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한 관광지 A와 B, 그 두 점을 이으며 달리는 길에는, 알게 모르게 숨겨진 재미난 것들을 많이 찾아 볼 수 있다.

예컨대 버스를 타고 어딘가로 이동하면서도, 부드러운 필치의 만화와 몽글몽글한 글씨로 뭔가 한국에서라면

딱딱한 표어로 "차에선 뛰지 맙시다" 정도로 (그것도 노란 바탕에 검은 고딕체 글씨쯤으로) 표현할 법한 내용을

재미있게 표현하고 있었다.

그리고 신호에 걸려서 잠시 멈춰설 때마다 시동을 아예 꺼버리고 대기하는 여유롭고 속편해 보이는 운전기사분들,

그걸 당연히 여기며 누구도 조급증을 내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현지인들...모두 낯설지만 내 호흡 역시 한번 길게

내뿜고 맘을 느슨하게 잡도록 해주는 순간들이었다. 텐진 시내 신호등을 건널 때마다 흘러나오는 살짝 유치하고

단조로운 느낌의 노랫소리하며...그런 순간의 강렬한 느낌들을 전하기란, 사진과 글을 아무리 이리저리 엮어보아도

좀처럼 쉽지 않은 일 같다. 어쩌면 내가 찍는 사진들은 아직 그런 긴호흡의 장면이나 느낌을 담아낼만큼은 커녕

당장 짧은 한호흡의 순간을 포착하는 것조차 버거워하고 있어서 더욱 그럴지도.


그런 와중에 찍히는 아무 상관도 없고 내용도 그닥 부어넣기 힘든 이런 사진. 정말 단순히, 저 수달처럼 생긴

동물 만화캐릭터가 귀엽다는 느낌만으로 카메라를 들었었던 것 같은데 막상 찍어놓고 보니 느낌이 반감된다.

가와바타(KAWABATA)..? 여긴 텐진에서 구시다진자였나 캐널시티로 가던 중에 우연찮게 마주친 쇼핑 공간,

강남지하상가나 회현상가 같은 쇼핑 아케이드랄까. 제법이나 길게 이어진 통로 양측으로 의류, 악세서리, 소품,

음식 등등을 판매하는 점포들이 쭉 늘어서 있었다. 복잡한 동선을 요하며 전체를 이리저리 훑어보기가 쉽지 않은

쇼핑몰 형태의 것보다 이런 식으로 일자로 쭉 늘어선 형태가 개인적으로는 더욱 보는 재미가 쏠쏠한 거 같다.

가와바타 쇼핑아케이드..라고 편의상 부르기로 하고, 그 입구 왼켠에 세워져 있던 이 줄타는 느낌의 아저씨상이

잠시 시선을 끌었다.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지나고 있었고 그중에 또 많은 사람들이 관광객처럼 보였지만 그다지

아무도 이 동상에는 관심을 갖지 않고 지나갔던 듯. 그래서 나도 잠시 보다가, 슬몃 인파 속에 묻어서 아케이드

안에 진입하고 말았다. 사실 일본어만 주렁주렁 써져 있던 그 안내판을 아무리 봐도 뭔가 이사람이 누군지, 왜

포즈는 저모냥인지 알 방법은 없었던 거였다.

지그재그 양쪽을 즈려밟으며 조금씩 전진해 나가는 재미랄까. 그렇게 좌, 우, 좌, 우 가게를 하나씩 구경하다 보면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직선거리로는 고작 몇백미터 밖에 못 나갔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을 때가 있다. 또 그럴 때는

꼭 배가 고프거나, 다리가 무지 아프다는 신호가 오는 때이기도 하다.

그럴 때 문득 눈에 들어온 단팥죽 가게..랄까. 뭔가 아케이드 양쪽으로 즐비하게 늘어선 다른 가게들의 밋밋하고

특색없는 외관과는 달리 본격적인 모양으로 클래식한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했고, 마침 어디에선가 방송용카메라를

들고 가게 안에 들어가 촬영을 하고 있었다. 맛집 소개 프로그램같은 느낌?

안에 들어가니 몇 석 안되는 좌석이지만 이미 꽉 차 있는 상태였고, 가게 안 쪽은 바로 하천쪽으로 뻥 뚫려 있어

어르신들이 단팥죽..같은 걸 먹으며 문득문득 바깥을 내다보곤 했다.

이쯤 되면 그냥 한국의 단팥죽과 같다..라고 해도 될 거 같긴 한데, 그래도 경단이 저렇게나 큰 데다가 단팥죽과

함께 먹는 게 단무지가 아니라 닥꽝(이거 어떻게 쓰는 거지..?)일 테니 꼭 한국의 그것과 같다고는 말못하겠다.

일본 음식스럽게 부드러우면서도 달달한 느낌.

그 단팥죽..같은 걸 먹고 다시 힘내서 갈지자 행보를 이어가던 중 만난 화지(和紙)가게. 정말 이쁘고 세련된 색감의

종이가 많기도 했고, 편지지, 편지봉투, 종이인형, 심지어 만들어지기 전의 종이인형 재료까지 다양한 것들을

팔고 있어서 한참동안이나 질리지도 않고 구경할 수 있었다.

이런 편지봉투들, 특히나 저 분홍빛이 왠지 마음에 팍 꽂히는 편지봉투는 사놓으면 언제든 누군가에게라도 편지를

써보낼 때 유용할 듯 싶었지만 말았다. 편지는 내용이 중요한 거다..랄까.

무슨 일인지 문을 닫고 있는 가게도 있었는데 그 문에 내걸린 표지판을 굳이 안 보더라도, 저 공손히 인사하고 있는

그림만 봐도 딱 알겠다. 미안하지만 지금은 문을 열지 않았다네, 라고. 그나저나 저 그림그려진 사람, 팔이 은근

무지하게 짧은 거같다. 목덜미를 넘어 등덜미까지 훤히 보이도록 깊숙이 수그리고 인사를 했으면, 두 손은 아마도

무릎팍이 아니라 바닥에 손바닥을 온통 대고 있을 정도로 내뻗어졌어야 정상아닌가 싶은데.

이게 바로 현실을 왜곡하는 만화적 상상력의 발현.ㅋ

그리고 또다시 느릿느릿 가다가 마주친 이 아저씨들. 아마도 행운권 추첨이라거나, 즉석 뽑기같은 거 아닐까. 이

아케이드 내에서 물건을 사고 영수증을 가져오는 사람에게 저 다람쥐통 같은 뽑기 기계를 돌려 뭔가를 기대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시스템 말이다. 저 할머니는 아쉽게도 아무 것도 받지 못하고 멋쩍게 돌아섰던 거 같다.

가다가 지쳐서 중간중간 후다닥 걸음을 재촉하기도 하고, 재미없다 싶은 가게는 뛰어넘기도 하고,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았던 시식코너도 몇개 스킵하기도 하면서 반대편 출구에 나왔다. 여기서 바로 구시다진자가 옆에 보였고

그 바로 옆에는 또 캐널 시티로 바로 이어지는 길이 보였던 것 같다.

캐널 시티로 가는 길, 후쿠오카중앙은행의 광고판이 떡하니 붙어있었다. 사람들이 개미떼처럼 바글바글 이미 모인

채, 새롭게 여기저기서 도우려고 뛰어오는 사람들과 함께 후쿠오카중앙은행을, 혹은 일본경제를 앞으로 밀고

나간다는 느낌의 그림은 정말 일본스러운 뭔가를 반영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캐널 시티로 이어지는 통로는 무지하게 길어서, 후쿠오카 시내의 건물들 사이를 꼬불거리며 이어지는

길다란 육교같은 공중대로를 한참이나 걸었던 느낌. 조명도 침침하고 사람도 그다지 많지 않은 이 통로 끝에서

캐널 시티로 합류하면 별안간 대낮같이 밝고 사람들로 미어터지는 쇼핑몰이 나타난다.

배고파서 들어갔던 어느 라멘집에서 열심히 라멘을 만들던 젊은 청년들. 여기는 무슨 체인도 아니고 딱히 이름난

맛집도 아닌 것 같았는데, 그렇다면 결국 일본 라멘이 정말 내입에 잘 맞거나 정말 맛있는 음식이라는 결론으로 날

이끌어준 장본인들.
뽀얀 국물에 둥둥 뜬 기름 몽우리. 그리고 얇지만 탄력있는 면발에 깊이 스며든 구수한 맛.

교자도 시켰더니 이렇게 세모난 모양의 만두가 나왔었다. 후쿠오카에 무슨 한입교자가 유명하니 어디가 맛있니

하길래 꼭 맛보겠다고 몇군데 맛집도 알아두고 했지만, 다 필요없다. 그냥 우연찮게 길거리를 걷다 이쯤에서 배가

고팠고 별 거부감없이 들어가서 시킨 음식이 맛있으면 대박. 아니어도 딱히 기대가 과잉하진 않았으므로

다이조브데쓰네.

갑작스런 장면 전환 같지만, 모스 버거의 테이블마다 놓인 '지역한정' 남만지역 특산 버거 광고. 모스 버거도 첨엔

뭐 별다를 거 있겠어, 하고 별로 시도해 보고 싶은 생각이 없었는데 막상 어쩌다 보니 들어오게 되었고, 그렇게

맛을 보니 꽤 괜찮았던 케이스였다. 내가 먹었던 건 저..왠지 남만북적동이서융이라며 지들빼고는 전부 오랑캐라던

중국의 중화사상을 되새기게 하는 남만버거는 아니었고 기본 모스 버거였는데, 다소 작지만 부드럽고 말랑거리는

빵과 고기의 조화가 꽤나 괜찮았다.

이 사진은...음...신촌이나 강남 어딘가 쯤의 패스트푸드점에서 수다를 떨고 있는 처자들을 떨리는 마음으로 도촬한

거라 해도 할 말이 없을 정도로 이국적인 느낌이 1그램도 묻어나지 않지만, 잘 보면 왠지 스타일이나 머리 모양

등에서 니폰삘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모스 버거의 옆테이블에 앉아 수다를 즐기시던 일군의 처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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