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터널마다 한쪽 벽면에 바싹 붙어선 온통 도로로부터 차폐된 보행자용 통로도 있다.
보통 차들이 달리는 속도가 통로 한쪽 끝에서 다른쪽 끝까지 윙윙 울리며 정신을 빼놓기 마련이지만.
불쑥 어디로던 전화를 해보고 싶어지는, 어렸을 적이라면 '오줌이 마려워지는' 그런 타이밍.
잠수한 채 버티고 있었던 걸 몰랐기라도 하듯, 공간을 찢고 어디론가 고개를 내밀어 숨을 헉헉 몰아쉬고
싶을 때가 있다. 자그만 비상구가 그나마 자그마한 위안을 주지만 갑작스레 쳐들어온 폐쇄공포증을
달래기엔 역부족이다. 얼개 밖 내달리는 차들이 더욱 비인간적으로 보이는 순간.
통로 안에서 미적미적대고 있는 사람이 못 미더웠는지 걸음은 갈수록 빨라진다.
멀찌감치 내뺀 한참 후다. 내가 보는 세상에, 내가 듣던 세상이 BGM처럼 깔려 있었다. 제대로 보고, 제대로
듣고, 제대로 느끼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니가 날 어쩌겠어, 라는 분위기랄까. 그의 두 다리가 통로 속에다 쉼없이 자잘한 가위질을 치며 지나갔다.
사각사각, 사각사각.
흩뿌려진 수십개의 그림자들은, 오가는 차의 강렬한 서치라이트를 맞고 번번이 죽었다 되살아나곤 했다.
확 넓어지는 보행자의 세상. 그렇지만 기실 보이지 않는 차단막이 차의 공간, 사람의 공간을 나누고 있는 거다.
갈라놓고 있는 터널일 수도 있겠고 말이다. 터널을 걸어나오니 무슨 동굴 탐험하고 나온 느낌, 근데 왠지 기분은
무지하게 가라앉아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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