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환포구에 들어섰구나, 누구라도 알 수 있을 만한 징표는 역시 바다 위에 둥둥 뜬 채 매어있는 배들.

남/녀 노천탕이 있어서 깜짝 놀랬다. 알고 보니 제주도에서 흔치 않은 담수가 용출한다는 곳, 역시 그러니 근처에

법성포구 마을이 자리잡은 거겠지만. 여자 노천탕을 얼쩡거려봤는데 아쉽게도(?!) 양말만 벗은 아주머니들만 계셨다.

길바닥에 널어놓은 게, 돌담에 기대어 놓은 게  뭔가 했더니 깨란다. 도로가에 널어놓으면 먼지가 풀풀 쌓일 거 같은데

여긴 별로 오가는 사람도 없고 차도 없으니 괜찮지 싶다.

울룩불룩한 해안선. 울퉁불퉁한 돌멩이.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조각배.

법환 잠녀 마을. 해녀가 일제 시대의 잔재라는 걸 알았던 건 대학교 일학년 때, 제주도를 자전거로 일주할 때였다.

굳이 일제 시대 만들어진 단어를 싸그리 부정할 생각은 없지만, 순전히 어감상 해녀보다 잠녀가 로맨틱한 게 좋다.

이런 식의 공공미술 기획이 늘어나면 좋겠다. 뭔가 늙어가는 사람처럼 퇴락하고 벗겨지고 날로 촌스러워져가는 풍경에

새롭게 생기를 불어넣어주는 작업. 요새 오히려 이런 수혜는 지방이나 상대적으로 소외된 곳이 받는 듯 한데, 삭막하고

위압적인 도심에도 마찬가지 생기가 필요하지 싶다.

해안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을 달리는 배, 보아하니 막 출항해서 얼마 되지 않은 것 같다.

잠녀 체험이 가능하다는 간판을 보고 들어가 본 건물에서 만난 잠녀복장. 알고 보니 식당이어서 성게국수를 맛보았고,

다시 알고 보니 식당을 빙자한 마을 아주머니들의 모임장소여서 갖고 있던 간식거리도 나눠먹고, 재밌었다.

해안가에 연한 어느 집 야트막한 담장 위에 얹혀 있는 조개껍질들.

유모차를 끌고 저기까지 왜 나가셨나 했더니, 빨랫감을 싣고 나르는 역할을 하나 보다. 동그마니 서서는 빨래가

끝나길 기다리는 얌전한 유모차.

이 나무기둥위에 얹힌 돌들이란. 허참, 이란 감탄사 이외엔 별로 할 말이 없어진다. 아니 요새는 '올레~'라던가.

바닷바람에 장렬하게 펄럭이며 꿋꿋이 길을 알려주는 저 기개는, 왠지 이순신장군의 최후같이 비장감이 감돈다.

법환마을을 벗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주친 매점. 뭔가 분위기가 꽤나 이국적이었다. 100% 망고주스를 팔길래

한번 맛보고 싶었는데, 생망고가 아니라 엑기스나 그런 거 아닐까 싶어서 그냥 포기.

이제 바닷가에 보다 바싹 붙어서 걷기 시작했다. 검은 빛의 현무암 덩어리들이, 살짝 침침한 날씨 아래 빛을 머금었다.

이건 일종의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인 거다. 돌이 두 개 이상만 다소곳이 쌓여 있으면, 삼층이 되고 사층이 되는 건

순간이다.

눈앞에 보이는 건 서건도, "썩은 섬"이란 우리말 지명을 굳이 한자로 옮기다 보니 서건도가 되었다 한다. 섬의 토질이

부식되어 있어서 썩은 섬이라 했다던가. 만조 때는 섬이 되고, 간조 때는 짧으나마 '모세의 기적'이 벌어지는 곳.

서건도로 향하는 구간은 일명 '일강정바당올레'라고도 한다. 일일이 손으로 돌을 골라낸 끝에 새로운 바닷길을

만들어 냈다고 한다. 한번 그어진 얇은 선 위에 숱한 덧칠을 통해 굵게 만들어내듯, 올레길은 이제 수많은 사람들이
 
밟고 지나며 더욱 뚜렷이 패일 거 같다.

서건도. 썩은 섬. 맘먹으면 섬에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제주도와 연결되어 있었지만, 물이 차들어오는 건 또 금방인지라

조금 가보다가 말았다. 가봐야 뭐 별거 있겠어, '저건 신포도야' 이런 마음으로.

바닷가에 떠밀려 온 거겠지. 하얗게 표백되어 버린 나무가 해안가에 길게 누워있었다. 넌, 어디까지 가봤니.(이러고)

바닷가에 바로 붙어있으니 토질이 좋을리가 없다. 소금기 짭짤한 바람이 사시사철 24시간 불어올 텐데, 그 바로

옆에서도 이렇게 흙을 일구고 작물을 돌보시는 분. 대체 저 고랑 사이로 무엇이 튀어올라올지 모르겠지만, 그게

뭐든 튼튼하게 잘 여물었으면 좋겠다.

물질 나가시나보다. 잠녀 아주머니 두 분이 바삐 걸음을 옮기셨고, 나는 그 빨갛고 노란 장갑의 색감이 너무 좋아

카메라를 바삐 들이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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