 PENTAX 데세랄을 쓰다가 다시 이전의 하이엔드급 카메라를 쓰려니 뭔가

많이 다르다는 느낌이다. 음..뭐랄까, 중후하게 스윽 미끄러지며 코너링에도 흔들림없는 중형차를 타다가 갑자기

티코같이 뒤뚱거리며 장난감스러운 소형차를 탄 느낌? 이를 어쩌나, 간사한 사람마음.

그래서, 혹시나 DSLR을 사는데 돈을 보탤 수 있지 않을까 싶어 공연장서 들고온 물병. 이게 뭐냐면,

바로바로 이상은이 공연 중간중간에 들고 마셨던 물병이다. 믿지 못하겠다고? 공연 직후 자리를 채 뜨지

않았던 관객들이 전부 보았다. 왠 까만옷의 직장인이 무대위로 펄쩍펄쩍 손을 뻗어 그녀가 마시던 물병을

잡아채는 민망한 모습을.

잘 보면 물병에 동글동글 그려진 그녀의 지문도 보이지 않나. 아..나 무슨 변태같아..ㅡㅡ;;;

중요한 건 사실, 방송에 노출되는 물병인지라 저렇게 라벨을 칼로 깔끔히 제거했다는 것. 난 사실 그게

신기해서 들고 왔을 뿐, 오타쿠스럽지는 않다구요...믿거나 말거나. 원하는 분 제게 비밀댓글로 적당한

가격을 불러주셈.ㅋㅋㅋㅋ

공연 80분, 게다가 다케다 하지무가 초반 네곡을 혼자 했으니..너무나도 아쉬웠던 건 당연한 터. 집에 와서

그녀의 씨디를 다시 찾아보았다. 국내에서 조금 판매되다가 이내 절판되고 더이상 나오지 않는 것으로 알고있는

6집 공무도하가 앨범(95년)가 왼쪽 상단, 나는 옥션이었던가, 경매 사이트에서 구매했었다. 나머지는 시계방향으로

8집 LEE-TZSCHE(97년), 9집 Asian Prescription(99년), 10집 Endless Lay(01년)...이상하네, 7집과 11집이 어디

갔는지 모르겠다. 현재 13집 발매중이라는데..너무 밝고 건전한 그녀는 그닥.

 
'어기여디여라'는 일본 무슨 영화의 OST로 쓰였다고 한다. 국내에서보다 일본에서 더 팬이 많다는 이야기도

얼핏 들었는데, 국내에서 좀 더 많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날 공연은 아마..담주? 다담주쯤 EBS 공감

스페이스에서 방영되지 않을까. 워낙 쪼끄만한 공연장이었으니 내 얼굴도 몇 번 비치지 않을까 싶다.



* 이상은의 "새" 가사.

네가 바라보는 세상이란 성냥갑처럼 조그맣고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 허전함 맘으로 돈을 세도
네겐 아무 의미 없겠지 날아오를 하늘이 있으니
너는 알고 있지 구름의 숲 우린 보지 않는 노을의 냄새
바다 건너 피는 꽃의 이름 옛 방랑자의 노래까지
네겐 모두 의미 있겠지 날아오를 하늘이 있으니
내려오지마
이 좁고 우스운 땅 위에 내려오지마
네 작은 날개를 쉬게 할 곳은 없어
어느 날 네가 날개를 다쳐 거리 가운데 동그랗게 서서
사람들이라도 믿고 싶어 조용한 눈으로 바라보며
내겐 아무 힘이 없어요 날아오를 하늘이 멀어요
내려오지마
이 좁고 우스운 땅위에 내려오지마
네 작은 날개를 쉬게 할 곳은 없어
가장 아름다운 하늘 속 멋진 바람을 타는
너는 눈부시게 높았고 그것만이 너다워
가야한다면 어딘가 묻히고 싶다면
우리가 없는 평화로운 섬으로 가지
마음을 놓고 나무 아래서 쉬는 거야
우리가 없는 평화로운 곳으로 가서
가야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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