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핏 보면, 차가운 은색 파이프 십여개를 동여매둔 것 같다. 길이가 다른 파이프들을 질끈 묶어두고는 창고

한 곳에 똑바로 수직으로 세워두면 저런 그림이 나오지 않을까.

정원 한 가운데 연못에 비친 버즈 두바이의 서늘하고 뾰족한 실루엣.

빌딩 옆구리춤에 매달려 있는 조그마한 파리같은 불빛은, 실은 그렇게 작지만은 않을 크레인이다.

버즈 두바이의 발치께에는 여전히 공사중인 짜잘한 건물들이 우르르 몰려있다. 그러고 보니 밑둥만 보면

버즈 두바이도 꽤나 옹골찬 건물이다. 튼실한 하체, 얄쌍한 상체.

그래서다. 더욱 주사바늘이 연상되는 건. 저걸 한 손에 쥘 만한 사이즈의 로봇이 있다면 언제든 툭,

꺽어선 무기로 쓸지도 모르겠다. 거대한 롱기누스의 창.

공사중인 아랫 건물들. 이것들도 그리 작다고 치부될 건물은 아닌데, 덜컥 하나가 뾰죽하니 솟아버리는 바람에

영 가오가 죽어 버렸다.

부분부분 떼어서 보면, 꽤나 높은 마천루다. 뉴욕이나 어디 대도시에 뒤지지 않을 만큼의 높이이기도 하고.

사실 한국만 해도 최근 지어진 고층건물들이 잔뜩 몰려있는 지역이란 드물다. 아무리 강남이나 광화문 거리라

해도 조금만 중심에서 벗어나면 그다지, 고층건물이 빼곡한 지역을 찾기는 쉽지 않은 거다.

뭔가 금속 골조와 유리 재질의 외장재가 초현실의 느낌을 던지고 있다. 메탈과 유리, 그 두가지 재료가

포스트모던을 상징하는 건축물들의 핵심 자재라는 지적이 와닿는 순간. 고층으로 오를수록 하늘의

파란빛을 머금은 버즈 두바이.

버즈 두바이를 올려다 보기 딱 좋은 이곳은 the old town island, 두바이의 전통 왕궁과 저택들이 재현된 공간.

압도적인 높이, 그렇지만 저 건물에 입주해서 일할 사람들은 좀 깝깝하겠다. 50여층만 되어도 창문 하나없이

답답한 공기가 내부에서 돌 뿐인데다가 엘레베이터 한 번 타면 귀가 윙윙거리는데, 저렇게 높아서야 원.


가까이 보나, 멀리 보나, 까마득하니 높게 뻗어 저게 진짜인가. 싶은 맘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토끼 귀때기 모냥으로 길게 터미널이 두줄 늘어진 인천공항에 외항사 전용 터미널건물이 생기면서, 대한항공

혹은 아시아나같은 국적기 대신 외국항공사 비행기를 타려면 본건물과 이어주는 셔틀을 타야 한다. 마침

맨 앞칸에 타서, 슝슝 지나가는 노랗고 파랗고 하얀 조명들을 봤다.

인천에서 두바이까지 9시간 반. 아랍에미레이트 항공은 늘 밤비행기다. 두바이를 향한 비행기는 메카를

나침반 삼아 날아가고 있었다. 왠지 한결 고즈넉한 한밤의 비행.

비행기는 무슨 뱀파이어도 아닌 게 태양과의 숨바꼭질이라도 하듯 계속 어둠으로 어둠으로.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나가면 계속 어둠 속에만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럼 계속 밤시간대일 테니까 시간은....또다시

헝클어지고 마는 시간 관념. 실제로 비행기 속에서 시간이 조금 빨리 흐른다던가. E=MC².ㅋㅋㅋㅋ

두바이 공항이다. 공항 앞에 늘어선 핑크빛 택시들과, 핑크빛 유니폼 히잡을 둘러쓴 여성들이 신기했다.

두바이? 두바이는 아랍에미레이트국가의 한 조각, 한 에미레이트(州)를 이른다. 사실 아랍에미레이트라는

연방국가를 구성하는 여러 주중에서 가장 강성한 것은 아부다비, 대략 3/4던가의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고.

어쩌다 두바이가 아부다비보다 우리에게 더욱 크게 알려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최근의 경제위기로 '사막의

경제기적'을 만들어냈다는 두바이는 모라토리엄 위기까지 갔었다고 한다. 그 위기를 극복하도록 도운 것이

아부다비의 풍요로운 경제력이라 하고. 아부다비가 전통있는 갑부라면 두바이는 졸부랄까, 그런 이미지.

그래서 여긴, 모든 게 새것인 것 같다. 쉼없이 올라가는 건물들, 자국인에는 전기료나 수도세를 부과하지 않아

그런지 밤에도 불을 훤히 밝힌 채 골조를 그대로 드러낸 공사판 현장. 신기루처럼 어른어른 찍힌 사진.

하늘 한 귀퉁이가 쭉 째지며 조금씩 햇살이 번지는 시간, 두바이의 탑, 버즈 두바이가 보이는 곳에 도착했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로 몇번의 완공 기일을 못 지키고 여전히 작업중이라 한다. 한국의 건설자본이

수주하여 화제가 된 건물이기도 하다.

이맘때의 하늘색깔이란 참 오묘하다. 한쪽은 짙푸른 군청색이 어른어른하고, 달을 감싸고 도는 뿌연 달무리는

꼭 물 한방울 톡 떨어뜨린 느낌이고, 지평선에 가까워지면서 이곳의 누런 모랫빛이 설핏 섞여드는 것 같기도.

전통 가옥들과 야생스런 야자수 너머로 날카롭게 솟아있는 빌딩은, 무슨 주사기 같다. 하늘을 향해

가파르고 삼엄하게 들이대고 있는 주사바늘 같은 첨탑.

대체 사진 한장에 담기가 쉽지 않을 만큼 길다란 빌딩이다. 대체 언제 완공되려나. 올해 말까지 완공된다더니

그것도 연기될 거라는 풍문을 들었다. 현지 인력들의 근무 태도나 수준이 도무지 퀄리티를 맞추지 못한다던가.

이왕임 좀더 두텁게 만들었음 안정감이 느껴질 텐데, 너무 얄포름하게 만들어서 휘청휘청할 것 같기도.


 

앙코르 톰을 벗어나 소위 '그랜드 투어 코스'를 자전거로 돌아 보기로 했다. 네모반듯한 앙코르 톰의 동쪽에는

'승리의 문'과 '동문'이 있는데 그쪽으로 나가면 '스몰 투어 코스'로 작은 원을 그리며 앙코르왓으로 돌아오게

되고, 북쪽의 '북문'으로 나가면 '그랜드 투어 코스'로 좀더 많이 큰 원을 그리며 한나절 코스가 되는 거다.

사실 한나절 코스니, 반나절 코스니 미리 재단하는 건 좀 웃기는 일이다. 가서 맘에 드는 곳이 있으면 몇시간이

지나가던 앉아서 쉬고, 책도 보고 낮잠도 자고 그럴 수 있는 건데 말이다. 여행을 떠나서 아침에 대략적인

스케줄만 스케치하듯 잡고서는 나머지 디테일은 그때그때 내키는대로 채우는 게 그래서 좋은 거 같다.

북문에도 여지없이 눈똑바로 뜨고 앙코르 톰을, 씨엠립을, 캄보디아를 지키는 '크메르의 미소'. 네모나게 각진

얼굴에 저런 은근한 미소를 물려주지 않았다면 꽤나 무섭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이곳에도 역시 깊고 넓게 파인 해자를 건너기 위한 다리가 있고, 다리 위에는 거대한 뱀의 몸뚱아리를 줄 삼아

잡아당기고 있는 신들이 있다. 감사해요, 덕분에 다리 밑으로 떨어지지도 않겠군요.

쁘레아칸(Preah Khan)으로 가는 길 중간, 느닷없이 마주친 한무리의 아이들. 축축 늘어져있는 가지에 매달려

그네처럼 좌우로 거침없이 흔들기도 하고, 해먹인 양 편히 기대어 쉬기도 하고, 쪼꼬마한 아이들도 나무를 꼭

쥐고서 놀고 있는 게 꼭 열매처럼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요즘에도 가끔 나타나 화제가 되고 하는 '정글 인간', 십수년씩 혼자 정글에서 동물들과 생활했다는 그들이나

정글북에 나오는 모글리같은 아이들이 저렇게 지내던 게 아닐까. 정글 깊숙이 우거진 나무들에 기대어 쉬고,

놀고, 잠들고. 저렇게 많은 아이들을 품어 주고 버텨주는 나무가 듬직하다.

앙코르 왓 내부에는 화장실이 드물다. 몇 킬로미터씩 가야 띄엄띄엄 있는 수준인데, 가끔은 입장객임에도

불구하고 돈을 받는 유료 화장실도 있다. 자전거를 격하게 달린지라 장 활동이 활발해졌는지, 화장실의

위치 추적에 예민해졌던 그 때, 문득 눈앞에 나타났던 '한국-캄보디아 우호의 숲'이라고 읽히는 낯익은 글자.


의전 원칙에 따라 자국 국기를 왼쪽으로, 외국 국기-여기선 태극기-를 오른쪽으로. 자국어인 캄보디아어로

먼저 소개를 했지만 무슨 말인지 알아보질 못하겠고, 한글로는 한국이 먼저 나와 '한국-캄보디아', 그다음

병기된 영어로는 'Cambodia-Korea'로 자국이 먼저 나오고. 나무랄 데 없는 배치다.

우호의 숲 속에 자리잡고 있는 화장실. 타고 다니던 자전거를 세워두고 급한 불부터 끈 후에, 건물을 따라 숲을

한바퀴 둘러보았다. 뭐, 딱히 다를 건 없었고 그냥 여느 앙코르 왓 내부의 정글과 같이 치렁치렁하고 빽빽한

정글, 숲이었다.

화장실 안에서 재미있는 그림이 있어서 한 장. 왼쪽부터 보자면, 흡연 금지다. 아무래도 정글에 목재 건물이니

화재 예방이 중요한 거다. 그담 변기뚜껑에 올라앉아 일보지 말라는 표시, 워낙 많은 불특정다수가 쓰는 공용

변기이다 보니 더러워지기 쉬울 테고 그럼 또 저런 자세를 부득불 취해 더욱 더럽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겠지.

그렇지만 저 자세로는 물이 사방으로 튈 텐데.ㅡㅡ;; 세번째는, 옆에 있는 수도꼭지로 발 닦지 말라는 건지

신발을 닦지 말라는 건지 모르겠지만. 날이 워낙 더운데다 여기 오면 아무래도 많이 걷게 되니 발 한번 씻고

나면 피로도 좀 풀리고 좋지 않나? 좀 이해가 안 되는 표지다. 마지막 그림처럼 샤워하지 말라는 거야, 다른

사람에 민폐도 될 수 있고 '선녀'처럼 옷을 분실할 수 있는 위험도 있으니 그렇다지만. 


이 중 하나를 어기고 말았다. 너무 더운데다 이미 옷에 하얗게 소금꽃이 피어나 어쩔 수 없었다는.


더운 나라, 더운 날씨, 더운 시간대. 물방울이 송글송글 맺혀있는 캔맥주가 딱이다.

캄보디아의 특색이 드러난다는 '앙코르' 맥주, 깡통에는 무려 'my country my beer'라는 문구가 박혀 있다.

가이드북에는 캄보디아에서는 맥주를 '온더락'으로, 얼음을 띄워 마신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며칠 머무는

동안 그렇게 맥주를 서빙하거나 마시는 사람이 눈에 안 띄었던 거 같다.

테이블에 앉아서 땀을 닦고 있으려니 문득 아이들이 왔다간다. 뭔가 조잡한 악세사리류를 가득 담은 봉지를

팔에 끼고, 등에는 바구니를 끈에 묶어 매달고는, 조심스레 눈길부터 건네고는 뒤이어 말을 건넨다.

관광지인지라, 여행객들이 많이 오는 곳인지라 꽤나 뺀뺀해졌을 법한데 여전히도 수줍고 착한 아이들.

한국의 어디 재래시장에 가면, 아니면 길거리 포장마차 같은 곳에 가면 쉽게 볼 수 있는 빨간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선풍기를 쐬고 있으면 그저 행복하다. 여유롭게 앙코르왓을 설렁설렁 돌다가, 배고프고 다리아파지면

아무데고 들어가 앉아 맛있는 걸 먹고 마시고. 여행은 처음부터 끝까지 좋은 거지만 특히나, 이렇게 점심을

먹는 때가 가장 뿌듯하지 싶다.

뒤가 이상해서 돌아보니 글쎄 해먹이 두개나 묶여 있다. 정글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해먹이 필수품이라더니,

아무 나무등걸 두 쪽에 엮어서 추욱 늘어뜨리고는 몸을 실으면 그뿐인 거다. 식당이 좀 한산해지면 저기에

누워 쉬나 보다. 당장 애기를 재우려는 아주머니가 다리 하나로 흔들흔들 해먹을 흔들어 주고 있었다.

그 옆에서, 누에고치처럼 해먹에 휘감긴 채 세상 모르고 자는 어린 아이. 해먹이 어찌나 부럽던지.

주변을 두리번대는 것도 음식이 나오면 끝이다. 어딜 가든 무엇을 먹든 잘 먹고 맛있게 먹는 나라지만, 정말

캄보디아 전통음식들은 하나도 실망한 게 없었던 거 같다. '아목'이었던가, 전통 음식의 하나라던데, 서빙하는

아주머니의 추천대로 탁월한 선택이었다는.




이번 출장에서도 사진은 여지없이 찍었댔다. 두바이의 유명한 7성급호텔 버즈 알아랍,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아직 공사중인) 버즈 두바이 등등 두바이의 풍경들. 사우디 리야드의 밤거리, 드문드문 땡땡이치며

산책나갔던 시내 골목길에 쿠웨이트의 쇼핑몰까지. 왠지 사진을 올리려는 의욕이 안 생긴다. 물론 왠지 10월

내내 바빴고 바쁜 탓도 있겠지만.


작년에 이미 갔던 호텔에 고대로 묵는 사우디와 쿠웨이트는 사실 별 기대가 없었고, 이번 출장은 사실 오로지

이집트 카이로에 다시 간다는 것, 그리고 그곳에 (드디어) 디카를 들고 간다는 것, 5년만에 피라밋을 다시 볼

수 있다는 것 때문에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내 짧은 삶에서 뭔가 갈치 토막치듯 분기점을 나눠보라면

2004년 그때의 여행은 두세번째 순서쯤 되지 않을까 싶다. '먹고 살 고민' 따위, '먹고 살 궁리' 따위 '굴하지

않던' 철부지에서 '먹고 살 고민'씩이나 하는 철부지로 변신한 게.


마침 이집트에서 카메라를 누군가에게 빼앗겨서만은 아니었다. 현지인들과 함께 부대끼고 암내맡으며, 하루에

2리터들이 물병을 두개씩 마시며 마주했던 카이로의 거리들, 그리고 피라밋과는 너무 달랐다. 반듯한 정장에

(무거워서 고리가 휘어버린) 노트북 가방을 척 걸치고, 45인승 고속버스 차창 밖에서 넘쳐들어온 햇볕 한 줌에

아 뜨거라 하며 큰길로만 다녔다. 군자는 대로행이라던가. 흥. 카이로는, 길거리는 그대로였다. 사천년을

멀쩡했던 피라밋도 고작 오년만에 달라졌을리 없다. 내가 달라졌다.


그다지 맘에 썩 들지는 않았다. 출장과 여행의 차이일 수도, '먹고 살 고민' 따위의 유무 차이일 수도, 그저

2004년 8월과 2009년 10월의 온도 차였을지도 모르겠다. 혹은 단순히 눈높이의 차이였을지 모른다. 피라밋을

굽어보게 만드는 45인승 고속버스라니. 왠지 순례하듯 그곳을 우러렀던 과거의 내게 모멸감을 안겼던 걸지도
 
모른다. 피라밋은, 카이로는, 사람 사는 곳은 그렇게 건방지게 내려보며 점점이 둘러보는 게 아닌데. 굽어보아

미안해. 내려보아 미안해요, 라고, 날 완전한 이방인으로 격리시켜 버린 양철캔 안에서 외치고 싶었다.


얄쌍하고 길쭉하며 튼튼해 보이는 고속버스들이 피라밋 앞 주차장을 쉼없이 들어갔다 나갔다 들어갔다 나갔다,

입구에서부터 한참을 걸으며 피라밋의 위용과 이질감에 숨막혀했던 바로 그 오르막길 역시, 버스의 탄탄한

모터는 잘도 부릉거리며 한숨에 정복해버렸다. 이건 강간이다. 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5분만에 피라밋

코앞까지 내달렸다가, 다시 5분만에 피라밋 세 기가 배경으로 쭈그러든 포스트로 내달려 사진을 남기고 휑하니

가버렸다. 왜이리 덥냐고, 왜이리 사람이 많냐고, 이집트 삐끼들 못살겠다고.


어떤 식의 여행이 되어야 한다, 는 건 아니다. 꼭 땀 삐질삐질 흘리고 빡세야 여행이란 것도 아니다. 그저 난,

내가 풍경과 풍경 사이에 이전에 밟았던 그 울퉁불퉁하고 냄새나고 미칠듯 덥던 길이 사라지고 순간이동하듯

뿅뽕 튀어나오는 풍경들만 남아버린 것이 안타까웠다. 전희도 없이 덜컥 달려나간 꼴. 그런 식의 폭력적인

풍경의 소환. 그건 서로에게 상처일 뿐이지 않을까. 이미 닳고 닳아버린 이미지라 해도 좀더 조심스럽게,

세심하게 접근하면 조금은 더 신선하고 깊이 느낄 수 있을 텐데. 


그 야만스럽고 난폭한 고속버스의 행렬이 피라밋과 '관광지'로서의 카이로를 현지 사람들로부터 뺏어들고

희롱하는 것처럼 보여 수치스러웠다. 그나마 위안이 되었던 건, 낙타에 오른 이집션들의 눈높이가 차창에

바싹 붙어앉은 내 눈높이와 같았다는 사실. 이 녀석들, 마리당 몸값이 일억원이라더니 몸값 제대로 하는구나.

왠지 거대 고속버스들이 지분거리며 들고 나는 피라밋 앞 주차장에서 이집트의 자존심을 지켜주는 게 그

낙타들 같아서 안쓰럽고, 대견하고 그랬다.


다시 한번 가고 싶다. 45인승 삐까뻔쩍한 고속버스 말고, 소금기 얼룩진 티쪼가리 입고 시커멓게 그을린 채,

박박 기듯이 걸으며 걷고 뛰고, 그러고 싶다. 뭔가 거기서부터 나의 1984년과 1Q84년이 갈라져버렸다고 

느껴서인지도 모르겠다. 아님 그저 훼손되고 벗겨내어진 내 기억속 그 공간의 아우라를 다시 조심조심

덮어씌워주고 싶어서인지도. 어쩌면 그 모든 건 어머니의 자궁 속으로 다시 들어가고 싶다는 욕구와 같을지

모른다.




#0. '장 그르니에'라는 섬에 대한 조각지도.

그의 글들은 쉽지 않다. '글'이라는 것이 뭔가를 묘사하고 구체화하는 거라면, 그의 글은 그의 내면 세계와

사고 과정을 묘사하고 스케치하는데 치중하고 있기 때문일 거다. 자칫 난해하다거나 사변적이라는, 어렵게

쓰려고 참 애썼다, 라는 비아냥을 들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의 짧은 단편들은 그의 내면, 그 구석구석에 대한 부분 지도와도 같다. 삶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자신이 누구라 생각하는지, 여행이란 자신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여행을 왜 떠난다고 생각하는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그런 굵직굵직하고도 근본적이랄 문제들에 대해 '장 그르니에'라는 이름의 섬을 조금씩 드러내는

지도인 것이다.



#1. 묘하게 빨려드는 헛된 유희의 중독성, 삶.

'이것'과 '저것' 둘 중에서 선택을 해야 하는 게 삶이다. 두 가지 다 영판 아니다 싶고, "바싹 가까이에서 보면

터무니없을 만큼 치사스런 게 삶"이고, 일정 시간 후에는 죽음으로 흘러가도록 정해져 있다는 건 억지로라도

잊으려 애쓴다. 생일이 다가오면 한 살 더 먹었네, 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뒤집어 살 날이 한 해 줄었구나,

라고 생각해도 안 되는 이유는 죽음에 대한 터무니없는 공포심과 터부, 그 이외엔 없지만 말이다. (그런 생각은

'비인간적'이라 거부당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더욱, 유희에 말려들어 덧없는 것 속에서 있지도 않은 것을 찾아 헤매게 되는지 모른다. 이 세상에 항상

좋고 완전한 것이란 없음을 알면서도, 일단 이 세상에 발을 들여놓기만 하면 '악마'의 유혹이 귓전에 맴돌게

되는 거다. "목숨이 붙어 있는데 왜 안 살아? 왜 제일 좋은 걸 안 골라? 왜 좀더 낫게 살지 않아?" 라는. 그말에

따라 달리기를 시작하고 여행을 떠나고. 집 한 채 마련하려고 수십년을 바치고.


니체가 '동일자의 무한반복'이라는 세계의 이미지를 견디어내는 자를 일러 칭했던 '위버멘쉬', '초인'이란

단어는 유사한 현실인식을 궁구하면서도 끝내 삶의 의미를 찾아내는 장 그르니에에 붙음직한 칭호인지 모른다.

그는, 그렇게 무한한 밀물썰물의 진퇴를 반복하는 세상 가운데에서도 어느 순간 충만함을 맛볼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아무 의미도 없는 파도의 움직임에 문득 의미가 깃드는 순간. 그 한 순간이면 된다. '행복하다'는

말을 진심으로 할 수 있는 자는, 어쩌면 그 '한순간'이란 게 생각보다 인생 곳곳에 숨어있음을 알기 때문일지도.



#2. 여행의 대용품, 섬 찾아나서기.

어딘가로 떠난다는 건, 일상의 더께 속에 깊이 파묻혀 있던 감정들을 하나씩 끄집어내어 툭툭 먼지를 털고

다시금 탱탱하게 충전시키고자 함이다. 그렇지만 장 그르니에의 말을 빌건대, "여행을 해서 무엇하겠는가.

산을 넘으면 또 산이요 들을 지나면 또 들이요 사막을 건너면 또 사막이다. 결국 절대로 끝이 없을 것이고.."

그는 여행이 꼭 필요함을 말하는 동시에, 또 부질없음을 말한다.


더구나 영상 매체와 온갖 미디어를 통해 세상의 낯선 풍경들, 내 멱살을 잡고 흔들어 정신을 번쩍 들게 해줄

그런 풍경들의 파괴력은 반의 반의 반쯤으로 줄어버린 게다. 이미 어디선가 한번쯤 본 풍경, 어디선가

보았던 구도를 답습하고, 꼬리를 문 관광객들의 뒤를 이어 화살표를 따르는 여행이란, (여행을 테마로 했다

주장하는 블로그를 채우려는 사람 입장에선 많이 아이러니하지만) 자칫 티비 다큐멘터리 하나 보는 것만

못한 지루하고 진부한 경험일 수 있다.


다행인 건, 우리 사이엔 아직 신대륙이 남아있다는 것. 남아있는 정도가 아니라 실은 매우매우매우 무궁무진

하다는 것. 장 그르니에의 단편들이 모인 이 단편선의 제목이 '섬'인 이유는, 그가 허무하고 부질없다 느끼는

삶에 애정과 온기, 열정을 불어넣게 되는 이유가 바로 '섬'에 대한 이해, 유대의 욕망이기 때문일 거다. 그는

본질적으로 삶이 무의미하고 공(空)한 것이라는 인식을 양보하지 않지만, 그러면서도 작은 고양이 한 마리,

두 그루의 나무, 한 번의 악수, 어떤 눈길, 그런 것들로 충분히 삶을 견딜 수 있다고 생각한다.



#3. 섬. 점에서 조심스런 말줄임표로, 기어이는 선으로.

김기덕 감독의 '섬', 그 영화를 보고 나서 사람들이 제각기의 해안선으로 외곽을 단단히 둘러친 '섬'같다는

이미지가 단단히 굳어져 버렸다. 망망대해에 혼자만 존재하는 듯 덩그마니 놓여 있는 자그마한 땅덩어리.

사실 그런 이미지는 많은 선인들이 차용했던 것이었고, 그르니에 역시 그 궤를 따르는 것처럼 보인다.

제각기 떠들고는 있지만, 사실 어느 누구에게도 진심으로 이해받지 못한다는, 게다가 결국은 그 섬에서

굶어 죽던 나이들어 죽던 제각기의 삶을 소진하고 제각기 죽어갈 뿐이라는 식의 이미지.


다만 그는 '섬'이 갖는 폐쇄성, 소통불가능성, 본원적인 고독, 외로움 따위의 이미지에 더해, 그 복수의 '섬들'에

대한 여행의 의욕을 불러일으킨다. 저기 저 섬, 한번 여행하듯 떠나보지 않을래? 조금씩 지도를 읽어나가듯

이해하고, 소통해보지 않을래? 육체를 먼 곳에 내동댕이치는 여행이 아니라, 지독히도 가까운 곳에 존재하는

다른 육체와 정신들에 대해 여행을 떠나보지 않으련, 하고 그는 권하는 것이다.


장 그르니에의 '섬'이란 그래서 동떨어진 하나의 점 같은 것이 아니다. 그 점들이 하나하나 이어져 조심스런

말줄임표로 서로를 탐색하고, 결국은 갸냘픈 '선'에까지 이르러 탄탄하고 의지함직한 '관계'를 만들어가려는

움직임의 시초, 일종의 씨앗. 그에겐 '보로메의 섬'이었던 그것은 아직 서로에 뿌리를 뻗지 못한 우리들이다.



#4. 글쓰기. '섬'으로의 친절한 초대장.

글쓰기란 그래서 내겐, 일종의 '작도(作圖)'다. 2009년 10월 20여일 어디메쯤의 나라는 사람은 이런 생각을

품고 있고, 이런 내면을 갖고 있음을 전하려는 지도 그리기나 다름없다. '블로그'라는 도구가 새로운 양 하여

뭔가 그에 걸맞는 뾰족한 수가 있지 않겠나 했지만, 그건 전혀 핵심을 놓치고 있었다. 블로그가 문제가 아니라,

글쓰기가 문제다. 그러고 나면 온갖 광고성 리뷰와 내키지 않는-고역스럽고 '일'이 되어버리는-포스팅의

위험을 벗어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장 그르니에의 '사변적이고 난해한' 글은 어찌 보면 당연한 거다. 그의 글을 읽는다는 건, 전혀 경험치 못한

하나의 세계, 섬 안으로 걸어들어간다는 거나 마찬가지다. 비록 그가 니힐리즘과 실존주의 철학의 역사적

궤적 하의 인물이고, 까뮈를 예비한 인물이란 정도의 배경지식이 있다 해도, 그래서 일정 지역에 몰려 있는

'군도'에 속해 있다 해도 그는 여전히 '섬'인 채로다. 그런 글조차 없었다면 대체 어디에서 '여행 정보'를

얻을 수 있으며, 또 대체 어디에서부터 그에게 '들어갈' 수 있을까 싶다.



- 10점
장 그르니에 지음, 김화영 옮김/민음사


문둥이왕 테라스에 길게 이어진 건 바로 코끼리 테라스, 여기는 앙코르톰 동쪽 '승리의 문'을 통해 들어올 수

있었던 개선군이 왕에게 승리를 보고하던 곳이라 한다. 코로 연꽃을 휘감아 왕에게 바칠 태세를 갖춘 코끼리

코들이 벽에서 뻗어나왔다.
 
아니, 어쩌면 코끼리들의 육중한 몸으로 벽을 쌓아 왕의 전면에 도열시켜 놓았음을 상징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굉장히 유니크하면서도 재미있는 발상, 그리고 건축물이다.

코끼리 코, 하면 생각나는 건. 근데 돌로 깎였음에도 미끈하게 쭉 뻗은 코끼리 코라기보다는 팔을 스트레칭하는
것 같이 나와버렸다. 아놔.

통일신라시대던가, 이 땅에서 발굴된 막새-기왓장-무늬에도 비슷한 그림을 분명 본 적이 있다. 흔히 요새

'치우천황기'라고 흔드는 데 들어간 그 그림 말이다. 그건 사실 한민족의 고대 인물을 드러내기엔 다소 적젏치

않은 상징일지 모르겠다. 캄보디아에서도, 다른 불교 베이스의 국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이미지인 탓이다.

('치우천황'이란 인물에 대한 악의적 이미지 왜곡이 중국에 의해 이뤄졌고, 그게 아시아 문화권 일반의 악귀,

라거나 악귀를 쫓는 무서운 신, 의 이미지로 변용되었단 점을 감안해도 그렇단 얘기다.)

여기서도 빼놓을 수 없는 매혹적인 저 사자의 뒷태. 완전 잘록한 허리와 풍성한 힙의 조화라니. 사랑스럽다.

뭐랄까, 카메라 광고의 한 장면을 연출하고 싶었는데. 그들이 의식하지 않게 하겠다, 어쩌구 하는 비를

따라가다간 가랭이 찢어지겠다. 두다리를 허공에서 펄럭이며 날고 있는 압사라 여신도 비웃었다.

코끼리 테라스에서 왕이 바라본 풍경은 또 어땠을까, 싶어 휘휘 둘러보았다. 우선 정면.

멀리 보이는 건축물들은 원래 창고 용도로 쓰이다가, 나중에 외국 사신들을 접대하는 일종의 영빈관으로

쓰였을 거라는 게 가이드북의 설명이지만 글쎄. 저런 데 사람이 살기엔 좀 불편하지 않았을까, 커다란 굴뚝

아니면 무슨 화장터 같이 생겼는데.

왼쪽으로 고개를 틀면, 저쪽에 문둥이왕 테라스와, 길게 이어진 코끼리 코가 인상적인 코끼리 테라스.

오른쪽, 문무백관들이 왕의 좌우로 호위하듯 둘러서 있었겠지. 빳빳한 밀랍인형처럼.

관광객들도 눈에 잘 띄지 않는 한산하고 다소 휑한 분위기, 운치를 더하듯 어슬렁대는 검정개 한마리.

가만히 앉아 쉬고 있자니 휘적휘적대며 느릿하던 녀석이 어느새 바로 앞까지 찾아왔다. 심심했던 게냐.

왕이 서 있던/앉아 있던 바로 그 장소. 다소 기울어져 보이는 게 카메라 잡은 이의 농간이었는지 아님 원래

저 지반이 살짝 뒤틀어져 기우뚱해 있던 건지 모르겠다.


왕의 시각에 빙의되어 보자, 이게 바로 왕의 시야.




여전히 앙코르톰 내부의 이야기. 3kmX3km의 거대한 계획도시의 내부에 돌로 축조된 궁전과 사원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으니 둘러 보는 데만 한나절이다. 아무래도 크메르왕국의 최전성기이던 시절, 황금의 도시라 불리던

때 지어진 수도니만치 당대의 공력을 총동원했던 게다.

그 전성기를 구가한 왕이라 여겨지는 자야바르만 7세, 이 문둥이왕 테라스의 주인공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의 치하에 크메르 왕국 전지역에 병원들이 설치되고 정비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이 그가 문둥병/나병에

걸렸었다는 추측을 뒷받침한다고 한다. 물론 다른 설들도 많다. 캄보디아의 많은 사원이 대부분 죽은 이들을

봉안한 무덤의 역할도 겸하고 있듯 이 테라스에도 왕실 전용 화장터가 설치되어있었다는 사실을 근거로,
 
테라스 위에 앉아 있는 인물이 야마(염라대왕), 즉 죽음의 신이라 추측하기도 한다.

학자들 간의 설왕설래야 어떻든 간에, 이 조각상은 몇가지 재미있는 특징이 있다. 옷을 안 걸치고 있는, 혹은

옷의 실루엣을 거의 조각해 넣지 않은 모습의 상이라는 점(누군가 저렇게 옷을 계속 공양하길 바라고 만든 양),
 
생긴건 남자임이 분명한데 앞면을 보면 뭔가 남성의 심벌이 없이 밋밋하다는 점(신의 양성성을 표현하고 싶던

걸까), 그리고 조각 표면이 매끈하게 다듬어지지 않고 뭔가 깔깔한 느낌이 의도적인 양 느껴진다는 점(이게

바로 이 조각상이 문둥병/나병에 걸린 인물이라 추측하는 이유라 한다). 차마 민망해서 앞면은 못 찍었다.ㅋ

문둥이왕, 혹은 염라대왕 혹은 다른 무엇, 그가 내려다보고 있던 풍경이 뭘까, 옆에 주춤 서서는 사방을 둘레

둘레 두리번거렸다. 우측에 보이는 길게 이어진 테라스의 요철, 그리고 오래된 것의 향취가 은근하다.

그리고 전면. 어라, 이 문둥이병 걸린 아저씨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은 걸까. 분홍색 귀여운 아이스크림차.

아이스크림 스티커가 나름 주의깊게 배치되어 나란히 붙어있는 걸 보면 왠지 저 차를 분홍빛으로 도색하고

스티커를 한장한장 울지 않고 삐뚤지 않게 세심하게 붙이려 노력했을 모습이 떠올라 재밌다.

아이스크림 차 옆으로 마치 무슨 제약회사 로고처럼 멋지게 자라난 거대나무. 짙푸른 녹색잎도 무성하고,

가지의 뻗어나간 모양이나 좌우 대칭의 형태가 장쾌하다. 넉넉히 사람 백명은 수용하겠다 싶은 짙은 그늘.

문둥이왕 테라스는 외벽과 내벽의 이중구조로 되어 있다. 테라스 위에서 내려서 벽면의 조각들을 보려고

계단을 내려서는데 아까서부터 졸졸 우리를 따라다니던 녀석들이 계단에 기대 쉬고 있었다. 원달러원달러,

아저씨 멋져요, 일불일불, 이러던 애들. 과거 왕의 테라스였던 이 곳이 녀석들에겐 기대어 쉼직한 휴식처이자

일터인 셈이다.

앙코르왓이나 앙코르톰의 해자에는 원래 악어들이 득시글거렸다고 한다. 요새도 조금 깊은 정글에는 악어가

여전히 야생으로 살고 있다 하고. 그만큼 그 사나움과 파워에 익숙해서겠지, 조각에도 악어가 심심찮게

등장했다. 흉폭한 모습 그대로지만, 살짝 생각에 잠긴 듯한 눈매와 턱의 모습이기도 하다.

얼굴 아랫쪽 벽돌이 떨어져 나갔더니 더욱 무시무시하다. 빨간 마스크 밑에 쫙 찢어진 입을 숨기고 다닌다는

'빨간 마스크' 아주머니 같기도 하고.

'헐벗은' 여성들의 조각도 있다.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선이 굵어서, 왠지 이 여성들도 악어처럼 용맹스러울

거 같아 보인다.

이녀석 웃는 모습이란, 왠지 주는 거 없이 얄밉다. 빙글빙글대는 웃음이 입가에서 뱅글거리는 느낌.

테라스도 그렇고, 다른 시엠립의 사원들도 모두 일정 수준의 복원을 거친 터라, 이런 자국이 여기저기서

보인다. 사방에 흩뿌려져있던 돌무더기들에 하나하나 이름/번호를 붙여 차근히 원래 자리로 돌려보내는 것.

그러고 보니 어렸을 적 국사학자 내지는 고고학자가 되고 싶었었다.

뭔가 전투중인 장면이다. 날카롭게 조각된 돌칼들이 번득번득하고, 적군의 신체 중 아무데나 거침없이

겨냥되는 와중에 이 녀석은 왠지 술을 마시며 칼을 제편에 휘두르고 있는 것 같다. 병나발 불며 아군을

희생시키는 망나니 캐릭터랄까.

아...바이욘의 큰바위얼굴들 표정도 미묘하게 좋았었지만, 이 표정만큼 푸근한 건 그 전에도, 이 이후로도

보지 못했던 것 같다. 헤죽, 하고 큰 입을 쫙 땡겨벌리며 웃고 있는데, 눈도 가만히 따라 웃고 있다.




'나가'란 힌두교/불교에서 신성시되는 '뱀신'으로, 그 형태상 주로 난간에 많이 응용된다. 앙코르톰 내

문둥이왕 테라스, 코끼리 테라스 뒷켠에 있는 뗍 쁘라남(Tap Pranam) 뒷쪽 '쁘리아 빨리라이'에 있는 난간도

마찬가지.

몸의 몸통은 난간을 따라 쭉 이어져 있고, 뱀의 (무려) 일곱개나 되는 머리는 난간의 끝을 장식하고 있다.

이렇게 뱀 두마리가 인도하는 통로, 머리갯수로만 따지면 열네 머리가 인도하는 통로를 따르면 불교사원이

나타난다.

약간 이지러진 건축물, 그다지 임팩트 있는 건물은 아니었지만 문 위에 조각된 것들이 꽤나 선명해서

시선이 자연스레 옮겨졌다.

한쪽 조각면에 '우뚝' 서있는 부처, 그리고 밑에 옹송그리고 자세를 한껏 낮춘 '가련한' 중생들. 이런 식으로

신성성과 위엄을 강조한 조각은 사실 어느 종교를 막론하고 조금 거부감이 든다. 쟤넨 무슨 벌레처럼.

가이드북에서 그럴듯하게 설명해놓았던 '쁘리아 빨리라이'의 북쪽 벽. 앙코르 유적에서 찾아 보기 쉽지 않은

조각이라고 한다. 부처가 성나서 폭주중인 코끼리 머리에 손을 얹어 진정시키는 장면이라고 하는데, 왠지

하얗게 녹아내린 건지 색칠이 된 건지 그런 바람에 좀 제대로 감상하기 쉽지 않다.

그보다 더 인상적이었던 건, 사원의 한쪽 벽면을 따라 이리저리 강렬하게 뻗어나간 뿌리가 사원의 벽돌들을

움켜쥐고 있는 장면이었다. 저건 나무라기보다는, 뭔가 기괴하고 이질적인 외계의 생명체같은 느낌.

어떻게 보면 하얗게 뼈다귀만 남아버린 거대한 생명체 같기도 하고, 빤딱빤딱 빛나며 비닐같은 비늘이 돋아나

있는 게 무슨 인공적인 조형물 같기도 하고, 허옇다 못해 펄빛나는 형광까지 감돌고 있다.

윗둥이 잘려져 나갔음에도 이런 포스를 내뿜을 수 있다니.

캄보디아에서 본 '나무'들은 한국에서 보아온 '나무'와는 다르다. 내가 알고 있던 '나무'를 그려라 했을 때

그릴 법한 아기자기하고 다소곳한 생명체가 아니라, 껍데기 안쪽에서 뭔가 에너지가 꿈틀거리며 나갈 구멍만

찾고 있는 느낌, 강렬하고 동적인 느낌이 강하다.

아마도 이건 나무의 '발'이라 불러 마땅한 무엇인지도 모른다. 아무도 안 볼 때, 끄응~ 소리를 뱉으며 땅 속에

박아뒀던 발을 끄집어 쿠웅, 쿠웅 걷듯. 이런 이미지는 사실 '반지의 제왕'에서 구현됐댔다.

나무로 포위된 사원은, 가운뎃 부분만 위태로이 온전하다. 아직은. 알고 보니 저 위에 굴뚝처럼 뾰족하니

세워진 부분은 나중에 새로 쌓아올려진 부분이라 한다.

위태로이 세워진 탑 안에 서슴없이 들어가는 사람들, 나도 저 안을 들락날락 거렸지만 막상 내가 들어갈

때는 못 느끼던 위태로움이 멀찍이 거리를 두고 바라볼 때 비로소 생겨난다.

돌아나오는 길, 뜨거운 태양 아래 나른히 늘어져 있던 개가 귀뒤를 긁는다. 날씨가 더워서 그런지, 아님 착해서

그런지 좀처럼 짖지도 않고 지들끼리 쫓고 쫓기며 시끄럽게 놀지도 않는 개들이다.

다시 돌아 나오며, 이번엔 뱀 두마리, 뱀머리 열네개가 수호하는 통로 옆길로 나란히 뱀과 함께 걸었다.




여행 정보

주요 여행지

○ 카이로(Cairo)

- 이집트의 수도,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큰 도시로 오랜 역사와 다양한 볼거리로 세계 최고의 관광지 중 하나로 손꼽힘.

- 이집트 박물관 : 다수의 최고수준 이집트 고고학적 유물 보유.

- 카이로 타워 : 게지라선 남쪽의 나일강변에 위치.

- 모하메드 알리 사원 : 화려한 내부 장식과 거대한 돔이 특징.

○ 기자(Gizeh)

- 이집트 북동부에 위치한 카이로 교외 도시.

- 쿠푸왕 피라미드, 카프레왕 피라미드, 스핑크스 등이 위치함.

○ 룩소르(Luxor)

- 고대 이집트 신 왕국 시대 수도 테베의 남쪽 교외에 위치함.

- 왕가의 계곡 : 이집트 신왕국시대의 왕릉이 집중된 좁고 긴 골짜기로 왕들의 무덤 62개소가 발굴됨.

- 투탕카멘의 묘 : 세계 고고학적 발굴 중 가장 위대한 발견의 하나로 보존상태가 매우 양호함.

- 카르나크 : 이집트 상부 나일강 동쪽 강가에 있는 신전유적지.

- 라메세움 : 이집트 람세스 2세의 신전.

비자

○ 여행자의 경우 이집트 도착 시 공항 또는 항구에서 별도 구비서류 없이 30일 유효 비자를 받을 수 있으며, 수수료는 미화 15불임. 또한 사전에 주한 이집트 대사관에서도 받을 수 있음.(60불 상당)

출입국 심사

○ 여행 중 여권의 신원정보란(사진부착과 인적사항이 기록된 페이 지)이 훼손될 경우 입출국시 입출국 심사관으로부터 위․변조 여 권으로 오인 받아 입출국이 불허되거나, 대사관과의 확인과정에서 장시간 소요되는 등 어려움을 당할 수 있음. 따라서 여행 전에는 반드시 여권의 훼손여부를 확인하고 훼손된 경우 새 여권을 발급 받아야 함.

- 이집트 여행 중 부득이하게 훼손되었을 경우 사전에 대사관을 방 문하여 영사 서한을 발급받아 이집트 출국시 제출하거나 여행증명서를 발급받는 것이 안전함.

- 훼손 여권을 소지한 상태에서 이집트 여행 후 터키 등 제3국으로 입국하고자 할 경우, 그 곳 공항 당국에 의해 입국이 불허될 수도 있음.

비즈니스 참고사항

비즈니스 에티켓

○ 상대방을 부를 때는 존칭어를 사용하는 것이 좋고, 닥터, 엔지니어 의 호칭을 붙이고 전직 관리출신이라면 퇴직 당시 직명을 불러주 면 좋아함. 경제적 이해관계에 매우 민감하지만 인간관계나 정서 적인 면도 비즈니스 진행에 많은 영향을 주므로 가급적 상대방의 호감을 얻을 수 있는 에티켓이나 즐거운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이 좋음.

○ 약속잡기

- 일반적으로 약속을 잘 지키지 않는 편임. 통상 약속시간 보다 30 분에서 1시간 정도 기다리는 것이 일반적임.

- 문서보다는 전화를 통한 약속을 하는 편이고 확실히 약속을 정해 야 하는 경우, 이메일이나 전화보다는 팩스를 신뢰하는 경향이 있음.

○ 식사

- 인구의 90%가 무슬림이므로 돼지고기, 술 및 이슬람식으로 도살 되지 않은 고기는 먹지 않음. 양고기 전문점이나 고급 음식점으로 인식되고 있는 생선요리 전문점이 식사하기 무난한 장소임.

- 이집트인은 한식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며 일부 독실한 무슬림의 경우 술을 판매하는 음식점에 가지 않는 경향이 있으니, 이슬람식 고급 음식점이 무난함.

- 식사할 때 왼손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기본 에티켓임.

○ 선물

- 이집트인들은 선물을 매우 좋아하며 따라서 선물을 통해 상대방의 호감을 사고 상담에 임하면 그만큼 비즈니스가 성사될 확률이 높아짐. 그러나 여성에게만 따로 선물하는 행동은 오해의 소지가 있으므로 가급적 삼가야 함.

- 선호되는 선물은 보석, 시계 등 화려한 것이 좋고, 상류계층은 인삼의 우수성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인삼제품이면 무난함. 젊은 층 의 경우 한국산 MP3와 같은 소형 전자제품을 선호함.

○ 인사

- 처음 보는 경우는 일반적인 악수가 무난함. 신뢰 관계가 형성되고 친밀감을 느끼는 경우 볼 키스(서로 양쪽 볼을 살짝 터치하는 키스)를 함.

- 알라신 이외에 머리를 숙이지 않는 것이 종교적 관례이므로 한국 식의 머리를 숙이는 인사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느끼는 경향이 있으므로 눈을 마주 보며 가볍게 잡는 악수면 무난함.

○ 복장

- 일반 양복에 넥타이 정도면 무난함. 이집트 비즈니스맨의 경우 형식에 얽매이는 복장 보다는 노타이 차림의 복장을 선호하지만 고위직의 경우는 넥타이를 매는 경향이 있음. 상담 시에도 다른 중동국가에 비해 전통적인 이슬람 복장을 입는 경우는 거의 없음.

- 만일 바이어가 집에 초대하는 경우, 남녀를 불문하고 노출이 심한 복장을 피해야 함.

상관습

○ 유력바이어는 L/C 개설 등 대금결제 조건에 유연한 입장을 보이며 자기 품목의 세부 사항에 상당한 식견을 가지고 있으며 경쟁국의 가격, 품질, 시장 점유율 등 시장에 대한 전반적 지식이 깊음.

○ 대부분의 수입상은 수집 가능한 모든 가격 및 품질조건을 비교한 후에야 주문하며 계약체결 물량보다 적은 양을 수입함으로써 가격 할인 효과를 노리는 경우가 빈번하므로 주의를 요하며 계약 체결 시 신용장에 커버해야 할 내용을 상세히 삽입하는 것이 좋음.

○ 고 관세 품목인 경우 관세회피를 목적으로 대금 중 일부는 T/T로 하자고 제의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 반드시 T/T 대금을 먼저 수령하고 나머지 대금에 대해서는 L/C를 개설하도록 해야 함.

○ 일부 악덕 수입상은 L/C만 개설하여 생산개시 또는 선적하도록 한 후 T/T 대금은 후에 지불하겠다고 하고, 후에 각종 이유로 트집을 잡아 가격인하를 요구하는 경우가 있으며 T/T로 대금을 받았다 하더라도 잔액 분을 L/C개설된 후에 생산 또는 선적하도록 하는 것이 좋으며 외상거래는 절대 하지 말아야 함.

○ 무역대금 결제방식은 금액이 클 경우에는 L/C 100%가 대부분이 며 금액이 적을 경우에는 L/C 60%, T/T 등이 40%임.

- L/C의 경우 제3국 은행의 보증요청에 대해 현지 바이어나 은행은 협조하려고 하고 있으나 지방 중소은행에서 발행되는 L/C는 종종서류 하자를 빌미로 대금 지불을 안 하는 경우가 있으므로 이에 대비하여 반드시 제3국 유명은행을 통해 보증받도록 수입상을 종용해야 함.

- 현지은행의 신용도는 규모가 작은 은행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괜찮은 편임.

○ 이집트인들은 남을 믿지 못하는 습성이 강해 하부위임이 미약한 편이므로 보통 최종 결정을 할 때, 정부는 장관이, 회사에서는 사 장이 직접 시행하는 경우가 빈번함. 따라서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할 때는 고위인사를 만나는 것이 바람직함.

○ 일단 상담을 시작한 후에는 성급함이나 조급함을 상대방에게 보이 지 않도록 해야 함. 모든 결정이 최고위층에서 이루어지므로 상담 이나 계약의 이행속도가 느린 편이어서 우리의 사고방식으로는 상 대방을 의심하게 되고 나중에는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내 전체 계 약을 망치는 경우가 빈번하게 일어남.

현지 주요 연락처

대사관 정보

○ 주 이집트 한국 대사관

- 주소 : 3 Boulos Hanna St., Dokki, Cairo, A.R.E

- 전화 : 20-2-3761-1234∼7, 팩스 : 20-2-3761-1238

- E-mail : egypt@mofat.go.kr

- 홈페이지 : http://egy.mofat.go.kr

- 근무시간외 비상연락처: 20-12-211-4809, 20-12-227-5053,7

○ 근무시간

- 일∼목 : 08:30∼15:30(점심시간 : 12:00∼13:00)

- 금, 토 : 휴무

○ 영사협력원 연락처

- 김태엽 (룩소르 거주) : 20-10-550-7258(휴대전화)

- 이메일 : cears@hanmail.net



* 위의 자료는 외교통상부, KOTRA, 수출입은행, 한국무역협회, CIA 등의 자료를 기초로 작성되었습니다.





주상절리 가는 길, 잘 생긴 야자수들이 늘어서 있고, 오른쪽엔 현무암으로 쌓은 돌무덤들이 드문드문.

주상절리, 주상절리, 소리내어 발음을 해보면 왠지 '주상절리'라는 쫀득한 젤리가 입안에서 착착 감기는 느낌이다.

막상 녀석의 생김이란 울툭불툭, 육각형의 까칠하기 그지없는 기둥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으니, 이름하곤 별로

매칭률이 높진 않다.

주상절리가 어떻게 생겨난다더라, 뭐 세세한 건 다 까먹었지만 요는 그렇다. 바다 밑 땅속에서 부글부글 끓어 넘쳐나온

용암이 파앗, 하고 분출하는 순간 바닷물에 급속 냉각되면서 빳빳하니 굳어가며 육각형의 결정형태를 이룬다던가.

갠적인 생각으로는, 그런 거 모르고 보는 게 더 신기할 때가 있다.



작년 10월에 제주도 출장을 가서 머물렀던 펜션. 제주 컨벤션센터와 가까워서 좋기도 했지만, 일단 통나무로 이쁘게

지어진 2층짜리 펜션이 넘 이뻐서 좋았다. 더구나 2층은 뾰족한 세모꼴 천장이 그대로 살아있었다는.

펜션 자체도 이뻤지만, 앞마당에서 내려다 보이는 귤밭이 정말. 2008년 10월 말께의 노란 제주도 귤밭.

워낙 귤나무가 무성한 잎사귀들을 달고 있어서 무슨 정글 속에 노란 귤 한 박스쯤 쏟아 부어놓은 듯한 느낌.

신라호텔이었던가, 여기 전복죽이 아주 맛있다는 이야기에 죽 한사발씩 먹고 산책삼아 걸었던 호텔 정원.

수영장 바닥을 파란색으로 칠하는 건 참 멋진 아이디어였던 거다. 시원해 보이고, 맑아 보이고, 그래서

뛰어들고 싶게 만드는 파랑물이 일렁일렁. 옆에 있는 파라솔들 역시 매력도 아닌 '마력' 아이템.

신라호텔 뒷길 산책로가 그렇게 유명하다고 하길래, 그래? 이랬더니 여기에 바로 그 쉬리 마지막 장면을 찍은

벤치와 언덕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휘적휘적 걷던 중에 마주친 (징그러운) 잉어떼들.

옛날 이야기 중에 물에 빠진 사람을 물고기들이 수면으로 떠밀어올려 살았다거나, 적들에게 쫓기던 와중에

물고기들이 물위로 떠올라 다리를 만들어 주어 큰 강을 건널 수 있다거나. 이걸 보면 왠지 있음직한 일이다.

어디 한번 먹다 죽어봐라, 하는 심정으로 먹이를 뿌려댔을 거다 분명히.

그러고 보니 이 날도 꽤나 흐렸었다. 산책로를 따라 걷다보니 한걸음 한걸음 가까워지는 해안가. 깜장이 현무암

울타리를 넘어서는 초록빛 싱싱한 풀밭에 들꽃이 지천이었다.

이게 바로 '쉬리 벤치'. 한석규와 김윤진이 나란히 앉아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다가 어느 순간 When I dream..

그러고 보면 '쉬리'란 언젯적 작품이냐..1999년이었을 거다. 근데 쉬리의 영문명이 Swiri라는 건 방금 알았다.


일망무제의 바다, 터무니없이 큰 물웅덩이를 눈앞에 두고 있으면 왠지 막막해지기도 하고, 멍해지기도 하고, 그렇다.

해변을 따라 제주도에서 흔치 않을 모래사장이 곱게 이어져 있었다.

돌아오는 길엔 억새가 깃발처럼 나부꼈다. 호텔 시설을 굳이 사용하지 않고도, 단지 산책로를 걷고 쉬리 벤치에

한번 앉아 보는 것도 괜찮다 한다. 지나는 길에 잠깐 차 세우고 걸어봄직한, 짧막하지만 꽤나 이뿐 산책로.




짧은 제주 일정의 마지막 경유지는 바로, 성산 일출봉. 대학교 일학년 때 친구들과 자전거로 제주도를 일주할 때

멀리서부터 그 봉우리를 보고는 다들 미친듯이 페달을 밟았던 기억이 생생한 곳이다. 이번에는 일출봉 바라보고

가던 길에 배가 고파 살짝 무슨무슨 맛집, 어디 프로그램 소개 맛집, 요런 데 들러서 가볍게 식사를 했다.

그 식당 앞에 무질서하게 쌓아올려진 듯 보이는 돌담, 바람이 숭숭 잘도 통하게 쌓아놨다.

매표소 옆의 계랸색 매점 건물을 지나 눈을 높이면, 웅장한 맛을 풍기는 일출봉이 우뚝하다.

제주 지역방송들이 방송 중간중간에 간지 끼워넣듯 껴넣는 이미지, 성산 일출봉에 해뜨는 모습이라지만 사실 여기서

해뜨는 건 번번이 못 보고 지나갔었다. 가족들과 어렸을 적 왔을 때는 아예 요앞에서 묵으며 해를 기다렸는데 날이

흐려서 못 봤었고, 다른 날은 여기에서 일출이나 일몰을 기다릴 타이밍이 되지 못했더랬다.

성산봉 오르는 길목, 초록빛 싱그러운 초원 위에는 잘 생긴 갈색 말 몇 마리가 묶인 채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뿐 아니라 제주도를 돌다 보면 드문드문 승마 초보자 환영, 말타볼 수 있는 곳, 이런 간판을 많이 볼 수 있다.

초원 같은 평지, 살풋 각도가 느껴지는 평지를 지나 본격적으로 등산 시작. 일출봉 어귀에 있던 매점에는 중국어가

떡하니 적혀있었다. 샨샹메이요우슈웨이~. 일출봉 오른 후엔 물 파는 데가 없으니 여기서 사란 얘기. 그러고 보면

제주도에서 중국인 단체관광객은 눈에 참 많이 띈다.

일출봉 가는 길이 그때도 이렇게 잘 닦여 있었던가, 처음부터 끝까지 차곡차곡 계단이 마련되어 있었다. 그다지 길지

않고 힘들지도 않은 코스, 지레 겁먹었던 동생님도 어느새 생기발랄해졌다. 왕복 50분이면 넉넉히 보고 돌아올 듯.

일출봉에 올라서서 바람으로 땀을 식히는데, 좀 곤란하다. 커다란 분화구 모양의 일출봉. 사진을 찍을 만큼의 적당한
 
거리를 허용치 않은 채 나와 방문자들을 덥썩 안아 버렸다. 제법 까끌하면서도 부드러운 질감이 느껴지는 초록빛

커버가 분화구를 매끈하게 메우고 있었다. 현무암에 잔뜩 슬어있던 이끼같기도 하고, 스프 위에 좀 과하게 뿌려놓은

아스파라거스 가루 같기도 하다.
 
안개 자욱한 분화구 너머 마을이 희끄무레하게 보이고, 분화구의 오톨도톨한 가장자리가 험준한 산의 능선이나

백두대간처럼 쭉 이어진 산맥처럼 보인다. 파도치듯 쉼없이 달려나가는 백두대간의 미니어쳐랄까. 아님 우유 광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 우윳방울이 낙하한 직후의 왕관같은 흔적과도 흡사하다. 천분의 일초 쯤으로 찍어올린 장면,

튀어오른 물방울들은 전부 어디로 가버린 걸까.

정상에서 굽어본 중간 쉼터. 사람들이 조그만 게 개미같고, 나무들은 딴딴하고 속이 찰진 파슬리나 브로콜리 같다.

멀리 보이는 마을과..저건 호수인 척 하는 바다일까. 그러고 보니 이날 날씨가 하루종일 흐린 편이었기에

더위도 덜했고, 땀도 그다지 많이 나지는 않았던 거 같다. 바람이 찍혀 나온 사진.

성산 일출봉에 올라 사람들이 밟을 수 있는 영역이란 딱 여기까지다. 울타리가 설치된 구간은, 커다란 분화구의

오분지일에도 미치지 못할 만큼의 공간만 확보해 주었을 따름이다. 사람들은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나름

최선의 뷰를 잡아보려 애쓰지만, 어쩌면 이 곳의 풍광을 오롯이 감상하려면 열기구나 헬리콥터가 필요하지

않나 싶다. 게다가 맨눈보다도 못한 카메라로는 눈으로 감상하는 풍경의 절반도 담지 못하겠더라. 적어도 나는.

내려가는 길, 그러고 보니 내게 남아있던 일출봉의 이미지란 단지 그 뾰족한 화구만의 것은 아니었다. 거기까지

이르는 길에 푹신해보이도록 깔려있는 녹색의 잔디밭, 언덕이 그려내는 아름다운 곡선, 그리고 그 너머에서

산산이 부서져 있는 햇살, 그 햇살이 둥둥 표류하는 바다.

어라, 한쪽에는 모터보트 선착장도 생겼나보다. 이런 거 못 봤던 거 같은데. 계속 과거의 기억을 끄집어 내어 굳이

대조해보게 되는 건 왤까. 있는 그대로, 보이는 그대로 느끼려고 애쓰면서도, 막상 쉽지 않다. 어쨌거나, 혹시

모터보트 추격신이 필요하거나 해안 총격장면을 찍어야 하는 감독이라면 한번 추천해주고 싶긴 하다.

내려오는 길 어딘가에서부터 사람들이 다듬어진 돌계단길을 버리고 잔디밭으로 걷기 시작했다. 사실 보폭이 그다지

고려되지 않은 채 만들어진 계단인지라 계속 왼쪽 다리로 계단을 내려서게 되거나, 혹은 반발짝을 마저 걸어야 하는

등 좀 불편하고 힘들었다. 푹신푹신, 경사가 제법 되는 길인데도 사방을 둘러보며 걸을 여유가 생겼다. 덩달아

여유로와보이는 저너머 '노인과 말'.

늘 생각하지만 제주도에 가서 성산 일출봉은 왠만함 꼭 들러야 하는 곳이 아닐까 싶다. 단순히 봉우리 하나

등산하듯 오르내리는 게 아니라, 그 봉우리 앞에 쫙 펼쳐져 있는 이런 풍경들, 이렇게 이쁜 길들, 그것들은

'성산 일출봉'이란 이름과 떼어놓을 수 없는 매력적인 공간들이지 싶다. 일출봉이 덮고 있는 무릎깔개처럼

안온하고 포근한 느낌을 전해주는 그 보들보들하고 싱싱한 녹색. 그러고 보니 언젠가 한번 구경갔던 골프장의

인공조경과 비견할 만한 굴곡에 녹색이다.


일단 올해 다녀온 제주도 여행기는 여기서 끝~*


제주#1. 제주올레 7코스, 외돌개를 끼고 걷기 시작하다.
제주#2. 꽃길, 찻길, 논두렁길, 바닷가길을 넘어 건너.
제주#3. 철조망에서 자유로운 제주도의 해안..?
제주#4. 남/녀 노천탕에 사람은 없고 조개껍데기만.
제주#5. 올레길 7코스의 바닷가 우체국.
제주#6. 강정포구 가는 길(올레길 7코스)
제주#7. 올레길 7코스 vs 해군기지.
제주#8. 월평포구에서 끝난 올레길 7코스.
제주#9. '업'에서 나왔던 커다란 새를 찾아내다.(아프리카 박물관)
제주#10. 오설록녹차박물관에서 '현미녹차'를 생각하다.
제주#11. '식상한' 천지연보다 '제주감귤와인'이 궁금했다.
제주#12. 이름이 왜 5.16도로일까.
제주#13. 숲다운 숲, 비자림 거닐며 산림욕 한번 어떨지.



비자림, 어렸을 적 바둑을 잠깐 배웠을 때 적당한 두께의 비자나무 바둑판이 최고급이라는 풍월을 들었던 거 빼곤,

비자나무라는 이름 자체가 낯설기만 했다. 제주도의 서북쪽께, 제주시와 성산일출봉 중간쯤에 있는 비자림은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는 대단히 희귀한 비자나무 숲이라고 한다.

티켓을 받아들고 이거 뭐야, 했다. 왠지 글씨체가 북한에서 많이 쓸 법한 격정적인 궁서체여서, 전반적인 티켓의

색감도 왠지 남한보다는 북한에서 많이 쓸 법한 느낌? 개성공단에 갔을 때 보았던 한글 간판들의 궁서체와 꽨

흡사하다 싶다. (이런 글 쓰면 조만간 티켓 디자인 바뀌는 거 아닐까 몰라. 근데 특징적이란 얘기지 절대 싫다거나

혹은 '표 디자이너'가 빨갱이 아냐, 란 식의 이야길 하고 싶은 건 아니다. 아 이 기나긴 자기검열과 지레 핑계대기)

매표소에서부터 4-50분 걸으면 비자림을 한바퀴 여유있게 걷고 나올 시간이 된다고 한다.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띄었던 하트 모양 뚫려 있는 바위와 잘 조성된 정원. 연인끼리 간다면 하트를 마주한 채 양쪽에 설 법한,

전형적인 포토존이다.

비자나무의 이름은, 잎의 뻗어나간 생김생김이 한자 아닐 비(非)자(字) 닮았다고 해서 비자(非字)나무라고 한다.

은행열매랑 비슷하게 생긴 누런 빛의 열매가 투둑투둑 떨어져 있었는데, 은행열매의 고약한 똥내와도 다르고

살짝 시큼한 느낌, 혹은 비린내가 풍겼다. 왜 오존발생기에 코를 박으면 맡을 수 있는 그런 비릿한 냄새같기도 하고.

돌에 잔뜩 끼어있는 이끼는 볼 때마다 신기하다. 대체 저 돌멩이에 빨아먹을 양분이 뭐가 있다고.

'숲'이란 건 왠지 생소하다. 무럭무럭 자라난 나무들이 이렇게 하늘을 가리울 만큼 커진 채 무리를 이루고 있는 걸

보기가 쉽지 않은 탓이기도 할 거고, 숲이라고 불릴 만큼 너른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나무들을 보기도 쉽지 않아서다.

그런 점에서 비자림은 꽤나 숲다운 숲이었다. 울창하고, 푸르고, 아늑한 느낌에다 살짝 비릿하지만 상쾌한 내음까지.

연리지. 아마 이 단어를 대중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건 최지우가 주연을 맡았던 동명의 영화보다도, 각종 퀴즈프로에서

심심치 않게 나왔던 덕분이 아닐까 싶다. "이 비자나무에 영원한 사랑을 빌어보세요."

사진이 좀 흔들렸지만, 한때 나의 드림카였던 푸조 시리즈. 무려 '푸조나무'라는 나무가 있어서 신기해서 한방.

이름이 무려 "새천년 비자나무". 2001년인가, 당시 수령이 830여세의 이 나무를 두고, 비자림에서 니가 짱먹으라며

붙여준 이름이란다. 당시 '새천년'이란 단어가 유행하긴 했지만 나무에도 이런 악취미한 작명이라니. 뭔가

비자림을 관장하는 숲의 신이 깃들어있는 듯한 포스를 쫌 말아먹는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내려오는 길, 비자림을 걷는 사람들이 발을 씻거나 신발을 씻고 갈 수 있도록 마련해둔 수도꼭지도 범상찮다.

종종 신발을 벗어들고 맨발로 걷는 사람들도 볼 수 있었는데, 따라하고 싶은 맘이 쿡쿡 솟아났지만 참았다.

'새천년 비자나무'를 기점으로 올라가는 길과 내려가는 길이 다른데, 그곳까지 걸어들어가는 길이 나무가 잔뜩

우거진 숲길이었다면, 그곳에서 걸어나오는 길은 잘 정돈된 산책로 같았다.

그림같은 길. 걷기도 편하고. 현무암 돌담길을 옆에 끼고, 황토빛 흙길에 떨궈진 비자열매들을 즈려밟으며,

내딛는 걸음걸음 뚝뚝 끊어져 내린 햇볕들과 희롱하다. 약간의 저항감이 느껴지던 열매가 터질 때 퍼지는

비자열매의 향기란.

이상하다 싶도록 심심찮게 등장하는 이 사람. 누구냐 넌. 안 올리려다 배경이 워낙 이뻐서.

걷는 속도로 사진찍기. 멈춰선 사진엔 왠지 직접 걸으며 느끼는 실감이 덜하겠다 싶어서.

거의 입구까지 돌아나온 길, 한 쪽에는 벼락맞은 비자나무가 있다.

하트무늬로 구멍뚫린 돌 옆도 다시 지나고, 저거 자연적으로 생긴 걸까, 그렇담 정말 멋진데.

이제 제주도에서 꼭 빼놓을 수 없는 마지막 장소만 남겨두고, 비자림을 떠났다. 아무래도 밤비행기를 타기까지

하루코스는 정말 잘 짠 거 같다. 아침부터 오설록녹차박물관-아프리카박물관-서귀포시 점심-천지연폭포-

-비자림-그리고 바로 그곳-제주시 저녁까지.




제주도에 갈 때마다 드라이브 코스로 잊지 않는 5.16도로. 길 양쪽으로 길고 잘생긴 나무들이 쭉쭉 뻗어있다.

이야~ 여기 진짜 좋다, 란 탄성이 한 세네번 터지고 난 즈음이면 어김없이 길 한켠에 차를 대놓고 나와서

주위를 거니는 사람들을 마주치게 된다.

길도 적당히 꼬불꼬불거려서 운전하는 재미도 있고, 온통 양치식물이나 덩굴이 휘감긴 반듯한 줄기들을 보자면

어딘가 원시림의 냄새도 풍기고.

근데 왜, 이 멋진 도로의 이름이 5.16인 걸까. 이름의 유래도 모르겠고, 그런 무성의한 숫자이름 따위보다 좀더

이뿌게 이름을 짓는 게 어떨까 싶은데. 예전에 '블랙홀'이란 헤비메탈그룹이 이런 노래를 부른 적이 있다.

"815, 419, 516, 1212, 518, 629, 그리고 성수대교~" 운운하며 나가는 노래였는데, 5.16이란 숫자 혹은 날짜가

갖는 애초 의미가 무엇이든 대부분의 사람들은 516도로에서 박정희의 5.16 쿠데타(누군가에겐 혁명)를 생각하지

않을까. 이 도로를 박정희 쿠데타 기념으로 착공한 건 아닐 텐데. 설마 그런건가..ㅡㅡ


차제에 이름 공모라도 해보는 게 어떨지. 이 아름다운 길에 걸맞는 좀더 이쁜 이름이 있을 거 같은데.

주차장 한 켠에서 뒤뚱맞게 어기적대던 오리. 어디선가는 개 대신 오리더러 집을 지키라 시킨다던데, 이 녀석도

목청은 타고 났다. 꽥꽥 꾸엑 그엑 구웩~ 좀만 있음 피토하며 득음하시겠다.

실컷들 사랑하라 가슴이 있을 때, 죽은 뒤에도 네 사랑 간직할 가슴 있겠니.

두 가지다. 가슴이 무슨 밥사발도 아니고 거기에 사랑을 무덤밥모냥 퍼담는 것도 아닐진대, 그리고 '사랑하라'는
 
여리고 고운 메시지를 이렇게 반말투로 해서야 되겠니.

그 옆에 천지호. 윙버스였던가, 에서 보았던 천지연의 대표 이미지였던 거 같은데 이 돛의 그림은.

천지연 폭포를 보러 가는 길은 두 갈래, 보통 오른쪽으로 걸어들어가 폭포를 보고는 왼쪽길로 돌아나온다. 몇 번쯤

제주도 올 때마다 들렀던 거 같은데, 좀체 기억이 안나신다는 동생님의 기억상실증 치유를 위해 다시 간 길이었다.

구멍 송송난 현무암 재질의 돌하르방, 최근 모아이석상의 모자를 어떻게 씌웠는지가 과학적으로 입증되었다던가,

서태지의 공연이 보고 싶어, 왠지 방구석에 기대어 앉아 두 무릎을 잔뜩 끌어당긴 채 움츠러든 모습 같지 않나..

라는 식으로 마구 자유연상을 뻗게 해준 돌하르방들.

드디어 천지연 폭포, 온통 대기를 젖게 만드는 폭포의 포스도, 엠씨스퀘어나 아이도저처럼 규칙적인 음향을 내며

떨어지는 폭포수의 호쾌한 소리도, 동생님의 기억상실증을 치유하진 못했다. 다만 이제 다시 기억을 꾹꾹 눌러

담았을 테니 됐다.

여름에 수량이 좀더 많았었을 때 왔던가, 내 기억에 비해보면 조금 수량이 줄은 거 같기도 하다.

천지연 폭포 앞에서 이리저리 사진을 찍고 돌아서는 길, 다른 때에도 그랬듯 폭포에 최대한 가깝게 접근해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무리무리 자리잡고 있었고, 친구끼리 여행온 듯한 유쾌한 녀석들 몇몇은 폭포수로 가글하는

사진 연출에 여념이 없다. 왜 그런 거, 피라밋을 손끝으로 잡아올리고 에펠탑을 두손으로 미는 사진처럼.

삼복이 온다고 했다. 거북이와 원앙과 또 하나가...뭐였더라. 장수, 금슬, 또 하나는 백방 출세의 아이콘이었을 텐데,

여튼 다리 아래 저들이 붙잡고 있는 바구니 속에 동전을 넣는데 성공하면 출세도 하고 사랑도 지키며 오래 살 수

있다는 이야기. 원래 안 그런데 단번에 성공했다. 이 날을 기점으로 인생이 바뀌었어, 라고 훗날 말하게 될까.ㅋ

천지연 폭포에서 돌아나오는 길에 저 절벽 어딘가를 잘 보면 사람 얼굴이 나타난다던가. 기본적으로 너무 어둡게

찍은 탓도 있지만, 맨눈으로 봐도 난 잘 모르겠더라. 차라리 그 커다란 바위 병풍 위에 우거진 나무들의 짙푸른

녹음이 와닿았다.

천지연 물줄기가 돌틈을 타고 내려와 바다로 흐르는 길.

천지연 물줄기가 돌틈을 타고 내려와 바다로 흐르는 길을 찍는 사람이 찍힌 사진.

감귤초콜렛은 이미 익숙해졌을 만큼 성공한, 안정된 상품인 거고, 새롭게 등장한 응용상품들이 눈에 띄었다.

제주감귤주, 감귤와인, 백년초초콜렛, 감귤크런치초콜렛...감귤와인이 정말 궁금했다. 복분자와인이니 뭐니

많지만 늘 궁금했던 건, '와인'이란 단어가 애초에 '포도로 만들어진 것'이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건 아닌가?

감귤와인이 아니라 감귤(과실)주 정도가 맞을 거 같은데. 그런 건 차치하고 일단 맛이 너무너무 궁금했지만

운전을 해야 했어서 안타깝게도 패스.

딱 이거다. 돌하루방 중에 가끔 찐따같은 포즈와 표정을 가진 것들이 있다고 느꼈었는데, 딱 이거다.

이녀석의 속마음. "흥, 아무리 옆에서 아줌마들이 날 떼어놓고 자기들끼리 좋다고 웃으며 떠들고 있어도 괜찮아.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내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보이는 건 한라산의 용암이 얼마나 뜨거웠는지 기억하기

때문일 뿐이고, 두무릎을 바싹 땡겨 안은 채 안쓰러워 보이는 포즈를 굳이 잡고 있는 건 그저 무릎이 시려웠을

뿐이야. 기억할지 모르지만 난 제주 할방/하루방이라구. 건방지게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젊은 것들이 말야."


미안해 할방...풋.

* 천지연 티켓. 티켓에 나온 사진이나 지금이나 별반 유량의 차이는 눈에 안 띈다. 원래 이런 거였나.








오설록 녹차박물관, 아침부터 대형관광버스로 꾸역꾸역 관광객들을 토해내는 걸 보니 확실히 여긴 뜬 곳이다.

그럴 만도 한 게 녹차를 사업적으로 재배해 보겠다고 나선 한 기업 오너의 열정과 의지로 나름의 성공을 구가하고

있는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곳이다. 녹차라는 아이템을 세련되게 다듬고 새로운 상품을 고안해 내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한국의 녹차 문화도 좀더 본격화되었지 않나 싶다. 사실상 곡물차로 분류되어야 할 '현미녹차'가

고소해서 좋다던 입맛을 나름 다양하게 변화시켜 주었으니 말이다.

이 분이 바로 녹차 쪽으로 사업을 추진하라 명령을 내리신 분, 넓은 잔디밭에 서서 흡족하게 바라보는 쪽에는

꾸불꾸불 녹차밭이 웅숭그리고 있었다. 녹차밭 사진 한장 찍어줬어야 하는데, 아침부터 운전하느라 정신없어서 패스.

참...녹차박물관이라고 가서, 녹차밭도 아니고 풀떼기 잔디밭에 누군가 벗어놓고 간 꼬맹이 신발을 좋다고

찍고 있다. 개나리 노란 꽃그늘 아래 가지런히 놓여있는 꼬까신 하나~ 아기는 살짝 신벗어놓고 맨발로 살금살금

나들이갔나, 가지런히 놓여있는 꼬까신 하나, 꼬까신 하~ 나아아~ 고무줄 하던 기억을 뻐끔 퍼올려준 신발.

고무줄 놀이 나름 적잖이 했었던가, 나..?

아침에 비가 살짝 와서 걱정했는데, 다행히 비는 그쳤고, 운좋게도 공기 중의 O2가 물방울에 실컷 두들겨맞고선

훨씬 청량해졌다. 현미녹차 티백을 어느순간부터 안 먹게 된 입맛으로, 박물관 내에서 무료로 시음시켜주는

초록빛 일렁이는 세작 녹차 한잔 마시고 나왔다.




업, 근래 봤던 영화 중에 꽤나 인상 깊이 남았던 영화다. ([업] Adventure is ubiquitous.) 이 영화에서 등장하는

고집스런 사각턱 할아버지나 통통한 동양계 꼬맹이 말고, 저 커다랗고 길다란 새를 기억하는지?

아마도 영화 속에서 할아버지가 집을 날렸던 곳은 남미 어디메쯤이었던 듯 하지만, 사실 이 새는 아프리카에

살고 있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짠~* (왠지 익숙한 이 단어, 짠~*) 똑같지 않은가, 강인하게 쭉 뻗은 긴 다리, 두껍고 강력해 보이는 부리, 전체적으로

타조와 비슷할 만큼 대형 몸집을 갖고 있으면서도 슬림하게 뻗어있는 허리와 둔부까지. 깃털까지 꼽아놓았다면 아마

더더욱 흡사하지 않았을까 싶다. 알록달록 빛깔이 선명한 깃털들로. 아프리카박물관엔 이런 조각상이 아주 많다.

제주도 컨벤션 센터와 마주보고 있는 아프리카 박물관, '서아프리카 말리공화국에 소재한 젠네 대사원'을 토대로

설계하였다는 박물관의 외관이 실물을 보고 싶다는 욕구를 마구 자극한다. 무려 세계 최대의 진흙건축물이랜다.

마당 한 켠에 분방하게 전시되어 있는 전통 가면들. 왠지 하늘로 손을 쭉쭉 뻗은 나무들조차 아프리카스럽다.

정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마주하게 되는 거대한 새의 조각상. 딱 보자마자, '업'에서 벌어지는 탐험의 중심에 있던

그 새가 너로구나, 반가웠다. "코뿔새 상"이랜다. 업에 나왔던 그 새의 이름을 이제야 알겠다. "코뿔새"다.

"코뿔새는 아프리카의 신화적 동물로 반투어로는 코몬도(Komondo)라고 불린다. 코몬도는 양성의 동물이며, 크기가 30m가 넘는다고 전해진다. 가뭄에 시달릴 때, 하늘에 비를 내려 주기도 하고 죽은자의 영혼을 사후세계로 인도하는 죽음의 사신과도 같은 역할을 한다. 또한 나쁜 기운과 질병으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해 주는 수호신 역할을 한다." (아프리카 박물관 홈페이지 참조)

아프리카박물관은 기대 이상으로 볼 거리도 많았다. 애초에는 하루 세차례, 11:30. 14:30, 17:30에 열린다는 아프리카

전통 공연을 위주로 보고 나머지 소장품들은 설렁설렁 보면 보고 말면 말자는 식이었는데, 소장품들도 풍부하고

재미난 것들도 꽤나 많았다. 아, 이런 아프리카 전통의 S라인 조각상을 봤다고 그러는 건 아니다.

S라인이 제대로 안 살아나 각도를 바꿔 다시 한번(이라고 쓰고 실은 여러번, 이라 속으로 생각한다) 찍는 열의를

보이기는 했지만, 정말 이 조각상이 그렇게 인상적이었던 건 아니다. 단지 아프리카에도 이렇게 수준높은 몸매...

아니, 이렇게 수준높은 조각예술이 발달했었나, 이렇게 육감적인 표현이 가능했었나 신기했을 따름.


어쩌면 마치 우리가 고대의 유물을 두고 다산/순산을 기원했다느니 하는 설명을 아프리카 예술에 그대로 대입하는

것도 무리가 있을지 모른다. 그들 나름의 미감과 미적 쾌감이 발전해 왔을 텐데, 그들은 고대인이 아니고 아프리카

역시 21세기의 아프리카 땅이란 측면을 넘 무시해서는 안 되지 않을까 싶다.

유리창 너머 보존되는 조각상이라 사진이 안 나왔다. 눈으로 보면 무척이나 섬뜩하고 강렬한 조각상인데.

해서 아프리카박물관 홈피에서 업어온 그림 첨부.
콩고의 주술사가, 부족의 룰을 어긴 사람을 선별해서 벌을 줄 때 사용한 조각상이라 한다. 온통 쇠못이 고슴도치처럼

박혀서는, 냉막한 표정으로 날카로운 송곳을 집어들고 있는 게 처키보다 섬뜩하다. 어찌 보면 단순하다. 사람이

사람에게 주었던 상처, 아픔을 눈에 보이게 하는 게, 치유를 위한 첫걸음인지도 모른다. 저 살벌한 못들처럼.

주술사가 해결할 사건 수가 늘어갈수록 쇠못도 하나씩 늘겠지만, 그래도 사람이 살면서 타인에게 박아넣는 못들보단

훨씬 적은 수일 거다. 만약 그게 저 못들처럼 대가리를 삐죽대며 몸에 박힌 게 보인다면. 으..

신기하게도, '용'이란 존재를 불러내는 상상력은 만국 공통인 듯 싶다. 서양의 용, 동양의 용, 그리고 아프리카의 용.

아프리카의 용은 왠지 짧막하고 가분수인 게, 귀엽다. 이 녀석 어쩜 거대용의 아바타일지도.

시간 맞춰 들어선 지하의 공연장. 자그마한 공연장이지만 사람이 꽉 찬 게 더 놀랍다. 아프리카박물관을 강추하는

온갖 블로그나 까페, 구전의 효과란 말인가. 나 역시 그 구전에 기꺼이 합류하기로 맘먹고 블로그 중이지만.

세네갈에서 왔다는 공연팀이 등장했다. 그 중에서도 열정적인 댄스와 노래-랄까 격한 허밍이랄까-를 선보였던

아리따운 검은 아가씨. 반질하고 매끈한 피부가 꼭 새까맣고 단단한 흑단목을 연상케 했다.

북을 치는 아저씨 둘은, 박자를 마음대로 늘였다 줄였다 깨고 잇고, 굉장히 멋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마주친 수준높고 열정적인 공연이라니. 물론 그 와중에도 뽁뽁이 신발신고 뒤에서 뛰어다니는 아가의 부모는

어디갔는지 보이지도 않았고, 조금 더 큰 아이들은 아무런 제재나 부모의 관리없이 통로를 방황하고 있었지만.

꼭 '국립문화원'이니 '예술의 전당'이니, 돈쳐바른 곳에서만 조용히 예의를 지켜야 하는 건 아니란 말이다.

이제 둘러보고 나가는 길, 코뿔소 새의 휘영청 만곡한 부리가 너무 멋지다. 죽음의 사신이지 수호신이라는 신화적

존재, 코뿔소 새. 근데, 머리 위의 갈기털은..누가 파마를 시켜놓은 건가.

아프리카 박물관의 센스는, 화장실 표지에서도 빛을 발했다. 이런 자그마한 것 하나에서도 그 공간의 이미지와

특성을 드러낼 수 있을 만큼의 섬세함이 난 좋다.

기념품점에서 맞닥뜨린 No.5 던가.(일본만화 '원피스'를 보시는 분이라면 누구나 알 듯.ㅋㅋ) 기린기린열매를 먹은

그가 열심히 단련하여 네모반듯한 기린 전사가 되는 눈물없인 볼 수 없는 감동의 대 서사시. 딱 그녀석이 생각났다.

왠지 우울한 표정의 원숭이, 조삼모사에 낚인 건 아닌지 염려스럽다. 호랑이는 왠지 입에다가 타이거마스크를

하고 있는 느낌이고, 또다시 등장한 기린은 아직 완성체가 되기 이전의 모습.

티켓 값이 그다지 싼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제주도의  지원으로 10% 할인이 적용된다고 한다. 참고로 아침일찍

갔다가 허탕쳤음을 호소해도 추가 할인은 없다.









7코스는 외돌개에서 시작해 월평포구에서 끝난다. 그리고 8코스는 월평포구에서 다시 시작하며, 그런 식으로 총13개

올레길이 제주도 남해안을 쭉 잇고 있다. 15.1킬로의 7코스 구간, 놀멍 쉬멍 걸으멍 했더니 반나절이 훌쩍 넘는다.

7코스의 마지막, 월평포구. 천천히 걸었던 어쨌던 코스를 마쳐서 시원하다는 느낌보다는 아쉬움이 강했다.

월평에서부터 거꾸로 7코스를 걸어가는 사람들, 어쩜 그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초반에 강정마을의 을씨년스런

분위기를 참기만 한다면 이후로는 쭉 즐거울 테니. 뭐, 고기구울 때 제일 노릇노릇 맛난 한 점을 먼저 먹을 건지

아껴뒀다 마지막에 먹을 건지의 차이.

바다 한가운데 부표처럼 떠있는 게 뭔가 했더니, 사람이다. 카메라로 잔뜩 땡겨서 봤더니 낚시 중이신 듯. 근데

뭐에 의탁한 건지 모르겠지만 위험하지 않을까 싶다.

이제 다시, 7코스 시작점쯤에 있는 숙소로 돌아가는 길. 차로 달리니 금방인 것을. 어떻게 보면 멍청한 짓이라겠지만,

슝- 달리다 놓치기 쉬운 풍경들 하나하나에 이야기와 추억들을 촘촘이 링크걸어 놨으니 됐다.

펜션에 도착해서 쉬엄쉬엄 이쁜 구석구석을 돌아봤다. 잘 꾸며져 있던 정원의 꽃도 보고, 개랑도 놀고.

지금 제주도의 모습이 이런 거 아닐까. 오랜 이미지, 현무암 돌하루방, 전통문의 상징 위에다 뭔가 새롭고 깔끔한

이미지를 덧대고 변형시키는 중. 올레길 개척과 커다란 반향이 그 단적인 사례일 듯 하다.

펜션 뒤쪽으로 놓인 그네의자.

털썩 주저앉았다가 주르르 미끄러져 누워버리고는, 흔들흔들 뒤척이며 셔터를 눌렀다.

이번엔 벌레먹은 능소화. 그러고 보니 "벌레먹은"이란 표현은 중의적일 수 있겠다. 벌레가 먹은, 혹은 벌레를 먹은.

여튼 이건 여리디여린 얄포름한 꽃잎을 갉아먹는 갈빛 벌레.

짠~*

강정천을 뒤로 하고 얼마 남지 않은 7코스를 계속 걷기 시작했다. 올레길 공식홈페이지(www.jejuolle.org)에서

뽑은 지도에 따르자면 남은 포스트는, 강정포구, 알강정을 지나 월평포구까지 총 세개밖에 안 남았다.

8코스를 전날 걸었던 엄마와 여동생이 흥분하며 했던 말들에 따르자면, 8코스에는 이런 쉼터나 매점이 거의 없다한다.

코스도 7코스보다 길고 더 힘들었다고는 하는데, 7코스만큼이나 8코스도 좋았다고.

바다가 보이지 않는 길로 들어섰다. 그러고 보니 꽤 오랜만이다. 그리고 나서 바로 나타나는 소철 '농장'.

비닐하우스 안에서 무럭무럭 자라나는 어린 종묘들. 뭔지 궁금해서 한참 봤지만, 짧막한 내 식물학적 지식으론

도무지 모르겠다. 넓적한 건 잎이요, 쭉 뻗은 건 줄기랄까.

비닐하우스 단지 내에서 길을 잃을세라, 바닥에 큼지막하게 그려놓은 올레길 화살표. 자세히 보면 페인트칠 직후에

차바퀴가 밟고 지나간 듯 뽈, 뽈, 뽈 페인트 자국이 남아 있다.

온통 시뻘겋게 녹슬어버린 물탱크, 도로까지 무성하게 뻗어나온 하룻강아지녀석 풀떼기들. 왠지 방금까지 걷던

인적없어도 넉넉하고 여유롭던 바닷길과는 영 딴판으로 황량하고, 뭔가 괴괴한 느낌이다.

그런 길인데, 비닐하우스 안은 또 딴판이다. 온통 꽃밭 가득.

이것은 꽃. 아까 미처 영글기 전의 종묘가 "넓적한 건 잎이요, 쭉 뻗은 건 줄기"랬다면, 꽃에 대해서도 비슷하다.

벌어진 건 꽃잎이요 뭉쳐있는 건 암수술이랄까. 아...너무 무식하다.

그렇게, 황량하고 살짝 불안하기까지한 느낌이 감도는 길 옆에 무덕무덕 무더기로 피어난 꽃들을 위로삼아

강정포구로 가는 길이다.




서건도를 지나 다음 기점, 풍림리조트로 가는 길이다. 어제 신문이었던가, "올레길 싸우멍 다투멍(서울신문, 9/16)에

나왔듯 올레길을 둘러싼 이야기가 온통 찬사 일색인 건 아니다. 걷기 좋게 흙길로 포장하려 하는 측과 먼지나고

지저분하다고 싫다는 땅주인 측, 그리고 사유지 통행을 더이상 두고 볼 수 없다며 올레길 폐쇄까지 이르기도 한다.

"올레길 가운데 가장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제7코스 돔베낭골과 야자수나무숲 길 등 일부 코스는 최근 땅 주인과 마찰을 빚은 끝에 조만간 폐쇄될 전망이다. 올레꾼들은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다."

이런...사유지에 대한 적정 수준의 보상과 합리적인 타협점을 찾았으면 좋겠다. 다녀온지 며칠 되었다고 폐쇄 이야기가.

제주도에서 흘러내리는 민물이 바다와 만나는 지점, 제주도민들의 피서지로 각광을 받는 곳이라 한다.

정오가 가까워져서인지, 파도가 조금씩 거칠어지는 것 같기도 하다. 어디선가 해가 높을수록 파도가 거칠단 '속설'을

읽은 적이 있는 것 같아서, 아마 그래서 거칠어보이는지도 모르겠다.

옛날 세탁기가 한참 윙윙 돌 때 슬쩍 열어보면, 안전장치가 작동해서 내부에서 정신없이 돌던 빨래통이 금세

멈추곤 했다. 무슨 먹음직스러운 크림을 떠내듯 손가락 끝으로 풍성하게 떠올리던 비누거품. 딱 저렇게 생겼었다.

앞에서 걷던 엄마가 문득 저 돌을 가리켰다. 저거 무슨 환상속의 동물 같지 않냐고. 황소가 콧김 내뿜는 거 같기도,

혹은 용이 입을 히죽 벌리고 지긋이 응시하는 것 같기도 하지 않냐는. 난 두꺼비가 떠올랐을 뿐이고.

바로 옆에도 뭔가 상상력을 자극하는 바위가 놓여 있었다. 엄마는 사자 같은 동물 두마리 같지 않냐고, 한마리는 밑에

늘어지게 눕고 또 한마리는 그 허리춤 위로 턱을 괴고 기댄 거 같지 않냐는 말씀. 나는, 왠 건방진 배불뚝이 자식이

옆으로 누워 한 팔로 턱을 괸 거 같다.

조그마한 내를 가로지르는 하이얀 나무뼈다귀. 생각보다 많이 흔들려서 여성들에겐 조금 쉽지 않았던 듯.

다리 삼아 누워있던 나무뼈다귀를 밟고 지나고 나니 잔잔하게 흐르는 내 한가운데 가지런히 올려진 돌무더기가
 
그제서야 보인다.

바닷가 우체국이랜다. 뭔가 했더니, 인근 리조트에서 직접 짓고 운영하고 있다는 자그마한 정자, 그리고 무료 엽서와

배송 서비스. 나쁘진 않은데, 엽서 전면에 광고처럼 붙어있는 리조트 시설물의 그림이 좀 아쉬웠다. 좀더 은근하게,

거부감도 덜하면서 더욱 기억에도 남을 방법으로 할 수도 있었을 텐데.

한쪽엔 이미 온통 낙서로 자욱해진 '소원기원벽'. 색연필도 넉넉히 비치되어 있었고, 차근차근 읽으면 재미도 있었다.

우체통이 있고 엽서가 있고 펜이 있으며 마침 아픈 다리 쉬어갈 바람솔솔 정자도 있으니, 마음만 있다면 누구라도

엽서 한 통 적고 싶어지는 건 인지상정 아닐까.

그리고 얼마전 누군가 지적하던 이야기를 들었는데, 마치 일본 신사에 주렁주렁 매달린 소원기원 푯말들을 벤치마킹한

소원기원 패..라고 해야 하나. 뭐, 좋으면 벤치마킹할 수도 있는 거지. 이게 무슨 사당도 아니고, 소원을 적어 걸어둔단

정도의 아이디어 갖고 베꼈다고 말하는 건 좀 과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정자를 둘러싼 울타리엔 통나무를 걸어놨다. 거기 역시 소원을 적을 수 있도록 충분히 비치된 펜들.

오호......누군가 빨간 펜으로 "MB OUT"을 적어놓았다. 누굴까, 이거 누가 그랬을까.ㅋㅋㅋ

올레길이라고 전부 올레길 손수건 같은 기념품을 살 수 있는 건 아니랜다. 코스 중에서도 7코스를 비롯한 몇몇 코스,

그리고 7코스중에서도 몇몇 포스트에서만 구매할 수 있다는 이야기에 찾아간 풍림리조트. 그 앞에 그럴듯한 이끼벽.

토토로가 뛰어놀듯한 분위기다.

아마도 여기가 강정천? 리조트 옆을 끼고 흐르는, 아니 정확한 선후사실대로 따지자면 강정천을 끼고 리조트를

지었겠지만, 사계절 내내 맑은 물이 흐르는 은어 서식지랜다. 물이 엄청 맑지 않고서야 코빼기도 안 비친다는

우윳빛깔 은어씨, 수박냄새 은어씨.

그러고 보면 과거 제주도, 하면 떠오르던 돌하르방과 전통 형태의 대문 같은 이미지의 농도가 많이 옅어졌다.

그만큼 제주도에 다른 볼거리와 먹을거리, 이야기거리가 많아졌다는 의미인 거 같아 다행스럽다.






법환포구에 들어섰구나, 누구라도 알 수 있을 만한 징표는 역시 바다 위에 둥둥 뜬 채 매어있는 배들.

남/녀 노천탕이 있어서 깜짝 놀랬다. 알고 보니 제주도에서 흔치 않은 담수가 용출한다는 곳, 역시 그러니 근처에

법성포구 마을이 자리잡은 거겠지만. 여자 노천탕을 얼쩡거려봤는데 아쉽게도(?!) 양말만 벗은 아주머니들만 계셨다.

길바닥에 널어놓은 게, 돌담에 기대어 놓은 게  뭔가 했더니 깨란다. 도로가에 널어놓으면 먼지가 풀풀 쌓일 거 같은데

여긴 별로 오가는 사람도 없고 차도 없으니 괜찮지 싶다.

울룩불룩한 해안선. 울퉁불퉁한 돌멩이.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조각배.

법환 잠녀 마을. 해녀가 일제 시대의 잔재라는 걸 알았던 건 대학교 일학년 때, 제주도를 자전거로 일주할 때였다.

굳이 일제 시대 만들어진 단어를 싸그리 부정할 생각은 없지만, 순전히 어감상 해녀보다 잠녀가 로맨틱한 게 좋다.

이런 식의 공공미술 기획이 늘어나면 좋겠다. 뭔가 늙어가는 사람처럼 퇴락하고 벗겨지고 날로 촌스러워져가는 풍경에

새롭게 생기를 불어넣어주는 작업. 요새 오히려 이런 수혜는 지방이나 상대적으로 소외된 곳이 받는 듯 한데, 삭막하고

위압적인 도심에도 마찬가지 생기가 필요하지 싶다.

해안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을 달리는 배, 보아하니 막 출항해서 얼마 되지 않은 것 같다.

잠녀 체험이 가능하다는 간판을 보고 들어가 본 건물에서 만난 잠녀복장. 알고 보니 식당이어서 성게국수를 맛보았고,

다시 알고 보니 식당을 빙자한 마을 아주머니들의 모임장소여서 갖고 있던 간식거리도 나눠먹고, 재밌었다.

해안가에 연한 어느 집 야트막한 담장 위에 얹혀 있는 조개껍질들.

유모차를 끌고 저기까지 왜 나가셨나 했더니, 빨랫감을 싣고 나르는 역할을 하나 보다. 동그마니 서서는 빨래가

끝나길 기다리는 얌전한 유모차.

이 나무기둥위에 얹힌 돌들이란. 허참, 이란 감탄사 이외엔 별로 할 말이 없어진다. 아니 요새는 '올레~'라던가.

바닷바람에 장렬하게 펄럭이며 꿋꿋이 길을 알려주는 저 기개는, 왠지 이순신장군의 최후같이 비장감이 감돈다.

법환마을을 벗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주친 매점. 뭔가 분위기가 꽤나 이국적이었다. 100% 망고주스를 팔길래

한번 맛보고 싶었는데, 생망고가 아니라 엑기스나 그런 거 아닐까 싶어서 그냥 포기.

이제 바닷가에 보다 바싹 붙어서 걷기 시작했다. 검은 빛의 현무암 덩어리들이, 살짝 침침한 날씨 아래 빛을 머금었다.

이건 일종의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인 거다. 돌이 두 개 이상만 다소곳이 쌓여 있으면, 삼층이 되고 사층이 되는 건

순간이다.

눈앞에 보이는 건 서건도, "썩은 섬"이란 우리말 지명을 굳이 한자로 옮기다 보니 서건도가 되었다 한다. 섬의 토질이

부식되어 있어서 썩은 섬이라 했다던가. 만조 때는 섬이 되고, 간조 때는 짧으나마 '모세의 기적'이 벌어지는 곳.

서건도로 향하는 구간은 일명 '일강정바당올레'라고도 한다. 일일이 손으로 돌을 골라낸 끝에 새로운 바닷길을

만들어 냈다고 한다. 한번 그어진 얇은 선 위에 숱한 덧칠을 통해 굵게 만들어내듯, 올레길은 이제 수많은 사람들이
 
밟고 지나며 더욱 뚜렷이 패일 거 같다.

서건도. 썩은 섬. 맘먹으면 섬에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제주도와 연결되어 있었지만, 물이 차들어오는 건 또 금방인지라

조금 가보다가 말았다. 가봐야 뭐 별거 있겠어, '저건 신포도야' 이런 마음으로.

바닷가에 떠밀려 온 거겠지. 하얗게 표백되어 버린 나무가 해안가에 길게 누워있었다. 넌, 어디까지 가봤니.(이러고)

바닷가에 바로 붙어있으니 토질이 좋을리가 없다. 소금기 짭짤한 바람이 사시사철 24시간 불어올 텐데, 그 바로

옆에서도 이렇게 흙을 일구고 작물을 돌보시는 분. 대체 저 고랑 사이로 무엇이 튀어올라올지 모르겠지만, 그게

뭐든 튼튼하게 잘 여물었으면 좋겠다.

물질 나가시나보다. 잠녀 아주머니 두 분이 바삐 걸음을 옮기셨고, 나는 그 빨갛고 노란 장갑의 색감이 너무 좋아

카메라를 바삐 들이대고 말았다.




찻길 옆으로 걷다가 마주친 '건설자재 야적장'. 무슨 "때묻지 않은" 천혜의 비경이나 자연만을 보는 길이라면 자칫

일상을 도외시한 잠시지간의 탈출로 끝나기 쉬울지 모른다. 제주도를 삶터로 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이 있고,
 
학생들은 통학하며, 먹고사니즘의 굴레를 놓지않고 사는 현장이 생생히 있어서 걸음걸음 더 재미지다.

윗둥치를 뚝뚝 끊어놓은 나무들에서 몽실몽실 이파리가 돋아놓으니, 왠지 잘 자라고 있는 나무를 거꾸로 꽂아놓은

느낌이다. 이파리들이 좀더 길게 자라나면 위아래를 분간하기도 좀더 쉬워질 듯.

어디로 가야 할 지, 갈림길이 나타나면 두리번두리번 숨어있는 화살표부터 찾는다. 사실은 갈래길에선 딱 화살표

두 개면 해결될 텐데. 갈림길 나타났을 때 당황하지 말라고, 진즉에 길 안내표시 해놨다고 하나, 그리고 갈림길에

서서 멀찍이 양쪽 길을 바라봤을 때 어느 한 쪽을 가리키는 화살표 하나.

아마도 여름엔 사람들이 바글바글댔을 길가 행상의 흔적. 인걸은 간데 없고 천막만 남았다.

문득 즈려밟고 가야 할 징검다리. 보폭에 맞게 잘 배치된 징검다리는 그 위를 밟고 걸으면 도, 레, 미 소리가

경쾌하게 날 듯 하지만, 다리를 억지로 잡아찢게 만드는 징검다리나 계단은 짜증만 난다.

역시 남도라 식생이 다르긴 다르다. 선인장이 꽃을 틔우고, 뾰족뾰족 가시를 드러냈다.

걸으며 지나친 어느 공원. 엉성하게 세워진 탑과 야자수길이 인상적이었다. 이 곳의 야자수는 아랍국가나 동남아의

야자수와는 또 느낌이 다르다. 좀더 조그맣고 부드러운 인상을 남긴다.

거대 알로에..처럼 생긴 선인장..일 게다 아마 저건. 알로에는 토실토실 배가 부른 잎사귀를 갖고 있을 텐데 이건

얄포름한 잎사귀를 갖고 있다는 사실에 근거한 추측. 잎사귀 하나 잘라내서 칼처럼 휘두르면 재밌겠다 싶었다는.

왜 언젠가 홍길동이던가, 티비 속 퓨전사극에서 휘두르던 연검이랑 닮았다.

화살표를 그려넣기가 애매한 곳에는 등산로를 표시하듯 이렇게 노란끈 파란끈이 묶여 있다. 올레길의 대표색상인지도.

문득 눈에 띈 돌하루방, 돌하르방인가? 어쨌거나 올레길을 걸으면서나 제주도 와서 생각보다 눈에 잘 안 띈다.

올레길을 걸으러 왔던 가족인 듯 한데, 어느 틈에 이런 코팅된 표식까지 준비한 걸까. 그 세심한 마음씀씀이에 놀랬고,

또 저런 멘트는 언제 준비해서 적어넣은 걸까 궁금증이 끝이 없다. 집에서부터 "엄마아빠 힘내세요"라 적어왔을려나.

코팅을 제주도에서 올레길 걷는 와중에 하지는 않았을 텐데. 학교 앞 문방구에서 했을 수도 있겠구나..등등.

아마도 여기가 수봉로. 염소만 다니던 길을 삽과 곡괭이로 올레지기 한분이 직접 개척해서 만든 길이 수봉로라던데,

딱히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올레지기님의 이름을 딴 '수봉로'인지는 걷고 나서도 모르겠다. 그냥, 제주도의 어느 길.

이렇게 돌들이 몽글몽글한 해안가를 바로 곁에 두고, 조금씩 뜨거워지는 태양을 느끼며 걷는 건 여전히 유쾌했다.

등엔 어느 틈엔가 솔찮이 땀이 배어나고 다리도 조금은 묵직해지는 느낌이었지만, 흔히 원형으로 돌게 되는 산책과
 
달리 그저 가고 또 가는 걸음이란 사실 자체가 유쾌했던 것 같다. 去去去中知, 行行行裏覺이라던가.

해삼과 오분작이를 체포한다고? 채취는 알겠습니다만 체포는 무엇인지. 한자를 알면 뜻은 헤아릴 수 있다지만,

이왕이면 조금 더 대중적인 단어를 써도 될 거 같은데 말이다.(잘 안 쓰이는 단어라면 한자를 병기해주던가 차라리.)

이것..난꽃 맞지 싶은데, 꽃들 너머로 열기구가 떠오르고 있었다. 한눈에 섬의 사면, 그러니까 바다로 둘러싸인

땅덩이를 실감할 수 있다는 건 꽤나 매력적이긴 한데...일단 제주도는 섬이라기엔 너무 크다. 실감이 안 날 정도로.

그러고 보면 제주도의 해안이 걸음직한 이유는, 김기덕의 영화 '해안선' 마지막에 나왔던 것처럼 반도 삼면의 해안은

모두 군대에 점령되어 있기 때문이다. 밤에 마음대로 내려가 밟아보지도 못하는 가시돋힌 철조망의 땅. 여기도

그다지 자유롭진 못해서, 파란색으로 색칠된 초소가 드문드문 현무암 사이에 박혀 있다.

소철..이던가. 어렸을 적 집에서 키웠던 뾰족뾰족하고 딱딱한 잎사귀의 식물을 재배중인 듯한 비닐하우스다. 근데

이렇게 관리 안되는 비닐하우스는, 일부러 천장을 뜯어내고 벽면의 비닐도 헐어버린 걸까. 열맞춘 소철 병정들에
 
점령당해버린 듯한 비닐하우스.



여기가 돔베낭길 쯤일까, 옆으로 담장돌들이 가지런히 이빨맞춰 늘어서 있고, 머리위엔 꽃을 잔뜩 얹었다.

색소폰을 형상화한 거 같기도 하고, 다른 악기 같기도 하고. 알고 보니 여긴 무슨무슨 펜션의 정원이랄까,

사적으로 관리되고 있는 공간이었다. 그러고 보니 다른 올레길 코스도 그런 사적 영역에 기댄 바가 없지 않다.

호텔에 부속된 산책길이라거나, 호텔 홍보를 위해 기증된 정자라거나.

그래도 그런 공간들이 올레길 순례자들에게 (물건을 사라거나 자신의 호텔을 이용해달라는 등의) 강한 압박, 그래서

불쾌할 수 있는 부담감을 주지 않아 다행이다. 그냥 사람들에게 열려 있는 느낌이다. 그 펜션 정원에 들어가 잠시

앉아 쉬며 바라본 꽃과 나비.

거푸 크게 심호흡하는 리듬으로 날개를 접었다, 폈다 하는 나비. 후읍, 하아, 후읍, 하아.

약간 흑백 사진처럼 나와버렸는데, 왠지 분위기가 살아있는 사진같다. 걷기 시작한지 30분도 안 됐으니, 아침 7시반도

안 된 살짝 이른 아침의 제주 앞바다.

그리고 제주의 하늘. 구름이 몽실몽실 한켠으로 우르르.

계속 이렇게 잘 관리되고 '공원'같이 다소 인위적인 느낌의 길만 걷나 했더니, 아니다. 어느 지점에서 잘 닦이고 주변

경관도 잘 조성된 길은 끝나고 '날 것'의 풍경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한껏 낮은 자세로 웅크린 저 차양들처럼 서서히. 저건 뭘 길러내기 위한 보호막인 걸까.

올레길이라고 샛길이나 곁길이 없을리 없다. 잠깐 샛길로 빠졌더니 바닷가에 내려섰다.

시커먼 돌과 푸르딩딩한 바다, 그리고 그야말로 하늘색 하늘.

다시 올레길 코스로 복귀, 이번엔 문득 호박길이다. 호박이 넝쿨째 이리 뒹굴 저리 뒹굴거리는 길가.

이런 찻길이나 대로변 인도를 걷기도 한다. 온통 '허'로 시작하는 렌트카들이 씽씽 달리는 찻길이라 조금 주춤하긴

하지만, 그래도 그렇게 찻길 근처에 기댄 구간이 길지 않아 다행이다.

사정이 여의치 않았던 아버지를 빼고 엄마랑 여동생이 함께 갔다. 앞에서 부지런히 걷는 두 모녀.

그렇게 대로변을 지나다 마주친 어느 집의 '팥색' 지붕. 퇴색한 느낌이 너무 좋은 거다. 군데군데 잘 벗겨진

페인트칠도 무지하게 매력적이고. 이게 바로 엣지있는 빈티지스러움..?

공항버스 600번. 제주국제공항에서 15분마다 출발하는 이 버스는 제주시에서 서귀포시까지 제주도를 종단한다.

서귀포시 옆 제주월드컵경기장 근처 펜션에 머무느라, 목요일 퇴근후 비행기 잡아타고 이 버스를 잡아탔댔다.

올레~! 갈래갈래 갈린 길 앞에 서면 이런 식으로 된 스티커던, 파랑색 페인트로 찍찍 그려진 화살표던, 뭔가

표식을 찾게 된다. 스티커가 이뻐서 하나 떼어올까 하는 마음이 0.1초간 들었으나 후인들을 위해 참기로 했다.

서귀포여고를 지나가는 길에 문득 마주한 어느 집 대문. 제주도의 대문이라 하면 나무기둥 세 개를 가로누인 전통적인

그게 생각나는데, 이 녹슨 철문도 못잖은 포스를 뿜고 있다.

아직은 싱싱하니 파랗기만 한 귤. 희끗희끗한 액체가 말라붙어 있길래 혹시 농약인가 해서 물었더니, 영양제란다.

지금 나오는 귤들은 하우스 재배라는 것 같던데, 그래도 인심좋은 가게 주인아저씨에게 받은 귤은 크고 달았다.

어느 집 지붕 위에 불쑥 피어난 꽃무더기. 여린 꽃잎 여기저기 벌레먹은 양 너덜너덜한 게 살짝 민망하지만서도,

외려 '보여주기'용이 아니라 그냥 제 멋에 싹트고 자라고 꽃피웠겠거니 생각하니 또 그럴 듯 하다.





코스 경로(총 15.1km, 4~5시간)

외돌개 - 돔베낭길 - 펜션단지길 - 호근동 하수종말처리장 - 속골 - 수봉로 - 법환포구 - 두머니물 - 일강정 바당올레(서건도) - 제주풍림리조트 - 강정마을 올레 - 강정포구 - 알강정 - 월평포구

ⓒ 제주올레 공식홈페이지.(www.jejuolle.org)

올 여름에 10만명이 다녀갔다는 제주도 올레길, 제주도 사람들끼리 제주도가 가라앉는 거 아니냐는 농담도 돌았댄다.

도보여행자의 성지라는 스페인의 산티아고를 벤치마킹했다지만 없던 길을 새로 만들었다기보다는, 원래 제주도

사람들이 놀멍(놀면서), 쉬멍(쉬면서) 즐기던 길들을 정식으로 코스화했다는 게 맞을 듯 하다.


어찌 하다보니 저번주 목요일 저녁, 제주도에 있었다. 다음날 하루 걸었던 올레길 7코스.

외돌개 근처 솔숲에 숨어있는 자그마한 까페. 아침 이른 시간이라 아직 문은 안 열었다.

제주도의 남해안. 독특한 구름이 씽씽 달리고 있었다.

뭔가, 의도를 갖고 찍어본 사진. 나와 함께 나란히 서서 저 너머를 바라보는 것 같지 않을까 싶도록.

왼쪽을 굽어보면 부지런한 배도 지나가고.

여름휴가철 내내 사람들이 꼬리를 물고 순례했다던 올레길은 이제 고즈넉하다. 앞서 걷고 있는 엄마와 동생.

다복솔이 살짝 얹힌 제주도의 남쪽 끄트머리. 누구던가 조선의 선비 하나가 기생과 흥취를 나눌 때 썼던 표현, '다복솔'.

외돌개가 왼켠에 자리했다. 용암이 분출하면서 신도 걸려 넘어질법한 거대한 돌부리가 솟구쳐 버린 셈이다.
 
삐쭉, 하고. 외돌개라..순우리말 이름도 멋지다. '외', 외롭게, '돌', 돌출해나온, '개', 개....식끼?ㅡㅡ;

홀로 우뚝 솟은 모습이, 아래에서 봤다면 더욱 당당하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위에서 이렇게 봐도 나름 느낌이 살고.

외돌개를 끼고 걷는 길, 바다에만 던져뒀던 시선을 육지쪽으로 거두니 잘 정돈된 공원이 나타난다.

외돌개가 유명해진 건 이곳에서 대장금 촬영을 하고 나서란다. 그렇지만 사실 렌트카 몰고 돌아다니는 여행에서

이런 단촐한 지점을 꼼꼼히 보기란 쉽지 않을 거다. 걷기가 주는 묘미란 게 그런 거 아닐까. 완만하고 연속적인

그림, 궤적 위에서 뭔가를 지긋이 바라볼 수 있다는 거. 뚝,뚝, 끊겨서 소위 '명승지'가 눈앞에 나타나는 게 아니라.

아침해가 떠오르는 바닷가 벤치에 앉아 그날의 따뜻한 신문을 펼쳐보는 어르신의 여유. 그치만 왜 신문을 보시나요,

이왕이면 조금은 두툼하고 오랜 시간의 세례를 받은 책이 좀더 운치있을 텐데.

언덕 위의 하얀 집. 누군지 몰라도 그럴 듯한 별장, 혹은 펜션 하나 잘 지어놓았다. 저런 집에 살고 싶다, 라는

과거의 나이브하고 다소 진부한 찬탄은 어느새 '저런 펜션/별장 하나 갖고 싶다'라는 속물적 욕망으로 바뀌었다.

제주도에 많은 거 세 개 중 하나, 바람을 상징하는 신물이랄까. 바람개비. 아까 외돌개에 걸려넘어진 신이란 녀석,

울먹이며 꼬장부리고 있을 때 달래주려고 바람개비 몇 개 듬성듬성 꽂아놓고 준비중인 게다. 그녀석의 둔하고

무딘 손끝에서 쉬이 분질러지지 않도록 강철로 만들어놓은 커다란 바람개비로다가.

앞서거니 뒷서거니, 사람들의 보폭이란 게 비슷한 거 같으면서도 다 다르다. 더구나 카메라를 들었는지 짐은 얼마나

챙겼는지 등등 변수란 건 찾아보면 참 많은 거다. 게다가 오늘 하루의 일정, 목적지도 다르니 호흡도 달라진다.

외돌개를 빠져나가는 길 어디메쯤. 구불구불한 길을 걷는 게 참 재밌다. 더구나 어딘가에 도착하기 위해 차를 타듯

'수단'으로 걷는 게 아니라, 그냥 '거기 산이 있어서 오른다'는 식으로 거기 길이 있어서 걷는다는 맘으로 걷고 있자니

마음이 참 너그럽다. 실은, 금요일에 휴가를 낸 덕분인지도 모른다.

왼켠엔 푸른 바다, 오른켠엔 초록 들판. 그 사이로 구불구불, 좌우상하로 굽이치는 길.

제주도는 네번째다. 꼬맹이 때 한 번, 대학교 1학년 때 자전거로 해안도로 일주 한번, 작년에 국제행사 때문에 한번.

그리고 올레길을 처음 걸어보는 지금.


앙코르 톰 내부를 비롯, 앙코르왓 유적군 모두에 화장실은 이런 식으로 안내되어 있다. 허름한 안내판만큼 화장실도

허술할 거라 생각하기 쉽지만, 글쎄. 화장실은 꽤나 깔끔한 편이다.

앞에 관리인이 목욕탕 티켓파는 곳처럼 앉아 있고, 여자가 다가오면 왼쪽, 남자가 다가오면 오른쪽을 손짓한다.

앙코르톰 사원이란 사실 가로 3킬로, 세로 3킬로의 거대한 성곽도시라고 할 수 있다. 그 안쪽 중심부에 늘어선

바이욘, 바푸온 등과 같은 사원과 궁전터 등이 실제 앙코르톰이 품고 있는 유적들인 거다. 마치 크메르 왕의

집약된 중앙집권 권력을 반영하듯 하나로 응축된 사원들과 궁전들, 그런 유적들이 뭔가 하나로 눈이 모이는

집약식 볼거리라면, 뗍 쁘라남이나 쁘리아 빨리라이는 슬슬 산책하며 이리저리 휘휘 둘러보기 좋은 그런

분산식 볼거리라고 할 수 있을 거 같다.

뗍 쁘라남, 이라는 이곳은 돌로 잘 포석이 깔아진 이 길이 인상적이었다. 잔뜩 우거진 나무들 사이로 한 줄기

잘 다듬어진 돌길을 걷노라면, 가뜩이나 여행객도 드물어 호젓한 이곳은 고요한 산책로처럼 느껴진다.

물론 그 뒤편으로는 이렇게 야자수를 큰 칼로 썰어 빨대를 꼽아주는 자그마한 행상도 있다. 물이 꽉 들어찬 살풋

덜 익은 코코넛은 칼이 닿자마자 찍, 하고 물을 내뿜고 만다.

대불좌상이 놓여있는 산책로의 끝. 그 오른쪽으로는 스님들이 묵고 있는 요사채..가 있다고 한다. 불상도 최근의

것인지 색깔이 아직 싱싱한 돌멩이다.

실제로 지금 꾸려지고 있는 사원인지 감색 옷을 입은 스님이 앞에 앉은 두 사람 등목을 시켜주고 있다. 시원하게

물을 뿌려준 스님, 그리고 시원하게 사방으로 튀기는 물방울. 아니 근데 오른쪽 사람은 여자였었나...?

사람이 살고 있음이 틀림없는 집. 우리네 시골 집 툇마루와 비슷하면서도 살짝 다른 분위기.

앙코르왓 내부에서 기거하고, 수도하는 사람들이 있는 게다. 이렇게 펌프질을 해야 물이 나오는 수돗가도 있고.

거대하고 묵직하고 '케케묵은' 사원들이 가득해 보이기만 하던 앙코르왓 내부에서 사람들을 만났다.

저 봉곳한 궁둥이와 허리라인이 예술이다. 도무지 저 엉덩이로부터 흘러넘치는 마력같은 매력에 저항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도 함께. 무릎을 굽히고 두 팔을 쭉 펴고 엉덩이를 있는 힘껏 뒤로 빼고 경계에 들어갔다.





동영상 취지.

앙코르 톰의 왕궁 정원에는 '코끼리 테라스'와 '문둥이왕 테라스', 이렇게 약 300여 미터에 달하는 길다란 테라스가 있다.

왕궁을 등지고 테라스 정 가운데에 서서는, 외국 사신들이 묵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앞의 쁘라삿 수오르 쁘랏(Prasat Suor

Prat)을 휘휘 여유있게 둘러 보는 왕의 시야에는 뭐가 보였을까.


아마 왕의 좌우로 문무백관이 관직에 따라 시립해있고, 등 뒤에서는 느긋하지만 확실히 부쳐주는 커다란 부챗바람이

솔솔 불어왔을 거고, 머리위에는 커다란 일산-양산-이 몇 개씩 늘어서 있었을 게다. 눈 앞에는 아마도 최고로 멋을 내어

무장하고 정복을 차려입었을 군대가 열맞춰 사열을 받았을 거고, 혹은 외국의 사신이 공손하게 시선을 내리깐 채

무릎걸음으로 기어왔을지도 모르겠다.


비어있는 공간을 상상력으로 채워 넣어보기.


관련 영어 숙어표현.

put oneself in(to) a king's shoes. 왕의 입장이 되어 보자.


왕의 시야 진행방향.

왕은 우선 정면을 보고 있다가, 좌로 고개끝까지 오만하게 훑어보고는 다시 우측 끝까지 거만하게 훑어본다.

그리고 나선 정면에 쌓여있는 산더미같은 공물을 보며 크게 흡족한 나머지, 두번이나 고개를 크게 끄덕인다.


빙의시 참고사항.

재채기하지 말 것, 너무 오래 본체를 떠나 있지 말 것. 그리고, 타인의 몸으로 장난치지 말 것.





바푸온 사원에서 조금만 걸으면 바로 나타나는 피미니아까스, 그리고 옛 궁전터. 건장한 금발남자 세네명이 우르르

몰려다니길래 슬쩍 끼어들어 말을 섞어봤다. 엑, 회사를 삼개월동안 쉬며 여행을 다니고 있다고. 무지하게 부럽긴

했는데, 사진은 참...이상하게 찍어준다.  

피미니아까스란, 궁전 내부에 있는 사원이다. 궁전은 이미 다 헤집어져서 주춧돌만 남았다는 이야기에 가보지 않고,

그 바로 앞에 있는 사원인 이 곳만 올라갔다 내려오기로 했다. 저 어마어마한 경사도. 인간이 아닌 신이 걷는 길이라

하여 일부러 저렇게 가파른 경사의 계단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 앞에 버티고 선 사자상의 각목같은 다리가 아쉽다.

여기도 노골적으로 각목같은 사각기둥 모냥의 네 받침대 위에 둥둥 떠있는 조각상. 복원을 어정쩡하게 시멘트로

눈속임하듯 발라놓느니 차라리 저렇게 노골적으로 "여긴 파손된 부위입니다"라고 알려주는 게 솔직하지 싶다.

사원 벽면 돌 틈새에, 그리고 벽돌 한장한장에 숭숭한 구멍 틈새를 놓치지 않고 무수하게 싹을 틔운 초록생물들.

왠지 '토토로'에서 우산든 토토로가 씨앗들을 틔우는 장면이 떠오를 정도로 귀엽고 작은 잎새들이지만, 사원을

지키기 위해서는 아마 금세 전부 솎아내질 거다.

신이 걷던 길을 인간이 오르려니, 쉽지 않다. 피라밋 오르는 것도 일종의 익스트림 스포츠로 만끽되다가 사람

몇명 떨어져 죽고는 금지되었다고 하던데, 여기 경사는 피라밋보다 더 높은 거 같다. 보통 사원 네 면에 모두

이런 계단이 있는데, 약간씩 경사가 다르다. 허물어지고 이지러진 탓도 있겠지만, 잘 돌아보면 특정 방향

계단이 일부러 좀더 완만하게 만들어진 곳도 있다.

이 곳의 서쪽 계단을 통해서만 3층의 성소까지 갈 수 있다. 경사가 약 40도에 이른다는 이 계단 아래에도 여지없이

'곰팡이처럼' 피어난 녹색의 여리여리한 이파리들. 이 계단 말고 돌계단을 직접 밟고 가다 보면 가끔은 덜컹덜컹

움직이는 계단석이 있었다. 순간 움찔하게 되는 상황.

3층 성소에 해당하는 지역. 예전에는 원래 ‘황금탑’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고 하는데, 그 이유가 바로 이 3층 꼭대기.

원나라 때던가, 중국 사신이 이곳에 거주하며 남긴 글에 따르면 여기가 온통 황금으로 치장된 그곳이라지만,

지금은 네발짐승처럼 팔다리를 온통 몸무게 지탱에 쓰는 여행자들만이 굳이 올라가 보는 곳.

낑낑 올라가서 내려다 본 피미아니까스의 연못. 여기는 왕과 왕비가 동침하기 전에 스르륵 옷가지를 풀어헤치고

몸을 씻던 곳이 아닐까, 아니면 얼핏 어디선가 본 것처럼 후궁들이 몸을 씻었던 곳인지도. 힌두교의 사제들은

정절을 어케 했는지 모르겠지만, 아마 이 곳에서 딱 이런 시선으로 마치 나뭇꾼이 선녀 목욕 훔쳐보듯 밤마다

벌건 눈으로 두리번거렸을지도 모른다.

어느 사원 근처에나 쭉 늘어서 있는 행상들. 잡다구레한 액세서리도 팔고, 시원한 물과 음료는 기본이고 코코넛을

큰칼로 손질해 즉석에서 빨대를 꽂아 코코넛주스를 팔기도 한다. 그리고 예외없이 눈크고 이쁘장한 아이들까지 완비.

사람 댓명이면 꽉 차버릴 만큼 좁은 정상에는 향꽂이랑 조그마한 함이랑 뭐 그런, 예불 드리기에 딱 좋은 일습이

구비되어 있었다. 뭐랄까, 저 사진만 보면 왠지 계룡산이니 마니산이니, 그런 곳에서 예불을 보거나 나름의 종교의식을

치르는 분들의 장비랑 그 분위기랑 비슷하다.

앙코르왓의 돌들은 전부 이런 사암석, 라테라이트라고 한다던가. 흙을 물에 개어서 벽돌을 만들면 오랜 세월을

견딜 수 있는 단단한 벽돌이 된다고 했다. 부분부분 누런색이 끼어있는 걸 보고 혹시 과거의 금칠이 남아있는 건가

눈을 크게 뜨고 꼼꼼히 뜯어봤지만 아니었다는. 손톱으로 좀 긁어봤어야 했다.

내려가는 길에 우왕좌왕하는 사람들, 올라오긴 햇는데 막상 내려가려니 그 체감하는 경사가 또 다른 게다.

밑에서 올라오려 기다리는 서양 아주머니들이 몇 분 있길래, 위에 아무 것도 없다고 얘기해줬더니 마침 잘됐다

싶은지, 냉큼 앞장섰던 의욕에 찬 아주머니 한 분 손을 이끌고 뒤로 이끄셨다.

사진이 좀 작게 찍혔는데, 저 달구지 같은 것 위에 올려져 있는 건 무슨 조각상의 몸통이다. 아마도 배꼽부위쯤.

그야말로 유적이 발로 차이고 홀대받을 정도로 넘쳐나는 공간이라는 실감이 들었다.

수퐁나무, '툼레이더'에서 그 신비로운 폐허를 만들어낸, 그밖에도 다른 앙코르왓 유적들을 잡아삼킨 주인공이다.

마치 어린왕자의 바오밥나무를 연상케 할 정도로 두려울 정도로 거대하고 거침없는 이 나무는, 그래도 현지인들에게

큰 효용이 있다고 한다. 저기서 나오는 검정액체가 일종의 기름 대체물이 된다는 것. 호롱불도 밝히고, 배도 용접하고.

그러고보니 캄보디아는 여전히 전기가 귀하여 어두워지면 이곳 사람들은 바로 잠자리에 든다고 한다.

궁전터를 돌며 마주친 또다른 연못. 어렸을 적 동남아 지역에 대해 어렴풋이 들었던 내용 중에는, 비가 오고 나면

커다란 물웅덩이가 생기는데 그 안에서 바로 고기들이 뛰어논다던가. 그토록 풍족하고 먹기 살기 편하다는 정도의

이야기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래서 발전이 늦었다느니, 식의 왜곡된 사실까지는 당시에도 별로 와닿진 않았지만,

비가 내리면 물고기가 뛰어노는 물웅덩이가 생긴다는 이야기는 꽤나 매력적이었다.

문득 무너져 내린 왕궁 담장. 나무들이 빼곡하고 잎사귀가 무성해서 시야가 많이 가리지만, 답답한 느낌보다는

뭔가 야~ 눈이 좋아지겠다, 라거나 피톤치드를 많이 흡수하겠네, 라는 식의 상쾌한 기분.

쭉쭉 뻗은 미끈한 나무들. 잘 생겼다, 라는 느낌도 있지만 워낙 크다. 머리 하나쯤 큰 서양인의 훤칠하고 우월한

골격을 보는 것 같다.

온통 녹조류가 끼어서 초록빛 스프가 고인 것처럼 되어버린 연못. 뭔가 신비한 것이 저 아래 숨어있지는 않을까,

마주한 연못 하나가 문득 몽환감을 불러일으켰다.



바푸온으로 향하는 잘 닦인 돌길은 여느 힌두교 사원과는 달리 '나가 난간(뱀머리와 몸통으로 장식된 난간)'이 없다.

지상과 천국을 잇는 다리를 재현하려는 의도였다고 추측된다는데, 탁 트인 채 주변 녹지와 이어져 있어 살짝

어색하면서도 시원한 느낌이다. 지상에서 천국으로 가는 길에 한 컷. 그런데, 저 너머 천국은 얼핏 봐도 공사중.

양쪽에 배치된 인공 연못은 열대 기우 특유의 끈적한 느낌이 묻어났다. 뭔가 쏴한, 시원하고 청량한 느낌이 아니라

끈적한 젤리나 타르처럼 몸에 덕지덕지 묻어날 것 같은 연못물. 바람이 일면 수면이 푸딩처럼 흔들렸다.

사방에 흩뿌려진 돌덩어리들에 쭈그려 붙어앉아 뭔가를 열심히 정돈하는 사람들. 혹은, 단순히 잔디깍는 중인지도.

'바푸온', 숨긴 아이라는 뜻의 사원은 전쟁 때 아이와 아내를 숨겼다던가, 그런 연유로 이런 이름이 붙었다 한다.

지금이야 무너지고 부서져 사방에 구멍이 숭숭 난 채 헐벗어 있지만, 그때만 해도 피신자들을 품넓게 넉넉히 안아줄
 
만한 커다란 사원 아니었을까. 아마도 새들마저 조심할 만큼의 위엄이나 신성을 띄고 있었을 거다.

네모 반듯반듯한, 게다가 계단 차곡차곡한 연못. 아마 사원에 들어가기 전 몸을 씻는 공간이었지 싶다. 어디서나

어느 때나 물이 갖는 이미지란 별 수 없는 거다. 정화, 죄씻음, 그런 이미지. 인간의 상상력이란 의외로 한계랄까

그 구획이 뚜렷하다. 마치 저 연못처럼.

인류에게 공동된 거대한 지식창고가 우주 어딘가에 있고, 인류의 각 민족들은 거기서 조금씩 지식을 끌어쓰고

있다는 뉴에이지류의 상상력이 새삼 신선하게 다가올 때가 있다. 먼 타지에서 '별수 없군'이란 생각을 들게

만드는 몇가지 진부하고 익숙한 사고방식이나 그 결과물을 만날 때.

가까이서 바라본 바푸온 사원의 본전은 생각보다 많이 뭉개져있었다. 복구를 한다고는 하는데, 오랜 내전이나 

킬링필드, 인접국과의 전쟁 등 여러 역사적 굴곡을 겪으면서 어려움이 많았다고 한다. 심지어 도면이 사라지기도

했다는데, 엄격한 좌우대칭의 원칙을 지키는 공법과 여러 노력을 기울인 덕에 나름 복원을 재개하고 있다고.

캄보디아는 근 칠십년이던가, 19세기 중반이래 프랑스의 식민지배를 받았었다. 아마 앙코르왓이 재발견된 것도

프랑스 식민시절이 아닐까 싶은데, 이 곳의 수많은 유적들은 지금 각국의 지원을 받아 복원되거나 유지되고 있다.

당장 바푸온사원도 이렇게, 프랑스의 지원을 받아 복원이 한창이었다. 스스로의 힘으로 할 수 있다면 더욱 좋았을

텐데...캄보디아가 스스로의 힘으로 '과거'를 돌보기엔, 그들의 '현재'가 너무 숨가쁘다.

돌덩이에 그려진 전 식민국가 프랑스의 자유/평등/박애 삼색기.

태양을 피하는 법. 몸을 숨길 조그마한 그늘막 아래서 뜨거운 태양볕을 피하고 있는 인부들. 저 그늘막의 남루함

혹은 빈티지스러움은 왠지 천년을 지낸 사원에서 느껴지는 '남루함' 혹은 빈티지스러움에 필적하고 있다.

새로 해 넣은 이가 과장스럽게 반짝거리듯, 뭔가 새로운 걸로 '땜빵'해넣은 곳이 온갖 시선을 한몸에 받듯,

반짝거리는 복원부분. 보통 새로 기워진 부분이 이전 몸체에 융화되려면 그간 본체를 써온 만큼의 시간이 흘러야

한다던데. 바푸온 사원의 새롭게 복원된 부분이 자연스럽게 원형에 녹아들려면 또다른 천년쯤이 흘러야 하지 않을까.

문틀에 조각되어 있는 동물들의 움직임이, 마치 문틀을 발로 차 깨고 어디론가 도망가려는 것처럼 역동적이었다.

아마도 사원의 복원을 담당하고 있는 사람들이 사무실로 쓰고 있지 않을까, 싶도록 사원 옆에 딱 붙어 세워져있던

'움집'. 아기돼지 삼형제 중 게으른 첫째가 지었다던 지푸라기집이 이런 거 아니었을까 싶다. 사실 그 첫째돼지는

게을렀던 게 아니라, 동남아와 같은 아열대성 기후에 적응하기 위한 최선의 선택을 한 건지도 모른다.

엉성해보이는 외관은 실은 바람 숭숭 통하기 위한 지혜이며, 햇볕만 막음 되니 공들여 담쌓고 벽세울 필요도 없을 터.

사원 위에 올라 내려다 본 천상과 지상을 잇는 참배로. 저 멀리 보이는 건 한무리의 참배객, 아니 단체여행객.

어느 나라인지 모르겠지만 한국이나 영어 가이드가 붙었다면 설명도 훔쳐듣고 좋았을 텐데, 한템포 빨랐다.




아오모리? 어딘지 사실 잘 모른다.

사과로 유명하다니 여기 사과가 그럼 아오리 사과인가, 이런 잡생각이 떠오를 뿐이고,

네부타 마츠리로 유명하다니-'마츠리'가 축제란 뜻이니까-주지육림의 축제가 벌어지는가, 싶을 뿐이고.


근데 알고 싶다. 작년말 후쿠오카를 짧게나마 다녀오고, 그 전에 트랜짓하며 딱 하루 도쿄를 거닐었던 기억뿐인데,

일본에 대해 점점이 박혀 있는 기억들이 커지고 넓어져서 선이 되고 면이 되었으면 좋겠다.


설혹 내가 직접 가서 보고 듣고 느끼지 못하더라도, 누군가 다른 사람의 눈과 귀와 입을 빌려 '아오모리'라는 곳을

느껴보고 싶다.


그러고 보면 이 글은, 이 응모는 꼭이 내가 가고 싶다, 라는 의지의 표현이라기보다는 우리 중 누군가는

당첨될 그곳의 분위기와 이야기를 함께 공유하고 싶다는 피드백 요청의 글이 되겠다.



* 신청은 이곳으로. 아오모리 서포터즈 모집 이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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