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립미술관 가는 길은 늘 설렌다. 덕수궁 돌담길의 운치도 그렇지만 도심에서 한발 벗어난 곳의 고즈넉하고

적적한 분위기가 맘에 든다. 게다가 몇 시간꺼리 재미나게 놀 수 있는 소재들을 만나러 가는 거니까, 아마도

어렸을 때 큰 길건너 아파트촌에 있었던 '기린놀이터'로 달음질치던 기분이 이랬을 거다.

앤디 워홀. 대량 생산, 무한 복제의 시대에 걸맞는 '팝아트'를 창시한 예술가이면서 헐리웃과 세계의 '유명인사'

그 자체를 이미지로 소비해낸 자칭 '기술자'이기도 하다. 정치적 영향력, 역사적 중요성 따위와 관계없이 그저

사람들이 잘 알고 제혼자 친숙한, 그야말로 '쎌레브리티(Celebrity)'로서, 그는 마를린 먼로와 레닌, 마오쩌둥을

같은 반열 위에 놓고 작업을 하는 거다.

그의 숱한 '선정적'인 말들 중 이런 것도 있다. "미래에는 모두가 15분씩은 유명인이 되는 기회를 얻을 것"이라

했던가. 그의 작품들은 마치 익명의 일반인이 유명인이 되듯 하찮고 사소한 상품과 물건들에 초점을 맞춘 것이

꽤 많이 보인다. 너무도 흔한 세제 상자, 통조림스프 따위가 열맞춰 세워진 모습을 재구성한 작품들이 그렇다.


그가 창조해내는 세상은 모든 것이 이미지화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제통도, 재클린 케네디의 죽음도,

레닌과 마오의 이데올로기도, 교통사고와 심지어는 죽음조차 변주되는 해골의 이미지로 나타난다. 그는 왜

자신이 기계처럼 예술작업을 하고 싶다고 했을까. 뭔가 그림 뒤에서 심오한 의미를 찾고 온갖 기호를 암호처럼

배열하던 기왕의 미술과는 다르다는 뚜렷한 선긋기였는지도 모르겠다.

더이상 스스로를 근대적, 혹은 그 이전 시기 '예술가'라는 단어가 갖는 아우라로 포장하지 않고, 단순한 하나의

직업으로서의 예술가를 자처하고 자본주의 상업미술과 근대 미술과의 접점을 찾는 여정을 걸었달까. 그런

점에서 그의 세계는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탈근대의 미학과 미감들에 대한 하나의 클래식인지도 모른다.


다만, 솔직히 말하자면 탈근대, 포스트모더니즘의 '클래식'은 이제 조금은 유치하고 촌스러워 보이기도 했다.

아무리 앤디 워홀이 전례없는 예술 양식과 미감을 개척했다고는 해도 사실 워홀식의 작품들은 이미 무수한

발전 혹은 변화를 거쳐 사방에서 볼 수 있는 거다. 자본주의적 광고와 예술의 벽은 허물어진지 오래, 일상의

것들을 주목하고 새로운 문맥에 배치하는 시도 역시 그 자체만으로는 너무도 진부해진지 오래. 


게다가 재키-재클린 케네디-의 죽음이나 대규모 사상자가 발생한 참사가 이미지로 어떻게 소비되고 소진되는

지에 대해서는 워홀보다 지금 시대의 사람들이 훨씬 익숙할 수 있는 거다. 물론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여전히

워홀의 참신하고 날카로운 시각이 필요하달 수도 있겠지만, 사람들이 익숙해진 만큼 다른 예술가들은 다시

꾸준히 낯설게 하기를 시도하고 있는 거다. 굳이 앤디 워홀의 문제의식으로 돌아가야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앤디 워홀의 바나나 그림이 프린팅된 벽면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사람들. 그들이 찍고 있는 사진 한장한장,

그게 바로 앤디 워홀이 다양한 색감으로 표현한 마릴린 먼로라는 작품이고 네가지 색깔의 레닌 작품인 거다.

이미 이미지는 넘치는 데다가 심지어 유사한 곳에서 유사한 피사체-음식, 건물, 풍경 따위-가 쉼없이 복제되고

변주되고 있는 세상에서, 어쩌면 우리가 워홀을 관람해야 할 것이 아니라 그가 우리의 시대를 관람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는 자신의 작품 뒤를 보려 하지 말라고 했다. 거기엔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과연 그런지는 별개 문제지만

그는 자신과 자신의 작품이 '충분한 만큼 오랫동안 바라보아'지는 걸 두려워했나 보다. 충분한 만큼 오랫동안

바라보기. 이미지의 매트릭스를 깰 수 있는 건 역시 성찰의 힘이라는 이야기가 되는 건가, 모르겠다.

그의 작품 뒤로 걸어나오면서, 몇가지 그의 말들을 되씹어 봤다. 말장난같기도 하면서, 묘하게 여운이 있다.

* 사람들은 시간이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고 말하곤 한다. 그러나 실제로 사람들은 그들 자신에 의해 변화한다.

* 인생은 그들 자신의 변화하는 모습을 되풀이하여 보여주는 시리즈의 연속물이다.

* 사람들은 점점 더 오래 살고 늘어가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오랫동안 아이로 살아갈 것인지 배워야 한다.

* 사람을 가장 흥분시키는 매력들은 결코 만날 수 없는 두 사람 사이에 존재한다.

* 예술은 당신이 벗어날 수 있는 다른 세상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마지막 것, 미술관이나 전시관을 굳이 꾸역꾸역 찾아 돌아보는 이유기도 하다.

시립미술관 1층에서는 "조각적인 것에 대한 저항"전이 열리고 있었다. 다들 앤디 워홀전만 보고 여기를 지나쳐

가버리는 듯, 들어가니 관람객은 나 혼자 뿐이었다. 작품들을 보다 보면 불현듯 스스로 되묻게 된다. 근데 이거

조각전이었지? 조각은 뭐지? 하고.


커다란 덩어리 하나 혹은 여러개가 단단하고도 조용하게 지표 위에 버티고 있는 게 전통적 의미의 조각이라면

그 모든 것들 하나하나를 의문에 빠뜨린다. 덩어리가 아니거나, 단단하지 않은 액체/기체거나, 조용하지 않고

회전하거나 불규칙하게 움직이거나, 지표 위가 아니라 벽면이나 천장에 있거나. 형체가 하나로 고정되어 있지

않은 도발적이고 불안정해 보이는 것들, 그것들을 '조각'이라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시각이 아니라 청각과

촉각까지 끄집어내는 작품들이다.


개인적으로는 앤디 워홀전만큼 재미나게 관람할 수 있었다. 그야말로 반짝거리는 아이디어들이 가득했던

전시 공간이었다. 앤디 워홀의 그것들이 조금은 더 '클래식'하고 '올드'해 보인 이유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다.

시립미술관에서 돌아나오는 길, 아까는 참 앙상하고 못나보였던, 무슨 파리채마냥 똥그란 철사에 전선 그물망

얼기설기 엮인 듯 보였던 그곳에 불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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