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씨들까지 곳곳에 적혀있는 이 게시판을 보니 조금 정신이 든다. 아. 해군기지 부지가 여기였구나. 강정포구.
대한 논란이 있었고, 최근에 제주도지사에 대한 전례없는 주민소환 시도가 투표율 저조로 부결되었지만 그 와중에
투표를 방해하려는 여러 조직적 움직임이 있었다고 또다른 논란이 되었으며, 게다가 '주민소환'같은 직접민주주의적
제도가 '열심히 일하려는 사람'을 방해해선 안 된다는 MB의 언질 하에 제도 자체를 축소하려는 움직임마저 있는 상황.
없이 덜컥 위에서 결정된 일이라니까 더 거부감이 든다.
집결한 채 살기등등한 이빨을 드러내겠지. 올레길의 여유로움이나 (잠시나마) 품게 되는 관대한 마음 같은 게 그때도
가능할지 모르겠다. 아니, 해군기지가 생기고 나면 올레길 7코스가 지금과 같이 유지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진실함이 있다 느껴진다. 이곳에까지 발톱 세운 철조망을 칭칭 옭죄어야 하는지, 자연 그대로 냅둘 수는 없는지
누군가에게든 다그쳐 묻고 싶었다.
해군이 필요하다는 식으로, 발전하려면 뭐라도 들어와야 안되겠느냐는 식으로 말씀하셨다. 해양경찰력을 강화하면
될 일을 해군기지까지 섭외할 일인지, 해군기지가 지역발전에 도움이 될지, '세계평화의 섬'으로 비전을 정립하고
올레길 같은 자연자원, 관광자원으로 발전해야 할 제주도의 이미지만 해치지는 않을지 묻고 싶었지만...
비닐하우스들. 이런 장소에 해양박물관이니 크루즈항 같은 걸 짓고 해군기지를 이용한 지역축제를 개발하여 경제를
부양하겠다는 아이디어, 아...겁없이 용감하고 답답한 사람들. 그래놓고 해군기지서 기름이라도 대규모 유출되면
국민들 동원해 기름닦으라 시킬 거고, 해군기지 갔으니 공군기지도 짓자고 나설 테고, 지역축제에 혈세 낭비하며
위엣것들 사진 몇 장 남기고 선거운동 팜플렛에 한 줄 넣었으니 되었다 할 거고. 너무 시니컬한 건가.
둥둥 떠다니는 듯한 대기. 노란 깃발을 희롱하는 거침없고 둔탁한 바닷바람.
세계로 돌아갈 수 있겠구나 싶어서. 걷는 여행의 장점이자 단점은, 마치 보글보글 끓여대는 냄비 속에 들어가있는
개구리처럼 조금조금씩, 점진적으로 주변 풍경을 바라보게 된다는 거다. 드라마틱한 단절이나 충격 같은 거 없이,
사실 강정포구의 살풍경함이란 그렇게 야금야금 예견되어 있었던 거였다. 빠져나가는 길 역시 그렇게 야금야금.
명목상으로는 이쪽의 도로 사정을 원활케 하고 관광자원 접근성을 높이니 어쩌니 등등의 건설현장 안내문을 보긴
했지만, 아까 이야기를 잠시 나눴다던 그 택시기사 아저씨 역시 이게 해군기지 건설 정지작업이라 보고 있었다.
여론 수렴을 날림으로 하는 이유는, 어쩌면 니들끼리 내부적으로 싸워서 힘빼 버려라, 하는 고도의 수작일지도
모르겠다. 일단 내용에 대한 공지와 협의가 제대로 이루어진 후에야 공통 지반 위에서 이야기를 할 수 있을 텐데
공통 지반 없이 각자의 지반 위에서 떠드는 꼴이다. 그렇게 만들어 버렸다.
벌건 흙먼지가 자욱하고 포클레인의 격한 호흡소리와 진동음이 땅을 울리며, 걷는 사람 따위 배려되지 않는.
뭐, 어차피 올레길도 여름 한철 장사라 이건가. 안전띠나 보행자 안전통로 같은 건 전혀 보이지도 않는다.
내며 죽어버렸을까. 깨져버린 등딱지와, 서로 딴 곳을 향해 고정되어 버린 툭눈. 그렇지만 여전히 생기어린 채
빳빳한 다리털이 안타깝다. 대충 발린 시멘트길 위로 올라와 죽어버려 더욱 비극적인 녀석의 최후.
아, 방금 알아낸 사실 하나, 강정마을 해역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생물권보전지역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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