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서 있으니 둘러 보는 데만 한나절이다. 아무래도 크메르왕국의 최전성기이던 시절, 황금의 도시라 불리던
때 지어진 수도니만치 당대의 공력을 총동원했던 게다.
그의 치하에 크메르 왕국 전지역에 병원들이 설치되고 정비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이 그가 문둥병/나병에
걸렸었다는 추측을 뒷받침한다고 한다. 물론 다른 설들도 많다. 캄보디아의 많은 사원이 대부분 죽은 이들을
봉안한 무덤의 역할도 겸하고 있듯 이 테라스에도 왕실 전용 화장터가 설치되어있었다는 사실을 근거로,
테라스 위에 앉아 있는 인물이 야마(염라대왕), 즉 죽음의 신이라 추측하기도 한다.
옷의 실루엣을 거의 조각해 넣지 않은 모습의 상이라는 점(누군가 저렇게 옷을 계속 공양하길 바라고 만든 양),
생긴건 남자임이 분명한데 앞면을 보면 뭔가 남성의 심벌이 없이 밋밋하다는 점(신의 양성성을 표현하고 싶던
걸까), 그리고 조각 표면이 매끈하게 다듬어지지 않고 뭔가 깔깔한 느낌이 의도적인 양 느껴진다는 점(이게
바로 이 조각상이 문둥병/나병에 걸린 인물이라 추측하는 이유라 한다). 차마 민망해서 앞면은 못 찍었다.ㅋ
둘레 두리번거렸다. 우측에 보이는 길게 이어진 테라스의 요철, 그리고 오래된 것의 향취가 은근하다.
아이스크림 스티커가 나름 주의깊게 배치되어 나란히 붙어있는 걸 보면 왠지 저 차를 분홍빛으로 도색하고
스티커를 한장한장 울지 않고 삐뚤지 않게 세심하게 붙이려 노력했을 모습이 떠올라 재밌다.
가지의 뻗어나간 모양이나 좌우 대칭의 형태가 장쾌하다. 넉넉히 사람 백명은 수용하겠다 싶은 짙은 그늘.
계단을 내려서는데 아까서부터 졸졸 우리를 따라다니던 녀석들이 계단에 기대 쉬고 있었다. 원달러원달러,
아저씨 멋져요, 일불일불, 이러던 애들. 과거 왕의 테라스였던 이 곳이 녀석들에겐 기대어 쉼직한 휴식처이자
일터인 셈이다.
여전히 야생으로 살고 있다 하고. 그만큼 그 사나움과 파워에 익숙해서겠지, 조각에도 악어가 심심찮게
등장했다. 흉폭한 모습 그대로지만, 살짝 생각에 잠긴 듯한 눈매와 턱의 모습이기도 하다.
'빨간 마스크' 아주머니 같기도 하고.
거 같아 보인다.
보인다. 사방에 흩뿌려져있던 돌무더기들에 하나하나 이름/번호를 붙여 차근히 원래 자리로 돌려보내는 것.
그러고 보니 어렸을 적 국사학자 내지는 고고학자가 되고 싶었었다.
겨냥되는 와중에 이 녀석은 왠지 술을 마시며 칼을 제편에 휘두르고 있는 것 같다. 병나발 불며 아군을
희생시키는 망나니 캐릭터랄까.
보지 못했던 것 같다. 헤죽, 하고 큰 입을 쫙 땡겨벌리며 웃고 있는데, 눈도 가만히 따라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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