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봉터널에는 차들이 다니는 2차선 짜리 터널 두 개가 돼지 콧구멍모냥 만들어져 있다.

그리고 터널마다 한쪽 벽면에 바싹 붙어선 온통 도로로부터 차폐된 보행자용 통로도 있다.

보통 차들이 달리는 속도가 통로 한쪽 끝에서 다른쪽 끝까지 윙윙 울리며 정신을 빼놓기 마련이지만.

차들이 문득 끊긴 어느 한순간은, 앞선 사람의 실루엣이 반가울 정도로 괴괴하기만 하다.

터널 안, 그리고 다시 그 안의 통로 안에서 부산스레 사면을 부딪기는 발걸음 소리. 통로 끝이 더욱 멀기만 하다.

불쑥 어디로던 전화를 해보고 싶어지는, 어렸을 적이라면 '오줌이 마려워지는' 그런 타이밍.

어느 순간, 문득 한계다, 싶은 자각과 함께 숨이 턱 막혀올 때가 있다. 여태 숨을 꾹 참고 물속 깊이깊이

잠수한 채 버티고 있었던 걸 몰랐기라도 하듯, 공간을 찢고 어디론가 고개를 내밀어 숨을 헉헉 몰아쉬고

싶을 때가 있다. 자그만 비상구가 그나마 자그마한 위안을 주지만 갑작스레 쳐들어온 폐쇄공포증을

달래기엔 역부족이다. 얼개 밖 내달리는 차들이 더욱 비인간적으로 보이는 순간.

앞쪽에서 왠 아주머니가 빠른 걸음으로 걸어오더니, 훅 뒤로 지나쳐간다. 카메라를 들고 이 퀘퀘하며 먼지시꺼먼

통로 안에서 미적미적대고 있는 사람이 못 미더웠는지 걸음은 갈수록 빨라진다.

늘 한박자가 늦는다. 옆에서 내달리던 소음들이 뚝 끊겼음을 느끼는 건, 이미 아스팔트 위 빨갛고 노란 조명들이

멀찌감치 내뺀 한참 후다. 내가 보는 세상에, 내가 듣던 세상이 BGM처럼 깔려 있었다. 제대로 보고, 제대로

듣고, 제대로 느끼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또 한번 내 곁을 지나치는 걸음걸이. 이번에는 조금 더 흐느적대고 조금 더 탄탄한 자신감이 느껴진다.

니가 날 어쩌겠어, 라는 분위기랄까. 그의 두 다리가 통로 속에다 쉼없이 자잘한 가위질을 치며 지나갔다.

사각사각, 사각사각.

그러고 보니 그림자가 온통 제 맘대로 뻗어나있다. 터널 속을 뱀처럼 잇고 있는 주홍 백열등 때문에 이미 마구

흩뿌려진 수십개의 그림자들은, 오가는 차의 강렬한 서치라이트를 맞고 번번이 죽었다 되살아나곤 했다.

통로가 끝나면서 터널도 끝났다. 한 200여 미터쯤 되던가. 빈틈없이 구획해 놓은 보행자의 공간을 벗어나려는 순간,

확 넓어지는 보행자의 세상. 그렇지만 기실 보이지 않는 차단막이 차의 공간, 사람의 공간을 나누고 있는 거다.

그러고 보면 참 솔직하달까. 차와 인간의 공간을 선명히 갈라놓고 있는 차단막. 그리고 인간과 자연의 공간을

갈라놓고 있는 터널일 수도 있겠고 말이다. 터널을 걸어나오니 무슨 동굴 탐험하고 나온 느낌, 근데 왠지 기분은

무지하게 가라앉아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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