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가 코엑스에 붙어있는 나로서는, 그다지 쇼핑몰 같은 곳을 굳이 돌아볼 필요는 없을 거라 생각했었다. 실제로

캐널시티를 돌아보면서 몇몇 샵들이 조금 재미있기는 했지만, 커낼시티는 그냥 후쿠오카에 있는 조금 큰 쇼핑몰

정도라고 치고 다른 곳으로 향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막상 몰 밖으로 나와 천장이 트인 공간에 서니 이미 캄캄해진

어둠을 배경으로 캐널 시티의 화려한 조명이 이뿌게도 붕붕 떠다니고 있었다.
때는 11월 말. 이제 슬슬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달구기 시작하는 타이밍에 맞춤하게도, 크리스마스 트리와 이런저런

태피스트리..라고 하던가, 그런 장식물들이 반짝거리는 조명에 둘둘 감긴 채 뭔가 특별한 광경을 선사하는

커낼시티의 거죽. 솔직히 내장은 그닥 신선치는 않았단 말이다.

크리스마스를 맞이하기 위해 기분을 업시켜주는 이런저런 사진들을 보면서 거죽이네, 내장이네 하고 있는 나는

뭔가 싶지만, 어쨌든 이미 작년 크리스마스는 지났고 올해 크리스마스를 기다리기엔 너무 멀단 말이다. 그러고

보자면 사실 크리스마스 당일 아침은 항상 느지막히 10시나 11시쯤부터 시작했었고, 눈뜨고 나서 느끼는 그

허망함이나 부질없음의 느낌은 마치 질긴 고기를 잔뜩 씹고 나서 잇새가득한 이물감 같은 것이었다.


역시 크리스마스는 이브가 최고. 뭔가 마법같은 일이 벌어지기에 딱 좋은 날짜란 말이다. 12월 24일.

한 켠에는 무대 장치도 되어있고, 뭔가 공연도 드문드문 준비되어 있는 모양이지만 내가 이곳을 거닐던 짧은

시간 동안에는 어디에서도 가슴뛰는 기타의 굉음이나 누군가의 호기로운 노랫소리 따위 들을 수 없었더랬다.

이런 건 참 비슷하달까, 상상력의 한계라고까지야 하진 않더라도. 코엑스몰이니 다른 복합쇼핑공간이니 하는

곳은 모두 노래짱 선발대회니 특별공연이니 하는 것들과 쇼핑공간을 융합시킨지 이미 오래인 거다.

이 것들은...어디서 봤더라, 뭔가 애니에서 봤던 듯한 캐릭터들이지만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게 없다. 그냥 단순히

디즈니 만화의 캐릭터를 갖다 쓴 거 같기도 하고, 우야튼 좀 맥락없이 세워진 이 녹색 동물들은 대체 크리스마스와

어떤 연관성이 있길래 저렇게 선물까지 잔뜩 받아가며 알바를 뛰고 있는 겐지.왼쪽 다람쥐 녀석 왠지 왼쪽 입꼬릴

찌그리고 쪼개는 게 기분나쁘다.

이거 자꾸 맘내키는 대로 쓰다보니 anti-Christmas의 기운이 강하게 뻗어나가는 느낌이지만, 정말로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사라진지는 오래인 터..굳이 크리스마스 액세서리라고 생각지 말고 단지 이렇게저렇게 꾸며진 이쁜

장식품이라고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그렇지만 저토록 후하게 보이는, '나는 관대하다'라고 창문모양 입으로 온통 외치고 있는 듯한 선물의 집은 역시

크리스마스 시즌이 아니고서는 쉽게 소화할 수 없을 유난스럽고 두드러지는 장식이긴 하다.

커낼 시티에서 맘에 들었던 것 중 하나, 마당이랄까 이 열린 공간을 걷다가 문득 예고없이 마주치는 분수대. 전혀

사람이 다니는 길과 구분되어 있지 않고, 물이 뿜어져 나오는 구멍 역시 바닥면과 같은 높이로 숨겨져 있어서

느닷없이 뿜어져 나오는 물줄기를 보면 왠지 유쾌한 장난질에 속아넘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 뒤에는 몇 그루의 크리스마스 트리, 그리고 그 트리들에 빨간 우산을 하나씩 들린 것처럼 조명이 서있다.

루돌프 사슴코 모양 시뻘건 불빛을 밝혀든 버섯 같은 조명등. 조금만 더 날카롭게 각도가 섰다면 붉게 달아오른

화염의 창이 떠오르지 않았을까.

분수대와 더불어 커낼 시티에서 맘에 꼭 들었던 것 하나는, 바로 요 흡연구역이었다. 어렸을 적 우산을 두세개쯤

동시에 펼쳐놓고 조그마한 텐트를 치고 들어가 공간을 꼭꼭 여몄던 기억이 나게 만드는, 그런 왠지 비슷한 모양의

흡연구역. 저 동그란 천막 같은 곳에 들어가 담배를 피면 왠지 기분도 색다를 거 같다. 게다가 저 푸르스름한

간접 조명은 대체 어디서부터 쪼여지는 건지.

그러고 보니 난 커낼 시티의 후면으로부터 전면의 정문으로 역주행한 셈인가. 어쨌거나 커낼 시티를 한바퀴

관통하고 돌아보는 정문의 산뜻한 네온사인이 깔끔하다. 그렇게 필요 이상으로 휘황찬란하거나 거대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또 여기가 어딘지 알아보기도 쉽지 않을 만큼 왜소하거나 너무 밋밋하지도 않고.

이건...커낼 시티를 떠나 텐진 쪽으로 걷다가 문득 마주쳤던 일본의 모텔 가격표. 혹시 필요하신 분들은 참고하시기

바랄 뿐. 한국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요금체계가 좀 정교한 게 아닌가 싶다. 180분짜리 REST, 100분짜리 SHORT

TIME, 그리고 FREE TIME과 STAY. 요 두개 차이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선홍색 꽃잎들이 미묘하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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