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란 힌두교/불교에서 신성시되는 '뱀신'으로, 그 형태상 주로 난간에 많이 응용된다. 앙코르톰 내

문둥이왕 테라스, 코끼리 테라스 뒷켠에 있는 뗍 쁘라남(Tap Pranam) 뒷쪽 '쁘리아 빨리라이'에 있는 난간도

마찬가지.

몸의 몸통은 난간을 따라 쭉 이어져 있고, 뱀의 (무려) 일곱개나 되는 머리는 난간의 끝을 장식하고 있다.

이렇게 뱀 두마리가 인도하는 통로, 머리갯수로만 따지면 열네 머리가 인도하는 통로를 따르면 불교사원이

나타난다.

약간 이지러진 건축물, 그다지 임팩트 있는 건물은 아니었지만 문 위에 조각된 것들이 꽤나 선명해서

시선이 자연스레 옮겨졌다.

한쪽 조각면에 '우뚝' 서있는 부처, 그리고 밑에 옹송그리고 자세를 한껏 낮춘 '가련한' 중생들. 이런 식으로

신성성과 위엄을 강조한 조각은 사실 어느 종교를 막론하고 조금 거부감이 든다. 쟤넨 무슨 벌레처럼.

가이드북에서 그럴듯하게 설명해놓았던 '쁘리아 빨리라이'의 북쪽 벽. 앙코르 유적에서 찾아 보기 쉽지 않은

조각이라고 한다. 부처가 성나서 폭주중인 코끼리 머리에 손을 얹어 진정시키는 장면이라고 하는데, 왠지

하얗게 녹아내린 건지 색칠이 된 건지 그런 바람에 좀 제대로 감상하기 쉽지 않다.

그보다 더 인상적이었던 건, 사원의 한쪽 벽면을 따라 이리저리 강렬하게 뻗어나간 뿌리가 사원의 벽돌들을

움켜쥐고 있는 장면이었다. 저건 나무라기보다는, 뭔가 기괴하고 이질적인 외계의 생명체같은 느낌.

어떻게 보면 하얗게 뼈다귀만 남아버린 거대한 생명체 같기도 하고, 빤딱빤딱 빛나며 비닐같은 비늘이 돋아나

있는 게 무슨 인공적인 조형물 같기도 하고, 허옇다 못해 펄빛나는 형광까지 감돌고 있다.

윗둥이 잘려져 나갔음에도 이런 포스를 내뿜을 수 있다니.

캄보디아에서 본 '나무'들은 한국에서 보아온 '나무'와는 다르다. 내가 알고 있던 '나무'를 그려라 했을 때

그릴 법한 아기자기하고 다소곳한 생명체가 아니라, 껍데기 안쪽에서 뭔가 에너지가 꿈틀거리며 나갈 구멍만

찾고 있는 느낌, 강렬하고 동적인 느낌이 강하다.

아마도 이건 나무의 '발'이라 불러 마땅한 무엇인지도 모른다. 아무도 안 볼 때, 끄응~ 소리를 뱉으며 땅 속에

박아뒀던 발을 끄집어 쿠웅, 쿠웅 걷듯. 이런 이미지는 사실 '반지의 제왕'에서 구현됐댔다.

나무로 포위된 사원은, 가운뎃 부분만 위태로이 온전하다. 아직은. 알고 보니 저 위에 굴뚝처럼 뾰족하니

세워진 부분은 나중에 새로 쌓아올려진 부분이라 한다.

위태로이 세워진 탑 안에 서슴없이 들어가는 사람들, 나도 저 안을 들락날락 거렸지만 막상 내가 들어갈

때는 못 느끼던 위태로움이 멀찍이 거리를 두고 바라볼 때 비로소 생겨난다.

돌아나오는 길, 뜨거운 태양 아래 나른히 늘어져 있던 개가 귀뒤를 긁는다. 날씨가 더워서 그런지, 아님 착해서

그런지 좀처럼 짖지도 않고 지들끼리 쫓고 쫓기며 시끄럽게 놀지도 않는 개들이다.

다시 돌아 나오며, 이번엔 뱀 두마리, 뱀머리 열네개가 수호하는 통로 옆길로 나란히 뱀과 함께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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