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 경로(총 15.1km, 4~5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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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올레 공식홈페이지.(www.jejuolle.org)

올 여름에 10만명이 다녀갔다는 제주도 올레길, 제주도 사람들끼리 제주도가 가라앉는 거 아니냐는 농담도 돌았댄다.

도보여행자의 성지라는 스페인의 산티아고를 벤치마킹했다지만 없던 길을 새로 만들었다기보다는, 원래 제주도

사람들이 놀멍(놀면서), 쉬멍(쉬면서) 즐기던 길들을 정식으로 코스화했다는 게 맞을 듯 하다.


어찌 하다보니 저번주 목요일 저녁, 제주도에 있었다. 다음날 하루 걸었던 올레길 7코스.

외돌개 근처 솔숲에 숨어있는 자그마한 까페. 아침 이른 시간이라 아직 문은 안 열었다.

제주도의 남해안. 독특한 구름이 씽씽 달리고 있었다.

뭔가, 의도를 갖고 찍어본 사진. 나와 함께 나란히 서서 저 너머를 바라보는 것 같지 않을까 싶도록.

왼쪽을 굽어보면 부지런한 배도 지나가고.

여름휴가철 내내 사람들이 꼬리를 물고 순례했다던 올레길은 이제 고즈넉하다. 앞서 걷고 있는 엄마와 동생.

다복솔이 살짝 얹힌 제주도의 남쪽 끄트머리. 누구던가 조선의 선비 하나가 기생과 흥취를 나눌 때 썼던 표현, '다복솔'.

외돌개가 왼켠에 자리했다. 용암이 분출하면서 신도 걸려 넘어질법한 거대한 돌부리가 솟구쳐 버린 셈이다.
 
삐쭉, 하고. 외돌개라..순우리말 이름도 멋지다. '외', 외롭게, '돌', 돌출해나온, '개', 개....식끼?ㅡㅡ;

홀로 우뚝 솟은 모습이, 아래에서 봤다면 더욱 당당하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위에서 이렇게 봐도 나름 느낌이 살고.

외돌개를 끼고 걷는 길, 바다에만 던져뒀던 시선을 육지쪽으로 거두니 잘 정돈된 공원이 나타난다.

외돌개가 유명해진 건 이곳에서 대장금 촬영을 하고 나서란다. 그렇지만 사실 렌트카 몰고 돌아다니는 여행에서

이런 단촐한 지점을 꼼꼼히 보기란 쉽지 않을 거다. 걷기가 주는 묘미란 게 그런 거 아닐까. 완만하고 연속적인

그림, 궤적 위에서 뭔가를 지긋이 바라볼 수 있다는 거. 뚝,뚝, 끊겨서 소위 '명승지'가 눈앞에 나타나는 게 아니라.

아침해가 떠오르는 바닷가 벤치에 앉아 그날의 따뜻한 신문을 펼쳐보는 어르신의 여유. 그치만 왜 신문을 보시나요,

이왕이면 조금은 두툼하고 오랜 시간의 세례를 받은 책이 좀더 운치있을 텐데.

언덕 위의 하얀 집. 누군지 몰라도 그럴 듯한 별장, 혹은 펜션 하나 잘 지어놓았다. 저런 집에 살고 싶다, 라는

과거의 나이브하고 다소 진부한 찬탄은 어느새 '저런 펜션/별장 하나 갖고 싶다'라는 속물적 욕망으로 바뀌었다.

제주도에 많은 거 세 개 중 하나, 바람을 상징하는 신물이랄까. 바람개비. 아까 외돌개에 걸려넘어진 신이란 녀석,

울먹이며 꼬장부리고 있을 때 달래주려고 바람개비 몇 개 듬성듬성 꽂아놓고 준비중인 게다. 그녀석의 둔하고

무딘 손끝에서 쉬이 분질러지지 않도록 강철로 만들어놓은 커다란 바람개비로다가.

앞서거니 뒷서거니, 사람들의 보폭이란 게 비슷한 거 같으면서도 다 다르다. 더구나 카메라를 들었는지 짐은 얼마나

챙겼는지 등등 변수란 건 찾아보면 참 많은 거다. 게다가 오늘 하루의 일정, 목적지도 다르니 호흡도 달라진다.

외돌개를 빠져나가는 길 어디메쯤. 구불구불한 길을 걷는 게 참 재밌다. 더구나 어딘가에 도착하기 위해 차를 타듯

'수단'으로 걷는 게 아니라, 그냥 '거기 산이 있어서 오른다'는 식으로 거기 길이 있어서 걷는다는 맘으로 걷고 있자니

마음이 참 너그럽다. 실은, 금요일에 휴가를 낸 덕분인지도 모른다.

왼켠엔 푸른 바다, 오른켠엔 초록 들판. 그 사이로 구불구불, 좌우상하로 굽이치는 길.

제주도는 네번째다. 꼬맹이 때 한 번, 대학교 1학년 때 자전거로 해안도로 일주 한번, 작년에 국제행사 때문에 한번.

그리고 올레길을 처음 걸어보는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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