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명 : 쿠웨이트 (State of Kuwait)

○ 수도 : 쿠웨이트 시티(Kuwait City) (인구 약240만명)

○ 국가원수 : H.H. Sheikh Sabah Al-Ahmed Al-Jaber Al-Sabah(15대)

○ 면 적 : 17,818㎢(경상북도 크기) - 국토의 대부분이 사막지역

○ 위 치 : 북위 28-30도(한국과 대만 중간), 동경 46-48도

(우랄산맥과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 중간)

○ 인 구 : 약 340만명

○ 민 족 : 쿠웨이트인 105만명(31%) 외국인 235만명(69%) (인도, 이집트, 필리핀,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스리랑카 등)

○ 종 교 : 이슬람교 (수니파 70%, 시아파 30%)

○ 언 어 : 아랍어 (영어도 일반적으로 통용)

○ 정부형태 : 입헌군주국 (의원내각제적 요소 가미)

○ 의 회 : 의원내각제적 요소를 가미한 입헌왕정국

○ 주요정당 : 공식적으로 정당은 인정되지 않고 있으며 비공식적으로

2개의 수니파 단체와 1개의 시아파단체가 있음

○ 독립기념일 : 1961년 6월 19일 영국 보호령으로부터 독립(국경일 2월 25일)

○ 화폐단위 : Kuwait Dinar (08. 9월 현재 US$ 1 = KD 0.266770)

○ 산업구조 : 석유(40%), 제조업(13%), 서비스(25%), 공공서비스(22%)

○ 주요수출품 : 원유(원유 매장량: 990억 배럴, 전 세계 매장량의 10%,)

주요수입품 : 화학제품, 전기전자제품, 기계, 운송기기, 건축자재, 식품

○ 석유매장량 : 매장량 1,015억배럴(세계 4위) (OPEC 자료)

○ 천연가스매장량 : 매장량 35조 입방피트 (OPEC 자료)

○ 경제적 강점 : 석유자원 풍부 (세계매장량의 10%로 세계 4위)

○ 경제적 약점 : 노동력 부족, 과도한 석유산업 의존

○ 1인당 국민소득 :US$32,940 (2008 추정, IMF)

○ 국민총생산 : US$1,120억 (2008 추정, EIU)

○ 기 후 : 열대성 사막기후

경제개황 및 주요지표


경제현황 및 전망

○ 석유의존형 경제 구조

- GDP의 60%, 수출의 95%, 정부 재정수입의 80%를 석유에 의존

- 고유가로 인한 5년 연속 재정 흑자를 투자기금으로 축적 운용중

- 석유 판매 수입 10%를 차세대 기금으로 적립, 투자전문기관을 통한 해외 투자 (1,000억불 규모)

○ 고유가로 인한 재정수입을 바탕으로 건설 경기 호황 지속

- 고유가로 인한 재정 수입 급증과 이라크전 이후 안보 위협 감소에 따라 그간 미뤄 왔던 대규모 발전소 및 담수화 공장, 도로 및 항만 등 인프라 건설 증대

- 향후 4~5년간 고유가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원유 및 석유 제품의 증산을 위한 석유 생산 시설 투자도 더욱 확대될 예정

○ 걸프 지역의 무역 및 물류 중심지 건설 계획

- 걸프만 최북단에 위치한 지리적 이점을 활용, 이란, 이라크, 사우디 등 인근 대규모시장을 대상으로 무역 및 물류 중심지 건설 추진 중

○ 주요경제지표

구분

2003

2004

2005

2006

2007

2008*

GDP(억 달러)

478

594

838

1,022

1,110

1,724

1인당 GDP(달러)

18,783

21,229

27,945

31,923

32,653

47,885

경제성장률(%)

16.5

10.7

11.4

6.3

4.7

6.8

재정수지/GDP(%)

19.7

30.6

40.5

43.0

37.8

-

물가상승률(%)

1.0

1.3

4.1

3.0

5.5

8.0

경상수지(백만 달러)

8,430

18,161

34,308

50,995

47,495

83,686

수출(백만 달러)

18,746

30,089

46,971

58,638

63,723

110,763

수입(백만 달러)

11,406

11,663

14,238

14,350

20,638

26,925

(자료원 : 한국수출입은행, EIU Country Report)

최근 경제 동향

○ 정부 재정수입 급증

- 고유가 행진에 힘입어 7년 연속 흑자 시현

- 이러한 재정 수입을 바탕으로 건설 붐이 일어나고 있음.

<연도별 재정흑자 규모>

구 분

금액 (백만불)

01/02

02/03

03/04

04/05

05/06

06/07

총 수입

18,340

21,371

23,838

30,801

49,028

55,214

석 유

15,550

18,897

21,134

28,079

46,271

51,825

비 석유

2,790

2,478

2,704

2,722

2,760

3,385

총 지출

16,309

16,931

18,979

21,701

24,507

29,507

초과 분

2,027

4,440

4,863

9,096

24,521

25,707

(자료원 : National Bank of Kuwait) * 회계연도 : 4.1일~익년 3.31일

○ 북부유전 개발 및 석유생산 능력 확대 추진

- 정부 및 KOC는 70억불 규모의 북부유전개발 계획(일명 : Kuwait Project)의 효율적인 추진을 위해 외국석유회사(콘소시움 형태)의 생산참여 적극 허용

- 그러나 국회의 반대로 수년간 지연되어 오고 있음.

○ GCC 경제통합 참여

- 관세 단일화 (03년 9월, 5% 균일)

- 2010년 까지 GCC 단일통화 도입을 위한 노력에 적극 참여

인플레이션 현상 심각

- 정부의 지속적인 물가 안정책에 힘입어 안정 기조를 유지하여 왔으나 최근 유가 상승으로 인해 물가가 치솟고 있는 실정 (소비자 물가 상승률: 1.0%(03), 1.3%(04), 4.1%(05), 3.0 %(06), 4.3%(07))

○ 경기활성화 및 노동력 부족에 따른 임금 인상

- 각종 건설 붐이 일고 있으며 최대 인력 공급국인 인도 자체 경기가 좋아지자 쿠웨이트내에서 인력공급이 원활치 않아 인건비 상승(연간 9%)

- 150억불 규모의 단일 규모 세계 최대 신규 정유공장 공사 등이 시작되면 인력 부족 현상은 더욱 심각할 것으로 전망됨.

경제구조 및 정책

○ 경제 개발 계획

- 쿠웨이트는 67년 최초의 경제개발계획을 입안하여 이를 추진한 이래 경제개발계획이 계속 유야무야 상태를 계속해 오고 있음.

- 당시 입안되었던 경제개발 계획안들은 정책 가이드라인의 역할만 함.

- 최초의 경제개발계획은 1985/1986~1989/1990 계획안으로 볼 수 있으며, 주목표는 사회간접시설의 확충 및 민간부문의 육성

- 현재 4차 경제개발 계획(2007~2011)은 신도시 및 ITC 건립계획 등을 포함하고 있으며 총규모 730억 달러로 국회 심의 절차를 밟고 있으나 지연되고 있어 향후 계획이 불투명

○ 주 5일 근무제 채택

- 94년 1월 6일부터 모든 정부기관의 근무를 주 6일 근무제에서 주 5일 근무제로 변경 공공부문의 주5일 근무제 채택에 따라 현재는 대부분의 사기업들도 주5일 근무제를 실시함.

- 공휴일 변경 : 2007. 9. 1일자로 기존의 목, 금 공휴일 체제에서 금, 토 체제로 변경함.

○ 민영화 정책 추진 박차

- 걸프전 후 유가 하락과 걸프전비 부담으로 인해 약 400억달러에 달하는 재정 적자를 기록하였고, 또한 이라크와 이란 시장을 대상으로 하던 중개무역의 단절 등에 따라 국내 경기가 극도로 위축됨.

-에 따라 침체된 국내경기의 활성화를 위해 IMF 및 WORLD BANK 등 국제기구 전문가들을 초청하였고, 자국의 경제정책에 관해 수차례 협의한 것을 토대로 민영화 정책을 적극 추진중

○ 각종 계약 시 발생하는 커미션 등록법 발효

- 쿠웨이트 정부는 공공부문의 계약에 따른 각종 이권 개입을 방지하고 투명성을 유도하기 위해 96년 8월 11일자로 발효된 커미션 등록법을 공표함.

- 법 적용 대상은 정부부처, 쿠웨이트 시청, 공공법인, 기관, 연구소, 정부가 50% 이상투자한 회사이며, 국방부문을 포함하여 국제입찰, 국내입찰 수의계약 등을 막론하고, 공사 발주계약 시 계약자(공사 수주자, 물품공급자)가 에이전트 등 모든 형태의 브로커에 지불하는 커미션을 발주처에 통보하는 계약조항을 의무화하였음.

주요산업


석유 및 정유산업

○ 쿠웨이트 제조업은 정유부문(REFINING)이 포함되어 GDP의 11% 수준이고, 정유부문이 GDP의 7.7% 비중 차지

○ 정유부문의 경우 제조업 기반구축 및 수출제품의 고부가 가치화 차원에서 정유능력 확대가 꾸준히 시도되어 왔고, 향후에도 정유부문 강화는 계속 될 것으로 전망

○ 정부는 84만 배럴의 정유능력을 2015년까지 100만 배럴로 확장할 계획을 갖고 있으며, 이를 위해 4번째 정유공장 건립을 추진 중

○ 정유부문은 국영기업인 KNPC(Kuwait Nat’l Petroleum Co.)에 의해 운영되고 있으며 산하 3개의 정유단지가 가동 중

- AHMADI REFINERY (정유능력: 44만 B/D)

- MINA ABDULLAH REFINERY (정유능력: 23만 B/D)

- SHUAIBA REFINERY (정유능력: 16만 B/D)

○ 한편 제조업 기반 강화 차원에서 걸프전 이후 유화부문에 대대적인 투자가 이루어짐.

금융보험 산업

○ 쿠웨이트의 금융산업은 중앙은행(CENTRAL BANK OF KUWAIT), 7개의 시중은행, 4개의특수은행, 18개의 투자은행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밖에 다수의 환전상이 존재함.

○ 쿠웨이트의 금융부문은 규모 면에서 GCC제국 내에서는 사우디, UAE에 이어 3위에 위치

○ 70년 말, 80년대 초까지만 해도 쿠웨이트는 은행 자산 규모 면에서 UAE를 압도했고 사우디와 거의 비슷한 수준이었으나 82년 비공식 증권시장(SOUQ AL-MANAKH) 붕괴여파로 결정적인 타격을 받아 시중은행들이 크게 부실화되었고, 이후 90년 이라크 침공으로 또 한 차례의 홍역을 치름.

쿠웨이트 정부는 은행정상화 지원을 위해 92년 악성채무 해결프로그램(DDSP: DIFFICULT DEBT SETTLEMENT PROGRAM)하에 중앙은행으로 하여금 시중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악성부채(US$ 210억 상당)를 인수케하고 정부채권(10~20년 만기)을 발행하여 시중은행에 이를 분배

○ 이와 함께 증권파동 관련 채무자의 채무 변제를 촉진하기 위해 부채원금 탕감 및 상환기간 연장을 골자로 한 악성부채상환 법을 93년 제정하였음.

가스산업

○ '05년 에너지부장관은 쿠웨이트 Sabrya 및 Umm Niqa 지역 등 북부지역에 원유생산과 연계되지 않은 38조입방피트 상당의 천연가스가 매장되어 있다고 발표(쿠웨이트 소비량 기준 40년 사용가능)

- 쿠웨이트는 12억 입방피트/일의 천연가스를 소비하고 있으며, 향후 20억 입방피트/일로 증가될 것으로 전망

○ 쿠웨이트는 현재 카타르 등으로부터 천연가스를 수입하고 있으며, 이란, 이라크 등으로부터 천연가스 수입 고려중

○ 국영원유공사(KOC)는 북부 가스 생산지대에서 '08년 2월부터 약 2억입방피트/일의 천연가스 생산을 개시하고, 2011년부터는 6억 입방피트/일, 2011년에는 약 10억 입방피트/일을 생산할 수 있는 체제를 구축할 계획임.

- 본 가스생산은 국내소비를 우선적으로 고려하고 있으며, 기존 발전소와 수비야 지역에 설립중인 1,500MW발전소 및 PIC의 Olefin Ⅲ 석유화학공장 등에 가스를 공급할 전망

○ 한편, 쿠웨이트, 사우디, 이란 사이에 위치한 Dorra 해저 천연가스전 개발과 관련하여 3국간 개발권 분쟁이 지속되고 있으며, 이란은 자국 소유를 주장하고 독자개발 추진

발전 산업

쿠웨이트는 현재 10,000 MW의 발전 시설을 갖추고 있으나, 매년 7% 전력수요가 증가로 전력난을 겪어 왔으며, 06.8.21일- 8.30일간 쿠웨이트 일부 지역에 전력 공급 중단 사태 발생

※ 쿠웨이트의 일인당 전력 사용량이 16,544 kwh로서 세계7위

주재국 에너지부는 2005/6년에 8억9천만불의 발전소 투자 계획을 수립하였으나, 주재국 에너지부의 복잡하고 까다로운 입찰 규정 등으로 세계 유수 건설업체들이 에너지부 발주공사 입찰을 회피하여 전력 증강 계획에 차질이 예상됨.

건설업

○ 유가에 의해 경제가 좌우되는 OIL 의존형 경제로 고유가 시 고투자, 저유가 시 저투자 경향

○ 관공서위주의 발주에서 최근에는 BOO/BOT 형태의 공사 발주도 추진되고 있음.

○ 석유화학, 발전 및 담수, 시멘트공장 등 각종 플랜트건설시장이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됨.

- 사우디는 담수 생산 공장 건설, 하수정화 처리시설 등 수자원 부문에 2024년까지 463억불을 투자할 계획임.

- 담수 및 전력을 민간중심으로 생산하고 운영하는 독립 수전력 프로젝트를 수전력회사(담수청과 사우디전력회사 합작회사) 주관으로 지속적으로 추진 계획

○ 쥬베일 및 얀부지역을 중심으로 석유화학공장 건설이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으며, 2020년까지 SABIC과 민간 석유화학회사를 중심으로 석유화학 플랜트 건설을 위해 1,400억불을 투자할 계획

정보통신산업

○ 쿠웨이트의 정보통신 산업은 1992년도를 기해 정부 각 부처의 개인용 컴퓨터시스템 도입을 시작으로 현재는 정부, 기관, 업계 등에서 100% 개인컴퓨터로 업무를 수행하고 있음. 인터넷사용자도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으며, 현재 3개의 인터넷 공급업체(Quality Net, Kems, Fast Teleco)가 있음.

○ 인공위성을 통해 간접적으로 공급하고 있는 업체는 다수 존재. 1995년 세계에서 3번째로 높은 372m의 통신 탑을 건립하여 고도의 국가 정보통신 기반을 구축한 바 있으며, 전 국민의 약 90% 이상이 위성방송을 청취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됨.

○ 전자정부 프로젝트 추진

- 쿠웨이트국회는 2002.4.21 정부 부문 각 분야에서 고급 컴퓨터기술발전을 위한사업으로 300백만 달러 규모로 쿠웨이트 투자청(Kuwait Investment Authority)에 별도 법인 설립을 승인

- 이후 National Higher Committee를 설립하여 전자정부 프로젝트를 총괄하게 하고 그 밑에 Central Technical Body, CTB를 두어 각 정부 부처가 전자정부 프로젝트에 참여하는데 기술적인 도움이나 자문을 할 수 있게 함.

시장환경 및 진출방안

쿠웨이트의 시장환경

○ 걸프전 후 전비 부담, 유가하락으로 인한 수입 감소 등으로 재정적자가 누적되고 이라크, 요르단, 이란과의 무역이 거의 단절됨에 따라 국내경기가 극히 침체되자 이에 대한 대책으로 민간 부문의 활성화를 위해 공기업 매각 및 해외 자본 유치를 추진하게 됨.

○ 쿠웨이트를 중동의 경제 중심지로 성장시키겠다는 계획하에 항만, 도로, 투자자유지역등 국내 사회간접자본시설 건설 및 외국기업 유치를 위한 환경 조성에 노력하고 있음. 이와 병행하여 쿠웨이트인 또는 기업들이 국내 산업 발전에 주도권을 갖고 참여할 수 있도록 외국기업을 통제할 수 있는 기존 정책을 고수함.

○ 즉 원유, 금융, 보험, 부동산 분야에 대해서는 자국민으로 간주하고 있는 G.C.C.국민외의 외국인 투자는 일체 인정하지 않았으나 '94년4월에 주식을 운영하는 KUWAIT FIRST INVESTMENT FUND를 설립하여 동 FUND를 통한 간접적인 외국인 투자를 허용함.

○ 최근까지 외국인의 단독투자를 금지하면서 출자한도를 49% 이하로 제한하였으나 외국인 투자유치의 활성화를 위해 ‘99년 6월에 개정 외국인 투자법규를 제정한 후 2001년5월 국회를 통과, 시행함으로써 그간 외국인의 대 쿠웨이트 투자에 걸림돌이 되어왔던 주요 사항들이 제거됨.

진출방안

○ 쿠웨이트 현지에서 한국기업 단독 투자 방식의 경우 현지 관습 및 문화가 한국과 크게 달라 한국 기업으로서는 이를 부담스러워 하는 것으로 판단되며, 또한 쿠웨이트에서는 비즈니스 전반에 걸쳐 현지인 에이전트를 통한 거래관계가 일반화되어 있기 때문에 이러한 형태의 합작 투자가 주로 선호되고 있음.

○ 대 쿠웨이트 수출활력 회복을 위해서는 주력품목의 고부가가치화, 플랜트 사장 개척, 신규품목 발굴 등이 필요

○ 전반적인 한국상품 인지도는 높은 편으로, 유럽 및 미국, 일본제품과 비슷한 수준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선진국 제품에 비해 가격경쟁력을 확보하고 있음 2002 월드컵 등의 한국의 인지도를 제고하는 기회가 되었음.

○ 전체 전망

- 석유분야 투자확대 등으로 향후 2년간은 연간 200억불 내외 프로젝트 발주가 지속 전망되나, 이후 신규 프로젝트 발주는 감소 전망

- 도로, 항만, 신도시 등 인프라 발주는 증가 전망되며, 이라크 정세 안정시에는 부비얀섬, 실크시티 프로젝트 등 본격 추진 전망

○ 부분별 전망

- 석유 플랜트 분야 : 2020년까지 약 680억불 신규 투자계획

- 발전, 담수 플랜트 분야 : 2010년까지 약 70억불 투자 전망

(7,000MW 용량 추가 증설)

- 일반 건설 분야 : 2020년까지 약 700~1,000억불 투자 전망

○ 미래 프로젝트

- ‘부비얀(Bubiyan) 섬’ 및 ‘팔라이카(Falaykah) 섬’ 프로젝트 : 이라크․이란 접경지역의 부비얀섬(면적 850㎢)과 팔라이카섬(43㎢)을 걸프지역 무역․비즈니스․관광 중심지로 육성할 계획

- Silk City 프로젝트 : 북부 “사비야 반도” 지역(250㎢)에 주거․상업․금융․위락 등 다목적 기능이 포함된 인구 70만명 규모의 신도시건설 프로젝트를 구상중(30년간 870억불 투입)

○ 쿠웨이트는 GDP의 15~20% 내외를 건설부문에 투자하고 있으며, 연간 170억불('07)내외 건설 투자

- 플랜트 100억불, 토목 30억불, 건축 등 40억불

○ ‘08년에는 제4차 정유공장(140억불) 낙찰자 발표, Clean Fuel Project(70억불) 등 약 300억불 규모 최대 프로젝트 발주예정

- 최근 고유가 지속에 따른 높은 재정수입을 바탕으로 석유관련 프로젝트 발주가 크게 증가 추세

- 또한 인구 증가에 따른 신도시, 발전․담수 프로젝트도 증가

○ 대부분 프로젝트가 최저가 입찰 원칙 적용으로 비교적 우리업체에 유리한 경쟁여건

- 그러나, 현지 에이전트 의무선임제도, 쿠웨이트인 현지의무고용 비율(20%) 등 진입장벽 존재

수출유망분야

○ 석유, 정유

- 쿠웨이트 제조업은 정유부문(GDP의 7.7%)이 포함되어 GDP의 11% 수준임. 정유부문의 경우 제조업 기반구축 및 수출제품의 고부가 가치화 차원에서 정유 능력 확대가 꾸준히 시도되어 왔고, 향후에도 정유부문 강화는 계속될 것으로 보임. (국내정유능력은 원유생산의 45% 수준)

- 쿠웨이트 원유부문은 지속적으로 외국 석유메이저로부터 개방 압력을 받아 왔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전혀 고려치 않았으나, 원유증산을 위한 KUWAIT PROJECT를 추진하면서 개방이 불가피하게 전개되고 있음.

- KUWAIT PROJECT란 북부지역 유전개발을 위해 약 70억 달러를 투자하는 프로젝트로 완료 시 90만 배럴의 증산효과를 거둘 수 있어 정부는 국회의 반대를 무릅쓰고 강력히 추진하고 있는 계획임.

○ 가전산업

- 생산 및 수요동향 쿠웨이트는 산업기반이 취약하여 가전산업 생산이 전무해 가전제품 전량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음.

- 수입동향 일본과 한국으로 부터의 수입이 각각 30% 이상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양국 간에 경쟁이 치열한 상태이며, TV의 경우 소매가 기준 연간 약 1억2,000만 달러 규모로 추산됨.

- 한국산TV 20인치의 경우 소매가가 일본산에 비해 약 40% 이상 저가이며 말레이시아산과 비슷한 수준이나, 월드컵 개최 등 한국산 제품에 대한 이미지 고양으로 삼성, LG 대형 TV는 고급브랜드에 정착되어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음.

○ 건설업

- 산유 부국인 쿠웨이트는 80년대 인프라 구축이 대개 마무리되었기 때문에 70년대와 80년대 같은 대형 인프라 공사는 퇴조 추세임

- 반면 Oil Sector 기반구축에 최대 역점을 두고 관련 프로젝트가 최우선 순위로 추진되고, 프로젝트 발주 경향 유가에 의해 경제가 좌우되는 OIL 의존형 경제로 고유가 시 고투자, 저유가 시 저투자 경향을 보임.

IT 및 정보통신

- 쿠웨이트의 정보통신 산업은 1992년도를 기해 정부 각 부처의 개인용 컴퓨터시스템 도입을 시작으로 현재는 정부, 기관, 업계 등에서 100% 개인컴퓨터로 업무를 수행하고 있음. 인터넷사용자도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으며, 현재 3개의 인터넷 공급업체(Quality Net,Kems, Fast Teleco)가 있으며, 인공위성을 통해 간접적으로 공급하고 있는 업체는 다수가 있음.

- 1995년 세계에서 3번째로 높은 372m의 통신 탑을 건립하여 고도의 국가 정보통신 기반을 구축한 바 있으며, 전 국민의 약 90% 이상이 위성 방송을 청취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됨. 2003년 통신 분야의 예산규모는 약 US$ 2.5억 규모로 알려져 있음.

기계 플랜트

- 고유가 기반의 풍부한 오일머니를 바탕으로 기계플랜트 발주확대

- 각종 인프라 구축, 경기활성화에 따른 생산시설 확충 등의 영향으로 기계플랜트 관련설비 및 기자재 수요 크게 증가

- 소형플랜트 설비나 각종 기자재의 경우에는 현지합작투자를 통하여 시장 진출할 경우 효과적 진출 가능

- 한국의 경쟁력이 비교적 취약한 엔지니어링 분야에서는 선진국과 합작투자 진출이 바람직함.



* 위의 자료는 외교통상부, KOTRA, 수출입은행, 한국무역협회, CIA 등의 자료를 기초로 작성되었습니다.



출입국 심사 및 통관

관광 및 상용 목적으로 카타르를 방문할 경우 1개월간 체류 가능한 사증을 공항, 기타 출입국 지점에서 발급 받을 수 있음. 체류기간은 1개월 이며 1개월 추가 연장 가능하고 사증수수료는 QR 100(약 $25)임.

○ 출입국 심사는 한국을 포함 구미선진국 여행자에 대해서는 까다로운 편이 아님. 출입국 카드 기재 제도 없음. 출국시 공항세 없음.

○ 통관심사는 까다로운 편이 아니나, 회교국인 카타르가 공서 양식에 위배되는 품목에 대해서는 반입금지 및 제한품목으로 규정하고, 심사를 까다롭게 하고있음. 술, 돼지고기는 반입 금지되며, 비디오 테이프는 통과가 제한됨.

그 외 언론인들의 위성통신 장비 반입도 사전허가를 받은 후 반입토록 하고 있음.

기후

고온 다습한 여름과 온화한 겨울의 사막성 기후를 특징으로 함.

연중 강우량은 70㎜ 이하로 아주 적으며, 주로 겨울철에 집됨.

○ 겨울철 밤 기온은 10℃까지 떨어지는 쌀쌀한 날씨인 반면, 여름에는 습도 95%, 온도 50℃까지 올라감.

○ 강우량 : 연 10-78㎜ (매우 적음)

의료 및 건강

○ 의료수준은 높지 않은 편이나, 의약품은 충분히 갖추어져 있음. 대부분의 치료는 국립병원인 Hamad Hospital에서 실비부담으로 하고 있으며, 그 외 1차 진료기관인 Primary Health Center 및 일부 사설병원이 있으며, 국립병원에 비해 비쌈.

예방접종 및 경질환의 경우 치료가 가능하나, 중질환의 경우 치료가 불가능한 경우도 있음.

취업을 위해 입국할 시 카타르 의료 기관으로부터 신체검사를 받아야 함.

숙소관련 사항

○ 전 압 : 220-240V / 50Hz

○ 수돗물 : 식수용 부적절 (생수이용 권장)

○ 호텔 전화이용 : 시내 및 국제전화 (9+전화번호)

○ Tipping : 주지 않아도 무방하나, 호텔이나 식당에서 제공된 서비스에 대해 약간의 팁을 제공하면 사양치는 않음.

대중교통

○ 대중교통 수단은 택시뿐이며, 거의 개인차량을 이용하고 있음.

○ 한국 운전면허증 소지자에 대해 필기시험 및 기능시험을 실시하지 않고 간단한 시력검사후 카타르 운전면허증을 발급하여 주고 있음.

○ ‘05.10월부터 대중교통 수단으로 특정 노선만 버스 운영

치안상태가 아주 양호하고, 범죄 발생률이 낮은 편이나, 밤에 여성이나 어린이 등 혼자서 택시를 타거나 멀리 나갈 때는 특별한 주의를 요함.

기타 여행정보

○ 시 차 :GMT + 3 (사우디, 바레인, 이집트와 동일), 한국보다 6시간 늦음.

○ 우 편

- 우편물은 중앙우체국에 있는 개인 또는 회사의 사서함(P.O.Box)을 통해서 수취 가능함.

- 중앙우체국 및 공항우체국에서 우편물을 송부할 수 있음.

- 우편요금은 비교적 비싼편임. 긴급시 DHL 등 이용 가능

○ 공휴일

- 매주 금․토요일과 카타르 독립기념일 (9.3), 라마단이 끝난 후 일주일 정도의 축제일 (Eid Al-Fitr), 회교 성지순례 (Haj) 종료를 기념하는 회교축일 (Eid Al-Adha)을 휴일로 정함.

- 영업시간

․ 관공서 : 07:00-14:00 (금, 토는 휴무)

․ 상 점 : 08:00-12:00 / 16:00-20:30 영업

○ 방송 및 신문

- 라디오 및 Q-TV는 아랍어, 영어방송을 진행함.

- 영 자 지 : Gulf Times, Peninsula

- 아랍어지 : Al-Rayah, Al-Sharq, Al-Watan

○ 전화 및 위성방송

- 국제 전화료가 아주 비싼 편이며, Collect Call 제도 없음.

- 국가코드는 974이며, 지역번호 없이 개인번호로 되어 있음.

-위성방송 수신은 국영통신공사(Q-TEL)가 독점 운영하고 있는 Cable Channel을 통해 시청 가능함.

※별도 위성수신기 설치시 아리랑 TV 및 KBS-world 위성TV 수신은 가능

도하의 주요명소

○ 카타르는 수도 도하가 인구 및 활동의 중심이나, 도시 크기가 작고, 문화유적이 적어 최근까지 관광산업이 활발하지 않았음.

- 3면이 바다이기 때문에 수영을 즐길 수 있는 모래 해안들이 곳곳에 있으며, 사막관광, 낙타타기 등을 즐길 수 있음.

○ 카타르 국립박물관 (The Qatar National Museum)

- 카타르의 역사적 유물과, 기후, 역사, 환경, 고고학 등을 영화와 자료로 전시

○ 해안도로 (Corniche)

- 13.5km 해안도로로 카타르의 대표적 관광지

○ 알 코르 (Al-Khor)

- 도하에서 북쪽으로 약 65킬로미터(40마일) 떨어진 곳에 있는 작은 해안마을로 작은 박물관, 모스크 사원의 유적과 여러곳에 흩어져 있는 오래된 망루가 있으며 일루 망루는 원형대로 복원되어 잔존함.

○ 사막언덕

- 도하시에서 자동차로 50분정도 소요되며, 모래로 된 50-60m의 언덕

○ 알 자지라 (Al-Jazeera)

- 1996년 11월 개국한 카타르의 위성 텔레비전 방송으로, 카타르 국왕인 알타니 일가가 1억 5000만 달러를 투자해 설립한 민간 상업방송. ‘자지라’는 아랍어로 ‘섬’이라는 뜻임.

주요 연락처

국립병원

- Hamad General Hospital : 444 - 6446(Emergency Department 24시)

- Rumailah Hospital : 432 - 5151(장애인 및 노인 병동)

- Women's Hospital : 442 - 0555(여성을 위한 병동)

한국인이 운영하는 식당

- Moon Palace(한․일식) : 432 - 9700

- Korean Garden(한․중․일식) : 442 - 1853

한국에서 카타르와의 국제통화

- 001 또는 002(국제전화) 974(국가코드) + 희망번호

- 카타르에서 한국과의 전화통화 : 00 +82 + 지역번호 + 희망번호

주요호텔

호 텔 명

전화번호

팩스번호

Four Seasons

494 - 8888

494 - 8282

InterContinental Doha

484 - 4444

483 - 9555

Marriott Doha

429 - 8888

441 - 8784

Movenpick

429 - 1111

429 - 1144

Oasis Hotel & Beach Club

442 - 4424

432 - 7096

Ramada

441 - 7417

441 - 0941

Sheraton Doha Hotel & Resort

485 - 4444

483 - 2323

The Rit-Carlton

484 - 8000

484 - 8484

대사관 정보

○ 대 사 : 김종용

○ 주 소 : P.O.BOX 3727, WEST BAY DIPLOMATIC AREA, DOHA,

QATAR

○ 전 화 : (974) 483-2238/9(지역번호 없음)

○ 팩 스 : (974) 483-3264 / 493-0809

○ E-MAIL : koemb_qa@mofat.go.kr

○ 홈페이지 주소 : http://www.qat.mofat.go.kr

○ 근무시간 : 07:00 ~ 14:00(금/토요일 휴일)










* 위의 자료는 외교통상부, KOTRA, 수출입은행, 한국무역협회, CIA 등의 자료를 기초로 작성되었습니다.

지정학적 위치

아라비아 반도의 서해안 중간지대에 위치, 걸프만쪽으로 약 160㎞ 북쪽으로 뻗어 있는 반도 (남-북 160㎞ / 동-서 80㎞)

Halul 섬 등 다수의 섬을 포함하고 있으며, 사우디와는 육지로 서로 연결되어 있음.

지형 특색

○ 대부분의 지형이 사막평지로 되어 있으나, 60m 높이의 모래 둔덕이 있음. 해발 최고지점은 120m 높이임.

약 6천만년전 해수아래 침잠 되어 있은 영향으로 다수지역에 소금지대가 산재함.

민족구성

○ 카타르인은 17C-18C에서 19C 초엽까지 인근지역에서 이주해 온 아랍계 인종임.

○ 카타르인 외에 인도․파키스탄․이란 등 100여개국의 외국인이 거주함.

주요 도시

○ Doha : 동해안의 항구도시로 수도임. 정치‧경제‧사회생활의 중심지역으로 카타르 전체 인구의 절반이상이 거주함.

○ 기타 석유화학 산업도시인 Messaieed, 유전지역인 Dukhan, 가스생산 지역인 Ras Laffan, Doha 인근 해변도시인 Al-Wakrah와 Al-Khor가 있음.

종교

공식종교는 이슬람이며, 주요 입법원은 회교 샤리아법임.

○ 절대 다수 카타르인은 순니파 이슬람교도이며, 이슬람교 일상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간주되고 있음.

이슬람교 이외의 외국인의 종교에 대해서는 비공식 묵인 등 관용적 태도를 취함.

약사

고대

고고학적 조사에 따르면 BC 4C 남부 이라크와 북부 걸프 아라비아 지대에 번성한 Ubaid 문명이 카타르에까지 미쳤으며, 인간 정주의 흔적을 남김.

BC 5C에 원주민이 정주하기 시작했으며, AD 2C에 아랍세계 지도에 Qatra로 지명이 표기

중세

이슬람 여명기에 Mandher 왕조의 지배하에 있다가 그후 Khawarej와 Qarameta의 지배를 받음.

○ 6C에 인도행 무역전략 거점으로 포루투갈의 통제하에 있었으나, 곧 오토만 터키의 영향권으로 들어감.

근대

○ 1860년대 Bani Utab족 카타르에 정착

○ 1868 : Sheikh Mohamed bin Al-Thani족 영국과 선린 외교관계 수립, 협정 체결 (이후 현재까지 Al-Thani 왕가가 지배)

○ 1872 : Ottoman Turkey 지배

○ 1876 : Ottoman Turkey의 정부 수립

○ 1880 : Bahrain과 영토보호 협정 체결

○ 1899 : Kuwait와 영토보호 협정 체결

○ 1913 : 영국과 Ottoman Turkey 제국간 협정체결로

카타르 독립인정

○ 1914 : 영국과 Ottoman Turkey 제국간 정식 협정 체결로 영국은 카타르 국내 문제 불간섭 언약

(동시에 카타르 반도내의 터어키 세력권 규정)

○ 1916 :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터어키 세력 물러가고 영국세력 신장

현대

○ 1961 : OPEC 정회원으로 가입

○ 1970 : 영국 보호령으로부터 아랍 연맹 가입을 허락하는 신헌법 제정 독립 선포

○ 1971. 9. 3 : 영국과의 보호협정 폐지, 완전독립을 선언

○ 1971. 9. 4 : Sheikh Ahmed bin Ali Al-Thani 국왕(Emir) 즉위

○ 1971 : 아랍연맹 및 유엔에 각각 가입 (9.11 및 9.21)

○ 1972. 2.22 : 궁정 쿠데타로 국왕 (Sheikh Khalifa bin Hamad Al-Thani) 즉위

○ 1977. 5.31 :Hamad 왕세자 국왕 후계자로 지명

○ 1995. 6.27 :궁정 쿠데타로 현 국왕 (Sheikh Hamad bin Khalifa Al-Thani) 즉위

○ 1996.10.22 :현 국왕의 3남인 Sheikh Jassim bin Hamad Al-Thani를 왕세자로 책봉

○ 1999. 3. 8 : 중앙자치의회 의원 선거 실시 (29명)

○ 2002. 7. 2 : 영구헌법안 발표 (5장 150조)

○ 2003. 4. 7 : 중앙자치의회 의원 선거 실시 (여성의원 1명 최초 당선)

○ 2003. 4.29 : 영구헌법안 국민투표실시 (96.6% 찬성, 통과)

○ 2003. 8. 5 : 현 국왕의 4남인 Sheikh Tamim bin Hamad Al-Thani로 왕세자 교체

○ 2003. 9.16 : 제1부총리 (외교장관 겸직) 및 제2부총리 (에너지․산업장관 겸직) 신규 임명

○ 2005. 6. 1 : 영구헌법안 발효

○ 2007. 4. 1 : 지방선거

○ 2007. 4. 3 : 정부조직개편 (복수부총리제를 단수부총리제로 개편)

정치개황

국왕 (Emir)

2003. 4월 통과된 영구헌법에 의하면 국왕(Emir)은 행정부를 관장하며, 자문위원회(Advisory Council, 우리의 국회에 해당)에서 제정한 법률안 거부권과 자문위원회의 해산권을 가짐.

- 헌법이 완전하지는 않으나 민주 헌법의 요체인 3권 분립 도입하여 자문위원회의 법제정권을 인정함으로써 영구헌법 이전에 국왕이 독점적으로 보유하였던 입법권이 대폭 약화됨.

○ 국왕은 외국에 대하여, 국가를 대표하고, 모든 법령을 비준, 공포하고, 각의를 주재하며, 군 통수권자가 되는 외에 법률에 따라 정부각료와 군인을 임명하고, 자문위원을 임명

내각

내각은 국왕의 위임을 받아 각종 법령을 집행하는 최고 행정 기관임.

○ 각료는 각종정책을 집행하는 책임을 지며, 법령안 제안 및 집행, 재정감시, 예산준비, 국가 이익의 대외적 수호 등 임무를 수행

총리, 부총리(2명, 장관 겸직), 9개 부처 장관, 국무장관 4명, 무임소 국무장관 8명으로 각료회의(Council of Minister)가 구성됨.

자문위원회

○ 영구헌법에 의한 자문위원회는 4년 임기로 총 45명의 의원으로 구성되며, 이중 30명은 직접․보통선거에 의해 선출되고 나머지 15명은 국왕이 임명하는 위원으로 구성됨.

- 과거 자문위원회는 72년 발효된 헌법에 따라 전원 국왕이 임명한 20명(75년 30명, 96년 35명으로 증원)으로 발족되었고, 그후 국왕 칙령으로 임기가 1년에서 6년 연장되었으며, 이후 4년씩 중임되었음.

법률 제정, 각의에서 부의되는 예산, 법령안, 기타 주요안건을 심의하고, 제반 제안을 발의할 수 있는 등 의회 기능을 담

○ 신 영구 헌법에도 서구 개념의 의회제도는 규정되어 있지 않으며, 정당 활동이 금지되어 있음.

사법제도

법무부 내에 5종으로 구별되는 법원이 있음.

-하급민사법원 (Lower Civil Court) : 1심

-상급민사법원 (Upper Civil Court) : 2심

-하급형사법원 (Lower Criminal Court) : 경범 취급

-고등형사법원 (Higher Criminal Court) : 중요 사건 취급

-항소심 법원 (Court of Appeal) : 민사, 형사 최고 법원

○ 특수법원으로 전통적인 이슬람법원(Sharia)이 있으며, 이는 이슬람교도의 개인문제에 관련한 판결과 코란의 율법에 대한 유권적 해석을 내리는 종교재판소이며, 그외 종교행정에 있어 광범위한 감독권을 갖고 있음. 동 이슬람법원은 04. 10월 사법 개혁법 공포를 통해 05.1월부터 법무부 내로 편입됨.

○ 지난해 카타르 여성의 권익보호를 위해 국왕비의 주도로 가정법원을 설치하여, 이혼시 여성의 위자료 지급, 양육권 문제, 아동보호 문제 등을 전담함.

국왕 인적사항

○ 성 명 : Hamad bin Khalifa Al-Thani

○ 생년월일 : 1952년 (칼리파 전 국왕의 장남)

○ 출 신 지 : Doha (수도)

○ 학 력

- 카타르에서 초․중등 교육 이수

- 영국 Sandhurst 육군사관학교 졸업 (1971)

○ 경 력

- 1972 카타르군 총사령관

- 1977 왕세자 책봉, 국방장관 취임

- 1979-91 청소년 복지 최고위원회위원장

- 1992 국왕으로부터 내각임명권 수임으로 사실상 국정운영

- 1995 전국왕(아버지) 외유 중 정권장악, 국왕즉위

○ 가족관계 : 부인 및 아들 5명

○ 참고사항 : 99. 4월 방한

외교

외교정책기조

GCC 역내 각국(쿠웨이트, UAE, 오만, 바레인)과 보편적인 협조체제를 유지하면서 주변 이슬람․아랍국가와의 연대감하에 우호관계를 갖고 있지만 친서방 온건 노선을 견지, 실리적 균형 외교를 취하고 있음.

<GCC 및 아랍권 협력>

아랍권 및 GCC 국가와의 전통적인 유대협력 관계를 바탕으로 팔레스타인 문제, 중동평화 문제 등 주요 국제문제에 있어 GCC 국가와 원칙적으로 공동보조를 취하고 있음.

<친서방․친미 외교정책>

실용주의 노선 추구로 2003년 사우디에서 주둔중인 미군기지를 전격적으로 유치하는 등 미국과의 관계를 가장 중요시하면서 경제적으로는 서방국가와의 긴밀한 협력 관계를 유지함.

<아시아국가와의 관계 확대 추진>

최근 카타르는 아시아국가의 일원이라는 기치하에 제15회 도하아시안게임 유치 등 아시아국가와의 관계 강화에 적극 나서고 있음. 특히 서구와 견줄만한 기술과 산업생산력을 가진 한국, 일본, 싱가폴 등과의 협력 확대에 적극적임.

대이스라엘 관계

이스라엘의 점령지로부터의 전면 철수 및 팔레스타인의 독립국가 수립을 지지하는 입장을 견지하면서도 이스라엘 무역대표부의 설치를 허용하는 다소 현실적 노선을 추구함.

○ 2000. 11월 카타르에서 개최된 이슬람 국가 정상회의(OIC) 직전에 이란, 사우디 등의 압력에 굴복, 공식적으로는 자국의 이스라엘 무역 대표부를 폐쇄하였으나, 이스라엘측에서는 무역대표부를 유지하고 있고 2002. 7월, 2003. 5월 각 파리에서 이스라엘과 외무장관급 회합을 갖는 등 일정 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음.

○ 2006. 7월 Hamad 제1부총리겸 외교부장관의 이스라엘 방문, 2007. 1월 Peres 이스라엘 부총리의 카타르 방문 등 이스라엘과의 관계 개선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으로 보임.

팔레스타인 문제

아랍 최우선 현안인 중동평화 협상에 있어 여타 아랍국가들처럼 이스라엘의 점령지로부터의 전면철수 및 팔레스타인의 예루살렘을 수도로 하는 독립국가 수립과 국권보호를 전폭 지지하는 원칙적 입장하에 Quartet에 의한 중동 평화정착 로드맵 적극 지지하고 있음.

○ 팔레스타인내 Hamas-Fata간 통합 정부 구성 협상에 적극 개입, 중재에 나서고 있으면서 팔레스타인에 대한 지원을 강화

미국과의 관계

대미 관계를 주재국의 안보와 직결된 문제로 인식하고 있어 주변 아랍 국가들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미국과의 우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적극적인 대미 협조 자세를 보이고 있음.

서방국가중 미국에 대해 카타르 내 주요 병참기지 건설을 허용하여, 약 10,000명의 여단병력을 빠른 시간내 무장시킬 수 있는 Pre-Positioning Base로서의 병참기지가 설치

-동 병참기지는 최신정찰기, 전투폭격기, 탱크 등 주요 군사장비를 보유함으로써 유사시 동 군사기지를 통해 중동에서 지역 분쟁에 대해 빠른 군사개입을 할 수 있게 됨.

○ 한편, 대 이라크 전쟁시 도하 인근에 위치하고 있는 아스 사일리야 기지(Camp As Sayliyah)에 미군 중부사령부의 전진 기지를 제공하였으며, 전쟁 종료후 2003년 8월 사우디 주둔 미 공군기지를 카타르내 알 우데이드(Al Udeid) 공군기지로 이전하는 등 최근 양국간 군사협력 관계가 한층 긴밀해지고 있음.

사회

인구

전체인구는 외국인을 포함 약 90만명(카타르인은 약 20만명)으로 추정되며, 아랍계 40%, 인도 18%, 파키스탄 18%, 이란 10% 등으로 구성되어 있음.

출생률은 1천명당 15.6명, 사망률은 4.8명 선이고, 연령별 인구 분포는 0-14세 (23.1%), 15-59세 (72.9%), 60세 이상 (4%)으로 나타남.

교육

카타르 국민은 대학교까지 무료로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으며, 외국인에 대해서도 무슬림인 경우에 한하여 동일한 대우를 받을 수 있음.

카타르는 국력을 기울여 과학기술의 발전과 인재 양성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학업 성적(고등학교 40% 이상 수준)만 좋으면 전액 국비 해외유학 보장

카타르 대학은 현재 6개 단과대학에 학생 수 8,400여명, 교수진 600여명으로 년 1,380여명 내외의 졸업생을 배출하고 있으며, 교수진중 70%가 영국, 이집트, 이란 등지에서 초빙, 충원되고 있어 외국 교수의 비중이 높은 편임.

동 대학의 특이한 점은 전체학생수의 약 70%가 여학생으로 성비가 불균형한 바, 동 불균형의 이유는 남학생들은 주로 해외로 유학을 가는 반면 여학생들은 이슬람 관습상 해외유학이 어려워서 국내 교육을 선호하는 것으로 보임.

- 단 여성인력의 고학력 추세에 따른 여성의 사회진출로 여성인권이 대폭 신장 중

○ 카타르 정부는 중동지역의 교육의 중심지로 부상하겠다는 전략하에 교육부문에 국가적인 투자를 거행하고 있으며, 이와 같은 적극적인 교육 정책이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교육도시를 설립하게 됨.

언론

○ 1996년 Hamad 현국왕의 즉위 이후 즉각적인 언론검열의 폐지로 언론보도의 자유는 진전됨. 단, 일정 사항은 아직 금기로 남아있고, 거의 모든 언론들이 카타르 정부의 보조금으로 운영되고 있어 언론인의 자율적인 보도 제한이 실시됨.

라디오 및 TV 방송은 각기 아랍어, 영어방송을 별도 방영하며, 영어뉴스 방송은 다음과 같음.

- 라디오 (QBS) : 06:00, 07:30, 08:30, 13:00, 18:00, 20:00

- QTV (CH.69) : 20:00 (30분)

- Al-Jazeera TV (CH.76) : 전세계 전역 아랍어 시사 TV

○ 신문

-영 자 지 : Gulf Times, The Peninsula

-아랍어지 : Arrayah, Al-Sharq, Al-Watan

종교

국민 거의가 이슬람교를 믿는 무슬림이며, 와하비파에 속하는 순니파로서 사우디와 비슷한 엄격한 이슬람 생활이 이루어지고 있음.

이슬람교의 교리, 문화, 관습의 전파를 위하여 종교부를 두고 있으며, 종교부는 이슬람 사원의 건립 및 관리, 회사금의 관리, 이슬람문화 보급, 서적발간 등을 맡고 있음.

○ 카타르에서 지켜지는 중요한 종교행사는 아래와 같음.

- Ramadan : 이슬람력 라마단 (이슬람력 9월) 1개월간의 고행과 금식의 기간으로 양력으로는 매년 변동되나, 2006년도에는 9.24 - 10.23 이었음.

- Eid Al-Adha : 이슬람력 둘히자 (이슬람력 12월)

제10-13일까지로 공식 공휴일임.

○ 카타르 정부는 구미 선진국 인의 진출과 기타 외국 인력의 증가와 이들의 압력에 따라 99. 4월부터 기독교 등 타종교에 대해서도 제한된 범위내에서의 종교활동을 허용하기 시작하여 일정지역에 외국인 전용의 성당 등 종교시설 건립을 허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음.

생활양식

국민의 모든 일상생활은 이슬람 교리를 바탕으로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음. 그러나, 미국 등 선진국과의 잦은 접촉과 구미 문물의 도입으로 생활면에서 많은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음.

남녀간의 내외가 엄격하며 사우디만큼 보수적은 아니나, 여성의 직장, 대외활동 등 사회참여가 거의 없음. 그러나, 최근 중앙자치의회 후보로 여성이 입후보하여 여성의원이 1명 탄생하고 국왕비가 적극적으로 공무원 및 국영기업체에 카타르인들을 고용하는 카타르화 정책을 추진하면서 여성 인력 사회 활동이 점차 증가하고 있으며, 또 여성의 운전이 가능함.

- 서구문물의 도입과 해외여행, 백화점, 슈퍼마켓등의 발달로 병원, 교육 기관 일부 등 출입처가 따로 되어있는 경우를 제외하고, 남녀간의 구분이 완화되어 가고 있음.

식생활에 있어서 이슬람교 관습에 따라 주류, 돼지고기, 맹수, 파충류는 금기사항임. 이중 주류는 고급 호텔을 제외한 요식업소에서 판매 또는 접대치 않고, 이를 소지하거나 판매하는 것은 처벌되나, 외국인의 경우 자택에서 마시는 것은 묵인되고 있음.

카타르는 남녀 모두 전래의 아랍 복장을 상용하고 있어 외국인 또는 여타 아랍권 국민과 구별 가능함. 아랍복장을 상용하는 걸프 국가(바레인 등은 서구복장 착용 경향)의 경우도 모양이 다소 상이함. 아랍 복장은 공식복장이며, 남자의 경우 두건 Qutra와 긴 흰옷 Dishta(겨울철에는 유색도 착용)를 입으며, 왕족과 정부 고위층은 각기 다른 소매 없는 두루마기 Al-Abaah를 걸쳐 입음.

여성의 경우 연령에 따라 상이하나, 성년 여자는 마스크 Al-Battoulah와 검은천 Bousheih로 얼굴을 가리고 몸 전체를 감싸는 Al-Daraa를 착용함.

관습 및 국민성

○ 여타 아랍국가들과 같이 이슬람을 국교로 하고 있어 이슬람 종교와 문화가 개인과 사회에 지배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음.

-따라서 공식석상에서의 금주, 돼지고기 섭취 금지, 일부다처제, 가부장제, 전통복장 착용 등의 이슬람 풍습과 관습이 그대로 남아 있음.

○ 다양한 서구식 문화의 유입과 외국인 노동력 유입에 따라 이슬람문화의 영향력이 점차적으로 약화되는 추세로서 외국인의 생활 (복장 및 음주 등) 및 종교에 대해 묵인하는 등 관용적 태도를 취하고 있는 등 개방적인 모습도 목격됨.

○ 가부장제 사회로서 가문 또는 가족을 향한 의리가 무엇보다 우선하며 동일 가문내에서도 친형제와의 우애가 친척간 유대감보다 중요함.

-가족 중시 성향으로 인해 사회적 책임과 공중도덕 관념이 상대적으로 미약

○ 카타르인들은 혈연 가족관계 및 체면․명예를 매우 중시하며 이에 따라 자신의 재산 및 부계혈통을 과시하려는 경향이 있음.

-혼인시 개인의 외모․능력․성격 보다는 가계․혈통이 중요한 고려 요소로 작용함.

○ 카타르인들은 순박하며 인정이 많고 친화력이 있으나, 자존심이 강하고 배타적이며 개인적인 이해관계에 대해서는 양보를 하지 않는 경향을 보이고 있음.

○ 특히 “조급하게 굴지말라”라는 코란의 계율에 따라 느긋하여 서두르지 않고 서두르는 것을 믿음이 없는 사람의 경박한 행위로 간주함.

○ 라마단 단식기간중에는 먹거나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고 껌을 씹는 것을 삼가하여 함. (해가 뜨기 시작해서 질 때까지)

○ 특별히 의심되지 않는 카타르인이 제공하는 아랍커피와 홍차는 받아 마시는 것이 예의이며, 더이상 마시지 않을 경우는 잔을 들고 세번 흔들어 줌.

비즈니스 참고사항

○ 에이전트 제도

- 카타르는 여타 중동국가와 마찬가지로 Agent 제도가 매우 보편화되어 있음. 현지대리인 또는 대표를 통해서만 판매행위가 가능하고, 외국인이나 외국기업은 직접판매 행위가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외국업체가 카타르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Agent 선정이 필수적이며, 좋은 대리인 선정이 사업성공의 중요한 요소임.

- 현지에이전트의 변경은 대단히 까다롭고, 시간이 많이 소요되므로 대리인 선정을 아주 신중히 해야함. 선정시에는 현지시장을 직접방문, 지명대리인의 잠재력을 충분히 검토한 후에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유능한 대리인은 현지 정부 및 기업조직에 광범위한 접촉망을 형성, 주요 정부발주 입찰에 관한 정보를 수집할 수 있어야 함.

○ 스폰서 제도

- 스폰서는 카타르 장기체류비자 등을 발급받기 위한 일종의 보증인으로 카타르에 지사를 설치하는 경우 반드시 카타르 국적인의 스폰서를 구하여야 하며, 매년 쌍방간의 합의에 의해 일정액의 스폰서료를 지급해야 함.

- 스폰서의 동의가 있어야 장기체류가 가능하며, 주의할 점은 카타르로부터 출국시에도 스폰서의 동의가 있어야 출국이 허용됨.





* 위의 자료는 외교통상부, KOTRA, 수출입은행, 한국무역협회, CIA 등의 자료를 기초로 작성되었습니다.







외교관계

○ ’74. 4월 양국간 외교관계 수립이래, 카타르는 정치적으로는 한반도 문제에 대하여 직접 관여하기를 꺼리고 GCC 각국과의 공동 보조하에 남북한 일방에 대한 공개적 지지 또는 비난을 자제하면서도 사실상은 계속 친아국 노선을 유지하고 있으며, 특히 남북대화 진전을 지지하면서 유엔, 비동맹권을 포함한 각종 국제회의에서는 아국입장을 적극 지지하고 있음.

카타르는 92. 9월 현 Hamad 외교장관 취임후 전세계 모든 국가와의 국교수립을 목표로 쿠바, 베트남 등 공산국가와도 수교하는 한편, 93. 1월 북한과도 외교관계를 수립하였으나, 북한대사의 신임장 접수를 거부하여 오다 02. 1월에야 접수 (시리아 상주)

○ 특히, 아국이 카타르로부터 99. 8월부터 연간 492만톤의 가스를 구입하기로 결정하고, 또한 카타르의 각종개발 프로젝트에 아국 기업이 적극 참여하게 됨에 따라 양국관계는 경제관계를 중심으로 더욱 긴밀해짐.

84. 1월 Khalifa 전 국왕의 공식방한과 96. 2월 Hamad 외교장관의 공식 방한에 이어, 99.4.15-18 현 Hamad 국왕이 공식 방한, ‘01.5.12 이한동 국무총리, ’05.11.26-27 이해찬 국무총리, ‘06.5.21-25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 등 카타르 공식방문 고위인사 교류도 긴밀하게 유지되고 있음.

주요협정 체결 현황

경제, 기술, 무역협력협정(84.4.21 서명, 6.16 발효)

- 동 정에 의거, 한-카 공동위 설치

문화협력협정 (87.7.11 서명)

한-카 체육교류 양해각서 교환 (88.4.27)

한‧카 투자보장협정 (99.4.16)

한‧카 외무부간 협력 양해각서 (99.4.16)

한‧카 항공협정 및 동 양해각서 (05.11.26)

한‧카 이중과세방지협정 상호인정협정 가체결 (07.1.29)

교역현황

○ 카타르는 한국의 제42위 수출국, 제8위 수입국(2008. 1-8월 기준)

년도

수출

수입

수지

금액

증가율

금액

증가율

금액

2004

226

-36.7

3,650

16.2

-3,424

2005

521

130.7

5,599

53.4

-5,078

2006

760

45.8

6,985

24.8

-6,225

2007

1,163

53.03

8,454

21.03

-7,290

2008. 1-8월

1,025

50.8

9,205

81.8

-8,181

자료원:kita.net (단위 : 백만불, %)

주요 수출입품목

<對카타르 주요 수출품목>

순위

품목명

2007

2008. 1-8월

금액

증가율

금액

증가율

1

선박해양구조물및부품

1

-98.6

180

20.088.1

2

철강재용기및체인

217

115.4

150

23.1

3

공기조절기및냉난방기

143

59.9

114

88.8

4

레일및철구조물

58

138.0

76

189.2

5

섬유및화학기계

141

222.9

75

-23.3

6

주단조품

155

115.5

61

-35.9

7

전선

84

49.9

59

16.2

8

자동차

82

-8.1

56

34.5

9

건설광산기계

29

-20.7

55

190.6

10

동제품

7

558.8

42

573.6

<對카타르 주요 수입품목>

순위

품목명

2006

2008. 1-8월

금액

증가율

금액

증가율

1

원유

3,345

5.6

4,341

118.5

2

천연가스

4,367

29.1

4,211

55.6

3

LPG

326

108.5

419

221.8

4

석유제품

352

89.4

111

-40.0

5

질소비료

10

-82.1

74

662.4

6

기타석유화학제품

46

95.5

42

7.5

7

정밀화학원료

4

-53.0

4

50.5

자료원 : kita.net, MTI 3단위 (단위:백만불, %)

카타르 투자 현황

○ 카타르 투자 진출

- 카타르는 여타 GCC 국가와 마찬가지로 외국인 회사 설립시 현지인 스폰서 제도가 있어 지분에 제한이 가해지나 2005년 9월 카타르 정부는 외국인 지분 100% 인정 및 각종 세금과 관세가 면제되는 카타르 과학기술 자유무역지대(Qatar Science & Technology Park)를 개설하는 등 외국인 투자 유치를 위해 다양한 방안을 강구

- 카타르 과학기술 자유무역지대는 2007년도 중반까지 적극적인 기술기반산업 관련 기업유치를 위한 시설확충이 이뤄질 전망· 현재 이 자유무역지대에는 ExxonMobil, Microsoft 등이 입주

- 또한 카타르 경제부 소속 투자유치 전담국(Investment Promotion Department)이 2004년에 설치되어 운영 중이며, 운영사이트(www.investinqatar.com.qa)에서 관련 법규 등을 소개하고 있음.

○ 우리나라의 대카타르 투자 : 총 35건 907만불 (자료원 : 수출입은행)

68-01

02

03

04

05

06

07

누계

건수

1

1

3

0

5

3

22

35

신규법인수

1

1

2

0

3

2

16

25

금액(천 불)

255

58

1,113

0

1,208

619

5,825

9,078

최근 경제협력현황

○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 조선 3社는 카타르 가스(Qatar Gas) 및 카타르 가스 운송회사 (Qatar Gas Transportation Company : QGTC)와 06. 9월 30억불 규모의 LNG 운반선박 10척 (삼성 4척, 현대 3척, 대우 3척) 건조 계약 체결 (2009년 인도)

- 카타르는 2012년까지 현 21.5백만톤 규모의 LNG 생산량을 4배로 확대하여 세계1위 LNG 공급국으로 도약하겠다는 계획을 추진중

○ 우리 조선 3사와 카타르 가스는 05.1월 50척 규모의 LNG 선박 발주를 위한 장기 MOU를 체결한 바 있음.

- 금번 계약으로 현재까지 현대 8척(대형), 삼성 20척(대형 13척, 소형 7척), 대우 22척(대형 15척, 소형 7척)을 수주하여 총50여척에 이르는 LNG 운반선 수주

○ 한국가스공사(Kogas)는 1995. 10월 수입액의 5%에 해당하는 RasGas 운영지분 참여 및 최저가격제 철폐를 조건으로 1999. 7월부터 25년간 연간 492만톤의 LNG 도입 계약을 체결

- 이에 따라, 1999. 8월부터 60만톤, 2000년 330만톤, 2001년 420만톤, 2002년부터 연간 492만톤의 LNG가 우리나라로 선적 중임.

○ 한편 2002. 11월 향후 5년 이내 LNG 부족 예상에 따라 카타르 측과 25년간 210만톤 추가 도입에 합의하고 계약의정서 체결

우리기업의 진출 현황

○ 우리업체의 건설공사, Plant 등 수주현황

연 도

2000

2001

2002

2003

2004

2005

2006

수주액

78

291

129

51

235

625

130

자료원 : 주카타르 한국대사관 (단위:백만불)

진출업체:GS E&C, 현대건설, 삼성건설, 대우건설, 두산중공업

- 2000년:Khuff 가스관공사 (삼성건설), 수로확장 준설공사 (현대건설)

- 2001년:Al-Shaheen 해상유정 플랫폼 설치 공사 (현대중공업)

- 2002년:LPG 탱크공사 (삼성건설)

- 2004년 : LAB (연성알킬벤젠) 플랜트 공사 (LG)

- 2004년 : Ras Laffan 담수플랜트 (두산중공업)

- 2005년 : Ras Laffan 콘덴세이트 정제시설 공사 (GS-대우 콘소시엄),

Q-ChemⅡ 화학석유원료 플랜트 공사 (대우건설)

- 2006년 : Pearl GTL Package 4 공사 (현대중공업)

Pearl GTL Package 5 공사 (현대건설)

○ 대리업체 현황

기업

현지대리업체

LG전자

Video Home & Electonics Centre

대우전자

Al-Mane & Partners

삼성전자

Samsung Orient Electonics

현대자동차

National Car Co.

대우자동차

Mannali Trading Co.

기아자동차

Al-Attiyah Motors & Trading

쌍용자동차

Al-Naael Co.

현대갤로퍼

Qatar Automobiles Co.

금호타이어

Tayseer Trading Co.

카타르 현지법인 현황 (06. 12월 현재)

○ 카타르 현지법인 현황

상호

현지법인명

업종

주요

취급품목

신고일자

비율

신고금액

투자

금액

투자

잔액

라코스

QATAR LAKOS

건설업

건물
종합관리

05.11

49

53

14

14

문화
합건설

MUNHWA CONSTRUCTION AND TRADING

부동산업

분양 및 임대

05.7

100

1,060

360

360

에스엠
아이티

SMIT QATAR CO., LTD.

도소매업

DVR

03.2

49

250

250

250

유니텍
엔비시스

UNITECH GULF

서비스업

무방류
화장실 외

03.10

49

95

95

95

한림
이앤씨

HANLIM AND SUNGWON QATAR

건설업

건축, 토목

05.4

23

50

50

50

남송산업

ALI BIN ABDULLAH AL.ATLIYAH & LIM CO.

제조업

제재업 및 제빵업 영위

79.2

49

255

199

199

삼광건설

SAM KWANG TRADING AND CONTRACTING QATRA CO WLL

건설업

토목건설업

06.12

49

10

102

102

삼상
이엔지

N.I.C.

건설업

주택

06.4

49

314

197

197

서림
정보통신

SEO LIM

건설업

02.12

100

58

58

58

성원
건설

HANLIM AND SUNGWON QATAR

건설업

건축, 토목

05.4

23

45

45

45

중앙섬유기계

QATARI KOREAN KNITTING COMPANY

제조업

스웨터

03.2

22

740

-

-

케이엔디티앤아이

KNDT-KBF

서비스업

비파괴검사

06.4

50

200

-

-

자료원 : 수출입은행 (단위 : 천 달러)

아국인사 카타르 방문

2001. 5. 12 이한동 국무총리 방문

2001. 11. 24 제4차 WTO 각료회의 참석

(수석대표 : 황두연 통상교섭본부장)

2002. 11. 24 제4차 한-카 공동위원회 개최

(수석대표 : 김수동 아중동국장)

2003. 01. 11 신국환 산자부장관 방문

2004. 02. 25 강동석 건설교통부장관 방문 (대통령 특사)

2005. 11. 26 이해찬 국무총리 방문

2006. 4. 22 이원걸 산자부 2차관 방문 (국제에너지포럼 참석)

2006. 05. 21 반기문 외교통상부장관 방문(ACD 외교장관 회의 참석)

2006. 08. 26 이규형 외교통상부 2차관 방문 (대통령 특사)

2006. 11. 13 이원걸 산자부 2차관 방문

2007. 03. 27 노무현 대통령 방문

카타르인사 아국 방문

2001. 5. 14 Al-Attiyah 동력산업부 장관 방한 (LNG 13 참가)

2002. 4. 6 Yousef Hussein Kamal 재무장관 방한 (통상교섭본부장 초청)

2002. 10. Sheikh Tamim bin Hamad Al-Thani 카타르올림픽 위원장 방한
            (제14회 부산아시안게임 참석)

2005. 8. 23 Hamad Al-Attiyah 총참모장 방한

2005. 11. 19 Al-Attiyah 에너지․산업장관 방한

2007. 1. 30 Hamad 제1부총리겸 외교부장관, Kamal 재무 및 경제무역부 장관 방한
               (한-카타르 경제포럼 개최)

교민 현황 (07. 7월 현재)

체류

목적별

구분

상사주재

건설업체

소속

직원 및

가족

삼성물산

3

2

1

현대건설

11

9

2

현대중공업

82

82

0

GS E&C

52

52

0

효종산업

19

14

5

대우 Ras Laffan

140

138

2

대우 Q-Chem II

152

152

0

두산중공업

7

7

0

호남석유화학

1

1

0

문화건설

10

10

0

Shi Qatar(삼협기공)

10

7

3

LS 전선

4

4

0

한국가스공사

8

5

3

소계

499

483

16

자영업

현지회사

교민(자영업)

245

179

66

목회자

6

3

3

국제결혼

14

1

13

카타르항공

362

8

354

Qatar Space Tech

3

3

0

소계

630

194

436

공관원

및 가족

대사관

17

6

11

연락장교

4

4

0

소계

21

10

11

총계

1,150

687

463

○ 한인회 : 회장 나종열, 총무 지재기

○ 한인교회

- 카타르 한인교회 : 목사 김경태

- 도하 한인교회 : 목사 심양섭



* 위의 자료는 외교통상부, KOTRA, 수출입은행, 한국무역협회, CIA 등의 자료를 기초로 작성되었습니다.

○ 국명 : 카타르 (STATE OF QATAR)

○ 수도 : 도하 (DOHA, 인구 : 33만명)

○ 국왕 : 쉐이크 하마드 빈 칼리파 알타니

(His Highness Sheikh Hamad bin Khalifa Al-Thani, Emir of the State of Qatar)

○ 면 적 : 11,521㎢ (경기도 크기 정도)

○ 위 치 : 걸프만 서안에 위치한 돌출 반도 (남쪽은 사우디와 접경)

○ 인 구 : 907,229명 (07.07월 정부 공식 통계)

○ 민 족 : 아랍계 40%, 인도계 18%, 이란계 10%,

파키스탄계 18%, 기타 14%

○ 종 교 : 이슬람교 77.5% (대부분이 Sunni파), 기독교 8.5%,

○ 언 어 : 아랍어(공용어), 영어(통용가능)

○ 정부형태 : 국왕(Emir)을 국가원수로 하는 국왕중심제

○ 의 회 : 자문위원회(Advisory Council), 중앙자치의회(Central Municipal Council,지방의회)

○ 사법제도 : 5개 일반법원 및 특수법원(이슬람(Sharia)법원)으로 구성

○ 독립기념일: 9. 3 → 12.18로 2007년에 변경

(1971. 9. 3. 영국보호령으로부터 독립)

○ 화폐단위 : Qatar Riyal (2008. 9월 현재 US$ 1 = QR 3.64246)

○ 주요산업 : 석유, 천연가스, 석유화학

○ 1인당 국민소득 :$ 80,900 (2007)

○ 국민총생산 : $ 677 (2007)

○ 표 준 시 : GM + 3 (사우디, 바레인과 동일)

○ 기 후 : 사막성 해양기후

-12월~2월 : 10-25℃ (겨울은 짧고 온화함)

-5월~10월 : 33-50℃ (다습한 혹서)

-3,4,11월 : 17-36℃ (비교적 좋으나, 바람이 많이 붐)

-강우량 : 연 10-78㎜ (매우적음)

 

경제현황 및 전망

○ Hamad 국왕 집권 후 종래의 석유 수입에 의존한 경제에서 탈피, 세계매장량 3위의 방대한 천연가스를 본격 개발하면서 카타르 경제는 크게 발전함.

- 러시아 및 이란에 이은 세계3위의 가채 매장량 900조 입방피트의 천연가스 자원을 보유한 국가로서, 세계 1위의 LNG 생산대국인 바, 단일 매장량으로서는 세계 최대의 유전층을 배경으로 2010년까지 연간 7,700만 톤의 가스 생산을 목표로 개발계획을 추진하고 있어, 대규모 천연가스 개발계획에서 가장 앞선 국가로 부상

○ 인구 80만의 소국이지만, 1인당 GNP가 67,000달러로 룩셈부르크, 노르웨이에 이어 3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세계 천연가스 매장량의 14%, 원유의 1.3%를 보유하고 있는 자원부국임.

- 최근 수년간 지속된 국제 유가의 고공행진에 따른 원유 수출 증가('07년 기준 226억 달러), 석유·가스 부문에 대한 인프라 투자 확대, 건설 및 금융 등 비석유부문의 호조 등에 힘입어 카타르 경제는 지난 5년간 연평균 11.5%의 고도성장 유지

과거 5년간 석유·천연가스 관련 산업 개발에 약 153억 달러를 투자하여 원유 생산은 연평균 5.6%, LNG 생산은 연평균 18.7% 이상 증가

○ 카타르 경제에 대한 긍정적 평가

- IMF는 07. 11월 발간된 ‘카타르 Country Report'에서 카타르의 경제전망을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향후 천연가스 산업 발전을 기반으로 2012년까지 연평균 12%의 경제성장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

- 한편, 2007년 세계경제포럼(WEF : World Economic Forum)은 ‘아랍 국가 경쟁력 보고서’에서 카타르의 높은 교육수준과 산업다각화 노력을 강조하며 아랍지역 13개국 중 카타르를 아랍에미리트 다음으로 경쟁력이 높은 국가로 선정하였음.

주요경제지표 및 통계

○ 국내총생산 (GDP)

- 석유․가스 부문의 생산증가에 힘입어 강한 경제성장 세를 보임. 최근 6년간 평균 20% 이상의 초고속성장 시현 중

○ 소비자 물가지수

- 최근 인프라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에 따른 외국인의 급격한 유입, 정부 및 민간기업들의 소비 지속 증가로 수요가 급격히 팽창하고 페그된 달러화 약세로 인플레 문제가 최대 경제 현안으로 대두함.

○ 무역수지

- 카타르는 1996년 WTO 가입 121번째 회원국이 됨으로서 세계자유무역 체제에 편입됨.

- 미국, 일본, 영국, 독일, 이태리 및 프랑스가 주요 무역 상대국이었으나, 중․장기적으로 동아시아에 대한 LNG 및 석유화학제품의 수출이 점차 늘어남에 따라 동아시아국가와의 교역 관계의 비중이 강화되는 추세임.

- 한국은 카타르의 제2위 수출국, 제9위 수입국(제1위 수출국은 일본, 제1위 수입국은 프랑스)

○ 주요경제지표

구분

2002

2003

2004

2005

2006

2007

GDP(억 달러)

194

235

317

425

499

658

1인당 GDP(달러)

28,215

32,096

40,845

52,240

55,461

55,200

경제성장률(%)

7.1

3.5

20.8

6.1

7.1

7.8

재정수지/GDP(%)

8.0

4.3

17.1

9.6

7.5

-

물가상승률(%)

1.0

2.3

6.8

8.8

11.8

13.7

경상수지
(백만 달러)

3,824

5,754

7,552

10,713

9,975

36,110

수출(백만 달러)

10,978

13,382

18,685

25,762

30,595

33,200

수입(백만 달러)

3,650

4,359

5,410

9,064

12,360

15,320

(자료원 : 한국수출입은행, EIU Country Report)

○ 분야별 국내총생산 비중

석유․가스

61.9%

금융 및 부동산

8.2%

제조업

7.3%

건 설

5.7%

무역 및 관광

4.5%

교통, 통신

3.3%


경제정책

○ 카타르는 종래 석유산업에의 의존을 탈피하고 산업다변화 전략을 적극 추진하고 있는 바, 이중 최대 역점 산업분야는 가스 개발산업으로 세계 최대 단일 가스전인 북부가스전 개발을 통해 세계 최대 가스생산 및 공급국가로 도약하겠다는 계획을 실현하는 개발 전략을 적극 추진 중임.

○ 석유․가스등 에너지 산업 외에도 관광, 정보통신, 물류, 보건, 교육 분야 등을 국가기간 산업으로 선정, 대규모 투자를 감행하면서 전략적으로 육성하고 있으며 동 산업육성을 위한 외국인 투자 유치에도 매우 적극적임.

○ 장기적으로 카타르는 세계최대의 가스수출국으로서뿐 만 아니라 걸프지역의 물류 및 산업 중심지로 부상한다는 국가 발전 전략을 추진중이며 고유가 추세 및 에너지 생산량의 급격한 확대로 현재가 이와 같은 전략을 추진하기 위해 가장 적기라고 보고 향후 5년간 1,300억불을 투자하여 대규모 인프라시설 개발 및 국가 기간산업 확충을 위한 프로젝트 추진 중

최근 카타르금융센터(Qatar Financial Center)를 설립하고 다수의 외국은행들을 유치(‘07년말 32개 예상)하는 한편, 금융기관들에 대한 감독권을 부여하면서 금융부문에서 자율적 규제를 적극 추진중임.

- 7개 카타르 은행, 2개 아랍계 은행, 다수의 외국계 은행이 영업중이며, 이중 중앙은행인 Qatar National Bank가 최대 금융기관임.

- 카타르 중앙은행(QCB)은 은행감독 및 규율에 관한 국제규범에 따라 은행에 대한 감독을 시행하며, 통화정책의 일환으로 재무성 증권을 발행할 수 있음.

○ 특히 산업다변화를 위해 카타르투자자유지대 (Qatar Investment Free Zone), 카타르금융센터(Qatar Financial Center)를 설치하고 외국기업들의 투자유치에 매우 적극적인 바,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중동 국가중 해외 투자를 가장 많이 유치하고 있는 국가중 하나임.




* 위의 자료는 외교통상부, KOTRA, 수출입은행, 한국무역협회, CIA 등의 자료를 기초로 작성되었습니다.






출입국 심사 및 통관


○ 사전에 반드시 사우디 대사관에서 입국에 필요한 사증을 발급받아야 출입국이 가능

○ 통과 (Transit) 비자를 받은 경우,

- Transit Lounge에서의 대기만 가능하고 입국은 할 수 없음.

- 중동, 아프리카, 유럽지역으로 Transit할 경우 공항 특별보안구역 내에서 장시간 대기 (보세지역 내에서의 자유로운 이동 불가)

○ 사업상 출장의 경우 주재국 상사와의 거래나 수출실적 자료를 주한 사우디 대사관에 제출, 사증 발급받음.

○ 세관통관 절차가 엄격하며 소지품은 전량 검사 후 통과됨. 특히 종교 서적, 각종 인형, 여성이 나오는 잡지 및 음란물, 마약, 돼지고기, 주류 반입은 엄격히 금지


기후 및 복장


○ 리야드 등 내륙지역은 일반적으로 고온건조, 젯다 등 홍해 연안과 담맘 등 걸프연안은 고온다습. 여름은 40-50도의 고온이며, 겨울은 10도 이하로 내려갈 때도 있음.

- 4-9월 : 40도를 웃도는 혹서

- 10-3월 : 아침, 저녁으로 선선하며 낮에는 20-30도

- 연평균 강수량 : 100-200mm

○ 복장 준비

- 연중 8개월 이상 여름날씨 지속

- 겨울철 1-2월에도 춘추복으로 활동 가능

- 전반적으로 실내에선 에어컨 사용

- 실외에서도 자외선으로부터의 피부보호를 위한 긴소매복장 착용권장


신분증 신청


○ 외국인 신분증 ‘이카마’

- 법률행위 및 사소한 업무처리 편의를 위해 현지 도착 즉시 신청 및 발급

- 신체검사서, 여권, 사진 2매, 고용주레터 및 계약서 구비


근무시간


○ 은행, 우체국, 식당, 상점, 박물관 등 영업시간 및 휴무일

- 은행 : 09:30-16:30

- 식당, 상점 등 : 09:00-12:00, 16:00-22:00 (공공기관은 목, 금 휴무)

- 정부 부처 : 보통 08:00-14:30 (점심시간 없음)

- 일반 기업 : 08:30-13:00, 16:30-19:30

○ 슈퍼마켓, 백화점, 할인점 등 유통업을 중심으로 토요일 영업하는 상점도 늘어나는 추세이며 24시간 영업하는 식료품가게, 약국도 등장

대사관 : 08:30~15:00/무역관 : 09:00~17:00

* 주말 : 목․금요일


공휴일


○ 휴일

- 일반적으로 주5일 근무제이며, 목, 금요일은 휴일임.

- 토, 일요일에는 일부 개인 상점들을 제외한 관공서와 일반회사들이 쉬므로 출장 시 주말을 피하는 것이 상식

○ 명절

- 라마단 (11일) : 헤지라력에 따라 매년 일자가 변경 (매년 10일씩 앞당겨짐)

- Eid Al-Fitre : 라마단 종료 후 약 일주일, 헤지라력에 따라 매년 일자가 변경 (매년 10일씩 앞당겨짐)

- 하지 (11일) : 라마단 종료 2달 후


신용카드 / 여행자수표 및 팁 제도


○ 호텔, 고급음식점 및 백화점에서는 신용카드 사용이 가능하나 일반 소매점에서는 현금(달러, 현지화)만 통용됨.

○ 여행자수표는 통용되지 않으며, 은행에서만 교환가능

○ 금융기관 이용

- 외국인 신분증 ‘이카마’ 소지자에 한해 은행계좌 개설 가능

- 계좌개설시 스폰서의 계좌개설 요청서한 필요

○ 팁 제도

- 식당의 경우 5-10%, 고급식당의 경우 15%의 Service Charge를 식대에 포함하므로 따로 팁을 주지는 않음.


국제 전화하는 방법


○ 한국에서 사우디로

- 001-966(사우디)-1(리야드)-×××-××××(전화번호)

- 011-966-50(또는 55, 휴대번호)-×××-××××(전화번호)

사우디에서 한국으로 : 00-82-2(서울)-전화번호

* 호텔에서 국제전화 사용시 분당 8~9달러

콜렉트콜 방법

- 1800-82-0(교환원), 1800-82-1(직접 번호 입력)

○ 공중전화 : 1리얄 동전을 넣고 사용하거나, 현지전화카드(20-50리얄)를 사용하며, 전화요금은 분당 25할랄라(Halalah)


현지 휴대폰 사용방법


○ GSM 방식 휴대폰은 현지 마켓에서 선불카드 (Pre-Paid Card)를 구입하여 사용이 가능함.

○ 지역번호(리야드:01, 제다:02, 담맘:03), 또는 휴대폰 (050, 055), 전화번호를 순서대로 입력 후 통화버튼을 누름.


교통편


○ 택시(리무진) : 미터기를 사용하지 않는 경우가 흔하므로 탑승전에 요금을 협상하는 것이 관행임.

- 통상 시내 주행 시 10-20리얄(3-5달러) 정도

○ 버스 : 25인승 중형으로 언어소통이 어려워 노선

파악없이 이용치 않는 것이 바람직 (요금 : 2리얄).

○ 국제면허는 공식적으로 무인정, 단 렌트는 가능

- 현지인의 운전습관이 거칠며, 여성은 운전 금지


현지 기도시간


○ 사우디는 원리주의 이슬람 국가로 이슬람 예배 시간을 철저히 준수하며(1일 5회), 예배시간에는 모든 소매점 및 음식점이 일시적으로(30분 내외) 영업을 중단함.

현지 예배시간(www.arabnews.com/4.3일 기준)

- Fajr : 05:03 / Sunrise : 06:24

- Zuhr : 12:08 / Asr : 15:25

- Maghreb : 17:51 / Isha : 19:21



주요 여행지



지형별 특색


○ 헤자즈 (Hejaz) : 요르단의 아카바만과 중부 도시 젯다, 메디나 사이에 뻗어 있는 해안 지방으로서 헤자즈 지역 동부는 다수의 강우량을 보이고 있어 농경지역이 형성되어 있는 곳도 있음.

○ 아시르 (Asir) : 홍해 연안 평야 중 북위 20도 이남으로 좁게 뻗은 다습한 고원지역으로서 농경지로 개발 작업이 진행 중이며, 강우량이 비교적 많아 제법 삼림이 있음. 고지대로 관광자원 및 고대 나바티안 유적 등이 있어 최근 관광객이 늘고 있음.

○ 나즈드 (Najd) : 수도 리야드 부근의 사우디 중심부를 지칭하는 것으로 일부 오아시스 농경지대가 있으며, 리야드 외에는 일부 유전지대와 유목 생활이 병존하는 곳임.

○ 루브 알 칼리 (Rub'al Al-Khali, 영어로 The Empty Quarter라는 뜻) : 오만 및 예멘 지역과 접하고 있는 광대한 사막지대로서 면적이 50만㎢에 달하는 단일 세계 최대 사막중의 하나

○ 하사 (Hasa) : 오만의 무산담(Musandam) 반도와 이라크, 쿠웨이트까지 동부 지역의 해발 200m 미만의 해안지방으로서 유전 및 거대한 지하수층이 형성되어 있음.

○ 나후드 (Nafud) :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가장 건조한 사막으로서 사우디 북부에 위치하고 있음. 여름에는 기온이 50도 이상에 달할 때도 있으나 겨울에는 서리가 내리기도 함.


메카 (Mecca)


이슬람 창시자인 모하메드(Mohammed)의 출생지로서 이슬람의 제1성지

- 메카를 중심으로 지름 약 100km의 지역이 하람(성역)이며, 13억이 넘는 전세계의 무슬림들이 메카의 카바 신전을 향해 예배를 드리는데 이 기도의 방향을 '끼블라(qiblah)'라고 함.

○ 메카를 비롯하여 이슬람의 성지를 방문하는 순례 '핫지(Hajj)'는 무슬림의 5가지 의무 중 하나이며, 해마다 순례의 달에는 약 250만 명의 순례자가 모여듬.

- 순례자들은 메카의 중심인 카바 신전을 시계 반대방향으로 7번 도는 의식을 치르며, 가능하다면 신전의 중앙에 위치한 높이 12m의 흑화강암으로 만들어진 성묘에 입을 맞추거나 손으로 만지곤 함.


메디나 (Medina)


○ 모하메드의 무덤이 있는 이슬람의 제2성지

- 622년 무함마드가 메카로부터 이 곳으로 이주(헤지라)한 후 이슬람의 정치 ·교단 활동의 중심이 되었음.

- ‘메디나’라는 이름은 본래 ‘예언자의 도시’라는 말의 준말

○ 북동쪽의 성벽을 두른 구시(舊市)는 교조 무함마드와 그 후계자인 아부바크르 및 우마르의 묘가 있는 성역이어서, 메카 참배 후 찾아드는 순례자들이 북적임.


기타 지역


○ 리야드

- 사우디의 수도이며 초대왕인 Ibn Saud의 유적지가 도시 내에 있으며 인접에는 Diriyah라는 초대왕이 머물던 곳이 있음.

○ 젯다

- 사우디 제1의 상업도시이며 항구 도시인 젯다는 아름다운 홍해에 접하고 있으며 스쿠버다이빙지로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곳

○ 타북

- 사우디 북부 고지대로서 휴양지

○ 타이프

- 사우디 왕족들의 하계 휴양지로서 고지대이며 수목이 제법 있는 곳

○ 붉은 사막

- 리야드 남동쪽 50km 지점으로 리야드 근교에 위치한 전형적인 사막 모래로 형성되어 있고 붉은 색의 색깔과 어우러진 고운 모래는 옷에 문질러도 묻어나지 않을 정도로 고우며, 촉감으로 인해 기분을 전환시켜 주기도 함.

○ 디리아 (Diriyah)

- 사우디의 유서깊은 도시. 19세기 초 사우디의 팽창에 맞서 오토만 술탄이 파견한 이집트 군대에 의해 와하비 군대가 격파된 후 현 사우디 왕가가 다시 메카, 메디나 등을 수복함에 따라 1818년 디리아는 다시 현 사우디에 편입됨20세기 초까지는 황폐한 곳이었으나, 1974년 사우디 정부가 유적을 복구



현지 주요 연락처



리야드 주요 연락처 (국가번호 966 / 국번 1)


○ 병 원

- Central Hospital : 435 - 5555

- Dallah Hospital : 454 - 5277 (추천)

- National Hospital : 476 - 1211

- Al-Hammadi Hospital : 464 - 3312

공 항 (국내, 국제선 동일): 222-1111, 222-1700/1701/1702

주요항공사

- Cathay Pacific Airways : 476-2487

- Emirates : 465-5485

- Kuwait Airways : 464-0515

- Saudi Arabian Airline : 488-4444 (예약 : 920-022-2222)

○ 비상전화

- 경찰 : 치안상태 양호 (전화 999)

- 테러신고: (전화 990), 자동차 사고신고 : 933

- 화재시 : 소방상태 양호 (전화 998)

- 앰블런스 요청 : 997

골프클럽(Dirab Golf) : 498-0018(예약가능)

식당 연락처

- 비 원 (한식) : 463-1102, 464-5752 (배달가능)

- 소정이네집(하숙집) : 465-0722

- 골든드래곤 (중식) : 464-5136 (배달가능)

- 도쿄 (일식) : 464-5672

- 스테이크하우스(양식) : 464-9638


대사관 정보


○ 대 사 : 이재길 대사

주 소 : P.O.Box 94399, Riyadh 11693, K.S.A (외교단지에 위치)

○ 전 화 : 966-1-488-2211, 966-50-648-9806 [영사 및 비상전화]

○ 팩 스 : (966-1)-488-1317

○ E-MAIL : emsaudi@yahoo.co.kr

○ 홈페이지 주소 : www.mofat.go.kr/saudiarabia/

○ 근무시간 : 토-수요일 (목, 금요일은 휴무) : 08:30 - 15:30



* 위의 자료는 외교통상부, KOTRA, 수출입은행, 한국무역협회, CIA 등의 자료를 기초로 작성되었습니다.





사우디 아라비아 (KINGDOM OF SAUDI ARABIA) 알기



지정학적 위치


○ 아라비아 반도 (북위 16-32도, 동경 36-56도에 위치)

- 인접국가 : 요르단/이라크(북), 페르시아만 연안의 쿠웨이트/바레인/카타르/UAE 등(동), 오만/예멘(남), 홍해를 사이에 두고 이집트/수단/에리트레아(서)와 마주함. (국경선 길이 : 4,431km)


지형 특색


면적이 약 57,000㎢인 북부의 나푸드 사막(Nafud)과 약 65만㎢ 면적의 남부 룹알할리(Rub' al-Khali) 대사막은 세계 최대의 연속 사막지대

- 전 국토의 95%가 사막, 경지의 0.5%가 관개에 의존


기후


○ 사우디 아라비아는 뚜렷한 3개의 기후지대로 나뉨.

- 아시르 지방(예멘국경지역) : 연평균 강우량 480mm 정도, 습윤온화

- 서부 산악지대 및 초원지대

- 사막지대(전 국토의 95%) : 겨울철 14-23도, 여름철 38-54도

○ 동부와 내륙지방을 중심으로 Shammals라 불리는 모랫바람이 늦은 봄부터 초여름에 걸쳐 불어 3-4월에는 약 2주간, 6월에 절정에 달하며, 통상 한달 평균 20일 이상 모랫바람 지속


종교


○ 엄격한 종교생활 강조

- 사우디 아라비아는 헌법을 제정하는 대신 이슬람경전에 기반한 이슬람법을 국법으로 삼음.

○ 종파에 따른 차별

- 자국민 이슬람 종파 현황 : 수니파 90%, 시아파 10%

- 수니파 : 엄격한 종교생활을 중시

- 시아파 : 상대적으로 개방적, 자유로운 분위기

- 시아파에 대한 사우디 정부의 차별 : 병역의무 면제, 정치외교적 참여 제한, 출판 및 언론진출 제한

○ 라마단 : 이슬람 네 번째 규율에 의해 한달간 일출부터 일몰까지 금식, 공공장소에서의 술, 담배, 식사 등도 금지. 여행객에도 준수 요구


약사



국가 형성 과정


○ 아랍족의 발상지는 중앙아라비아와 북부아프리카로 추정

- 사우디 동부는 BC 4000-5000년 전에 이라크 남부로부터 이주시작

○ BC 500년 경 나바트인(Nabateans)들이 사우디 북서부 지방을 거점으로 아라비아 반도 북부 통치

○ 이슬람 이전의 아라비아 반도에는 유목민(베드윈)과 오아시스 정착민이 거주하였으며, 오아시스 도시 중 메카와 메디나 번창

○ 612년 경 마호메트가 이슬람을 포교한 이후 마호메트 사후 10년인 640년 경까지 페르시아에서 이집트에 이르는 이슬람 제국 건설

○ 이후 이슬람 제국의 중심지가 시리아의 다마스커스, 이라크의 바그다드로 이전하면서, 이슬람 성지순례의 목적지인 메카와 메디나를 제외한 사우디아라비아 지역의 중요성 감퇴


근대 및 현대


○ 18세기 중반, 압둘 와합과 무함마드 빈 사우드가 제휴, 정통 이슬람 원리에 입각한 사회개혁운동인 와하비 운동 시작

○ 19세기 말, 사우드家의 라이벌인 라쉬드家는 오스만 터키의 지원 하에 사우드가의 거점인 리야드를 점령

○ 1927년 압둘 아지즈왕(이븐 사우드)가 리야드를 탈환, 영국군의 지원 하에 오스만 터키군을 격퇴하여 통일

○ 1932년 9월 23일 사우디 아라비아 왕국 선포

○ 1938년 미국회사에 의해 동부지역 석유생산 성공

○ 1944년 ARAMCO 석유회사 설립

○ 2005년 제8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실시


왕위 계승


○ 1953년 사우드 제2대 국왕 즉위

○ 1964년 파이잘 제3대 국왕 즉위

○ 1975년 칼리드 제4대 국왕 즉위

○ 1982년 파드 제5대 국왕 즉위

○ 2005년 8월 압둘라 제6대 국왕 즉위 (제6대까지 국왕은 압둘 아지즈 초대 국왕의 아들들이 계승)


정치 개황



정부형태


○ 정교일치의 국왕중심제 (이슬람 절대군주국)

- 국왕이 입법, 사법, 행정의 3권을 행사하며 종교의 수장을 겸임

- 2005년 8월 1일 사우디 제5대 파드(Fahd) 국왕이 사망하면서 이복형제인 82세의 압둘라 황태자가 왕위 계승

○ 왕실후계 문제

- 국왕 체제 유지와 관련하여 국왕지위 승계자 후계구도가 문제시됨.

- 국가 서열 2위의 제2부총리 겸 국방장관 임명건은 중요한 화두


내각


○ 국왕이 왕실위원회와 국무회의를 주재, 국정을 대행

- 현재 압둘라 국왕이 수상 겸임, 술탄 왕세자가 제1부총리 및 방위군 사령관, 국방항공부 장관 겸임

- 국왕이 임명하는 120명의 국정자문위원회가 의회와 유사한 역할

- 국무회의 구성 : 제1부총리, 21개 부처장관, 7명의 무임소 장관

- 지방행정조직의 13개 주지사는 왕실에서 임명한 왕자들이 담당

○ 왕정일치 국가형태로 선거제도 부재

- 2005. 2월 역사상 최초의 리야드 주 38개 지방의원 104명 직선

(단 여성의 투표권 인정 안함)


사법제도


○ 샤리아법과 규율로 구분

- 이슬람법인 샤리아법과 규율이 상치될 때에는 샤리아법이 우선

- 규율 : 국무회의를 거쳐 제정되고 왕령으로 승인

○ 사법기관 : 3심 법원과 법원감독기관인 사법감독위원회로 구성


국방


○ 군대는 지원제이며 국방비의 많은 부분을 미국의 군사원조에 의존하고 있음.

- 국방예산 : 181억 달러(GDP의 12%)

- 병력 : 정규군 117,500명 (육군 3만5천명, 공군 1만5천명, 해군 4천5백명, 비정규군 6천3백명, 경찰 1만6천명, 국경해안 경비대 1만5천명)


각료명단 및 주요인사 인적사항



국왕


○ 성 명 : 압둘라 (Abdullah bin Abd al-Aziz Al Saud) 국왕

○ 생년월일 : 1924년

○ 출 신 지 : 리야드 (Riyadh)

○ 직 위 : 국왕 겸 총리

○ 경 력

- 압둘 아지즈 초대 국왕과 여덟 번째 부인과의 사이에서 출생

- 1962년 사우디 아라비아왕국의 사령관으로 임명

- 1975년 사우디 아라비아왕국의 부총리 취임

- 1982년 사우디 아라비아왕국의 총리 취임

- 2005년 8월 1일 국왕 취임

○ 성 향 : 보수적, 아랍민족주의 지향


왕세자


○ 성 명 : 술탄 (Crown Prince Sultan bin Abdul Aziz) 왕세자

○ 생년월일 : 1924년

○ 경 력

- 농업부장관 및 교통부장관 역임

- 행정개혁위원회 의장 역임

- 최고교육위원회 부의장 역임


외교



외교정책기조


○ Abdullah 국왕의 신정부하에서의 대외정책은 Fahd 전 국왕의 외교정책기조인 주권존중, 독립, 내정 불간섭 원칙에 입각하여 ①모든 국가들과 선린 우호관계 유지 ②양자, 지역간 상호협력 증진 ③적대행위 금지 및 ④지역 및 국제분쟁의 평화적 해결 원칙을 계승 추구

○ Abdullah 국왕의 방미 (2005. 4월, 왕세제 당시) 등을 통해 다져진 미국과의 견고한 대테러 공조 하에 Al-Qaeda 세력 소탕 및 주변 아랍제국과의 안보협력, 유가 안정화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


대미국 관계


○ 9.11테러 이후 외국 언론 중심으로 양국 관계 악화가 우려 되었으나, 미국이 요구하는 대테러 협력에 사우디가 비교적 잘 응해왔으며, 특히 이라크 전쟁 관련, 사우디가 전적으로 협력함으로써 양국 지도부간 원만한 관계를 유지 (다만, 국민들의 반미 감정이 문제)

- 2003. 5월 리야드 테러 사건으로 Al-Qaeda등 테러 단체들의 표적 이 사우디 정부로 전환됨으로써 사우디 정부는 대테러 관련 미국 과의 협력에 매우 적극적인 자세로 변했음.

○ 2005. 4월 Abdullah 국왕이 왕세제 당시 방미, 부시대통령과 양국간 새로운 협력시대를 열기위한 회의체로 “사우디-미국 전략대화”를 창설 합의한 바, 제1차 회의가 2005. 11월 젯다, 2차 회의가 2006. 5월 워싱턴에서 각각 개최됨.

○ 최근 팔레스타인 문제 및 이라크사태와 관련하여 미국과의 이견 노정

- 압둘라 국왕은 아랍정상회의에서 미군의 이라크 주둔을 불법으로 규정


아랍-이스라엘 분쟁 (일관된 팔레스타인 지지)


○ 유엔 안보리 결의 242 및 338에 근거한 아랍-이스라엘 분쟁 해결을 지지하며, "land for peace" 원칙에 입각 모든 아랍점령지에서 이스라엘이 철수할 것을 주장함.

- 2001년 이스라엘의 대"팔"군사행동에 대하여 아랍보수국가들의 리더국가로서 대이스라엘 비난 자세 견지

- 1967년 이후 점령한 모든 아랍영토로부터 철수 및 궁극적으로는 예루살렘을 수도로 한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창설 지지

- 2002년 Abdullah 왕세제는 아랍평화안(Arab Peace Initiative) 제안


중동국가들과의 관계


이슬람, 아랍 국가들과 전통적인 우호협력 관계를 형성하고 있음.

- 57개 이슬람국가들의 회의공동체인 이슬람 회의기구 (OIC) 본부 주재국 젯다에 소재

- 특히 팔레스타인 등 중동 이슈에 있어 국제사회에서의 이익 대변을 통해 이슬람의 종주국으로서의 비중과 위상을 견지함.

이라크

- 이라크의 불안정한 사태로 인해 중동지역에서 이란, 시리아, 헤즈볼라, 하마스 등 강경 세력의 영향력 확대에 우려하고 있으며, 특히 이라크내 대미항전세력에 사우디인들 이 참여하고 있는데 대해 이들이 향후 주재국 안정에 위협요소가 될 것임을 경계함.

- 사우디는 이라크내 시아파 회교도의 영향력 증대가 자국 및 GCC 역내 안보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음.



사회



교육


○ 종교 의무의 일환으로 이슬람교육 의무화

- 종교교육에 편중된 학제로 명분없는 학교교육 만연

1960년대 제3대 파이잘(Faisal) 국왕의 여성교육정책

- 여성교육의 중요성 강조

- 여성교육청 신실 및 여성의 대학교육 확대

학제 및 교육 특징

- 전 교육과정은 무상이나 의무는 아님.

- 전 교육과정에 이슬람 교리에 관한 종교교육의 의무화

- 여학생과 남학생의 철저한 분리


치안



○ 시내 치안상황은 비교적 좋은 편이나 한적한 곳이나 밤늦은 시간에는 외출 자제 권유

○ 이동시 도보보다는 차량을 이용하고, 과속차량이 많은 것을 고려 오너 드라이빙은 회피하는 것이 바람직함.

○ 자동차 창문을 깨고 물품을 훔쳐가는 절도사건이 간혹 일어나므로 차량 내 컴퓨터, 지갑 등을 놓고 들어가는 것은 피해야 함.


언론


○ 텔레비전 방송

- 아랍어 방송 : Channel 1

- 영어 및 불어 방송 : Channel 2

- 위성 수신기를 통한 채널 다양화 확산 추세

○ 신문 및 일간지

- 아랍어 : Al-Riyadh, Al-Sharq, Al-Awsat, Al-Jazeerah, Oka

- 영어 일간지 : Arab News, Saudi Gazette 등


통신



○ 공중전화가 있으나 한국에 비해 많지 않음.

○ 우편제도 : 우편배달 제도 없이 P.O.Box 사용


비즈니스 에티켓


○ 복장

- 반바지 착용 금지

- 여성의 경우 전통의상인 ‘아바야’ 반드시 착용 요망

- 여성이 남성 앞에서 손목과 발목 및 얼굴을 노출시킬 경우 외국인일지라도 종교경찰에 의해 제재를 받을 수 있음에 유의

○ 식사문화

- 세 번 이상 초대를 거절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남.

- 전통식당에서 오른손으로만 식사해야 할 것에 유의

- 개, 돼지, 맹수류, 맹금류, 파충류와 이슬람식으로 도살되지 않은 고기, 죽은 짐승의 고기와 피, 내장 등을 먹지 않는 것이 관례

- 술을 권하는 것도 예의에 어긋남.

- 사우디는 주류, 마약 반입을 철저히 금하고 있어 입국 시 일체의 주류를 소지해서는 안 됨.(마약 반입은 최고 사형)

○ 인사

- 남성 간에는 악수교환이 일반적인 인사법

○ 선물

- 이슬람 문화는 뇌물수수를 금기시하기 때문에 선물전달에 유의

- 특별한 기회에 소박한 선물을 준비할 것

○ 약속

- 현지인은 시간관념 부족

- 비즈니스 미팅의 경우 잦은 연락을 통해 약속을 지키도록 유도


사회문화



○ 가부장적인 가정생활

- 남편의 권위주의, 남아선호사상

- 사회발전과 세계화의 영향으로 여성인권 및 사회진출 요구 중

○ 결혼문화

- 부족주의 시대관습 계승

- 근친간의 결혼형태가 만연

- 혼인을 위한 신랑의 막대한 지참금 부담이 사회문제화



* 위의 자료는 외교통상부, KOTRA, 수출입은행, 한국무역협회, CIA 등의 자료를 기초로 작성되었습니다.




한-사우디 아라비아 관계 일반



외교관계


○ 사우디아라비아는 그동안 UN, 비동맹기구 등 국제무대에서 평화통일정책 등 한국의 입장을 적극 지지해온 주요 우방국 중 하나로, 우리나라 제1위 원유공급국으로서 중동지역 최대 교역 대상국임.

○ 1962. 10월 외교관계 수립 후 1973. 7월 주사우디아라비아 상주 대사관이 개설되고 1975. 4월 서울에 사우디아라비아 대사관이 설치되면서 양국은 정치, 경제, 문화의 각 분야에 걸쳐 선린외교정책을 강화해 옴.

○ 석유파동 이후 사우디아라비아는 기술인력 부족과 사회간접자본 미비가 경제개발에 가장 큰 장애요인이 되어, 한국은 기획전문가, 의료단, 어업기술자 등을 파견하여 기술 협력을 제공

○ 사우디 사회간접자본 개발사업에 중대한 역할 담당

 - 도로, 항만 등의 건설계약 실적이 1978년까지 100억 달러를 상회하였으며, 한국 총 건설 수출의 80% 이상을 차지

 - 건설공사 수주규모도 대형화하고 있으며, 시멘트공장, 담수화공장, 석유화학공장 등의 대형 플랜트 건설

○ 양국관계는 1998년 Abdullah 왕세제(현국왕)의 방한, 1999년 리야드 주지사인 Salman 왕자의 방한, 2000년 제2부총리 겸 국방장관인 Sultan 왕자(왕세제)의 방한과 2001년 이한동 국무총리 방문, 2005년 이해찬 국무총리의 방문 (8월, 11월), 2007년 노무현 대통령의 사우디 방문 등 정상급 인사의 상호방문을 통해 양국 우호협력 관계를 더욱 공고히 해옴.


주요협정 체결 현황


○ 경제기술협력협정 (1974)

○ 문화협정 (1974)

○ 항공협정 (1976)

○ 항공운수소득면세협정 (1990)

○ 사우디에서의 한국의료단활동에 관한협정 (1991)

○ 교육교류약정 (1997)

○ 투자보장협정 (2002)

○ 이중과세방지협정, 고등교육협력, IT MOU (2007)


한-사우디 아라비아 교역동향



교역현황



○ 한-사우디 양국은
상호보완적 구조의 수출입 거래를 바탕으로 중요한 교역 파트너로서의 위상을 유지

- 사우디는 우리나라의 제4위 교역대상국(수출 21위, 수입4위), 우리나라는 사우디의 제3위 교역대상국(수출 3위, 수입 8위) (2007년 기준)

○ 우리나라는 사우디에 수송기계, 철강제품, 산업기계,중전기기,직물, 전자제품 등을 수출하며, 사우디는 원유·석유제품 등을 수출(광물성연료 비중 96.0%)

년도

수출

수입

수지

금액

증가율

금액

증가율

금액

2004

1,708

21.2

11,800

27.3

-10,002

2005

2,093

22.5

16,106

36.5

-14,013

2006

2,978

42.3

20,552

27.6

-17,574

2007

4,026

35.2

21,164

3.0

-17,138

2008. 1-8월

3,476

30.3

24.605

84.9

-21.129

자료원:kita.net (단위 : 백만불, %)


주요 수출입품목


<對사우디 아라비아 주요 수출품목>

순위

품목명

2007

2008. 1-8월

금액

증가율

금액

증가율

1

자동차

1,007

26.8

603

-1.7

2

정전(static electric) 기기

170

219.6

254

124.0

3

공기조절기및냉난방기

184

77.7

250

63.0

4

섬유및화학기계

287

81.4

151

-32.4

5

철강판

165

4.3

138

20.0

6

형강

147

26.0

129

-0.7

7

건설광산기계

93

86.6

125

114.0

<對사우디 아라비아 주요 수입품목>

순위

품목명

2007

2008. 1-8월

금액

증가율

금액

증가율

1

원유

18,318

4.8

21,014

86.4

2

석유제품

1,325

-16.1

2,311

145.3

3

LPG

669

-1.2

644

22.1

4

석유화학합섬원료

379

8.1

279

14.2

5

기타석유화학제품

155

5.3

165

74.9

6

석유화학중간원료

87

-33.6

52

-13.5

7

기초유분

62

35.3

41

-17.3

자료원 : kita.net, MTI 3단위 (단위:백만불, %)



우리기업의 진출 현황


○ 한-사우디는 산업구조의 경합도가 크지 않아 자본·기술 등 비교우위 요소를 상호 교류할 수 있는 잠재력 보유

 - 그러나 양국 간 문화적 차이, 사우디의 기반여건 취약 등으로 인해 실질적 협력은 아직 활발하지 못한 상태

○ 우리의 대 사우디 진출은 규제회피, 수주지원을 위한 소극적 투자가 주류이고, 원료시장지향 투자, 기술협력 등 분야는 극히 미약

○ 사우디의 대한국 투자도 아직 탐색단계로서 Aramco사의 대S-Oil 투자를 제외하고는 소액 또는 포트폴리오형 투자 위주

진출업체 (2008년 6월 현재)

구분

회사명

전화번호

소재지

상사(11개)

대우전자

01-461-8350

리야드

쌍용

01-473-0622

삼성물산

01-462-7641

SK네트워크

01-460-0356

삼성전자

02-665-0940

젯다

LG 전자

02-263-1740

한국타이어

02-680-6160

코린도

02-652-6177

대우 International

03-814-7540

담맘

유성

03-896-2793

SK 가스

03-887-8407

건설사(8개)

현대건설

01-450-6255

리야드

두산중공업

01-419-1696

리야드

삼환기업

01-461-0753

리야드

삼성엔지니어링

03-834-1852

담맘

대림산업

03-857-8212

담맘

현대중공업

03-887-6652

담맘

한화건설

03-881-2193

담맘

SK건설

03-865-7055

담맘


원유도입 현황


○ 사우디는 세계최대 원유부존·생산국으로서 국제유가 형성 주도

 - 세계 원유매장의 25% (2,642억B), 생산능력의 14% (10.5백만B/D) 점유

 - 우리는 원유수입의 31%(2006년 기준)를 사우디에 의존

 - 사우디는 국제석유위기 발생 시 우리나라 원유를 조달할 수 있는 제1위의 전략적 공급원



한-사우디 아라비아 인적교류 현황



아국인사 사우디 아라비아 방문


2004. 2. 반기문 외교부장관

2004. 6. 황두연 통상교섭본부장 (제13차 한.사우디공동위)

2005. 5. 한.사의원친선협회 대표단 (단장 문석호의원)

2005. 8. 이해찬 국무총리 (Fadh국왕 조문사절)

2005. 11. 이해찬 국무총리 (공식방문)

2006. 2. 전윤철 감사원장 (세계감사원장회의 재무행정위 제3차회의)

2007. 3. 노무현대통령 (공식방문)

2007. 8. 송민순 외교부장관

2007. 12. 김장수 국방부장관


사우디 아라비아인사 아국 방문


2004. 4. 나이미 석유광물부장관

2004. 9. Mulla 정보통신부장관

2005. 5. 오사마 파키 감사원장

2005. 12. 지상군사령관 Al-Kubayel (육군중장, 방산협력)

2007. 1. 나이미 석유광물부장관

2007. 2. Al-Anqary 고등교육부장관

2007. 11. Al-Qusaibi 경제기획부장관 (한.사우디 공동위 참석)


교민 현황
(2008년 6월 현재)


○ 재외국민 실태

 - 사우디는 영주권을 인정치 않고 있어, 사우디내 교민은 대부분 체류자로 분류되며 주로 자영업, 건설업 관련 현지업체에 취업

 - 80년대 중반이후 사우디의 건설경기 퇴조 등으로 우리 건설업체 근로자가 급격히 감소하여 교민들의 수도 감소 또는 정체상태였으나, 최근 사우디에서 우리기업들이 건설 수주에 호조를 보임에 따라 교민수가 다소 증가하는 추세에 있음.

○ 재외국민 현황 및 단체 (2008년 6월말 현재)

 - 교민수 : 1,926명

 - 사우디 중부지역 (리야드 교민회) : 494명

 - 사우디 동부지역 (담맘 교민회) : 1,048명

 - 사우디 서부지역 (젯다 교민회) : 384명




* 위의 자료는 외교통상부, KOTRA, 수출입은행, 한국무역협회, CIA 등의 자료를 기초로 작성되었습니다.



주요산업


석유 및 정유산업


○ 석유부문이 사우디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70년대에는 경상 GDP의 80%, 정부세입의 85% 수준을 점하였으며, 현재에는 GDP의 40%, 정부 세입액의 73% 정도를 차지하고 있음.

○ 2002년 이후 일일 850만 배럴을 유지하다, 최근 중국, 인도 등의 급격한 산업발전으로 석유수요가 급증하여 2006년 들어 일일 960만배럴을 생산하고 있음.

○ 사우디의 파이프라인은 총길이 15,000Km로 90여개가 가동 중 이며 주로 원유생산지대와 정제시설 및 수출 터미널을 연결하고 있고, 석유 생산능력을 증대하여 지속적으로 세계 석유공급을 주도할 수 있도록 유전개발을 추진 중임.

○ 사우디는 정제 시설 확충을 통해 원유보다 부가가치가 높은 석유제품을 직접 수출하는 전략을 수립하여 추진하고 있음.



가스 산업


○ 사우디의 천연가스 매장량은 235조ft3로서 세계 총 매장량의 4%(러시아, 이란, 카타르에 이어 세계 4위)에 이르고 있으며, 세계 1위의 LPG 수출국임.

 - 주요 가스전으로 육상의 Ghawar 유전과 해상의 Safaniya 유전, Zuluf 유전이 있음.

○ 석유화학공업은 장래의 석유자원 고갈시대를 대비한 탈석유화 정책의 일환으로 사우디 정부가 가장 중점적으로 투자하고 있는 분야임.

 - 1976년 설립된 사우디 기간산업공사(Saudi Basic Industries Corporation : SABIC)가 이러한 석유화학공업의 개발을 주도하고 있으며 2004년도 상반기에 총 4,290만톤을 생산하여 전년대비 112% 증가한 38억불의 수익을 기록

○ 이미 공급과잉 상태에 있는 국제석유화학제품 시장에서의 판로개척이 커다란 과제로 부각되고 있음.


기타 광물분야


○ 경제성 있는 광물자원으로 동광석 6천만톤, 인광석 100억톤, 금광석 2천만톤, 기타 보크사이트, 철광석, 아연 등 수백만 톤 보유 추정

○ 1997년초 자본금 10.7억불 전액 정부투자로 국영광업회사(Saudi Arabian Mining Co) 설립 광업분야 개발 추진

 - 미-사우디 합작회사인 Arbian Shield Co. 가 ‘96년부터 사우디 남부지역 동 및 아연광산 개발권 획득, 개발

○ 상기 주요 지하자원은 사우디 서부 Arabian Shield 산악지대에 대부분 분포되어 있어 도로 등 인프라의 미비로 인한 과다한 개발비 소요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외국인투자를 유치할 수 있도록 광물분야 외국인 투자제한 해제 추진 중임.

○ 광물청(Maaden)은 인산염 채광사업, $19억규모의 인산염 비료공장, 보크사이트 채광사업, $44억규모의 알루미늄 공장건설, $28억규모의 광물운송용 산업철도 건설, $10억규모의 비료 및 알루미늄 전용 발전담수공장 등의 프로젝트를 추진할 계획임.


전력산업


○ 전력 보급률은 92%로서 모든 발전설비는 화력설비로 구성

○ 연평균 7.7%의 전력소비 증가율을 기록하고 있으며, 향후 10년간 매년 150만-200만kW 증가 예상되며, 발전용량을 2000년 26,233MW에서 2020년까지 69,000MW로 확대하는 계획을 가지고 있음. 이를 위해 2024년까지 매년 20억불을 투자하여 총 900억불을 투자할 계획임.

○ 사우디내 발전.변전.송전 프로젝트 이외에 GCC국가간 전력망을 연결하는 프로젝트(총 $60억 규모)를 추진 중이며, 1단계로 쿠웨이트 ―사우디―바레인―카타르 간 총 802Km를 연결하는 공사($12.5억 규모)의 입찰을 진행 중임.


건설 플랜트



○ 건설부문은 사우디 GDP의 5.8% 수준을 차지하고, 약 15%의 노동력을 흡수하는 중요한 산업으로, 2004년 발주액은 187억불임.

석유화학, 발전 및 담수, 시멘트공장 등 각종 플랜트건설시장이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됨.

 - 사우디는 담수 생산 공장 건설, 하수정화 처리시설 등 수자원 부문에 2024년까지 463억불을 투자할 계획임.

- 담수 및 전력을 민간중심으로 생산하고 운영하는 독립 수전력프로젝트를 수전력회사(담수청과 사우디전력회사 합작회사) 주관으로 지속적으로 추진 계획

○ 쥬베일 및 얀부지역을 중심으로 석유화학공장 건설이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으며, 2020년까지 SABIC과 민간 석유화학회사를 중심으로 석유화학 플랜트 건설을 위해 1,400억불을 투자할 계획


IT 및 통신


○ 최근 수년간 정부의 IT 및 통신 산업에 대한 집중 육성정책 및 수요자의 폭발적인 증가로 인해 사우디는 중동 지역 최대의 IT 시장으로 급부상함.

 - 2005년 기준 연 23억불 규모로 매년 10% 내외성장, 2010년에는 38억불 규모로 성장 전망

 - 통신부문 민영화, 광대역 통신망 구축 등이 IT 시장 수요를 견인

○ 사우디 통신시장은 IT시장과 함께 비석유부문 중 가장 성장속도가 빠른 산업분야임.

 - 젊은층 인구증가와 함께 휴대폰, 인터넷 수요가 통신산업의 성장 견인차 역할 (15세 이하 인구가 전체의 40%, 20세 이하 50%, 25세 이하 60% 차지)

 - 휴대전화 가입자 : 2004년 920만명(전 인구의 36%), 2009년 2,540만명 전망

국영통신회사(정부지분 70%)인 사우디텔레콤(STC)이 통신시장을 지배



시장환경 및 진출방안



사우디 아라비아의 시장환경


○ 세계최대의 석유부존 및 수출국으로, 석유부문이 정부 세입액의 75%를 차지하는 석유 의존형 산업구조를 갖고 있음.

 - 2006.12월말 현재 원유 생산능력은 1,100만b/d 이며, 실제 생산량은 950만b/d

 - 석유부문이 사우디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70년대 GDP의 80%, 정부세입의 85% 수준에서 비석유부문에 대한 육성 및 투자를 확대한 결과 현재 GDP의 45%, 정부세입의 75% 수준으로 감소 추세

○ 고유가에 기인한 막대한 재정수입의 상당부분을 사회 인프라 및 석유화학, 전력, 담수시설, ICT 기간산업에 투자하고, 제조업의 활성화를 통해 비석유부문 비중을 점차 늘려 나가는 정책을 추진함.

 - 2020년까지 석유화학, ICT, 천연가스 개발, 농업, 교육, 관광 등에 5,600억불 투자 계획

 - 2024년까지 전력사업 900억불, 담수산업 463억불 투자계획

○ 외국인 기업에 대한 스폰서제도, 자국인화 정책(Saudization), 불공평한 조세제도 및 불공정 관행 등은 외국인의 투자유치에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함.

 - 외국인은 사우디 스폰서를 통해서 스폰서 명의로 영업행위 가능

 - 일정수준 이상의 사우디인 채용을 의무화하고 있어 생산성 등에 있어 기업의 경쟁력 약화를 초래


진출방안


○ 전반적인 한국상품 인지도는 높은 편으로, 유럽 및 미국, 일본제품과 비슷한 수준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선진국 제품에 비해 가격경쟁력을 확보하고 있음. 2002 월드컵 등은 한국의 인지도를 제고하는 기회가 되었음.

○ 대 사우디 수출활력 회복을 위해서는 주력품목의 고부가가치화 , 플랜트 시장개척, 신규품목 발굴 등이 필요

○ 사우디 투자진출 시 유망한 분야를 고려한 전략 수립 필요

 - 사우디는 공업부문 제조업과 농업개발부문에 외국인투자를 중점 유치하고 있으며, 석유화학 및 사회간접시설에 대한 투자유치도 적극 전개 중임.

 - 사우디의 투자장려 분야에 대한 전략도 검토하는 한편, 시장이 크게 확대되고 있는 전자, IT 및 통신, 석유화학, 기계플랜트 분야를 중점 검토할 필요가 있음.

○ 걸프지역 생산허브 구축 전략

 - UAE의 두바이가 중동지역의 허브 역할을 하고 있으나 두바이는 금융/보험 등 서비스부문에 허브역할을 지속할 전망이며, 산업부문에서는 역할이 사우디를 중심으로 인근국가로 이전될 가능성이 많은 점을 고려하여 중동지역 특히 Gulf 지역 시장을 겨냥한 생산기지를 설립하여 역내 판매하는 전략이 바람직함.



수출유망분야



IT 및 정보통신

 - IT시장은 매년 두자리수 이상 성장 추세

 - HP와 대만의 Acer가 현지 생산공장을 설립 또는 설립키로 확정하는 등 외국기업의 투자가 증가하고 있는 추세에 있으며, 디스플레이, 휴대폰 등에 대한 현지투자진출이 유망

 - 정보통신 부문에서 2007년에 제3이동통신 사업자 선정(쿠웨이트 MTC사 선정) 등 외국기업 진출이 가속화되고, 관련 부대사업에 대한 투자전망이 밝은 편임.

기계 플랜트

 - 고유가 기반의 풍부한 오일머니를 바탕으로 기계플랜트 발주확대

 - 각종 인프라 구축, 경기활성화에 따른 생산시설 확충 등의 영향으로 기계플랜트 관련설비 및 기자재 수요 크게 증가

 - 소형플랜트 설비나 각종 기자재의 경우에는 현지합작투자를 통하여 시장 진출할 경우 효과적 진출 가능

 - 한국의 경쟁력이 비교적 취약한 엔지니어링 분야에서는 선진국과 합작투자진출이 바람직함.

○ 석유화학

 - 사우디 석유화학산업은 1차 생산물에 치중이 되어 있고 합성수지 등 2차 생산품은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이 부문 투자진출이 유망

 - 석유화학산업은 산업의 연관효과가 매우 커 다양한 시너지 효과를 창출할 수 있는 장점이 있으며, 석유화학공단에 대한 공공요금 감면, 임차료 할인혜택 등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

○ 4대 산업클러스터 분야 (National Industrial Cluster Program)

 - 비석유부문 산업 중점육성을 위해, 2006. 12월 1차적으로 자동차 (관련산업 포함), 금속가공, 건설자재, 설비 등 중점 육성 4대 클러스터로 선정

 - 사우디가 걸프지역 최대의 자동차 시장이자, 한국의 최대 자동차 및 타이어 수출대상국으로 완성차 또는 타이어 현지공장설립을 통한 진출을 적극 고려할 필요가 있음.

 - 각종 인센티브 혜택 및 중동지역을 커버할 수 있는 중심지로서 물류비용 절감 등을 통해 시장 확대가 가능할 것으로 전망

  - 금속가공, 건설기자재, 설비 분야의 경우 현지 건설경기의 활성화에 따라 수요가 크게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며, 중소규모의 현지 생산 조립공장 설립을 통해 현지 수요에 대응하는 경우 진출확대가 가능한 분야임.

○ 소비재

 - 외국인 투자유치를 적극추진하고 있는 분야인 일반소비재 제조업 분야에 설비 수출 또는 합작투자 진출

 - 자전거, 간단한 기계 및 공구류,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지 않는 일반소비재 유망. 국내에서 폐기 또는 운휴 중인 경공업제품의 제조시설을 수출 또는 합작투자 등의 방법으로 사우디에 진출해 볼만하며 진출 시 국내 기술자의 파견도 가능



* 위의 자료는 외교통상부, KOTRA, 수출입은행, 한국무역협회, CIA 등의 자료를 기초로 작성되었습니다

○ 국명 : 사우디 아라비아 왕국 (Kingdom of Saudi Arabia)

○ 수도 : 리야드 (Riyadh, 인구 3백만 명)

○ 국왕 : 압둘라 (Abdullah bin Abd al-Aziz Al Saud) 국왕

  - 두 성지의 수호자(the Custodian of the Two Holy Mosques)로 칭함.

○ 면 적 : 215만㎢ (아라비아반도의 4/5 차지, 한반도의 10배)

○ 위 치 : 아라비아 반도 (북위 16-32도, 동경 36-56도에 위치)

○ 인 구 : 2,700만 명 (2006.7월 현재, 외국인 558만 명)

  - 인구 밀도 : 13.47명/㎢

  - 남자 55%, 여자 45%

○ 민 족 : 아랍족 (90% : 베드윈족 27%, 기타 아랍정착민 73%),

아프리카-아시아인 (10%)

○ 종 교 : 이슬람교 (수니파 90%, 시아파 10%)

○ 언 어 : 아랍어

○ 정부형태 : 이슬람군주국 (정교일치의 국왕중심제)

○ 의 회 : 없음 (국왕이 임명하는 120명의 국정자문위원회가 유사한 역할 담당)

○ 주요정당 : 없음

○ 국제기구가입 : UN, ILO, FAO, UNESCO, WHO, IBRD, IMF 등

○ 독립기념일 : 5월 20일 (1927. 5. 20 국가통일)

○ 화폐단위 : Saudi Riyal (SR) (US$1 = SR3.75365, 고정환율)

○ 산업구조 : 석유/가스산업 47.8%, 서비스업 33.7%, 제조업 9%

○ 주요수출품 : 석유, 석유화학제품

○ 주요수입품 : 기계류, 운수장비, 섬유류, 식품

○ 석유매장량 : 2,643억 배럴 (세계 매장량의 약 23.1%) (OPEC 자료)

○ 천연가스매장량 : 235조 ft³로서 세계 총 매장량의 4% (OPEC 자료)

○ 경제적강점 : 석유자원 풍부 (세계매장량의 25%로 세계 최대)

○ 경제적약점 : 노동력 부족, 과도한 석유산업 의존

○ 1인당 국민소득 :$ 23,200 (2007)

○ 국민총생산 : $ 3,760억 (2007)

○ 표 준 시 : GM + 3 (카타르, 바레인과 동일)

○ 기 후 : 고온건조한 대륙성




* 위의 자료는 외교통상부, KOTRA, 수출입은행, 한국무역협회, CIA 등의 자료를 기초로 작성되었습니다.




'다빈치 코드'의 배경이 되었던 교회이자, '사디즘'이란 단어를 만들어낸 마르키 드 사드, 또 보들레르가 세례를

받은 곳이 바로 이 곳, 생 쉴피스 성당이다. 파리에서 두번째로 큰 성당이자 세계에서 가장 큰 파이프 오르간이

있다나. 그렇지만 그런 식의 사이즈 과시에는 별 관심도 없었고-사실 다녀온 후에야 알게 된 정보들이다-게다가

내가 갔던 작년 9월에는 한창 가림막으로 온통 둘러친 채 공사중이었다.


그래도 앞에 있는 거대한 분수 조각상이 꼭 맘에 들었었다. 묽은 초코렛이 흘러내리는 이층 케이크처럼, 보드라운

물살이 층층이 흘러내리는 그 멋진 광경, 그리고 그 소란스럽지만 유쾌한 분수대를 향해 둥그렇게 자리잡은 온갖

그림쟁이들. 그림으로 밥을 벌어먹는 사람인지, 단순한 취미로 그리는 사람인지 일군의 사람들이 그렇게 분수를

꼬나보며 살짝 인상쓰고 있는 풍경에 나도 녹아들고 싶었다. 그림을 배워보고 싶단 생각이 살풋.

생제르맹 거리에서 친구를 만나 점심을 먹기로 했는데, 갑작스레 비가 내렸다. 파리의 날씨란 게 워낙 햇빛도 귀한

데다가 날씨도 대개 꾸물꾸물하기 마련이어서 사람들은 갑작스런 비에도 별로 개의치 않는 눈치였다. 더러는

저렇게 의연하게 비를 맞으며 가던 길을 가고, 더러는 잠시 근처 까페에 앉아 비를 긋기도 하고.

비 내리는 풍경을 구경하는 걸 좋아한다. 김한길의 소설에서 얼핏 본 구절인 듯 한데, 비가 내리면 사람들은

조금씩 더 착해 보인다는 느낌. 수천년동안 인류는 비를 맞아왔지만 여전히도 비를 긋는 장비라곤 얄포름한

비닐 조각 하나에서 크게 진보하지 못했다.

비가 내리면, 사람들은 살짝 '어쩔 수 없다'는 체념어린 표정을 지으며 거리로 나선다. 서울에서도, 파리에서도.

부슬부슬 내린 비였는데, 친구와 맥주 한잔 하며 돌아본 거리는 어느새 흠뻑 젖어서 번들번들거릴 정도다.

생제르망 거리면 나름 한국의 대학로에 비길 수 있을까, 번화가라긴 뭣하지만 그렇다고 고즈넉한 교외라거나

외곽지역은 분명히 아닌데...쏴아 내리붓는 빗소리에 묻혀 외려 조용해진 거리.

나서기로 했다. 금방 그칠 비는 아닌 거 같아, 우리도 의연히 저 비맞고 다니는 사람들의 대오에 합류하기로 결정.

가게의 처마 끝에서 똑, 똑, 떨어져내리는 빗방울을 포착하고 싶었는데 왠 의식치 않은 아가씨의 뒷모습만

도촬해 버린 사진이 나왔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모노프리(MONOPRIX)'에서 장을 보고 숙소에 돌아가기로 했더랬다. 외국의 마트를 돌아보며

한국에서 못 본 것들을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을 거라 기대했는데, 당장 쇼핑한 물건들을 담는 바구니부터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바퀴달린 바구니에서 길다랗게 손잡이가 당겨져 나오는 형태, 무식하게 큰 카트를 끌 필요도

없고, 무거운 바구니에 절절 맬 필요도 없고.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에서 이런저런 책을 구경하다가 설렁설렁 팡테옹까지 걷기로 했다. 가는 길에 마주친 프랑스

교육의 중심지라는 소르본 대학 건물群. 이젠 소르본대학이 아니라 파리 제3, 제4대학이라 불리는 것들이 이곳에

있다지만, 마치 두터운 성벽처럼 온통 외부인을 막아선 문들 뿐이다. 목이 말라 1.6유로짜리 맥주 캔 하나 사들고는

홀짝대면서 이리저리 빈틈을 찾다가 결국 청소부 아저씨들이 문을 활짝 열어두고 일하는 곳을 찾아냈다.


마치 학생인양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더니 어라, 대략 통한다 싶다. 그렇지만 안마당에 들어서서 잠시 발걸음이

헤매는 걸 눈치챈 아저씨가 불러내길래 잠입 실패. 조용히 내부만 한번 둘러보고 싶었을 뿐인데, 방학 중에는

외부인에 닫혀 있댄다.

몇 걸음 걷지 않아 눈 앞에 덜컥 나타난 팡테옹. 소르본 대학이 자리한 거리인지라 대체로 건물들이 크고 높았기에

그다지 팡테옹의 커다란 돔이나 쭉쭉 뻗은 대리석 기둥이 위압적으로 다가오진 않았다. 그렇지만 이곳 역시 파리의

시내 전경을 한눈에 내려볼 수 있는 전망 좋은 곳 중의 하나로 꼽힐 만큼 높고 유명한 곳이랜다.

마침 내가 갔을 때엔 에밀 졸라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양심으로 추앙받는 에밀 졸라,

그가 묻혀 있는 납골당이 바로 이 곳이다. 팡테옹, 고대 로마의 만신전을 의미한다는 이 이름에 걸맞게도

이 곳은 프랑스의 국가적 영웅들이 안치되어 있는 거대한 납골당인 거다.

문으로 들어서면 넓은 공간이 하나 있고, 벽면에는 온통 대리석 조각들, 그림들, 그리고 벽화들이 즐비하다.

한면에는 마치 성당의 제단이나 모스크에서 메카의 방향을 나타낸 제단과도 같이 움푹 들어간 둥그런 공간에

누군가의 대리석 조상이 숱한 군상들에 떠받들려 있기도 했다. 천장의 돔에서 쏟아져내리는 태양광, 그리고

천장 주변에 그려진 황금빛 벽화들은 왠지 성당과 같은 느낌을 자아냈다.

그렇지만 이 공간은 신을 위한 것이 아닌, 프랑스의 위인들을 위한 공간. 만약 한국에 이런 거대한 납골당을 만들어

한국의 위인들을 안치한다고 하면, 대체 누가 '입소'할 수 있을까. 여전히 뜨끈뜨끈한 현대사의 해석과 평가 문제도

문제려니와, 어떤 분위기의 납골당이어야 할지도 시비거리일 거다. 최근 들어 고조되고 있는 종교간의 갈등도

고려컨대, 그 납골당은 연꽃, 십자가, 만자, 혹은 '마늘과 쑥' 등등 온갖 종교적 상징과 이미지들이 몽창 소거된

두터운 콘크리트 벙커같은 이미지여야 하지 않을까. 아마도 치명적으로 휑뎅그레할 '공실률'도 문제일 게다.

푸코의 진자 실험이 진행된 곳이 여기랜다. 실제 실험이 수행되었던 순간을 촬영한 영상이 한쪽에서 끊임없이

반복 상영되고 있었고, 저 금빛 진자는 계속해서 무언가 궤적을 종횡으로 그리고 있었지만, 여전히 푸코의 진자

실험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는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난 그저 그 실험이 진행되는 장면을 지키고 선 듯한 저 이집트틱한 고양이상이 반가웠을 뿐.

지하로 내려가면 온통 묘소 일색이다. 밝은 회색의 석재 관짝이 좌우로 즐비하고 다소 침침한 조명이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한껏 돋운다. 터키에 갔을 때 거대한 기독교도들의 지하묘지를 봤었는데 거의 유사한 분위기다. 그러한

지하묘소를 카타콤(Catacombs)라 한다던가. 프랑스의 혁명가 마라, 철학자 볼테르, 루소 등 70여명의 학자, 군인,

정치가 등이 묻혀 있고, 아직 250여명은 더 묻힐 공간이 있다고 한다. 훗, 왠지 이곳도 공실률이 꽤나 높군.


꼭 이런 식으로 죽은 사람들을 모아놓고 이용해야 할까, 사실 뭔가 경건한 분위기여야 했겠지만 그다지 난. 솔직히

좀 기괴하고 집요하다는 생각만 들었다. 프랑스의 영광을 위해, 프랑스를 위해 사후의 평안마저 갈취당했다면

심한 표현일까.

매일 오전 10시부터 1시간 간격으로 50여명씩 돔에 올라갈 수 있댔다. 바로 이 위가 파리의 멋진 시가를 조망할 수

있다는 거대한 돔이 세워져있다는 곳. 애초 파리의 온갖 전망대 중에서 에펠탑, 개선문, 그리고 팡테옹의 전망이

개중 훌륭하다고 들었던지라 얼른 돔 탐사조에 합류했다.

좁고 가파른 계단을 꼬불꼬불 지나고 나니 어느새 팡테옹 옥상 쯤에 다다랐다. 돔에 훨씬 가까이 온 셈인데, 가까이

접근해서 바라본 돔은 한눈에 담기 버거울 정도로 거대했다. 살짝살짝 이가 어긋나 보이는 돔의 기둥들이 다소간의

긴장감을 선사하기도 했지만, 이미 옥상에서 바라본 전망만으로도 이렇게나 멋져서 돔까지 얼른 올라가고 싶었다.

팡테옹의 지붕과 근처 건물들의 옥상들이 그려내는 울룩불룩한 감촉의 마천루 위로 솟아오른 에펠탑과 앵발리드.

생테티엔 뒤 몽 교회라던가, 파리의 수호 성녀인 성 주느비에브를 기리는 성당이라고 했다. 우리를 안내했던

팡테옹의 담당자는 자신의 엉덩이에 코를 묻을 만큼 바싹 뒤를 쫓는 내게 쉼없이 파리의 풍경에 대해 설명해주고

싶어했다.

마침내 올라선 돔 내부는 한바퀴 빙 둘러 걸으며 파리의 전경을 360도로 바라볼 수 있었다. 이렇게 높은 줄은

몰랐는데, 이 정도 높이면 에펠탑 2층전망대 가까이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저 멀리 야트막한 구릉이 아마

몽마르뜨 언덕이 맞나..잘 모르겠지만 만약 맞다면 그 위에 섰을 사크레 쾨르 성당의 하얀 빛까지는 안 보인다.

우뚝 선 몽파르나스 타워가 보이는 이 곳은 파리 시내의 남쪽 풍경. 지붕들의 독특하고 고풍스런 장식과 윤곽들을

시선 끝으로 하나씩 쓰다듬듯 따르는 것도 재미난 일이다.

루브르 궁전이 늘어선 회랑이 보인다. 파리라는 도시의 오랜 역사를 실감케 해 주는 건 역설적이게도, 이런 식으로

고풍스럽고 장식적으로 보이는 지붕들인지도 모른다. 저 지붕들 자체야 몇백년이나 헤아릴 수 있겠냐만은, 저런

과거의 것들이 여전히 지금 현재에도 실생활과 함께 한다는 건 구호로만 요란한 600년짜리 도시네 어쩌네보다

훨씬 강력하게 '오랜 역사'를 증거하는 것 같다.

바싹 땡겨서 찍어본 에펠탑과 앵발리드의 금빛 돔. 낮에 바라보는 에펠탑의 저 갈색 빛깔은 왠지 맛있게 타진

프림커피 같기도 하고, 세련된 빛깔로 녹이 슨 황동제 장식품같기도 하고.

돔의 원형 통로. 50여명이 우르르 돌아다니는데도 전혀 인구밀도가 높다는 느낌 따위 없을 정도로 생각보다

폭도 넓고 길었다. 에펠탑이나 개선문 위의 전망대와는 달리 강건한 느낌의 기둥 사이로 내다보이는 파리의

전망이 많이 다른 느낌이었다.

내려오려는데 왠지 아쉽다. 조금 남아있다가 내려가면 안되냐고 물어보니, 안전상의 이유로 다함께 올라오고 또

내려가야 한다고 했다. 못들은 척 미적거리다가 맨 마지막으로 내려왔다. 등 뒤에서 잠기는 만만찮은 두께의

철문, 그렇게 팡테옹 돔에서 지상으로 내려왔다.


그러고 보면 좀 찝찝한 감이 남았다. 거대한 납골당에 안치된 프랑스의 위인들을 밟고 서서 프랑스의 수도, 파리를

굽어본 셈이랄 수도.

푸코가 1849년 이곳에서 진자를 매달고 흔들면서 수행했던 실험은 돔의 높이를 이용해, 지구의 자전을 세계 최초로

실증한 실험이라고 한다. 글쎄. 이과 쪽 학문에 약한 나로선 당췌 들어도 모르겠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오랑주리 미술관은 한국인들보다 일본인들에 훨씬 유명하고, 높이 평가받고 있다고 한다.

실제 내가 갔을 때에도 한국인은 혼자인 듯 했고, 동양인은 모두 일본인이었다. 글쎄..한국어 가이드북에 오랑주리

미술관의 비중이 그리 크게 나오지 않아서 그런 건가..


나 같은 경우는 파리에 가면 끌로드 모네의 '수련' 연작을 꼭 보라던 이야길 듣고 이미 잔뜩 혹해 있었어서, 한 번

문닫는 날 찾아가선 좌절했음에도 굴하지 않고 다음날 아침 일찍부터 찾아갔댔다.

튈를리 정원 내에 있달까, 다른 건물들과 다소 외떨어져선 세느강변을 내려보며 서 있는 날씬한 느낌의 미술관.

오랑주리 미술관 지하에 전시되어 있던 건 자그맣게 축소된 형태의 누군가의 서재. 책들이 가득한 방의 네면 그득

한눈에도 익숙한 혹은 전혀 낯선 그림들이 잔뜩 전시되어 있었다. 나도 나중에 저런 서재 하나 갖고 싶단 생각 뿐.

누군가의 서재를 그대로 보여주는 듯 한데, 누구였을까. 아마 오랑주리 미술관의 컬렉션이 원형이 되었다는

폴 기욤의 서재였을까. 그는 예술가들의 후원자이자 화상으로 어마어마한 컬렉션을 모았다고 했는데, 난 굳이

진본 작품을 걸지 않고 복제판 작품을 걸어도 마냥 뿌듯할 거 같다. (바야흐로 디지털 시대, 시뮬라르크가 대세다.)

나중에 내 방엔 르누와르, 수틴, 모네의 그림을 꼭 걸어놓아야겠다고 다짐다짐.

오오...1층에 올라가면서 왠지 모를 신비스런 느낌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하얀빛의 정숙한 통로를 따라 오르는데,

무슨 현대식 신전으로 들어가는 느낌이랄까. 그 통로 끝에서 나를 맞이했던 끌로드 모네의 '수련' 연작들.

압도당했다. 루브르박물관에서 보았던 다빈치의 그것들, 심지어 모나리자보다도 감동적이었다.


타원형 방 안에 기이일~게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네 장의 그림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런 타원형 방이 두개 서로

연결되어 총 여덟 장의 수련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해뜰녘, 해질녁, 그리고 계절감이 다른 수련의 그림들.

잔잔히 바람 한 점 없는 명경같은 호수, 살짝 이는 바람에도 산산히 쓸려져 내리는 물결, 그리고 흐릿하니 빼곡히

하늘을 메운 구름, 그 구름마저 품어버린 호수. 모네가 굳이 수련을 택해 그가 계속 그림을 그린 건 수상식물인

수련이 갖는 특수성 때문일까. 처음엔 수상, 물 위의 풍경들만 보였지만, 조금씩 수면, 호수 표면에 떠있는 풍경들,

그리고 수면 아래 수초나 다른 일렁임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세 개의 층위로 구획되는 공간이 서로의

움직임을 따르고, 부추기고, 그런 게 춤이다.


게다가 빛과 시간. 공기의 일렁임에 더해 빛의 밝기와 농밀함을 변화시키는 시간의 손길이 더했다. 천변만화하며

수상의 하늘에서, 수면 위에서, 호수 아래에서 피어나는 수련의 움직거림들. 수련의 춤.

진중권의 미학 오디세이에서였던가,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 특징을 설명하면서 예로 들었던 게 바로 이 작품이었다.

가까이 코를 박고 보면 의미불명으로 굳어버린 물감덩이일 뿐이지만 한걸음씩 뒤로 물러나며 시선을 던질수록

수련들이 무수하게 피어오르는 걸 볼 수 있다는. 정말이었다.

오랑주리 미술관의 입장권은 당연히 끌로드 모네의 '수련' 작품의 한 부분을 얼굴로 내세우고 있다. 기념품삼아

여전히 내 사무실 노트북 앞에 붙여놓고 있는 입장권.

다시 한번 말씀드리자면, 7.5유로. 괜히 국제학생증도 없으면서 학생이라 우기면서 할인받으려는 꼼수는 꿈도

꾸지 말 것. 다른 곳은 몰라도. 그리고, 얼마를 주더라도 꼭 가 볼 만한 곳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터무니없는

금액이라도 모두 기꺼이 내겠다는 건 아니지만.) 지하의 인상파 화가들 작품도 그렇지만, 모네의 수련 연작

여덟점만 멍하니 보고 있어도 하루가 후딱 갈 거 같은 느낌.

(화요일, 국경일 휴무. 7.5유로. 09:45~17:15)

오랑주리 미술관 입구에 있는 이 작품, 로댕 미술관에서 본 적 있는 그 작품이다. 제목이 키스였던가..보고 있기만

해도 입술이 근질근질해지는 느낌.

오랑주리 미술관 앞에 잔디밭에 잠시 앉아서 다이어리를 정리하고 어딜 갈까 생각하고 있는데, 경비원이 와서

쫓아낸다. 잔디밭에 앉으면 안 된다길래, 무안해진 김에 다짜고짜 바로 옆 세느 강으로 향했다.




태국 여행 중에 어쩌다 보니 맞닥뜨렸던 전철의 마지막 종착역. 그 평행한 두 철길이 끊기는 곳에 적혀 있던 STOP.

그리고, 언젠가 술먹고 카메라를 덜렁대며 집에 돌아가던 길에 찍었던 시꺼먼 지하철 터널 속의 심연.

형광등이 찬란한 플랫폼이 끝나고 어둠이 불빛을 살라먹는 터널을 금지하는 '출입금지'의 푯말.
열반을 뜻하는 와불이 있어 열반 사원이란 이름을 갖고 있다는 왓 포. 46미터나 되는 거대한 와불상이 눈을 홉뜨고

사람들을 굽어보고 있는 곳이다. 왓 포는 또한 방콕에서 가장 오래된 사원이자 가장 커다란 사원이랜다.

오돌토돌한 머리가 무슨..손에서 갖고 놀며 혈액순환을 돕는다는 그런 건강보조기구 닮았다. 온통 금빛으로 찬란한

불상인데, 왜 난 저게 정말 금일까 두께는 얼마나 될까 18K정도는 될까 요런 생각만 나던 걸까. 부처님 죄송염~*

미끈한 각선미를 자랑하는 부처님. 크기는 크지만 사실 디테일은 그닥 실망스러운 수준이었다. 다리라고 쭉 뻗은

원통 두개를 붙여놓곤 끝이다. 어찌 보면 하반신 마비인 거 같기도 하고. 부처님 다시 죄송염~*

자개로 삼라만상을 표현했다는 부처님의 발바닥. 무슨 도장같이 파여져 있다. 이렇게 거대한 발바닥, 그리고 이런

그림으로 가득한 발바닥은 아마 이게 세계최고지 싶다. 그림은 하나하나 세밀하게 자개조각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하나씩 뜯어보아도 참 이뻤다.

거대한 부처님이 누워계신 방안에는 벽을 따라 쭈욱 헌금 항아리가 놓여 있었다. 왠지 저 항아리마다 동전 하나씩

빠짐없이 전부 봉헌하면 뭔가 소원성취 인생역전될 거 같은 묘한 분위기를 풍겼다. 가방을 둘러메었던 어깨에는

땀이 흠뻑 젖었던 이 때는 8월..쯤이었던가.

왓 포의 바깥에는 이런 뾰족한 탑들을 불규칙하게 늘어서 있었다. 딱히 열을 지어 서있는 느낌이 아니라 그냥 아무

곳에나 자유롭게 산개해 있다는 느낌. 저 기묘하고 이국적으로 생긴 탑이 하나만 덜렁 떨어져 있었음 얼마나

뻘쭘했을까. 배경처럼 층층이 세워진 왕궁의 지붕과 다른 것들과 맞물려 딱 어울린다.

이런 탑, 그리고 저런 문, 그 앞에서 지키고 선 거대한 석상까지..조영남 식으로 말하자면, 여기는 태국의 방콕,

왓포사원 앞마당입니다~* 타일을 하나하나 붙여서 저런 무늬를 만들고, 규칙과 배열을 만들어낸 것이 신기하다.

품도 엄청 많이 들었을 테고 시간도 그만큼 많이 들었을 거다. 하기야 과거의 사람들에겐 무던하고 참을성있게

몇십년, 한평생, 혹은 몇 세대에 걸쳐 일을 해낸다는 게 그다지 두렵거나 망연스러운 일은 아니었던 듯 하다.

요 쬐꼬맣고 귀여운 코끼리 모양의 수호상은 현대적 의미로 재해석되었달까, 그 코끼리 코로 열린 문짝을 고정하는

지지대 역할을 하고 있다. 근데 저렇게 바싹 말아올려진 코 모양이 영락없이 뭔가 힘껏 끌어당기는 모양새지 싶어

가만 보고만 있어도 웃음이 났다.

다른 퉁퉁하고 묵직한 느낌의 수호상과는 달리, 상당히 얍씰하게 빠진 보디라인을 가진 이런 청동 수호상도 있다.

여긴 왓 포 사원과 인접한 다른 불당이었는데, 스님이 앉아 있는 자세가 워낙 다소곳하니 이뻤다. 무슨 일을 하던,

일정한 수준에 도달한 사람들의 몸짓, 태, 이런 것들은 아름답게 느껴질 때가 있다. 마치 오랜 기간 연마한

발레리나의 손짓, 몸짓처럼 더없이 매끄럽고 우아하게 떨어지는 그 흐름과 분위기랄까. 스님은 부처님을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는지, 당신의 뒷태로 이야기하고 있는 거 같았다.

금빛찬란한 좌대 위에 올라앉은 부처님 위에는 작은 양산도 드리워져 있었다. 그리고 보랏빛 꽃으로 온통 장식된

좌대 아래에는 국왕의 사진도 보였고 다른 스님들인 듯한 분들의 사진도 많이 놓여있었다. 조명의 효과랄까,

부처님은 그 모든 걸 지긋이 내려보고 있던 느낌.

쇠파이프로 만들어진 청룡언월도를 꼬나쥐고 있는 걸 보니, 이 수호상들은 좀 최근에 만들어 세워진 것 같다.

저 수염은 왠지 '캐리비안의 해적2'에선가 나왔던 문어 수염 선장을 생각나게 한다.

저토록 정교하고 섬세한 문양들은 거리를 어느 정도 격하고 바라본다고 해서 디테일이 뭉개지지도 않을 뿐더러,

얼마나 심혈을 기울여 하나하나 박아넣었을지 절절이 느껴졌다. 돌출된 타일이래봐야 주변 것들에 비해 고작해야

몇 밀리미터 어간이겠지만, 그런 약간의 도드라짐으로 이런 입체감과 깊이를 느끼게 할 수 있다니 감탄했다.

우리 부모님. 뭔가 화보집 촬영이나, 적어도 2009 S/S 의류패션집처럼 나왔지 싶어서 살짝 자랑질.ㅡㅡ;ㅋㅋ

중요한 장소임을 드러내는 표식들 중에는, 하늘 높이 솟은 지붕이나 끝없이 늘어선 두툼한 기둥들 이외에도

어디에서든 문간을 지키고 섰는 온갖 수호상들이 있다. 청동, 대리석, 현무암질, 검은 오석, 철..다양한 종류의

재질에 다양한 표정, 다양한 모양새를 하고 있지만 대개 상상 속의 동물이란 점에선 유사한 것 같다. 꼬맹이들이

좋아라 하며 수호상의 발치를 차지하곤 방긋 웃는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한쪽 벽면의 그림을 복원하고 있는 걸까, 어떤 아주머니가 정성스럽게 두무릎을 모으고 앉아 벽화에 붓을 대고

계셨다. 옆에 놓인 여러 도구들이나 단단히 짜여진 아시바를 보면 훼손된 벽화를 덧칠하거나 다시 복구하는 전문가

틱한 작업이긴 한 거 같은데...붓끝이 너무 뭉툭하고 두툼해서 염려스럽다. 저렇게 세밀한 필치로 묘사된 화려한

마차와 건물들, 자연 풍광들을 묘사하려다가 되려 모두 뭉개버릴 것 같다는 불안감이 들었다.

저 못생긴 동물은 해태인 걸까..개구리랑 사자를 합쳐놓은 거 같기도 하고, 꼬리는 볏이 듬성듬성 서있는게..닭?

그러고 보니 해태는 어느새 서울의 상징동물이 되었다고 들었었다. 대체 해태가 뭔지 문득 궁금해져서.

해태獬豸 ≒해타(). : 사자와 비슷하나 머리 가운데에 뿔이 있다고 한다. 중국 문헌인 《이물지()》에는 "동북 변방에 있는 짐승이며 성품이 충직하여 사람이 싸우는 것을 보면 바르지 못한 사람을 뿔로 받는다"라고 설명되어 있다. 한국에서는 대사헌의 흉배에 가식()되기도 하였고, 화재나 재앙을 물리치는 신수()로 여겨 궁궐 등에 장식되기도 하였다.  (네이버 사전 참조)

왕궁을 걷다 보면 순간 길을 잃고 헤맨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비슷한 건물들이 온통 시야를 가리고 겹쳐섰어서,

내가 지금 어디 있는 걸까, 무슨 건물과 무슨 건물 사이에 끼어 있는 걸까 지도를 찾아 확인하게 된다. 비가 살짝

나리고 바람이 쌀쌀한 날씨에도 여행객들은 개의치 않고 걷고 있다.

태국 왕실을 지키는 근위병의 근엄한 자태..라지만, 영국의 근위병이나 다른 서구 제국의 그것과는 느낌이 사실

많이 다르다. 일단 짧고, 왜소한 체구, 게다가 왠지 빈티가 살짝 나보이는 외모까지. 온갖 '양이(洋夷)'의 문물에

왜곡되어 버린 나의 시신경, 감각기관의 탓인 걸까 아님 정말 누가 봐도 그렇게 생각할까. 어쨌든 이 분도 꼼짝않고

빳빳이 서선 왕실에 근엄함과 권위를 보탰다. 옆에서 왠지 뿌듯한 표정을 짓고 계신 부모님.

빗방울을 툭, 툭 흘리는 칠칠맞은 하늘 탓에 시야가 다소 뿌옇고 시크무레죽죽한 느낌이었지만, 그래도 화려하게

꾸며진 궁궐 건물들의 지붕은 되려 적당한 광채를 머금고 안온하게 느껴졌다. 사실 햇볕이 살짝 강하게 내려쬐었을

땐 눈이 아플 지경이었단 말이다. 태국 왕실이 국민들로부터 받고 있는 절대적인 신뢰와 존경을 궁궐 지붕에

비기자면, 이런 식으로 적당히 구름낀 하늘 아래 담백한 광택만을 부드럽게 흩뿌리는 순금색의 느낌? 햇살마저

반사시켜 지가 반짝이는 양 보는 사람의 시야를 온통 얼룩지게 만들었다면, 그런 신뢰와 존경은 불가했을 거다.

중요한 사원, 신전들을 보호하는 수호상들. 비슷한 모티프로 제작된 상상속의 동물들이나 인물들이지만, 곳곳에서
 
색다른 표정과 뉘앙스를 만나게 된다. 약간은 찡그린, 멍청해보이기도 하고, 뭔가 불만에 가득하거나 화장실이

급해보이기도 한 울상인 표정도.

왠지 색목인 삘이다. 다른 수호상에 비해 월등한 사이즈도 사이즈려니와, 움푹 패인 커다란 눈에 높고 큰 코,

게다가 이국적인 콧수염까지. 한 때 태국 왕실에서 서양인이 근무했던 적이 있는 걸까. 괜히 이런저런 상상을

해 보게 만드는 수호상.

왕궁은 야트막한 담을 경계로 외부 세계와 갈라져 있다. 파란색빨간색 촌스러운 색깔의 택시가 유유히 굴러다니는

2차선 도로. 이 곳을 구경하고 나니까 우리나라의 궁궐들도 한번 작정하고 제대로 구경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대조군이 있어야 그에 비교해서 뭐는 어떻고 뭐는 어떻고, 이렇게 나불나불 이야기할 거리들이 생길

텐데 말이다.

뜬금없는 랍스터 사진. 저녁을 먹으러 근처 씨푸드 레스토랑에 갔는데, 들은 것과 달리 랍스터 가격이 한국에 비해

그닥 싸다는 느낌이 없었다. 그래서 배터지게 함 먹어보려던 애초의 계획을 철회하고 맛만 보는 걸로 급선회.

내 손바닥 두개 합친 것보다도 더 큰 듯한 이 통통하다 못해 퉁퉁하고 거대한 랍스터를 먹은 건 아니고. 



 
슬랩스틱이 난무하던 어린 시절의 개그 프로에서 단골 레퍼토리로 나오던 동네가 있다. 방콕. 방에 콕? 그 방콕.

태국의 왕이 살던, 그야말로 방콕 중에서도 노른자위라 할 Grand Palace 내에 세워져 있는 이 황금빛 기둥은

'도시의 기둥'이란 의미의 락 므앙이라고 한다. 태국인들은 도시를 세우면 꼭 기둥을 세우고 그 곳에 사당을

세운다나. 끄트머리가 연꽃봉오리 모양인 황금빛 기둥은 얼핏 두꺼운 국기봉같기도 하지만, 글쎄, 아마도

태국인들은 이 기둥이 도시 위의 하늘을 떠받친다고 생각한 것일까.

뭔가 영험한 힘이 깃들었다는 곳은 한국이나 태국이나 온통 번쩍번쩍하고 화려한 문양이 눈에 띈다. 규칙적으로

배열된 벽지 디자인하며, 붉은빛 금빛으로 채색된 문짝하며, 그리고 그 위의 얹힌 핑크 테두리 그림까지. 참

이질적이다 싶으면서도 또 어떻게 생각하면 익숙한 면이 없지 않다. 한국의 절들에서 보이는 사천왕상이나

다른 벽화들, 혹은 불교에 포섭된 삼신각의 그림들까지.

락 므앙에 들어가는 문 중의 하나였지 싶다. 저토록 조밀하고 섬세하게 표현된 문양들과 문짝의 그림들이라니.

금색을 그냥 쳐발랐다면 무지 촌스럽고 유치찬란해 보였을 텐데, 금색의 고급스러움과 위풍당당한 느낌은

살리면서도 화려함 역시 갖추려고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지 않았을까.

왕궁, Grand Palace는 어디나 그렇듯 무지하게 넓다. 여러 전각으로 구획된 공간마다 층층이 높고 주렁주렁한

장식이 달린 럭셔리 지붕이 턱하니 얹혀있었다. 상대적으로 심플하고 깔끔해 보이기만 하는 하얗고 네모난 기둥들.

이곳 기둥들을 전부 그 '도시의 기둥'처럼 금칠해놨었음 더욱 화려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외려 시선이 분산돼

지붕에서 펼쳐지는 기기묘묘한 장식들의 향연을 즐기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싶기도 하고.

전철 안에서,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태국인들의 먼 선조들이 일군 유물들. 그치만 서울의 을지로입구쯤서 드문드문

마주치며 과거의 사실을 일깨워주는 황당한 대리석비들처럼, 기실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과 과거의 그것들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을지도 모른다. 근대에서야 본격적으로 치장되기 시작한 과거, 박물관안에 모셔지고, 왕궁을

복원하고, 그렇게 시간 앞에 허물어지려는 기억과 흔적들을 애써 그러쥐며 난 관광중인 한국인, 그대는 순찰중인

태국인. 조금은 선명하게 너와 내가 갈라진다.

사진을 찍다 보면 문득, 아..이 건물들은 계속해서 내 시선을 높은 곳에 잡아두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위풍당당하고 권위를 과시하려 지어진 건물들이 그렇다. 왕궁 안으로 들어와서 내 카메라는 계속 높은 곳을 향했다.

그러다 보니 이렇게 지나다니는 여행자들의 목을 전부 뎅강뎅강 잘라버리고 건물을 담기에 여념이 없어지고 만다.

그치만 건물들이 워낙 화려한데다가 온통 금빛으로 번쩍거리니 원 정신을 차릴 수가 있어야지. 숨겨진 고대의

황금도시를 발견한 느낌이랄까. 그러다 보면 주위의 여행자들, 동료들 목을 뎅강뎅강 친다는 스토리도 나오는 게

전혀 이상할 일은 아니다.

같은 건물을 다른 측면에서 뒤로 잡고선, 조금 호흡을 가다듬어 한걸음 뒤로 재겨나서 찍은 사진엔 그래도 아빠가

제대로 들어가 있다. 왕궁이 관광자원화되려면 저런 식의 울타리는 필수인 걸까. 곳곳에서 마주치는 금지의 표식은

이 공간을 방문한 우리가 어쩜 상당한 불청객인지도 모른다는-실제로 그렇겠지만-느낌을 상기시키곤 했다.

이 금색의 원뿔탑은 부처님의 가슴뼈가 안치되어 있는 뼈라고 했다. 대체 어디에?라고 묻고 싶어지지만, 뭐 있다니

그런가보다 할 뿐. 너무 둔탁한 형태의 금빛 탑이라서 처음 봤을 땐 왠지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달까. 햇살이

강하게 내리쬘 때는 온통 번쩍거려서 눈이 아프도록 부시더니 살짝 구름이 끼니까 번쩍이던 불빛이 여기저기서

툭툭 힘을 잃고 떨어져내렸다.

계단 옆 난간도 범상치 않은 용가리 모양이다. 그것도 머리가 다섯개 짜리인. 사실 용이라기엔 입크기나 모양이

살짝 조잡스러워서 무슨 제삿상 굴비 입과 이빨이 아닌가 싶긴 하지만..그래도 머리 다섯개 위에 제각기 그럴듯한

모자를 쓰고 있으니 용이려니 너그러이 받아주기로 했다.

저 탑은 뭔가 돌덩이로 탑의 형체만 얼추 잡아놓고, 금색 천이나 금색 벽지로 얼기설기 풀칠해서 싸발라버린 느낌.

축축 늘어진 윤곽들도 그렇고, 왠지 흘러내리는 듯한 느낌의 금빛 광택도 그렇고.

그 탑을 밑에서 받치고 있는 괴물딱지들이 신기하고도 귀여워서, 어정쩡하지만 아빠랑 나랑 그 포즈를 따라했다.

...뭔가 저 괴물딱지들은 심하게 쩍벌쟁이들인 거다. 어떻게 저 자세가 가능하단 말이냐.ㅡㅡ;




 열반에 든 부처를 상징하는 와불상이 샛노랑 개나리색 옷을 입고 있다. 무슨 돌로 만들어진 건지 모르겠지만, 조금

녹아내린 건지 얼굴이 얼룩덜룩하다. 왠지 어렸을 적 했던 스트리트 파이터의 한 배경화면같은 느낌?

사이즈로 승부한 느낌이다. 더구나 뒤로 돌아서 본 헐벗은 등짝의 남루함, 그리고 발바닥의 꼬질꼬질함이라니.

발가락이 네갠지 여섯갠지.

무슨 탑이었는데...뭐더라...제법 높은 탑에 중턱까지 오를 수 있는 계단까지 마련되어 있었다. 온통 평지만 펼쳐진

태국에서 여기보다 높은 곳이 없다는 설명을 얼핏 어디선가 봤던 거 같기도 하고. 올라가봤는데 주변의 풍광이

온통 발아래로 말갛게 펼쳐졌었다. 탑이라기보다는 무슨 얄쌍한 피라밋같은 느낌?

위에서 내려다본 탑 아래의 풍경. 깔끔하고 실감나게 꾸며진 디오라마 마을같기도 하고, 입체감이 잘 느껴지는

가옥과 대문들이 손에 잡힐 듯 했다. 저 건물은 기억컨대 부처님을 모신 불당이었을 게다.

 여행지마다, 고양이가 참 많이 따른다. 뉴욕서도, 이집트의 다합에서도, 그리고 태국의 아유타야에서도.

굳이 사람을 두 부류로 나눈다면, 나름 말이 되는 것 중 하나가 고양이랑 개로 나누는 거다. 고양이과의 사람,

개과의 사람. 고양이가 가진 도도함과 자존심, 손길에 연연하지 않는 듯하면서도 미묘하게 표정이 흔들리는 듯한

모습. 다합의 모래사장에서 내 그림자를 청해왔던 그 자그마하고 귀엽던 새끼고양이처럼, 아유타야의 한 사원에서

중천에 뜬 태양을 피해 고양이가 내게 왔다. 고양이를 품었다. 그새 '품는 법'을 조금은 더 배웠구나.

적어도, 고양이 한마리 품을 만큼 여유가 생겼으니.


글로벌 고양강아지

 저를 잘 설명할 수 있는 동물을 찾으라면, 아마 고양이와 강아지의 성격을 모두 가진 가상의고양강아지를 빗대 설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흔히 고양이와 강아지가 서로 매우 다른 성격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고양이가 가진 야무지고 조심스러운 성정과 고유영역에 대한 소신 있는 몰입과 같은 것들은, 강아지가 갖고 있는 원만하고 적극적인 친화력과 충성심 등과 뚜렷이 구분되는 특성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이러한 두 특성을 모두 갖춘 채 적재적소에 필요한 성향을 드러내어, 최적의 맞춤형 인재로 부족함이 없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이러한고양강아지의 유연한 태도와 타고난 친화력을 바탕으로, 제가 귀 기업에 대해 품고 있는 깊은 애정과 소속감을 펼쳐 보이고 싶습니다. 부드럽고 원만한 분위기를 주도하면서 조직 및 개인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열과 성을 다하겠습니다.

 - 산문시집 '구직험난(求職險難)' 제 1장 '글로벌 고양강아지' 일부 발췌, 이채(생몰년도 미상) 作






이집트 룩소에서 만난 Hassan에게 소개를 받아 직접 공장까지 가서 만들어온 카르투쉬 반지.

그에 따르면 이런 상형문자를 새긴 반지는 과거 파라오들이 왕의 상징으로 들고 있던 왕의 홀(인장)과 같은 의미를

띄고 있다고 했다. 엷은 웃음과 함께, 그는 그랬다. 넌 왕이 될 거야.


공장이라지만, 비어있는 은색 반지에 알파벳에 해당하는 그림들을 하나씩 녹여붙이는 작업을 손수 하는 조그마한

가내수공업 현장같은 느낌이었달까. 여덟 혹은 아홉 글자를 집어넣을 수 있다고 했는데 아무리 이리저리 내 이름을

짜맞추어도 딱 떨어지지가 않았다. 그래서 사실 저기엔 y, t, z, s, c, h, e 그리고 앞뒤로는 '호루스의 눈' 그림과

또다른 수호상의 상징이 들어갔다. 그게 2004년 8월에 있었던 일.


그 이후로는 잠을 잘 때 빼고는 한번도 빼지 않았던 반지였다. 아, 저 오돌토돌한 문양 사이로 비누가 끼곤 했어서

씻을 때도 빼기는 했다. 반지를 끼고 있으면 마음이 안정되고, 이집트의 풍경들이 떠올랐으며, 그때 내가 했던

생각들을 계속 쥐고 살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이집트에서 발에 채이던 수다스런 옛사람들의 말풍선들..이 다시 그리워지는 날이다.

이집트에서 해온 카르투쉬 반지를 해독할 수 있는 유일한 단서. The Hieroglyphic Alphabet.


그래, 이런거다.

시간이 지나면, 탐욕스런 열대의 녹색식물들이 

깨어진 돌틈새, 벽돌의 홈들을 후벼파며 자라나기 시작한다.

그 뿌리는 동강난 부처의 머리를 휘감으며 인간이 만든 것들을 무화하기 시작할게다.


리셋.


그게 두려워서, 사람들은 매일매일 사다리를 걸치고 탑에 올라 눈곱처럼 끼어있는 잡풀들을 베어낸다.

공든 탑은 무너지고, 삶을 다한 건축물들은 사라지는 게 맞지 않을까..


뇌사상태에 빠진 고대의 사원들. 고대의 신성함.

p.s. 건설현장에서 일하시는 아빠는,

스스로 지구 표면을 조각하는 조각가로 여기신다고,

이번 여행에서 말씀하셨다.


비록 커다란 건물이 아니고, 스카이라인에 큰 변화를 주지 못하더라도, 

조금이나마 지표를 변화시키고 공간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갖고 계셨다.


물론, 엄마는, 아무리 그래도 '노가다'는 염증이 난다고 손사래를 치셨지만.


그러고 보면, 석굴암의 나한들이나 다른 부처들의 체형은 대부분  이뿌다. 얘네들처럼. 비록 풍파에 휩쓸려 배에

할복이라도 한 양 커다랗게 칼자국이 나있고 머리가 분리된지 오래라지만, 가슴에서 배로 이어지는, 그리고 상체와

하체가 연결되는 그 매끄러운 곡선은 이상적이다. 정말. 달마조사 정도나 배불뚝이로 형상화될까, 그조차 달마의

득도과정에서 이야기되는 '추함'의 이미지를 상징하는 하나의 팁으로 본다면, 몸에 대한 이상화는 생각보다

오래되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그것이 부처의 득도수행중의 금식과 고통을 형상화하는 종교적인 의미가 더욱

컸다고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마치 예수의 삐쩍 마른 몸띵이처럼) 글쎄..여전히 통하는 모티프 하나는,

퍼진몸=게으름..정도 아닐까. 살빼야겠다--+

삐죽거리는 탑들을 이어놓은 회랑에는, 원래 뚜껑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도 모르게 황폐해진 벽면과, 그 벽면에

기대어 선 부처상들이 열지어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마치 시멘트로 군데군데 엉성하게 보수해 놓은 것같은

붉은 벽돌 구조물같은 모양새지만, 원래부터 저렇게 덮여있던 회칠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고.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마침 뿌연 안개가 빗방울을 머금고 대지에 무겁게 포복중이어서 그랬는지도.

원래 금박이 입혀져있었던 건지, 아님 시주 대신 사람들이 소원을 빌며 금박을 한조각씩 붙여넣은 건지 모르겠지만

오돌토돌한 돌기가득한 머리를 괴고 누운 부처의 뺨과 오른쪽 팔엔 드문드문 금박이 묻어있었다. 그리고 몸뚱이를

가리고 있는 커튼같은 노란색 천. 나중에 들으니 저 '옷'도 신도들의 보시로 만들어진댄다.

이곳의 스님들은 모두 주홍색 옷을 입고 계신다. 그래서 아유타야 사원에 촘촘이 늘어선 부처들도 모두 주홍빛

천을 휘날리고 계시다. 아..지금 다시 간다면 훨씬 이뿐 사진들을 찍을 수 있을 것만 같은 풍경.

가부좌를 튼 후 눈은 코끝을 내려다보듯 반개(半開)를 한다. 숨은 그칠 듯 그치지 않는 조식(調息)을 하고...운운.

고등학교 때 기수련에 관심을 가져선, 도우(道友)들과 계룡산에 올라선 밤새 비닐 거적을 뒤집어쓰고 이슬맞으며

연공(練功)을 했던 적이 있었다. 요런 비슷한 자세..였지 싶은데. 그치만 이분의 눈은 코끝이나 배꼽이 아니라 앞에

마주선 사람을 흘겨보는 느낌이다. 손에 들린 건방진 음료수는 또...언제 다 마셔버린 거냐.ㅋ

이왕 시주를 할 거면 온전한 한 컵을 주던가, 저건 누군가의 장난이 아닌가, 쓰레기를 버려놓은 건 아닐까, 혹시

내가 저걸 치워서 버려주면 부처님이 복을 내려주진 않을까 잠시 고민했다.

은근히 와불이 많다. 저렇게 누워 있는 부처는 이곳의 햇살과 왠지 너무 잘 어울리는 느낌이다. 뭔가 얇고 부드러운

실크같은 막이 태양에서부터 너울지며 떨어져 내려 온몸에 감기는 느낌이랄까. 무슨 선블록오일 광고문구처럼

끈적이지 않고 순식간에 흡수되는 뽀송거림. 그리고 기분좋은 나른함까지. 내가 부처라도 눕겠다.

요건 뜬금없는 보너스샷. 비둘기고기 통조림. 태국의 길거리나 공원에 왠지 비둘기가 눈에 띄지 않는다 싶었다.

맛을 보고 싶었는데, 그다지 맛있어 보이지 않아 관뒀다. 나름 여러가지 색깔의 통에 담긴 걸로 보아 여러가지

양념맛이 가미된 듯 했지만, 사실 저렇게 담겨있는 고기는 제아무리 한우 차돌박이라 해도 안 땡길 게다.



사실 태국이 어떤 나라인지, 무슨 풍광이 유명한지도 이번에야 처음 알았다. 사실 내 세계지도는 미국, 터키,

이집트 그리고 남한 땅덩이가 전부였던 거다. 여행 갈 때마다 부딪히는 질문은, 대체 무엇을 보러 가는지. 무엇을

느끼러 가는지. 아무리 피하려 해도, 제약된 시간 내에 한 지역과 그 땅위에 사는 사람들을 만나본다는 건, 유명한

관광지 그리고 짧막한 관광영어를 벗어나기 힘들다. 

진부한 멜로드라마처럼 타고 내리는 감정선들도 사실은 그렇다. 이미 누천년 이래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느꼈고,

봐왔고, 글로 풀어왔던 감정들. 이미 모든 게 읊어졌고, 말해졌다. 무수히 많은 관광객들이 다녀갔고,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생멸했고, 사람들은 두터운 대지의 더께위에 흙한줌을 보태며 쓰러진다.


그냥...그래도...내 눈으로 직접 보지 않으면, 아무리 진부하고 범용한 감흥이라도, 내 아가미로 한번 걸러 나오지

않으면 속이 안 풀린다. 그래서...어쩔 수 없이, 혹은 적당히 용서하는 기분으로 카메라 앞에서 어정쩡한 포즈를

잡아주며 증빙샷.

무슨 골프장처럼 넓게 펼쳐진 푸른 잔디밭 위에 곧추선 붉은 벽돌 구조물들이 단단하고 야무져 뵌다. 햇살만큼이나
그림자도 진했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담넌싸두악 수상시장으로 향하는 길, 차안에는 불상들과 온갖 장식품들이 주렁주렁 하다.

태국 사람들은 차 안에 저런 식으로 운행안전을 기원하는 부적 같은 것들을 많이 달아두는 것 같다. 버스말고

택시나 뚝뚝(오토바이를 개조해 만든 탈 것..이랄까) 같은 것들을 겪을 때마다 항상 드는 생각이다. 실제론

어떨까ㅡ교통사고가 한국에 비해 적기는 할 거 같다. 사람들의 여유라거나, 푸근한 웃음 같은 거 보면.

누렁 황토와 청록빛 이끼를 물에 풀어넣으면 저런 물빛이 나오지 않을까. 손바닥만하지만 어엿하게 지붕도 달린

조각배들이 나름 깔끔하게 정리된 수로를 따라 둥실둥실 떠내리는 와중에. 수로 양켠으로 무질서한듯 마구 난립한

바나나나무들, 온갖 활엽수들은 그렇지만 또 가지런한 모양의 하늘을 열어놓고 있었다.

중간중간 짙푸른 정글이 한뼘쯤 물러났다 싶은 곳에느 여지없이 들어서 있던 관광용품 파는 곳들. 단순히 현지인들

생필품을 위한 마켓이라기보다는, 이미 관광코스화되어 버린 이 곳에서 관광객들 대상의 장신구를 파는 곳이었다.

그치만 태국의 전통모자나 장신구들보다 눈이 가던 건, 배가 지나칠 때 잘박거리는 파도가 저 수상가옥들의 기둥을

넘실넘실 핥아대던 그림.

이런 식으로 인력을 사용한 탈것들은, 그 수혜자들에게 모종의 미안함을 거의 예외없이 느끼게 하기 마련이지만

이 조각배는 좀 예외였다. 그냥 노를 젓지 않아도 알아서 설설설 물 위를 미끄러져 갔고, 뭔가 나무뿌리같은 게

모여있어서 유속이 좀 처진다 싶은 곳에서는 장대로 한번 쿡 바닥을 찔러 밀어주면 끝.

중간중간 '부레옥잠'같이 생긴 수상식물들도 수로 위에서 번성하고 있었고, 이리저리 배에 치이다 저렇게 흐물흐물

넝마처럼 되어 버린 채 물길 옆으로 쑤셔박혀 있기도 했다. 그리고 좀 뜬금없다 싶은 수상 패션쇼. 참 시원하겠다.

참 저렇게 이뿌게 쌓아올리는 건 대단한 솜씨인 게다, 배가 가라앉기 직전까지 쌓아올렸을 텐데.

코코넛을 배에 가득 쌓아올린 채 손님들을 기다리는 시장통의 아주머니. 어디든 재래시장, 전통시장의 아주머니들,

할머니들은 참 푸근한 표정과 자글자글한 미소를 가지셨다. 코코넛의 윗통을 큰 칼로 버썩 썰어내곤 빨대를 꼽아

쪽쪽 마시는 미지근하고 들크무레한 그 액체..뭔가 도구가 있었다면 껍데기도 마저 깨서 안의 하얀 속살까지 싹

발라먹었을 텐데 아쉬웠다는.

바나나도 있고, 람부탄, 리치, 망고스틴, 파파야...온갖 열대과일들이 배위에 그득그득 실린 채 짙고도 강렬한 향을

내뿜고 있었다. 물 위에서 배들이 움직이며 팔고 있다는 걸 빼고는 완전 우리네 시골장터 분위기다.

이리저리 뽈뽈뽈 떠다니는 배들은 서로 살짝살짝 부딪치는 일도 없진 않지만, 빽빽하게 정체가 일었다 싶은 곳에서

유연하게 잘 빠져나간다. 물 위에서 기름을 바른 듯 매끄럽게 스쳐가는 날렵한 배들. 

시장을 지나면 많이 넓혀진 수로를 따라 조금은 큰 덩치의 가옥들이 늘어선 게 보인다. 중간에 관광객들을 상대로

한 식당도 보이긴 하지만, 대체로 현지인들이 생활하는 가정집인 듯 하다. 집앞에 '주차'되어 있던 배를 타고 막

어디론가 향하는 아주머니의 노젓는 손길이 마치 태극권을 시전하는 고수의 그것같다.
 
이 '누르초로께한' 물은 그대로 이 사람들의 생활용수가 되나 보다. 한 곳에서는 막 잠에서 깬듯한 아저씨가 나와

어푸어푸 세수를 하기도 하고, 그 반대편에선 저렇게 빨래도 하고 설거지도 하며, 또 잔망스러운 아이들은 우르르

물에 뛰어들어 지들끼리 노느라 바쁘다. 이 물로 밥을 해먹는 거 같기도 한데..괜찮을까 싶기도 하고.

그래도 어느 포인트엔가 가면 저렇게 팔뚝만한 물고기들이 마구 용솟음치며 먹이감을 지들끼리 겨루는 장면이

보인다. 어쩌면 의외로 이 물은 꽤나 깨끗할지도 모르겠다.

어느 순간 눈앞에 나타난 저 '육교'는 배를 타고 내가 지나는 이 곳이 말하자면 차도임을 상기시켜주었다. 시간이

있었다면 어느쪽이든 '뭍'으로 '상륙'해서 저 육교 위를 걸어보고 싶었지만, 여의치 않아 그냥 패스.

지나다 보면 여긴 제법 정리를 깔끔하게 해 놓는구나 싶은 구간도 있다. 그런 구간 옆에는 예외없이 뭔가 좀

그럴듯하게 지어진 큰 건물이 서있기 마련이었지만, 어쨌든 마구 헝클어진 듯한 정글의 그 느낌도 좋지만 이렇게

잘 가꾸어진 느낌의 '갓길'도 맘에 든다.

이 길을 이용하는 건 배들만이 아니었다. 불쑥불쑥 주위에서 출몰하는 알 수없는 괴생물체들. 저게 도마뱀인지

뱀인지 아님 수달인지, 네 발로 열심히 헤엄치는 것 같기도 하고 몸통을 요리조리 비틀며 S자로 헤엄치는 것

같기도 하고. 너무 빨라서 제대로 포착하는 걸 번번이 실패했지만 그나마 나은 사진 한장.

배를 출출하게 만드는 데에는 때론 펄펄 끓어오르는 김과 구수한 냄새면 충분하다. 태국식 쌀국수를 팔고 있던

시장 어귀의 노점. 몇척의 배들이 멈춰서서는 국수그릇을 넘겨받으며 맛나게 먹는데 온통 정신이 팔려있었다.

한국에도 쌀국수 전문점들이 들어온 지 꽤나 오래지만 대부분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맛이 변했다는 느낌이다.

이곳에서 맛봤던 쌀국수는, 뭐랄까..마치 우리네 천원짜리 잔칫국수같은? 그런 소박함과 정겨움이 묻어났던 것..

같은, 시간이 지나 윤색된 기억으론 그렇다.



"알카자 쇼는 남자들의, 남자들에 의한, 남자들을 위한.."이란 식의 제목을 달긴 했지만, 사실 그닥 어울리지 않는

형용이라고 생각한다.


몇 가지만 이야기하고 사진 보여주기 컨셉 포스팅으로 낼롬.

팟타야에서 벌어지는 여러 캬바레 쇼들이 있지만, 그중 알카자 쇼가 가장 유명하다고 한다.

노출 수위나 쇼의 내용도 그렇게 위험하지 않아서 가족들이 즐기기에 딱 좋은 데다가, 연기자들도 그중 이뿌다고

들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성전환자들. 돈을 모아서 생물학적으로까지 변환한 경우도 있고, 아직은 정기적으로

호르몬만 맞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남성이 여성과 달리 지방이 얇고 근육량이 많아서 몸매를 관리하면 보다

쉽고 빠르게 '효과'가 나타난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도 있지만, 정말 다들 어케 그렇게 키도 크고 늘씬하신지들.
 
키가 전부 180은 넘겠다 싶었다. 물론 10센티는 훌쩍 넘을 듯한 힐높이를 포함해서지만.









국제적인 몇가지 레파토리 중에 한국의 부채춤, 장고춤, 그리고 'SES'가 있었다. 저 세 아가씨..얼굴 분위기도

비슷하다.ㅋ 그녀들이 게이라는 사실은 내겐 사실 큰 감흥을 주지 못했는데, 머..전혀 모르겠던걸. 그녀들의

리드미컬한 워킹과 바디 라인. 감각적인 워킹 한발한발이 가슴에 콕콕 박혔다. 어떻게 몸을 움직여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이뿐 궤적을 그리는지, 그런 걸 그녀들은 알고 있었다. 몸에 대한 철저한 관리..통제. 동작하나도

세밀히 다듬어진 듯한 느낌의 이뿐 몸. 팔다리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얼마나 이뿐 궤적을 그리며 몸을 움직이는지

가히 통제불능상태로 폭주하듯 몸을 '굴리고 있는' 나로선 마냥 부러울 뿐.








the Queen of Alcaza. 허접한 한국가이드북으로부터 쇼타임후 사진 촬영 기회가 있다는 사실을 사전에 입수한

나는, 사진을 찍을라고 달려들었달까..-.ㅡ^ 어떤 목소리가 나올지 자못 기대되었었는데, 역시 하리수랑 비슷한

톤이던걸. 중성틱한 목소리는 그녀들의 여리여리한 몸매와는 너무 이질적인 느낌이었다.

무슨 말을 했냐 하면.."이천원 이천원" 이랬다. 물론 퀸은 그런 말을 직접 대놓고 하지 않았고, 다른 출연진들과

연기자들이 그렇게 긁적긁적한 목소리로 외쳤었다.

한시간여의 공연동안 정말 이뿌게 다듬어진 그녀들의 몸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아..물론 쇼 자체도 화려하게

볼만했고. 아마도 졸업 여행쯤 온듯한 한국인 단체관광객들의 소란스러움과 무배려함에 짜증이 살짝 났었는데,

끝나고 나서 한 아저씨가 크게 떠드는 말이 귀에 꽂혔다. 인생이 불쌍하다나..글쎄....?

그녀들이 이 일을 하면서 행복했으면 좋겠다.


부록. 알카자쇼 팜플렛.


부록2. 알카자쇼와 유사한 내용의 티파니쇼..라는데, 가보진 못했다.



* 어쨌건 이 블로그는 여행 이야기를 차곡차곡 쟁여두고 싶었던 공간이라, 요 며칠의 딴 글들을 씻어내릴 만한

쉬어가기용 & 분위기 쇄신용 포스팅을 시도..

방콕의 주말시장은 우리네 재래시장같다. 좁고 살짝 지저분한 시멘트 발린 길 양쪽으로 상점들이 늘어서 있는데,

입구쯤에서부터 눈길을 팍 끌었던 가방. 저건...부분을 재활용한 걸까 아님 단지 흉내만 낸 걸까.

실제로 저런 걸 들고 다닐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실제로 들고 다니는 걸 보면 웃기다기보단 살짝 어이가 없을

거 같기도 하다. 저런 짧막한 가방에 신발까지 맞춰 신는다면 다갈빛 카우보이모자까지 쓴 카우보이 걸이 되어야

한다는 압박이 불끈불끈 들 거 같은데, 혹자는 그런 걸 똘끼라고 부를지도 모른다. 그냥 보는 게 더 재미있지 싶다.

레드 하우스. 맑스의 초상화와 공산당 선언의 전문이 새겨진 초록색 티를 기념품삼아 산 곳이다. 체게바라, 로자

룩셈부르크, 맑스, 마오쩌둥, 레닌..온갖 혁명가들의 초상화가 전시된 그 공간에는 붉은 별과 붉은 목도리, 그리고

붉은 색 휘장이나 배지 같은 것들이 가득했다. 왠지 보고 있으면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흥분되는 빨간색. 그치만

투우에서 빨간색 천을 휘둘러봐야 소는 색깔을 구분하지 못한다고 했다. 사람은 어떨지 모르겠다는.

2006년에 태국을 방문할 즈음이나, 2009년 지금이나. 그리고 사실은 제2차 세계대전이 종전한 이후부터 줄곧

국제 이슈로 남아있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관계 정립 문제. 이 성조기 무늬가 들어간 쪼리는 팔레스타인에서

수입되었다는데 진짜인지는 모르겠다. 얼마전 부시가 신발에 맞고서야 알게 된 중동 지역의 문화적 특징이랄까,

전통 중 하나는, 발에 밟히거나 신발에 맞는 건 최악의 혐오감을 표현한다는 사실. 그러니까 미'제국'의 화신

부시와 성조기가 발(신발) 아래에서 밟히는 건 이미 오래 전부터 예정되었던 일인지도 모른다.

대학교 때 체게바라 평전이 갑작스레 대중적인 인기를 받았었다. 이미 평전을 그 전에 읽었고 평전살 때 받았던

체게바라 배지를 가방에 자랑스레 달고 다니던 나는, 왠지 나의 체게바라가 '세속화'되는 것 같아 기분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그치만 하나의 문화적 아이콘으로 자리잡은 지 오래인 잘생긴 체게바라, 그리고 역시 멋지게 생긴

맑스..그들을 어떤 식으로 해석해서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는 각자에게 달려있는 몫인 거다. 그들의 이미지와

메시지, 아이디어가 상품으로 유통되는 건 사실 자연스럽다고까지 말할 수는 없어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일 듯.


난 이내 그런 '상품으로서의 체게바라'에 익숙해졌고, 나름 긍정적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태국에서

생각지도 못하게 마주친 요 혁명가의 전당 같은 샵에서 티셔츠를 샀다. 사진 가운데에 있는 어두운 녹색 바탕에

하얀 맑스 얼굴이 둥둥 떠있는 티. 한국에 돌아와선 신나라~ 하면서 입고 돌아다녔었다.

휴지가 콧구멍에서 나오고, 입에서 나오고, 심하게는 가슴에서도 뽑혀 나오게 만드는 마법의 휴지걸이.

주말시장 길거리에 벌여진 가판에선, 태국의 복권을 팔고 있었다. 다소 조잡해 보이는 인쇄물이지만 저렇게

열맞춰 다소곳이 놓여있는 모습에서 왠지 경탄해 버렸다. 정리하기 힘드셨겠어요.

잠시 보고 있으려니 꽤 많은 사람들이 오가며 한장씩, 두장씩 사가는 듯 하다.

우리네 재래시장에선 얼음을 가득 재여놓은 판 위에 생선을 보기좋게 깔아놓지만, 여긴 그런 건 안 보인다.

더운 날씨 때문일까. 아마도 반건조쯤 된 듯한 생선들을 한 마리씩 저렇게 비닐팩 안에 담아놓고 팔고 있었다.

하긴 날씨도 덥고 날파리 같은 것들도 많을 테니 저렇게 하는 게 위생적인 면에서나 신선도 면에서 나은 방법이지

싶다. 역시, 지역의 특성에 적응해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바뀌는 법인가 보다.

주말시장엔 관광객뿐 아니라 현지인들도 발걸음을 많이 하는 것 같다. 동대문시장에서 좌판을 벌인 분들이 핏대선

목청으로 손님을 끌듯 상인들은 태국어로 뭐라고뭐라고 시끄럽게 외치고, 그 소리에 끌려들듯 사람들은 잔뜩 쌓인

옷가지무더기로 몰려든다.

그 와중에 뻥 터진 해맑은 웃음으로 손님들을 맞이하는 발랄한 마네킹. 그녀는 모든 걸 웃어버리고 치울 거 같다.

이거 뭐라고 하더라..짚으로 만들어진 한국의 전통적인 저주 인형은 '제웅'이라는 허수아비인데, 그 비슷한 거같다.

부두교랑 태국이랑 관련이 있나, 아님 태국의 전통적인 저주 인형인 걸까..여튼, 내가 설명들었던 바로는 이 곳의

저주 인형을 좀 귀엽게 캐릭터상품화한 거라던가.

* 볼 때마다 까먹는 단어 : 짚으로 만든 인형 제웅에 대해서...(http://mybox.happycampus.com/godrnehd/375722)

제웅이란 짚으로 사람의 형상을 만든 것. 추령(芻靈) 또는 처용(處容)이라고도 한다. 뒤에 가서 종이나 형겊에 그린 화상으로 대신하기도 했다. 사람의 나이가 나후직성(또는 제웅직성;나이에 따라 운수를 맡아보는 아홉 직성의 하나)에 들면 액운이 들어 만사가 여의치 않다고 하는데, 이 직성은 남자 11세, 여자 10세를 시작으로 9년 만에 한 번씩 돌아온다고 한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의하면, 직성이 든 사람은 제웅을 만들어 거기에 그 사람의 옷을 입힌 다음 푼돈을 넣고, 이름과 출생한 해의 간지(干支)를 적어 음력 정월 14일 밤에 길가나 다리 밑에 버린다고 한다. 옛날에는 정월 14일 밤에 아이들이 문 밖에 몰려와 제웅을 달라고 청하면 선뜻 내주었고, 돈만 꺼내고 아이들이 길에 내동댕이치기도 했다. 이를 제웅치기[打芻戱]라고 하며, 그 유래를 신라 구역신(驅疫神)인 처용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또 병자를 치료하기 위해 무녀가 제웅을 만들어 비는 경우도 있었으며, 《인현왕후전(仁顯王后傳)》과 《계축일기(癸丑日記)》에는 제웅을 만들어 남을 저주하였다는 기록이 전하기도 한다. 『다음 백과사전 p.14150』

어디선가 단체 관광객이 왔다. 시장통 한쪽이 떠들썩하더니 빨간 색 티를 맞춰입은 학생스러운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든다. 미소의 나라 태국이라 했던가, 내가 카메라를 여기저기 들어대는 걸 보더니 환호성을 터지고 온통

손끝에서 브이가 만발한다. 수학여행쯤 온 건가 싶은 밝은 미소의 아이들.

그런 왁자한 시장통 분위기 한 켠에선, 교복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단정하게 생긴 여학생이 단정하게 앞머리를

내리고선 짙은 핑크색 리코더를 청승맞게 불고 있었다. 뭔가 설명이 붙은 종이상자를 앞에 두고는 차분한

표정으로, 마치 시장통의 시끌벅적함이나 왠지 들뜬 분위기엔 전혀 굴하지 않는다는 듯, 학교 교과서에서

나왔던 듯한 심플한 가락을 뽑고 있었다.

보너스 샷...이랄까. 이런 식의 어처구니없는 디자인은, 그냥 보고 웃으라고 한두벌 만들어 놓은 거겠지? 그렇지만

사람들이 전부 여유롭고 마음 넉넉해 보이는 이 나라, 태국에서라면 왠지 저런 거 입고 다녀도 모두들 허허 웃고

말 거 같다. 갈수록 각박해지고 자기검열도 심해져가는 한국에서라면..음..웃고 치울 수 있는 여유도 갈수록

줄어가는 것 같은데, 아마 저런 티를 입고 돌아다니면 이곳저곳에서 치일지 모르겠다.(머..진지하게 말하자면

일종의 남근주의가 반영된 거라 말할 수도 있을 거다. 그리고 한국에선 이런 걸 웃음의 소재로 삼기에는 아직

사회적 상식이나 암묵적 합의의 수준이 그에 이르지 못해서..개그나 유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인 거 같아서 아쉽다.)

후쿠오카(福岡)이라는 지명을 풀어보면 '행복의 언덕'이란 뜻 정도 되려나? 그곳에서 지냈던 며칠동안의 추억을

마음 가득, 그리고 카메라 가득 담아서는 호텔에서 체크아웃을 했다. 아사히맥주공장에서 공장
견학과 함께 맥주

시음도 맘껏 하고, 다자이후에 가서 텐만구, 큐슈박물관, 고묘젠지, 그리고 엉성하게
한글 광고가 써져있던

가게들도 구경했다. 이수영 뮤직비디오에 나왔다는 유센테이코헨, 한때 큐슈번주의
별장이었다는 그곳에 가서

한적한 정원을 거닐기도 했고, 라멘과 음식들은 매번 어김없이 성공적이었으며,
아크로스 후쿠오카에서 바라본

후쿠오카의 전경은 굳이 올라가보길 잘했다 싶었다. 캐널 시티나 어딘지
딱히 짚을 수 없는 후쿠오카 시내에서

헤매듯이 쇼핑도 했었다. 구시다신사에서 짝짝 박수치며 흉내를
내보았던 건 역시 잘했다 싶고, 순박해 보이는

아저씨가 한국인이라며 반겨주던 텐진 시내 포장마차(
야타이)는 꼭 한번 더 가보고 싶었더랬다.

당연한 듯 길을 잃고서는 지도 탓을 했었고,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자연스레 다른 길로 빠져서는 생각지도

못한
선물같은 풍경들을 마주했지만, 때로는 다리도 아프고 배도 고파 그저 쉬고 싶은 맘뿐이기도 했다. 같이 배를

타고 왔던 그 많던 한국인 여행자, 혹은 관광객들은 전부 어디로 가 버렸는지 아사히맥주공장에서 한 무리의

한국인 단체관광객들과 맞닥뜨린 때 빼고는 아무 눈치 안 보고 활개치며 다녔었다.

후쿠오카에서 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면 온천으로 유명한 유후인 마을을 꼭 가보고 싶었지만, 일단은 다음으로

미루기로 하고 살짝 섭섭하면서도 뿌듯한 마음으로 하카다항 국제터미널로 향했다. 사실 '행복의 언덕'

후쿠오카에서는 서울과 부산이 도쿄보다 가깝다고 한다. 그만큼 가까운 곳이니 언제든 맘만 울컥하면 달려올

수 있지 않을까..환율만 좀 미쳐돌아가지 않는다면. 이번에 나설 때도 고작 사흘만에 백엔당 원화환율이

백원 이상 올라 천오백원을 넘나드는 바람에 식겁했었다.

터미널 이용권을 구매하고, 유류세를 별도로 또 내야 한다. 유류세는 2,000엔이었던가 부산항에서의 유류세와 별반

차이가 없었던 것 같은데 터미널 이용료는 약간 더 비싼 것 같다. 대인 500엔. 부산항이 2,500원이었던가. 그러고

보면 실제로 여행에서 쓰는 경비 중에 참 많은 부분이 교통비로 들어간다.

마치 공항에 있는 항공사 부스처럼 말끔하게 차려진 게 프레임 내에서는 그럴 듯 해 보일지도 모르지만, 기실 저

프레임을 넘어서는 곳에는 벽들이 버티고 있는, 그런 조그마한 여객 터미널이다.

역시 일본, 이라며 한국을 향해 돌아설 때까지 날 감탄케 했던 건 저 반짝거리는 쓰레기 분리수거통. 물론 한국에도

저렇게 쓰레기를 분리해서 버리도록 구분되어 있는 쓰레기통이 대세라긴 하지만, 하나씩 별도로 세워져 있는 것도

드문데다가 왠지 저렇게 깔끔하게 운영되는 건 못 본 거 같다. 뭐 여기라고 별 수 있겠냐 싶고 알고 보면 어제 밤에

새로 사서 들여놓은 쓰레기통인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최소한 부산국제여객터미널에서 봤던 것들은 지방

중소도시의 시외버스터미널 대합실에 있는 것처럼 퀘퀘하고 지저분했었다.

일렬로 서서 사람들이 꾸역꾸역 배를 타고 있다. 조그맣지만 참 잘도 달리는 배, 비록 바닷바람을 전혀 느낄 수

없게 꽁꽁 싸매진 상자박스같은 느낌이긴 했지만, 그래도 우등버스 정도는 되는 좌석과 안락함이 느껴져서 그닥

답답하지는 않았다. 아마 갑판으로 나가서 바람을 쐴 수 있게 열린 구조라면 벌써 몇 사람은 시속 80킬로미터의

속도를 못이기고 날아가버리지 않았을까.

부산으로 향하는데 조금씩 물방울이 창문에 튄다 싶어서, 파도가 높구나 했다. 그런데 날카롭게 찢긴 칼자욱처럼

쭉쭉 늘어지는 빗방울들이 하나둘 그어지더니, 유리창을 가득 덮어버렸다. 海雨.

좌석 앞 주머니에 들어있는 면세상품 쇼핑책자. 저런 식으로 배가 바다 위로 배의 뱃면을 둥둥 드러내놓고 달리다

보니 그렇게 흔들림도 없고 왠만큼 거칠어진 파도에도 크게 영향받지 않나보다. 바다 위로 비가 솔찮이 내리고

있었지만 그다지 배의 진로에 장애가 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게 다시 돌아온 부산. 짧은 여행은 끝이 나고, 너무너무 길어서 그 사이 누군가는 지쳐 나가 떨어지고 또다른

누군가는 질려서 식욕조차 잃는다는 한평생만큼 이어지는 여행의 베이스캠프로 돌아왔다. 후쿠오카 여행기 끝.
 


"삶에 대해 곰팡내를 풍기는 낡아빠진 시시한 말들을 지혜로 여기는 자는 식탁에 앉을 때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으며, 심지어는 맛있게 먹기 위한 식욕조차도 가지고 오지 않는다." F. Nietzsche.



여행을 다녀온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떠나기 전에도 구시다 신사가 어떤 역사적 배경이 있는지, 또한 어떤 의미가

서려 있는지 그런 건 잘 모르고 갔다. 다만 여행정보를 여기저기서 긁어모으면서 살짝 흠집나듯 기억에 남았던

건 누군가 구시다 신사에서 좋아라 하며 일본식 참배를 하는 사진을 올렸던 여행후기에다가, 또다른 누군가가

이곳엔 명성황후를 시해한 칼이 보관되어 있는데 그런 것도 모르고 마냥 좋아라 할 수만은 없지 않냐고 쓴소릴

던졌던..그런 익숙하고도 새삼스런 반응이었다.


익숙했던 이유는 한국과 일본의 과거사가 마치 '연리지'처럼 얽혀 있어서 어딜 건들든 양국의 상처와 피해의식을

자극하기 십상이란 것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면 부부처럼 일심동체가 된 연리지라고 해도 알고 보면 하나로

붙어버린 지들끼리 영양분과 수분을 더 많이 흡수하겠다고 싸우지 않을까 싶다. 인간과 생명체를 구성하는

유전자 사이에도 이기심이 그칠 날이 없어 쉼없는 전쟁과 꼼수가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일본이나 한국이나

오랜 원한과 오랜 우월감-열등감 관계에 부비부비해왔기 때문에 더욱 날카롭고 민감한 듯 싶고, 그게 만성화되다

보니 너무나 익숙해져 버린 거 같다.


그러면서도 또 새삼스러웠던 이유는, 그런 이야기와 감정의 골이 남아있는 그 경계에 내가 직접 찾아 본 적은

그다지 없었기 때문이지 싶다. 말하자면 옛 적국, 혹은 옛 조국의 원수 품을 찾아 얼마 지나지 않아 (상대적으로)

생생한 과거를 들추어 내고 마는 기회가 될 거 같았다.

그렇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명성황후를 시해한 칼'은 코빼기도 못 봤고 난 그런 뭔가 논란의 소지가 있을 수

있는 공간에 들어섰다기보다는 그저 조용한 도심 속 절간에 들어선 느낌이랄까. 나중에 알고 보니까 그 칼은

유료 공개인데다가 공개 기간이 따로 정해져 있다나 머 그렇댄다. 별 관심도 없긴 했다. 명성황후의 피를 부른 건

그 칼이 아니라 이미 헐떡대며 숨을 몰아쉬던 오랜 왕국, 그리고 강성하게 일어나던 이웃나라와의 구조적 문제라고

보는 게 맞지 않을까 싶어서 그렇다. 그리고 내친 김에 말하자면, 명성황후가 조선의 국모란 말은 좀 찝찝하다.

그 말이 지금 우리에게 어떻게 읽혀지는지, 어떻게 대통령과 관료 등 근대적 정치시스템을 전근대의 왕, 사대부의

이미지와 중첩시킬 수 있는지까지 생각하면 더 찝찝하다.

조선의 국모란 말, 그것만 놓고 봐도 그렇다. 시해당하기 전 당대 조선사람들에게는 외국문물에 홀린 사치스러운

여자라거나, 시아버지 대원군을 잡아먹고 무능력한 고종을 이리저리 조종하는 교활한 여자라거나, 그런 평들이

적지 않았던 걸로 알고 있다. 실제로 그녀가 조선이 혼란기에 길을 찾아 나서는데 어떠한 공헌을 했는지, 어떠한

비전을 갖고 있었는지도 명확히 드러나지 못할 만큼 당시의 조정이 미미한 힘을 갖고 있었다는 점을 고려해도,

최소한 그녀가 조선왕조와 조선이란 나라의 근본, 백성들을 위해 크게 품을 줄 아는 '국모'였는지는 의문이다.


가설 1. 그녀는 말하자면, 한국인이 아니라 일본인의 손에 처형당함으로써 '국모'의 지위를 획득한 게 아닐까.

마리 앙투아네트처럼 자국의 '신민'되었던 자들에게 처형당하고 왕조 역사의 종지부를 찍었다면, 그녀에게 과연

'국모'라는 칭호가 가당키나 했을까. 물론 그녀를 제거함으로써 대한제국황실의 외교 다변화 노력(혹은 전략없이

시류에 따라 임기응변하는데 그치는, 힘없는 국가의 우울한 이이제이 노력)이 좌초하였다거나 고종에게 확실한

무력 시위를 통해 다른 움직임을 미연에 봉쇄할 수 있어 이후 일본의 침략이 수월해 졌다는 지적도 있지만..결국

전근대적 사회를 극복하려면 그녀와 황실은 어떤 식으로던 전면에서 물러나야 했을 거다. 최소한 그런 거다.

그녀를 '국모'라고 칭하거나 그에 준하는 애정을 표하기는 힘들지 않았을까 하는 예상. 


그녀가 드라마틱한 목소리로 "나는 조선의 국모다"라고 외칠 수 있고 그것에 대해 지금 우리가 한국인임에서

비롯하는 일말의 가슴뭉클함을 느낀다면, 그건 아마도 그 외침의 대상이 외적, 일본 제국주의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아닐까 싶다. 어떤 면에선, 시니컬하게 말하자면 일본인에게 당했기 때문에 그녀가 외려 민족주의적인 아이콘으로

스러져가는 왕조의 상징으로 예기치 않은 새로운 생명력을 얻은 건지도 모르겠다.


가설 2. 그녀를 국모라고 칭하는 데에는, 채 펴보지도 못하고 져버린 대한제국 혹은 제왕적 시스템에 대한 일말의

기대나 환상이 있는 건 아닐까. 이건 좀더 위험한 건지도 모른다. 이제 한국은 민주주의 국가가 되었다라곤 하지만

허약하기 짝이 없는 시스템과 얼개 이외에 사람들의 의식이나 사고방식은 여전히 전근대에 머물러있는 면이 없지

않은 거다. 예컨대 한국에 여전한 사농공상 류의 귀천의식, 대통령과 공무원에 대한 거대한 복종(그만큼 거대한

불만은 차치하고라도), 교육(이라고 쓰고 시험이라고 읽는다)을 통한 신분상승의 오랜 꿈, 그리고 성숙한 토론을

어렵게 하는 온갖 권위(나이, 학력, 지역...)에 대한 인정. 이야기의 소요를 일으키고 시끄러운 논쟁이 일어나는 것

자체를 악으로 여기는 나라에서 누군가 '성군'이나 '천자'와 같은 제왕적 지도자를 다시 소환하고 싶어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하긴 어렵다.


실제로 주변에서 들리는 소리로 한번 뽑은 대통령이니 더이상 어쩔 수 없다는 류의 입장이나, 박정희같은

리더십과 카리스마를 가진 지도자가 (시끄럽기만 한) 정치인들 다 쓸어넣고 비전을 제시하길 바라는 류의 시대

착오적인 입장이나, 일정한 지지를 받고 있는 육영수같은 영부인상을 얻기 위해 시장통과 뒷골목으로 발품을

팔고 또 일정한 효험을 보고 있는 정치인의 아내들이나, 오로지 부모의 은덕을 입어 아무런 정견도 소신도

없는 사람이 유력한 차기 대통령으로 굳건한 상황이나...후우...정말 '국모', 그리고 '국부'를 원하는 걸까.

대통령은 왕이 아니다. 그리고 대통령에게 바라는 것과 왕에게 바라는 것은 달라야 하며, 대통령을 대하는 예의는

하늘의 현신인 왕에 대한 예의와는 달리 인간을 대하는 예의이면 차고 넘친다. 대통령님, 대통령 각하, 요딴 단어는

좀 피해야 하지 않을까. 누구나 아는 당연한 사실이지만, 파란 기와집에 세들어 사는 사람과 그 주변 똘마니들은

전혀 모르는 거 같아서 중언부언해버렸다. 그리고 인간에 대한 예의는, 때로 아니다 싶을 때 욕도 할 수 있고

성질 못이기면 자리에서 끄집어 내리자고 외칠 수도 있고, 실제로 끄집어 내릴 수도 있는 예의도 포함되는 게

아닌가 싶다. 더구나 12일 라디오연설에서처럼, 자신이 야기한 국회 내 혼란상을 두고 한국의 민주주의를 '해머'로

내리쳤다느니 따위 막말을 하는데야...

어쨌든, 명성황후를 시해한 칼이 구시다신사 이곳에 있다고 해서, 글쎄..굳이 이곳을 비분강개한 심정으로 이를

악물며 돌아본다거나, 괜시리 숙연해지고 장엄해져야 한다고 요구하는 건 무리라고 생각한다. 그건, 옵션이다.

사람이 죽은 것 그 자체가 분명 비극이지만, 거기에 뭔가 의아한 정치적 의도가 첨가된 의미를 부여하며

'충성스런 한국인(더구나 당연하다는 듯 조선인의 연장으로서의 한국인)'으로서 의식하는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고

싶은 사람이나 그런 진지함을 뒤집어 쓰던가. 역사의 무게를 느끼는 사람이라면 굳이 "어떻게 명성황후를 시해한

칼이 있는 신사에 들어가 웃고 박수치며 절할 수 있느냐"라고 갈구지 않아도 뭔가를 생각하고 나름의 방식으로

소화해 내지 않을까.

그래서 내가 돌아본 구시다 신사, 방금까지 주절주절 써내리면서 몇장씩 사진들을 올렸지만..다른 신사들과 별반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 소원을 빌고, 물로 입을 헹구고, 잘 다듬어진 정원을 보고..다만 이 때 무슨 행사가

있던 건지 아님 여긴 늘 저렇게 대나무 장대를 세워두는지 모르겠지만, 저거 왠지 익숙하다. 무당들 집에 세워진

깃대랑 비슷한 의미, 비슷한 유래 아닐까.

절하는 법이 구분동작으로 설명되어 있었다. 1) 사당 앞의 저 굵은 줄을 한번 당겼다가 놓고는, 가볍게 목례하듯

반절을 하고, 2) 두번 절하..라는 거겠지? 3) 박수를 두번 짝 짝 치고, 4) 다시 한번 절을 한다. 5) 마지막으로는 음..

또다시 가볍게 목례하듯 반절을 하라는 건가..사람들이 돈던지고 저렇게 뭔가 꾸벅꾸벅 하는 걸 옆에서 아무리

지켜봐도 왜그리도 구분동작과 매칭시켜서 이해하기가 쉽지 않던지.


함 나도 해봤다. 너무 어설프고 겸연쩍어서, 뭔가 빌고 어쩌고 한다는 생각은 하나도 없이 그냥 몸짓만 최대한

따라해보겠다는 심정으로 했다. 취한 것은 흉내, 버린 것은 내용..이랄까. 아무것도 빌지 않았다.

소원을 적어 주렁주렁 걸어놓는 저 나무판..그림은 여러가지가 있었지만 이 복던지는 고양이가 젤로 인상적이다.

눈밑에 주름이 자글자글한 느낌으로, 무지 지치고 힘들어보이는 표정이랄까. 왠지 저녀석한테 복을 받아야 할 게

아니라 저녀석한테 복을 되려 좀 줘야 할 거같은 맥빠진 눈빛. 역시..눈빛이 생명이다.

신사 내를 돌아다니다가 발견한 화려한 가마. 저건 누굴 태우고 언제 쓰이는 건지, 박물관에 진열된 과거의 유물과

달리 아무런 설명도 안 붙어있다. 그건 아마 여전히 실제로 쓰이고 있고, 박제화되지 않은 채로 사람들의 손때가

더해지고 있기 때문일 듯.

좀 뜬금없다 싶던 이 오줌싸개 소년은 대체 왜 여기에 있을까. 빨간 머플러를 감고선 안 어울리게시리 시크하달까

어른스럽달까 싶은 표정을 짓고 있다. 물이 쫄쫄쫄 나오는데, 리얼하구나 싶었다.

신사 한켠에는 무슨무슨 단체나 개인이 봉헌한 듯한 저 엔자 문이 차곡차곡 세워져있었다. 그리고 그 열주문들이

굳건히 박힌 흙바닥에 빈틈없이 채워져있는 갈퀴질 자국. 저렇게 빈틈없이 바닥에 고랑을 내는 건 쉽지 않을 텐데,

자신이 어디로 들어가서 어디로 빠져야 할지, 그리고 언제 밀고 언제 당겨야 할지 같은 '밀고 당기기'의 고수가

한 갈퀴질임에 틀림없다.

신사 본당은 아니었고 옆에 별채처럼 세워져있던 건물. 프랑스에서 네모난 하드 모양으로 싹둑싹둑 가차없이

잘려있던 가로수들에 깜짝을 놀랬었는데, 여기는 뭐랄까 원통형 모양으로 나무를 정돈하는 건가. 그치만 주변의

유유한 연못과 휘영청 늘어져내린 나무들 사이에서 저렇게 혼자만 "Simpson"와이프같은 머리 모양으로 가꿔져

있다는 건 그다지 나무에게나, 보는 사람에게나 유쾌한 기분은 아닐 거 같다.

그리고 일본스럽다..라는 식으로 내게 굳어지고 있는 이미지들, 야박하리만치 단정하고, 나무 자체의 발색을 살려

차분한 느낌의, 화려하지 않고 잘 정돈된 네모난 벤또꾸러미같은 신사 건물들.

이 처자는 누군데 딱 찍혔는지 모르겠지만, 구시다신사에서 밖으로 걸어나가는 길. 뭔가 등불도 주렁주렁하고,

글자 빼곡한 비석도 좌우로 시립해 있고, 그리고 신사 밖을 향해 뻗은 대리석 포장길을 따라 걸으면 바로 버스와

사람들이 번잡스럽게 살고 있는 후쿠오카 시내라는.

놓칠 뻔 했는데, 한켠에는 또 돌로 만들어진 그 예의 문들이 차곡차곡 채워져있다. 그리고 그 앞쯤에서 뭔가를

이빨가득 물고서 수호하고 있는 개인지 늑대인지 여우인지, 여튼 네발짐승 하나의 석상.

구시다 신사는 사람들이 오며 가며 담배 한대를 맛있게 피우고 떠나는 흡연장소의 역할도 하는 것 같다. 잠시

벤치에 앉아 쉬고 있는 사이 적지않은 아저씨, 할아버지들이 담배를 한대 뻐금대며 태우고는 떠나갔더랬다.

그리고 그 앞에 놓여있던 재떨이가 압권. 이런 사고가 잦은가..? 아이의 얼굴과 담배의 불티부분, 그리고 어른의

손 높이가 같은 높이로 그려져있다. 그 밑에 떡하니 붙어있는 거대한-어른 몸보다도 길고 두꺼운-느낌표.




이번 여행기는 좀 순서가 뒤죽박죽으로 흘러가는 거 같은데..하카다항에 내려서 패키지 관광객들이 우르르 대형

버스에 올라타고 나면, 다소 한산한 느낌의 하카다항 건물 앞 도로변에 붙어있는 버스 정류장 안내판. 일어, 영어,

그리고 한국어로 적혀 있다. 텐진과 하카다 역 방면 버스가 몇 번인지, 운임이 얼마인지에 대한 2008년 11월 버전

정보랄까.

역시 하카다항 국제터미널에서 주요 버스 노선이 몇시몇시에 출발하는지에 대한 2008년 11월 버전 정보.

저렇게 세분화된 주중, 토요일, 일요일의 버스 시간표는 거의 오차없이 딱딱 제시간을 맞췄던 것 같다. 한국선

이리저리 구불구불해서 좀체 불편한 지하철과 배차 간격이 쉽게 지켜지지 않는 버스 때문에 도무지 대중교통을

이용하기가 쉽지 않은데, 저렇게 시간대를 딱 지켜서 운행되는 버스가 있다면 정말 좋겠다. 다만 한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막차 시간이 정말 이르더라는 것 정도?

하카다항 터미널건물에서 나와 처음 밟은 후쿠오카 땅, 그리고 처음 본 풍경은, 어찌 보면 살짝 김이 빠질 만큼

한산하고 변두리스러운 느낌의 도시랄까. 그치만 하늘이 어찌나 이쁘던지 마냥 설렜었다.

아까 그 버스 표지판 앞에 있는 정류장. 제각기 캐리어 하나씩 들고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누군가는 버스 노선도를

눈여겨 보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지도를 신문처럼 펼쳐 보고 있기도 하고. 그리고 그 위로 그야말로 하늘색이

그득히 담긴 하늘.

경제학 복수전공을 하면서 졸업논문을 준비할 때, 버스나 지하철 광고판이 얼마나 실제로 사용되고 있는지를

일종의 경제적 UP & DOWN의 지표로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아이디어를 냈었다. 지하철광고공사나 그런

곳의 협조를 얻어 지하철 광고가 어떤 형태로 몇 곳이나 가능하며, 실제로 팔려나간 정도는 얼마나 되는지 자료를

얻을 수 있다면 경기를 선행하거나 후행하는 식으로 추세를 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었다.


아침저녁으로 보는 텅빈 지하철 광고판, 계약기간이 지나 뒤집어 게시되고 있는 광고들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었는데, 그 탓일까. 외국에 나가면 광고 공간으로 활용될 수 있는 공간이 얼마나 채워져 있는지를 꼭 유심히 보게
 
된다. 여름에 갔던 파리 지하철은 빈 공간이 거의 없이 광고가 꽉 차 있었고, 이번 일본 여행에서 봤던 버스와

지하철 광고판도 그닥 텅 빈 곳은 눈에 띄지 않았던 것 같다. 그게 이런 식의 버스 사용안내로 채워진다고는 해도.

앞에 타신 한국인 아주머니들은 소녀처럼 설레셨다. 당장 버스를 타고 요금을 어떻게 내야 하는지부터 설왕설래

하시면서도 마냥 즐거우신 표정들. 그분들께 알려드린 것처럼, 버스 뒷문으로 탑승해서 정리권이라고 적힌 곳에서

번호표를 떼어내 자리에 앉으면 된다. 그러면 버스가 출발하고, 앞쪽에 있는 1부터 32까지 숫자가 적힌 전광판에

버스 승차금액이 나타나게 된다. 구간에 따라 요금이 할증되는 시스템인지라, 정류장을 많이 지나칠수록 180, 220,

250..뭐 그런 식으로 숫자가 커진다. 그리고 내릴 역이 되면 자기가 갖고 있던 정리권 번호에 맞는 금액을 지불하고

내리면 된다는 식..

정리권은 이런 식으로 생겼는데, 아주 엷게 한자로 정리권, 그리고 오른쪽엔 좀더 진한 글씨로 숫자가 적혀있다.

흔들리는 차안에서 일케 땡겨서 찍을 수 있었던 이유, 버스가 신호에 걸리거나 해서 멈추게 되면 바로 시동을

꺼버렸다. 에너지 절약 차원인 걸까 아님 공기오염 방지 차원인 걸까..이래저래 좋은 거 같긴 하다. 시동을 자꾸

껐다 켰다 하면서 기름이 더 소모되는 게 아니라는 전제가 필요하지만.

머물었던 호텔은 하카다역 옆의 도요호텔(東洋호텔)이란 곳이었다. 머 특별할 거 없는 조그맣고 깔끔한 비즈니스

호텔정도라고 할 수 있겠다. 하카다역 근처에 있는 호텔들보다 텐진 시내에 있는 호텔들이 더 놀기에는 좋지 않나

싶지만, 암만해도 하카다역 근처가 좀더 숙박료가 쌌던 거 같다. 그리고 머, 후쿠오카가 그렇게 거대한 도시도

아닌지라, 사실 숙소는 어디든 상관없다. 워싱턴 모뉴먼트 옆에서 노숙도 했었는데 모.

도요 호텔. 밋밋한 외관만큼이나 할 말없는 밋밋한 내부 인테리어였지만, 그래도 2박3일간 여행의 베이스캠프가

되어 중간에 쉬러 돌아오기도 하고..자그마한 술판을 차리기도 하고..

11층짜리 건물이었구나, 머물렀던 곳이 8층이었던가..그러고 보니 호텔을 들고 나면서 한번도 다른 손님들과

함께 엘레베이터를 탔던 적이 없는 것 같다. 심플한 '開', '閉' 표시만 덩그러니.

호텔 로비. 사실 이거 호텔이라기에도 좀 민망할 정도지만, 그렇게 고급스럽고 럭셔리한 게 아직 몸에 맞지 않는

나이인지라(혹은 나이라고 주장하는지라) 전혀 개의치 않았다. 언제까지 그럴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아직은

거칠고 무질서스러운 나라들에서 막무가내식으로 돌아다니는 배낭여행이 훨씬 좋다. 다만 저녁 때에는 단백질이나

좀 그럴듯한 음식으로 체력을 보충하고 싶다는 생각이 슬몃 들기는 하고 있지만.

호텔에 짐을 던져주고 걷기 시작한 거리에서 딱 마주친 기모노 복장의 아주머니 네 분. 일렬횡대로 인도를 꽉

채우고 앞서 걷고 계셨는데 어딜 가시는 건지. 뭔가 7인의 사무라이 필이 살짝 나는 게 어딘가 한판 하시러 가시는

건 아니겠지.

거리의 핸폰 가게. 우와~ 이뿌다, 싶은 핸드폰들이 꽤나 많이 보인다. 엘쥐의 쪼꼬렛폰을 여태 쓰고 있는 이유 중의

하나로, 아직 맘에 드는 디자인의 핸드폰을 못 봤다..란 거였는데 글쎄, 앞줄의 귀여운 것들이나 뒷줄 오른켠의

빤짝이는 유리상자같은 것들이라면 심각하게 생각해 볼 것 같다.

무슨 가게인지 얼핏 감이 올 수 밖에 없었다. 커다란 강아지 인형, 그리고 창문 가득 붙어있는 개발바닥 자국.

멀찍이 보면 강아지 사진이나 엑스레이 사진같은 것들이 보이기도 하고 그렇지만, 실은 요 강아지 인형이

창밖을 내다보고 있는 게 귀엽다 싶어서.

후쿠오카에서의 첫 점심. 구시다신사를 향해 걷던 도중에 뭔가 심상치 않은 기운을 뿜는 작은 골목을 발견했다.

뭔가 인사동 뒷골목이나 명동 뒷골목 같은 곳의 맛집 거리같은 느낌? 이 골목에서 역사적인(?) 첫 점심을

해결하기로 맘먹고 골목으로 진입했었다.

실망스럽게도 아직 시간이 이른지 문이 닫혀있는 가게가 많았다. 그 와중에 두둥, 문을 열고 있는 가게 발견.

라멘집이었고, 하카다의 라멘은 위시 리스트에 들어있었고, 배는 이미 고팠으며, 다리도 아팠기 때문에 냉큼

들어섰다.

자그마한 가게에 뭔가 사진과 장식품들, 쪽지가 빼곡하게 붙어있고, 양념장통이나 소스통마저도 좁은 공간에서

서로 부비적대며 빼곡하게 공간을 메꾸고 있는 느낌이었다. 요약컨대, 왠지 이집 맛있겠구나 하는 느낌.

일본어로만 씌여진 메뉴판에 몇 가지 런치 스페셜이 있길래, 그 중 아무거나 하나를 손가락으로 짚었더니 요런

라멘이 나왔다. 저 안에 들어있는 무려...곱창. 곱이 가득한 곱창이 아낌없이 잔뜩 들어있었고, 가뜩이나 돼지뼈로

푹 고아진 걸쭉하고 진한 국물맛에 곱창의 느끼함이 더해졌다. 무지 맛있게 먹었다. 국물까지 싹 먹었더니 뭔가

장어를 세네마리 구워 먹은 만큼 몸보신을 했다는 느낌? 힘이 불끈 솟았다.

그렇게 힘내서 골목을 나서니, 바로 구시다 신사가 보인다. 고지를 불과 몇 걸음 앞두고선 든든히 속을 채웠으니

가히 최상의 타이밍. 그리고 골목 한 옆에선 나를 향해 웃어주고 있는 한류스타들.


유명한 관광지 A와 B, 그 두 점을 이으며 달리는 길에는, 알게 모르게 숨겨진 재미난 것들을 많이 찾아 볼 수 있다.

예컨대 버스를 타고 어딘가로 이동하면서도, 부드러운 필치의 만화와 몽글몽글한 글씨로 뭔가 한국에서라면

딱딱한 표어로 "차에선 뛰지 맙시다" 정도로 (그것도 노란 바탕에 검은 고딕체 글씨쯤으로) 표현할 법한 내용을

재미있게 표현하고 있었다.

그리고 신호에 걸려서 잠시 멈춰설 때마다 시동을 아예 꺼버리고 대기하는 여유롭고 속편해 보이는 운전기사분들,

그걸 당연히 여기며 누구도 조급증을 내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현지인들...모두 낯설지만 내 호흡 역시 한번 길게

내뿜고 맘을 느슨하게 잡도록 해주는 순간들이었다. 텐진 시내 신호등을 건널 때마다 흘러나오는 살짝 유치하고

단조로운 느낌의 노랫소리하며...그런 순간의 강렬한 느낌들을 전하기란, 사진과 글을 아무리 이리저리 엮어보아도

좀처럼 쉽지 않은 일 같다. 어쩌면 내가 찍는 사진들은 아직 그런 긴호흡의 장면이나 느낌을 담아낼만큼은 커녕

당장 짧은 한호흡의 순간을 포착하는 것조차 버거워하고 있어서 더욱 그럴지도.


그런 와중에 찍히는 아무 상관도 없고 내용도 그닥 부어넣기 힘든 이런 사진. 정말 단순히, 저 수달처럼 생긴

동물 만화캐릭터가 귀엽다는 느낌만으로 카메라를 들었었던 것 같은데 막상 찍어놓고 보니 느낌이 반감된다.

가와바타(KAWABATA)..? 여긴 텐진에서 구시다진자였나 캐널시티로 가던 중에 우연찮게 마주친 쇼핑 공간,

강남지하상가나 회현상가 같은 쇼핑 아케이드랄까. 제법이나 길게 이어진 통로 양측으로 의류, 악세서리, 소품,

음식 등등을 판매하는 점포들이 쭉 늘어서 있었다. 복잡한 동선을 요하며 전체를 이리저리 훑어보기가 쉽지 않은

쇼핑몰 형태의 것보다 이런 식으로 일자로 쭉 늘어선 형태가 개인적으로는 더욱 보는 재미가 쏠쏠한 거 같다.

가와바타 쇼핑아케이드..라고 편의상 부르기로 하고, 그 입구 왼켠에 세워져 있던 이 줄타는 느낌의 아저씨상이

잠시 시선을 끌었다.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지나고 있었고 그중에 또 많은 사람들이 관광객처럼 보였지만 그다지

아무도 이 동상에는 관심을 갖지 않고 지나갔던 듯. 그래서 나도 잠시 보다가, 슬몃 인파 속에 묻어서 아케이드

안에 진입하고 말았다. 사실 일본어만 주렁주렁 써져 있던 그 안내판을 아무리 봐도 뭔가 이사람이 누군지, 왜

포즈는 저모냥인지 알 방법은 없었던 거였다.

지그재그 양쪽을 즈려밟으며 조금씩 전진해 나가는 재미랄까. 그렇게 좌, 우, 좌, 우 가게를 하나씩 구경하다 보면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직선거리로는 고작 몇백미터 밖에 못 나갔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을 때가 있다. 또 그럴 때는

꼭 배가 고프거나, 다리가 무지 아프다는 신호가 오는 때이기도 하다.

그럴 때 문득 눈에 들어온 단팥죽 가게..랄까. 뭔가 아케이드 양쪽으로 즐비하게 늘어선 다른 가게들의 밋밋하고

특색없는 외관과는 달리 본격적인 모양으로 클래식한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했고, 마침 어디에선가 방송용카메라를

들고 가게 안에 들어가 촬영을 하고 있었다. 맛집 소개 프로그램같은 느낌?

안에 들어가니 몇 석 안되는 좌석이지만 이미 꽉 차 있는 상태였고, 가게 안 쪽은 바로 하천쪽으로 뻥 뚫려 있어

어르신들이 단팥죽..같은 걸 먹으며 문득문득 바깥을 내다보곤 했다.

이쯤 되면 그냥 한국의 단팥죽과 같다..라고 해도 될 거 같긴 한데, 그래도 경단이 저렇게나 큰 데다가 단팥죽과

함께 먹는 게 단무지가 아니라 닥꽝(이거 어떻게 쓰는 거지..?)일 테니 꼭 한국의 그것과 같다고는 말못하겠다.

일본 음식스럽게 부드러우면서도 달달한 느낌.

그 단팥죽..같은 걸 먹고 다시 힘내서 갈지자 행보를 이어가던 중 만난 화지(和紙)가게. 정말 이쁘고 세련된 색감의

종이가 많기도 했고, 편지지, 편지봉투, 종이인형, 심지어 만들어지기 전의 종이인형 재료까지 다양한 것들을

팔고 있어서 한참동안이나 질리지도 않고 구경할 수 있었다.

이런 편지봉투들, 특히나 저 분홍빛이 왠지 마음에 팍 꽂히는 편지봉투는 사놓으면 언제든 누군가에게라도 편지를

써보낼 때 유용할 듯 싶었지만 말았다. 편지는 내용이 중요한 거다..랄까.

무슨 일인지 문을 닫고 있는 가게도 있었는데 그 문에 내걸린 표지판을 굳이 안 보더라도, 저 공손히 인사하고 있는

그림만 봐도 딱 알겠다. 미안하지만 지금은 문을 열지 않았다네, 라고. 그나저나 저 그림그려진 사람, 팔이 은근

무지하게 짧은 거같다. 목덜미를 넘어 등덜미까지 훤히 보이도록 깊숙이 수그리고 인사를 했으면, 두 손은 아마도

무릎팍이 아니라 바닥에 손바닥을 온통 대고 있을 정도로 내뻗어졌어야 정상아닌가 싶은데.

이게 바로 현실을 왜곡하는 만화적 상상력의 발현.ㅋ

그리고 또다시 느릿느릿 가다가 마주친 이 아저씨들. 아마도 행운권 추첨이라거나, 즉석 뽑기같은 거 아닐까. 이

아케이드 내에서 물건을 사고 영수증을 가져오는 사람에게 저 다람쥐통 같은 뽑기 기계를 돌려 뭔가를 기대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시스템 말이다. 저 할머니는 아쉽게도 아무 것도 받지 못하고 멋쩍게 돌아섰던 거 같다.

가다가 지쳐서 중간중간 후다닥 걸음을 재촉하기도 하고, 재미없다 싶은 가게는 뛰어넘기도 하고,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았던 시식코너도 몇개 스킵하기도 하면서 반대편 출구에 나왔다. 여기서 바로 구시다진자가 옆에 보였고

그 바로 옆에는 또 캐널 시티로 바로 이어지는 길이 보였던 것 같다.

캐널 시티로 가는 길, 후쿠오카중앙은행의 광고판이 떡하니 붙어있었다. 사람들이 개미떼처럼 바글바글 이미 모인

채, 새롭게 여기저기서 도우려고 뛰어오는 사람들과 함께 후쿠오카중앙은행을, 혹은 일본경제를 앞으로 밀고

나간다는 느낌의 그림은 정말 일본스러운 뭔가를 반영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캐널 시티로 이어지는 통로는 무지하게 길어서, 후쿠오카 시내의 건물들 사이를 꼬불거리며 이어지는

길다란 육교같은 공중대로를 한참이나 걸었던 느낌. 조명도 침침하고 사람도 그다지 많지 않은 이 통로 끝에서

캐널 시티로 합류하면 별안간 대낮같이 밝고 사람들로 미어터지는 쇼핑몰이 나타난다.

배고파서 들어갔던 어느 라멘집에서 열심히 라멘을 만들던 젊은 청년들. 여기는 무슨 체인도 아니고 딱히 이름난

맛집도 아닌 것 같았는데, 그렇다면 결국 일본 라멘이 정말 내입에 잘 맞거나 정말 맛있는 음식이라는 결론으로 날

이끌어준 장본인들.
뽀얀 국물에 둥둥 뜬 기름 몽우리. 그리고 얇지만 탄력있는 면발에 깊이 스며든 구수한 맛.

교자도 시켰더니 이렇게 세모난 모양의 만두가 나왔었다. 후쿠오카에 무슨 한입교자가 유명하니 어디가 맛있니

하길래 꼭 맛보겠다고 몇군데 맛집도 알아두고 했지만, 다 필요없다. 그냥 우연찮게 길거리를 걷다 이쯤에서 배가

고팠고 별 거부감없이 들어가서 시킨 음식이 맛있으면 대박. 아니어도 딱히 기대가 과잉하진 않았으므로

다이조브데쓰네.

갑작스런 장면 전환 같지만, 모스 버거의 테이블마다 놓인 '지역한정' 남만지역 특산 버거 광고. 모스 버거도 첨엔

뭐 별다를 거 있겠어, 하고 별로 시도해 보고 싶은 생각이 없었는데 막상 어쩌다 보니 들어오게 되었고, 그렇게

맛을 보니 꽤 괜찮았던 케이스였다. 내가 먹었던 건 저..왠지 남만북적동이서융이라며 지들빼고는 전부 오랑캐라던

중국의 중화사상을 되새기게 하는 남만버거는 아니었고 기본 모스 버거였는데, 다소 작지만 부드럽고 말랑거리는

빵과 고기의 조화가 꽤나 괜찮았다.

이 사진은...음...신촌이나 강남 어딘가 쯤의 패스트푸드점에서 수다를 떨고 있는 처자들을 떨리는 마음으로 도촬한

거라 해도 할 말이 없을 정도로 이국적인 느낌이 1그램도 묻어나지 않지만, 잘 보면 왠지 스타일이나 머리 모양

등에서 니폰삘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모스 버거의 옆테이블에 앉아 수다를 즐기시던 일군의 처자들.


똥*일보 인턴기자질을 마쳐가던 즈음, 인턴들에게 4면의 지면을 주고 담고 싶은 기사를 취재해 오라고 했던,

마지막 기념품삼아 신문을 직접 만들어 보도록 하는 기회가 주어졌었다. 이른바 '바이라인'이라는 기사 아래의

자신 이름 석자가 실리는 것에 환상을 갖고 있던 인턴 동기들은 저마다 열의를 갖고 이런저런 기사거리를

제안하고 취재를 하겠다고 했으나, 사실 무해하고 '건전한' 장난감같은 4면짜리 인턴신문으로 견인코자 했던

관리자들의 태클로 이도저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그다지 재미도 없고 의미도 없다고 생각했던 그 인턴신문에 그래도 각자 바이라인 하나씩은 넣어야 한다는 게

또 보기 좋고 건전한 마무리를 위한 전제조건이었달까..결국 난 친구 하나가 발제하고 허가를 득한 주제에 대해

함께 취재하러 나가게 되었었다. 그건 바로 서울에서도 도서관 마냥 한사람씩 공간을 칸막이 쳐놓고 음식을 팔고

있는 음식점이 생겼다는 것. 당시 명동교자와 일부 음식점이 점심 때 혼자 와서 밥먹는 직장인들을 위해 그런

일인용 칸막이가 둘러쳐진 테이블을 설치해 놓고 있었다. 


뭐 여러 사정 끝에 그 기사는 하나의 트렌드를 짚고 있다기엔 무리가 있다 하여 짤리고 말았으나, 그때 처음으로

일본엔 이미 그런 식의 1인용 식당이 왠만큼 자리잡고 있음을 알게 되었었다. 그리고 이번에 후쿠오카를 여행하며

드디어 직접 그런 식으로 구획된 라멘집을 경험했으니.

캐널시티에서 이리저리 구경을 하다가 배가 고파져서 찾은 라멘집. 일본 라면을 두고 느끼하다거나 맛이 너무

진해서 입에 맞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들리지만, 첫날 자그마치 '곱창 라멘'의 죽도록 느끼하고 진득한 맛에 반한

후로는 하카다식 라멘에 홀딱 빠진 상태였달까.


근데 여기, 다른 음식점들처럼 가게 앞에 자판기가 있어 표를 사서 주문하는 건 비슷한데, 뭔가 자리배치도에 파란

불빛으로 '空'자가 적혀 있는 게 특이했다. 뭐지? 테이블이 어디가 비어있다고 표시해 놓은 거 같긴 한데.

자리에 앉기 전 주위를 둘러보다 입구쯤서 발견한 추가주문용지. 드문드문 한자는 뭔말인지 얼추 추측은 하겠다만

일본어가 얼기설기 섞여있어서 좀체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어쨌든 뭔가 돈을 더 내야 추가로 뭔가를 더 집어넣어

라면을 만들어주겠다는 뜻인 듯.

자리에 앉으려니 의자 하나, 그리고 딱 도서관 칸막이가 점유하고 있는 공간만큼을 허용하는 둘러쳐진 테이블.

대체 음식은 어떻게 나오나 싶어 앞쪽으로 고개를 빼어보니 가운데엔 서빙하는 점원이 앞뒤로 움직일만큼의 좁은

통로가 있고, 그 양쪽으로 이렇게 칸쳐진 도서관 책상이 열지어 있는 구조였다.


혼자 와서 밥을 사먹을 수 있다는 건, 때론 그만큼 나이가 들었다거나 철이 들었다는 상징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누군가에게는 무지 꺼려지고 부담스러울 수 있는 그런 피치못한 순간에 이처럼 혼자 조용히 외부의 시선으로부터

은폐된 채 밥을 먹을 수 있는 공간이란 꽤나 매력적이겠다 싶었다. 앞쪽에 마주보고 있는 사람과 행여 눈길이라도

마주칠까 싶어 길게 드리워진 커튼같은 천조각은 더욱 완벽하게 자기 자신과 앞에 놓인 음식에만 집중할 수 있는

최선의 조건을 제공하게 될 거 같다.

옆에 젓가락통에 함께 꼽혀 있는 종이에는 한국어로 라면 기호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해주는 몇가지 옵션들을

제시하고 있었다. 예컨대 기름기 정도, 라면의 감촉, 그리고 비전 조미료를 얼마나 넣을지 같은 것들을 무난한

한글로 적어놓고 있었는데, 꽤나 많은 한국인 관광객들이 이곳을 찾고 있는 반증이지 싶다. 다만 하나 이해하기

힘들었던 것은 바로 저 항목, "궁극의 신맛"이 대체 무얼까..심플하게 '있다'와 '없다'만을 선택할 수 있는 양자택일

그 기로에서 난 일단 '있다'를 선택했다.

이게 바로 '궁극의 신맛'이 있는 라면. 살짝 퍼진 느낌의 네모난 라면그릇에 담긴 건 기름기 둥둥 떠다니고 마치

한국의 꼬리곰탕처럼 진한 육수맛이 인상적인 라멘. 한국의 라면을 떠올리게 된다기보다, 오히려 사골탕이나

꼬리곰탕같이, 뼈가 흐물흐물해지도록 고아낸 뿌연 육수가 자연스레 연상된다. 그런 것들은 식으면서 마치 젤리나

묵처럼 국물이 걸쭉하게 굳어버리곤 하는데, 분명 이런 후쿠오카의 라멘도 그렇게 될 거 같다.


뭐랄까, 음식의 계보를 따지자면 일본의 라멘은 분명 한국의 라면보다 꼬리곰탕같은 사골국물에 훨씬 가까운

음식으로 판명되지 않을까 싶다.

이치란. 가이드북에 따르자면, 여기가 관광객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라멘 전문점이란다. 자그마치 1960년도부터

이어온 비밀 양념장이 푹 고아진 돼지뼈 국물에 더해져서 느끼하지 않은 국물맛이 난다고 하는데, 글쎄 난 냄새가

나는지 안 나는지도 모르고 그저 맛있게 먹었을 뿐이었다는.


회사가 코엑스에 붙어있는 나로서는, 그다지 쇼핑몰 같은 곳을 굳이 돌아볼 필요는 없을 거라 생각했었다. 실제로

캐널시티를 돌아보면서 몇몇 샵들이 조금 재미있기는 했지만, 커낼시티는 그냥 후쿠오카에 있는 조금 큰 쇼핑몰

정도라고 치고 다른 곳으로 향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막상 몰 밖으로 나와 천장이 트인 공간에 서니 이미 캄캄해진

어둠을 배경으로 캐널 시티의 화려한 조명이 이뿌게도 붕붕 떠다니고 있었다.
때는 11월 말. 이제 슬슬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달구기 시작하는 타이밍에 맞춤하게도, 크리스마스 트리와 이런저런

태피스트리..라고 하던가, 그런 장식물들이 반짝거리는 조명에 둘둘 감긴 채 뭔가 특별한 광경을 선사하는

커낼시티의 거죽. 솔직히 내장은 그닥 신선치는 않았단 말이다.

크리스마스를 맞이하기 위해 기분을 업시켜주는 이런저런 사진들을 보면서 거죽이네, 내장이네 하고 있는 나는

뭔가 싶지만, 어쨌든 이미 작년 크리스마스는 지났고 올해 크리스마스를 기다리기엔 너무 멀단 말이다. 그러고

보자면 사실 크리스마스 당일 아침은 항상 느지막히 10시나 11시쯤부터 시작했었고, 눈뜨고 나서 느끼는 그

허망함이나 부질없음의 느낌은 마치 질긴 고기를 잔뜩 씹고 나서 잇새가득한 이물감 같은 것이었다.


역시 크리스마스는 이브가 최고. 뭔가 마법같은 일이 벌어지기에 딱 좋은 날짜란 말이다. 12월 24일.

한 켠에는 무대 장치도 되어있고, 뭔가 공연도 드문드문 준비되어 있는 모양이지만 내가 이곳을 거닐던 짧은

시간 동안에는 어디에서도 가슴뛰는 기타의 굉음이나 누군가의 호기로운 노랫소리 따위 들을 수 없었더랬다.

이런 건 참 비슷하달까, 상상력의 한계라고까지야 하진 않더라도. 코엑스몰이니 다른 복합쇼핑공간이니 하는

곳은 모두 노래짱 선발대회니 특별공연이니 하는 것들과 쇼핑공간을 융합시킨지 이미 오래인 거다.

이 것들은...어디서 봤더라, 뭔가 애니에서 봤던 듯한 캐릭터들이지만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게 없다. 그냥 단순히

디즈니 만화의 캐릭터를 갖다 쓴 거 같기도 하고, 우야튼 좀 맥락없이 세워진 이 녹색 동물들은 대체 크리스마스와

어떤 연관성이 있길래 저렇게 선물까지 잔뜩 받아가며 알바를 뛰고 있는 겐지.왼쪽 다람쥐 녀석 왠지 왼쪽 입꼬릴

찌그리고 쪼개는 게 기분나쁘다.

이거 자꾸 맘내키는 대로 쓰다보니 anti-Christmas의 기운이 강하게 뻗어나가는 느낌이지만, 정말로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사라진지는 오래인 터..굳이 크리스마스 액세서리라고 생각지 말고 단지 이렇게저렇게 꾸며진 이쁜

장식품이라고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그렇지만 저토록 후하게 보이는, '나는 관대하다'라고 창문모양 입으로 온통 외치고 있는 듯한 선물의 집은 역시

크리스마스 시즌이 아니고서는 쉽게 소화할 수 없을 유난스럽고 두드러지는 장식이긴 하다.

커낼 시티에서 맘에 들었던 것 중 하나, 마당이랄까 이 열린 공간을 걷다가 문득 예고없이 마주치는 분수대. 전혀

사람이 다니는 길과 구분되어 있지 않고, 물이 뿜어져 나오는 구멍 역시 바닥면과 같은 높이로 숨겨져 있어서

느닷없이 뿜어져 나오는 물줄기를 보면 왠지 유쾌한 장난질에 속아넘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 뒤에는 몇 그루의 크리스마스 트리, 그리고 그 트리들에 빨간 우산을 하나씩 들린 것처럼 조명이 서있다.

루돌프 사슴코 모양 시뻘건 불빛을 밝혀든 버섯 같은 조명등. 조금만 더 날카롭게 각도가 섰다면 붉게 달아오른

화염의 창이 떠오르지 않았을까.

분수대와 더불어 커낼 시티에서 맘에 꼭 들었던 것 하나는, 바로 요 흡연구역이었다. 어렸을 적 우산을 두세개쯤

동시에 펼쳐놓고 조그마한 텐트를 치고 들어가 공간을 꼭꼭 여몄던 기억이 나게 만드는, 그런 왠지 비슷한 모양의

흡연구역. 저 동그란 천막 같은 곳에 들어가 담배를 피면 왠지 기분도 색다를 거 같다. 게다가 저 푸르스름한

간접 조명은 대체 어디서부터 쪼여지는 건지.

그러고 보니 난 커낼 시티의 후면으로부터 전면의 정문으로 역주행한 셈인가. 어쨌거나 커낼 시티를 한바퀴

관통하고 돌아보는 정문의 산뜻한 네온사인이 깔끔하다. 그렇게 필요 이상으로 휘황찬란하거나 거대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또 여기가 어딘지 알아보기도 쉽지 않을 만큼 왜소하거나 너무 밋밋하지도 않고.

이건...커낼 시티를 떠나 텐진 쪽으로 걷다가 문득 마주쳤던 일본의 모텔 가격표. 혹시 필요하신 분들은 참고하시기

바랄 뿐. 한국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요금체계가 좀 정교한 게 아닌가 싶다. 180분짜리 REST, 100분짜리 SHORT

TIME, 그리고 FREE TIME과 STAY. 요 두개 차이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선홍색 꽃잎들이 미묘하달까.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